원경릉을 노린다고?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태자비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우문호가 태자가 아니라는 전제다.우문호의 아내는 오직 원경릉만 가능하기 때문이다.“만일 늑대파가 이 일을 맡으면 알거나 저지할 방법이 있을까?”소홍천이, “알 수 있죠, 늑대파에서 자객을 보낼 때 바로 알죠, 저지하는 거까지는……” 그녀가 한숨을 쉬고, “막는 건 불가능해요, 지금까지 늑대파가 마무리하지 못한 임무가 없거든요, 은자를 받기만 하면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목을 따서 가져 올 거예요.”우문호의 안색이 살벌 해졌다.소홍천이 우문호에게, “정말 전하 어마마마께서 태자비를 죽이려고 하는 게 확실한가요?”우문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오늘 궁에서 어마마마와 한바탕 싸웠어, 마지막에 한마디 하더군, 내가 지금 이렇게 불효자가 된 건 전부 원 선생이 망쳐 놓은 거라고, 당초에 원 선생이 아이를 낳을 때 즉시 결단을 내렸 어야 했다고. 이 말을 하는데 눈에 원한이 가득 차서 사람을 꽁꽁 얼려버리는 눈빛이었어.”“그건 태자비 마마를 죽이겠다고 말한 건 아니네요, 지나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소홍천은 여전히 생각하길, 현비가 이렇게 비이성적일리가? 황태손의 생모를 죽이다니 여파가 얼마나 큰데!우문호가 재론의 여지도 없는 원망과 분노로, “내가 만약 쓸데없이 걱정하는 거면 이 밤중에 널 찾아 왔겠어? 모자는 생각이 통해. 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걸 어마마마는 알고, 똑같이 어마마마 생각을 나도 알아. 지금 아바마마와 태상황 폐하 모두 원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데다 황실에 세 아들을 낳아주었지. 천신만고 끝에 큰 공을 세웠으니 어마마마는 원 선생의 털끝 하나도 건드려서는 안돼, 없애려면 몰래 하는 수밖에 없지. 자객을 고용하는 게 제일 편하고. 홍천, 이 일에 네가 신경 좀 써줘, 예사로 여길 수 없는 게 조금도 실수해선 안돼, 지난 두 번을 겪어서 내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미리 대책을 세워 두는 게 맞다고 생
우문호의 상처를 봐주는 원경릉우문호가 소홍천에게, “홍천, 다른 방법은 소용없으니 늑대파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게 날 도와줘, 아니면 늑대파가 이 일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해줘.”백사문 문주가, “전하, 늑대문이 이 일을 맡았는지 여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허나 만약 일을 수락했다면 포기하게 하는 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습니다.”우문호가 예를 취하며, “우선 귀찮으시겠지만 확실한 정보를 물어봐 주세요.”“전하 걱정 마세요, 이틀 내에 분명 소식이 있을 겁니다. 늑대문은 일을 맡기 전에 우선 조사를 한 뒤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일을 맡고 열흘 내에 행동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습니다.”열흘!우문호의 마음이 막막하고 초조 해졌다. 시간이 촉박하다.곧 날이 밝을 즈음 우문호는 초왕부로 돌아왔다.원경릉은 깊이 잠들어 있고 우문호는 침대 가에 앉아 쌔근쌔근 잠든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이 어째 딱 이 시기인지, 스스로가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원경릉이 곁에 누가 있다고 느끼고 몽롱하게 눈을 뜨더니, 옷을 입은 채로 침대 곁에 앉아 있는 우문호에게서 실낱 같은 피비린내가 나는 것을 맡고는 잠이 확 깼다.“일어나지 마, 계속 자.” 우문호가 몸을 숙여 원경릉의 볼에 뽀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숙면 뒤에 오는 쉰 목소리로, “상처는 어때?”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괜찮아, 작은 상처야.”“봐봐!” 원경릉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됐어, 괜찮아, 당신은 계속 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끌어당기자 원경릉이 통증으로 작게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우문호가 꼭 쥐었던 손목을 살살 펴서 원경릉의 손바닥을 보니 벌겋게 부어 있고, 한쪽엔 물집이 잡혀 있는 게 우무호의 미간도 찌푸려지며, “어떻게 된 거야?”원경릉은 현비의 일을 감추지 않고, “자기 어마마마 탕약 드시는 거 시중 들 때, 탕약을 엎으셨어.”“일부러?” 우문호의 눈빛이 삼엄해 졌
늑대파 이리 나리늑대파의 총본산은 수도권에 있지 않고 천자의 주변에 있다.하지만 늑대파의 총본산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다녀갔거나 들어가더라도 이곳이 원래 이름 높은 늑대파인 줄 알 수가 없다.왜냐면 늑대파의 총본산은 기루 안에 있고, 그것도 수도권에서 제일 큰 기루로, 여기는 흥청거리며 휘황찬란해서 매일 밤 귀족과 부한 상인 및 부유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들며 돈을 쓰는 곳이다.기루의 이름은 초두취(梢頭醉)로 사장은 세칭 ‘이리 나리’라 불리는데 이름은 모르고 단지 검은 돈이 상당하고, 초두취 말고도 각 지역에 기루와 유곽, 기름집과 싸전, 비단 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는데 안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제일 중요한 건 이리 나리가 올해 갓 서른이 된 미혼의 젊은 사람으로 명실상부한 다이아몬드 ‘미중년’이란 사실이다.이리 나리는 수도권 최고의 미남인데 어느 정도 아름답냐고? 그가 만약 여장을 하면 초두취의 명기들이 빛을 잃고 꼬리를 내릴 정도다.하지만 다들 ‘남자가 이렇게 유약해서 쓰나’ 생각한다. 강인함이 없고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은 알 수 없을 뿐더러 종일 서시(西施)처럼 아픈 심장을 부여잡고 병약한 모습이다.이리 나리를 자주 본 사람들은 이리 나리가 불치병에 걸려 얼마 못 살 거라 생각했지만 스무 살 때 초두취를 열어 지금까지 십년이 지나도록 멀쩡하게 살아있고 병약하긴 병약하지만 나날이 유유자적 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초두취에 없는 미인이 있을까? 그러니 이리 나리가 결혼을 안하고 천하의 모든 남자가 꿈에도 그리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돈이며 외모에 여자까지 다 있으니 인생에 무슨 여한이 있을까?이리 나리의 거침없고 멋스러운 모습은 북당 남자들이 일생동안 궁극으로 추구하는 모습이었다.이리 나리는 별도의 저택이 없고, 초두취 후원에 살았다.초두취는 매우 커서 경성에 있는 왕부의 2배 정도 되고 후원과 앞쪽이 나뉘어져 있어 앞쪽에서는 장사를 하고 후원에서는 이리 나리가 살지만 사치스럽고 화려한 측면을 논하자면 후원이
태자비를 없앤다고?“왜 말이 없어? 어!” 이리 나리가 다시 무겁게 침향목 차탁을 두드리자 최상품의 침향목에 한 줄기로 금이 갔다.“나리……” 네모난 얼굴의 부하가 염치 불구하고 앞으로 나와, “아니면 물릴 까요?”이리 나리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 “물려? 우리 늑대파가 성립된 이래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있어? 거래를 물린 적이 있어?”“그건……” 네모난 얼굴의 부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리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이리 나리는 냉랭하게, “거래를 이미 받아들였으니 물릴 수는 없지만, 늑대파의 규칙을 깰 수는 없어.”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태자비는 정말 무공을 모른다고.수하들이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며 어째야 좋을지 모른다.“태사부!” 이리 나리가 목청을 울리며 소리치자 목의 파란 힘줄이 드러나며 확실히 분노했음을 알 수 있다.염소 수염을 기르고 태사부 분위기를 풍기는 태사부가 문에서 줄달음쳐 오며 입으로, “나리, 소인 여기 있습니다.”“이 일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이리 나리가 튀어나온 이마를 주무르며 상당히 걱정했다. 진짜 너무 걱정이 됐다.태사부는 계속 문 가에서 듣고 있어서 이리 나리가 어느 대목에서 화가 났는지 알고, “나리, 지금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이 목표인물에게 무공을 가르쳐서 100등 안에 들어오면 그때 손을 쓰는 것이고, 두번째는 저희 늑대파 규칙에 이런 조항이 있지요, 만약 이 여자가 남편을 배신하고 아이를 버리면 죽일 수 있다.”이리 나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응, 응, 무공을 가르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려, 안되지 싶다. 두번째는 가능하군.”태사부가 음산하게 웃으며, “나리, 사실 두번째가 더 어렵습니다. 목표인물은 태자비예요, 미래의 황후인데 어떻게 남편과 자식을 버리겠습니까? 천하의 남자는 다 태자보다 못한 것을…… 그야 당연히 이리 나리께서는 예외로 하늘에서 유배 온 신선 같은 분이시니 태자와 비할 바가 아니지요, 하지만 나리께서 나서실 수
미색은 어떤 여자?미색(美色)은, 천하의 미색이란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경성에 전에 두 미녀가 미모로 사람을 압도했다고 하는데 미색과 비교하면 역시 한끝발은 뒤쳐진다.그리고 그 경성의 두 미녀는 바로 주씨 집안의 자매 주명취와 주명양이다.지금 한 명은 황천으로 갔고, 한명은 기왕부에 시집가서 철 지난 첩으로 살고 있다.이리 나리는 만족한 얼굴로 미색에게, “응, 태자 전하는 북당을 위해 전쟁에서 큰 공로를 세우셨으니 이정도 절세 미녀와 어울리는 유일한 분이 아니겠나.”이리 나리는 사람됨이 초지일관 공평해서, 누군가의 부인을 죽이는 이상 다른 더 좋은 사람을 찾아줘야 했다.“나리, 부르셨어요?” 미색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자 완벽한 미소가 떠올랐다.이리 나리가 다리를 쭉 펴고 일어서서, “짐을 챙겨라 날 따라 경성으로 들어갈 것이다. 너에게 시댁을 마련해 주마!”미색이 살짝 놀라더니, 쏜 살 듯이 밖으로 뛰어 가며, “나리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짐 챙길 게요.”나리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 두번씩 변해서 서두르지 않으면 금방 마음이 바뀌곤 했다. 미색은 두 달만 있으면 만 스무 살이라, 두 달 내에 혼사길을 찾지 못하면 이제 스무 살을 넘는 노처녀가 되고 만다.이리 나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감개무량한 태사부에게, “미색이 왜 저렇게 좋아해? 남편 찾아주는 건데?”태사부가 염소수염을 말아 쥐며, “나리, 식욕과 성욕은 본능입니다. 이 말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지요.”늑대파 사람들 모두 미색이 시집가고 싶어 안달인 걸 알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 안달이냐고? 늑대파에 거시기가 달린 50세 이하의 모든 남자에게 미색이 물어봤다.미색은 늑대파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데다 장문인의 측근 대호법(大護法)으로 본시 미색이 원하기만 하면 늑대파의 자제라면 누구든 거절할 수 없을 뿐더러 간절히 원할 지경이다.하지만 아무도 미색과 혼인하길 원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도 다 알다시피 예쁜 것일 수록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미색은 독을 품
호비를 만나고 돌아오는 마차원경릉은 황제에게 수면제를 처방해 주고 우선 좀 푹 자도록 했는데, 명원제는 몸에 무슨 큰 병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기 때문이다.명원제는 화를 속으로 참았으니 한의학의 각도에서 보면 속이 타 들어 가고 가슴속의 화가 몸 안에서 여기저기 부딪히며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태다.이런 건 약으로 보할 수 없는 것으로 명원제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 발산해 내면 바로 좋아진다.원경릉은 황제와 속얘기를 나누기 뭐해서 호비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했더니 호비가 말을 끌어내자 명원제가 역정을 내며,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일 수가 없는데 화병이 안 나고 배겨?”호비가 원경릉에게 전하자 원경릉이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그럼 방법이 없네요. 폐하도 못 죽이는 사람을 우리도 못 죽일 게 분명하니까요.”호비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내가 죽이고 싶어요.”원경릉이, “마마는 지금 회임 중이십니다, 툭하면 때린다 죽인다 하시면 태교에 좋지 않아요.”호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후궁이란 신분이 거추장스럽습니다, 만약 예전처럼 변경이면 누가 내 남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간, 가만 안 두고 반드시 죽이거나 처리할 텐데.”원경릉은 성이 잔뜩 난 임산부를 보며, 호비의 얼굴에 목숨을 걸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느꼈다. 호비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뒤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쾌하게 사는 모습이 원경릉은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호비가 원경릉에게, “태자는 참으로 앞뒤로 적의 공격을 받고 있네요. 외부인이 수를 쓰는 건 그렇다고 치지만 자신의 어마마마와 소씨 집안 가족도 그러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외척이 막강한 힘이라 던데, 태자의 외척은 막강하긴 막강한데 대항하는 힘이 막강할 줄이야.”원경릉도 순간 맥이 탁 풀렸다.궁문을 나오자 서일이 마차를 끌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어디를 가든지 서일이 반드시 따라가도록 하고, 귀영위를 배치해 12시진 내
이리 나리와 원경릉의 만남하지만 어떤 사람이 맹렬하게 달려와 한 팔로 여자 아이를 안고 몸을 앞으로 구르며 그대로 부딪혀 올 줄 어떻게 짐작이나 했을까. 말은 원래 억지로 멈추게 하면 앞 발굽을 들어 올렸다가 착지하며 멈추는데 그 사람이 여자 아이를 안고 자발적으로 굴러와서 마침 말발굽 아래로 굴러들어갔다.수십키로의 말이 관성을 따라 그 사람의 종아리뼈를 한 발로 밟자, 숨이 멎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서일이 두 손을 한꺼번에 입어 물고 눈과 코를 찡그린 채 놀란 상태로, 이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사람을 구하면 구했지 왜 말발굽 아래로 굴러?밟히려고 환장했나?“공자!”“딸아!”사람들 속에서 두 여인이 달려 나왔는데 하나는 꼬마 여자 아이를 안고 놀라서 대성통곡을 하더니 허둥지둥 떠났다.다른 한 여자는 땅바닥에 사람을 구한 공자를 부축하고 긴장한 채 소리치는데, “괜찮아요? 사람을 구하더라도 자기 목숨은 생각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얼마나 위험한데요.”원경릉은 서일이 사람을 친 줄 알고 사식이, 만아와 같이 내려서 얼른 다가가서, “괜찮……으……세상에!”원경릉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 순간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데, 이 사람 어떻게 이렇게 잘 생겼지? 검은 머리카락에 먹 같은 눈썹, 복숭아꽃 같은 눈에 기개가 비범한 것이 딱 반안(潘安, 중국 최고의 미남)이 환생한 게 분명했다.깜짝 놀란 후 그를 부축하고 있는 여자를 다시 보니 빛나는 눈망울에 구름 같은 머리 결, 앵두 같은 입술에 하얀 치아가 드러나는 것이 경국지색이 따로 없네?원경릉이 놀란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식이와 만아도 놀라서 숨을 들이키고 사방에서 주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이렇듯 경악과 흠모의 순간 상당히 위화감이 드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바로 서일이 경솔하게 변명하길, “제가 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자기가 굴러왔어요.”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깨뜨리는 목소리에 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노려보며 ‘안구정화’ 알아 몰라
마차에 친 이리 나리큰 길에서는 마차를 고용하기도 쉬워서 미색은 나리를 모시고 마차에 올라 앞에 가는 마차를 따라 갔다.미색이 즐겁게, “나리,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어요. 한참 쩔쩔 맬 줄 알았는데.”이리 나리는 별로 즐겁지 않은 지 흥하고 두어 마디 하더니 눈을 감았다.미색이 웃으며, “나리 척 하지 마세요, 쟤들은 못 봐요, 전부 마차 탔는 걸요.”이리 나리의 왼쪽 다리를 차더니 ‘크크크’ 웃는데, 나리의 연기 정말 끝내줬다. 아까 앞으로 굴러 나와 말발굽 아래 깔릴 때 위치를 절묘하게 잡아서 마치 진짜 말발굽에 밟힌 것 같았다.이리 나리는 아파서 숨도 안 쉬어지는지 칼을 들고 찌를 듯한 모습으로 눈을 부라리며 미색에게, “살살해, 날 차서 죽일 셈이야?”미색이 놀라서 나리의 앞섶을 들춰 보더니 숨을 멈추고, “세상에, 진짜 밟혔어요?”흰 바지에 피가 점점 떨어져 있고 밟힌 자리의 뼈가 부러져서 작은 뼈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나리, 뭘 이렇게 목숨을 걸고 하세요?” 미색이 놀라서 물었다.이리 나리가 ‘윽’하고 고통을 참으며, “안 하면 안 했지, 할 바엔 조금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인 것이 그는 원래 여자 아이를 안고 앞으로 넘어질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가 멈춘 자리를 말이 밟을 줄이야. 초왕부 마부는 반응이 왜 이리 느려 터졌어? 미리 계산 다 해서 말발굽이 떨어질 곳과 그가 넘어진 자리는 한 사람이 폭만큼 거리가 있어야 했는데, 늑대파의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이 정도 거리 유지를 왜 태자 신변의 시위는 못 하는 거지? 시위가 조금만 빨리 고삐를 조였어도 해 낼 수 있었다.그리고 마부가 충분히 반응할 만큼 시간을 계산해 줬는데 말이다.다른 마차에 서일이 마차를 몰며 사식이와 끝없이 다투는데, “넌 왜 못 봤어? 저 사람이 스스로 굴러왔다니까? 저 사람은 왜 옆으로 굴러가지 내 말발굽 아래로 굴러오냐고? 뭔가 냄새가 나, 분명 속셈이 있는 거야, 쟤들 데리고 가면 안된다니까.”사식이가 화를 내며,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