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은 늑대 집에 머리를 넣고 있었다가 인기척에 놀라 머리를 빼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태자, 태자비, 새끼 늑대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어의라도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우문호는 서일을 보고 웃으며 “걔들이 사람도 아닌데 어의가 무슨 소용이 있어?” 라고 물었다.그는 별일 아니겠지 하고 왔다가 세 늑대가 작은 침상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많이 야위었네? 늑대는 배고픈 걸 모르나?”“다 큰 늑대는 배고픔을 참을 수 있어서 한 끼를 많이 먹으면 보름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새끼 늑대들은 그런 능력이 없어서 매일같이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서일은 늑대를 키우면서 꽤나 공부를 한 모양이었다. 우문호가 그중 한 마리를 안아들었다. 늑대는 전과 달리 목화솜처럼 가벼웠고 머리가 축 늘어져있었다. “얘가 누구 늑대야?”“찰떡이. 가장 작은 늑대가 찰떡이. 만두의 늑대는 입이 뾰족하고 경단이 것은 얼굴이 둥근 모양이야. 이렇게 말하기는 이상하지만 늑대들의 성격과 외모가 다들 삼둥이들과 닮아가는 것 같아.”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손안의 새끼 늑대를 바라보았다. 순진한 눈망울이 정말로 작은 찰떡이 같이 느껴졌다. 그는 찰떡이 늑대를 내려놓고 만두 것을 들어보았다. 교활한 눈빛에서 만두의 모습이 보였다. “고기를 갖다 줘도 먹지 않는 이유가 뭐야? 아픈가?”우문호는 늑대들의 배가 홀쭉하게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그가 늑대들을 다시 눕히자 모두 축 늘어져 목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작은 주인님들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서일이 늑대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원경릉은 웃으며 “작은 주인님이라니, 늑대들은 삼둥이들을 주인으로 여기기보단 서일을 주인으로 생각할 텐데?”라고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번에 이 늑대들이 제가 뭐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작은 주인님들이 울기 시작하니까 말을 듣더라고요!” 서일이 흥분해서 말했다.“정말? 삼둥이들을 빨리 데리고 와야
우문호도 원경릉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서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들에게 말했다.“이 늑대들은 세 도련님의 것인데 왜 세 도련님 가까이에 두지 않는 겁니까? 이 늑대들은 작은 주인님의 것이지 두 분께 아니잖아요?“……”“혹시 이 새끼 늑대들과 작은 주인님들이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설마 이 늑대들이 나중에 사람으로 변해 도련님들과 혼인을……”서일은 말을 한 후 자신이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입을 틀어막고 눈치를 보았다.우문호는 서일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잡소리 하네! 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소설만 본 거 아니야? 머리에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서일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우문호를 보았다. 그러자 세 작은 늑대가 우르르 달려들어 서일의 옷자락을 물어뜯었다. 서일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게 됐고 그는 이내 화가 나서 늑대들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희들 밥도 챙겨줬는데 그 은혜는 잊은 거야!” 서일은 주먹을 휘두르며 늑대들을 겁주었다.그것도 잠시 우문호와 원경릉은 공포에 질렸다. 세 늑대가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를 냈다.서일은 처음 들어보는 기이한 소리에 우문호 뒤에 바짝 붙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늑대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다바오가 달려와 세 늑대를 향해 짖었다. 그러자 세 놈이 넙죽 엎드려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늑대가 개를 무서워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우문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서일이 다바오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다바오도 늑대가 아닐까요? 이 뾰족한 귀를 보세요.” 라고 말했다.다바오는 꼬리를 흔들며 원경릉 발아래에 턱을 괴고 혀를 내밀었다. 그녀는 다바오를 쓰다듬으며 웃었다.“아니, 다바오는 늑대가 아니고 개야. 하지만 다바오가 지금은 덩치도 크고 세 늑대들을 돌보았으니 늑대들이 다바오의 말을 듣는 것 같아.”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저를 왜 괴롭히는 겁니까?” 서일
원경릉과 우문호는 태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바로 작전에 개시했다. 우문호는 태후의 어깨를 주물렀고 원경릉은 태후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아양을 떨었다. “태후 마마, 애들이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습니까?” 원경릉이 말했다.“황조모 최근에 아이들을 보느라 힘드셨죠?” 우문호도 미소를 지으며 태후를 보았다.“하나도 안 힘들어. 너무 즐겁고 재밌다!” 태후는 두 사람의 속내가 뻔히 보여서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들도 말을 너무 잘 듣고 가끔 황조부도 와서 아이들을 보는데 너무 좋아하신다! 작은 찰떡이의 병도 다 나았고 만두와 경단이도 기침이 그쳤어. 너희들이 왕부에서 돌볼 때보다 훨씬 좋아졌어!”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고는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태후 마마께서 잘 돌봐주신 덕분입니다. 전에 주지스님이 아이들이 왕부에서 태어났으니 왕부의 기를 받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스님께서 허튼소리를 했지요. 아이들이 입궁하니 상태가 훨씬 좋아졌지 않습니까? 그렇죠 태후 마마?”태후는 원경릉의 말을 듣고 우문호에게 그만 주무르라고 손등을 때리더니 아미타불 구절을 읊었다.“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이나 보살을 의심하는 말을 해서는 안 돼. 빨리 눈을 감고 용서를 구하거라!”“그럼 주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우문호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해 태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주지가 왜 헛소리를 하겠는가?” 태후가 화를 냈다.“그렇다면…… 삼둥이들은 왕부에서 살아야 하는데, 입궁을 해서 어쩌죠? 어쩐지 태상황님께서 삼둥이에게 하사한 새끼 늑대들이 삼둥이가 입궁한 이후로는 고기를 먹지도 않고 3일 내내 기운이 없습니다. 오늘 보고 왔는데 뱃가죽이 등에 붙어서 며칠 못가 죽을 것 같더라고요.” 우문호가 말했다.우문호의 말을 듣고 태후의 표정이 굳었다. “정말로? 그럼 삼둥이들을 왕부로 보내 이틀 정도 지내다가 다시 입궁하면 되겠네. 너희들의 생각은 어때?”“네! 그러는게 좋겠습니다!” 우문호가 말했다.원경릉은 그런 두 사
태후는 아이들의 삐죽거리는 입을 보고 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태자비, 왜 애들한테 소리를 질러! 얘들아, 울지 마라. 충분히 놀지 못해서 그러는 거지? 그래, 다시 나가서 놀자!”아이들은 태후의 말을 알아듣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태후와 원경릉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보았다.우문호는 그런 아이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원경릉에게 말했다.“아이들이 눈치를 보는 거 맞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소리 한 번 질렀다고 울음을 뚝 그치는 거야?”원경릉은 찰떡이를 안으며 웃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애들이 어떻게 눈치를 보겠어? 어쩌면 우리 몸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 때문에 울음을 그친 걸 수도 있잖아.”원경릉은 애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대화 주제를 돌렸다.그녀는 가능만 하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현대로 돌아가 두뇌를 연구해 보고 싶었다. 태후는 찰떡이가 원경릉 품 안에서 고물고물 노는 것을 보고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본후가 아무리 잘해줘도 어미 품이 좋긴 하구나.’*초왕부.아이들이 왕부로 돌아오자 세 마리의 늑대들이 기뻐하며 고기를 먹었다. 우문호는 진정정과 그의 아내를 데리고 그 모습을 보며 늑대들이 왜 저러는지 대화를 나누었다. 진정정의 아내인 진근영은 전에 새끼 늑대를 키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문호는 진정정을 데리고 소요공부로 갔다. 황상이 주국공을 설득시키라고 했으니 우문호는 소요공과 주국공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소요공부에 도착하니 주국공부에서 뜯어온 대문이 대청에 버젓이 노여있었다. 소요공은 대청을 드나들 때마다 주국공부의 대문에 발길질을 했다. 그리고 키우는 늑대를 데리고 와 대문에 오줌을 누게 했다. “태자. 내일 주국공부에 가거든 댁네 대문이 늑대의 변기로 쓰이고 있다고 꼭 좀 알려주게. 그러니 그만 설치고 다니라고!” 소요공이 말했다.우문호는 소요공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요공, 주국공과 도대
“자네 집에도 늑대를 키우지 않는가?” 소요공이 진정정을 보았다.“어떻게 아시죠?” 진정정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늑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텐데?”“늑대를 많이 좋아하십니까?”’“내 스승이 늑대 무리를 이끌었던 수장이야.”우문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스승이 있다고요?”라고 물었다.“스승이 있는 게 뭐가 이상해?” 소요공이 되물었다.진정정은 그것보다 늑대의 수장이라는 게 더 신기했다.“늑대의 수장이라면…… 늑대족의 수장을 말하는 겁니까? 그럼 설마 늑대라는 겁니까? 그럼 소요공께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까?” 소요공은 화가 난 얼굴로 진정정을 노려보았다.“왜 나를 모욕하는 것인가! 나보고 사람이 아니라니? 그럼 내가 뭐 늑대나 짐승이라는 뜻인가?” “아닙니다 어르신! 제가 실례했습니다. 제가 배움이 짧아서 어르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화를 푸십시오. 설랑은 정말 대단하군요!” 진정정이 다급히 소요공에게 사과했다.소요공은 우문호와 진정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설랑들은 매우 감정적인 동물로 한 번 섬긴 주인은 죽을 때까지 섬기는 늑대 중에서도 가장 충성심이 강한 늑대네.” 말을 마친 소요공은 자신이 키우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끌끌 혀를 찼다.“에휴, 내가 죽고 나면 우리 늑대 공주도 스스로 죽을 것이야…… 가엾어라……”“그럼 모시는 스승님께서도 설랑을 키우고 계십니까?” 우문호가 물었다.“응, 그렇지. 스승님께서 키우는 설랑은 온몸이 흰 늑대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설랑이라네.”“그럼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 설랑도 죽었겠네요. 그렇게 아름다운 설랑이 죽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문호가 말했다.그 말을 들은 소요공이 분노해서 탁상을 내리쳤다.“태자, 아까부터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오늘 나랑 한 판 하자고 하는 건가?”우문호는 화가 잔뜩 난 소요공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소요공의 얼굴은 자줏빛으로 변했고 눈에는 실핏준이 바짝 섰다. “소요공,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까도 말
“밖에 아무도 없느냐? 손님들을 배웅해 드리거라!” 소요공은 우문호와 진정정에게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다.“아닙니다!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우문호가 말했다. 우문호의 말은 묵살됐고, 두 사람은 소요공부의 하인의 안내를 따라 밖으로 쫓겨나듯 나왔다. 그 둘은 소요공부의 대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늙은이 성질 한 번 고약하네, 비위 맞춰주기 여간 힘든 게 아니야……’진정정은 근심이 가득 찬 우문호의 얼굴을 보고 걱정이 됐다. “이제 어쩌지?” “두 사람을 잘 아는 사람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 물어봐야지.” 우문호가 말했다.“그 사람이 누군데?”“수보, 아니면 태상황님이지. 근데 이런 사소한 일로 태상황님을 찾아가는 건 좀 그러니…… 일단은 재상께 물어봐야겠어.”진정정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내심 기뻐했다. 그는 재상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재상은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우문호는 재상에게 술을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재상은 바쁜지 술집으로 오지 않았다. 그는 이틀 연달아 재상에게 편지를 보냈고, 재상 쪽에서는 늘 바쁘다고 하며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틀 내내 재상의 거절을 받은 우문호가 수심에 찬 얼굴로 왕부로 돌아오자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내 생각엔 재상이 너를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원경릉이 말했다.“재상은 내 편이니까, 나와 머리를 맞대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를 해야 하는 거 아냐?”“아무리 네 편이라고 해도 재상은 주국공과 비슷한 연배잖아. 그런 재상이 대놓고 너와 만나면 주국공이 재상을 뭐라고 생각하겠어? 당연히 재상 입장에서는 주국공이 신경 쓰이지!”우문호는 이제야 주수보가 거절했는지 이해가 갔다.“그럼 이제 어떡해?” “술집으로 모시려고 말고, 네가 직접 주씨 집안으로 찾아가.”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맞다! 최근에 희상궁님께서 몸이
희상궁의 감기원경릉이 그 문제를 물어보려는 순간 사식이가 들어와 말을 멈췄다.사식이가 ”태자비마마, 희상궁이 저한테 가서 약 좀 가져 오래요.”“무슨 약?” 원경릉이 물었다.사식이가 “희상궁이 계속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려요, 희상궁 말이 언니 약은 효과가 빠르니 가서 가져오라고.”원경릉이 놀라며, “정말 아프셔?”사식이가 “누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해요? 오늘 희상궁을 못 보셨죠? 아파서 그런 거예요.”“난 또 다른 일로 바쁘신 줄 알았지. 내가 가서 좀 볼 게.” 원경릉이 일어나 병풍 뒤에서 약상자를 꺼내 사식이, 만아와 같이 희상궁에게 갔다.희상궁은 방에서 침대에 모로 누워 쉬고 있는데 기침 소리가 들렸다.“어머나,” 원경릉을 보고 희상궁이 얼른 땅에 엎드리며, “어찌 태자비 마마께서 직접 오셨습니까?”원경릉이 희상궁을 부축하며, “됐어요, 희상궁은 누워요, 환자가.”희상궁이 웃으며 “괜찮아요, 무슨 대단한 병도 아니고 아마 이틀전에 옷이 젖었을 때 감기가 들었나 봅니다. 하여간 나이가 들면 쓸모 없다니 까요, 별 일 아닙니다.”원경릉이 희상궁의 손바닥과 이마를 만져보더니 꽤 뜨겁다. “열나네요, 콧물이랑 재채기 말고 또 어디가 불편해요?”“전신에 뼈마디가 쑤시고 오한이 들어요.” 희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이 체온을 재어보니 39도라서 “해열제를 지어드릴 게요, 우선 열부터 떨어뜨리도록 해요. 물 많이 드시고, 있다가 좁쌀 죽 끓여드리라고 할 테니 죽 드시고 약 드세요. 만약 그래도 불편하면 저한테 얘기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예, 태자비 마마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희상궁이 오히려 원경릉을 위로했다.원경릉이 희상궁에게 “희상궁, 오늘 태자 전하께서 주재상과 상의할 일이 있으니 오시라고 했는데 재상이 오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희상궁이 아프다고 하라고 제가 태자에게 귀띔했어요. 그런데 희상궁이 정말 아플 줄이야. 진짜 이 놈의 입이 방정이예요.”희상궁이 웃으며 “그게 태자비 마마와 무슨 상관이라고요? 나이가 많으면 아프기
주국공과 소요공은 왜 원수가 되었나?주재상은 우문호가 이걸 물을 줄 알았다는 듯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몸을 뒤로 젖히더니 손에 찻잔을 든 채 천천히 찻잔 뚜껑으로 차거품을 걷어내며 기억에 잠겼다. 웃음기 어린 입꼬리로 “이 일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웃어 넘길 수준이지만, 두 사람은 당시에 고집 센 풋내기여서 한 걸음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지금의 화해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우문호가 “그럼 도대체 어떤 일이었습니까? 듣기론 두 분이 절친이셨다고 하던데, 그 지경에 이르도록 싸운 게 작은 오해 때문일 수 있을까요?”주재상이, “당시 둘은 회안(淮安)에서 비적을 토벌했습니다. 사실 비적 토벌은 원래 주국공의 임무였지요. 그런데 마침 소요공이 그 일대를 지나다가 주국공을 찾아가서 술을 얻어 마시게 되었습니다. 비적토벌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 비적이 숨은 위치가 후미져서 공격이 쉽지 않았지요. 주국공은 산길을 막고 비적들의 군량을 끊어 독 안의 쥐를 만들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두 사람 술자리에서 이 비적 토벌 건을 얘기하는데, 소요공이 듣기에 비적은 고작 이백 명 뿐으로 주국공의 오백명 군사가 공격은 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마냥 기다리고 있으니 낭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요공은 술기운을 빌려 혼자 산에 올라가서 비적을 섬멸하겠다고 했지요, 주국공도 반쯤 취해서 칼을 빼 들고 소요공과 같이 갔습니다. 단 둘이 술기운에 산을 오른 거지요, 병졸 하나 없이 말입니다.”주재상이 여기까지 말하더니 잠시 멈추고 헤벌쭉하게 웃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정정 대장군이 주재상의 얘기를 듣고 상당히 놀라며, “당시 주국공과 소요공은 모두 대장 아니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실 수가?”주재상이 “맞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이미 명성이 자자했지요. 하지만 술과 놀이에 일생을 탕진하는 소요공은 용맹하고 무공이 강했으며, 책략이 뛰어난 주국공이 합류했으니 두 사람은 전장을 풍미했습니다. 비적을 토벌하던 그때 주국공은 소요공과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