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로비에서 20분이나 기다리게 한 게 누구였지?바로 백구 너잖아!도아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아시잖아요. 바다 진주 때문이라는 걸. 두 시간 동안 설득했더니 그제야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라고요.”배건후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말이 많아.”그는 사무실로 돌아섰다. 분위기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그러다 몇 걸음 가다가 갑자기 뒤돌아봤다.안내 데스크 직원은 깜짝 놀라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려 했다.“저기, 잠깐만.”도아린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멈추고는 손에 든 오뎅을 그에게 건네주었다.“이거 받으세요, 별거 아니니까.”“아니에요, 근무 중에 이런 건 받을 수 없어요.”직원은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비싼 것도 아니에요. 500원짜리이니 뒷거래라고 할 것도 없잖아요.”안내 데스크 직원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대표님 마누라는 지금 그를 꼬시고 있는 거야?대표님이 해고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좋은 날은 없을 것 같았다.도아린은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감지했다.“안 가고 뭐 해?”개자식 독촉은 왜 해.그가 답장도 안 하고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했던 건 잊은 건가?도아린은 억지로 직원 손에 꼬치를 쥐여주고 친절하게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줬다.우정윤의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건 마치 저승사자 앞에서 춤추는 기분이었다.대표 사무실.도아린은 오뎅의 재료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이건 어묵이고, 이건 어묵 볼, 이건 유부예요. 이건 살짝 매콤한 치킨 볼인데, 아주 맵진 않아요. 제일 맛있는 건, 이 국물이에요...”설명을 끝내고 난 뒤, 도아린은 종이컵을 앞으로 밀면서 말했다.“대표님, 드셔보세요.”“...”배건후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이런 길거리 음식을 그는 평소에 전혀 먹지 않았다.그가 반응이 없자, 도아린은 주동적으로 젓가락을 쪼개서 그의 앞에 내밀었다.배건후가 무심히 물었다.“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했어?”“...무슨 말씀이죠?”도아린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
우정윤이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다음 미팅은 뒤로 미룰까요?”“밥이 금방 돼. 괜찮아.”“그럼 부서별로 정시에 회의하라고 전달하겠습니다.”우정윤이 문을 나서려는데 배건후가 불렀다.“SNS 쓸 줄 알지?”“네, 할 줄 압니다.”“그럼 도아린을 차단해.”“...”우정윤은 휴대폰을 받아들었다.배건후가 찍은 건 넥타이를 포장한 상태로 한 장, 책상에 올려놓고 한 장 이렇게 두 장의 사진이었다.설정을 마친 후, 우정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대표님이 평소에는 SNS 같은 걸 안 하는데, 오늘은 왜 이러지?갓 임명된 육하경: [정말 멋진데, 너한테 딱이야.]업무 중인 육민재: [스타일이 바뀌었네, 그래도 여전히 고급스럽다.]방금 드레스 샵을 나선 성대호는 핸드폰을 훑어보며 숨을 흡 들이켰다.그는 아래로 스크롤을 내렸지만, 도아린의 댓글이나 '좋아요'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차단한 건가?어쩐지 배건후가 도아린의 외도에 관심이 없더라니. 이미 손보미와 불타오르고 있었구나. 이 넥타이도 그녀가 선물한 거겠지.성대호 댓글: [이젠 완전히 대놓고 자랑하냐.]배건후가 답글을 남겼다.[나는 있으니까 하는 거지. 너도 있으면 해봐.]성대호는 이가 갈렸다.넥타이 없고 여자 없는 놈 어디 있어.성대호는 차 안에서 연락처를 뒤져 자신에게 진심이라고 생각되는 여자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하린아, 곧 내 생일이야.”“이제야 내가 생각난 거야...흐엉흐엉.”상대는 울먹이며 말했다.“자기 생일에 우리 관계를 공개하려고 전화 한 거지?”“...”성대호는 어이가 없었다.“자기가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아. 지난 일은 다 잊을게. 엄마가 말하길, 혼수는 최소 2억이고 연성에 70평짜리 집도 있어야 한대. 차는 브랜드는 상관없고 2억 이상이면 돼. 자기야...”“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호가 끊겼네.”성대호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조수석에 던졌다.그와 함께한 여자들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았지만,
아쉽게도 공식적인 답변은 오지 않았고 대신 ‘윤주별’이라는 라윤주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손보미가 여기까지 온 건 남자친구가 돈 써서 띄워준 덕이잖아?][기쁨, 분노, 슬픔 다 한 표정으로 금화상 후보까지 올랐으니 라윤주 선생님이 아니라 네 금주한테 고마워해야지.][연기나 제대로 해. 괜히 갖다 붙이지 말고!]그러자 뜻밖에도 손보미가 직접 댓글을 남겼다.[윤주별 님들. 그렇게 말하면 라윤주 선생님이 슬퍼하실걸요.]헐. 도아린은 화가 치밀었다.진짜 아무나 다 이용하려고 하는구나.라윤주는 3년째 소식이 끊겼고 외부에는 그녀에 대한 전설만 남아 있을 뿐 아무도 라윤주의 상황을 몰랐다.손보미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고 있었다. 누가 자신이 라윤주를 모른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이용하는 것이었다.어쨌든 라윤주는 행운의 상징이니까 누구든 그녀와 엮이면 다 성공할 수 있으니까.그녀가 이 글을 올린 뒤, 정말로 브랜드에서 그녀에게 광고 모델을 제안했다.라윤주는 과연 행운의 상징이었다.도아린은 페이지를 넘기고 서대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손보미가 아부하는 꼴, 진짜 역겹다.]서대은은 디자인 도면에서 고개를 들며 차갑게 웃었다.[아부하는 사람을 보면 결국 남는 게 없어.]도아린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예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성대호는 병원에 도착하자 깊이 숨을 들이쉬고 배지유의 병실로 들어갔다.“지유야, 너 바다 진주 갖고 싶다 하지 않았어?”그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6억 주고 사 왔어.”배지유는 눈물을 머금은 채 그 상자를 들어 문밖으로 던져버렸다.“싫다고 했잖아!”“...”성대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서대은의 비서가 상대방이 팔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좋은 말로 설득해 겨우 바다 진주 한 쌍을 살 수 있었다.하지만 배지유는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던지며 그의 호의를 무시했다.그녀는 입을 가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성대호는 한숨
방우진은 병원 로비에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몇 층이야?][8층.]그는 입에 물었던 이쑤시개를 뱉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8층은 조용했다. 끝쪽 병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더니 키가 작은 중년 여자가 빠르게 나왔다.“이쪽으로 와.”여자가 그를 테라스로 안내했다.방우진은 짜증 난 표정으로 뒤따랐다.“그 영감탱이가 죽자마자 일자리를 구한 거야?”여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돈다발을 꺼냈다.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방우진은 그것을 단숨에 낚아채고는 손에 침을 바르고 빠르게 돈을 세었다.“이것밖에 안 돼?”“지난달 내가 아파서 며칠 동안 수액을 맞았잖아...”“오백 원짜리 감기약을 먹으면 되지 무슨 수액이야? 돈 낭비하지 마!”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불안하게 비볐다.“다음 달에는 좀 더 벌 거야. 이번 고용주는 좋아. 월급도 많고 식사도 챙겨주거든.”방우진은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돈 좀 뜯어갔다고 서러워하지 마. 내가 상가를 손에 넣은 뒤 임대료를 받으면 엄마도 남은 인생 똥 치우며 살 필요 없어, 알았지?”그가 돌아서려 하자 여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우진아, 너 출근하기 싫으면 엄마가 열심히 벌게. 힘들어도 괜찮으니까 우리 제발 나쁜 짓은 하지 말자.”방우진은 여자를 밀쳐버렸다.“위선 떨지 마. 엄마가 나쁜 짓 안 했으면 우리 누나가 왜 죽었겠어?”방우진은 돈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차갑게 말했다.“엄마가 지금 겪는 고통은 그때 저지른 죗값을 치르는 거야! 내가 엄마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그 말을 남기고 그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를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도아린은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랐다.꿈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탐욕스럽고 흉악하고 분노에 찬 시선은 확실히 보였다.그녀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갑자기, 손목이 꽉 잡혔다.키
퇴근 시간이 되자 그 직원은 대표와 사모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걸 보고 서둘러 일어나 맞이할 준비를 했다.“오뎅 맛있었어요?”도아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대표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대체 맛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우정윤의 신호를 받고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근무 시간에는 음식을 먹으면 안 돼요.”“아, 그럼 먹지 마세요. 차가워지면 배탈 나요.”배건후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차가운 음식이 배탈을 일으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가 오뎅을 안 먹었다고 불평하는 도아린이 어이없었던 것이다.차별 대우를 받은 누군가는 기분이 좋지 않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도아린은 그를 따라잡으려고 작은 걸음으로 뛰어갔다.다리 긴 게 뭐가 대단해!매너도 없는 주제에!집에 갈 줄 알았는데 배건후는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주현정은 방금 잠들어 두 사람은 방해하지 않고 배지유의 병실로 향했다.배지유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말해봐.”배건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지유는 이불을 꼭 쥐고 빠르게 도아린을 쳐다본 후 모깃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사고였어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잠시의 침묵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배건후의 실망한 눈빛을 마주할까 봐 배지유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지금 모건 그룹은 배건후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녀는 자회사에도 발을 들이기 힘들었다.오히려 그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 버릴 가능성이 컸다.일단 연성을 떠난다는 건 육하경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배지유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오빠에게 용서를 빌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남자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차 얘기 말고, 네 몸이 어떠냐고. 의사가 뭐래?”“...”배지유의 몸이 얼어붙었다.문가에 서 있던 도아린의 눈에
도아린은 그가 나오는 걸 보고 간단히 몇 마디 한 후 전화를 끊었다.“이제 갈 수 있어요?”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배건후는 불만을 느꼈다. 차에 타고나서 배건후는 냉정하게 말했다.“소인배는 사람을 짜증 나게 하지.”도아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대충 한마디를 내뱉었다.“고집 피우는 사람이 더 혼나야죠.”차 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때릴 만큼 때렸고 욕할 만큼 했어. 지유도 잘못을 인정했는데 이제 뭘 더 바라는 거야?”‘이 말은 배지유가 다 털어놨다는 뜻인가?’배지유는 도아린을 이용해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고도 오히려 그녀를 모함하려고 했다. 하여 도아린은 이 문제를 잘못을 인정했다는 말 한마디로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배건후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아무리 뛰어나도 그 역시 결국엔 자기 동생을 감싸는 오빠에 불과한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지유 씨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렇게 쉽게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배건후는 눈살을 찌푸렸다.결혼 후 도아린은 배지유를 항상 챙겨주고 배지유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들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이혼을 앞두고 배지유에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지유가 아린이를 존중하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죽을죄는 아니지 않나?’교통사고를 당하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하지만 배지유가 이미 사과했는데도 도아린이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도아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기분이 배건후 때문에 다 망쳐졌다.“수현 씨, 저는 강진 아파트로 데려다줘요.”그녀는 스튜디오로 돌아가고 싶었고 배건후와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조수현은 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슬쩍 백미러를 통해 배건후의 눈치를 봤다. 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단호히 거부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차는 갑자기 속도를 냈다.상업구를 지나가면서 건물 외부 스크린에 빅토리아
조수현은 핸들을 꼭 잡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긴장한 상태로 있었다.뒤이어 검은 구름이 드리운 듯한 분위기 속에서 차는 무사히 에이트 멘션에 도착했다.도아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건후와 이렇게 지내다가는 1년은커녕 반년도 못 버틸 것 같았다. 차라리 그 4000억을 포기하고 일찍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결혼 후 살게 된 에이트 멘션에 도아린은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배건후의 강압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그냥 가게 두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마이바흐가 잔디 위에 멈춰서자 도아린이 먼저 차에서 내려 어두운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그 뒷모습은 마치 결연히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문에 들어서자마자 도아린은 가디건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그녀가 허리를 숙여 신발을 갈아신는데 목 부분의 단추가 느슨하게 풀렸다.오늘 도아린은 복숭아 모양의 브라를 입었는데 앞부분만 살짝 가려져 있었고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뒤따라 들어온 베건후는 그녀 옆에 서서 이 모든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그의 아랫배에서 갑작스레 열기가 치솟았다. 차 안에서 도아린이 한 말들이 떠오르며 불편함을 느꼈던 그는 더욱 긴장했다.모건 그룹을 맡은 이후로도 수많은 여자가 그에게 접근 해왔지만 배건후는 그 모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아린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침을 삼키며 욕망을 억누르려 애썼다.도아린은 배건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그녀의 엉덩이가 그의 다리에 살짝 닿자 베건후는 전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른 듯했다.뒤이어 도아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님방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건후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도아린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배건후가 그녀의 뒷목을 잡아채며 말했다.“위층으로 가.”그러자 도아린은 그의 철처럼 단단한 손을 떼어내려 하며 말했다.“싫어요!
도아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배건후와의 관계를 바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나한테서 떨어져요! 제발 그만둬요!”“누구 만나러 가려던 거였냐고!”배건후의 눈에서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갑고 무서웠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답을 요구할 때면 그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벽과 배건후 사이에 갇힌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배건후가 다시 입을 맞추려 하자 도아린은 그의 이마를 세게 들이받았다.“할게요! 해줄게요! 하지만 이혼 후에 저한테 20억 더 주면요!”두 사람의 숨결이 얽혔다. 배건후의 가슴이 들썩였고 그의 눈빛엔 조롱이 섞인 차가운 기운이 어려 있었다.“20억? 네가 뭔데? 대세 연예인이야, 대단한 사람이야, 아니면 나를 기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도아린, 너한테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억울한 마음이 든 도아린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똑같이 되받아쳤다.“건후 씨의 그 거칠고 서툰 기술이랑 내 병원비 생각하면...”이러면서 도아린은 조금 전 배건후에게 물린 자신의 입술을 보여주었다.“20억은 우리가 그래도 3년간 결혼생활을 한 정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거예요. 안 그럼 200억 원을 줘도 절대 안 돼요!”도아린의 조롱에 배건후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고 입가에는 냉정한 웃음이 맺혔다.“상처가 다 나으니까 잊었나 보네. 아직도 감히 대들어?”도아린은 그를 세게 밀어내며 냉소를 지었다.“상처가 나아도 흉터는 남아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대드는 거 말인데... 다른 데서 못 대들면 말로라도 해야죠.”만약 도발이 효과가 있었다면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벌써 배건후를 정복했을 것이다.그녀는 지난 3년 동안 낮추고 기회를 노리며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배건후는 항상 절대 선을 넘지 말라고 도아린을 경고했다.그러니 이제 와서 도아린이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손보미 씨가 깨끗하게
민철홍은 무표정한 얼굴로 배지유를 한 번 쳐다본 후,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다들 돌아가서 자신의 자리 지키세요! 이전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잘 되면 배 대표님께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다만 제자리를 못 지키고 딴 궁리를 한다면 짐 싸서 나가야 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주현정에게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떠났다.“민 사장님!”배지유가 크게 외쳤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 말없이 눈치를 봤다.‘민 사장 말 들으니 큰 문제가 없나 보네.’‘아마 얼굴의 상처가 심해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봐.’‘지금은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네.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어려워질 테니까.’곧, 병원 복도에는 배지유만 남았다.그녀도 더는 제 편이 없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버티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배지유를 지금 당장 집에 데려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하게 해!”주현정이 싸늘한 어조로 명령했다.“네! 알겠습니다!”한 경호원이 휠체어를 밀기 위해 나섰다.배지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저항했다.“집안에 감금하는 건 불법이야!”“이게 다 널 위해서야. 더는 네가 그놈들이랑 손잡고 회사를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네 오빠의 목숨을 노리게 할 수는 없어! 너 정말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싶어?”“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왜 도아린 말을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예요? 내가 친딸이잖아요!”배지유가 아무리 저항하고 발버둥 쳐도 경호원은 휠체어를 붙잡고 밖으로 밀고 나갔다.배지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만 가만히 앉아 배건후의 처벌을 기다릴 수 없었다.그렇다고 또 성대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그는 또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힐 테였다.하지만 지금은 성대호만이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뜰 수 있었고 모욕당하는 것과 감옥에 가는 것 중에서 그래도 전자가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7층에 도달한 후 많은 환자들
주현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다시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병실 밖에서 소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간호진이 곧바로 달려오고 주현정이 민철홍을 보며 말했다.“민 사장님은 나랑 안으로 들어가요!”“알겠습니다!”민철홍은 그녀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배지유도 틈을 타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가자고 재촉하며 말했다.“이건 위급한 상황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예요!”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병실 안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도아린이 문 앞에서 막았다.“도아린! 너는 도대체 뭐냐! 왜 우리 집안일에 자꾸 끼어들어!”“배지유, 네가 왜 회사 임원들을 여기로 불렀는지 그 꿍꿍이를 모를 것 같아?”도아린이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배지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너는 성대호 그 사람과 손잡고 건후 씨를 모함하고 모욕했어, 대체 뇌물을 얼마를 받은 거야?”배지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도아린이 시끄러운 임원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여러분, 주 대표님의 지시에 따르고 회사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배지유처럼 직책도 없는 사람이 선동하는 대로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신 건 정말로 회사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배지유처럼 뇌물을 받고 이러시는 건가요?”“함부로 말하지 마! 우리는 배 대표님이 걱정돼서 온 거야!”한 노인이 불만을 표하며 반박했다.“여기에 있는 임원분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배지유는 자기 어머니의 약을 바꿔치기한 패륜 자예요. 게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제 아버지를 유혹하라고 시켜서 자기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파탄 냈어요. 이런 몰상식한 사람에게 선동당한 여러분도 똑같이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많은 사람들이 도아린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 중 몇 명은 배석준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다.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배석준은 지금 전 대표의 신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다시 회사의 권력을 쥐게 되면 지
“어떻게 된 거예요?”도아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현정을 바라봤고 주현정은 입을 가린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병실 안에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각종 의료 장비가 가득했지만 정작 병상은 텅 비어 있었다.“건후 씨는 어디 있죠?”도아린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현정의 팔을 단단히 붙잡으며 물었다.“제발 말해 주세요. 건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건후가, 건후가...”그 순간, 경호원의 전화가 주현정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하세요.”“아가씨가 회사의 몇몇 임원분들을 데리고 와서는 배 대표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곧 나갈게요.”전화를 끊은 주현정은 도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밖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도아린이 병상을 바라보았다.“여기까지 왔다면, 완전히 단념하게 만들어야죠.”30분 후.주현정과 도아린이 병실 문을 나섰다.“배 대표님 상태가 어떤지 정확한 설명을 해 주세요!”“추천하신 임시 대표가 능력이 나쁘진 않지만 결국 우리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배 대표님께서 만약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대표를 선출하는 게 맞습니다!”“엄마! 이사님들도 이렇게 다 오셨는데, 도아린 같은 외부인은 오빠를 만나게 하면서, 왜 정작 가족인 저희는 못 보게 하는 거예요?”배지유가 휠체어를 조종하며 앞으로 나섰다.주현정은 딸을 싸늘하게 노려보다 곧바로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민 사장님, 제가 여러분을 못 만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배 대표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무더기로 병원에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건 환자를 위하는 행동인가요? 아니면 그의 치료를 방해하려는 건가요?”주현정의 목소리에 카리스마가 실려 있고 민철홍은 주변의 이사들을 돌아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배지유를 한 번 힐끔 쳐다본 후, 입
도아린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건후가 자신의 명의로 보유한 회사의 모든 지분을 그녀에게 이전한 것이다!이건 마치... 유언을 남기고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도아린은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은 서류 위로 떨어졌다.도아린이 서둘러 닦아내며 물었다.“교통사고 이후로, 장 변호사님도 배 대표를 한 번도 못 만났죠?”“네. 이건 배 대표님이 미리 준비해 둔 거였어요. 저에게 절대 먼저 도아린 씨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도아린 씨가 직접 찾아오면 그때 서류를 넘기라고 했어요.”도아린이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눈물을 훔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건후가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이런 거라면 분명 대응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그녀에게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도아린은 배건후가 맡긴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는 빠르게 서류 절차를 마무리한 후, 차에 올라타 청룡에 메시지를 보냈다.[누군가 모건 그룹을 노리고 있어요. 그들이 순순히 내가 회사를 접수하도록 두지 않을 거예요. LY의 인맥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청룡이 움직이자, 서대은도 곧 소식을 접하고 도아린에게 연락을 해왔다.[보스! 나에게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줘! 이번엔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아버님은.][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 아버지를 이용해 날 협박할 수 없을 거야!][네가 하는 것 봐서.]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배건후가 미리 준비해 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그가 혼자 결정해 도아린에게 모든 것을 넘긴 것이었지만 도아린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우리가 도울 일은?”“지금은 필요 없어요!”도아린이 고개를 저었다.“필요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할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다음 날, 도아린은 곧장 연성으로 돌아가 주현정을 만났다.주현정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고 도아린의 어깨가 눈물로 흠뻑 젖
“말씀하신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군요.”장수현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비록 배건후의 사건에서 승소할 자신은 있었지만 남궁유민의 업계 명성은 너무나 컸다.게다가 님궁유민은 그가 오랫동안 존경해 온 인물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남궁유민은 책상 위의 유자차를 흘끗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모건 그룹의 공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확보한 새로운 증거로 볼 때 배 대표님이 주범은 아니지만 일부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한 것은 사실입니다.”남궁유민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다소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만약 배 대표님이 순순히 협조한다면 위에서는 적절히 조정해 줄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해서 회피한다면...”장수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말속에 숨은 의미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경찰과 검찰이 고위급 인사를 조사하고 있으며 배건후가 이번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였다. 배건후가 그를 고발하기만 하면 그 자신의 혐의는 쉽게 벗어날 수 있지만 끝까지 회피한다면 그를 ‘책임을 뒤집어쓸 희생양'으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장수현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현재 우리가 변호하는 사건은 배 대표님의 불법적인 회사 자금 횡령 혐의입니다. 이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된 후에야, 다음 사건을 논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남궁유민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그건 장 변호사님께서 이미 새로운 증거를 갖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그 증거가 배건후가 나서서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만 하는 거라 그러시는 건가요?”도아린은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남궁유민은 다른 곳에서 배건후의 정보를 알아낼 수 없자 장수현을 떠보러 온 것이다.끼익, 문이 열리며 도아린이 직접 나왔다.“남궁유민 씨!”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피고인의 변호사를 사적으로 접촉하는 건 절차상 불법 아닌가요?”도아린을 보자마자 남궁유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그의 표정에는 분노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건 분명히 도아린과 관련이 있었고 아버지가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상 도아린을 달래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재민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하지만 막 1층에 도착하자 머리 위에서 강재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아린이 사고를 당했을 때 넌 바로 달려가지 않았어. 이미 기회를 놓친 거야. 지금 표절 논란이 다시 불거진 참인데,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주얼리 매장에 심각한 타격을 줄 거라고.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생각이야?”강재민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순간적으로 욕지거리가 나갔지만 결국 방향을 바꿔 다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강재희를 지나칠 때, 차갑게 말했다.“누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줄 알아? 내 사람한테 그럴 생각은 접어.”강재희가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정말 여자를 모르네!’한편, 도아린이 장수현을 찾아갔을 때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드디어 절 찾아왔군요!”두 사람이 악수할 때 심지어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가 유자차를 한 잔 내밀었지만 도아린은 차를 바라보며 손을 대지 않았다.“배 대표님이 알려주신 거예요. 아린 씨가 오면 유자차를 타 드리라고 하셨죠.”장수현은 배건후의 말을 떠올리며 덧붙였다.“따뜻한 물로 우려내고 레몬즙 두 방울 추가했어요. 한 번 맛보세요.”도아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머그컵을 집어 들었다.작은 컵이었지만 그녀는 손이 떨려 쉽게 들지 못했고 장수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손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나요?”“그런게 아니라...”말을 마친 후 도아린이 유자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분명 그녀가 좋아하는 맛이었지만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배 대표의 사건은요?”“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가진 증거만으로도 배 대표님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어요.”장수현은 서랍에서 두 개의 서류봉투를 꺼냈다.“이 두 개의 문서는 도아린 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저요?”도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찻잔
다음 날, 배지유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경호원은 그녀를 병실에 들여보내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의사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했다.“아이고!”의사가 병실에서 나오자 그녀는 일부러 다리를 움켜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제 다리가 너무 아파요! 다시 감염된 거 아닐까요? 유 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유승호가 다가가려 하자 경호원이 막아섰다.“저희 대표님 돌보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가씨는 저희가 병원에 모셔가겠습니다.”“유 쌤! 제발요! 오래 걸리지 않아요!”배지유가 손을 뻗어 유승호의 가운을 붙잡으려 했지만 유승호는 경호원과 함께 그녀를 지나쳐 가버렸고 더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말했다.“아가씨, 저희가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배지유는 악에 받쳐 어금니를 꽉 물었다.“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경호원은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바로 주현정에게 보고했다.주현정이 비웃으며 말했다.“이제 그놈들도 슬슬 초조해지는군. 조급하면 조급할수록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지.”“어디 나갈 거야?”진경수가 단정하게 차려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도아린을 보고 급히 다가갔다.“지우 씨의 촬영이 거의 끝나가요. 가서 봐야겠어요.”“일남이 하고 일북이 보호하고 있으니 별일 없을 거야. 그러니 너도...”진경수가 그녀의 가방을 잡으며 말렸지만 도아린이 피했다.“오빠, 이렇게 날 집에 가둬놓는 건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들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는 거야.”“가둬놓다니...”진경수가 눈을 피하며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그놈들은 인간성이 없어! 위험한 일은 우리가 할 테니, 너는 그냥 부모님 곁에서 안전하게 있어 주면 안 되겠어?”“오빠, 솔직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진씨 가문의 사업에는 영향이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오빠나 큰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예요.”도아린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배 대표가 사
주현정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배지유는 몇 번 울먹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을 남궁유민에게 떠넘기려고 했고 사실 그가 자신을 강요한 것이었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오빠가 남궁 변호사한테 내 교통사고 소송을 도와달라고 했는데 그 변호사가, 글쎄, 나한테 오히려 오빠를 모함하라고 했어요.”“나는 오빠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인지 잘 알거든요. 오빠가 절대 회사 자금을 횡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겉으로는 남궁유민의 협박에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오빠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길 바랐어요! 오빠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주현정은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딸이 이렇게 교활하고 악독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을 이렇게 고상한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모습에 실망감이 몰려왔다.배지유는 눈물이 나지 않자 점점 더 통곡하며 눈물 연기를 했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내가 처음에 약을 바꾼 것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엄마 목숨을 위협하려던 게 아니라 엄마가 좀 더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다고요!”“게다가 내가 왜 오빠를 해치려 하겠어요? 난 미끼로 자처해서 남궁유민 그 배신자를 까발리려고 그랬던 거예요!”“엄마!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두 분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계속 같이 살았을 거고 아빠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 나도 남궁유민에게 협박당하지 않았을 거고,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회사 일을 아빠가 처리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내 말이 틀렸어요?”주현정은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딸에게 짜증이 나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남궁유민이 널 협박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수로 널 협박할 수 있겠어?”“그게...”배지유는 급하게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숙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픈 줄 몰랐다.잠시 고민하던 배지유는 사실대로 말
“누구...?”“너무 팬이에요! 저 ‘화성의 별빛’이에요!”“아, 안녕하세요!”도지현은 그녀를 바로 기억해 냈다.이 팬은 그가 방송을 시작한 날부터 채팅방에 있었고 팬 단톡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이었다.도지현의 스태프가 그녀에게 팬카페 관리자가 되어달라고 제안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대신, 팬으로 남아 계속 응원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은 예의상 가볍게 악수를 나눴고 전미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기... 부탁드릴 게 있는데, 저분한테 잘 좀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보험사 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수리비는 제가 전액 부담할게요.”도지현은 강재민을 바라보며 말했다.“형...”강재민은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휙 저으며 말했다.“그냥 가세요. 괜찮습니다. 너도 얼른 차 타.”“정말 고맙습니다!”전미나는 연신 인사를 하며 빠르게 자신의 차로 돌아갔고 강재민은 명함을 휙 차 안으로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명함이 미끄러져 내려가 도지현의 발밑에 떨어졌다.“전미나?”‘티파니 주얼리의 수석 디자이너... 거긴 진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보석 브랜드잖아?’도지현은 누나가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떠올리며 강재민에게 물었다.“형, 이 명함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저 팬분인데, 팬카페 관리자로 모시고 싶어서요.”“가져가.”강재민은 애초에 전미나에게 차 수리비를 받을 생각이 없었고 단지 티파니 주얼리의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 뿐이였다.그는 도지현을 집 앞에 내려준 후, 바로 차를 수리하러 갔다.도지현은 도아린의 부탁대로 그날 사고 이후 모건 그룹의 동향과 배건후의 근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다.그날 사고 이후, 주현정은 모건 그룹의 고위 부사장을 지명해 그룹 운영을 대리하게 했다.한편, 배건후가 입원한 사립 병원은 철저한 경비 속에 통제되고 있었고 경호원들이 출입을 관리하고 있어 의료진 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다.뿐만 아니라,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