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후 씨가 왜 여기 있어요?”그녀의 물음에 배건후가 피식 웃었다.“누가 60만 원 준다면서 나보고 한 번 하자던데?”“...”도아린은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돌아누우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냉큼 짓눌러버렸다.“어젠 울면서 잘못을 인정하더니 잠 깨자마자 모른 척 시치미 떼려고?”“무슨 잘못을 인정해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배건후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유부녀가 낯선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게 잘못 아니야?”“단순히 뒹굴었을 뿐 건후 씨 나한테 뭐 한 것도 없잖아요.”도아린은 언짢은 듯 그의 손을 뿌리쳤다.“건후 씨도 유부남이면서 밖에서 실컷 즐기고 다녔잖아요! 왜 이렇게 내로남불이야 진짜.”“너 지금 대체 뭐라는 거야?”배건후는 잔뜩 화나서 미간을 찌푸렸다.도아린도 뒤질세라 그에게 삿대질했다.“나쁜 짓 했으면 했지 뭘 또 발뺌이에요? 건후 씨는 나한테 이런 말 할 자격 없어요!”배건후가 손보미의 신비주의 남친이란 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가 대체 무슨 체면으로 도아린을 질책하는 걸까?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시퍼렇게 멍든 무릎 때문에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또다시 배건후에게 허리를 휘감겨버렸다.배건후는 이번에 아예 그녀를 몸 아래에 깔아 눕혔다.“건후 씨 계속 발뺌할 거면 나 갈래요!”“으읍!”이때 배건후가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꼭 깨물었다.쓰라린 고통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그의 등을 두드릴수록 더 세게 깨물더니 끝내 입술을 벌리게 했다.도아린은 거부하지 못한 채 이 남자의 거침없는 키스에 온몸이 나른해졌다.배건후는 그녀의 입술을 탐하다가 귓불로 넘어가더니 나중에는 목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마치 드라큘라처럼 그녀의 피를 빨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도아린은 끝내 몸부림을 포기했다.“건후 씨 지금 내 말에 정곡을 찔려서 이렇게 화내는 거죠?”순간 배건후가 동작을 멈추고 고개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이때 도아린이 머리를 들며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사모님!”박규형은 덩치 큰 체구로 차 문을 가로막으며 도아린을 간절히 쳐다봤다.“어제는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사모님께 그런 실례를 범하다니. 제발 저 한 번만 용서하시고 대표님께 잘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앞으로 더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이때 맞은편에서 또 한 명이 불현듯 나타나더니 박규형과 나란히 서서 그녀를 가로막았다.“저희 아트 캠퍼니에 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사모님 같은 분을 초대 가수로 모시다니,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 이런 분을 몰라뵙고 어제는 너무 어리석게 실례를 범했어요.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너무 설쳐댔습니다. 사모님의 은혜는 평생 간직하고 어제 일도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연예 기획사 매니저도 처참한 몰골로 말을 내뱉으며 스스로 뺨을 내리쳤다.옆에 있던 두 명의 벨보이는 멍하니 넋을 놓았고 그중 한 명이 재빨리 눈치채더니 들어가서 지배인께 알렸다.“건후 씨가 두 사람한테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과받을 마음 전혀 없습니다. 어제 일은 반드시 끝까지 추궁할 거예요.”도아린이 왼쪽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도 곧바로 따라오며 어떻게든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건후 씨 금방 나올 텐데 계속 내 앞길 막으면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두 사람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기사님, 얼른 출발해요!”차가 떠나간 후에야 둘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미친 듯이 쫓아갔다.“사모님, 천사 같은 마음으로 부디 한 번만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제발 우릴 살려달라고요!”“제발요. 사모님 말 한마디면 저희도 금방 풀려날 거예요!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이때 교차로에 갑자기 차 한 대가 뛰쳐나와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연예 기획사 매니저는 숨을 헐떡이며 박규형에게 말했다.“대표님, 저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네요. 이참에 우리 그냥 배 대표님 찾아갈까요?”“멍청한 놈!”박규형은 커다란 나무에 기댄 채 씩씩거리며 대답했다.“배건후가 우릴 만나줬다면 굳이 쟤한테
“네 남동생 죽었어?”“아직, 하지만 별반 차이 없어.”도유준은 종업원을 불러 식당에서 제일 비싼 요리를 주문하고 술도 한 병 더 시켰다.“다들 마음껏 마셔! 이따가 가게에 내려가서 먹고 싶은 디저트 있으면 편하게 가져가고.”“도울 디저트 도련님께서 이미 허락하셨으니 사양하지 않을게.”곧이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녀석들과 등을 대고 앉은 소유정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건방진 자식 같으니라고, 양아들 주제에 가산을 물려받을 생각 하다니?”도아린이 콧방귀를 뀌었다.“저놈이 왜 도 씨인지 알아?”양아들인지 아닌지는 도정국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식사를 마칠 때쯤 도아린은 주현정의 연락을 받고 먼저 가봐야 한다고 일어났고, 소유정도 입을 닦고는 가려고 했다.도아린은 입만 벙긋거리며 계산하러 간다고 말하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볼캡을 가리켰다.비록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소유정은 나름 얼굴이 알려진 가수였다. 게다가 아침에 병원에서 나와 안색도 창백하고, 화장도 안 했는지라 조금이라도 가리는 게 나았다.두 여자가 떠난 뒤 도유준과 친구들은 흥이 나서 술을 더 시켰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술판을 벌였다.도유준은 잘난 척하려고 일부러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했다.종업원이 계산서와 카드 단말기를 건네주자 그는 비밀번호를 눌렀고, 이내 잔액 부족이 떴다.나머지 세 친구는 가정 형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매달 생활비가 고작 40만 원에 불과했다. 한 끼 식사에 족히 60만 원이 나왔으니 더치페이하기 싫어서 갖은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다.“카드 단말기가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아까 신발 샀을 때만 하더라도 잔액이 200만 원 넘었는데?”종업원은 그가 산 신발 따위 관심이 없었고, 다른 카드 단말기로 결제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계단 입구에 숨어서 기웃거리는 친구들을 보자 도유준은 점점 짜증이 났다.어렸을 적부터 출신 때문에 예민하고 의심이 많아진지라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면 마치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는 듯한 환청이
주현정의 병실에 들어선 도아린은 흠칫 놀랐다.그녀는 오늘 컨디션이 좋은 듯 침대에 누워 있지 않고 밝은 색상의 명품 스타일 투피스를 입고 거실에서 친구를 접대했다.“아린아, 이리 와. 소개해줄게.”주현정이 도아린을 향해 손을 뻗으며 미소를 지었다.“이분은 내 절친이자 최고의 여배우인 함예진이야. 여긴 내 며느리 도아린이고.”함예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도아린을 위아래로 훑었고,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생얼이지만 외모가 출중했고, 몸에 별다른 사치품을 지니지 않았으나 결코 눈길을 사로잡는 아우라를 풍겼다.이런 부류의 사람은 액세서리 따위 안중에 없거나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이모라고 부르면 돼.”“안녕하세요, 이모.”함예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낀 반지를 빼서 건네주었다.“급하게 오느라 선물도 준비 못 했네. 귀한 건 아니라서 편하게 하고 다녀.”귀한 게 아니라니?영화계 거물은 몇십 억이 넘는 액세서리도 우습게 보는 건가?도아린은 반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3개의 깃털이 뿔 모양을 이룬 반지는 일명 유니콘 링이라고도 불렸다. 당시 함예진이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핸드메이드 자수 드레스와 매치한 클래식 아이템이었다.“저한테 너무 과분한 선물이라서 받을 수가 없어요.”“줄 때 가져.”주현정이 반지를 건네받아 도아린의 손에 끼워주었다.“워낙 공사다망한 사람이라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달라고 하는 작품만 아니었다면 연성에 오지도 않았을 거야.”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오색찬란한 반지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이모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식사 자리에서 도아린은 함예진이 연성을 찾은 진짜 목적에 대해 전해 들었다. 바로 이번 송민혁 감독의 새 작품에서 유능한 왕후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는 정상급에 속했지만 조연이라고 해서 출연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고, 캐릭터의 매력을 우선순위로 두고 대본을 선택했다.“아린아, 가서 이모랑 내가 마실 주스
함예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으로 주현정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는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어머님, 생선 드세요. 이 부분은 가시가 없거든요. 이모도 많이 드세요.”“역시 날 챙겨주는 건 며느리뿐이네.”함예진도 웃으면서 접시를 건넸다.“고마워.”아무도 입구에 있는 손보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녀는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더니 다시 배건후의 이름을 불렀다.배건후는 무표정한 얼굴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외식하면 가장 먼저 냅킨을 깔고 필요 없는 식기를 치워주곤 했는데 오늘은 마치 공기 취급했다.머릿속으로 어젯밤 그녀의 행세를 되뇌며 오늘 아침 결판을 내기도 전에 잽싸게 도망친 일이 떠올라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이리 와서 앉아.”배건후가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기자 손보미는 활짝 웃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안녕하세요, 어머님, 선생님. 아린 씨, 오랜만이야.”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나긋한 말투로 인사하는 여자의 모습은 아까와 사뭇 달랐다.“방금 화장실에서 보지 않았나?”도아린은 반찬을 한 입 집어 먹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손보미의 안색이 돌변하더니 표정이 어찌나 억울한지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듯싶었다.함예진은 온갖 대상을 휩쓴 배우답게 진심인지 연기인지 한눈에 간파했다.이내 배건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소개 안 해줘?”“저는 손보미라고 하고, 이번 송민혁 감독님의 새 작품에서 ‘예원’ 역을 맡았어요. 왕후 역할이 다름 아닌 함예진 선생님이라고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건후 씨한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손보미는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섰다.함예진은 못 들은 척 배건후만 쳐다보았다.이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손보미라고 합니다.”“아,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구급차를 부르는 바람에 결국 임산부를 유산하게 한 그 무명 배우?”생글생글 웃는 얼굴과 달리 인정사정없는 말을 내뱉을 줄이야.손보미의 얼굴이
뭐지?뒤에서 몰래 수작 부리는 게 성에 안 차서 이제는 대놓고 유혹하는 건가?정작 남편이라는 사람은 어제 그렇게 위험천만한 순간에 무심한 얼굴로 지켜보기만 하더니 도와주기는커녕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자기 사리사욕을 챙기기 바 빴다.순간, 억울함과 분노가 물밀듯이 밀려왔다.역시 남자 따위는 필요 없었고, 솔로가 최고였다.“이모가 보기에 괜찮을 것 같아요?”“물론이지. 넌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똑똑하고 이해력도 뛰어나잖아.”함예진은 팔꿈치로 주현정을 슬쩍 찌르며 말했다.“아직 하녀 역할이 남았는데 아린을 추천해볼까?”주현정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자신을 흘겨보는 배건후 때문에 손보미는 허공에 뻗은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아까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도아린의 말을 듣고 나서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바보 같은 년, 주현정의 시중을 3년이나 들었는데 연예계에 종사하는 며느리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도 눈치 못 챘단 말인가? 아니면 그녀가 일찌감치 배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꿰찼을 것이다.주현정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이 점차 싸늘하게 변했다.이때, 손보미가 끼어들었다.“하긴, 이번 기회에 도전해 봐. 나도 같은 제작팀이거든? 함예진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주실 테니까 열심히 배우면 앞으로 연기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야.”도아린이 합류하게 된다면 제 발로 찾아와 괴롭힘을 자처하는 꼴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주현정에게 바짝 다가간 도아린은 넌지시 물었다.“어머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주현정이 착잡한 눈빛으로 나지막이 말했다.“연기해보고 싶어?”“어머님의 의견에 따를게요.”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럼 해 봐.”이내 함예진을 바라보았다.“우리 며느리를 믿고 맡기는 거니까 혹시라도 괴롭히는 사람이 생긴다면 너한테 책임을 물을 거야.”“당연하지.”주현정, 함예진, 도아린은 주스로 건배했다.배건후는 꿈쩍도 안 했고, 손보미는 잔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너한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끼얹었다고?”남자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손보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게다가 불꽃놀이도 해주기로 약속했잖아? 도아린이 손찌검만 하지 않는 이상 욕한다고 한들 참을 수 있어.”배건후는 무표정으로 일관했고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다.손보미가 위를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저녁에 뭐 먹지도 못한 것 같은데 나도 마침 배가 고프네. 근처에 비건 레스토랑이 있는데 같이 갈래?”배건후는 담뱃재를 툭툭 털면서 조수현 앞으로 걸어갔다.“집까지 데려다줘.”손보미는 마지못해 차에 탔고, 문이 닫히자마자 못마땅한 듯 눈빛이 험악하게 번뜩였다.이내 고개를 숙여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사장님, 혹시 대역은 찾으셨나요?]...주현정을 부축해서 걸어가던 도아린의 등 뒤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재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운수가 사납기 마련이네.”소매를 붙잡고 있는 함예진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했다.문에 삐쭉 튀어나온 못 때문에 소매가 걸려서 찢어졌는데 몇백만 원이 넘는 옷을 버리게 생겼다.도아린이 다가가 힐긋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들어가서 쉬고 계시면 제가 수선해드릴게요.”“옷 수선도 할 줄 알아?”놀라움이 담긴 말투와 달리 그녀의 눈빛은 무덤덤하기만 했다.병실로 돌아간 다음 주현정은 함예진이 갈아입을 만한 옷을 찾아주었고, 이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한편, 도아린은 휴게실에서 옷을 수선하고 있었다.30분 뒤, 그녀는 옷을 들고나와서 말했다.“제가 손재주가 별로 없어서 혹시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함예진이 건네받는 순간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찢어진 부분에는 같은 색상의 실로 장미꽃이 수 놓여 있었는데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게다가 티가 전혀 나지 않을뿐더러 화룡점정의 효과까지 추가되었다.이내 주현정의 앞에 내밀며 말했다.“요즘 바느질할 줄 아는 젊은이가 어디 있어? 이런 보물 같은 며느리를 얻다니.”주현
소유정은 도아린을 소파에 앉히고 과일 차를 건넸다.“너 대신 분풀이나 해주려고 했는데 사회가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줄이야!”대역은 십중팔구 정해진 일이었지만 손보미 그년 때문에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송민혁에게 조연이라도 좋으니 도아린을 추천하려고 했다.만약 자수 놓는 신만 있다면 손보미가 찾은 ‘대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거로 확신했다.그러나 남한테 어렵게 부탁해서 끼워 넣은 프로필이 단지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1차에서 탈락할 줄은 몰랐다.“만약 내가 톱 가수였다면 조연 정도 추천해주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이게 다 무능한 내 잘못이야.”“아니야.”도아린은 소유정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감독님께서 오디션 받아보라고 하셨어.”“정말?!”소유정이 벌떡 일어나 소파에 서서 도아린을 내려다보았다.“너한테 연락이 왔어? 어떤 역할이래?”“오디션 하러 가봐야 알 것 같아.”다음 날.주현정은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어 오디션은 며칠 더 기다려야 하니까 우선 킹캐슬부터 다녀오라고 말했다.이제 곧 그녀의 명의가 될 예정이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라는 의도였다.만일의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도착하면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라고 당부까지 했다.킹캐슬은 산을 등지고 호수를 마주하고 있어 많은 사람의 인생샷 명소로 유명했다.특히 신혼부부나 커플들이 오래된 성을 연상케 하는 별장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첫 번째로 풍경이 아름다워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고, 두 번째로 이는 사랑의 증표와 같은 건물로서 자신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했다.별장에 정기적으로 청소하러 오는 사람이 있었기에 먼지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안에서 생활한다고 하면 대청소를 한 번 해야만 했다.도아린이 도착했을 때 이미 오후가 되었고, 남향 방 하나를 깨끗하게 정리한 다음 근처에서 장을 보고 저녁에 소유정과 맛있는 음식을 해 먹기로 했다.주현정의 말에 의하면 지하실에 자전거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