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는 댓글 알바를 고용했을뿐더러 마케팅 계정도 새로 팠다.그동안 배건후와 스캔들은 생일 축하 라방 이후로 대중의 마음속에 기정사실로 자리 잡았다.게다가 인스타에 올린 게시물의 댓글은 전부 축하하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배건후가 받은 메시지는 바로 불꽃이 터지는 순간 촉촉한 눈망울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우정윤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내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내려놓는 상사를 보자 즉시 진상을 파악하러 자리를 떴다.10분 뒤, 그는 마지못해 다시 들어와서 보고했다.“불꽃놀이 판매사에서 김지민이 생일 축하 문구를 백년해로로 바꿔 달라고 했다네요. 그리고 검색어에 관해서는...”비록 손보미는 그다지 유명한 편이 아니지만 배건후는 연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황태자이지 않은가?그의 인기에 힘입어 손보미의 팔로워는 금세 10만 명에 육박했다.라이브 방송을 지켜본 사람 중에서 누군가 클립으로 편집해서 인터넷에 업로드했는데 댓글로 손보미를 축하해주는 팬들이 있는가 하면 남자에게 빌붙는 그녀를 무시하는 배건후 추종자들도 있었다.두 세력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곧바로 실검 1위를 장악했다....다음 날.유민정의 연락을 받은 도아린은 주현정의 주치의가 가족들을 호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배건후와 거의 동시에 진료실에 도착했다.어두운 안색의 남자는 의자에 앉자마자 강한 위압감을 뿜어냈고, 의사는 저도 모르게 몸을 틀어 그나마 상냥한 태도의 도아린을 마주 보았다.“사실...”주현정의 병은 콕 집어 정의하기 어려웠다. 기준치에 부합되지 않은 항목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또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현재로서 의사의 소견은 아이를 낳고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면역력을 가볍게 여겼다가 큰코다칠지 몰라요. 유행성 바이러스에 한 번 걸리면 장기 부전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듣는 내내 조마조마하던 도아린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퇴원하고 나서 주의
이내 엘리베이터 층수가 빠르게 변했다.도아린이 버럭 외쳤다.“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그냥 집에서 썩게 놔둬요. 어쩌면 백 년 뒤에 문화재 답사할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배건후가 담배를 두 동강 냈다.“다시 한번 얘기해 봐.”말하라고 해서 고분고분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꿈도 참 야무지군.도아린은 지금처럼 마음이 확고한 적이 없었다. 즉,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남자한테서 도망치는 것이다.그리고 배건후가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잽싸게 비상구로 뛰어가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갔다.주얼리를 직접 처분하는 것쯤이야! 물건을 정리하고 나서 다시 이혼을 언급했을 때 무슨 핑계를 댈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그러나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밀번호를 바꾼 사실이 떠올라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다행히 가정부 아주머니가 계셨고, 안미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사모님, 오셨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동안 사장님 음식을 준비해주다가 계속 꾸중만 들어서 월급이 곧 바닥날 것 같아요.”도아린이 까탈스럽지 않고 성격도 착한 편이라 가정부도 그녀를 편하게 대했다.“부부는 항상 티격태격하기 마련이죠. 사실 사장님께서도 속으로는 사모님 생각을 많이 하세요...”이때, 뒤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려왔고 배건후가 집에 도착했다.도아린은 신발을 갈아신으며 너스레를 떨었다.“아줌마는 자녀가 두 명이라고 했죠? 아들 하나 딸 하나?”안미자는 어리둥절하더니 활짝 웃었다.“맞아요.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인데 장난기가 어찌나 많은지. 아빠를 제일 무서워하죠.”“이제 일하신 지도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제가 왜 아이가 없는지 알아요? 왜냐하면 남편이 내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죠.”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정작 도아린은 당황한 표정의 안미자를 뒤로 하고 유유히 2층으로 올라갔다.그녀가 집에 있는 날이면 배건후는 늘 외박했고, 혹시라도 집을
혹시 어젯밤에 불꽃놀이 한 사람이 배건후는 아닐까?머리에 불똥이라도 튀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나?어떻게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도 뻔뻔스럽게 내뱉을 수 있지?자기가 그까짓 물질적인 보상에 질투가 나서 이혼을 운운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공부도 잘했다는 사람이 이해력이 이렇게 떨어져서야 원.도아린은 분노로 가득한 남자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어머님에게 비밀로 하고 거동이 불편하실 때 돌봐줄 수도 있지만 전제는 나랑 이혼한다는 것이죠.”주현정이 그녀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최선을 다해 보답할 생각이다.반면, 배건후는 국물도 없었다.남자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올 만큼 그녀를 꽉 잡고 있었다.도아린은 그의 소매를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스토킹할 때 건후 씨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정말 짜증 나는군.”배건후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에 모든 이가 우러러보는 존재였다.자존심이 워낙 강하고 매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남자가 어찌 이런 조롱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이내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문이 닫히기 전에 쌀쌀맞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변호사한테 연락하라고 해. 그리고 넌 꺼져!”도아린은 어리둥절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옷더미에서 휴대폰을 찾은 다음 그나마 무난하고 자주 입을 것 같은 옷을 몇 개 골라 짐을 쌌다.캐리어를 끌고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또 번복하기만 해봐요!”‘쾅’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닫혔다....도아린이 서둘러 떠난 이유는 나리 병원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몸을 닦아주는데 손가락이 움직였어요.”간호사가 도아린에게 말했고, 두 사람은 검사 중인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의사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무덤덤한 얼굴로 설명했다.“아직 뚜렷한 징후는 없네요. 식물인간이 손가락이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건 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곧 깨어난다는 뜻은 아니에요. 어쩌면 신경계
마치 자신도 피해자라는 듯이 말하다니.도정국이 그녀의 어머니와 기꺼이 결혼하기로 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연성 사람인 배우자 덕을 봐서 대도시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신혼 초에는 그나마 얌전하더니 나중에 디저트 가게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접대를 핑계로 밖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심지어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아들을 낳지 못한 탓에 본가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비난까지 했었다.“저 여자랑 결혼할 거예요?”도아린이 무심하게 말했다.도정국의 말투에 짜증이 묻어났다.“네가 진작 동의했으면 결혼하고도 남았겠지.”말을 마치고 나서 실언했다는 생각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엠파이어 빌딩에 공실이 거의 없다고 하니 서둘러.”도아린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도정국이 문을 덥석 잡았다.“너도 얼른 남편이랑 애 낳고. 그 배는 어쩌면 네 엄마보다 못하냐?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감감무소식이라니. 만에 하나 밖에 있는 여자가 임신이라도 했으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늦을 거야.”도아린은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딸의 결혼이 고작 본인이 재벌 가문에 발을 들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건가?만약 배건후와 이혼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당장 그녀를 목을 졸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이내 차 문을 힘껏 당기자 도정국의 손이 자칫 끼일 뻔했다....다음 날.도아린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장수현의 연락을 받았고, 배건후가 보낸 대리인의 면담 신청이 있다고 했다.이내 서둘러 씻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배건후 측 대리인은 무려 툭하면 억대 소송을 진행하는 모건 그룹의 법률 고문 남궁유민이다.고작 이혼 분쟁 때문에 이렇게 대단한 변호사까지 출동시켜 으름장을 놓다니!도아린은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두 변호사가 주고받는 말을 들었는데 재능 낭비는 아닌 듯싶었다.“결혼하기 전에 대표님께서 240억이라는 빚을 대신 상환해주셨고, 지난 3년간 도아린 씨 남동생의 병원비와
남궁유민은 초소형 카메라에 담긴 도아린과 협의했던 장면을 배건후에게 보내주었다.분노와 걱정이 뒤섞인 여자의 표정을 보며 배건후는 손으로 볼펜을 리드미컬하게 돌렸다.쓴맛을 좀 봐야지 정신 차리지,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운운하면 골치가 아팠다.배건후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팅하러 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자 우정윤이 나지막이 말했다.“남궁 변호사님이 연락이 왔어요.”남자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고, 차분한 걸음걸이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머릿속은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 진행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혼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어쨌거나 바보가 아닌 이상 실수는 범하지 않을 테니까.“내가 제시한 요구는 우 비서도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전달해.”즉, 에이트 맨션에 돌아가서 앞으로 이혼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으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준다는 것이다.우정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사무실에 따라 들어서더니 문을 닫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변호사님께서 말하길 사모님이 사인했다고 하네요.”물론 나쁜 놈이라는 둥, 인간 말종이라는 둥, 비열하다는 둥, 업보를 받는다는 둥 배건후에 대한 욕설과 비방은 건너뛰고 결론만 전달해주었다.의자를 끌어당기던 배건후가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도아린이 동의했다니?혹시 머리가 잘못되었나?칼날처럼 날카로운 상사의 시선에도 우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눈을 살짝 내리깐 배건후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고, 남자다운 턱선이 금세 팽팽하게 당겨졌다. 우정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구청에는 언제 가면 좋을까요?”벌컥!남자는 테라스 문을 열고 싸늘한 기운을 내뿜은 채 걸어 나갔다.이내 차단을 해제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감히 그를 차단하다니?도아린이 병원에서 주현정의 퇴원 수속을 처리하던 중 휴대폰이 문득 울렸다.“사인했어?”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네.”그리고 휴대폰을 볼과 어깨 사이에 끼고 맨 뒤로 가서 줄을 섰다
입구를 지나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지유는 등골이 오싹했다.그럴 리가 없었다. 워낙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일이라 도아린은 절대 모를 것이다.주현정을 보자마자 날이 잔뜩 서 있던 도아린도 금세 표정을 바꾸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머님, 약이랑 주의사항은 민정 아줌마한테 전달했어요.”주현정이 옆자리를 두드리며 앉으라고 손짓했다.“오늘 친구들이 내가 퇴원한다는 걸 알고 보러 오겠대. 지유는 약속이 있다고 나갔으니까 네가 남아서 같이 도와줘.”비록 손님 접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주현정 혼자서 사람을 맞이하면 힘들기 마련이다.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어차피 재벌가 여사님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었기에 기껏해야 과일을 자르고 차를 준비할 뿐이었다.주현정은 일반 부잣집 사모님과 달리 본인의 커리어를 갖고 있다. 비록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녀가 설립한 JS 픽처스는 연예계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따라서 어떤 일은 대놓고 부탁하기 어려웠고, 사적으로 찾아와서 해결하는 게 대다수였다.과일이 준비되자 손님도 속속 도착했다. 그중에서 도아린은 성대호의 어머니 연장미만 알아보았다.여사님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주현정 앞에서는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도아린이 내린 차를 마시며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며느리가 참 예쁘게 생겼네요. 회사에서 새로 영입한 배우인 줄 알았어요.”주현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네, 사람도 어찌나 똑똑한지.”겉모습만 그럴싸하고 머리는 텅 비었다고 비꼬려는 걸 마냥 지켜볼 그녀가 아니었다.도아린이 주방에 간 틈을 타서 한 사람이 말했다.“안색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한약이 효과가 있었나 봐요?”“그러게요.”“아주 용한 한의사라고 하던데 왜 현정 씨 며느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죠? 설마...”“요즘 애들은 다 자기 생각이 있기 마련이에요.”사실 주현정도 손주가 간절했지만, 외부인들이 도아린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반응을 보이자 우정윤은 이때다 싶어 필살기를 날렸다.“여사님을 뵈러 손님들이 찾아와서 사모님이 접대하는 중이에요.”배건후가 문득 콧방귀를 뀌었다.“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만 골라서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우정윤은 사실 대표님한테만 날이 잔뜩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니면 또 심기가 불편해지기 마련일 테니까.“사모님은 워낙 사교 모임에 익숙하지 않아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말실수해서 여사님까지 곤란하게 하는 건 아닌지 싶네요.”배건후는 서류를 탁 덮었다.“능력도 없으면서 설치기는! 당해도 싸.”우정윤은 즉시 입을 꾹 닫았다....그나마 주현정과 사이가 좋은 연장미가 화제를 바꾼 덕분에 분위기도 서서히 화기애애해졌다.도아린은 가끔 과일이나 차를 가져다주었고, 유민정을 도와 점심을 준비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훨씬 더 편했다.식사를 마치고 여사님들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고, 누군가 경마를 언급하자 TV를 켜고 경기를 시청했다.그녀는 이내 구석에 앉아 소유정과 문자를 주고받았다.소유정은 도성 경찰서에 가서 진행 상황을 물었지만 증거가 없다는 핑계로 처리해주기 싫어하는 눈치라고 했다.한편, 불꽃놀이 영상은 이제 실검 순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손보미의 팬들은 여전히 공유하느라 바빴고 소유정이 [배건후는 유부남, 손보미는 내연녀]라는 댓글을 달자 금세 욕설로 도배되었다.자칭 내막을 알고 있다는 네티즌이 배건후와 손보미가 소꿉친구라는 증거를 제시하더니 배건후에게 질척이며 둘 사이를 훼방 놓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비록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나열한 사건에서 유추해보면 전부 도아린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글쓴이가 누구인지는 뻔했다.손보미는 이번 화제에 힘입어 여주인공 캐스팅 확정 소식까지 발표했다. 어쨌거나 안티팬이 많으면 인기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했으니까.게다가 함예진을 태그하고 앞으로 최고의 여배우한테서 열심히 연기를 배우겠다고 선언했다.물론 함예진은
말과 당나귀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몇 번 해본다고 과연 마스터하겠는가?결국 비주얼만 보고 골랐다가 연속으로 참패당해 뼈아픈 교훈을 얻고 그녀는 절대로 외모에 혹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백전백승한 김영실은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주현정을 보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현정 씨 쉬는 거 방해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주현정은 도아린의 종이를 흘긋 쳐다보았다.“어때?”“딱 한 번 5등 했어요.”김영실이 웃으면서 말했다.“자, 나한테 6,000만 원 주고 장미 씨한테 2,400만 원 보내줘.”도아린은 어안이 벙벙했다.경마에서 지면 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는데?게다가 배건후와 이혼하면서 이미 1,000억의 빚을 졌는데 돈이 어디 있겠는가?그녀는 차라리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손을 떼는 것이었는데.결국 종이를 너무 세게 움켜쥔 나머지 김영실이 빼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설마 용돈이 1억도 없는 건 아니지?”비록 순순히 인정할까 고민도 했으나 주현정에게 배건후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걸 들키기 마련이었다.‘골치 아프군.’도아린은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마지못해 이체해주었다.연장미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경기가 곧 끝날 텐데 아니면 후반전까지 시청하고 갈까요?”김영실은 활짝 웃으면서 귀걸이를 만지작거렸고, 이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난 상관없는데 누군가 계속 돈을 잃어 울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네요.”이때, 문이 열리며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싸늘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성이 들려왔다.“대체 얼마를 땄기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죠?”도아린이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건장하고 훤칠한 남자가 거실로 들어섰고, 길쭉한 팔다리를 감싼 슈트핏은 가히 환상적이었다.한 마디로 너무 멋졌다.‘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도아린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김영실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야. 전복이나 좀 사 먹겠는지. 그나저나 회사가 안 바쁜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