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0화

Aвтор: 온유
손보미는 댓글 알바를 고용했을뿐더러 마케팅 계정도 새로 팠다.

그동안 배건후와 스캔들은 생일 축하 라방 이후로 대중의 마음속에 기정사실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인스타에 올린 게시물의 댓글은 전부 축하하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배건후가 받은 메시지는 바로 불꽃이 터지는 순간 촉촉한 눈망울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우정윤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내려놓는 상사를 보자 즉시 진상을 파악하러 자리를 떴다.

10분 뒤, 그는 마지못해 다시 들어와서 보고했다.

“불꽃놀이 판매사에서 김지민이 생일 축하 문구를 백년해로로 바꿔 달라고 했다네요. 그리고 검색어에 관해서는...”

비록 손보미는 그다지 유명한 편이 아니지만 배건후는 연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황태자이지 않은가?

그의 인기에 힘입어 손보미의 팔로워는 금세 10만 명에 육박했다.

라이브 방송을 지켜본 사람 중에서 누군가 클립으로 편집해서 인터넷에 업로드했는데 댓글로 손보미를 축하해주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남자에게 빌붙는 그녀를 무시하는 배건후 추종자들도 있었다.

두 세력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곧바로 실검 1위를 장악했다.

...

다음 날.

유민정의 연락을 받은 도아린은 주현정의 주치의가 가족들을 호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배건후와 거의 동시에 진료실에 도착했다.

어두운 안색의 남자는 의자에 앉자마자 강한 위압감을 뿜어냈고, 의사는 저도 모르게 몸을 틀어 그나마 상냥한 태도의 도아린을 마주 보았다.

“사실...”

주현정의 병은 콕 집어 정의하기 어려웠다. 기준치에 부합되지 않은 항목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또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현재로서 의사의 소견은 아이를 낳고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면역력을 가볍게 여겼다가 큰코다칠지 몰라요. 유행성 바이러스에 한 번 걸리면 장기 부전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

듣는 내내 조마조마하던 도아린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퇴원하고 나서 주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Заблокированная глава

Related chapter

  • 또 한 번의 거절   제51화

    이내 엘리베이터 층수가 빠르게 변했다.도아린이 버럭 외쳤다.“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그냥 집에서 썩게 놔둬요. 어쩌면 백 년 뒤에 문화재 답사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배건후가 담배를 두 동강 냈다.“다시 한번 얘기해 봐.”말하라고 해서 고분고분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꿈도 참 야무지군.도아린은 지금처럼 마음이 확고한 적이 없었다. 즉,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남자한테서 도망치는 것이다.그리고 배건후가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잽싸게 비상구로 뛰어가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갔다.주얼리를 직접 처분하는 것쯤이야! 물건을 정리하고 나서 다시 이혼을 언급했을 때 무슨 핑계를 댈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그러나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밀번호를 바꾼 사실이 떠올라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다행히 가정부 아주머니가 계셨고, 안미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사모님, 오셨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동안 사장님 음식을 준비해주다가 계속 꾸중만 들어서 월급이 곧 바닥날 것 같아요.”도아린이 까탈스럽지 않고 성격도 착한 편이라 가정부도 그녀를 편하게 대했다.“부부는 항상 티격태격하기 마련이죠. 사실 사장님께서도 속으로는 사모님 생각을 많이 하세요...”이때, 뒤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왔고 배건후가 집에 도착했다.도아린은 신발을 갈아신으며 너스레를 떨었다.“아줌마는 자녀가 두 명이라고 했죠? 아들 하나 딸 하나?”안미자는 어리둥절하더니 활짝 웃었다.“맞아요.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인데 장난기가 어찌나 많은지. 아빠를 제일 무서워하죠.”“이제 일하신 지도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제가 왜 아이가 없는지 알아요? 왜냐하면 남편이 내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죠.”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정작 도아린은 당황한 표정의 안미자를 뒤로 하고 유유히 2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집에 있는 날이면 배건후는 늘 외박했고, 혹시라도 집을

  • 또 한 번의 거절   제52화

    혹시 어젯밤에 불꽃놀이 한 사람이 배건후는 아닐까?머리에 불똥이라도 튀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나?어떻게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도 뻔뻔스럽게 내뱉을 수 있지?자기가 그까짓 물질적인 보상에 질투가 나서 이혼을 운운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공부도 잘했다는 사람이 이해력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원.도아린은 분노로 가득한 남자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어머님에게 비밀로 하고 거동이 불편하실 때 돌봐줄 수도 있지만 전제는 나랑 이혼한다는 것이죠.”주현정이 그녀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최선을 다해 보답할 생각이다.반면, 배건후는 국물도 없었다.남자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올 만큼 그녀를 꽉 잡고 있었다.도아린은 그의 소매를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스토킹할 때 건후 씨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정말 짜증 나는군.”배건후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에 모든 이가 우러러보는 존재였다.자존심이 워낙 강하고 매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남자가 어찌 이런 조롱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이내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문이 닫히기 전에 쌀쌀맞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변호사한테 연락하라고 해. 그리고 넌 꺼져!”도아린은 어리둥절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옷더미에서 휴대폰을 찾은 다음 그나마 무난하고 자주 입을 것 같은 옷을 몇 개 골라 짐을 쌌다.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또 번복하기만 해봐요!”‘쾅’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닫혔다....도아린이 서둘러 떠난 이유는 나리 병원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몸을 닦아주는데 손가락이 움직였어요.”간호사가 도아린에게 말했고, 두 사람은 검사 중인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의사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무덤덤한 얼굴로 설명했다.“아직 뚜렷한 징후는 없네요. 식물인간이 손가락이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건 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곧 깨어난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신경계

  • 또 한 번의 거절   제53화

    마치 자신도 피해자라는 듯이 말하다니.도정국이 그녀의 어머니와 기꺼이 결혼하기로 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연성 사람인 배우자 덕을 봐서 대도시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신혼 초에는 그나마 얌전하더니 나중에 디저트 가게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접대를 핑계로 밖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심지어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아들을 낳지 못한 탓에 본가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비난까지 했었다.“저 여자랑 결혼할 거예요?”도아린이 무심하게 말했다.도정국의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네가 진작 동의했으면 결혼하고도 남았겠지.”말을 마치고 나서 실언했다는 생각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엠파이어 빌딩에 공실이 거의 없다고 하니 서둘러.”도아린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도정국이 문을 덥석 잡았다.“너도 얼른 남편이랑 애 낳고. 그 배는 어쩌면 네 엄마보다 못하냐?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라니. 만에 하나 밖에 있는 여자가 임신이라도 했으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을 거야.”도아린은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딸의 결혼이 고작 본인이 재벌 가문에 발을 들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건가?만약 배건후와 이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당장 그녀를 목을 졸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이내 차 문을 힘껏 당기자 도정국의 손이 자칫 끼일 뻔했다....다음 날.도아린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장수현의 연락을 받았고, 배건후가 보낸 대리인의 면담 신청이 있다고 했다.이내 서둘러 씻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배건후 측 대리인은 무려 툭하면 억대 소송을 진행하는 모건 그룹의 법률 고문 남궁유민이다.고작 이혼 분쟁 때문에 이렇게 대단한 변호사까지 출동시켜 으름장을 놓다니!도아린은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두 변호사가 주고받는 말을 들었는데 재능 낭비는 아닌 듯싶었다.“결혼하기 전에 대표님께서 240억이라는 빚을 대신 상환해주셨고, 지난 3년간 도아린 씨 남동생의 병원비와

  • 또 한 번의 거절   제54화

    남궁유민은 초소형 카메라에 담긴 도아린과 협의했던 장면을 배건후에게 보내주었다.분노와 걱정이 뒤섞인 여자의 표정을 보며 배건후는 손으로 볼펜을 리드미컬하게 돌렸다.쓴맛을 좀 봐야지 정신 차리지,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운운하면 골치가 아팠다.배건후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팅하러 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 우정윤이 나지막이 말했다.“남궁 변호사님이 연락이 왔어요.”남자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머릿속은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 진행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혼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어쨌거나 바보가 아닌 이상 실수는 범하지 않을 테니까.“내가 제시한 요구는 우 비서도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전달해.”즉, 에이트 맨션에 돌아가서 앞으로 이혼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으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준다는 것이다.우정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사무실에 따라 들어서더니 문을 닫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변호사님께서 말하길 사모님이 사인했다고 하네요.”물론 나쁜 놈이라는 둥, 인간 말종이라는 둥, 비열하다는 둥, 업보를 받는다는 둥 배건후에 대한 욕설과 비방은 건너뛰고 결론만 전달해주었다.의자를 끌어당기던 배건후가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도아린이 동의했다니?혹시 머리가 잘못되었나?칼날처럼 날카로운 상사의 시선에도 우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눈을 살짝 내리깐 배건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남자다운 턱선이 금세 팽팽하게 당겨졌다. 우정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구청에는 언제 가면 좋을까요?”벌컥!남자는 테라스 문을 열고 싸늘한 기운을 내뿜은 채 걸어 나갔다.이내 차단을 해제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감히 그를 차단하다니?도아린이 병원에서 주현정의 퇴원 수속을 처리하던 중 휴대폰이 문득 울렸다.“사인했어?”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네.”그리고 휴대폰을 볼과 어깨 사이에 끼고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55화

    입구를 지나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지유는 등골이 오싹했다.그럴 리가 없었다. 워낙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일이라 도아린은 절대 모를 것이다.주현정을 보자마자 날이 잔뜩 서 있던 도아린도 금세 표정을 바꾸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머님, 약이랑 주의사항은 민정 아줌마한테 전달했어요.”주현정이 옆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손짓했다.“오늘 친구들이 내가 퇴원한다는 걸 알고 보러 오겠대. 지유는 약속이 있다고 나갔으니까 네가 남아서 같이 도와줘.”비록 손님 접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주현정 혼자서 사람을 맞이하면 힘들기 마련이다.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어차피 재벌가 여사님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기에 기껏해야 과일을 자르고 차를 준비할 뿐이었다.주현정은 일반 부잣집 사모님과 달리 본인의 커리어를 갖고 있다. 비록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녀가 설립한 JS 픽처스는 연예계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따라서 어떤 일은 대놓고 부탁하기 어려웠고, 사적으로 찾아와서 해결하는 게 대다수였다.과일이 준비되자 손님도 속속 도착했다. 그중에서 도아린은 성대호의 어머니 연장미만 알아보았다.여사님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주현정 앞에서는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도아린이 내린 차를 마시며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며느리가 참 예쁘게 생겼네요. 회사에서 새로 영입한 배우인 줄 알았어요.”주현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사람도 어찌나 똑똑한지.”겉모습만 그럴싸하고 머리는 텅 비었다고 비꼬려는 걸 마냥 지켜볼 그녀가 아니었다.도아린이 주방에 간 틈을 타서 한 사람이 말했다.“안색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한약이 효과가 있었나 봐요?”“그러게요.”“아주 용한 한의사라고 하던데 왜 현정 씨 며느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죠? 설마...”“요즘 애들은 다 자기 생각이 있기 마련이에요.”사실 주현정도 손주가 간절했지만, 외부인들이 도아린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56화

    드디어 반응을 보이자 우정윤은 이때다 싶어 필살기를 날렸다.“여사님을 뵈러 손님들이 찾아와서 사모님이 접대하는 중이에요.”배건후가 문득 콧방귀를 뀌었다.“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만 골라서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우정윤은 사실 대표님한테만 날이 잔뜩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니면 또 심기가 불편해지기 마련일 테니까.“사모님은 워낙 사교 모임에 익숙하지 않아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말실수해서 여사님까지 곤란하게 하는 건 아닌지 싶네요.”배건후는 서류를 탁 덮었다.“능력도 없으면서 설치기는! 당해도 싸.”우정윤은 즉시 입을 꾹 닫았다....그나마 주현정과 사이가 좋은 연장미가 화제를 바꾼 덕분에 분위기도 서서히 화기애애해졌다.도아린은 가끔 과일이나 차를 가져다주었고, 유민정을 도와 점심을 준비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훨씬 더 편했다.식사를 마치고 여사님들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고, 누군가 경마를 언급하자 TV를 켜고 경기를 시청했다.그녀는 이내 구석에 앉아 소유정과 문자를 주고받았다.소유정은 도성 경찰서에 가서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증거가 없다는 핑계로 처리해주기 싫어하는 눈치라고 했다.한편, 불꽃놀이 영상은 이제 실검 순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손보미의 팬들은 여전히 공유하느라 바빴고 소유정이 [배건후는 유부남, 손보미는 내연녀]라는 댓글을 달자 금세 욕설로 도배되었다.자칭 내막을 알고 있다는 네티즌이 배건후와 손보미가 소꿉친구라는 증거를 제시하더니 배건후에게 질척이며 둘 사이를 훼방 놓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비록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나열한 사건에서 유추해보면 전부 도아린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글쓴이가 누구인지는 뻔했다.손보미는 이번 화제에 힘입어 여주인공 캐스팅 확정 소식까지 발표했다. 어쨌거나 안티팬이 많으면 인기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했으니까.게다가 함예진을 태그하고 앞으로 최고의 여배우한테서 열심히 연기를 배우겠다고 선언했다.물론 함예진은

  • 또 한 번의 거절   제57화

    말과 당나귀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몇 번 해본다고 과연 마스터하겠는가?결국 비주얼만 보고 골랐다가 연속으로 참패당해 뼈아픈 교훈을 얻고 그녀는 절대로 외모에 혹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백전백승한 김영실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주현정을 보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현정 씨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주현정은 도아린의 종이를 흘긋 쳐다보았다.“어때?”“딱 한 번 5등 했어요.”김영실이 웃으면서 말했다.“자, 나한테 6,000만 원 주고 장미 씨한테 2,400만 원 보내줘.”도아린은 어안이 벙벙했다.경마에서 지면 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는데?게다가 배건후와 이혼하면서 이미 1,000억의 빚을 졌는데 돈이 어디 있겠는가?그녀는 차라리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손을 떼는 것이었는데.결국 종이를 너무 세게 움켜쥔 나머지 김영실이 빼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설마 용돈이 1억도 없는 건 아니지?”비록 순순히 인정할까 고민도 했으나 주현정에게 배건후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걸 들키기 마련이었다.‘골치 아프군.’도아린은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마지못해 이체해주었다.연장미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경기가 곧 끝날 텐데 아니면 후반전까지 시청하고 갈까요?”김영실은 활짝 웃으면서 귀걸이를 만지작거렸고, 이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난 상관없는데 누군가 계속 돈을 잃어 울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네요.”이때, 문이 열리며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싸늘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성이 들려왔다.“대체 얼마를 땄기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죠?”도아린이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건장하고 훤칠한 남자가 거실로 들어섰고, 길쭉한 팔다리를 감싼 슈트핏은 가히 환상적이었다.한 마디로 너무 멋졌다.‘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도아린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김영실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야. 전복이나 좀 사 먹겠는지. 그나저나 회사가 안 바쁜가 보

  • 또 한 번의 거절   제58화

    배건후는 기다린 다리를 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역시나 익숙한 맛이었다.이내 차를 음미하면서 도아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한편, TV에서는 후반전 경기에 참석하는 말을 소개하고 있었다.도아린은 절대로 외모에 혹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상기했고, 화면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목에 흰색 점이 있는 검은색 말을 선택했다.그리고 종이에 선택하려는 찰나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다.“보는 눈은 여전히 형편없군.”도아린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고, 다시금 TV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2번 말도 생김새는 나쁘지 않았다. 갈색 털은 윤기가 흘렀고, 비록 덩치가 큰 편은 아니지만 외모가 출중했다.하지만 비주얼만 보고 돈을 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참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는가?화면이 바뀌면서 다음 경주마로 소개가 넘어가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망설임은 패배의 지름길이야.”“아린아, 골랐어? 이제 곧 시작해.”김영실이 재촉했다.도아린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과감하게 2번 말을 찍었다.출발음이 울리자 경주마들이 쏜살같이 뛰어나갔고, 도아린이 선택한 2번 말이 제일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노려보았다.결정적인 선택을 내리기 전에 괜스레 방해하고 말이야!아주 그냥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작정했나 보네? 개자식 같으니라고!“이번에도 나야!?”김영실은 흥분한 나머지 춤이라도 출 기세였고, 연장미에게 자신이 선택한 번호를 보여주었다.연장미가 찜한 말은 2등으로 달렸고, 그녀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안 했다.그러나 두 번째 바퀴를 달릴 때 2번 말이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도아린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TV를 쳐다보았고, 마음 같아서는 현장으로 날아가 연신 채찍질해서 경주마가 더 빨리 달리게 하고 싶었다.마치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닿기라도 한 듯 2번 말은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결국 3위로 결승선에 도착했다.해설자는 2번 말이 다크호스라고 극찬했고, 작

Latest chapter

  • 또 한 번의 거절   제912화

    “...누가 그래요?”강재민이 고개를 들었다.눈은 약간 충혈돼 있었지만 그 안엔 또렷한 이성이 빛나고 있었다.그는 말없이 와인 병을 따 다시 잔을 채웠다.자기 잔에 먼저, 그리고 신지훈의 잔에도 조용히 와인을 따랐다.“신 대표님의 사업장은 전부 항성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그가 비릿하게 웃었다.“그런 분이 굳이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 뒷수습을 한다? 이렇게 자꾸 밖으로 나돌면 사모님이 딴 남자랑 바람이라도 피우면 어쩌시려고요?”신지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말은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경멸이 가득했다.“듣자 하니, 사모님한테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가 있다던데요?”강재민은 잔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지난달 동창회에서 우연히 재회했다더군요. 요즘은 매일 붙어 다닌다던데... 그거 알고는 계셨어요?”신지훈이 들고 있던 잔이 허공에 멈췄다.그의 표정이 서서히 식어가며 냉기 어린 침묵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강재민 씨.”신지훈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에게 쓰던 방식 나한테는 안 통해요. 난 내 아내와 모든 걸 공유하고 있거든요.”“그래요?”강재민이 비웃듯 웃으며 휴대폰을 꺼냈다.사진 한 장을 꺼내 화면을 신지훈 쪽으로 내밀었다.그 사진 속엔 신지훈의 아내가 그 소꿉친구의 팔에 팔짱을 끼고 웃고 있었다.그리고 쇼케이스 너머 사파이어 커프스단추가 눈에 띄게 전시돼 있었다.“이 커프스단추...”강재민이 화면을 확대하며 말했다.“신 대표님은 받아보셨나요?”신지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탕!잔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와인잔 바닥이 깨졌다.하지만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냅킨을 들고 천천히 입가를 닦았다.“아린 씨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전부 조사하는 게 내 원칙이에요.”강재민은 무심하게 말했다.“누가, 어떤 꿍꿍이로 다가오는지 모르니까. 게다가...”그가 시선을 치켜들었다.“신 대표가 굳이 항성의 가족과 사업 다 제쳐두고 연성까지 와서 배건후를 돕는 이유가 순수한 우정이라는 말, 난 죽어도 못 믿겠거든

  • 또 한 번의 거절   제911화

    도아린은 진심으로 기뻤다.처음 대기업 대표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저 기존 계획을 무난히 이어가기에도 벅찼다.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사업 기회를 읽고 판단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성장의 곁에는 늘 배건후가 있었다.그의 빠르고 날카로운 사업 감각은 언제나 도아린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차가 멈췄을 때도 도아린은 여전히 기분 좋은 여운에 젖어 있었다.배건후가 조심스럽게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도아린을 이끌어 차에서 내려 조용한 샤부샤부 가게로 향했다.배건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주문했다.도아린은 익숙한 손길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하며 그의 입맛에 맞는 메뉴도 꼼꼼히 포함시켰다.“오늘은 신 대표의 송별회였잖아요. 전화 한 통쯤은 해야겠어요.”도아린이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배건후가 슬쩍 그것을 가로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굳이 안 해도 돼. 알아서 챙길 테니까.”“...혹시 신 대표랑 짜고 날 불러낸 거예요?”도아린이 피식 웃었다.그녀는 이미 눈치챘다.그가 건넨 봉투 안엔 이미 준비 완료된 서류가 가득했고 내용상 급한 것도 아니었다.‘굳이 지금 불러낸 이유는 아마 강재민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배건후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일, 마음에 들었다면... 나 보상 하나 받아도 돼?”도아린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휴대폰을 들어 톡톡 두드렸다.“이미 친구 수락했어요.”그는 그렇게 많은 친구 요청을 보내놓고도 정작 친구로 추가되자마자 딱 한 문장만 보냈다.‘잘 자.’그게 정말 단순한 인사였는지 아니면 그녀를 낚기 위한 계산된 한 수였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도아린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배건후가 조용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크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단단하게 감쌌다.음식이 나왔지만 그는 좀처럼 손을 놓지 않았다.그러다 도아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제야 아쉬운 듯 그녀

  • 또 한 번의 거절   제910화

    “결혼한다면 나한테도 청첩장 줄 거예요?”강재민이 다시 물었다.짙은 파란색 머리카락에, 몇 가닥 밝은색이 섞여 더욱 도도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도아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먼저 입꼬리를 올렸다.“...근데, 만약 청첩장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신랑이라서 청첩장이 필요 없단 뜻이겠죠?”그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신지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강재민은 신지훈의 반응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도아린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아린 씨. 그날 이후로 많이 후회했어요.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도아린은 말없이 손을 들어 그를 밀어냈고 곧장 웨이터를 불렀다.“여기 수저 하나만 더 주세요.”신지훈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이건 제 송별식입니다.”그러나 강재민은 무심한 얼굴로 도아린의 의자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아린 씨는 술을 못 마시니까, 내가 대신 송별주를 한잔하죠.”“강재민 씨.”신지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해외에 오래 계셔서 그런가 봐요. 우리말 속뜻을 잘 이해 못 하시는 것 같은데요.”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흐르던 그때, 웨이터가 요청한 식기와 와인을 가져왔다. 그 순간, 도아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배건후의 메시지였다.[할 얘기 있어. 만나서 얘기해.]도아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신지훈에게 향했다.그는 ‘걱정 마요’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나도 같이 갈게요.”강재민이 뒤따르려 하자 신지훈이 잔을 들어 말했다.“강재민 씨, 아까 송별주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강재민의 눈빛에 불쾌한 기색이 스치더니 그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좋아요. 한 잔 마셔보죠.”복도를 빠져나온 도아린은 바로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코이지 하우스에서 신 대표 송별회 중이에요. 건후 씨도 와요.”“나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게.”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도아린은 길가에 정차한 차를 발견했다.차 안에서 내린 배건후가 경적을 울리며

  • 또 한 번의 거절   제909화

    배건후의 숨결이 갑자기 거칠어지더니 날카로운 눈매에 번뜩이는 불꽃이 일었다.순간, 그는 마치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도아린을 힘껏 끌어안았다.그때 마침, 윤명희와 주현정이 서재 문을 열고 나왔다.“시간 되면 우리랑 같이 여행 갈래요?”윤명희가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건넸다.“여행이 정말 기분 전환에 좋더라고요!”주현정도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저야 좋죠. 다만 제가 방해되진 않을지 걱정이네요.”“무슨 말이에요. 우리 아린이의 대모잖아요.”윤명희가 단호하게 말했다.“우린 이제 한 가족이에요.”잠시 정적이 흐르자 윤명희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그러니 말인데요, 누가 우리 딸을 괴롭히면 우리 같이 혼내줘요.”주현정은 옆에 있는 아들을 슬쩍 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당연하죠. 아, 그리고...”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가 도아린을 바라봤다.“아린아. 너희 부모님도 연성에 오셨다면서? 킹캐슬에서 며칠 머무는 건 어때? 가을 단풍이 지금 제일 예쁘거든.”윤명희는 애써 무심한 척했지만 눈빛엔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사실 그녀 자신도 단풍을 보고 싶었지만 도아린의 일정을 방해할까 고민하던 참이었다.‘생각해 보니 1년 가까이 못 갔네. 부모님도 오셨고 오빠들도 함께라면 충분히 괜찮겠지.’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도아린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그럼 근처도 좀 구경하고, 단풍도 같이 보러 가요. 그 전에 청소 좀 시켜야겠네요. 어머님도 함께 가시죠.”그녀는 혼자 남을 주현정을 염려해 일부러 함께 가자고 했다.“좋지!”주현정이 기쁘게 대답했다.다음 날.도아린은 브레인 팀과 회의를 진행하던 중, 배건후가 아직 연남 신도시 프로텍트를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연남 신도시에 육원그룹 인수까지? 건후 씨가 그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고유리가 따뜻한 차를 건넸다.“대표님, 잠시 쉬실까요?”“괜찮아요.”도아린은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908화

    배건후의 뜨거운 시선이 도아린의 얼굴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렀고 그 뜻밖의 눈빛에 도아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순간, 그녀의 손끝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고 그곳에서 전해진 강한 심장 박동은 마치 전류처럼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배건후의 시선은 그녀의 입술에서 멈췄다.거친 숨결이 고요한 밤공기처럼 그녀를 감쌌다.“...키스해도 될까?”예전의 배건후였다면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늘 먼저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가져다 댔던 사람이다.그런 그가, 지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예의 바른 말투가 낯설어 도아린은 순간 말을 잃었다.“...안 돼요.”거절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 배건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그녀는 그의 익숙한 나무 향기와 담배 냄새에 휩싸였다.그 향기는 그의 존재 자체처럼 깊숙이 그녀 안으로 스며들었다.가슴속에서 거세게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가 터져 나왔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그녀에게 배건후는 조용히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내렸다.“미안. 나도 모르게...”도아린의 심장은 격하게 뛰었다.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육씨 가문 사업 일부가 한경 그룹과 겹쳐. 기회를 잡아서 인수하는 게 좋겠어.”그 한 마디에 도아린의 가슴 속 소용돌이가 조금씩 가라앉았다.공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감정을 뒤로 미루게 했다.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육민재가 회사를 지킬 수 없다면 우리가 뺏어야지. 실력으로.”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육원 그룹은 육하경의 고발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몇몇 프로젝트는 좌초됐고 고위층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며 실체가 하나둘 드러났다.홍보팀이 온 힘을 다해 수습했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상업 전쟁은 언제나 무혈이었다.하지만 누군가 무너지면 그 자리를 다른 이가 채웠다.다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907화

    게다가 도아린을 위해 회사의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그의 결심에 소유정은 더욱 놀랐다.만약 윤명희 부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배건후가 이혼 후 도아린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과 회사를 넘겨줬다고 말했으면, 소유정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도아린이 책상을 정리한 후에야, 소유정은 자리에 앉았다.“옛말에 개과천선이 있잖아.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도 있지.”도아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모순되긴 하지만 말이야.”소유정이 턱을 만지며 대답했다.“마음 가는 대로 해.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난 항상 지지할 거야.”역시 가장 친한 친구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법이다.“진혁 씨랑은 어떻게 됐어?”도아린의 말에 소유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CD 플레이어를 꺼내며 말했다.“내 데모 한번 들어봐.”유진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은 듯한 소유정의 태도에 도아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소유정이 만든 데모는 도아린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도아린은 바로 감독에게 연락했고, 감독도 OST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약속을 받았다.소유정은 그날 바로 해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한편, 윤명희는 연성에 도착하자마자 주현정을 찾아갔다.다만, 윤명희는 남편을 데려가지 않았다.최근 진범준이 아내에게 더 집착을 보였기에 그를 데려가면 위로의 의미보다는 애정을 과시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윤명희와 주현정은 서재로 향했고 거실에는 도아린과 배건후만 남았다.“희망초등학교 일은 내가 오해한 거였어요.”도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도 당신한테 숨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그 틈을 파고들게 만든 거지.”배건후는 귤을 하나 집어 들고 껍질을 벗겨 도아린에게 건넸다.도아린이 힐긋 보고 말했다.“위에 흰 실.”배건후는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그녀는 그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에게 말할

  • 또 한 번의 거절   제906화

    도아린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그날 아침,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마친 후, 배건후는 그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명함에는 에이트 맨션 출입을 위한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배건후는 출장이 있어 3일 후에 돌아온다고 했고 도아린은 생각끝에 소유정의 집으로 향했다.혼인 신고 소식에 소유정은 망고 케이크를 주문해 축하해 주었고 두 사람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다음 날, 소유정은 중요한 녹음 테스트를 놓쳐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아가씨.”일북이 거실로 들어서며 말했다.“일남이 돌아왔습니다.”도아린이 세수하러 가던 중, 소유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나가 보니, 일남도 단 며칠 만에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피부가 되었다.다만 까무잡잡한 피부는 오히려 일남에게 더 강인한 남성미와 야성미를 더해주었다.“미안해요, 참을 수가 없었어요.”소유정은 키득키득 웃으며 안마의자에서 일어났다.그녀는 화장실로 향하다가 도아린을 발견하고 어깨동무하며 말했다.“미안, 저 갑자기 저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하하하!”도아린은 못 말린다는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다 일남과 일북을 서재로 불렀다.일남은 몇 개의 봉투를 꺼내서 건넸다.“아린 희망학교의 자료예요. 이건 현재 계획 중인 자료입니다.”일남이 조사한 자료는 배건후가 가진 증거와 일치했다.배건후는 학교에 기부할 때 명예나 이익을 바라고 하지 않았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하지만 배건후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그가 기부한 학교는 모두 도아린을 위해 준비한 결혼기념일 선물이었다.학교에 그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은 무료로 지도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성과가 나오면 학교는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마지막 학교는 구현성이 기부한 돈으로 세운 것이었으나 아직 위치도 정해지지 않았고 공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첫 번째 학교는 육하경이 도와서 세운 거라, 구현성은 그걸 따라 했을 거예요.”일남이 설명했다.“하지만 배 대표가 현장 조사를 갔다는 사실이나 전문 재단을

  • 또 한 번의 거절   제905화

    배건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만든 건 마셔도 돼요.”소유정은 깜짝 놀라며 도아린의 팔을 잡고 속삭였다.“너, 건후 씨한테 무슨 짓 한 거야?”도아린은 웃으며 손에 든 밀크티를 반쯤 나눠 그녀에게 건넸다.소유정은 컵을 들고 배건후를 힐끔 보며 도발적인 눈빛을 날렸다.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에 댔다.‘청소 한번, 밥 한 끼 직접 해본 적 없는 재벌가 도련님이 무슨 대단한 밀크티를 만들 수 있겠어. 독만 안 들었으면 다행이지.’그런데 딱 한 모금만으로도 그녀의 눈이 커졌다.소유정은 다시 컵을 들어 꿀꺽꿀꺽 두세 모금 더 마셨다.입에 남는 잔향, 단맛은 과하지 않고 묘하게 쌉쌀한데 부드럽고 따뜻했다.“야, 너도 마셔봐!”소유정이 도아린에게 재촉하며 컵을 흔들었다.도아린은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갸웃했다.“여기... 자몽즙 넣었어요?”배건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눈빛엔 묘하게 따뜻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도아린은 평소 꿀자몽차를 즐겨 마셨던 걸 기억한 배건후가 수십 번의 실험 끝에 완성한 조합이었다.자몽의 향은 살리고 밀크티 특유의 부드러움은 해치지 않는 절묘한 밸런스였다.그 순간 윤명희가 흥미로운 듯 몸을 기울였다.“나도 한 모금만. 궁금해서 미치겠네.”남편 진범준이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손을 뿌리쳤다.윤명희는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듯했지만 도아린과 배건후의 관계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일북이 바로 그녀의 정보원이었다.하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판단한 그녀는 그들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확인하고 싶어졌다.배건후는 조용히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고 잠시 후 큰 맥주잔에 밀크티가 가득 담겨 돌아왔다.그는 먼저 도아린의 잔을 가득 채워주고 그다음 윤명희에게 한 잔을 따라 건넸다.그 모습을 보며 소유정도 슬쩍 컵을 들었지만 배건후는 밀크티가 담긴 잔을 회전 테이블에 올려놓고 휙 돌렸다.잔은 진수혁의 앞에 멈췄고 그는 능숙하게 맥주잔을 들어 나머지 밀크티를 변슬기의 잔에 나

  • 또 한 번의 거절   제904화

    “소유정?”도아린의 눈이 놀라움과 의문으로 흔들렸다.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락을 끊었던 소유정이 눈앞에 서 있었다.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와 살이 빠져 까마득히 변한 얼굴.도아린은 거의 못 알아볼 뻔했다.소유정은 한때 ‘곡은 뜨지만 사람은 안 뜨는’ 무명 싱어송라이터였다.햇빛에 탄 듯 거칠어진 볼, 그러나 그 눈은 여전히 맑고 마치 고요한 샘물처럼 맑았다.“너 영화 곧 개봉하잖아. 거기에 어울릴 노래 하나 만들었어.”소유정은 도아린 앞에 다가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낙하산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야. 그냥 한 번만, 내 무대를 보여줄 기회만 줘.”그녀의 눈빛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이제 더 이상 방황하는 예술가의 허영도 아닌, 세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꺾이지 않는 고집이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좋아.”도아린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유정이 더 말하려던 찰나,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키 큰 남자를 보곤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제가 들게요.”배건후가 진범준의 손에서 카트를 넘겨받았다.진범준은 도아린을 살짝 살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손을 놓았다.“수고 좀 해줘.”“별말씀을요.”배건후는 미리 준비해 둔 7인승 밴에 사람들을 태워 호텔로 향했다.한편, 진수혁은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대신 집이 더 편하겠다며 송 비서와 변슬기를 데리고 집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을 마친 후, 모두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다시 만났다.도아린은 변슬기가 눈에 띄게 자신을 피하며 거리를 두는 걸 눈치채고 먼저 그녀를 불렀다.“슬기 씨, 우리랑 같이 식사해요.”“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송 비서님이랑 밖에서 간단히 먹을게요!”변슬기는 다급하게 눈짓을 보내며 송 비서를 향해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고 송 비서도 눈치껏 거들었지만 소용없었다.“송 비서도 같이 앉아요. 오늘은 우리 가족 모임이니까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어요.”도아린은 직원에게 수저를 부탁했다.변슬기가 당황한 눈으로 진수혁을 바라보자 그는 조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