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두려워서 몸이 경직되었다. 유강후는 차가운 손등으로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가 거두어들였다.“집사님이 네가 오후부터 열이 나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열이 내렸네. 의사를 부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온다연은 그제야 자신이 오후에 열이 났고 반나절이나 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잤는데 왜 머리가 아직도 무거울까?온다연은 그 원인을 유강후가 너무 가까이 다가온 탓으로 돌렸다.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삼촌, 불 좀 켜주시면 안 돼요?”유강후는 그러자 문 쪽으로 가서 불을 켰다. 조명이 켜지자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강후를 쳐다봤다.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유난히 늘씬해 보였고 매력적이었다.그는 넥타이도 맸고 조명 아래 다이아몬드 옷깃이 화려하게 빛났다. 무심코 들어낸 손목시계도 비싼 명품 같았다.온다연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많이 봤지만 유강후 같은 분위기를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차갑고 섹시하고 고급스러웠다.온다연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아까보다 더 긴장되어 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유강후는 더웠는지 넥타이를 벗어 의자에 털썩 걸치고 양복을 벗더니 가늘고 흰 줄무늬 셔츠를 드러냈다.외투를 벗은 유강후는 카리스마가 줄었지만 도도함이 더 돋보였다. 온다연은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는 외투를 놓고 나갔다가 2분도 안 되어 다시 돌아왔는데 이때 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 하나가 더 늘어났다.유강후는 쇼핑백에서 도시락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일어나서 뭐 좀 먹어.”온다연은 확실히 배가 고팠기에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손에는 무의식적으로 그 하얀 진주 머리띠를 쥐고 있었다.유강후는 그녀를 한번 훑어보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잘 어울리네.”깔끔한 디자인의 이 드레스는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며 전에 입었던 치마보다 훨씬 소녀답고 예뻤다.온다연은 치마를 잡아당기며 속옷 생각이 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감사합니다.”그리고
유강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알아. 여기 병원인 거.”그러자 온다연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유강후를 바라봤다. 그녀는 유강후가 머리가 아프거나 아니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혹시 온다연을 유하령으로 착각했나? 이렇게까지 온다연을 챙길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그러자 온다연이 한 번 더 말했다.“삼촌, 저는 유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유강후가 대답했다.“그렇지. 근데 뭐?”온다연은 다시 멍해졌다. 유강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약혼녀인 나은별과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곳은 적어도 침대가 많아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자지 않아도 되니깐 말이다.“그런데...”유강후는 온다연의 말을 듣지 않고 세면도구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러자 온다연이 다급하게 쫓아갔다.“삼촌!”유강후가 돌아서자 하마터면 달려오는 온다연과 부딪힐 뻔했고 그녀는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키 차이가 큰 두 사람이 가까이 서자 온다연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서 긴장을 떨며 옷을 움켜쥐었다.그녀의 깨끗한 이마와 긴 속눈을 바라보면서 유강후가 말했다.“왜? 같이 씻고 싶어?”뭐라고?온다연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유강후를 바라봤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충격으로 반짝반짝 빛났다.온다연의 눈동자는 보통 사람보다 까맣고 밝아서 사람을 진지하게 바라볼 때 애틋함이 느껴졌다. 지금 화를 내는 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 알았지.”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그의 손길을 패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금세 화장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의 문은 방음이 잘되지 않고 유리로도 희미하게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유강후의 그림자는 늘씬하고 날렵하고 힘이 넘쳐 보였다. 온다연은 자기도 모르게 그 황당한 오후가
유강후가 두 팔로 온다연을 양옆을 짚고는 이렇게 말했다.“온다연,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유강후는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온다연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이때 유강후의 핸드폰이 열렸다. 벨 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숨 막히는 이 공간에서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유강후는 언짢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더니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3시간이 지난 뒤였고 그때 온다연은 이미 잠에 들었다.잠에 든 온다연은 매우 얌전했고 연분홍 입술은 더 매혹적이었다.유강후는 침대맡에 앉아 그런 온다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옷을 두던 유강후는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주워들어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눈빛이 차가워지며 벗어둔 옷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이때 온다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하니, 그만.”온지연이 몸을 뒤척이며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잠에 들었다.유강후의 미간이 티 나지 않게 구겨졌다.또 그 고양이 꿈을 꾼 건가? 그렇게 좋다고?유강후가 허리를 숙여 온다연을 안으로 살짝 옮기더니 옆에 누웠다. 그러고는 온다연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이튿날, 온다연이 깨어나 보니 집사가 와 있었다.말끔하게 치워진 병실은 어제와 달랐다. 커튼이 전부 열려 있어 따듯한 햇빛이 창틀을 비추며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 꽃병에는 하얀 장미가 한 아름 꽂혀 있었는데 싱그러우면서도 우아했다. 방 한가운데 있는 공기청정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 소독수 냄새를 전부 밖으로 빨아내고 있었다.아직 잠에서 덜 깬 온다연은 비몽사몽인 표정으로 집사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집사 장화연의 얼굴은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아무 감정이 없는 로봇 같았다. 장화연은 온다연이 깬 걸 보고는 준비한 아침을 대령했다.온다연이 아침 메뉴를 한번 슥 스캔했다. 죽만 해도 여러 가지였다. 거기에 계란찜, 우유, 두유, 빵, 그리고 여러 가지 밑반찬까지, 테이블을 꽉 채울 정도였다.온다연이
유강후가 차가운 눈빛으로 위에서 아래로 온다연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온다연, 뭘 하든 하지 않든 다 내가 결정해. 네가 참견은 필요 없어.”화들짝 놀란 온다연이 유강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맨날 이곳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뜬금없는 선물을 하니 온다연은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마음속으로 유강후의 행동이 다소 선을 넘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었지만 온다연은 이내 이 생각을 부정했다. 유강후가 어떤 사람인가? 온다연은 유강후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큼 오만한 사람은 아니었다.온다연이 입술을 깨물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제가 어떻게 감히 참견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유강후의 시선이 온다연이 깨물었던 입술로 향했다. 깨문 곳이 아직 촉촉했다. 유강후는 표정을 굳히더니 온다연을 풀어줬다.“아침 먹어.”목소리가 높지는 않았지만 차갑기 그지없었고 거절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온다연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조금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이상해 몰래 유강후를 훔쳐봤다.유강후는 먹는 속도가 꽤 빨랐지만 동작은 여전히 우아했다. 온다연의 시선을 느낀 유강후가 식기를 내려놓더니 온다연을 바라봤다.“할 말 있으면 해.”온다연은 유강후와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엔 참지 못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앞으로 선물은 더 안 해주셔도 돼요. 옷이나 액세서리는 다 너무 비싸요...”유강후가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마음에 안 들어? 그럼 바꾸지 뭐. 오후에 비서 보낼 테니까 좋아하는 브랜드나 스타일 알아서 골라.”말문이 막힌 온다연이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아니에요. 삼촌. 저 이런 거 필요 없어요...”이때 유강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고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하령아.”방안이 조용했던지라 온다연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삼촌, 나 돌아온 지도 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지금까지 얼굴도 안 보여주고
무슨 무서운 물건이라도 부딪친 것처럼 온다연은 냉큼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유강후를 쳐다볼 엄두를 못 냈다.유강후는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다 못 맸잖아. 계속해.”유강후에게서는 다 가진 자의 강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말투도 차가운 게 어딘가 기분이 나빠 보였다.온다연은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입술을 깨물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깨물었던 입술은 촉촉해졌고 말캉한 입술은 더 빨개졌다.유강후가 눈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유강후의 입술이 온다연의 매끈한 이마에 닿자 온다연의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넥타이를 매는 데 계속 실패한 온다연은 조급한 마음에 몸이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말캉하고 작은 온다연의 몸집이 유강후의 몸에 찰싹 붙었다. 여름이라 옷이 얇았기에 온다연은 유강후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온다연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긴장하면 할수록 잘 매기가 더 어려웠다. 여섯 번을 맸는데도 매는 데 실패하자 더는 어쩔 방법이 없었던 온다연이 고개를 들고 작은 소리로 유강후를 불렀다.“삼촌.”그 부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다연은 유강후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고개를 들자 입술이 거의 그의 턱에 닿을 지경이라는 걸 말이다.온다연은 머리가 지끈거려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넥타이를 꽉 움켜쥐고는 버벅거렸다.“삼, 삼촌, 정말 못 하겠어요.”유강후는 터질 듯이 빨개진 온다연의 귀를 보더니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이리 와. 내가 가르쳐줄게.”온다연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 넥타이를 너무 꽉 움켜잡아 주름이 질 지경이었다. 곧이어 유강후가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 뼈마디가 선명한 기다란 손과 말캉하고 뽀얀 작은 손이 선명하게 차이가 났다.손이 맞닿은 순간 유강후의 차가운 시선이 잠깐 멈칫하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스카프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온다연이 고개를 숙이고 유강후의 눈을 마
다행하게도 차를 바로 문 앞에 세워 차에 오른 후, 다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운전기사는 여전히 이권이었고, 유강후와 온다연은 뒤쪽에 앉아 있었다.돌아가는 내내 유강후는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차 안에는 그의 타자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온다연은 차 문에 붙어서 유강후와 최대한 떨어지려고 노력했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차 문안에 들어간다 해도 그와의 거리는 2미터가 되지 않았다.유강후 옆에 앉은 온다연은 손에서 땀이 나며 그를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가 컴퓨터를 넣으며 그녀를 흘깃 쳐다보았다.“그렇게 붙어있는 거 안 불편해?”하는수 없이 온다연은 힘을 풀고 치맛자락을 잡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삼촌, 앞으로 이렇게 비싼 옷은 사지 않으셔도 돼요.”유강후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얼마면 안 비싼 건데?”온다연이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생트집을 잡는 것처럼 느껴져 방금 전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어색한 와중에, 앞에 있던 이권이 분위기를 풀었다.“다연 아가씨, 셋째 도련님과 함께 계시면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가씨 같은 분이 몇 분이 되든 다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굶은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온다연은 얼굴을 붉혔다. 아까는 이 남자가 얼마나 돈이 많은 남자인지 한순간 깜빡했다. 이 상황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이권이 계속 말을 이었다.“아니면 셋째 도련님 지갑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직 시작도 안 하셨는데 벌써 관리에 들어가신 거예요?”온다연은 터질듯한 얼굴로 얼른 해명했다.“아... 아니예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고 이권의 의자를 차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말이 많다!”이권은 어깨를 으씩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작은 머리를 숙인 온다연의 귀 끝은 빨갛게 달아올라 거의 피가 날 것 같았다. 유강후를 쳐다볼 엄두가 더 나지 않았고, 심지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이권 님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너무 눈에 띄는 유강후이다 보니 연회홀에 나타나자마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모든 화제도 그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모든 사람을 훑어본 온다연의 시야에 심미진과 유하령이 잡혔다.심미진의 눈빛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그녀는 당황함과 놀라움으로 가득했고 유하령은 감출 수 없는 악의 가득 찬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오늘 이 자리에 유강후화 유재성이 없었다면, 유하령이 달려와 그녀의 뺨을 칠 것임을 온다연은 잘 알고 있었다. 유하령의 옆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녀들도 마찬가지로 악의에 찬 눈길로 온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온이 고개를 가볍게 늘어뜨리며 뽀송한 이마를 가린 앞머리를 정리했다. 앞머리로 가려 다른 사람이 그녀의 표정을 잘 확인할 수 없게 하고 싶었다.유강후가 강요하지 않았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불쾌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유강후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내 옆에 앉아.”자리는 지정석이었다. 유강후의 자리는 유재성의 오른쪽이었는데, 그 옆에는 유자성이 앉아 있었다.온다연을 본 유자성이 티가 나게 미간을 좁히며 담담히 말했다.“셋째가 오니, 다연이도 집에 돌아오네.”그가 고개를 돌려 사용인에게 지시했다.“수미 씨, 자리 하나 추가하죠.”진수미는 유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용인으로, 유씨 가문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자연히 온다연의 지위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온다연을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가 돌아오셨으니 의자를 하나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일 끝에 있는 테이블에 착석해 주셔야겠습니다.”말이 끝나자, 유하령과 그녀의 친구들이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유하령은 혐오스럽지 짝이 없는 경멸의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심미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다연아, 잠깐 나 좀 보자.”이내 그녀들은 휴게실로 왔다.
심미진은 그녀를 노려보았다.“무슨 헛소리야? 내가 아들이라면 아들이지. 계집애를 낳는다면 네가 저주한 거야. 여자는 역시 아들을 낳아야 해. 네가 아들이었다면 네 아버지도 바람피우지 않았을 거고 네 엄마도 죽지 않았을 거야. 이게 다 네 잘못이야. 알아?”“그리고 유하령이 돌아왔는데, 그 애가 너를 때리고 욕하면 참아. 너 같은 말괄량이 계집애는 피부가 거칠어 몇 대 맞았다고 죽지는 않잖아. 절대 소란을 피우지 말아. 그러면 내가 유씨 가문에서 힘들어져.”심미진은 온다연이 요즘 밖에서 어디 사는지, 뭘 먹는지, 돈은 있는지 전혀 묻지 않고 잔소리만 해댔다.온다연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뿐 한마디 반박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잠시 후 휴게실에서 나왔다.나오자마자 온다연은 차가운 시선이 먼 곳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 추가된 걸상에 앉았다.이렇게 큰 테이블에서 모든 사람의 의자가 마호가니 식탁과 세트로 된 것이었고 온다연만 낡은 원형 스툴에 앉았다.그 옆자리는 마침 유하령과 그 친구들이었다.그녀가 앉자마자 극히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후 씨, 이분이 그날 카페에서 만났던 조카야?”온다연은 그제야 유강후 옆에 앉은 나은별을 발견했다.흰 치마에 검은 머리의 그녀는 청초하고 달콤한 외모에 기품이 있고 교양 있는 모습이 유강후와 잘 어울렸다.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온다연을 바라보았다.“방금 강후 씨 차를 타고 왔어요?”이 말을 듣고 모든 사람이 놀란 눈으로 온다연을 쳐다보았다.유강후는 결벽증이 있어서 자기 방과 차에 아무나 들이지 않는다. 그의 기사와 나은별을 제외하고, 그의 어머니조차 그의 차를 타본 적이 없다.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려는데 온다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방금 길가에서 삼촌을 만났는데 같은 방향이라 태워 주셨어요.”나은별은 빙그레 웃으며 다정하게 유강후의 팔짱을 끼더니 부드럽게 말했다.“그렇군요. 강후 씨가 결벽증이 심해서 제가 다른 사람과 많이 접촉해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
온다연의 기분을 단번에 알아차린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자 중 하나를 가져와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냈다.“다른 건 싫으면 안 가져도 돼. 그래도 이건 껴야지.”유강후의 손에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아주 평범한 은반지였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거두었다.“지금은 끼고 싶지 않아요.”거부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불안함이 밀려왔다.“왜? 나랑 결혼하는 게 싫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비싼 물건이에요. 난 제대로 된 반지 하나도 살 수 없는데... 아저씨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선 진지하게 말했다.“다연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어. 많이 부족한데 이해해 줄 거지?”온다연이 답했다.“저도 반지를 준비했는데... 아저씨가 준비한 거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요.”유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날 위해서 반지를 준비했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에 주문했어요. 하지만 엄청 싼 거여서...”보름전, 온다연은 임정아에게 부탁해 남자 반지를 하나 주문했다.온다연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 중에서 가장 비쌌지만 유강후가 오늘 준비한 보석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금액이었다.결혼하게 되면 이런 선물이 오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유강후가 이렇게 많이 준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 세트당 수십억에 버금갔으니 그저 막막했다.막말로 온다연이 집 한 채를 팔아도 보석 한 세트조차 살 수 없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유강후는 온다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이건 예물이 아니라 다연이의 재산이야.”“결혼식 날 다연이는 영운산의 별장에서 출발할 거야. 그때 이 혼수들을 들고 나한테 시집오는 거지.”“영운산에 있는 별장이랑 경원에 있는 모든 부동산,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묵었던 온천 호텔까지 전
유강후는 돌아보며 사랑스럽게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내가 한가한 줄 알아? 설마 내가 만든 음식을 아무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오늘 아침과 점심만 해도 중요한 미팅이 여러 개 있는데 온다연을 위해 전부 저녁으로 미뤘다.미래 그룹도 규모가 크지만 수중에는 다른 투자 건들도 많았기에 하루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근 들어 온다연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모든 미팅을 저녁으로 옮기기 일쑤였다. 사실 온다연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준비한 시간에 미팅했다면 적어도 두 개는 끝냈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유강후가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줄 만큼 에너지와 시간이 있을까?온다연은 이런 줄도 모르고 그저 조그마한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으며 말했다.“아무튼 다른 사람한테 해주면 화낼 거예요. 그것도 엄청. 절대 안 풀릴걸요?”유강후는 일부러 놀렸다.“다연이가 화낼 때는 어떤 표정인지 궁금하네? 음...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한번 요리해 줘 볼까?”온다연은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선 몸을 휙 돌리고 떠났다.“어디가? 남은 고기 먹고 가야지.”화가 난 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안 먹어요. 다른 사람 줘요.”유강후는 그 모습마저 귀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심술쟁이네. 참 다루기 힘든 성격이야.”“장난이니까 얼른 와서 먹어. 난 이따가 다른 일정 때문에 나가봐야 돼.”점심 식사 후,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왔는데 저마다 아름답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들고 왔고 그 바람에 서재는 선물들로 꽉 찼다.장화연도 다락방에서 유난히 화려해 보이는 상자들을 꺼내왔다.거의 대부분이 보석인데 그것도 최상급이라 큼직한 서재는 순식간에 보석 전시장이 되었다.유강후는 사람을 시켜 방금 배달된 선물 상자들을 모두 열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엄마가 다연이 주려고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들어?”온다연은 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아한 컬러와 디자인만 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중에서
온다연이 어떤 삶을 보냈는지 알게 된 유강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쓰라렸다.하여 아예 그릴을 사게 되었고 직접 가장 신선한 소고기를 골라 양념에 재워놓았다.깻잎마저도 유강후가 세심하게 고른 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씻었다.이제 막 굽기 시작했는데 온다연이 그 향기를 맡고 내려온 것이다.고기를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보면서 유강후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난 다연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어.”고소한 향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먹고 싶어서 안달 난 온다연은 옆에서 끊임없이 유강후를 재촉했다.“아저씨, 이제 됐어요. 고기 익었다고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그런데 이때 유강후가 그녀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갔다.“내가 할 테니까 넌 저기 앉아서 기다려.”유강후는 잘 구운 소고기를 깻잎에 싸서 비법 소스를 살짝 묻힌 뒤 온다연에게 먹어주었다.“먹어봐.”온다연은 재빨리 입을 벌렸고 어찌나 흥분했는지 하마터면 혀를 씹을뻔했다.유강후가 직접 고른 국내산 소고기는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하게 섞인 최상급인 만큼 일반 소고기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게다가 장인에게 직접 받아온 듯한 비법 소스를 찍으니 맛이 단연 일품이다.온다연은 한입 먹고선 곧바로 쌈을 싸 유강후에게 건넸다.“아저씨, 얼른 먹어요. 엄청 맛있어요.”쌈을 받아서 먹은 유강후는 온다연이 왜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유강후가 굽는 족족 온다연은 전부 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고기 한 접시를 클리어했다.온다연은 더 먹고 싶은 듯 다른 접시를 애타게 바라봤지만 유강후는 허락하지 않았다.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게 일상이었기에 위가 아플까 봐 걱정되어 원하는 대로 먹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하지만 애처롭게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했다.결국 고기 세 점을 집어 그릴에 올려놓았다.“마지막이야. 더 이상 먹으면 안
유강후는 언짢아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온다연, 집에서 슬리퍼 신어야 한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온다연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와 깻잎이 눈앞에 있는데 슬리퍼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그녀는 덜 익은 소고기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엄청 맛있을 것 같아요.”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이때 유강후가 그녀를 번쩍 안으며 테이블에 앉히더니 도우미로부터 슬리퍼를 받아와 온다연에게 신겨주었다.“온다연, 앞으로 맨발로 돌아다니면 혼날 줄 알아.”온다연은 고기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공기 중에 가득 찬 음식 향기를 들이마시며 침을 삼켰다.“아저씨, 왜 갑자기 집에서 고기를 구울 생각을 했어요?”유강후의 결벽증은 온다연도 알고 있다.예전에 본가에 있을 때, 집사 외에는 아무도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음식을 반입하는 건 더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지금 이 한옥에서도 늘 음식 냄새에 집안에 배는 걸 싫어하던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그릴을 사서 고기를 굽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유강후는 먹고 싶어 안달 난 온다연의 모습이 귀여운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선 그녀의 두 볼을 꼬집었다.“어떤 아기고양이가 고기 먹는 걸 좋아해서 그릴 하나 샀어.”“밖은 아직 추우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서 먹자. 나중에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에서 구워 먹어도 되고.”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유강후를 바라봤다.“아저씨, 집에 음식 냄새 배는 걸 싫어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유강후는 아침 일찍 메일에 로그인하여 온다연과 주한이 주고받은 과거의 이메일을 전부 읽었다.보면 볼수록 질투도 나고 착잡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온다연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건 전부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온다연은 요리에 재능이 없어 지난 수년 동안 주한이 그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그들이 주고받은 메일을 보면 주한은 요리 솜씨가 좋아서 아주 평범한 재료들로 맛있는 음식
손을 놓았는데도 여전히 울고 있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그래? 많이 아파? 어디 다쳤어?”평소보다 훨씬 조심히 움직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미안해요. 옷이랑 테이블이 더러워졌네요. 일부러 한 건 아닌데...” 말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고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유강후는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온다연의 행동이 이해되었다.온다연은 혹여나 그가 비웃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그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려 흐트러진 치마를 정리해 주고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왜 이런 일로 울어. 난 너무 좋은데? 다연이가 날 좋아하고 신경 쓴다는 증거잖아.”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어때? 이런 건 좋아?”온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사실 일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느낌이었기에 그때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 자제력을 잃었다.물론 너무 좋았지만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입을 꾹 다물었다.유강후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계속하여 물었다.“빨리 알려줘. 좋았어?”여전히 말하지 않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다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 손이 갔다.“왜 답을 안 하지? 다연이는 아침처럼 넥타이에 묶이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럼 한 번 더 할까?”그 말에 온다연은 화들짝 놀랐다. 살 까진 곳이 아직까지 따끔거렸으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안 돼요. 그런 건 싫어요.”유강후는 피식 웃었다.“그럼 방금 했던 건 좋아?”온다연은 답하지 않으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기분이 좋은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다.“좋아하면 말해야지. 다연이가 어떤 모습이든 내 눈에는 다 사랑스러워. 지금도 마찬가지야.”온다연은 그제야 사실대로 답했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왜 성욕이 이렇게 강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것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정도였고 매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유강후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아직 몸이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기에 작은 움직임에도 너무 아팠다.온다연은 서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안 돼요. 아직 아파요...”유강후는 새빨개진 온다연의 귀에 입을 맞추며 놀리듯이 답했다.“거절하는 거야?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네? 더 화내도 되는 거지?”그 말에 온다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사실 온다연은 유강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밤새도록 고민했다.유강후가 위압적이고 억지 부리는 사람인 건 맞지만 오늘처럼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온다연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럼에도 주한은 온다연에 있어 영원한 비밀 같은 존재였기에 섣불리 얘기할 수가 없다.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점점 막막해졌고 유강후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랐다.처음에는 직접 만든 만두를 건네주며 사과하려고 했지만 밤새도록 빚어도 그럴싸한 모양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못생긴 만두를 유강후에게 줄 면목도 없었다.계획이 실패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한 온다연은 큰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다른 방법으로 하는 건 어때요? 정말 아파서...”온다연은 말하면서 돌아서더니 고개를 들고 유강후의 목젖을 가볍게 깨물었다. 동시에 손을 그의 옷 속에 넣었고 부드러운 손길은 곧바로 벨트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이런 건 어때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리드하는 법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지만 이런 스킬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누구한테서 배운 거지?’“얘는 자기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르는 건가? 미치겠네.”유강후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붙잡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창가로 가서 온다연을 살펴보았다.장화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저녁 내내 도련님을 기다리다가 방금 잠들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고, 담요를 잘 덮어준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야식은 뭘 먹었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안 먹었어요. 계속 도련님이 언제 돌아오냐고 묻다가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수제 만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저녁 내내 밀가루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밀가루 한 봉지를 다 쓰고도 제대로 된 만두를 한 개도 빚지 못했어요.”장화연이 주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만두는 저쪽에 있어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삶겠다고 하더니 기다리다 못해 잠들어 버렸어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주방에 있어요.”주방에 들어서니 기괴한 모양의 만두 한 접시가 보였다.딱 봐도 밀가루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만두피가 터무니없이 두꺼운 데다 빚은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못생긴 만두 한 접시가 유강후는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꼬맹이가 요리를 잘 못하고 주방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음식을 만들었나 보네.’그는 마음속이 살짝 달콤해졌고, 처음 온다연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주방에서 나온 유강후는 서재로 갔다.그가 직접 결재해야 할 중요한 서류가 있었다.절반쯤 봤을 때 서재 문이 열렸고, 온다연이 작은 접시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강후가 화상회의를 하면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물러가야 할지 들어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못 본 척하고 일에 몰두했다.온다연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서성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든 접시를 책상 위에 놓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드셔 보세요.”유강후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서류를 읽었다.온다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기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그 부부의 일에 대해 또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며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주한의 일을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애 일은 왜 묻는 거죠? 혹시 그 여자애를 본 적이 있어요?”“옷을 잘 차려입은 걸 보니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허튼수작을 하려는 거죠? 그 여자애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니까 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염불하기 시작했다.이권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도,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다.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강후와 이권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에 유강후는 할머니에게 말했다.“어르신, 예전에 그 여자애에게 베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안심하고 이 집에 그냥 사십시오. 이 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이고,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서 수리하고 정비할 것입니다. 이곳을 다시 개조해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할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총각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유강후가 나지막이 말했다.“됩니다. 안심하고 지내세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일어섰다. 그녀는 낡은 수납장을 한참 동안 뒤져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유강후에게 건넸다.“그 두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니 가져가세요. 사진이 유용하게 쓰여서 하루빨리 그 짐승 같은 놈을 잡았으면 좋겠네요.”유강후는 사진을 받아서 들었다.잘 보관하지 못해 색이 바랜 곳도 있었지만,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사람이 많았는데, 온다연은 주한의 뒤에 서서 옆으로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일자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유난히 순해 보였다.유강후가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