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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작가: 손이영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온다연은 꼼짝도 못 하고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유강후는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

온다연은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그녀가 막 눈을 뜨려고 하자 유강후는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는 온다연을 침대 안쪽으로 조금 옮긴 후 신발을 벗고 그녀 옆에 누웠다. 병원의 침대는 매우 작았다. 두 사람은 불편하게 누워 있었다. 특히 온다연은 유강후를 매우 두려워했다.

유강후의 카리스마와 그의 체향이 공기 속을 가득 채웠다. 온다연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의 냄새로 가득했다. 유강후의 몸은 그녀의 등에 달라붙었고 온다연은 그 열기로 인해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고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온다연은 유강후가 그녀의 침대에 누울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이런 작은 병원 침대에 말이다. 유강후는 결벽증이 있지 않았던가?

온다연은 긴장해서 울고 싶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하지만 유강후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뉴스를 보기 시작했고 문자도 몇 개 보냈다.

시간은 그렇게 1분 1초 지났고 온다연은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약의 작용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나른해지자 그녀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유강후의 무릎 위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늘고 작고 부드러웠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손톱은 짧았고 매니큐어 같은 것을 바르지 않아 깨끗해 보였다. 손가락은 통통했고 귀여웠다.

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손을 빼갔고 몸을 뒤척이며 유강후에게 얼굴을 대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손과 발도 그의 몸에 걸치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니야, 기다려...”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젖은 상태로 얼굴에 붙어있었다. 머리카락이 검었기 때문에 얼굴이 유난히 하얘 보였다.

온다연의 이목구비는 유난히 예뻤고 피부도 하얗고 입술 옆에 보일락 말락 하는 점마저도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두 눈은 수줍게 생겼고 눈동자가 유난히 까매서 사람을 쳐다볼 때 홀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유강후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잠시 멈추더니 그는 헤여나오지 못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입술 옆에 있는 점을 살짝 다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니? 아직도 그 고양이 생각해?”

유강후는 그 고양이를 기억한다.

검음색과 흰색 털이 섞인 고양이이다. 온다연이 어디서 주워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는 뒷마당 창고에 숨어 살았다. 유강후도 가끔 온다연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봤다. 유강후를 보면 온다연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고양이를 뒤에 숨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니야. 도망가.”

당시 그는 그 고양이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귀여운 어린애가 자기 장난감을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은 엉뚱한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일이 너무 많고 바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여자아이가 이미 이렇게 컸다.

사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유강후는 온다연에게 책임지려고 했지만 그날 밤 미국에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는 서둘러 떠다.

어차피 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있고 아직 열여덟이 채 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헤어진 지 3년 뒤, 다시 돌아왔을 때 온다연은 그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이때 온다연이 갑자기 움직이면서 온기가 나는 방향을 유강후 쪽을 향해 다가왔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잠시 쳐다보다가 머리맡의 얇은 이불을 끌어당겨 그녀의 몸에 걸쳤다.

온다연이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밝았다.

공기 중에는 좁쌀죽의 향긋한 냄새가 가득했으며 그녀는 이미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처럼 배가 고팠다.

유강후가 전화를 받자 그녀는 계속 자는 척했다.

“심각해? 은별 아버님을 뭐라고 하셨어?”

“먼저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해. 내가 나중에 갈게.”

“소이섭, 내 일에 참견하지 마.”

...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온다연은 여전히 들었다. 아마 어젯밤 나은별의 병이 발작해서 칼로 자신을 베었고 지금 의사의 치료에 협조하지 않아 유강후가 잠시 후에 그녀를 보러 갈 것이다.

사실 온다연은 나은별을 매우 부러워했다. 금수저 출신의 나은별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유강후처럼 차갑고 냉정한 사람조차도 그녀를 받들어 주면서 지냈다.

이런 여자는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을까?

하지만 씩씩해 보이는 나은별이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그 생각을 하며 온다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기척을 들은 유강후는 전화를 끊고 잠든 척하는 온다연을 돌아봤다.

“깼으면 그만 연기하고 일어나서 뭐 좀 먹어.”

온다연은 더 이상 연기 할 수 없을 것 같아 눈을 뜨는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자 유강후의 늘씬한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검은색 셔츠로 갈아입었는지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원단 때문에 더 분위기 있어 보였고 차가워 보였다.

온다연은 감히 그를 볼 수 없어서 머리를 숙이고 침대 머리맡에 놓인 도시락을 들고 죽을 조금 마셨다.

유강후는 반찬도 밀어주며 말했다.

“방금 배달시켰어. 지금은 이것밖에 먹을 수 없을 수 없대. 좀 나아지면 다른 것을 보낼게.”

그러자 온다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만 앞으로 이러지 마세요.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

유강후는 도시락을 들고 있는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너 혼자 위 천공도 해결할 수 있어?”

그러자 온다연은 고개를 더 숙였다. 사실 도시락은 뜨거웠고 이렇게 오래 쥐고 있으면 데어서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심미진은 네 위가 안 좋은 거 알아?”

온다연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강후가 쳐다보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아요.”

유강후는 한눈에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의 작은 턱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차갑게 말했다.

“다연아, 거짓말하는 게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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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무서운 물건이라도 부딪친 것처럼 온다연은 냉큼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유강후를 쳐다볼 엄두를 못 냈다.유강후는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다 못 맸잖아. 계속해.”유강후에게서는 다 가진 자의 강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말투도 차가운 게 어딘가 기분이 나빠 보였다.온다연은 거역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입술을 깨물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깨물었던 입술은 촉촉해졌고 말캉한 입술은 더 빨개졌다.유강후가 눈을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유강후의 입술이 온다연의 매끈한 이마에 닿자 온다연의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넥타이를 매는 데 계속 실패한 온다연은 조급한 마음에 몸이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말캉하고 작은 온다연의 몸집이 유강후의 몸에 찰싹 붙었다. 여름이라 옷이 얇았기에 온다연은 유강후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온다연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긴장하면 할수록 잘 매기가 더 어려웠다. 여섯 번을 맸는데도 매는 데 실패하자 더는 어쩔 방법이 없었던 온다연이 고개를 들고 작은 소리로 유강후를 불렀다.“삼촌.”그 부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다연은 유강후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고개를 들자 입술이 거의 그의 턱에 닿을 지경이라는 걸 말이다.온다연은 머리가 지끈거려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넥타이를 꽉 움켜쥐고는 버벅거렸다.“삼, 삼촌, 정말 못 하겠어요.”유강후는 터질 듯이 빨개진 온다연의 귀를 보더니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이리 와. 내가 가르쳐줄게.”온다연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 넥타이를 너무 꽉 움켜잡아 주름이 질 지경이었다. 곧이어 유강후가 온다연의 손을 잡았다. 뼈마디가 선명한 기다란 손과 말캉하고 뽀얀 작은 손이 선명하게 차이가 났다.손이 맞닿은 순간 유강후의 차가운 시선이 잠깐 멈칫하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스카프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온다연이 고개를 숙이고 유강후의 눈을 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23화

    다행하게도 차를 바로 문 앞에 세워 차에 오른 후, 다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운전기사는 여전히 이권이었고, 유강후와 온다연은 뒤쪽에 앉아 있었다.돌아가는 내내 유강후는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차 안에는 그의 타자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온다연은 차 문에 붙어서 유강후와 최대한 떨어지려고 노력했다. 제한적인 공간에서 차 문안에 들어간다 해도 그와의 거리는 2미터가 되지 않았다.유강후 옆에 앉은 온다연은 손에서 땀이 나며 그를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못했다.얼마나 지났을까, 유강후가 컴퓨터를 넣으며 그녀를 흘깃 쳐다보았다.“그렇게 붙어있는 거 안 불편해?”하는수 없이 온다연은 힘을 풀고 치맛자락을 잡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삼촌, 앞으로 이렇게 비싼 옷은 사지 않으셔도 돼요.”유강후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얼마면 안 비싼 건데?”온다연이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생트집을 잡는 것처럼 느껴져 방금 전 한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어색한 와중에, 앞에 있던 이권이 분위기를 풀었다.“다연 아가씨, 셋째 도련님과 함께 계시면 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가씨 같은 분이 몇 분이 되든 다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굶은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온다연은 얼굴을 붉혔다. 아까는 이 남자가 얼마나 돈이 많은 남자인지 한순간 깜빡했다. 이 상황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이권이 계속 말을 이었다.“아니면 셋째 도련님 지갑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직 시작도 안 하셨는데 벌써 관리에 들어가신 거예요?”온다연은 터질듯한 얼굴로 얼른 해명했다.“아... 아니예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고 이권의 의자를 차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말이 많다!”이권은 어깨를 으씩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작은 머리를 숙인 온다연의 귀 끝은 빨갛게 달아올라 거의 피가 날 것 같았다. 유강후를 쳐다볼 엄두가 더 나지 않았고, 심지어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이권 님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최신 챕터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602화

    온다연은 순순히 그의 품에 안겨 몰래 눈물을 닦았다.“보석상에서 가지러 가도 된다고 연락왔는데 아직 안 갔어요. 결혼식 며칠 전에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유강후는 설레는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지금 가지러 가자. 어떤 건지 너무 보고 싶어.”옷 갈아입을 때 유강후는 특별히 가장 마음에 드는 슈트를 입었다.그러고는 온다연에게 넥타이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온다연은 너무도 많은 넥타이에 흠칫하다가 다시 신중하게 골랐다.유강후는 캐비닛 앞에 서서 열심히 넥타이를 고르는 온다연이 귀여운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온다연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을 때 유강후는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외출 준비할 때 아내인 온다연이 옷과 넥타이를 골라주며 신경 써주는 이 상황을 수년동안 기다렸다.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상상이 현실로 되었고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온다연은 매우 열심히 넥타이를 골라주고 있다.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침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너무 무리한 탓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유강후는 뒤에서 온다연을 끌어안고선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었다.“골랐어?”온다연은 회색 넥타이를 꺼냈다.“오늘 입은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뻐요.”유강후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예쁜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 다연이가 좋아하면 그게 뭐든 나도 좋아.”온다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아저씨, 그만해요.”빨갛게 달아오른 온다연의 귀를 본 유강후는 더 이상 참지 못했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선 한참이나 키스를 한 후에야 놓아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보석상에 도착했다.임정아는 안목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주얼리 브랜드의 모델이기도 하다. 온다연은 가성비가 좋고 흔치 않은 남성용 반지를 골랐다.온다연이 집 사려고 모아둔 금액이었으니 싼값은 아니었다.하지만 유강후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 도 있으니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시계에 비하면 훨씬 싼 값이니까.그런데 의외로 유강후는 매우 좋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601화

    온다연의 기분을 단번에 알아차린 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자 중 하나를 가져와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꺼냈다.“다른 건 싫으면 안 가져도 돼. 그래도 이건 껴야지.”유강후의 손에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아주 평범한 은반지였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거두었다.“지금은 끼고 싶지 않아요.”거부하는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불안함이 밀려왔다.“왜? 나랑 결혼하는 게 싫어?”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비싼 물건이에요. 난 제대로 된 반지 하나도 살 수 없는데... 아저씨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강후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선 진지하게 말했다.“다연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이렇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어. 많이 부족한데 이해해 줄 거지?”온다연이 답했다.“저도 반지를 준비했는데... 아저씨가 준비한 거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요.”유강후의 눈빛이 반짝였다.“날 위해서 반지를 준비했다고?”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에 주문했어요. 하지만 엄청 싼 거여서...”보름전, 온다연은 임정아에게 부탁해 남자 반지를 하나 주문했다.온다연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 중에서 가장 비쌌지만 유강후가 오늘 준비한 보석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금액이었다.결혼하게 되면 이런 선물이 오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유강후가 이렇게 많이 준비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 세트당 수십억에 버금갔으니 그저 막막했다.막말로 온다연이 집 한 채를 팔아도 보석 한 세트조차 살 수 없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유강후는 온다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이건 예물이 아니라 다연이의 재산이야.”“결혼식 날 다연이는 영운산의 별장에서 출발할 거야. 그때 이 혼수들을 들고 나한테 시집오는 거지.”“영운산에 있는 별장이랑 경원에 있는 모든 부동산,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묵었던 온천 호텔까지 전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600화

    유강후는 돌아보며 사랑스럽게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내가 한가한 줄 알아? 설마 내가 만든 음식을 아무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오늘 아침과 점심만 해도 중요한 미팅이 여러 개 있는데 온다연을 위해 전부 저녁으로 미뤘다.미래 그룹도 규모가 크지만 수중에는 다른 투자 건들도 많았기에 하루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최근 들어 온다연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의 모든 미팅을 저녁으로 옮기기 일쑤였다. 사실 온다연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준비한 시간에 미팅했다면 적어도 두 개는 끝냈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유강후가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줄 만큼 에너지와 시간이 있을까?온다연은 이런 줄도 모르고 그저 조그마한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으며 말했다.“아무튼 다른 사람한테 해주면 화낼 거예요. 그것도 엄청. 절대 안 풀릴걸요?”유강후는 일부러 놀렸다.“다연이가 화낼 때는 어떤 표정인지 궁금하네? 음...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한번 요리해 줘 볼까?”온다연은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선 몸을 휙 돌리고 떠났다.“어디가? 남은 고기 먹고 가야지.”화가 난 온다연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안 먹어요. 다른 사람 줘요.”유강후는 그 모습마저 귀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심술쟁이네. 참 다루기 힘든 성격이야.”“장난이니까 얼른 와서 먹어. 난 이따가 다른 일정 때문에 나가봐야 돼.”점심 식사 후,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왔는데 저마다 아름답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들고 왔고 그 바람에 서재는 선물들로 꽉 찼다.장화연도 다락방에서 유난히 화려해 보이는 상자들을 꺼내왔다.거의 대부분이 보석인데 그것도 최상급이라 큼직한 서재는 순식간에 보석 전시장이 되었다.유강후는 사람을 시켜 방금 배달된 선물 상자들을 모두 열었고 온다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엄마가 다연이 주려고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들어?”온다연은 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아한 컬러와 디자인만 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시중에서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9화

    온다연이 어떤 삶을 보냈는지 알게 된 유강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쓰라렸다.하여 아예 그릴을 사게 되었고 직접 가장 신선한 소고기를 골라 양념에 재워놓았다.깻잎마저도 유강후가 세심하게 고른 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씻었다.이제 막 굽기 시작했는데 온다연이 그 향기를 맡고 내려온 것이다.고기를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보면서 유강후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난 다연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어.”고소한 향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먹고 싶어서 안달 난 온다연은 옆에서 끊임없이 유강후를 재촉했다.“아저씨, 이제 됐어요. 고기 익었다고요.”그 말을 끝으로 온다연은 재빨리 손을 뻗었다.그런데 이때 유강후가 그녀의 손에서 젓가락을 빼앗아 갔다.“내가 할 테니까 넌 저기 앉아서 기다려.”유강후는 잘 구운 소고기를 깻잎에 싸서 비법 소스를 살짝 묻힌 뒤 온다연에게 먹어주었다.“먹어봐.”온다연은 재빨리 입을 벌렸고 어찌나 흥분했는지 하마터면 혀를 씹을뻔했다.유강후가 직접 고른 국내산 소고기는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하게 섞인 최상급인 만큼 일반 소고기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게다가 장인에게 직접 받아온 듯한 비법 소스를 찍으니 맛이 단연 일품이다.온다연은 한입 먹고선 곧바로 쌈을 싸 유강후에게 건넸다.“아저씨, 얼른 먹어요. 엄청 맛있어요.”쌈을 받아서 먹은 유강후는 온다연이 왜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유강후가 굽는 족족 온다연은 전부 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고기 한 접시를 클리어했다.온다연은 더 먹고 싶은 듯 다른 접시를 애타게 바라봤지만 유강후는 허락하지 않았다.맛있는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게 일상이었기에 위가 아플까 봐 걱정되어 원하는 대로 먹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하지만 애처롭게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했다.결국 고기 세 점을 집어 그릴에 올려놓았다.“마지막이야. 더 이상 먹으면 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8화

    유강후는 언짢아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온다연, 집에서 슬리퍼 신어야 한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온다연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와 깻잎이 눈앞에 있는데 슬리퍼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그녀는 덜 익은 소고기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엄청 맛있을 것 같아요.”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이때 유강후가 그녀를 번쩍 안으며 테이블에 앉히더니 도우미로부터 슬리퍼를 받아와 온다연에게 신겨주었다.“온다연, 앞으로 맨발로 돌아다니면 혼날 줄 알아.”온다연은 고기에 정신이 팔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공기 중에 가득 찬 음식 향기를 들이마시며 침을 삼켰다.“아저씨, 왜 갑자기 집에서 고기를 구울 생각을 했어요?”유강후의 결벽증은 온다연도 알고 있다.예전에 본가에 있을 때, 집사 외에는 아무도 그의 방에 들어갈 수 없었고 음식을 반입하는 건 더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지금 이 한옥에서도 늘 음식 냄새에 집안에 배는 걸 싫어하던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그릴을 사서 고기를 굽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유강후는 먹고 싶어 안달 난 온다연의 모습이 귀여운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선 그녀의 두 볼을 꼬집었다.“어떤 아기고양이가 고기 먹는 걸 좋아해서 그릴 하나 샀어.”“밖은 아직 추우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서 먹자. 나중에 날이 따뜻해지면 마당에서 구워 먹어도 되고.”온다연은 시선을 거두고 조심스럽게 유강후를 바라봤다.“아저씨, 집에 음식 냄새 배는 걸 싫어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유강후는 아침 일찍 메일에 로그인하여 온다연과 주한이 주고받은 과거의 이메일을 전부 읽었다.보면 볼수록 질투도 나고 착잡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온다연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건 전부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온다연은 요리에 재능이 없어 지난 수년 동안 주한이 그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그들이 주고받은 메일을 보면 주한은 요리 솜씨가 좋아서 아주 평범한 재료들로 맛있는 음식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7화

    손을 놓았는데도 여전히 울고 있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그래? 많이 아파? 어디 다쳤어?”평소보다 훨씬 조심히 움직였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온다연은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미안해요. 옷이랑 테이블이 더러워졌네요. 일부러 한 건 아닌데...” 말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고 너무 부끄러워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유강후는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온다연의 행동이 이해되었다.온다연은 혹여나 그가 비웃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그는 온다연을 번쩍 안아 올려 흐트러진 치마를 정리해 주고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왜 이런 일로 울어. 난 너무 좋은데? 다연이가 날 좋아하고 신경 쓴다는 증거잖아.”유강후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어때? 이런 건 좋아?”온다연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사실 일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느낌이었기에 그때만큼은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 자제력을 잃었다.물론 너무 좋았지만 이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온다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입을 꾹 다물었다.유강후는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계속하여 물었다.“빨리 알려줘. 좋았어?”여전히 말하지 않는 온다연의 모습에 유강후는 다시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에 손이 갔다.“왜 답을 안 하지? 다연이는 아침처럼 넥타이에 묶이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럼 한 번 더 할까?”그 말에 온다연은 화들짝 놀랐다. 살 까진 곳이 아직까지 따끔거렸으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안 돼요. 그런 건 싫어요.”유강후는 피식 웃었다.“그럼 방금 했던 건 좋아?”온다연은 답하지 않으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강후는 기분이 좋은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다.“좋아하면 말해야지. 다연이가 어떤 모습이든 내 눈에는 다 사랑스러워. 지금도 마찬가지야.”온다연은 그제야 사실대로 답했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6화

    온다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왜 성욕이 이렇게 강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것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정도였고 매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유강후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게다가 아직 몸이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기에 작은 움직임에도 너무 아팠다.온다연은 서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안 돼요. 아직 아파요...”유강후는 새빨개진 온다연의 귀에 입을 맞추며 놀리듯이 답했다.“거절하는 거야?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네? 더 화내도 되는 거지?”그 말에 온다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사실 온다연은 유강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밤새도록 고민했다.유강후가 위압적이고 억지 부리는 사람인 건 맞지만 오늘처럼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유강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그 모습에 온다연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럼에도 주한은 온다연에 있어 영원한 비밀 같은 존재였기에 섣불리 얘기할 수가 없다.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점점 막막해졌고 유강후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몰랐다.처음에는 직접 만든 만두를 건네주며 사과하려고 했지만 밤새도록 빚어도 그럴싸한 모양이 하나도 없었고, 이런 못생긴 만두를 유강후에게 줄 면목도 없었다.계획이 실패하자 머릿속이 텅 비어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한 온다연은 큰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다른 방법으로 하는 건 어때요? 정말 아파서...”온다연은 말하면서 돌아서더니 고개를 들고 유강후의 목젖을 가볍게 깨물었다. 동시에 손을 그의 옷 속에 넣었고 부드러운 손길은 곧바로 벨트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이런 건 어때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리드하는 법을 가끔 알려주기도 했지만 이런 스킬을 가르쳐준 적은 없었다.‘누구한테서 배운 거지?’“얘는 자기가 남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르는 건가? 미치겠네.”유강후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붙잡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5화

    그러고는 창가로 가서 온다연을 살펴보았다.장화연이 나지막이 말했다.“저녁 내내 도련님을 기다리다가 방금 잠들었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보고, 담요를 잘 덮어준 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야식은 뭘 먹었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안 먹었어요. 계속 도련님이 언제 돌아오냐고 묻다가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더군요. 수제 만두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저녁 내내 밀가루 반죽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밀가루 한 봉지를 다 쓰고도 제대로 된 만두를 한 개도 빚지 못했어요.”장화연이 주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만두는 저쪽에 있어요.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삶겠다고 하더니 기다리다 못해 잠들어 버렸어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주방에 있어요.”주방에 들어서니 기괴한 모양의 만두 한 접시가 보였다.딱 봐도 밀가루 반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만두피가 터무니없이 두꺼운 데다 빚은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못생긴 만두 한 접시가 유강후는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꼬맹이가 요리를 잘 못하고 주방에 관심도 없는 것 같았는데, 오늘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음식을 만들었나 보네.’그는 마음속이 살짝 달콤해졌고, 처음 온다연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주방에서 나온 유강후는 서재로 갔다.그가 직접 결재해야 할 중요한 서류가 있었다.절반쯤 봤을 때 서재 문이 열렸고, 온다연이 작은 접시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유강후가 화상회의를 하면서 서류를 결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물러가야 할지 들어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유강후는 그녀를 못 본 척하고 일에 몰두했다.온다연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문 앞에서 몇 분 동안 서성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다가왔다.그녀는 손에 든 접시를 책상 위에 놓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드셔 보세요.”유강후는 못 들은 척하고 계속 서류를 읽었다.온다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그녀는 기

  • 도련님과의 위험한 사랑   제594화

    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르신, 그 부부의 일에 대해 또 아는 것이 있으신가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며 유강후를 쳐다보았다.“주한의 일을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애 일은 왜 묻는 거죠? 혹시 그 여자애를 본 적이 있어요?”“옷을 잘 차려입은 걸 보니 많이 배운 사람인 것 같은데, 왜 허튼수작을 하려는 거죠? 그 여자애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니까 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염불하기 시작했다.이권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도, 아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할머니는 한마디도 하려 하지 않았다.어찌할 도리가 없는 유강후와 이권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에 유강후는 할머니에게 말했다.“어르신, 예전에 그 여자애에게 베푼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안심하고 이 집에 그냥 사십시오. 이 거리는 철거하지 않을 것이고, 며칠 뒤에 사람을 보내서 수리하고 정비할 것입니다. 이곳을 다시 개조해서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 놓겠습니다.”할머니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유강후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총각이 말한 대로 되는 거예요?”유강후가 나지막이 말했다.“됩니다. 안심하고 지내세요.”할머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일어섰다. 그녀는 낡은 수납장을 한참 동안 뒤져서 오래된 앨범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유강후에게 건넸다.“그 두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이니 가져가세요. 사진이 유용하게 쓰여서 하루빨리 그 짐승 같은 놈을 잡았으면 좋겠네요.”유강후는 사진을 받아서 들었다.잘 보관하지 못해 색이 바랜 곳도 있었지만,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사람이 많았는데, 온다연은 주한의 뒤에 서서 옆으로 깨끗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고 있었다.사진 속의 온다연은 여덟아홉 살 정도 되는 것 같았고, 일자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유난히 순해 보였다.유강후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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