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또 한 번의 거절
또 한 번의 거절
Author: 온유

제1화

Author: 온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10 13:27:57
“민재야, 도와줘...”

“한 번 더 말해 봐!”

도아린은 누군가에게 머리를 잡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뒤에 있는 남자의 싸늘한 이목구비를 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후 씨? 건후 씨가 왜 여기에...”

남자는 안개가 자욱한 유리 벽에 도아린을 밀어붙이더니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여긴 내 방이야, 누구이길 바라는데? 응?”

도아린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이거 놔요. 놓으라고요...”

“날 건드렸으면 끝까지 버텨야지.”

남자는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마구 더듬었다.

“으악...”

쿵!

도아린은 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꿈에서 깼다.

앞에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버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길가의 배수구에 빠지면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는 온통 욕하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뿐이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3년 전 그날 밤의 사고에 비하면 이번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아린은 그 사고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날 밤 그녀는 배건후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배씨 가문 사모님이 되어 위기들을 해결하긴 했지만...

“죽고 싶어요? 얼른 밖으로 기어 나와요!”

누군가의 재촉에 도아린은 이미 망가진 케이크를 버리고 선루프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구급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아린은 구급차가 멀지 않은 곳의 아우디 밴 옆에 멈춰 있는 걸 발견했다.

의료진들이 구급차에서 내려 차 안의 다친 환자를 부축했다. 그때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상체를 숙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고 나온 후 구급차에 태웠다.

찰나였지만 도아린은 그 남자가 바로 결혼한 지 3년 된 남편이라는 걸 알아봤다. 그리고 남편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는 늘 잊지 못했던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는 유학 간 그녀를 줄곧 잊지 못했다.

도아린은 팔이 아픈 것도 참아가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남자의 싸늘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건만 간단히.”

“오늘 집에 들어와요?”

도아린은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일이 있어.”

한마디라도 더 하면 첫사랑에게 미안하더라도 한지 남자는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편은 내연녀를 끔찍이도 아꼈지만 정작 자기 아내는 혐오할 정도로 싫어했다. 도아린은 입술을 꽉 깨물고 먼 곳의 구급차를 쳐다보았다.

배건후는 그녀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손보미의 수업은 다 기억했다. 오늘 배건후와 함께 생일을 보내려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구급차가 버스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도아린은 차 위에 앉아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건후에 대한 그녀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고 때문에 교통이 두 시간 넘게 마비되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임산부가 놀란 탓에 조산했고 다행히 도아린은 그저 타박상만 입었다. 병원에서 나와 집에 도착했을 땐 날이 다 어두워진 뒤였다.

도아린은 홀로 텅 빈 별장에 앉아서 생일을 보냈다.

...

보성 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손보미를 밀고 나오자 배건후가 재빨리 다가갔다.

“어떤가요?”

손보미는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다. 그리고 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부들부들 떨다가 배건후를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의사가 말했다.

“가벼운 뇌진탕입니다. 예전에 척추를 다친 적이 있어서 한동안 가만히 누워서 쉬어야 해요.”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보던 배건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선생님...”

손보미가 부드럽게 물었다.

“이번에 귀국한 이유가 유명 감독님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서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의사가 마스크를 벗고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절대 무리하게 일을 해선 안 돼요. 만약 꼭 해야 한다면 옆에 챙겨주는 사람이 항상 있어야 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손보미는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배건후를 보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오늘 데리러 와줘서, 또 병원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매니저가 내일 아침 일찍 오기로 했으니까 먼저 들어가서 쉬어.”

방금 의사가 옆에 항상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또 매니저도 없는데 배건후가 어찌 갈 수 있겠는가?

배건후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급히 처리해야 하는 서류를 병원에 가져오라고 했다. 전화를 마친 후 또 손보미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푹 쉬어.”

손보미의 두 눈이 반짝였다가 이내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나랑 병원에 있으면 아린 씨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괜찮아.”

배건후는 간호사에게 손보미를 병실로 옮겨달라고 한 후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이튿날에야 집으로 들어온 배건후는 밤새 자지 못해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신을 갈아신고 거실을 지나던 그가 갑자기 발걸음을 늦추었다.

평소 이 시간이면 도아린은 요가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 다음 배건후가 오늘 입을 옷을 다림질하여 꺼내놓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집 안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배건후가 안방 문을 열었다. 가뜩이나 어둡던 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방에 아무도 없었고 커다란 침대 한가운데에 서류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바로 이혼 합의서였다. 하지만 배건후는 이런 수작 따위 신경 쓰지도 않았다. 도아린이 화를 낼 때마다 호텔에 가서 이삼일 정도 지내다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손보미가 떠들썩하게 귀국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기사가 아마 쏟아져나왔을 것이다. 하여 도아린이 기사를 보고 삐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옷장 안에 옷들이 색깔 별로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오늘 그가 입을 옷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배건후는 옷장 문을 세게 닫더니 침대 위의 서류를 들었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던 그의 얼굴에 차가움이 스쳤다.

“이 여자가 감히...”

...

도아린은 아침 일찍 나와서 살 집을 구했다. 이혼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더는 에이트 맨션에서 지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운 좋게 급히 파는 아파트 한 채를 구했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가격이 적당했고 가구도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계약금을 낸 후 도아린은 짐을 챙기러 집으로 갔다.

에이트 맨션은 고급 주택 구역이라 택시가 들어갈 수 없었다. 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밖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시간이 몇 시인데 인제 들어와요? 대표님이 그러라고 월급 주는 줄 알아요?”

경비원이 도아린을 흘겨보며 말했다.

배건후는 집에 외부인이 있는 걸 싫어하기에 시간제로 청소하는 도우미를 딱 한 명 구했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의식주를 직접 챙기길 좋아했다. 청소하지 않아도 될 때는 도우미에게 휴가를 주기도 했다.

도아린과 배건후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양측 부모와 친구 몇 명만 알고 있었고 또 외부에서는 배건후가 손보미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도아린이 에이트 맨션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배씨 가문의 도우미로 알고 있었다.

“대표님의 첫사랑이 귀국했는데 어제 교통사고 당해서 대표님이 밤새 옆에 있어 줬대요.”

근무 상황을 점검하러 온 관리사무소 팀장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린 씨는 3년 동안 기회도 잡지 못하고. 정말 아쉽네요.”

“아쉬울 건 없죠. 아린 씨도 재벌 남자 친구가 있잖아요.”

경비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랑 결혼할 생각 있어요?”

도아린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날 늦은 밤, 배건후와 싸우다가 그만 발을 삐끗하고 말았다. 배건후는 그녀를 안고 집에 데려다준 후 다시 휙 나가버렸다.

마침 당직을 서던 관리사무소 팀장이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후 팀장은 계속 도아린이 배건후에게 꼬리를 쳤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아린은 결국 배건후와 같은 옷을 입은 남자 친구라고 해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관리사무소에 그 소문이 퍼지고 말았다. 재벌 집의 도우미가 재벌 2세를 만난다고 하자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 남자 별로라서 헤어졌어요.”

도아린이 직접 나서서 말했다.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는 없어요. 알아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야죠. 재벌 2세랑 결혼하는 건 아린 씨 복이에요.”

관리사무소 팀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위로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청소나 하는 도우미 주제에 뭘 그렇게 따지냐고 비웃고 있었다.

그때 덜컥하고 문이 열렸다. 도아린은 걸어가면서 관리사무소 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별로라고 한 건 말 그대로 정말 별로란 뜻이에요. 평소에는 기고만장하다가 침대 위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하는 남자를 만나서 뭐 해요?”

“으악!”

도아린이 돌아서자마자 하마터면 마주 오는 자동차와 부딪힐 뻔했다.

맞춤 제작한 은색 마이바흐였는데 먼지 하나 없는 앞 유리 사이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배건후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고 날카롭고 그윽한 두 눈으로 도아린을 빤히 째려보고 있었다.

Related chapters

  • 또 한 번의 거절   제2화

    “대표님!”배건후의 차를 알고 있는 경비원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대표님, 아린 씨도 자주 농땡이 치는 건 아니에요. 근데 다른 도우미로 바꾸고 싶다면 소개해드릴게요...”관리사무소 팀장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배씨 가문의 도우미들은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썼다. 게다가 월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재벌 2세를 만날 기회가 많기에 도아린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리스마는 모두를 압도해 버렸다.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연성의 7월은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사람들은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1분 후, 유리창이 서서히 내려오면서 배건후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할 일 다 하고 여기서 수다질이야?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꺼져.”관리사무소 팀장은 놀란 나머지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고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배건후의 언행은 상업계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가 관리사무소를 내쫓는다면 관리사무소는 연성에서 더는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배건후의 날카로운 시선이 도아린에게 머물렀다.“타.”“난 할 일이 있어서요...”그러자 배건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배건후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차 문 쪽에 최대한 붙어 앉았다.마이바흐가 맨션을 나간 후 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평소에는 기고만장하다가 침대 위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하는 남자?”“...”도아린은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배건후가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이거 무슨 뜻이야?”도아린이 힐끔 쳐다보니 그녀가 작성한 이혼 합의서였다.“이혼하고 싶어요.”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숨 막힐 듯이 답답해졌다.운전기사 조수현은 당장이라도 도망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3화

    전화를 받으면서 도아린을 쳐다보는 배건후의 두 눈에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 관리사무소 사람마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무슨 자격으로 이혼 얘기를 꺼내겠는가?도아린은 배건후가 보는 앞에서 더러운 장갑을 팀장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팀장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노트와 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관리사무소 팀장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요! 날 내쫓는다고 해도 당신은 에이트 맨션에 못 들어가요. 배건후 씨는 여우같이 교활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당신도 여우 같긴 한데 나이가 너무 많아요!”어차피 곧 떠날 거라 참고 싶지 않았고 이참에 배건후를 한 방 먹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배건후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도아린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물을 따라 마셨다. 방문이 열려있었는데 무언가가 현관의 거치대에 놓여있었다.짐 정리를 다 마치고 나와서야 거치대에 놓여있는 물건이 그녀의 휴대전화라는 걸 알았다.‘내가 휴대전화를 건후 씨 차에 떨어뜨려서 다시 들어온 건가?’이번에 도아린은 약삭빠르게 차고에 있던 카이엔을 몰고 나갔다.카이엔은 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배건후가 준 예물 중 하나였다. 평소 그녀는 별로 외출하지 않았고 또 연성에 차가 막혀 계속 차고에 가만히 세워두기만 했다.배건후의 재산을 나눠 가지진 못하더라도 이 차는 혼전 재산이라 그녀의 것이었다. 무뚝뚝하고 매정한 남자를 곧 떠날 거란 생각만 하면 도아린은 기분이 너무 좋아 액셀을 미친 듯이 밟았다.운전하는 중에 절친 소유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를 보고 걱정돼서 전화한 것이었다. 도아린이 힘들어할까 봐 기분도 풀 겸 술 먹으러 가자고 하자 도아린은 모든 걸 정리한 다음에 다시 축하하자면서 거절했다.아파트 청소를 마치긴 했지만 도아린은 처음 자는 침대에 눕기 전에 침구청소기로 청소하는 버릇이 있었다. 침대 위에서 청소기를 돌리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갑자기 들어왔다.“문 한참이나 두드렸는데 못 들은 것 같아서 문 열고 들어왔어요.”도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4화

    “걔가 작정하고 접근하지만 않았어도 오빠는 걔랑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배지유가 화를 내며 말했다.“엄마가 아무리 좋은 한약을 먹여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오빠는 그 여자랑 애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데.”손을 닦으면서 나오던 도아린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다시 뒷걸음질 쳤다.“오빠, 난 친구들 만나도 오빠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못 하겠어요. 저런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 오히려 망신이에요. 보미 언니 이젠 톱스타가 됐으니까 엄마도 더는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오빠가 말만 하면 내가 엄마한테 말해줄게요.”“보미 지금 한창 일할 때야...”배건후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이혼을 동의하지 않은 건 손보미가 내연녀라는 욕을 먹을까 봐서였다. 배건후는 언제든지 항상 손보미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도아린은 코끝이 찡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의 존엄 따위는 이미 배건후에게 짓밟혀서 가루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대로 나간다면 체면마저 모두 잃을 것 같았다.“으악!”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도아린과 부딪히고 말았다. 도우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사모님, 손이...”“괜찮아요.”도아린의 손이 뜨거운 물에 데어 시뻘겋게 됐다.그때 배건후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주방으로 끌고 가서 찬물로 헹궜다.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던 배건후는 도아린이 데고도 찍소리도 하지 않자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내가 널 터치하지 않는다는 걸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어?”“...”도아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사실 그녀는 말한 적이 없었다. 배지유가 에이트 맨션에 갔을 때마다 배건후가 없는 걸 보고 배건후가 도아린과 함께 살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것이었다.거의 사실이나 다름없었기에 도아린은 아니라고 설명하지도 않았다.“내 말이 틀렸나요?”“난 너한테 관심이 없어.”“관심이 없으면서 왜 이혼 안 하는데요?”아무렇지 않은 도아린의 태도에 배건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담배를 꽉 쥐어 손등에 핏줄이 다 튀어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5화

    다들 잠이 든 시간이라 복도부터 문 앞까지 어슴푸레한 등이 두 개만 켜져 있었다.배건후가 현관 앞으로 나온 그때 거실 불이 갑자기 켜졌다.“이 늦은 밤에 어딜 가?”주현정이 걸어 나오면서 물었다.“무슨 급한 일이길래 아린이까지 버리고 가?”“...”배건후는 불편한 몸을 참으며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주현정은 주부로 살아왔어도 사리 분별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회사 일로 핑계를 댔더라면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그게...”배건후가 얘기하려는데 도아린이 다급하게 내려왔다.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도아린은 하도 급하게 내려오는 바람에 계단을 헛디딜 뻔했다. 내려오면서 머리를 매다가 주현정을 보고서야 발걸음을 늦추었다.“어머님, 제 동생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서 오라고 해서요.”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주현정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래? 그럼 얼른 가봐. 건후야, 운전 조심하고.”도아린은 그제야 문 앞에 서 있는 배건후를 발견했다. 그녀가 까발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는지 얼굴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배건후가 망신당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녀는 망신당하기 싫었다.“얼른 가.”주현정이 문 앞까지 나온 바람에 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배건후의 차에 탔다.“건후 씨랑 같이 갈 생각 없으니까 저 앞에서 내려주면 돼요.”“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친동생을 저주해?”배건후는 그녀가 한밤중에 집을 나오려고 핑계를 댄 거라고 생각했다.“...”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너무도 피곤했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의 남동생에게 진짜 무슨 일이 생겨도 배건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의 마음속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으니까.가는 길 내내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도아린은 택시를 잡기 쉬운 곳에서 내린 후 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갔다.“제 동생 어떤가요?”“환자분 의식 없이 3년이나 누워있어서 이젠 몸의 장기도 기능을 잃어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도아린은 몸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6화

    도아린은 홀로 쓸쓸하게 복도에 앉아있다가 응급조치를 마쳤다는 간병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도지현은 다시 한번 저승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의사는 도지현의 각 수치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도아린은 의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후 병실로 돌아와 남동생의 팔을 어루만졌다.“이모, 가서 쉬세요. 지현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요.”간병인은 도아린이 자존심이 강해서 남들에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옆에 탕비실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요.”도지현은 무릎 밑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고 허벅지 근육도 거의 다 수축해서 다리가 팔보다도 더 가늘었다.그녀보다 도지현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픈 몸 때문에 힘들어도 늘 밝았던 동생이었다.장애인 농구팀에 입단한 후에는 열심히 운동하고 생활을 공유하기도 했다. 절대 시합을 한 게임 졌다고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다. 하여 그녀는 도지현이 깨어나서 그날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말해주길 바랐다.두 팔을 다 마사지하고 나니 도아린의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저릿했다. 간병인이 와서 도지현의 몸을 닦아주었고 도아린은 옥상으로 가서 소유정의 전화를 받았다.“널 방해한 건 아니지?”“아니. 나 지금 병원이야.”도아린은 젖은 머리가 마르도록 풀어헤쳤다.“지현이...”“다시 살려냈어.”“그래.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언젠가 깨어날지도 몰라.”소유정은 그녀를 위로한 후 본론을 얘기했다.“나형욱 선생님이 또 날 찾아왔어. 네가 지난번에 수선한 자수 드레스가 엄청 마음에 든다면서 선생님 팀으로 들어오래.”나형욱은 수선 명인이었다. 그와 한 번만 손을 잡아도 몸값이 배로 뛰는 건 문제없었다. 그런 그가 도아린을 직접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건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도아린의 솜씨도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정도였다. 배건후와 결혼한 후에는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그저 손이 굳어지지 않으려고 세컨드 계정으로 일을 조금씩 받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7화

    도아린은 나형욱을 만나러 가던 길에 유명한 인삼 가게에서 고급 인삼을 들여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소유정은 전에 그녀에게 소유정의 능력을 알아준 송민혁이 야생 산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소유정이 송민혁이 연출한 작품의 OST를 따냈기에 선물하고 싶었다.도아린이 후방 주차를 하려고 절반 정도 후진한 그때 뒤에 있던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먼저 주차했다. 여성 운전자는 차를 삐뚤게 세운 후 그냥 가버렸다.결국 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차를 좀 먼 곳에 세운 다음 걸어갔다. 그런데 아까 그 여성 운전자도 그 가게에 있었다.“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점원이 열정적으로 맞이했다.“방금 들여온 백 년 된 야생 산삼 보여주세요.”“죄송한데 이미 팔렸어요. 장뇌삼도 괜찮은 게 있어요.”도아린이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됐어요, 그럼.”그녀가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도아린 씨죠?”여성 운전자가 다가왔다.“아린 씨가 운전한 그 카이엔 사실 손보미한테 선물하려던 거였어요. 차 번호도 손보미의 행운 숫자거든요. 그래서 알아요.”“...”도아린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봤다.점원은 야생 산삼을 포장한 후 종이와 펜을 건넸다.“수취인의 성함과 연락처 적어주세요. 나중에 배 대표님한테 확인해야 하니까요.”도아린은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 연성에서 야생 산삼을 살 수 있는 배 대표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여성 운전자는 팔짱을 끼고 오만한 태도로 도아린을 쳐다보았다.“청호상 후보에 오른 손보미 알죠? 배 대표님이 손보미를 위해 주문한 거예요. 연예인의 정보는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되니까 제 이름 적을게요. 전 손보미의 매니저 김지민입니다.”도아린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도, 분노한 기색도 없었고 차분하면서도 덤덤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것처럼 아팠다.손보미는 이마가 살짝 긁혔을 뿐인데 배건후는 몸조리하도록 백 년 된 야생 산삼까지 사주었다. 역시 좋아하는 여자는 달랐다.도아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8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손 키스를 날리고 웃으며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튀르키예든 동경이든 파리든 건후 씨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같이 갈게요.”배건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뚜두둑 소리가 날 정도였고 가뜩이나 차갑던 이목구비가 더욱 차가워졌다.그가 도아린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도아린이 그대로 하니까 전부 거슬렸다. 짜증이 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점원은 옆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최대한 존재감을 없애려 노력했다.배건후가 뿜어내는 냉기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내 카드 긁으려고? 안 돼.”도아린이 얼마를 쓰든 배건후는 제한한 적이 없었다. 도아린도 좋은 식자재를 사는 것 말고는 대부분 남동생의 병 치료에 썼다. 그리고 배건후가 선물한 게 많아 도아린 자신에게 돈을 쓸 일도 거의 없었다.그녀가 비상금을 몰래 챙겼다고 해도 수십억을 챙길 리가 없었다. 그에게 마구 대들었으니 그를 떠나면 얼마나 힘들지 느껴보게 할 생각이었다.도아린은 손가락으로 배건후의 가슴팍을 튕겼다. 그러자 블랙 카드가 순식간에 그의 양복 주머니에 들어갔다.‘내가 진짜 기생충인 줄 아나.’그저 그 돈을 건드리기 싫었을 뿐이지, 한 푼도 없는 거지는 아니었다. 이번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했다.도아린은 가방에서 평범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이 카드를 긁자 컴퓨터 화면에 지불 성공이라는 글씨가 빠르게 나타났다. 그녀는 점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후 휙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배건후는 이까지 바득바득 갈았다.‘몰래 이렇게나 많은 돈을 숨겼다는 건 이혼하려고 진작 준비했다는 거네.’차 안으로 돌아온 후 도아린은 흥분됐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마치 공기 빠진 공처럼 축 처져 의자에 앉아있었다.카드 한 번 긁었다고 거의 전 재산을 탕진했다. 조금 전 홧김에 한 행동을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장뇌삼도 귀하긴 했지만

    Last Updated : 2024-09-10
  • 또 한 번의 거절   제9화

    도아린은 밤새 푹 자고 이튿날 맑은 정신으로 나형욱을 만나러 갔다.소유정이 가는 녹음실이 그녀의 목적지와 한 건물이라 두 사람은 도착한 후 A 구역과 D 구역으로 흩어졌다.“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엘리베이터 눌러주실래요? 7층 가려고요.”“네...”프런트 직원은 절반 정도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신작 오디션은 D 구역입니다.”요 며칠 손보미가 맡았던 역할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이쪽으로 잘못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프런트 직원은 도아린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오늘 이분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 같아. 분위기도 좋고 메이크업을 살짝만 해도 성형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겠어.’도아린이 덤덤하게 웃어 보였다.“전 LH 스튜디오로 가려고요.”프런트 직원은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태운 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어리둥절해 했다.‘LH 스튜디오는 옷을 수선하는 곳인데... 대부분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중년이 많고. 근데 방금 그 여자는 젊고 또 예뻐. 그렇다면 무조건...’“천장에 뭐가 있어요?”한 잘생긴 남자가 그녀 뒤에서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샹들리에에 붙어있는 크리스털을 떼려고요?”빌딩의 대표 성대호가 밖에서 들어왔다. 성대호는 유머러스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라 직원들이 많이 따랐다.“대표님이 샹들리에를 스와로브스키로 바꾸면 그때 뗄게요.”“잊지 않게 노트에 적어야겠어요...”성대호는 농담으로 어린 여자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뒤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바로 대표의 카리스마를 뽐냈다.“나형욱 씨한테 전화해서 귀한 손님이 온다고 알려줘요.”“나형욱 씨 귀한 손님은 이미 올라갔어요.”“올라갔다고요?”성대호가 화들짝 놀랐다.“어떻게 생겼어요?”“엄청 예쁘고 분위기 있고 또 교양도 있는 여자였어요.”성대호의 두 눈에 교활함이 스쳤다. 돌아선 순간 배건후의 싸늘한 얼굴을 보고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내가 말할게요.”전화가 단번에 연

    Last Updated : 2024-09-10

Latest chapter

  • 또 한 번의 거절   제472화

    “그건 안돼.”강홍련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안민아 씨, 전에도 하마터면 우리 아들의 명예를 망가뜨릴 뻔했었죠. 그런데 오늘 또 똑같은 수법을 쓰는 거예요? 손보미와 배지유는 소리를 듣고 문을 두드린 거예요. 원하지 않았다면 왜 처음부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가요?”“숨어 있으면서 도아린이 찾는 데도 잠자코 있었죠. 그런데 뭐예요? 우리 아들한테 책임질 일까지 해놓고 모른 척하는 거예요? 사람들한테 들켰다고 지금 우리 아들한테 다 뒤집어씌우냐 말이에요?”강홍련의 말솜씨에 안민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한편, 안준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손에 든 찻잔을 꽉 움켜쥐었다. 양측이 심하게 다툴 때, 강재희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정국의 빚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예요?”거실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날뛰던 강홍련은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면서 안절부절못하였다.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던 안준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당신들 지금 내 딸한테 그 빚을 갚으라고 할 생각인 거야? 이러고도 우리 안씨 가문을 모해하지 않았다니...”강홍련이 뭐라 변명하려 할 때 강재희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아섰다. “도유준이 성을 바꾼다면 도정국의 채무는 그와 무관해요. 그리고 언니가 이리 결혼도 안 한 신분으로 성이 다른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건 보기에도 안 좋아요.”현재 강씨 가문은 강태식과 그의 자식들이 절대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강재희가 딸이긴 해도 맏이로서 이미 회사 일을 많이 인계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강재희의 뜻이 곧 강태식의 뜻이기도 했다. 강홍련은 내키지 않았지만 도유준은 내심 기뻤다.도정국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되었고 또한 강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으니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강씨 가문에서 준비한 예단도 받을 수 있고 안민아를 괴롭히고 도아린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난 좋아요.”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471화

    안민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고 그녀는 바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한 계집애.”“아빠?”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목과 다리에 난 자국들을 가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가릴 수가 없었다. 안준휘가 앞으로 한 발짝 더 다가와 뺨을 치려는 그때, 도유준이 그를 막아섰다.“민아와 저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민아랑 결혼하고 싶습니다.”“아니요. 난 싫어요... 난 원하지 않았어요.”고개를 가로젓던 안민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도아린을 바라보았다.“차를 마시고 나서 몸이 안 좋았어요. 언니가 쉬러 가자고 했는데 일어나보니...”그 말에 안준휘는 독살스럽게 도아린을 노려보았다. 도아린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는데 그건 강재민이 그녀를 위해 준비해 준 것이었다. 미리 양파즙을 발라놓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자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마신 차는 민아가 나한테 준 거예요. 똑같은 차를 마셨지만 난 아무 일 없었고요.”그녀는 기억을 되짚어 보는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 “민아가 화장실에서 돌아온 뒤, 차에 감귤향이 난다고 하는 말에 민아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어요.”안민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도아린이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아차리고 화장실을 간 사이 찻잔을 바꿔치기 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손보미 배지유와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한편, 강씨 가문에서 이런 일이 생긴만큼 좀처럼 나서지 않던 강태식도 그 자리에 나타났다.강재희가 강씨 가문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안민아 씨, 도유준이 당신을 강요한 건가요? 아니면 두 사람이 서로 원해서 생긴 일인가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대답해요.”“도유준이 강요한 거라면 경찰에 신고하죠. 우리 가문은 절대 감싸고 돌지 않을 거예요.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면 도유준이 우리 가문의 먼 친척이긴 해도 우리 가문에서 예단을 준비하도록 할게요. 절대 안민아 씨를 섭섭지 않게 할 거예요.”안민아

  • 또 한 번의 거절   제470화

    “이 사람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온 거야.”몸을 감싸고 싶었지만 이불이 안민아의 몸을 감싸고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아예 안민아의 치마를 잡아당겨 앞을 막았다. 손보미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돌리고 서둘러 배지유를 데리고 발길을 돌렸다.“이제 그만 나가자.”그러나 도아린이 어찌 그들을 그냥 이대로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 모해를 하려다가 실패하니까 도망갈 생각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민아 봤어요? 발꿈치가 닳아서 하인에게 연고 좀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이불 밖으로 드러난 발이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손보미는 고개를 저었다.“글쎄. 다른 데 가서 찾아봐.”도아린이 길을 비켜주길 바랐지만 도아린은 문 앞에서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방에 있는 여자가 나라고 생각한 거야? 또 날 모함할 생각이었네?”손보미는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휠체어로 도아린을 날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배지유는 다들 말이 없자 먼저 입을 열었다.“도아린 씨 핸드폰이 방안에서 울렸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멋대로 사람 오해하지 말아요.”“내 핸드폰은 사촌 동생이 가지고 있어요. 핸드폰이 방에 있다는 건 민아도 이 방에 있다는 뜻인데.”얼굴이 싸늘해진 그녀가 경계에 찬 눈빛으로 손보미를 쳐다보았다. “지난번에 날 음해하려다가 실패하니까 이젠 내 여동생한테까지 분풀이를 하는 거야?”“나 아니야.”말을 하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휠체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지난번에도 날 모욕했었잖아. 도대체 왜 또 이러는 거야? 내가 건후 씨랑 결혼하게 되니까 질투하는 거야?”차갑게 콧방귀를 뀌던 도아린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서랍장에 던져버렸다.“재민 씨, 내 핸드폰으로 다시 전화 걸어줘요. 핸드폰에 민아 연락처 있으니까 어디 한번 전화해 보죠. 민아를 찾지 못하면 오늘 누구도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요.”배지유는 급한 마음에 손보미를 돌아보았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469화

    “아린 씨는요?”“발이 아프다고 하인에게 게스트룸으로 안내해달라고 한 것 같아요.”말을 하던 손보미가 배지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너도 휠체어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어. 가서 좀 쉴래?”“그래요.”세 사람은 이내 게스트룸으로 향했고 하인이 문을 열 때, 건너편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보미는 이내 배지유의 귀를 틀어막았다. 혹여라도 배지유가 나쁜 물이 들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한편, 안색이 굳어진 강재민이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뜨겁게 달아오른 방안의 두 사람은 노크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였다.“아린 씨. 아린 씨, 어디 아픈 거야? 의사라도 불러줘?”그 누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도아린이라고 한 적이 없지만 손보미는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기에 바빴다. 얼굴이 한껏 어두워진 강재민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고 도아린의 전화가 방안에서 울리기 시작했다.손보미는 애써 득의양양한 표정을 감추고는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 강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다는 듯이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아린 씨, 문 좀 열어봐. 걱정돼 죽겠어. 건후 씨랑 이혼은 했지만 그렇다고 강씨 가문에서 이런 사고가 나면 안 되는 거잖아.”강재민의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문고리를 잡고 있는 힘껏 당겼지만 안에서 문을 잠가버린 상황이었다.“열쇠 가지고 와요. 얼른 열쇠 가져오라고요.”손보미가 하인을 향해 소리쳤다. 돌발상황에 놀란 듯 멍해 있던 하인은 손보미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자리를 떴다. 이때, 강재민이 두 발짝 물러서더니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쾅!방문이 바닥에 쓰러지고 침대 위 뒤엉켜 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몸이 굳어졌다.“아악.”여자는 재빨리 이불을 집어 들고 자신을 감쌌다. 손보미는 앞으로 다가가 남자의 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도유준 나쁜 자식.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린 씨는 네 누나인데. 누나한테 어떻게 이런 짓을 해.”“우리 누나 아니야.”그가 손보미의

  • 또 한 번의 거절   제468화

    안민아는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랐다. 한 잔 마시고는 또 한 잔 따라 마셨다. 이번에는 도아린의 말처럼 달콤한 맛이었다. 설마 내가 찻잔을 잘못 집어 든 걸까?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지정된 찻잔을 언니한테 건네줬었는데...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웠고 점점 식은땀이 나고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간 거야?”도아린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안민아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그냥 좀 더워서요.”“그래? 몸이 불편하면 재민 씨한테 말하고 먼저 돌아가자.”도아린이 서재로 통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니에요.”급히 도아린의 손을 움켜쥐던 그녀는 재빨리 손을 뺐다. 그녀는 눈 밑의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발을 들어 도아린에게 보여주었다.“아침에 정원을 구경하다가 뒤꿈치가 닳았어요. 반창고 좀 가져다줄래요?”도아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애원하는 그녀의 눈빛에 도아린은 결국 하인에게 부탁했다. ...“젠장, 사람을 어떻게 이리 깔볼 수가 있는 거야?”도유준은 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들어와서 밥도 먹지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남은 음식까지 내놓지 않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들도 어엿한 강씨 가문의 일원이고 구걸하는 거지가 아닌데 말이다. “그만해. 힘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쓰란 말이야.”강홍련은 화장대 거울을 보며 이마에 반창고를 붙였다.“나중에 또 뭐요? 화장실도 못 가는데 무슨 일을 더 해요?”문을 향해 발을 걷어차고는 그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상처를 처리한 뒤, 강홍련은 뒤돌아서서 도유준을 쳐다보았다. “도아린이 그 일을 알고 있는 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도아린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 아주 처참히 짓밟아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야 해.”주먹을 불끈 쥔 채 이를 악물던 그가 음흉하고 흉악한 눈빛을 보였다.도아린을 짓밟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

  • 또 한 번의 거절   제467화

    강씨 가문의 남매는 긴 테이블의 양 끝에 앉았고 손보미는 배지유와 한쪽에, 도아린은 안민아와 한쪽에 앉았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았고 분위기도 꽤 좋은 편이었다. 잠시 후, 하인이 들어와서 강재희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강재희는 도아린을 힐끔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정신을 잃었으면 그냥 돌려보내요. 문 앞에서 얼쩡거리게 하지 말고.”“네.”한편, 하인에게서 그 일을 듣고도 손보미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올 때 보니까 강홍련 모자가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데 무슨 일인가요?”“새언니한테 미운털이라도 박힌 거예요? 연성에서도 그러더니 해남까지 와서도 날뛰는 건 마찬가지네요.”얼핏 들으면 강홍련 모자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도아린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맞장구를 치는 와중에도 도아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안민아를 향해 물었다.“새우 먹을래?”갑작스러운 물음에 안민아는 당황한 얼굴이었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는 다시 급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테이블 위에 있는 새우는 한 사람당 한 마리씩이었고 그녀는 이미 한 마리 먹었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걸 언니가 눈치챈 걸까?“내 거 먹어.”도아린은 자신 앞에 있던 새우를 안민아에게 건네주었고 안민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손보미가 팔꿈치로 배지유를 건드리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도아린을 쳐다보았다.“몸매가 좋은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아린 씨 식단 조절 하나 봐?”“하긴 건후 씨가 식단 조절하니까 그렇지. 건후 씨 식단 같이 먹으면 몸매가 더 좋아질 거야.”손보미는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은 일을 참 잘한다. 그녀의 빈정거림에도 도아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배건후의 얘기만 나오면 손보미는 몸이 근질근질하였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어제 보미 씨가 산 물건들을 건후 씨가 안 받겠다고 하던데. 결국 어떻게 처리했어?”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보미의 손에 힘이

  • 또 한 번의 거절   제466화

    “허튼소리 하지 마. 지금 나와 정국 씨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바닥에서 일어난 강홍련은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다리가 저려 비틀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도씨 가문으로 들어온 후, 엄마는 몇 번이나 임신한 적 있었죠. 그러나 뱃속의 아이가 여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정국은 엄마한테 아이를 지우길 강요했었어요. 그러다가 엄마가 지현이를 임신하였고 도정국은 임산부한테 좋다는 이유로 대량의 보양식을 엄마한테 먹게 하였고 결국 뱃속의 아이가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많이 컸었죠.”“출산 당일,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도정국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거부하였고 결국 최적의 치료 시간을 놓친 탓에 엄마는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하게 되었어요.”도아린은 싸늘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 강홍련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모든 것들을 당신이 도정국한테 시킨 거죠?”강홍련이 아니라면 남자인 도정국이 어찌 아이를 낳는 위험에 대해 이리 잘 알 수가 있었겠는가? 두 사람은 정은채를 죽이고 정은채의 재산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정은채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잘 키우려 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지던 강홍련은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혔고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왔다. 힘겹게 일어서는데 핏방울이 얼굴을 타고 눈 속으로 흘러 들어가 참기 힘들 정도로 따끔거렸다.이때, 도유준이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면서 도아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무슨 증거가 있어 이러는 거야?”도아린의 차가운 시선이 강홍련에게서 도유준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를 치켜들고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하더니. 지현의 다리가 어떻게 부러졌는지 지현이가 왜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도유준 넌 잘 알고 있잖아.”손에 힘이 풀리는 탓에 강홍련은 또 바닥에 주저앉았고 계단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었다. 오른쪽과 왼쪽 이마에 상처가 생겼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또 한 번의 거절   제465화

    문으로 가정부들이 드나들면서 강씨 가문의 전체 사람들이 그들의 추태를 보게 되었고 앞으로 강씨 가문에는 그들의 지위가 사라지게 된 셈이다도아린이 아버지가 공개 사과를 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강홍련 같은 먼 친척 한 명쯤은 체면이 깎여도 상관없었다.강씨 가문의 뒤뜰에는 아카시아 꽃을 넓게 심었고 작은 꽃봉오리가 꽃을 피워 공기 속에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안민아는 일부러 늦게 걸으면서 셀카를 몇 장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때 위치까지 설정했다.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도아린과 강재민은 멀리 가 있었다.도아린은 오늘 옅은 색의 몸에 딱 붙는 셔츠에 진한 색의 청바지를 입었고 가방을 가로 메고 있었다. 뒤에서 봤을 때 허리가 유독 가늘어 보였고 힙업이 돋보였다.안민아는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았다. 그녀는 도아린보다 살집이 적었지만, 몸매가 좋지는 않았다.남자가 아닌 자신이 봐도 도아린의 몸매가 탐이 났다.강재민은 안민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사촌 동생은 아직 마음을 접지 않았나 봐요.”도아린은 허리를 숙여 꽃을 하나 따고는 천천히 말했다.“일을 좀 깔끔하게 처리해요. 저를 방패막이로 삼지 말고 재희 씨를 오해하게 만들지도 말아요.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어요.”강재민은 그녀의 손에서 꽃을 건네받고는 중지로 그것을 으깼다.“이혼 숙려 기간이 곧 끝나가요. 아린 씨도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도아린은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강재민은 눈썹 뼈가 튀어나왔고 눈이 깊었는데 어머니의 유전이었다.입체적인 오관은 도도한 느낌을 주었고 도아린을 쳐다볼 때 더 단호한 눈빛이었다.“엠파이어 빌딩의 고객 자료는 배지유가 준 거죠.”도아린이 말했다.“재민 씨는 진작에 배건후를 노렸던 거예요. 일부러 저에게 관심이 많은 척하는 건 배건후의 화를 돋우는 수단일 뿐이죠. 건후 씨의 사업을 빼앗고 여자까지 빼앗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다 충격을 주려는 거죠.”강재민은 한참 침묵하더니 갑자

  • 또 한 번의 거절   제464화

    “도아린,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말하는데 끼어들지 마!”강홍련은 화를 냈다. 당장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날아 나서는 절대 안 된다.“네가 도정국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가씨가 준 돈도 손을 대지 마!”강홍련은 당당하게 말했다.“나는 정국 씨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낳아줬고 십몇 년을 함께 살았기에 사실혼 사이야. 아가씨가 준 돈은 반드시 내가 관리해야 해!”도아린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에 강홍련은 소름이 끼쳤다.그녀는 못마땅하게 도아린을 째려보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홍련을 쳐다보았다.“아가씨, 정국 씨는 도아린의 함정에 빠져 빚을 지게 된 거예요. 정국 씨에게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면 반드시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할 거예요!”강재희는 강홍련이 멍청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방금 자신이 도아린의 의견을 묻는 것을 못 봤다는 말인가? 강홍련은 강재희가 불쾌해하는 것이 도아린 때문인 줄 알고 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도아린, 진씨 가문에서는 네가 허영에 눈이 먼 속물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돼서 진씨 가문에서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강재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도아린을 보며 물었다.“합의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도아린은 찻잔을 들었다. 강재희는 한참을 기다려도 도아린이 대답하지 않자 불쾌함이 더 증가했다.체면을 봐주니까 더 허세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강씨 가문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데 도씨 성을 가진 사람한테 물어서 뭐해?”강재민이 느긋하게 말했다.강재희는 강재민을 흘겨보고는 강홍련을 쳐다보았다.“당신과 도정국 씨가 사실혼 관계라면 그 사람의 채무도 두 사람의 공동채무가 되는 거죠. 당신과 도정국 씨가 함께 갚아요.”강홍련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 방금 한 얘기는...”“제가 도아린 씨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끼어들지 마세요.”강홍련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지만 강재희가 왜 도아린을 감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