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이 살짝 놀라서 유강후를 부르기도 전에 머리 뒤쪽을 고정하던 비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먹물로 염색한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하얀 목을 덮었다.모두가 깜짝 놀랐다.온다연도 유강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겁먹은 눈빛으로 소심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유강후는 냉정하게 말했다.“미안해요. 실수로 비녀를 건드렸어요. 학생의 옷차림이 더 이상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렇게 하죠. 학생이 내 가이드가 되세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학교 담당자를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죠?”담당자는 서둘러 웃으며 말했다.“네, 당연히 괜찮습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흘끗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따라와요.”온다연은 입술을 깨물고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비녀를 바라보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랐다.수백만 평에 달하는 제약 기지를 돌아다니며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설명하자 온다연은 목구멍에 금방이라도 연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무의식적으로 약초를 보고 있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덥지도 않나?이렇게 더운 날, 모두가 너무 더워서 지쳐있는데 유강후만 큰 이동식 냉장고 같이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기압까지 낮춰버렸다.하지만 얼굴은 정말 잘생겼다.간단한 옷차림이었지만 마치 캣워크에 서 있는 것처럼 눈부셨고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이때 유강후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고 차가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쳐다봤다.온다연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뒤쪽 휴게실로 물러났다.안에서 잠깐 낮잠을 자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고개를 들자 유강후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유강후는 위에서 아래로 온다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압적인 기세에 온다연은 이유도 모른 채 비참한 마음이 생겼다.하지만 온다연은 자신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유강후의 시선이 온다연의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에 멈췄
안 돼. 여기 있으면 안 된다.온다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제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나가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뜻이었다.유강후의 시선은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잠시 멈췄다가 한복을 입은 예쁜 몸매에 닿았다.밖에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생각하자 분노의 물결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파르게 솟구쳤다.“왜 학교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온다연은 여전히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인턴들은 다 이런 거 해요.”온다연은 대학원에 입학하고 싶으면 학교에서 정해준 모든 업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오늘 온다연은 투자자들 앞에서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계약서도 따내야 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렸다.“인턴하고 싶으면 우리 회사에 가서 해도 돼. 내일 당장 가.”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거역할 생각이 없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삼촌. 감사합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대답에 만족한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서 휴게실을 떠났다.그가 떠나자 온다연은 즉시 심호흡했다. 뜨겁고 붉어진 귀를 만지면서 방금 정말 위험했다고 생각했다.유강후는 정말 맞춰주기 너무 어려웠다. 온다연이 방금 한 말을 유강후가 얼마나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믿든 안 믿든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이 유씨 가문과 거의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이런 생각을 하며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룸 안에서.학교 관계자들이 웃는 얼굴로 술을 건넸지만 유강후는 무심하게 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권이 들어와 그의 귀에 몇 마디 속삭였다.유강후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한 뒤 곧장 자리를 떠났다.이권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학교에서 주선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다연 양은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허 이사님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허 이사님이 이걸로 다연 양을 협
유강후는 손으로 온다연을 부축하고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다연아, 네가 앞으로 어떻게 죽을지 알아?”온다연은 입술을 움직였지만 더듬거리며 말을 내뱉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삼촌이라고 불렀다. 비록 완전히 취했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눈앞의 이 남자는 유강후이다.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고 또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몸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술에 취한 느낌은 정말 괴롭고 위는 타들어 가는 것 같았고 손발은 차갑고 힘이 없었다.온다연은 유강후 몸 위에 엎드려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그녀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부목을 잡은 듯 유강후를 꽉 붙잡았다.유강후는 그녀한테서 나는 술 냄새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고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혼자 갈 수 있겠어?”그의 목소리는 그의 몸 온도만큼이나 차가웠다. 몸에 열이 나는 것만 같던 온다연은 왠지 모르게 그에게 더 달라붙고 싶었다.하지만 온다연은 또 유강후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될수록 멀리하려고 애를 썼다.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쥐어뜯으면서 말끝을 흐렸다.“어쩌면...”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미끄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유강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도 거짓말을 한다고?유강후가 팔을 굽히자 온다연은 마치 뼈가 없는 생물체처럼 그의 팔에 반쯤 걸려있었고 발도 땅에서 떨어졌다. 마치 코알라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귀여웠다.이때 문밖에는 따라오던 학교 지도자 몇 명이 서 있었다. 유강후의 품 안에 자기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들은 깜짝 놀랐다.“강후 씨, 이분은?”유강후는 핏기가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린 온다연을 힐끔 바라보더니 그녀의 얼굴을 자기 품속으로 묻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유씨 가문 조카예요.”그러자 학교 지도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학교에 뜻밖에도 유씨 집안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참 후, 유강후는 다시 염지훈을 쳐다봤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염지훈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염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혹시 제가 도련님 집 아이를 훔쳤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죠?”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키가 비슷하고 모두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유강후는 염지훈보다 몇 살 연상이고 비즈니스와 정치계에서 몇 년 있다 보니 남다른 기세가 있었다.순간 염지훈은 기 싸움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유강후의 눈빛만 봐도 숨이 막혀왔다.비록 두 가문의 재력은 비슷했지만 유씨 가문은 정치계에서 더 잘나갔다. 그 때문에 염지훈은 유강후와 적이 되기 싫었다.이때 염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강후 도련님, 제가 같이 찾아드릴까요?”유강후는 염지훈의 뒤에 있는 캄캄한 반사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필요 없어.”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잠시 후, 유강후의 차는 주차장을 떠났다. 그제야 염지훈은 문을 열며 말했다.“나와.”문에 웅크리고 앉아 엿듣던 온다연은 문이 열리자마자 차에서 떨어지면서 이상한 자세로 착지했다. 그러자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부축했다.온다연은 머리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차 문에 기대어 염지훈을 멍하니 쳐다봤다.염지훈은 차 문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초라한 모습에 술 냄새까지 풍기는 온다연을 자세히 훑어보았다.온다연은 예쁘게 생겼고 피부도 하얗고 눈도 초롱초롱했다.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배짱이 좋은 것 같았다.염지훈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온다연은 사정없이 훑어보았다.“유강후랑 무슨 사이야? 왜 피해 다녀?”온다연은 염지훈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난 그쪽을 모르는데요.”그녀는 술에 많이 취해서 염지훈의 생김새를 잘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더운 날에 두꺼운 옷차림을 한 것을 보니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유강후처럼 키가 크
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유강후를 쳐다봤다. 서늘한 눈동자는 미동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분위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녀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삼... 삼촌...”유강후는 왜 아직 떠나지 않았을까? 왜 아직도 여기 있을까?유강후는 뼈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핸들을 튕기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하는 어투가 담겨있었다.“다연아, 나는 인내심이 별로 없어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차에 타라고.”온다연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유강후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의 위는 더 아파졌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뒷문을 열고 유강후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에어컨 바람 때문에 차 안은 냉기가 가득했고 온다연은 냉기 때문에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위는 찬바람을 맞아 더 아파졌다.유강후는 조수석 자리에서 어떤 물건을 집어 들고 온다연에게 건넸다.“마셔.”온다연은 받아보니 숙취해소제였다.그리고 유강후는 또 물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입가심해.”온다연은 위가 아파서 허리를 거의 펼 수 없었지만 유강후의 강한 압박감 때문에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고도 속쓰림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통증이 심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그녀는 유강후가 자기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심한 통증 때문에 그녀는 사색조차 할 힘이 없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였고 그녀의 반들반들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촘촘히 맺혔다.유강후는 한 손에 핸들을 잡고 가끔 백미러로 온다연을 쳐다봤다.희미한 불빛 때문에 그는 온다연이 조그맣게 웅크리고 차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고집스러운 모습이 성격이 얄궂은 고양이와 같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고 차 안은 답답한 분위기였다.마침내 가로수길에 접어들었을 때, 유강후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이 길에는 차들이 엄청 적었다. 길 양측
온다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유강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이때 그녀는 진정으로 남녀의 체형과 힘의 차이를 느꼈다.유강후는 덩치가 큰 몸매는 아니다. 188의 키에 날렵하고 늘씬한 몸매를 가졌고 셔츠와 양복을 입을 때 세련되고 도도했다. 전혀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가 옷을 벗으면 얼마나 튼튼하고 섹시한 몸매를 가졌는지 알고 있다. 3년 전 그날 오후,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가두었다.하지만 온다연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그날 오후 그의 눈빛이었다. 붉게 달아오르고 이성을 잃은 그 눈은 짐승처럼 보였고 가끔 그녀의 꿈에도 나타났다. 그 눈빛만 떠올리면 온다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래서 유강후에 대한 두려움은 신체적과 정신적에세 모두 비롯됐다.“저, 저 도망치지 않았어요...”온다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두 손을 침대에 짚고 온다연을 침대와 자기 몸 사이에 가두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다연아, 어떤 일은 말이야. 네가 피할수록 더 엉망진창이 될 거야.”온다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몸은 가볍게 떨렸고 겁에 질려 입술을 깨물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강후는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왜 일찍 돌아왔는지 알아?”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입술만 꽉 깨물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 옆에 작은 점을 하얗게 될 정도로 깨물었고 마치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꽉 움켜쥐고 입술을 그만 깨물도록 하였다.“대답해.”온다연은 침대보를 움켜쥐고 고개를 돌렸다.“몰라요...”그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유강후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싸늘하게 말했다.“알고 싶지 않은 건 아니고?”그러자 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녀의 턱을 꽉 잡고 있던 유강후의 손에 힘이 더
온다연은 꼼짝도 못 하고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유강후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온다연은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그녀가 막 눈을 뜨려고 하자 유강후는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온다연을 침대 안쪽으로 조금 옮긴 후 신발을 벗고 그녀 옆에 누웠다. 병원의 침대는 매우 작았다. 두 사람은 불편하게 누워 있었다. 특히 온다연은 유강후를 매우 두려워했다.유강후의 카리스마와 그의 체향이 공기 속을 가득 채웠다. 온다연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의 냄새로 가득했다. 유강후의 몸은 그녀의 등에 달라붙었고 온다연은 그 열기로 인해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고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그녀의 침대에 누울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작은 병원 침대에 말이다. 유강후는 결벽증이 있지 않았던가?온다연은 긴장해서 울고 싶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하지만 유강후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뉴스를 보기 시작했고 문자도 몇 개 보냈다.시간은 그렇게 1분 1초 지났고 온다연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약의 작용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나른해지자 그녀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유강후의 무릎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작고 부드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손톱은 짧았고 매니큐어 같은 것을 바르지 않아 깨끗해 보였다. 손가락은 통통했고 귀여웠다.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손을 빼갔고 몸을 뒤척이며 유강후에게 얼굴을 대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손과 발도 그의 몸에 걸치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하니야, 기다려...”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젖은 상태로 얼굴에 붙어있었다. 머리카락이 검었기 때문에 얼굴이 유난히 하얘 보였다.온다연의 이목구비는 유난히 예뻤고 피부도 하얗고 입술 옆에 보일락 말락 하는 점마저도 매력적이었다.그런데 두 눈은 수줍게 생겼고
온다연은 더 긴장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까지 더듬었다.“아니에요. 거짓말 아닌데요.”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다. 온다연이 13살 때부터 심미진은 그녀를 거의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프다는 일을 언급하지 말든지 결과는 마찬가지이다.사실 유하령이 온다연의 배를 찰 때 심미진은 아마 내장을 다쳤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미진은 온다연에게 4만 원을 주면서 스스로 진료소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 후, 온다연은 유씨 저택에 거의 돌아가지 않았고 심미진에게 자기가 괴롭힘을 당한 일도 말하지 않았다.게다가 3년 전 유강후와 그 일이 있고 난 뒤 유하령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온다연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유하령은 그녀의 머리채를 뽑고 뺨을 때리고 밥에 압정을 넣고 침대에 작은 동물까지 던졌다. 게다가 몇 번은 깡패들을 찾아 그녀를 골목에 틀어박고 죽을 때까지 때렸다. 그러면서 온다연의 내장은 더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유강후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그런 생각에 온다연의 눈은 더 아래로 처졌고 도시락을 쥔 손도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갑자기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던 유강후는 잡고 있는 그녀의 턱을 놨다. 그러자 온다연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생겼다.피부가 이렇게 부드럽다고?유강후의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는 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게 제일 싫어.”그러자 온다연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삼촌, 저 거짓말 안 했어요.”그렇게 말하며 온다연은 손을 앞으로 옮기면서 도시락으로 유강후의 손목을 스쳤다.그러자 도시락의 뜨거운 온도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온다연의 손바닥을 보자 이미 빨갛게 덴 것을 발견했다.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도시락이 이렇게 뜨거우니 분명 엄청 아팠을 것이다.유강후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고 턱선은 더 날렵해졌다.“다연아, 안 아파? 아니면 아픈 걸 잘 참는다고 생각해?”그러면서 유강후
나은별은 깜짝 놀라 공포에 질린 눈으로 유강후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입술마저 하얗게 질렸다.유강후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네가 왜 여기에 있어?”이마에 닿은 권총을 의식한 나은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강, 강후 씨, 왜 총을 나한테...”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유강후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말해, 왜 여기에 있냐고?”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이고 싶은 눈빛이었다.그녀는 겁에 질려 손에 땀을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나는 그냥 커피 마시러 왔을 뿐이야...”유강후는 믿지 않는 듯 서늘한 총구를 천천히 내리꽂았다.총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나은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강후 씨, 제발 이러지 마...”총구는 결국 그녀의 턱에 닿았고, 목소리는 얼음 동굴에서 나온 듯 차가웠다. “온다연에게 무슨 말을 했어?”나은별은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무 말도 안 했어. 강후 씨, 총을 치워줘. 무서워.”유강후는 무자비하게 말했다.“너도 무서운 걸 알아? 나쁜 짓을 할 때는 왜 겁이 안 났지?”나은별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강후 씨, 난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여자 때문에 나를 죽일 거야?”유강후는 극도로 혐오하는 표정을 지으며 잔인하게 말했다.“한 번 더 온다연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면, 입을 총으로 갈겨버려 영원히 말 못 하게 할 거야!”나은별은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의 눈빛에 서린 독기에 그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인사만 했을 뿐이야...”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않아. 무슨 말을 했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말해서는 안 될 단어 하나라도 흘렸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나은별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믿고 이렇게 괴롭히는 거잖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나은별은 몸을 떨며 눈에 두려운 기색을 띠었다.“네가 감히!”온다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코웃음을 쳤다.“못 할 게 뭐가 있어? 네가 죽으면 너를 찾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네.”그녀는 몸을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지도, 메시지를 보내지도 마. 상대할 시간 없으니까.”나은별은 독살스럽게 그녀를 노려보더니 돌아서서 가버렸다.온다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여자에게 사람을 붙여서 대체 뭘 하려는지 지켜봐요.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아가씨!”임원식이 떠난 후에야 온다연은 자리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셨다.머리 통증이 더 심해져 토할 것 같았다. 나은별의 말은 칼날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휘저었다.임혜린은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몸이 안 좋아? 나은별이 헛소리한 거니까 마음에 두지 마.”온다연은 고개를 저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잠시 쉬니 조금 나아졌다.“그 여자 말이 사실인 것 같아.”임혜린이 급히 그녀를 달랬다.“말도 안 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유강후가 성질이 더럽고 잘난 척하는 데다 남의 비밀을 마음대로 까발리긴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나쁘지 않아. 너를 두고 나은별을 좋아할 리 없어.”온다연이 고개를 저었다.“그 말이 아니야. 강후 씨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아. 이전에 나은별이 납치됐을 때, 강후 씨가 나를 그 여자 대신 납치범에게 넘겼다는 거 말이야. 사실인 것 같다고.”임혜린은 한참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그 일은 내가 아는데, 오해가 있어. 그때 유강후는 너를 닮은 사람을 준비해 납치범에게 넘기고 나은별을 구출하도록 지시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부하들이 너를 그 사람으로 착각해 현장으로 데려간 거야.”온다연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통으로 시큰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그다음은?”임혜린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깊이 생
나은별이 부은 얼굴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온다연, 넌 너무 건방져. 감히 나를 때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온다연이 어깨를 으쓱했다.“가만두지 않으면 어쩔 건데? 조만간 나씨 가문도 사라질 텐데 네가 뭘 할 수 있겠어?”그녀는 테이블 위의 정교한 디저트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정말 이 디저트를 안 먹을 거야? 어쩌면 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맛볼 수 있는 고급 디저트가 될 텐데.”나은별이 코웃음을 쳤다.“네가 갑자기 진씨 가문의 딸이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어.”“하지만 네가 아무리 하늘 높이 올라가도 바꿀 수 없는 게 있어.”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김원도가 나를 납치한 후, 유강후에게 너를 갖다 바치면 나를 놓아주겠다고 했는데, 유강후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온다연은 관자놀이가 욱신거려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어떻게 했든 이미 지나간 일이야. 나은별, 당장 꺼져. 나한테 도발하지 마. 너는 그런 자격이 없어.”하지만 나은별은 말을 이어갔다.“유강후는 주저 없이 너를 납치범에게 넘겼고, 너는 결국 김원도에게 끌려가 바다에 빠져 죽었지.”“아니, 죽지 않았네.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에 대한 유강후의 사랑은 단지 죄책감을 덜기 위한 보상일 뿐이야. 언젠가는 내 곁으로 돌아올 거야.”온다연은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지만 애써 진정하고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확신에 차 있다면 기회를 주지. 지금 유강후를 불러 너를 선택할 건지 물어보는 게 어때?”나은별은 눈에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지금 당장은 날 선택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 당연히 너에게 미안해서...”“닥쳐!”온다연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그딴 헛소리 집어치우고 정신병 치료나 받아. 과거에 나와 유강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나는 그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목숨 걸고 지키는 사람은 없으니까.”“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나
나은별의 속내를 꿰뚫은 듯 온다연이 차갑게 말했다.“네가 예전에 유강후와 무슨 사이였든 상관없어. 하지만 앞으로 감히 그 남자에게 치근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 너 하나쯤 없애는 건 식은 죽 먹기야.”나은별은 부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아?”“유강후가 너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웠어. 이제 누가 조사해도 유용한 정보는 나오지 않아. 왜 그랬을까?”임혜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입 닥쳐! 한마디만 더 하면 혀를 뽑아버릴 거야!”나은별이 독사 같은 웃음을 지었다.“뭐가 그렇게 두려운데? 유강후가 너한테도 과거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어?”“온다연이 진실을 알까 봐 몹시 두려운 모양이지?”임혜린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진실이 뭐든 두 사람 사이의 문제야!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나은별, 너는 스스로 호감을 모두 갉아먹었어. 네가 저지른 더러운 일들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 유강후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해?"나은별은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임혜린이 콧방귀를 뀌었다.“정말 어리석구나. 온다연 사건 이후로 유강후가 네게서 완전히 손 뗀 걸 몰라? 그 뒤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잖아. 영화 제작이든 다른 투자든 한 번이라도 성공한 적 있어?”나은별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무슨 소리야?”임혜린이 말을 이었다.“너희 집안도 그만하면 탄탄한데, 투자에 실패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 게다가 매번 성공 직전에 좌절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나은별은 벼락 맞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헛소리하지 마!”이건 그야말로 심장에 칼 꽂는 말이었다.사실 나은별도 한때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유강후는 비록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지만, 매번 사업 초기 자금은 제공해 주었다. 그녀가 실패하면
온다연이 콧방귀를 뀌었다.“눈치는 있군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의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를 지켜보던 나은별이 코웃음을 쳤다.“이런다고 유강후가 정말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온다연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설마 상간녀 짓을 하려고?”나은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누가 상간녀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야.”그녀는 잠시 멈추더니 독기 서린 눈빛으로 물었다.“네가 그때 유강후와 어떻게 헤어지게 됐는지 알고 싶지 않아?”그녀의 눈에 음산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정말 그 사람이 너를 뼛속까지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저 죄책감에 보상하려는 거뿐이야.”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다연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은별의 따귀를 후려쳤다.“진작 때리고 싶었어.”나은별은 얼굴을 붙잡은 채 멍하니 있다가 발끈했다.“네가 뭔데 감히 나를 때려?”온다연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때리고 싶어서 때린 건데, 날짜라도 골라야 하나?”나은별이 눈을 부라렸다.“엄마도 없는 천한 계집애가 감히 내게 손을 대? 죽을래?”이때 밖에서 대기하던 진씨 가문 경호원 임원식이 뛰어 들어와 나은별의 얼굴에 따귀 두 대를 날렸다.힘이 어찌나 센지 나은별은 머리가 핑 돌며 휘청이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너희들이 감히...”온다연이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아, 손이 아파. 빨개졌어.”임원식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아가씨, 이런 여자와 얘기 나누실 필요 없어요. 조사해 보니 몰락해서 허울뿐인 H국 삼류 가문의 여식이더군요. 유씨 가문에서 굶어 죽지 않게 봐주는 덕에 간신히 버티는 거지, 아니면 벌써 뒷골목에서 쓸려나갔을 거예요. 아가씨의 귀한 시간을 낭비할 만큼 가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온다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하도 심심해서 유강후의 소꿉친구가 어떤 수준인지 보려고 나왔는데... 진짜 실망스럽네.”“아가씨?”나은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네가 무슨 아가씨야?”온다연이 대답하기
나은별의 눈에 순간적으로 증오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강후 씨는 옛정을 중시하는 남자예요. 다연 씨에게 빚진 느낌이 들어서 제게 접근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우린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사이...”언어 기교가 뛰어난 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이런 건 상대방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게 모든 진실을 까발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하지만 온다연은 예상과 달리 화를 내지 않았다.온다연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아, 소꿉친구였군요. 그런데 서른이 훌쩍 넘지 않았나요? 30년 동안 사람 하나 못 잡은 건 매력이 부족해서인가요? 수단이 없어서인가요?”나은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무슨 뜻이죠?”온다연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저는 너그러운 성격이 아니에요. 제가 이미 선택한 남자를 누가 뻔뻔하게 빼앗으려 든다면,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고요.”고개를 들고 나은별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제가 그쪽 뒷조사를 해봤는데, 집안이 망했다면서요? 옛정을 구실로 유강후와 한재민 사이에서 한몫 챙기려나 보죠?”나은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온다연이 이렇게 말발이 뛰어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온다연 씨, 말씀이 너무 지나치네요. 우린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고,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인데 좀 도와주면 어때서요?”온다연은 그녀의 이마에 붙은 거즈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과거의 일은 제가 어찌할 수 없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이 그 사람에게서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거예요. 나은별 씨, 저는 말한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나은별이 주먹을 불끈 쥐며 코웃음을 쳤다.“네가 뭔데? 유강후 같은 남자가 여자 말에 휘둘릴 것 같아? 그 사람이 너에게 특별한 감정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나?”“아니면 유강후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의 남자가 어떤 여자를 못 가지겠어?”그녀는 일부러 음흉하게 웃으
유강후는 평범한 부자들에겐 불가능한 이 특권을 부릴 수 있는 남자다.권력과 재력, 사람을 미치게 하는 얼굴, 심지어 젊은 나이에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른 남자다.‘나 나은별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이런 남자다. 내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가질 자격이 없다.’온다연은 나은별을 힐끗 보더니 그녀의 속내를 꿰뚫은 듯 말했다.“나은별 씨, 가시죠. 이곳에 왔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홀에는 사람이 많아 얘기를 나누기 불편하니 VIP룸으로 갑시다.”말을 마친 그녀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갔다.나은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곧바로 뒤따라 올라갔다.최고급 VIP룸에는 이미 최상급 홍차와 다양한 한식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었다.청아한 솔향이 공간을 채웠지만, 나은별에겐 모든 것이 거슬렸다.원래 이곳에서는 한식 디저트와 차를 제공하지 않았고, 서양식 디저트가 주메뉴였다.북아메리카 유학 시절, 그녀는 동창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는데, 그때는 유강후의 멤버십 카드를 쓰며 정말 화려한 나날들을 보냈다.모든 직원이 그녀를 공손하게 대했다. 북아메리카 한인 사회에서는 모두가 그녀 뒤에 유강후가 있다는 걸 알기에 온갖 특권이 저절로 주어졌다.심지어 국내에 있는 나씨 가문도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특권들은 서서히 박탈됐고, 그녀 발밑에 있던 자들조차 머리 위에서 똥을 싸기 시작했다.그녀는 억울했다. 이 모든 것이 원래 그녀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이 계집애에게 넘어갔다. 왜?그녀는 문어귀에 서서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이년은 이 얼굴로 유강후를 꼬셨겠지. 얼굴만 망가지면 유강후가 이년을 버릴 텐데.’독기 어린 눈빛을 감지한 듯 온다연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건넸다.“나은별 씨는 이곳에 오신 적이 있으니 아시겠지만, 이 차와 디저트는 일반 손님께 제공되지 않아요. 디저트 장인이 궁중 다과 전통을 잇는 분인데, 극소량만 제작해 최상위 VIP고객에게만 제공한다고 하네요.
온다연은 그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자!”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나은별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질투와 혐오의 눈빛을 애써 감추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온다연 씨, 오셨군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명월루는 예약이 어려워 보통 일주일 전에 연락해야 하는데, 다행히 제가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칸막이가 있는 자리로 안내받았어요.”명월루는 북아메리카 지역의 고급 멤버십 클럽으로, 연회비만 수억에 달하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이나 재벌이다.나은별은 자기가 이곳 주주와 아는 사이라는 점과 온다연이 북아메리카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곳 상황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의 등장은 그녀의 예상을 뒤집었다.온다연은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왔고 호위 차량마저 롤스로이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얼굴이 예쁜 건 그렇다 치고, 몸에 걸친 옷만 가격이 수십억은 될 것 같았다.이는 나은별이 기억하는 온다연과 전혀 달랐다.기억 속의 온다연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소녀였고, 아름답지만 카리스마는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온다연은 카리스마가 넘쳐 ‘여왕님’ 같은 포스를 풍겼다.‘이년이 죽은 줄 알았더니 3년 동안 뭘 한 거야? 왜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지?’온다연이 입은 드레스는 북아메리카 최고 디자이너의 핸드메이드 오트쿠튀르였고, 보석은 200억, 가방은 6억 넘었다.반면, 그녀가 입은 옷은 지난해 출시된 샤넬 슈트로 유행이 지난 지 오래다. 이전 같으면 이런 옷은 진작에 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나은별은 이제 더 이상 최고급 명품 브랜드의 한정판 단골 고객이 아니다.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자기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안쪽에서 얘기합시다.”나은별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이곳은 상류층이 모이는 곳인데, 온다연 씨는 처음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원한다면 잠시 후에 내로라하는 몇몇 친구를 소개해 드릴게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혜린이 빵 터졌다
그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즉시 답장이 날아왔다.“제가 당신의 과거를 알아요.”한 사람의 모습이 온다연의 뇌리를 스쳤다. 나은별!그녀는 직감적으로 문자를 보낸 사람이 나은별이고, 좋은 일이 아닐 것임을 알았다.유강후가 나은별과의 관계를 대충 설명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단지 약간의 오해일 수 있겠는가?어제 주차장에서 그녀는 비록 차 안에 있었지만 나은별의 광기 어린 행동과 불만스러운 눈빛을 똑똑히 보았다.같은 여자로서, 온다연은 나은별이 유강후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다.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욕망과 집착이었다.나은별! 이 여자는 보통이 아니다.유강후가 꺼지라고 하지 않았을 뿐 극도로 혐오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나은별은 끈질기게 매달렸다.게다가 동시에 두 사람에게 질척대고 있었다.이런 여자를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 게 뻔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온다연은 답장을 보냈다.“나은별 씨 맞죠?”잠시 후 답장이 왔다.“맞아요. 저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래요? 유강후가 과거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온다연이 답장하기도 전에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명월루에서 차 한잔하는 게 어때요? 꼭 오시리라 믿어요.”온다연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야지, 왜 안 가!’잠시 생각하더니 그녀는 임혜린에게 문자를 보내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한참 지나 그녀는 어제 도착한 맞춤 제작 블랙 드레스를 선택했다.블랙 드레스는 그녀의 허리 라인과 비율을 완벽히 드러내 평소보다 성숙하고 섹시해 보였다.그녀는 또 보석함을 열고 화려하지 않지만 값비싼 다이아몬드 세트를 골랐다.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강씨 집안 어르신이 선물한 반지를 끼고, 강현미가 직접 골라준 한정판 가방을 들었다. 전 세계에 3개뿐인데, 나머지 두 개는 어느 나라 왕비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며 집사에게 지시했다.“강후 씨의 롤스로이스 팬텀을 앞에 세우고, 호위용으로 롤스로이스 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