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비가 태후의 저의를 모르겠는가? 현비는 궁안에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화가 나 충동을 못 이기고 가위를 집어 들어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놀랐고, 현비는 가위로 목을 살짝 그었다. “황상에게 가겠다! 본궁을 막는다면 본궁은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야!”궁안의 사람들은 하는 수없이 어서방으로 가서 황상에게 현비의 상황을 전했다. 내일은 추석이기에 오늘은 궁안이 한가했다. 명원제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 찰나에 현비가 자살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내려놓았다. “현비가 자살하려고 한다고? 그럼 이 소식을 황후에게 보고하거라. 황후에게 날카로운 단도가 있으니 그것을 가져다가 현비에게 갖다주면 된다.”그 말을 들은 하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명원제를 바라보았다.“뭐 하고 있어? 감히 명령을 거절하려는 것이냐?”하인은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명원제의 성지를 어떻게 황후에게 전해야 할지, 정말 명원제의 말을 그대로 전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가 무슨 권리가 있겠는가.주후는 하인의 말을 전해 듣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본궁이 어젯밤 악몽에 시달려 지금도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 너는 귀비를 찾아가 이 사실을 전하고 귀비가 가지고 있는 단도 중에 가장 날카로운 것을 현비에게 가져다 주거라.”주후는 하인이 전한 말을 듣고 명원제가 화가 나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그녀가 명원제의 말대로 단도를 꺼내 하인에게 건넸다면, 이는 자신이 태자의 친모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는가?하인은 어쩔 수 없이 명원제의 성지를 가지고 귀비에게 갔다. 귀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하인을 보고 인상을 쓰며 손톱을 다듬었다. “얘! 넌 왜 그렇게 멍청하니? 황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뭐겠어? 그냥 현비에게 가서 황상이 일이 바빠 갈 수가 없으니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하인도 귀비의 말대로 하
제왕은 자신과 원용의가 한 마차에 그리고 우문호 내외가 한 마차에 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마차에 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식이가 언니와 함께 타겠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제왕과 우문호가 같이 타고 원경릉과 원용의 그리고 사식이가 한 마차에 탔다.우문호는 제왕과 단둘이 마차에 탄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 제왕을 노려보며 호되게 질책했다. “본왕이 모처럼 네 형수를 내리고 바깥 구경을 하려고 했더니만 왜 따라오겠다고 난리를 쳐서 이 사단을 만드는 거야?”제왕도 인상을 쓰고 우문호를 보며 반박했다. “누구는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십니까? 저도 원용의랑 같이 마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고요. 마차가 덜컹거리니 손도 잡아주고 피곤하면 어깨에 기대기도 하면서 가려고 했더니만! 누가 다섯째 형님이랑 가고 싶겠습니까?”“시끄럽다!”“형님이 형수님한테 잘 좀 얘기해 보세요! 우리 둘이 마차를 타고 가면 뭐 합니까?”우문호는 세 여인이 타고 있는 마차에서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저렇게 재밌어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냔 말이야!”우문호는 이 순간 원경릉이 너무 미웠다. 원용의랑 사식이 그리고 제왕이 한 마차에 타고, 원경릉은 자신과 함께 마차에 타면 될 것을 왜 굳이 좁은 마차에 셋이 타겠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제왕과 우문호가 탄 마차에는 차가운 기류가 가득했다. 두 사람 모두 왕부를 떠나기 전부터 마차 안에서 각자의 부인과 할 일들을 계획을 했던지라 이 상황이 무척 짜증 났다. 제왕은 고개를 들어 화가 잔뜩 난 우문호의 얼굴을 보았다. 우문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얼굴을 덮고 마차 귀퉁이에 누웠다. *우문호와 제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경릉과 원용의 그리고 사식이를 태운 마차 안은 화기애애했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식이가 피곤하다며 마차 구석에 엎드렸다. 그러자 원경릉이 원용의를 보고
“그렇게 재밌는 얘기를 내가 잘 때 하면 안 되지! 그나저나 언니는 제왕이 주명취를 못 잊어서 싫은 거 아니야? 근데 왜 제왕을 떠나지 않는 거야?” 사식이가 말했다. 원용의는 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같이 살았던 사람인데 금방 잊을 수 있겠어? 난 그에게 시간을 주는 거야. 반년 동안 그가 주명취를 잊지 못한다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떠날 거야.”사식이는 원용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언니, 주명취는 죽었어. 제왕이 주명취를 백날 그리워해봐 그 여자가 살아 돌아오나. 그리고 주명취가 좋아했던 건 제왕이 아니라 태자셨잖아? 그나저나 주씨 집안 여자들은 취향이 하나같이 다 똑같네. 주명양도 그렇고 주명취도 그렇고 다 태자를 흠모했잖아. 태자께서도 주명취를 좋아한 적 있으시고…… 아무튼 제왕은 주명취 때문에 죽을 뻔했으면서도 아직도 그 여자를 못 잊는다고? 그게 말이 돼?”원경릉은 사식이가 우문호를 언급하자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식아, 주명취 얘기를 하다가 왜 태자 얘기로 빠지는 것이야? 입 조심하거라.”사식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아…… 말을 하다 보니 죄송합니다.”사식이는 원용의를 보며 말을 이었다.“언니, 제왕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여인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글렀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말이야. 제왕은 주명취의 관이 떠나는 날에 배웅도 갔잖아? 나 같으면 보러 가지 않았을 거야. 게다가 무덤까지 말이야. 태자께서도……”“사식! 너 말 조심해!” 원용의가 사식이에게 경고했다.“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제왕도 태자께서도 주명취의 무덤을 찾아가다니 진짜 이해 안 되네.”원용의는 원경릉의 표정을 살폈다.“원누이, 사식이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사식이가 간혹 이렇게 말실수를 하곤 합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옵소서.”“괜찮아. 난 태자를 믿어.” 원경릉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웠다.‘다섯째가 주명취의 무덤에 갔다고? 언제 간 거지? 주명취의 무덤은 꽤 멀리
마차가 멈춰 서자 우문호는 빠르게 마차에서 내려 원경릉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의 손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의 호의를 무시하고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려 식당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그녀를 쫓아갔다. “왜 그래? 설마 내 손이 보이지 않은 거야?”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던 사식이와 원용의는 불길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조용히 귓속말을 나눴다. “사식아…… 우린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거다. 알겠지?”우문호는 원경릉이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화가 났다. 그는 그녀 앞을 가로막으며 “경릉아, 너 왜 그래?” 라고 물었다. 그녀의 까맣고 고요한 눈동자가 우문호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아래에서 위로 쓸었다. “비켜.”“너 화가 난 거야?” 그녀은 눈빛이 폭풍이 일기 전에 고요한 바다 같았다.그녀는 그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왜 화를 내겠어? 태자는 생각이 깊기도 하네.”우문호는 원경릉이 자신을 태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원경릉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감지했다. 마차에서 내린 제왕이 두 사람 쪽으로 걸어오더니 무심하게 우문호를 보았다. “다섯째 형님, 형수님께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제왕의 말을 듣고 화가 난 우문호는 인상을 쓰고 제왕을 보았다.“잘못이라니, 우리 걱정 말고 너나 잘해. 듣자 하니 원용의가 네 성격이 별로라고 하는 것 같던데.”“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입니까?”우문호는 제왕을 노려보더니 휙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제왕은 원용의를 보며 “너 설마 무슨 얘기 했어?”라고 말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원용의가 발끈했다. “무슨 얘기를 했다고 그럽니까?”“다섯째 형님이 나한테 시비를 걸잖아. 내 성격이 뭐가 어때서 나한테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너 혹시 나한테 불만족스러운 게 있으면 직접 말해. 형님들 귀에 들어가면 아주 골치 아프니까.”“제가 언제 당신 욕을 했다고 그럽니까?” 원용의는 억울한 표정으로 제왕을 보았다.“다섯째
사식이는 아무도 음식을 시킬 생각이 없어 보이자 벌떡 일어나서 음식을 시켰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네 사람은 서로 말 한마디 없었고, 그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음식이 하나 둘 나왔다. 우문호가 닭 다리를 하나 집어서 원경릉의 그릇에 덜어 주자 원경릉은 자신의 그릇을 서일과 바꿨다. 그 모습을 본 서일은 깜짝 놀라서 우문호의 눈치를 살폈다. ‘이 닭 다리를 먹자니 태자의 눈치가 보이고, 안 먹자니 태자비의 눈치가 보이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서일은 한참 고민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소인,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닭 다리는 고맙습니다 태자비……”서일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닭 다리를 보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먹지를 못하다니…… 두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우문호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식탁을 쾅 내리치며 일어나서 원경릉을 쳐다봤다. “너 정말……!”원경릉도 이에 질세라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눈동자를 희번덕거렸다. “내가 뭐!”우문호는 원경릉의 살벌한 눈빛에 기가 꺾여 자리에 앉았다.“뭐가 먹고 싶은지 말을 하라고! 내가 덜어줄게.” “나도 손 있거든?”“아……”우문호의 젓가락이 허공을 맴돌다가 이내 멈추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우문호를 쳐다보았고 그는 민망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해? 구경났어? 밥이나 먹어!”서일과 만아 그리고 사식이는 그릇에 코를 박고 음식을 먹었다. 원경릉은 속에서 천 불이 끓었지만 사람이 많아 참고 있었다. ‘주명취는 죽었어. 우문호가 친구로서 그녀의 무덤에 갈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어……’원경릉은 마음속으로 수십 번이나 자신을 다독였지만 그럴수록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밥을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갔고 우문호는 얼른 그녀를 쫓아나갔다. 제왕은 원용의의 눈치를 살피다 사식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다섯째 형수님께서 왜 저러는지 넌 알지? 늘 점잖
원경릉은 살며시 우문호가 잡은 손을 뺐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난 그저 나 자신에게 화가 났을 뿐이야.”원경릉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았다. 그는 확실히 아무 잘못이 없다. 두 사람은 원경릉을 알기 전부터 오랜친구였다. 오랜친구가 죽었으면 당연히 가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주명취가 살아서 두 사람의 관계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은 지금 사이도 좋다. 뭐가 문제인가?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원경릉은 우문호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명취는 살아있을 때 원경릉을 많이 힘들게 했고, 하마터면 죽일 뻔했다. ‘만약 우문호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주명취의 무덤에 간 사실을 내가 알았을 때, 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원경릉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다. 한순간에 태도가 바뀐 원경릉을 보는 우문호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식당에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모두 마차에 올라탔다.원경릉, 원용의, 사식이 모두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원용의는 제왕에게 사식이는 서일에게 모두 제각기의 사연으로 분노에 가득 찼다.이번에는 서일과 우문호 그리고 제왕이 같은 마차에 탔다.우문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서일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서일은 시간을 되돌려 당시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당시에 사식이에게 그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사식이를 믿은 내가 바보 천치다! 사식이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남자는 얼마나 재수가 없는 거야? 성격도 괴팍하고 입도 가볍고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네!’저녁 무렵 마차는 서주(西洲)에 위치한 호화로운 휴양 정원에 도착했다.제왕은 왕부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서주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 휴양 정원에서 먹고 마실 음식을 준비해두었다. 정원은 매우 아름답고 넓어서 많은
우문호는 서일의 말을 듣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고, 원경릉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었다.우문호는 청동 거울에 비친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일단 의자 하나를 가져와 그녀 옆에 앉았다. “경릉아,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얘기하기로 했잖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내가 설명을 할 것 아니냐. 네가 하루 종일 입을 꾹 닫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으면 일이 해결되는 줄 아는 것이냐? 방금 서일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몰랐을 것이야.”“아냐, 괜찮아. 주명취는 이미 죽었고 이미 끝난 일이야.”“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원경릉은 머리를 말리고 젖은 수건을 화장대로 던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속에서 천 불이 끓어! 주명취의 무덤에는 도대체 왜 간 거야? 내가 주명취 손에 죽을 뻔한 것을 잊기라도 한 거야?”우문호는 혀를 끌끌 찼다. “거봐, 이렇게 화가 났으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건데? 화가 나면 차라리 화를 내라고 속으로 썩히고 있으면 해결이 되냐고!”“대답하라고! 왜 주명취의 무덤에 갔냐니까?” 원경릉은 우문호가 동문서답을 하는 것을 보고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분에 못 이겨 힘껏 우문호의 정강이를 발로 찼고, 우문호가 큰 손으로 원경릉의 허리를 감싸 품에 안았다. 그는 그녀에게 벌을 주듯 거칠게 입을 맞추었고, 두 손으로 그녀의 등과 허리를 세게 감쌌다. 그녀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감히 태자를 발로 차다니, 네가 간이 아주 부었구나!”“이거 놔!” “네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남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원경릉은 순식간에 그의 밑에 깔렸고, 거칠게 물어 뜯긴 입술이 퉁퉁 부어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우문호가 아직도 주명취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우문호는 붉어진 그녀의 두 눈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왜 울어? 아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그래? 아
“화 안 났다니까? 맹세해!” 원경릉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래 그럼 됐어.” 우문호는 두 손으로 그녀를 껴안았다.원경릉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화가 났든 안 났든 지금은 괜찮다는 거잖아. 그럼 됐어.”“…….”“할 건 마저 해야겠지?”우문호는 원경릉을 번쩍 들어 침상 위로 던졌고 원경릉도 아까와는 다르게 반항하지 않았다.*제왕과 원용의의 방 안에는 냉기가 흘렀다. 두 사람은 어쩌다가 싸우게 됐는지 영문도 모른 채 서로에게 화가 나있었다. 원용의는 침상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제왕은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시를 읊었다. 그녀는 제왕이 일부러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사식이랑 잘게요.” 원용의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제왕은 후다닥 문으로 달려가 그녀를 막아섰다. “가지 마.”“이거 비켜요!” “도대체 왜 화가 났는지 말을 해줘야 알지! 다섯째 형님 내외랑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너까지 덩달아 나한테 성질을 부리는 거야?”“나 화 안 났어요.” 원용의가 바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제왕은 차가운 원용의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용의야, 본왕이 너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너도 느끼는 게 있을 거야. 하지만 가끔 네가 이럴 때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딱 한 번만 물을게.”“……”“진심으로 나를 떠나고 싶은 거야?”원용의는 제왕이 이별에 대해 묻자 깜짝 놀라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자존심을 굽힐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려고 해요. 그래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겠죠? 우리는 진짜 부부도 아니니까요.”제왕의 어깨는 축 내려앉았고, 얼굴에는 실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넌 어쩜 그렇게 모진 거니…… 우리가 겪은 수많은 나날들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진심으로 떠나고 싶은 거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원용의는 눈물을 머금고 제왕을 보았다. “나보고 모질다고요? 그럼 당신은 나에게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