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화

작가: 손이영
한참 후, 유강후는 다시 염지훈을 쳐다봤다. 그의 매서운 눈빛은 염지훈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염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제가 도련님 집 아이를 훔쳤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죠?”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키가 비슷하고 모두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유강후는 염지훈보다 몇 살 연상이고 비즈니스와 정치계에서 몇 년 있다 보니 남다른 기세가 있었다.

순간 염지훈은 기 싸움에서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유강후의 눈빛만 봐도 숨이 막혀왔다.

비록 두 가문의 재력은 비슷했지만 유씨 가문은 정치계에서 더 잘나갔다. 그 때문에 염지훈은 유강후와 적이 되기 싫었다.

이때 염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강후 도련님, 제가 같이 찾아드릴까요?”

유강후는 염지훈의 뒤에 있는 캄캄한 반사 유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필요 없어.”

그리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유강후의 차는 주차장을 떠났다. 그제야 염지훈은 문을 열며 말했다.

“나와.”

문에 웅크리고 앉아 엿듣던 온다연은 문이 열리자마자 차에서 떨어지면서 이상한 자세로 착지했다. 그러자 염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부축했다.

온다연은 머리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차 문에 기대어 염지훈을 멍하니 쳐다봤다.

염지훈은 차 문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초라한 모습에 술 냄새까지 풍기는 온다연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온다연은 예쁘게 생겼고 피부도 하얗고 눈도 초롱초롱했다.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배짱이 좋은 것 같았다.

염지훈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온다연은 사정없이 훑어보았다.

“유강후랑 무슨 사이야? 왜 피해 다녀?”

온다연은 염지훈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난 그쪽을 모르는데요.”

그녀는 술에 많이 취해서 염지훈의 생김새를 잘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과 더운 날에 두꺼운 옷차림을 한 것을 보니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유강후처럼 키가 크고 카리스마가 넘쳐 위에서 아래로 그녀를 내려다볼 때 자꾸 유강후가 떠올랐다.

온다연은 한 걸음 물러서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저리... 저리 가...”

염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온다연에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언짢은 말투로 말했다.

“참, 요즘 시대는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을 못 받네. 너를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온다연은 담배 연기에 기침을 심하게 했다. 하마터면 똑바로 서지 못할 뻔했다. 그녀는 서둘러 차 문을 붙잡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염지훈은 그녀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기,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데려다줘?”

그러자 온다연은 손을 흔들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녀가 점점 멀어져가며 보이지 않자 염지훈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강후를 무서워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염지훈은 큰 흥미를 느꼈다. 온다연은 교학동 건물 앞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정신을 차렸다.

손발에 힘이 조금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위는 아까보다 더 아팠고 심한 통증으로 위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임혜림에게 전화하려다가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진 것을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천천히 교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몇 걸음 걷자 빨간 페라리 한 대가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돌려 화단 뒤편 그늘 속으로 숨었다.

차는 온다연과 4, 5미터 떨어진 곳에 멈춰 섰고 젊은 여자 두 명이 차에서 걸어 내려왔다.

키 큰 여자는 예쁘게 생겼고 크롭탑을 입고 최신 샤넬 백을 들고 있었다. 키 작은 여자는 흰색 원피스에 검은 머리였고 청순하고 여린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키 큰 여자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키 큰 여자의 이름은 유하령이였고 그녀는 유강후의 친조카였다. 키 작은 여자는 유하령 보모의 딸 진설아였다. 진설아는 어릴 때부터 유하령의 껌딱지였다.

온다연은 그들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유하령은 내년에 귀국한다고 했는데 왜 지금 왔을까?

이때 진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드디어 돌아왔네요. 언니가 없는 이 2년 동안 온다연 그 계집애가 제멋대로 날뛰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했어요. 며칠 전에 집에 갔을 때 자기가 진짜 유씨 가문 아가씨라고 했어요.”

유하령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라 핸드백을 차 문에 내리쳤다.

“계집애!”

진설아는 청순한 비주얼을 가졌지만 질투심이 가득한 여자였다.

“그리고 대학원 입학시험 면제를 받았는데 그 자격을 갖기 위해 책임 선생님과 잤다고 하던데요. 정말 더러워!”

그 말을 듣자 온다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설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능력은 청출어람이었다.

유하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언제까지 잘난 척하나 보자. 한 달만 지나면 주한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이 출소할 거야. 그 자식들은 거지야. 그때 돈을 좀 주고 온다연이랑 침대에서 자는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걔는 끝장이야. 어느 학교에서 이런 학생을 받아들일까? 하하하.”

진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피식 웃었다.

“역시 언니. 다 생각이 있었네요.”

유하령은 차갑게 웃었다.

“그 계집애는 주한이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줄 알았을 거야. 그렇게 주한이를 좋아하는데 그의 진짜 사인을 안다면 충격받을 거야. 그 계집애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온다연은 그 말을 듣자 유하령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주한이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은 게 아니라고? 그럼 진짜 사인은 뭘까?

온다연의 가슴과 위는 마치 찢어지는 듯 아파져 왔다. 괴로워 토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왜 유하령은 그녀와 나이가 같은데 이렇게 지독할까? 그리고 진설아도 온다연처럼 모두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인데 왜 그녀를 짓밟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려고 할까? 단지 온다연이 심미진의 조카라는 이유 때문일까?

유하령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먼 곳을 차갑게 바라봤다.

“심미진 이 천한 년이 아들을 낳고 싶어 한대. 아빠 말로는 임신 준비를 하고 있고 약을 먹고 심지어 주사까지 맞고 있대. 아들을 낳아 유씨 가문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걸까? 그래. 낳으라고 해. 괴물이나 불구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하.”

그러자 진설아가 말했다.

“이 일은 제가 어머니랑 잘 상의해 볼게요. 별문제 없을 거예요.”

유하령은 담배를 집어 던지고 진설아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네가 말을 잘 듣기만 한다면 내가 너를 잘 대해줄 거야.”

그러자 진설아가 얼른 말했다.

“언니, 빨리 갑시다. 염지훈이 도착했을 거예요. 이 학교에 미친년이 너무 많아요. 빨리 갑시다.”

그 말을 듣자 유하령이 미간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누가 감히 내 남자를 건드려. 죽여버릴 거야.”

두 사람은 점점 멀어져갔고 온다연은 그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염지훈? 아까 그 남자?

온다연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살랑살랑 부는 저녁 바람에 그녀의 앞머리가 흩날렸다. 마침 그녀의 미간에 그늘이 지면서 그녀가 무슨 표정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위가 다시 심하게 아파져 오자 온다연은 그제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경원시의 저녁은 낮보다 더 번화했고 경원 사대는 비록 교외에 위치했지만 교문 밖은 차들로 붐볐고 불빛 때문에 대낮처럼 밝았다.

온다연은 눈앞의 불빛 때문에 더 위가 아파져 왔다. 그녀는 조금 걷다가 오동나무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이때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차창을 내리자 그윽한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그녀를 쳐다봤다.

바로 유강후였다.

그는 초췌한 온다연을 쳐다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올라타!”

관련 챕터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3화

    온다연은 고개를 번쩍 들어 유강후를 쳐다봤다. 서늘한 눈동자는 미동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분위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녀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삼... 삼촌...”유강후는 왜 아직 떠나지 않았을까? 왜 아직도 여기 있을까?유강후는 뼈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핸들을 튕기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하는 어투가 담겨있었다.“다연아, 나는 인내심이 별로 없어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차에 타라고.”온다연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유강후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의 위는 더 아파졌다.그녀는 하는 수 없이 뒷문을 열고 유강후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에어컨 바람 때문에 차 안은 냉기가 가득했고 온다연은 냉기 때문에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위는 찬바람을 맞아 더 아파졌다.유강후는 조수석 자리에서 어떤 물건을 집어 들고 온다연에게 건넸다.“마셔.”온다연은 받아보니 숙취해소제였다.그리고 유강후는 또 물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입가심해.”온다연은 위가 아파서 허리를 거의 펼 수 없었지만 유강후의 강한 압박감 때문에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고도 속쓰림은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통증이 심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은땀을 흘렸다.그녀는 유강후가 자기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심한 통증 때문에 그녀는 사색조차 할 힘이 없었다.그녀는 머리를 숙였고 그녀의 반들반들한 이마에는 식은땀이 촘촘히 맺혔다.유강후는 한 손에 핸들을 잡고 가끔 백미러로 온다연을 쳐다봤다.희미한 불빛 때문에 그는 온다연이 조그맣게 웅크리고 차 문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고집스러운 모습이 성격이 얄궂은 고양이와 같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고 차 안은 답답한 분위기였다.마침내 가로수길에 접어들었을 때, 유강후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이 길에는 차들이 엄청 적었다. 길 양측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4화

    온다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유강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이때 그녀는 진정으로 남녀의 체형과 힘의 차이를 느꼈다.유강후는 덩치가 큰 몸매는 아니다. 188의 키에 날렵하고 늘씬한 몸매를 가졌고 셔츠와 양복을 입을 때 세련되고 도도했다. 전혀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온다연은 유강후가 옷을 벗으면 얼마나 튼튼하고 섹시한 몸매를 가졌는지 알고 있다. 3년 전 그날 오후, 유강후는 한 손으로 온다연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가두었다.하지만 온다연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그날 오후 그의 눈빛이었다. 붉게 달아오르고 이성을 잃은 그 눈은 짐승처럼 보였고 가끔 그녀의 꿈에도 나타났다. 그 눈빛만 떠올리면 온다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래서 유강후에 대한 두려움은 신체적과 정신적에세 모두 비롯됐다.“저, 저 도망치지 않았어요...”온다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유강후는 허리를 굽혀 두 손을 침대에 짚고 온다연을 침대와 자기 몸 사이에 가두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다연아, 어떤 일은 말이야. 네가 피할수록 더 엉망진창이 될 거야.”온다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몸은 가볍게 떨렸고 겁에 질려 입술을 깨물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강후는 그런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내가 왜 일찍 돌아왔는지 알아?”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못했고 입술만 꽉 깨물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 옆에 작은 점을 하얗게 될 정도로 깨물었고 마치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꽉 움켜쥐고 입술을 그만 깨물도록 하였다.“대답해.”온다연은 침대보를 움켜쥐고 고개를 돌렸다.“몰라요...”그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유강후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싸늘하게 말했다.“알고 싶지 않은 건 아니고?”그러자 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녀의 턱을 꽉 잡고 있던 유강후의 손에 힘이 더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5화

    온다연은 꼼짝도 못 하고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유강후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온다연은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그녀가 막 눈을 뜨려고 하자 유강후는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온다연을 침대 안쪽으로 조금 옮긴 후 신발을 벗고 그녀 옆에 누웠다. 병원의 침대는 매우 작았다. 두 사람은 불편하게 누워 있었다. 특히 온다연은 유강후를 매우 두려워했다.유강후의 카리스마와 그의 체향이 공기 속을 가득 채웠다. 온다연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의 냄새로 가득했다. 유강후의 몸은 그녀의 등에 달라붙었고 온다연은 그 열기로 인해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고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그녀의 침대에 누울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작은 병원 침대에 말이다. 유강후는 결벽증이 있지 않았던가?온다연은 긴장해서 울고 싶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하지만 유강후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뉴스를 보기 시작했고 문자도 몇 개 보냈다.시간은 그렇게 1분 1초 지났고 온다연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약의 작용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나른해지자 그녀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유강후의 무릎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작고 부드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손톱은 짧았고 매니큐어 같은 것을 바르지 않아 깨끗해 보였다. 손가락은 통통했고 귀여웠다.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손을 빼갔고 몸을 뒤척이며 유강후에게 얼굴을 대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손과 발도 그의 몸에 걸치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하니야, 기다려...”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젖은 상태로 얼굴에 붙어있었다. 머리카락이 검었기 때문에 얼굴이 유난히 하얘 보였다.온다연의 이목구비는 유난히 예뻤고 피부도 하얗고 입술 옆에 보일락 말락 하는 점마저도 매력적이었다.그런데 두 눈은 수줍게 생겼고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6화

    온다연은 더 긴장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까지 더듬었다.“아니에요. 거짓말 아닌데요.”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다. 온다연이 13살 때부터 심미진은 그녀를 거의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프다는 일을 언급하지 말든지 결과는 마찬가지이다.사실 유하령이 온다연의 배를 찰 때 심미진은 아마 내장을 다쳤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심미진은 온다연에게 4만 원을 주면서 스스로 진료소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 후, 온다연은 유씨 저택에 거의 돌아가지 않았고 심미진에게 자기가 괴롭힘을 당한 일도 말하지 않았다.게다가 3년 전 유강후와 그 일이 있고 난 뒤 유하령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온다연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유하령은 그녀의 머리채를 뽑고 뺨을 때리고 밥에 압정을 넣고 침대에 작은 동물까지 던졌다. 게다가 몇 번은 깡패들을 찾아 그녀를 골목에 틀어박고 죽을 때까지 때렸다. 그러면서 온다연의 내장은 더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유강후와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그런 생각에 온다연의 눈은 더 아래로 처졌고 도시락을 쥔 손도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갑자기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던 유강후는 잡고 있는 그녀의 턱을 놨다. 그러자 온다연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생겼다.피부가 이렇게 부드럽다고?유강후의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연아, 나는 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게 제일 싫어.”그러자 온다연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삼촌, 저 거짓말 안 했어요.”그렇게 말하며 온다연은 손을 앞으로 옮기면서 도시락으로 유강후의 손목을 스쳤다.그러자 도시락의 뜨거운 온도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온다연의 손바닥을 보자 이미 빨갛게 덴 것을 발견했다.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도시락이 이렇게 뜨거우니 분명 엄청 아팠을 것이다.유강후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고 턱선은 더 날렵해졌다.“다연아, 안 아파? 아니면 아픈 걸 잘 참는다고 생각해?”그러면서 유강후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7화

    온다연은 이런 생각에 참지 못하고 냄새를 맡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옷에서 유강후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만약 그의 냄새가 났다면 그녀는 정말 입을 수 없었을 것이다.속옷은 딱 그녀의 사이즈였다. 온다연은 키가 161cm이고 90근에 불과한 마른 체격이었지만 브래지어는 C컵을 입어야 했다.허리가 가늘고 다르가 길며 애플 힙라인 때문에 윗옷과 바지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옷을 살 때마다 다른 사이즈로 조합해야 한다.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몸에 꼭 맞는 사이즈의 속옷을 보았을 때 조금 놀랐다. 그리고 두 치마의 가격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치마도 하나는 흰색 하나는 하늘색이었는데 한 벌은 1,700만 한 벌은 2,500만이었다.온다연은 두 치마의 가격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강후는 이 치마를 어디에서 샀을까? 환불할 수 있을까?하지만 이 원단은 정말 부드럽고 편안했다. 온다연은 이렇게 좋은 원단의 옷을 입어본 적이 없다.이때 집사가 그녀를 불렀다.“다연 아가씨, 어떠세요?”온다연은 할 수 없이 대답했다.“괜찮아요.”그리고 흰색 치마를 입었다.치마는 심플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잘록한 허리라인이 완벽히 드러나고 다리가 길어 보이는 포인트를 모두 살렸다.옷을 다 입고 나서 그녀는 다시 쇼핑백을 봤더니 작은 선물 상자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머리띠가 있었다.머리띠에는 새하얀 진주가 있었고 양쪽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정교한 공예 기술 때문에 한눈에 봐도 비싼 제품임을 알 수 있었다.온다연은 가격표를 보고 싶었지만 찾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머리를 어깨에 풀어 헤치고 머리띠로 묶었다. 화장실을 나서자 집사의 무뚝뚝한 표정 때문에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집사의 말투는 한결같았다.“다연 아가씨, 도련님이 며칠 동안 저한테 아가씨를 돌보라고 하셨어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하세요.”온다연은 이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8화

    온다연은 두려워서 몸이 경직되었다. 유강후는 차가운 손등으로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가 거두어들였다.“집사님이 네가 오후부터 열이 나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열이 내렸네. 의사를 부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온다연은 그제야 자신이 오후에 열이 났고 반나절이나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잤는데 왜 머리가 아직도 무거울까?온다연은 그 원인을 유강후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 탓으로 돌렸다.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삼촌, 불 좀 켜주시면 안 돼요?”유강후는 그러자 문 쪽으로 가서 불을 켰다. 조명이 켜지자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강후를 쳐다봤다.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유난히 늘씬해 보였고 매력적이었다.그는 넥타이도 맸고 조명 아래 다이아몬드 옷깃이 화려하게 빛났다. 무심코 들어낸 손목시계도 비싼 명품 같았다.온다연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많이 봤지만 유강후 같은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차갑고 섹시하고 고급스러웠다.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아까보다 더 긴장되어 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유강후는 더웠는지 넥타이를 벗어 의자에 털썩 걸치고 양복을 벗더니 가늘고 흰 줄무늬 셔츠를 드러냈다.외투를 벗은 유강후는 카리스마가 줄었지만 도도함이 더 돋보였다. 온다연은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는 외투를 놓고 나갔다가 2분도 안 되어 다시 돌아왔는데 이때 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가 더 늘어났다.유강후는 쇼핑백에서 도시락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일어나서 뭐 좀 먹어.”온다연은 확실히 배가 고팠기에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손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하얀 진주 머리띠를 쥐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를 한번 훑어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잘 어울리네.”깔끔한 디자인의 이 드레스는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며 전에 입었던 치마보다 훨씬 소녀답고 예뻤다.온다연은 치마를 잡아당기며 속옷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감사합니다.”그리고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19화

    유강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아. 여기 병원인 거.”그러자 온다연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유강후를 바라봤다. 그녀는 유강후가 머리가 아프거나 아니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혹시 온다연을 유하령으로 착각했나? 이렇게까지 온다연을 챙길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그러자 온다연이 한 번 더 말했다.“삼촌, 저는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유강후가 대답했다.“그렇지. 근데 뭐?”온다연은 다시 멍해졌다. 유강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약혼녀인 나은별과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은 적어도 침대가 많아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자지 않아도 되니깐 말이다.“그런데...”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을 듣지 않고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러자 온다연이 다급하게 쫓아갔다.“삼촌!”유강후가 돌아서자 하마터면 달려오는 온다연과 부딪힐 뻔했고 그녀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키 차이가 큰 두 사람이 가까이 서자 온다연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서 긴장을 떨며 옷을 움켜쥐었다.그녀의 깨끗한 이마와 긴 속눈을 바라보면서 유강후가 말했다.“왜? 같이 씻고 싶어?”뭐라고?온다연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충격으로 반짝반짝 빛났다.온다연의 눈동자는 보통 사람보다 까맣고 밝아서 사람을 진지하게 바라볼 때 애틋함이 느껴졌다. 지금 화를 내는 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 알았지.”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의 손길을 패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금세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의 문은 방음이 잘되지 않고 유리로도 희미하게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유강후의 그림자는 늘씬하고 날렵하고 힘이 넘쳐 보였다. 온다연은 자기도 모르게 그 황당한 오후가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20화

    유강후가 두 팔로 온다연을 양옆을 짚고는 이렇게 말했다.“온다연,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유강후는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온다연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이때 유강후의 핸드폰이 열렸다. 벨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숨 막히는 이 공간에서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유강후는 언짢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더니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3시간이 지난 뒤였고 그때 온다연은 이미 잠에 들었다.잠에 든 온다연은 매우 얌전했고 연분홍 입술은 더 매혹적이었다.유강후는 침대맡에 앉아 그런 온다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옷을 두던 유강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주워들어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눈빛이 차가워지며 벗어둔 옷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이때 온다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하니, 그만.”온지연이 몸을 뒤척이며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잠에 들었다.유강후의 미간이 티 나지 않게 구겨졌다.또 그 고양이 꿈을 꾼 건가? 그렇게 좋다고?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온다연을 안으로 살짝 옮기더니 옆에 누웠다. 그러고는 온다연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이튿날, 온다연이 깨어나 보니 집사가 와 있었다.말끔하게 치워진 병실은 어제와 달랐다. 커튼이 전부 열려 있어 따듯한 햇빛이 창틀을 비추며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 꽃병에는 하얀 장미가 한 아름 꽂혀 있었는데 싱그러우면서도 우아했다. 방 한가운데 있는 공기청정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 소독수 냄새를 전부 밖으로 빨아내고 있었다.아직 잠에서 덜 깬 온다연은 비몽사몽인 표정으로 집사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집사 장화연의 얼굴은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아무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다. 장화연은 온다연이 깬 걸 보고는 준비한 아침을 대령했다.온다연이 아침 메뉴를 한번 슥 스캔했다. 죽만 해도 여러 가지였다. 거기에 계란찜, 우유, 두유, 빵,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까지, 테이블을 꽉 채울 정도였다.온다연이

최신 챕터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5화

    그는 꿈에도 몰랐다. 그토록 존경하던 큰형님이 자기 자식들이 온다연을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었다니. 온다연이 신고도 하고 저항도 해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다음번 더 잔인한 괴롭힘뿐이었다.그의 어린 온다연은 그렇게 10년을 고스란히 혼자 견뎌야 했다.‘유자성, 그 인간은 죽어 마땅해!’이런 생각들이 떠오르자 후회가 숨통을 조여왔다. 그는 온다연을 꽉 껴안았다. 그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그의 속마음을 알 리 없었던 온다연은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왜 내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어요? 몰래 찍은 것 같던데.”유강후는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어렸을 때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데 나인들 무슨 수가 있겠어?”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땐 내가 그렇게 어렸는데 어떻게...”유강후는 그녀를 더 꽉 껴안고 나지막이 말했다.“네 생각처럼 그렇게 일찍부터는 아니야. 네가 열세 살 때, 그때부터 널 진심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했어.”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그래도 나랑 여덟 살 차이인데, 내가 열세 살이면 아저씨는 스물한 살이나 먹은 노인네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내가 늙었다고?”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지금 서른하나잖아요. 서른 살이면 엄청 나이 든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그럼 지금 한번 확인해 볼래? 도대체 내가 늙었는지 아닌지...”온다연은 깜짝 놀라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나 몸이 끈적거려서 씻고 올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못 가 유강후에게 붙잡혔다.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바보야, 욕실이 어딘지 알아?”온다연은 불만스럽게 말했다.“나 혼자 찾아갈 수 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내려와서 스스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유강후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가만히 있어!”온다연은 그제야 그에게 다시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4화

    온다연은 입을 다물었다.대가족은 집집마다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강씨 가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섣불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다.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온다연은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기에 유강후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금방 알아챘다.그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온다연: “조금요.”유강후는 자리에 앉아 그녀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도록 하고 나직하게 말했다.“다연아,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동정심을 발휘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강씨 가문은 엄청나게 커. 이 저택의 도우미, 관리인, 운전기사만 해도 이삼백 명은 된다고. 그러니 그 모든 걸 관리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야. 만약 매일 각자 작은 실수를 하나씩만 해도,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길지 상상도 못 할걸? 그리고 내가 그녀를 해고한 건 오늘 일 때문만은 아니야.”“저 사람, 우리 집에서 몇 년이나 일했어. 그런데 작년에 내가 돌아왔을 때, 그 여자 아들이 학교에서 자기가 강씨 가문 방계 도련님이라고 으스대면서 애들을 괴롭힌다는 제보가 들어왔었어. 그때 집사가 경고를 줘서 겨우 조용해졌지만. 작년엔 내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에 돌아오자마자 또 같은 문제로 고발이 들어왔어. 그러니 이런 사람은 더 두고 볼 필요 없이 일찍 내보내는 게 맞아.”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이제도 내가 냉정하다고 생각해?”온다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처럼 무섭게 하면 누구든 오해할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작은 얼굴을 꼬집으며 그녀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나직하게 말했다.“이제 말해봐. 방금 뭘 생각했는데 그렇게 아파서 아예 기절한 거야?”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어렴풋한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자 그녀는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옛날에 누가 나를 괴롭혔었어요?”온다연은 이마를 누르면서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골목으로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3화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일 일은 내일 보자. 오늘은 첫날이니까 회장님한테 대충 둘러대고. 모두 가서 쉬어.”사람들이 가고 나서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새 잠옷을 입히고 미지근한 물로 수건을 적셔 다시 얼굴을 닦아주었다.얼마 후, 온다연이 깨어났다.머리는 여전히 아팠고 그 장면들은 흐릿하면서도 너무 생생해서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깨어나자 부축해서 앉혀주고 등에 쿠션을 받쳐주었다.“머리 아직도 아파?”온다연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또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목이 심하게 말랐다.그녀는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물, 물 마시고 싶어요.”유강후는 문으로 가서 밖에 서 있는 도우미에게 말했다.“물 좀 갖다 줘. 따뜻한 물로.”그녀가 곧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목이 너무 말랐던 온다연은 물을 받자마자 크게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는 바로 물을 뱉어내며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앗, 뜨거워, 뜨거워!”유강후는 그제야 보온병에 담긴 물이 펄펄 끓는 물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는 곧바로 온다연의 턱을 잡고 화상을 입었는지 확인했다.그녀의 연약한 입안은 이미 뜨거운 물에 데어 하얗게 변하고 껍질이 벗겨져 있었다.그는 순간 격노하여 물컵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당장 들어와!”도우미는 너무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유강후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마실 물인데 물 온도 확인도 안 해?”그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죄송합니다. 방금 오 집사가 모든 사람을 거실로 부르셔서 저만 여기 남아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거실 일이 신경 쓰여서 물 따르다가 정신이 없어서 뜨거운 물인지 찬물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가서 급여 정산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마.”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그 사람은 순간 당황하여 바로 무릎을 꿇고 울며 말했다.“도련님, 제발 자르지 마세요. 저는 강씨 가문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2화

    유강후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오늘 밤 누가 내 방에 왔었지?”오진숙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밖에 잠깐 서 계셨을 뿐입니다. 어제 제가 집 안 구석구석 다 확인했는데 아무런 허점도 없었습니다. 이 사진첩이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유강후의 눈에 뚜렷한 살기가 스쳤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모든 책임자와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거실로 불러서 내 앞에서 하나하나 조사해!”말을 마친 그는 온다연을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치의가 도착했다. 진찰 후, 의사는 강한 자극으로 인한 실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며 진정제를 처방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의사가 떠난 후, 진씨 가문에서 따라온 네 사람이 시중을 들려고 들어오려 하자 유강후는 차갑게 말했다.“댁 아가씨께서 이전에도 이렇게 실신한 적이 있었나?”그중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3년 전 처음 돌아왔을 때는 자주 그랬습니다. 그 후로는 점차 나아졌는데, 아마도 아가씨께서 무언가를 보고 예전 일을 떠올리신 것 같습니다.”유강후가 말했다.“오늘 일은 진 회장께는 알리지 마라. 알겠지?”책임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하지만 회장님께서는 아가씨 일은 사소한 것까지 매일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는 해고입니다.”유강후는 문 앞 네 사람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었다. 그 압도적인 시선에 그들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이 네 사람은 진씨 가문에서 가장 경력이 많고 솜씨 좋은, 두 남자와 두 여자로 이루어진 최정예 팀이었다.진수현은 딸의 이번 외출에 공을 많이 들였지만 유강후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계략이라면 유강후도 그에 못지않았다.이들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유강후의 손바닥 안이었다.유강후는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역력해질 때까지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그제야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충성스럽고 책임감 강한 건 좋은 일이지. 난 이런 사람들을 존경해.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나랑 너희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1화

    “그 양반이 얘는 유씨 가문 사람 아니라고 했잖아. 뭘 걱정해...”“어린 게 꽤 예쁘장하네. 나이만 찼어도 오늘 맛 좀 봤을 텐데.”“이 조그맣고 보드라운 손은 남자 꼬시려고 있는 거야?”“바늘 가져와. 바늘을 손톱 밑에 찔러 넣어. 피는 안 나게 해야 돼. 이년의 그 상간녀 이모가 눈치채지 못하게.”“눈치채면 어쩔 건데? 상간녀가 자리에 올라도 유씨 가문에서 개처럼 기고 있잖아. 나쁜 년!”“상간녀의 조카면 똑같이 천박한 상간녀야. 태생이 남자 꼬시는 걸레라니까!”...화면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고 온다연의 머리는 점점 더 아파왔다.누군가 전기톱으로 그녀의 머리를 쪼개고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는 것 같았다.결국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낮게 신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이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가 들어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빨리, 도련님께 알려! 빨리!”유강후는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어머니가 직접 온다연을 데리고 쇼핑을 갔고 집안에도 온통 유씨 가문 사람들뿐이었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그는 대충 인사를 하고 연회장을 나섰다.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우미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나오다 그와 부딪혔다.그가 차갑게 물었다.“무슨 일로 이렇게 허둥대?”도우미가 다급하게 외쳤다.“도련님! 큰일 났어요! 진유나 씨가 쓰러지셨어요!”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유강후는 다급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집에 들어서니 2층에 있던 집사 오진숙이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도련님, 진유나 씨가 옷 방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제가 감히 손댈 수 없어서 주치의에게 연락했습니다. 곧 도착하실 겁니다.”유강후는 단숨에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온다연은 옷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작은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이마와 턱, 심지어 목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바닥에도 땀방울이 떨어져 작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유강후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고 술기운도 싹 날아갔다.심장 깊은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70화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오 집사님, 강후 씨는 자주 집에 돌아오지 않나요?” 오진숙은 공손히 대답했다. “도련님은 6, 7년 전만 해도 자주 돌아왔지만 그 뒤로는 대부분 집에 없으셨습니다. H국과 북아메리카를 오가며 지내셨죠.” “평소에 그를 따라다니는 집사셨나요?” 오진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전에는 장화연 집사께서 도련님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장 집사님께서 H국에 계셔서 그동안은 제가 이 집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장화연?’ 진유나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마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확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잠시 후 그 느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뭔가 불쾌한 감정이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집 안의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전통 스타일로 차분하고 고급스러웠다. 마치 유강후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진유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유강후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비밀을 파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진유나는 옷장을 한 바퀴 돌며 살펴봤지만 특별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옷장의 마지막 칸을 열었을 때 순간 멈칫했다. 그곳에는 두 벌의 잠옷이 걸려 있었다. 순수한 색상의 비단 잠옷 긴 한 벌은 분명히 유강후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성용 잠옷이었다.‘이건 대체 누구의것일까?’두 벌의 잠옷은 서로 나란히 붙어 있었고 소매가 얽혀 있었는데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듯했다. 진유나는 호기심에 잠옷을 살짝 당겨 보았다. 그랬더니 두 벌의 잠옷이 한꺼번에 떨어지며 그 아래에 있던 몇 권의 앨범이 드러났다. 그녀는 앨범을 집어 들고 펼쳐 봤다. 그 안에는 유강후의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들이 있었다. 어릴 때의 유강후은 정말 예쁘고 잘생겼다고밖에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흰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나 짙은 남색 더블브레스트 코트를 입은 모습이나 또 학교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69화

    진유나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 여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부인, 안녕하세요.”강현미는 그 여자가 들고 있던 물과 약을 받아 들고는 진유나에게 말했다. “이 분은 내 비서 임청하야.”알고 보니 이 사람은 예전에 유강후가 후원해 준 그 여자였고 유강후의 고인이 된 친누나와 조금 닮아서 강현미는 그녀를 곁에 두고 자신의 개인 비서로 삼아 자식을 잃은 아픔을 위로하려 했다. 진유나는 예의상 임청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임청하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록 태도는 공손했지만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임청하는 강현미의 사람이라 그녀도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었다. 강씨 가문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집사 하나의 마음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강현미는 약을 먹고 연회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진유나는 조용히 말했다.“먼저 가세요. 저는 강후 씨 방에 좀 가보고 싶어요.” 강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있던 하인을 불렀다. “오 집사, 여기서 진유나 씨를 모시고 있어. 기억해. 진유나 씨는 평범한 손님이 아니야. 무엇을 하든 괜찮으니 강후가 화내지 않도록 잘 챙겨.” 오 집사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큰 사모님.” 조금 걸어 나가다가 강현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진유나를 한 번 바라봤다. 진유나는 여전히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강현미는 뒤돌아 임청하를 한 번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넌 그 애를 본 유일한 사람이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알겠어?” 임청하는 눈을 떨구고 온화하게 말했다. “네. 강 대표님.” 강현미는 담담히 말했다. “네 마음은 알겠다. 사실 몇 년 전 나도 내가 죽은 후에 네가 강후 옆에서 일하게 될 거로 생각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그 아이는 죽지 않았고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68화

    강현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내 일로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돼.”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예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유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기억이 없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떠오를지도 모르죠.” 강현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후가 너한테 예전에 너희가 함께했다는 얘기 한 적 있어?” 진유나는 이 주제가 나올 줄 몰라 순간 멈칫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네. 말하긴 했어요. 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안 했어요. 그냥 예전에 우리가 사귀었고 오해로 헤어졌다고만 했어요. 그 후 제가 H국을 떠나 친부모님이 찾아왔고 그때부터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고 했죠. 그러다 강후 씨가 동남아시아에 와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고요.”사실 진유나는 유강후가 그렇게 말한 게 완전히 문제가 없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유강후에게 강한 반응을 보였고 첫 만남에도 묘한 친숙함을 느꼈기 때문에 그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오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강후가 계속 말하지 않았다. 강현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설명했구나. 이 아이는 너와 관련된 일만 생기면 항상 선을 넘는 행동을 많이 해.” 그녀는 몸을 돌려 진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말해봐. 넌 강후를 좋아하니? 강후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 들어?” 진유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강 대표님, 만약 제가 그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면 강후 씨와 함께 북아메리카로 올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 진씨 가문도 큰 집안인데 굳이 누군가와 혼인을 맺을 필요는 없으니까요.”강현미의 시선이 온전히 진유나에게 머물며 천천히 말했다. “네가 많이 달라졌구나. 진씨 가문에서 정말 훌륭하게 잘 자란 것 같아.”“하지만 한 가지 말해두고 싶어. 너희 사이의 오해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그건 단순한 연인 사이의 싸움 같은 게 아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967화

    진유나를 본 강씨 가문 어르신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우리 손자가 목숨을 건 듯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했더니 진씨 가문 따님은 역시 평범하지 않구나.” 진유나는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앞으로 나아가 전통 예법에 맞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강씨 가문 어르신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흐뭇하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와 진유나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감탄하듯 말했다. “참 곱게도 생겼구나. 우리 손자가 꿈에서도 잊지 못할 만하네.” 진유나는 과한 칭찬에 머쓱해져 서둘러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렇게까지 좋게 봐주실 것까진 없어요.” 그러자 강씨 가문 어르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평범하면 세상 사람들은 뭐가 되겠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점점 더 민망해진 진유나는 손끝을 살짝 움직여 유강후의 손을 몰래 감았다. 그러자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감싸 쥐고는 가볍게 자기 뒤로 끌어당겼다. “할아버지,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유나 씨가 놀라잖아요.”강씨 가문 어르신은 손자의 얼굴에 되찾은 생기와 자신감을 보며 기쁨과 안도 그리고 묘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그는 유강후의 어깨를 힘 있게 두드리며 연달아 세 번이나 말했다. “좋다. 좋아! 정말 좋구나.” 반면 강현미는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한마디만 남겼다. “두 사람 잘 지내도록 해라.” 그렇게 말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성대한 환영 연회가 열렸다. 거의 모든 강씨 가문의 일원이 참석한 자리였다.유강후가 그 자리의 중심이 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강씨 가문은 대대로 자손이 많지 않았고 강씨 가문 어르신의 직계는 더욱 그랬다. 그에게는 외동딸 강현미뿐이었고 강현미 역시 오직 유강후 하나만을 두었으니 그가 어디에 있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자리의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