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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남궁유민은 초소형 카메라에 담긴 도아린과 협의했던 장면을 배건후에게 보내주었다.

분노와 걱정이 뒤섞인 여자의 표정을 보며 배건후는 손으로 볼펜을 리드미컬하게 돌렸다.

쓴맛을 좀 봐야지 정신 차리지,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운운하면 골치가 아팠다.

배건후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팅하러 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 우정윤이 나지막이 말했다.

“남궁 변호사님이 연락이 왔어요.”

남자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머릿속은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 진행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혼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어쨌거나 바보가 아닌 이상 실수는 범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제시한 요구는 우 비서도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전달해.”

즉, 에이트 맨션에 돌아가서 앞으로 이혼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으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준다는 것이다.

우정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사무실에 따라 들어서더니 문을 닫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변호사님께서 말하길 사모님이 사인했다고 하네요.”

물론 나쁜 놈이라는 둥, 인간 말종이라는 둥, 비열하다는 둥, 업보를 받는다는 둥 배건후에 대한 욕설과 비방은 건너뛰고 결론만 전달해주었다.

의자를 끌어당기던 배건후가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아린이 동의했다니?

혹시 머리가 잘못되었나?

칼날처럼 날카로운 상사의 시선에도 우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살짝 내리깐 배건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남자다운 턱선이 금세 팽팽하게 당겨졌다. 우정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구청에는 언제 가면 좋을까요?”

벌컥!

남자는 테라스 문을 열고 싸늘한 기운을 내뿜은 채 걸어 나갔다.

이내 차단을 해제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감히 그를 차단하다니?

도아린이 병원에서 주현정의 퇴원 수속을 처리하던 중 휴대폰이 문득 울렸다.

“사인했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네.”

그리고 휴대폰을 볼과 어깨 사이에 끼고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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