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공식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고 대신 ‘윤주별’이라는 라윤주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손보미가 여기까지 온 건 남자친구가 돈 써서 띄워준 덕이잖아?][기쁨, 분노, 슬픔 다 한 표정으로 금화상 후보까지 올랐으니 라윤주 선생님이 아니라 네 금주한테 고마워해야지.][연기나 제대로 해. 괜히 갖다 붙이지 말고!]그러자 뜻밖에도 손보미가 직접 댓글을 남겼다.[윤주별 님들. 그렇게 말하면 라윤주 선생님이 슬퍼하실걸요.]헐. 도아린은 화가 치밀었다.진짜 아무나 다 이용하려고 하는구나.라윤주는 3년째 소식이 끊겼고 외부에는 그녀에 대한 전설만 남아 있을 뿐 아무도 라윤주의 상황을 몰랐다.손보미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이 라윤주를 모른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이용하는 것이었다.어쨌든 라윤주는 행운의 상징이니까 누구든 그녀와 엮이면 다 성공할 수 있으니까.그녀가 이 글을 올린 뒤, 정말로 브랜드에서 그녀에게 광고 모델을 제안했다.라윤주는 과연 행운의 상징이었다.도아린은 페이지를 넘기고 서대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손보미가 아부하는 꼴, 진짜 역겹다.]서대은은 디자인 도면에서 고개를 들며 차갑게 웃었다.[아부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 남는 게 없어.]도아린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예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성대호는 병원에 도착하자 깊이 숨을 들이쉬고 배지유의 병실로 들어갔다.“지유야, 너 바다 진주 갖고 싶다 하지 않았어?”그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6억 주고 사 왔어.”배지유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 상자를 들어 문밖으로 던져버렸다.“싫다고 했잖아!”“...”성대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서대은의 비서가 상대방이 팔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좋은 말로 설득해 겨우 바다 진주 한 쌍을 살 수 있었다.하지만 배지유는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던지며 그의 호의를 무시했다.그녀는 입을 가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성대호는 한숨
방우진은 병원 로비에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몇 층이야?][8층.]그는 입에 물었던 이쑤시개를 뱉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8층은 조용했다. 끝쪽 병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더니 키가 작은 중년 여자가 빠르게 나왔다.“이쪽으로 와.”여자가 그를 테라스로 안내했다.방우진은 짜증 난 표정으로 뒤따랐다.“그 영감탱이가 죽자마자 일자리를 구한 거야?”여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방우진은 그것을 단숨에 낚아채고는 손에 침을 바르고 빠르게 돈을 세었다.“이것밖에 안 돼?”“지난달 내가 아파서 며칠 동안 수액을 맞았잖아...”“오백 원짜리 감기약을 먹으면 되지 무슨 수액이야? 돈 낭비하지 마!”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불안하게 비볐다.“다음 달에는 좀 더 벌 거야. 이번 고용주는 좋아. 월급도 많고 식사도 챙겨주거든.”방우진은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돈 좀 뜯어갔다고 서러워하지 마. 내가 상가를 손에 넣은 뒤 임대료를 받으면 엄마도 남은 인생 똥 치우며 살 필요 없어, 알았지?”그가 돌아서려 하자 여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우진아, 너 출근하기 싫으면 엄마가 열심히 벌게. 힘들어도 괜찮으니까 우리 제발 나쁜 짓은 하지 말자.”방우진은 여자를 밀쳐버렸다.“위선 떨지 마. 엄마가 나쁜 짓 안 했으면 우리 누나가 왜 죽었겠어?”방우진은 돈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엄마가 지금 겪는 고통은 그때 저지른 죗값을 치르는 거야! 내가 엄마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그 말을 남기고 그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를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도아린은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꿈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탐욕스럽고 흉악하고 분노에 찬 시선은 확실히 보였다.그녀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갑자기, 손목이 꽉 잡혔다.키
퇴근 시간이 되자 그 직원은 대표와 사모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걸 보고 서둘러 일어나 맞이할 준비를 했다.“오뎅 맛있었어요?”도아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대표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대체 맛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우정윤의 신호를 받고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근무 시간에는 음식을 먹으면 안 돼요.”“아, 그럼 먹지 마세요. 차가워지면 배탈 나요.”배건후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차가운 음식이 배탈을 일으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오뎅을 안 먹었다고 불평하는 도아린이 어이없었던 것이다.차별 대우를 받은 누군가는 기분이 좋지 않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도아린은 그를 따라잡으려고 작은 걸음으로 뛰어갔다.다리 긴 게 뭐가 대단해!매너도 없는 주제에!집에 갈 줄 알았는데 배건후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주현정은 방금 잠들어 두 사람은 방해하지 않고 배지유의 병실로 향했다.배지유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말해봐.”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지유는 이불을 꼭 쥐고 빠르게 도아린을 쳐다본 후 모깃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사고였어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잠시의 침묵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배건후의 실망한 눈빛을 마주할까 봐 배지유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지금 모건 그룹은 배건후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녀는 자회사에도 발을 들이기 힘들었다.오히려 그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 버릴 가능성이 컸다.일단 연성을 떠난다는 건 육하경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배지유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오빠에게 용서를 빌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남자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차 얘기 말고, 네 몸이 어떠냐고. 의사가 뭐래?”“...”배지유의 몸이 얼어붙었다.문가에 서 있던 도아린의 눈에
도아린은 그가 나오는 걸 보고 간단히 몇 마디 한 후 전화를 끊었다.“이제 갈 수 있어요?”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배건후는 불만을 느꼈다. 차에 타고나서 배건후는 냉정하게 말했다.“소인배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하지.”도아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대충 한마디를 내뱉었다.“고집 피우는 사람이 더 혼나야죠.”차 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때릴 만큼 때렸고 욕할 만큼 했어. 지유도 잘못을 인정했는데 이제 뭘 더 바라는 거야?”‘이 말은 배지유가 다 털어놨다는 뜻인가?’배지유는 도아린을 이용해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고도 오히려 그녀를 모함하려고 했다. 하여 도아린은 이 문제를 잘못을 인정했다는 말 한마디로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배건후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아무리 뛰어나도 그 역시 결국엔 자기 동생을 감싸는 오빠에 불과한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지유 씨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렇게 쉽게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렸다.결혼 후 도아린은 배지유를 항상 챙겨주고 배지유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들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이혼을 앞두고 배지유에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지유가 아린이를 존중하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죽을죄는 아니지 않나?’교통사고를 당하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하지만 배지유가 이미 사과했는데도 도아린이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기분이 배건후 때문에 다 망쳐졌다.“수현 씨, 저는 강진 아파트로 데려다줘요.”그녀는 스튜디오로 돌아가고 싶었고 배건후와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조수현은 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슬쩍 백미러를 통해 배건후의 눈치를 봤다. 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단호히 거부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차는 갑자기 속도를 냈다.상업구를 지나가면서 건물 외부 스크린에 빅토리아
조수현은 핸들을 꼭 잡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긴장한 상태로 있었다.뒤이어 검은 구름이 드리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차는 무사히 에이트 멘션에 도착했다.도아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건후와 이렇게 지내다가는 1년은커녕 반년도 못 버틸 것 같았다. 차라리 그 4000억을 포기하고 일찍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결혼 후 살게 된 에이트 멘션에 도아린은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배건후의 강압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그냥 가게 두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마이바흐가 잔디 위에 멈춰서자 도아린이 먼저 차에서 내려 어두운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그 뒷모습은 마치 결연히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문에 들어서자마자 도아린은 가디건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그녀가 허리를 숙여 신발을 갈아신는데 목 부분의 단추가 느슨하게 풀렸다.오늘 도아린은 복숭아 모양의 브라를 입었는데 앞부분만 살짝 가려져 있었고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뒤따라 들어온 베건후는 그녀 옆에 서서 이 모든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그의 아랫배에서 갑작스레 열기가 치솟았다. 차 안에서 도아린이 한 말들이 떠오르며 불편함을 느꼈던 그는 더욱 긴장했다.모건 그룹을 맡은 이후로도 수많은 여자가 그에게 접근 해왔지만 배건후는 그 모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아린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욕망을 억누르려 애썼다.도아린은 배건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그녀의 엉덩이가 그의 다리에 살짝 닿자 베건후는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 듯했다.뒤이어 도아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님방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건후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도아린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배건후가 그녀의 뒷목을 잡아채며 말했다.“위층으로 가.”그러자 도아린은 그의 철처럼 단단한 손을 떼어내려 하며 말했다.“싫어요!
도아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배건후와의 관계를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나한테서 떨어져요! 제발 그만둬요!”“누구 만나러 가려던 거였냐고!”배건후의 눈에서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무서웠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답을 요구할 때면 그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벽과 배건후 사이에 갇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배건후가 다시 입을 맞추려 하자 도아린은 그의 이마를 세게 들이받았다.“할게요! 해줄게요! 하지만 이혼 후에 저한테 20억 더 주면요!”두 사람의 숨결이 얽혔다. 배건후의 가슴이 들썩였고 그의 눈빛엔 조롱이 섞인 차가운 기운이 어려 있었다.“20억? 네가 뭔데? 대세 연예인이야, 대단한 사람이야, 아니면 나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도아린, 너한테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억울한 마음이 든 도아린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똑같이 되받아쳤다.“건후 씨의 그 거칠고 서툰 기술이랑 내 병원비 생각하면...”이러면서 도아린은 조금 전 배건후에게 물린 자신의 입술을 보여주었다.“20억은 우리가 그래도 3년간 결혼생활을 한 정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거예요. 안 그럼 200억 원을 줘도 절대 안 돼요!”도아린의 조롱에 배건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가에는 냉정한 웃음이 맺혔다.“상처가 다 나으니까 잊었나 보네. 아직도 감히 대들어?”도아린은 그를 세게 밀어내며 냉소를 지었다.“상처가 나아도 흉터는 남아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대드는 거 말인데... 다른 데서 못 대들면 말로라도 해야죠.”만약 도발이 효과가 있었다면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벌써 배건후를 정복했을 것이다.그녀는 지난 3년 동안 낮추고 기회를 노리며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배건후는 항상 절대 선을 넘지 말라고 도아린을 경고했다.그러니 이제 와서 도아린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손보미 씨가 깨끗하게
“엄마, 난 배씨 가문 딸이에요. 다들 나를 떠받들어주기 바쁜데 어떻게 문제가 생기겠어요?”배지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내가 새언니 기분 나쁘게 할까 봐 걱정하는 거죠?”“네 새언니 성격 너도 잘 알잖아. 네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너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야.”그러자 배지유는 못마땅한 듯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오빠는 아직도 안 오지? 연회에 참석하려면 여자는 화장도 해야 한다는 걸 모르나?”“회사에 일이 많아서 그래. 듣기로는 엠파이어 2차 프로젝트의 입주 문제에 문제가 생겼대.”배지유의 눈이 순간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주현정이 눈치챌까 봐 그녀는 급히 말했다.“내려가서 오빠 기다릴게요.”그녀가 상대에게 보낸 자료는 바로 점포들의 정보였다.이 일류 브랜드들은 모건 그룹과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아무 능력 없는 사람이 이들을 빼앗아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그녀를 위협한 건달 역시 그럴 힘이 없었고 단지 그녀의 약점을 이용해 점포 하나를 얻으려는 것뿐이었다.별일 아닐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인 배지유는 배건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지금 어디예요? 지금 이게 몇 시인데...”“가고 싶으면 기다려. 잔말 말고.”기분이 나빴던 배건후는 배려 없이 말했다.마이바흐가 병원 앞에 도착하자 배지유가 웃는 얼굴로 달려와 차 문을 열었다. 그러나 도아린을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빠, 난 뒷좌석에 앉을래요. 다쳐서 안전벨트를 맬 수가 없거든요.”배건후는 차갑게 말했다.“출발해.”배지유는 어리둥절해졌다.그때 도아린이 차에서 내려 차 앞쪽으로 돌아가 조수석에 탔고 배지유는 속으로 기뻐하며 얼른 뒷좌석에 올랐다.도아린이 아직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배지유는 재촉했다.“기사님, 빨리 가요.”도아린은 배건후가 자신을 차갑게 쳐다보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그를 무시했다.모건 그룹과 협력하는 드레스샵에 도착한 후 배지유는 미리 세워둔 계획을 실행했다.
“결혼 생활에서 어려운 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이 아니라 시누이와의 사이도 있죠.”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속으로 생각했다.“보세요. 저렇게 애원까지 하는데 새언니는 아무런 반응도 없잖아요. 밖에서조차 체면을 안 세워 주는데 집에서야 오죽하겠어요.”비록 고객을 직접적으로 논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과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제가 나가서 차에 치여야 속이 시원하시겠어요?”곧 배지유는 드레스 자락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배건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오빠...”배건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배지유의 외모는 단정하고 피부도 고운 편이었지만 노란빛을 띤 피부 때문에 보라색 드레스가 얼굴을 더 칙칙하게 만들었다.드레스 자체는 화려했지만 그녀의 나이와 맞지 않았다.반면 도아린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검은색 미니 드레스를 골랐다.그녀의 하얀 팔과 다리는 조명에 비쳐 마치 도자기처럼 빛났다.배건후는 도아린에게서 시선을 떼며 살짝 찡그렸다.“무슨 일이야?”“오빠, 나 도와서 새언니한테 잘 말해준다면서요... 아무것도 안 말한 것 아니에요?”배건후는 어이가 없었다.“내가 잘못한 건 알아요. 말로 사과해도 소용없어서 내 용돈으로 새언니한테 줄 귀걸이 한 쌍을 샀어요.”배지유는 벨벳 상자를 배건후에게 내밀며 말했다.“새언니가 내가 준 귀걸이를 연회에서 착용해야 진정으로 용서받았다는 뜻이 될 거예요.”“드레스에 맞춤 장신구가 이미 정해져 있어.”배건후가 담담하게 말했다.“알아요. 목걸이랑 크라운이 있잖아요. 새언니가 먼저 고르면 난 나중에 고를게요.”배지유는 억울하지만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귀걸이 한 쌍뿐이라 화장하는 데는 문제 없을 거예요.”배지유는 비취 팔찌를 선물했다가 루비 목걸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그러니 도아린이 이 귀걸이를 받아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그녀가 곤란하지 않게 될 수 있었다.배건후는 도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유 마음이니까 받아 줘.”
“그럼요.”도아린은 오늘 회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그녀는 한 비서에게 전화와 프로젝터를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곧 대형 스크린에 배건후가 장수현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타났다.변호사로서 의뢰인이 유언장 같은 문서를 작성할 때, 분명 녹화도 요구했을 것이었다.장수현에게 모든 것을 전달한 후, 배건후의 시선이 카메라로 향했다.그의 눈빛은 깊고 날카로웠으며 자세는 단정하고 위엄이 넘쳤다. 그저 영상 속 모습만으로도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압박감을 느꼈다.주현정은 주먹을 꽉 쥐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더 이상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도아린은 제 전처입니다. 나는 도아린 씨가 모건 그룹을 잘 이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도아린 씨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저를 의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번 임명은 변경되지 않으니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사직서를 제출하세요!”일부 사람들은 도아린의 대표 승임을 저지하기 위해 회사를 협박하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었지만 배건후의 말을 들은 후, 그들은 도리어 잠시 망설였다.그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사직을 한다면, 그것은 회사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었다.가벼운 처벌로는 모건 그룹에서 영원히 일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심할 경우 업계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어려워질 것이다!그 누구도 자신의 경력을 걸고 이런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었다.모두가 망설이면서도 자신들의 자리를 잃는 것에 불만을 가진 채, 도아린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도아린은 세 개의 서류를 꺼내 민철홍, 신 대표, 그리고 다른 책임자에게 각각 전달했다.“모건 그룹은 배 대표 혼자만의 회사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여러분은 제가 회사를 망치고 여러분이 고생해서 쌓아온 기반을 무너뜨릴까 봐 걱정하시는데,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그녀는 책상
민철홍은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며 대답했다.“네, 다 준비됐습니다!”대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길을 터주며 주현정과 도아린이 대형 홀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회의실 안에서, 도아린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경영진을 살펴보다가 한 사람의 부재를 눈치챘다.‘우정윤!’그는 특별 보좌관으로 새로운 경영진과의 연계를 담당했어야 했고 사직했다고 해도 대행 총괄인 신 대표가 그를 쉽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해남에서 도아린이 장수현을 만났을 때도 우정윤은 나타나지 않았다.‘어디에 있는 걸까?’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써서 일북에게 전달했고 일북은 확인 후 바로 회의실을 나갔다.“모두 모였네요, 이제 발표하겠습니다.”주현정이 마이크를 켜고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알다시피, 배 대표가 교통사고를 당해 일정 기간 요양 중입니다.”“이 기간 동안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은 많지만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어제 민 사장님께서 경영진을 대표해 배 대표를 찾아갔습니다.”테이블에 앉아 있는 임원들의 시선이 모두 민철홍에게 집중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의 표시를 보였다.“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배 대표는 본인이 보유한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도아린 씨에게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주현정이 도아린에게 손을 내밀자, 도아린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일어섰다.회의실은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모두가 상황을 이해한 후, 눈앞의 여자가 바로 배건후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임을 깨닫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일부는 도아린이 이 직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이들은 이 결정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준다고?”“아니면 강요당한 것일까? 혹시 뭔가 음모가 숨어 있는 게 아니야?”수군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도아린은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 모습을 본 주현정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더욱 확신했다.‘배지유가 도아린 절반만 닮았어도...’그녀
집에 돌아온 후, 도아린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뒤 피곤함에 몸을 맡기며 잠에 들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사고가 나던 날로 돌아갔다. 구급차에 누워 있는 자신과,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며 귀에 대고 속삭이는 배건후의 모습이 보였다.하지만 배건후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고 그녀는 배건후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눈을 뜰 수 없었다.갑자기 도아린은 비명처럼 낮게 소리치며 꿈에서 깨어났다.그때 옆 방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일북은 그녀의 안전을 위해 가장 가까운 방에 있었지만 방 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악몽에서 깨어난 도아린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쾅!번개가 치고 그 뒤로 낮게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도아린은 발코니로 가서 창문을 닫으려다 갑자기 아래 전봇대 근처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남자는 검은 코트를 입고 야윈 체격을 감췄으며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그는 깊게 한 모금 들이킨 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담배꽁초를 꺼내 꾹 눌러 끄고는 다시 걸어갔다.쾅!다시 번개가 치자 그 검은 그림자는 밤의 어둠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도아린은 창문을 확 열고 머리를 내밀었지만 그 남자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그는 약간 다리를 절뚝거리는 듯 보였고 크고 굵은 빗방울이 코트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괜찮으세요?”일북이 소리를 듣고 방으로 다가왔다.“혹시 돌아오는 길에, 집 아래에서 사람 본 적 있어?”도아린이 급히 물었다.일북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예, 나이 든 남자가 있었어요. 전화하면서 사투리 쓰고 있었어요.”‘나이든 남자?’배건후는 원래 연성 출신이라 가끔 그 지역 특유의 억양을 쓸 뿐 사투리는 쓰지 않았다.도아린의 눈빛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무 일도 아니야, 아마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계속 누군가가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서.”일북은 방으로 돌아갔다가 이내 다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도아린은 머릿속에서 그 마지막 말을 계속 반복하며 마치 차가운 바다 깊이 빠져든 듯한 무력감을 느꼈다.‘건후 씨가 죽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중에 나한테 해줄 얘기가 많다고 했잖아. 어떻게 그 약속을 어길 수 있어!’“아린아, 도아린!”주현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도아린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반응이 없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건후 씨가 죽을 리 없어요.”도아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죽을 수 있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사람이 아닌데, 나한테 할 얘기가 아직 많다고 했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감정이 격해져 주현정의 어깨를 잡고 힘껏 흔들었다.“절 속이는 거죠? 건후 씨는 살아 있어요! 혹시 얼굴을 많이 다쳐서 못 나온 건가요? 아니면 불구가 돼서? 아니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가요? 건후 씨가 죽을 리 없잖아요!”“아린아...흑흑...”두 여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도아린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마치 무언가 꽉 막힌 듯 괴로웠다. 갑자기 그녀는 주현정을 밀쳐내고 돌아서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급히 온 탓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녀는 헛구역질만 하며 숨이 가빠졌다.주현정은 급히 생수를 건넸지만 그마저도 마신 뒤 토해냈다.주현정은 도아린의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배건후와 도아린은 결혼 이후 다른 부부들처럼 알콩달콩한 결혼 생활을 보내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되자 그녀는 아들이 도아린을 소홀히 대해온 것이 마음이 아팠다.도아린이 아들을 위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현정은 위로를 받았지만 도아린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아린아, 건후는 헛되이 죽지 않을 거야! 나는 반드시 그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도아린은 온몸에 힘이 빠져 겨우 일어섰다.“어머님, 할 말이 있어요.”그녀는 눈물을 닦고 감정을 추스르며 배건후가 자신에게 남긴 두 가지 서류를 꺼내 들었다.서류를 확인한 주현정은 아들이 이런 계
“대호 오빠! 내 발... 발이 부러진 것 같아...”“입 닥쳐!”성대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멍청한 것!”그가 다시 속도를 올리자 차 밑으로 목발이 들어가며 뒷바퀴가 갑자기 튕겨 올라갔다.“악!”배지유의 종아리가 완전히 부러졌다.차 문이 열린 채로 도로를 질주하던 차는 바로 교통경찰의 눈에 띄었다. 두 대의 경찰 오토바이가 곧바로 추격하며 외쳤다.“앞차, 멈추세요! 0731차량 소유자, 즉시 멈추세요!”백미러로 잠시 상황을 살피던 성대호는 핸들을 꽉 쥔 채 교차로를 지나면서 급히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배지유는 심한 통증에 의식이 흐려져 갔지만 본능적으로 의자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차는 급하게 방향을 틀었고 관성에 의해 결국 차 밖으로 떨어졌다.“끼익.”뒤에서 달리던 차는 도로에 사람이 떨어지자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뒤따라오던 차들은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추돌했다. 결국 앞차는 큰 충격을 받아 앞으로 밀렸고 배지유 다리 위로 덮쳐왔다.“아악!”성대호는 여전히 미친 듯이 도망쳤고 다음 교차로를 향하던 중 경찰차와 경호원들에 의해 마지막 도망길도 차단당했다.“차에서 내리세요! 당신을 위험 운전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휴게실 안,소식을 들은 주현정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도아린에게도 상황을 전했다.도아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성대호는 자신이 받은 증거가 배건후가 일부러 넘긴 것임을 알게 된 뒤 숨었어요. 건후 씨는 이미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어머님께는 아무 얘기도 안 하던가요?”주현정은 고개를 저었다.“내가 배석준이랑 이혼한 후, 건후는 나와 일부러 거리를 두었어. 내가 그와 만난 횟수는 널 만나는 것보다 적었어! 건후도 참... 무슨 일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말해서 상의하지...”도아린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가족?’‘배지유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가족은 오히려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일 뿐이지.’‘
민철홍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지유를 한 번 쳐다본 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들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 지키세요! 이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잘 되면 배 대표님께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제자리를 못 지키고 딴 궁리를 한다면 짐 싸서 나가야 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현정에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민 사장님!”배지유가 크게 외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눈치를 봤다.‘민 사장 말 들으니 큰 문제가 없나 보네.’‘아마 얼굴의 상처가 심해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봐.’‘지금은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어려워질 테니까.’곧, 병원 복도에는 배지유만 남았다.그녀도 더는 제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배지유를 지금 당장 집에 데려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하게 해!”주현정이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네! 알겠습니다!”한 경호원이 휠체어를 밀기 위해 나섰다.배지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항했다.“집안에 감금하는 건 불법이야!”“이게 다 널 위해서야. 더는 네가 그놈들이랑 손잡고 회사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네 오빠의 목숨을 노리게 할 수는 없어! 너 정말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어?”“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왜 도아린 말을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예요? 내가 친딸이잖아요!”배지유가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경호원은 휠체어를 붙잡고 밖으로 밀고 나갔다.배지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만 가만히 앉아 배건후의 처벌을 기다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또 성대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는 또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테였다.하지만 지금은 성대호만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뜰 수 있었고 모욕당하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에서 그래도 전자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7층에 도달한 후 많은 환자들
주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병실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간호진이 곧바로 달려오고 주현정이 민철홍을 보며 말했다.“민 사장님은 나랑 안으로 들어가요!”“알겠습니다!”민철홍은 그녀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배지유도 틈을 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며 말했다.“이건 위급한 상황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병실 안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도아린이 문 앞에서 막았다.“도아린! 너는 도대체 뭐냐! 왜 우리 집안일에 자꾸 끼어들어!”“배지유, 네가 왜 회사 임원들을 여기로 불렀는지 그 꿍꿍이를 모를 것 같아?”도아린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배지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너는 성대호 그 사람과 손잡고 건후 씨를 모함하고 모욕했어, 대체 뇌물을 얼마를 받은 거야?”배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아린이 시끄러운 임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 주 대표님의 지시에 따르고 회사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배지유처럼 직책도 없는 사람이 선동하는 대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 건 정말로 회사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배지유처럼 뇌물을 받고 이러시는 건가요?”“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배 대표님이 걱정돼서 온 거야!”한 노인이 불만을 표하며 반박했다.“여기에 있는 임원분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지유는 자기 어머니의 약을 바꿔치기한 패륜 자예요. 게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제 아버지를 유혹하라고 시켜서 자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파탄 냈어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선동당한 여러분도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많은 사람들이 도아린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 중 몇 명은 배석준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석준은 지금 전 대표의 신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다시 회사의 권력을 쥐게 되면 지
“어떻게 된 거예요?”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현정을 바라봤고 주현정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의료 장비가 가득했지만 정작 병상은 텅 비어 있었다.“건후 씨는 어디 있죠?”도아린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현정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물었다.“제발 말해 주세요. 건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건후가, 건후가...”그 순간, 경호원의 전화가 주현정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아가씨가 회사의 몇몇 임원분들을 데리고 와서는 배 대표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곧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밖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도아린이 병상을 바라보았다.“여기까지 왔다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어야죠.”30분 후.주현정과 도아린이 병실 문을 나섰다.“배 대표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설명을 해 주세요!”“추천하신 임시 대표가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배 대표님께서 만약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습니다!”“엄마! 이사님들도 이렇게 다 오셨는데,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오빠를 만나게 하면서, 왜 정작 가족인 저희는 못 보게 하는 거예요?”배지유가 휠체어를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주현정은 딸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곧바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민 사장님, 제가 여러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배 대표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병원에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건 환자를 위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그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건가요?”주현정의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실려 있고 민철홍은 주변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배지유를 한 번 힐끔 쳐다본 후, 입
도아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건후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회사의 모든 지분을 그녀에게 이전한 것이다!이건 마치... 유언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은 서류 위로 떨어졌다.도아린이 서둘러 닦아내며 물었다.“교통사고 이후로, 장 변호사님도 배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죠?”“네. 이건 배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둔 거였어요. 저에게 절대 먼저 도아린 씨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아린 씨가 직접 찾아오면 그때 서류를 넘기라고 했어요.”도아린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건후가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이런 거라면 분명 대응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그녀에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맡긴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서류 절차를 마무리한 후, 차에 올라타 청룡에 메시지를 보냈다.[누군가 모건 그룹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이 순순히 내가 회사를 접수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LY의 인맥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청룡이 움직이자, 서대은도 곧 소식을 접하고 도아린에게 연락을 해왔다.[보스! 나에게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줘! 이번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아버님은.][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이용해 날 협박할 수 없을 거야!][네가 하는 것 봐서.]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건후가 미리 준비해 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가 혼자 결정해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넘긴 것이었지만 도아린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리가 도울 일은?”“지금은 필요 없어요!”도아린이 고개를 저었다.“필요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다음 날, 도아린은 곧장 연성으로 돌아가 주현정을 만났다.주현정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도아린의 어깨가 눈물로 흠뻑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