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강렬한 키스가 끝난 후 유강후는 빨갛게 부어오른 온다연의 입술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온다연, 내가 정말 아이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온다연은 턱이 잡혔음에도 차마 유강후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자 유강후는 더욱 옥죄여왔다. “내 눈 똑바로 쳐다보고 답해.” 사실 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의 행동이 예상이 가서 그런지 당황함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아저씨, 그만해요...”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다연아,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건 너야.” 어두운 불빛과 서늘한 눈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조차도 차 안의 설레는 분위기를 가리지 못했다. 유강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진심이 느껴진 온다연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약간의 기대도 밀려왔지만 그 말에 또 다른 뜻이 숨겨있을 수도 있으니 더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다연은 늘 자신을 초라하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있어 유강후는 범점 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자존심 내려놓고 무언가를 ‘원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으니 믿기지 않기도 했다. 온다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아저씨, 전 별 볼 것없는 존재인데...” 자존감이 바닥 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유강후는 어두운 눈빛으로 답했다. “다연이가 나를 버리면 정말 못 버틸지도 몰라.” 귀까지 빨개진 온다연은 감히 유강후를 쳐다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한 채 그저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유강후는 그녀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다연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날 만나지 않겠다는 그런 얘기하지 마.” 그는 고개를 숙여 온다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살면서 누구한테 비는 건 처음이야. 다연아, 그러니까 대답해 줘. 다시는 안 보겠다는 그런 말 하지 않기로.” 유강후는 온다연의 손을 꼭
온다연은 여전히 그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공간이 좁은 데다가 유강후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머리와 마음이 너무 복잡해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심지어 유강후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의 곁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온다연은 유강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곁에 있을게요.” 온다연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만큼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게다가 그녀는 유강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자기고 있다. 유강후는 온다연을 세게 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또 떠나느니 마느니 그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 얌전히 그의 품에 안긴 온다연은 자신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걸 다시 한번 느꼈다. 해가 지나니 날씨도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영하권이지만 보름도 안되어 바깥 나무에 새 가지가 돋아났고 봄기운이 물씬 풍겼다. 마치 그날 밤 이후 새로운 관계를 맞이한 유강후와 온다연과 꼭 닮았다. 온다연은 처음 느껴보는 어색함에 유강후를 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졌고 심장이 빨리 뛰어 파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피한다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거니와 유강후는 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온다연이 피할 때마다 그는 강제로 키스를 했고 불과 며칠 사이에 입술이 찢어질 정도였다. 밤에 피하면 유강후의 처벌은 심해졌다. 입에 담기 수치스러운 말을 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고 온다연이 울면서 반항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유강후는 이번 기회를 통해 온다연이 그들의 관계와 감정을 직시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날이 반복되자 온다연은 점차 익숙해졌다. 하지만 산후조리가 끝나갈 무렵 온다연은 또다시 유강후를 피하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 지난 며칠간의 훈련으로 인해 온다연은 그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먼저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 집사, 오늘따라 참견이 심하네?” 장화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연 씨가 몸이 안 좋은 건 도련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또다시 임신하게 된다면 정말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알겠으니까 그만해.” 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침실을 향해 걸어갔다. 온다연이 산후조리가 끝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유강후다. 불과 며칠 전, 온다연은 그의 품에 파고들어 몸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만졌다. 비록 극도의 인내심으로 간신히 참아냈지만 골병이 들 지경이었다. 드디어 오늘부터 참을 필요가 없어졌다. 온다연은 아마 유강후의 행동을 짐작했을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며칠 전에 함부로 달려든 게 떠올라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워 하루종일 연락을 피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이제는 숨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수록 유강후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진다. 방문을 열자 작은 덩어리채로 부풀어 오른 이불이 보였다.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천천히 걸어가서 이불을 들추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온다연은 이불을 붙잡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저씨, 저 배가 아파요.” 유강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이불속에서 꺼내 다리 위에 앉혔다. “어디가 아픈데? 내가 마사지해줄게.” 온다연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배요. 여기가 너무 아파요.” 유강후는 뚫어져라 온다연을 쳐다봤다. “정말 아파?” 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말 아파요.” 얼마 전 온다연이 함부로 달려들었을 때 유강후는 산후조리가 끝나는 순간 3일 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할 거라고 경고했다. 온다연은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로 애기한 유강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이기에 날이 다가올수록 온다연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졌다. 매일 카운트다운을 세며 유강후를 피할 방법에 대해 생
반항의 결과는 더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유강후는 한 손으로 그녀를 품에 가두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싼 채 있는 힘껏 격렬하게 키스했다. 불과 몇 초 만에 온다연은 온몸에 힘이 풀렸다. 유강후가 서랍을 여는 모습을 보 온다연은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보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뭐지?’ ‘도대체 언제 준비한 거야.’ ‘왜 난 모르고 있었지?’ 유강후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도망치려고 했지만 1초 만에 다시 잡혀왔다. 그는 온다연을 품에 가둔 채 벌주듯이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망치려고 했어? 정말?” 이미 온몸에 삭신이 쑤신 온다연은 유강후 손에 들린 박스를 보고 벌벌 떨었다. “왜... 왜 이렇게 많아요?” 유강후는 태연하게 답했다. “한꺼번에 다 쓸 생각은 아니야. 오늘은 한 박스만 쓸 거야.”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박스 외관에 ‘6개입’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온다연은 숫자를 본 순간 막막함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지경이었다. “한 박스... 절대 안 돼요...” 유강후는 그녀의 가냘픈 목을 가볍게 깨물고선 한 손으로 가는 허리를 꼬집었다. “말 잘 들으면 살살하게. 네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하나쯤은 버려도 돼.” 온다연은 곧바로 울부짖으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싫어요...” 한 박스를 다 쓰게 된다면 아마 며칠 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유강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려 욕실로 향했다. “말 안 들으니까 전부 다 써야지.” 욕실의 욕조에는 이미 따뜻한 물이 준비되었다. 따뜻하면서도 므흣한 분위기가 욕실을 가득 채웠다. 온다연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날만을 기다려온 유강후에게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 곧 욕실은 애원하는 온다연의 목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열렸다. 유강후가 온다연을 품에 안고 나온 찰나에 마침 장화연이 뜨거운 우유를 주러 들어왔다. 장화연은 온다연을 힐끗 보고
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세히 살폈다.야들야들한 손목에 푹 파인 자국이 두 개 생겼고, 깊은 곳은 이미 피부가 벗겨졌다.흰 피부 때문에 보기가 더 흉했다.‘별로 힘을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부가 벗겨졌지?’유강후가 긴장하며 자세히 살피려 하자, 온다연이 손을 움츠리며 울먹였다.“저리 가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울어서 눈이 빨개졌지만 피부는 여전히 희고 보드라워 순진무구하고 만만해 보였다.유강후는 눈빛이 사악해졌고, 또 그녀를 안고 한바탕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하지만 그녀의 손목 피부가 까지고 울어서 눈이 빨개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안쓰러웠다.유강후는 억지로 그녀를 안아 다리 위에 올려놓고 그녀의 머리에 키스하며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에는 살살 할게. 뚝, 그만 울어.”그는 말하면서 그녀의 잠옷 단추를 벗겼다.“좀 보자, 다쳤으면 약을 발라야 해.”온다연은 급히 옷깃을 붙잡으며 풀지 못하게 했다.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면서 억지로 단추를 풀었다.정말 다쳐서 피가 스며 나온 것을 보고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쉽게 다쳐?”유강후가 자기 몸을 지켜보자, 그녀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아저씨가 너무 세게 해서 그렇죠.”그가 눈이 빨개져서 날뛰는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유강후는 옷을 입혀준 후 지난번에 의사가 처방한 연고를 찾아 조금씩 발라주었다.온다연은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가 꽉 잡고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굴을 붉히며 그가 약을 바르게 내버려두었다.아직 세 개가 남아있고, 그가 꼭 한 통을 다 써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 그녀는 덜컥 겁이 나서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이만하면 안 돼요?”유강후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나를 뭐로 보고? 내가 그렇게 인정이 없는 사람인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내가 계속한다는 건가? 아니면 이 일 자체를 거부하는 건가? 그건 안 된다.’게다가 처음에는 그녀도 분명
유강후는 부드러운 캐시미어 니트를 가져와 갈아입히고 머리를 정리해 준 후에야 그녀를 안고 식사하러 나갔다.장화연이 꽃게 요리를 만들었다.온다연은 조금 먹어보니 맛있어서 스스로 게살을 바르다가 손이 찔렸다.그녀의 가늘고 흰 손가락에서 작은 핏방울이 흘러나왔다.유강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직접 가위와 도구를 챙겨와 게살과 게알을 조금씩 발라 그녀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하지만 그녀가 두 개째 먹으려 하자, 유강후는 동작을 멈추었다.“게는 성질이 차서 한 개만 먹어야 해. 먹고 싶으면 여름에 실컷 먹자. 지금은 안 돼.”그는 장화연을 돌아다보며 말했다.“장 집사가 점점 일을 못하네. 출산한 지 1개월밖에 되지 않았잖아. 앞으로 이렇게 성질이 찬 음식은 상에 올리지 마.”장화연은 온다연의 목에 생긴 빨간 자국을 힐끗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출산한 지 1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아시면 됐어요.”유강후는 안색이 확 변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이권이 들어오더니 나지막이 보고했다.“주희가 오늘 아침에 깨어났는데, 온다연 씨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있어요. 그 바람에 상처가 벌어지면서 또 출혈이...”“안 만나.”유강후는 안색이 좋지 않았고 목소리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죽고 싶으면 죽으라고 해. 옥상에 다시 올라가서 뛰어내리면 되겠네.”하지만 온다연이 의자에서 일어났다.“만날게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강경한 말투로 말했다.“안 돼.”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막 깨어났는데, 또 내장 출혈이 생기면 힘들어요. 만날게요.”그녀는 의자를 밀어내고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를 와락 끌어당겼고 눈에 분노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말했잖아. 안 된다고.”온다연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발끝을 쳐들고 유강후의 아래턱에 뽀뽀하고는 그의 팔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주한의 동생이잖아요. 주한이
침대에 한 달 동안 누워있어서 그런지, 그는 많이 야위어 무척 허약해 보였다.하지만 눈은 주한과 좀 더 비슷해진 것 같았다.온다연이 온 것을 보고, 그는 애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나가 나를 만나주지 않을 줄 알았어요.”온다연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아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왜 너를 만나지 않겠어? 몸조리 잘해. 몸이 중요하잖아. 완쾌하면 그때 만나도 늦지 않아.”주희가 자조 섞인 말투로 나지막이 말했다.“완쾌하면 오지 않을 거잖아요.”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주희야, 이러지 마. 너 이제 유명인이잖아. 팬도 많고. 팬들이 네가 이러는 걸 알면 속상할 거야.”주희의 눈에 대수롭지 않은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상관없어요. 스타가 된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예요. 그들한테 좋아해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이때 들어온 유강후는 주희를 보자, 눈에 짙은 독기와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온다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손바닥에 땀이 났네. 옷을 벗어. 여기 난방이 너무 잘 되네.”그는 말하면서 직접 그녀의 코트 지퍼를 열었다.옷이 너무 두꺼워서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덥다고 느꼈다.그래서 그녀는 순순히 유강후의 말대로 코트를 벗었다.유강후는 코트를 비서에게 건넨 후 또 그녀의 스카프도 풀었다.주희는 그녀의 목을 지켜보며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음침해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잠시 후, 그는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을 하더니 피를 토했다.깜짝 놀란 의사와 간호사가 얼른 다가와 검사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온다연은 걱정됐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기에 그 자리에 서서 보고만 있었다.유강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의사와 간호사에게 둘러싸인 주희를 힐끗 보고는 온다연에게 스카프를 다시 매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스카프를 매는 게 좋겠어. 바람 맞으면 안 되니까.”온다연은 주희 생각만 하며 조바심을 쳤다.“왜 갑자기 피를 토하죠? 다쳤던 곳에 문제가 생긴
추운 날인데 옷을 얇게 입은 것을 보니 급하게 뛰어온 모양이다.항상 풀메이크업을 하던 얼굴도 민낯 그대로라 어려 보이고 이목구비가 깨끗하면서도 화사해 보였다.하지만 얼굴이 눈물범벅인 것을 보니 조금 전에 울었던 것 같다.그녀는 유강후를 보고 황급한 기색을 띤 채 걸음을 멈추었다.“유 대표님...”유강후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들어가 봐요.”남하윤은 눈물을 닦더니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요. 유 대표님이 아니었으면 아버지가 저를 풀어주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오늘에야 주희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어요...”“주희는 지금 좀 어때요?”유강후는 자기와 상관없는 일을 말하듯 극히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4층에서 뛰어내려 장기를 다쳤는데, 응급 수술을 한 후에 한 달 동안 누워 있다가 오늘에야 깨어났어요.”남하윤은 얼굴빛이 더욱 창백해졌다.“혹시 불구가 됐나요?”“아니요. 게다가 예전과 똑같이 성질이 더러워요. 들어가 보면 알아요.”말을 마친 유강후는 온다연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남하윤은 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유강후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온다연을 쳐다보았다.이를 발견한 온다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남하윤 씨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주희가 남하윤 씨랑 잘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이 말을 들은 유강후가 코웃음을 쳤다.“남씨 집안 아가씨의 눈에 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데. 저 자식은 소중한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남의 것을 넘보고 있으니 좋은 결말이 있을 수 없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나이가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괴롭히지 마세요.”“나이가 어리다고? 나는 저 나이일 때 미래그룹 경영을 맡았어. 그리고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심리적 연령이 실제보다 높아. 연하남이 순진한 척, 거친 척하는 것은 다 수단일 뿐이야.”온다연은 잠자코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어쨌든 앞으로 자주 만나지 않을 테니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유강후는 코웃음을 치더니 입을 다물었다.위층에 올라가니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녀는 무려 임산부였다.게다가 그 남자의 품에 안겨 가냘픈 목소리로 아저씨를 찾기도 했다.남자는 그녀가 숨이 딸릴 정도로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손을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그 꿈은 꽤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내린 폭우가 쉼 없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릴 때야 온다연은 몽롱한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은 키 큰 남자가 창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었다.온다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부르려던 찰나 그 남자가 다급히 제지했다.“부르지 말아요, 저예요!”낮은 목소리는 익숙했다.온다연은 잠시 멈칫한 끝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그는 다름 아닌 꿈속의 그 남자였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인지 의문이 가득하던 찰나 온다연의 인기척을 느낀 경호원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아가씨,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겁니까?”온다연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여전히 걱정되어 물었다.“아가씨, 천둥소리에 놀라셨습니까? 같이 있어 줄 사람이라도 필요하십니까?”“필요 없다니까요!”“아가씨,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거셉니다. 문을 열어주시면 창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는지 저희가 검사해드리겠습니다!”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필요 없다고 말했잖아요. 귀찮으니까 더 말 시키지 말아요!”온다연이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경호원들도 잠잠해졌다.유강후의 옷과 바지는 모두 반쯤 젖어있었고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강후의 기세만큼은 가려지지 않았다.게다가 옷이 젖은 탓에 거의 보일락 말락 한 그의 탄탄한 몸매에 온다연은 얼굴이 붉어졌다.“강 대표님이 왜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죠?”유강후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려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깼어요?”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가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여긴 2층이라고요!”유강후는 여
남자는 안윤희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며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평범한 사람이라고?”“안 아가씨, 10년 전 금우역에서 불을 지른 일을 기억하나? 내 얼굴 좀 봐. 이 흉터, 네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생긴 거야!”남자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우리 부모님은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어. 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나를 잘 키워 공부를 시켜 성공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부모였어.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너희는 지나가다가 웃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그분들을 악의 화신이라 규정했지! 그러고는 우리를 집 안에 가둔 채 불을 질러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어. 우리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날 품에 안으셨고, 덕분에 나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부모님은 그만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지.”“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었지?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다는 거야? 몇 년 동안 너희를 찾아 헤맸어. 그렇게 한 명씩 제거했지. 너희가 세상을 정화한다고? 난 너희 같은 악마들을 정화할 거다!”남자는 안윤희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안윤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너희들 정말 잘 숨어 있더구나. 한 놈을 찾는 데 꼬박 반년에서 일 년이 걸렸어. 그런데 오늘은 누가 너를 직접 내게 데려다주고 돈까지 준 거야.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이야!”그는 안윤희를 거칠게 바닥에 내던지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형님들, 배 위에서 고기 구경 못한 지 오래됐지? 오늘 마음껏 즐겨보자!”“저기요, 이 아가씨는 신국 안씨 가문의 큰 아가씨입니다.”“걱정하지 마. 방금 뉴스에서 이 아가씨가 이미 죽었다고 나왔어. 심지어 시신도 확인됐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이 여자는 그저 안씨 가문의 아가씨를 닮은 여자일 뿐이야.”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안윤희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안 돼! 나는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너희가 날 건드리면 우리 이모부가
유강후는 진시현의 볼록하게 나온 배를 한 번 바라보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얼마나 됐어?”진시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섯 달 됐어요.”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움직이기도 해요.”유강후의 눈에 잠시 어두운 빛이 스쳤다. 예전에 자신의 아이도 딱 이 정도였을 때...유강후는 곧 미소를 짓고 로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로운, 대단하네. 이제 아빠가 됐구나. 결혼식 때 참석 못한 게 많이 아쉬웠는데 나중에 네 아들 태어나면 큰 선물로 보답할게.”항상 무표정하던 로운의 얼굴에 드물게 미소가 번졌다.“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받았습니다.”유강후는 말했다.“전에 준 건 모두 준구 것이었지. 지난 몇 년 동안 잘 관리해서 자산을 두 배로 늘렸더라. 하지만 이제 아내도 있고 아이도 생겼으니 너 자신을 위해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그걸 나눠서 20% 지분을 네가 가져. 내가 네 아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라고 생각하고.”로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뒤돌아 진시현의 볼록한 배를 몇 초간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며칠 동안 도련님을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조상님께 향도 한 번 올리고요.”유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똑똑한 아이이니 지금처럼 잘 키우면 성년이 되기 전에 양씨 가문으로 돌아가 일을 맡길 수 있을 거다. 데려가는 건 좋지만 아직은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물론입니다.”유강후는 다시 물었다.“내가 찾으라고 한 자료는 확인했어?”로운은 묶어둔 자료를 꺼내 유강후에게 건넸다.“이것은 성염 조직에 대한 정보입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굉장히 단결되어 있습니다. 한 번 목표로 삼으면 끈적한 반창고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조직은 크게 두려워할 것은 없지만 상대하기엔 매우 불쾌한 존재입니다.”유강후는 자료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윤희는 여기서
유강후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안윤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성염 조직, 너랑 무슨 관계야?”안윤희는 고개를 확 들어 올리며 눈빛에 불안함을 담고 대답했다.“무, 무슨 성염이요?”성염 조직은 국제적인 테러 집단으로 극단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그들은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악으로 간주한 대상은 무엇이든 태워 세계를 정화하려 했다.그들의 활동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악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이로 인해 암흑가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성염 조직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다.유강후는 안윤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말했다.“네가 어떤 조직에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둬. 만약 네가 온다연에게 손이라도 대려 한다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거야. 너희 안씨 가문과 성염 조직 모두 비참하게 끝날 테니까.”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꽉 쥐고 말했다.“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유강후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뒤돌아 걸어 나갔다.안윤희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천천히 일어섰다.방금 발에 차여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녀는 무릎이 긁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기색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사라져가는 유강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난 분명히 널 선택했어. 그런데 날 거부하고 그 재수 없는 여자만 원한 대가가 뭔지 제대로 보게 될 거야. 다연이가 그렇게 좋다면 두 사람 다 함께 끝장내주지.”“이모, 이모부. 저는 다연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애가 먼저 제 선택을 빼앗았어요. 뻔뻔한 사람은 다연이지 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저를 탓하지 마세요.”안윤희의 낮은 혼잣말은 복도를 스치는 바람 속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안심의 귀에 닿았다.안심은 다친 채 서 있는 안윤희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된 거니? 왜 이렇게 엉망이야?”안윤희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함께한 연인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만의 공간은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특별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유강후가 온다연 앞에서 이렇게까지 낮은 자세를 보일 줄은.유강후는 온다연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소중히 감싸 보호하는 것 같았다. 유강후는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처리하며 온다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살폈다. 그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인내를 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온다연은 그런 그의 행동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다 부모님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서야 온다연은 자신이 유강후의 옷소매를 잡고 있었다는 것과 방금 그 소매로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방 안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안윤희만 질투 어린 눈빛으로 온다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유강후는 이 어색한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듯 즉시 사람을 시켜 과일을 준비하게 했다.게다가 그가 준비한 과일은 전부 온다연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과일이 준비되고 나서 진수현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대표, 당장 나가!”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너무 오래 있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일을 준비했으니 다연이가 다 먹는 걸 보고 나가겠습니다.”진수현은 조금의 인내도 없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다연이 부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지켜줄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나가!”유강후는 움직이지 않고 과일 접시를 들어 올려 깎은 과일 하나하나에 이쑤시개를 꽂았다. 심지어 샤인머스캣조차도 빠뜨리지 않았다.그는 과일을 다 준비한 뒤 온다연 앞에 과일 접시를 내밀며 낮게 말했다.“먹어.”온다연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과일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왜 딸기까지 반으로 잘랐어요?”유강후는 온다연의 머리를
안윤희는 눈가가 붉어진 채 무언가 말하려다 문득 들어오는 유강후를 바라보았다.유강후는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피로가 얼굴에 드러났지만 강렬한 분위기와 또렷한 외모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그는 방 안에 있는 안윤희를 힐끗 바라봤고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안윤희의 온몸에 서늘한 전율이 퍼졌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으며, 마치 독을 품은 칼날처럼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안윤희는 자신이 수많은 남자를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는 유강후가 유일했다.안윤희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고 유강후가 뭔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그러나 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했으며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죽은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이다.안윤희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머리를 매만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 안녕하세요.”유강후는 더 이상 안윤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장 온다연 앞으로 다가가 작은 약병을 건네며 말했다.“이건 곽 의사가 방금 보내준 약이야. 먹어봐.”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부드러움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세상에 수많은 아름다움이 있어도 그의 눈에는 온다연만이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인 듯했다온다연은 병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특이한 향이 풍겼고 어딘가 피 냄새와도 비슷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온다연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유강후는 병을 다시 가져가 약을 꺼내 직접 하나 삼켰다.“봐, 문제없어. 이 약 총 20알이야. 곽 의사가 그러는데, 재료가 워낙 귀해서 자기한테도 40알밖에 없었대. 그중 절반을 나한테 준 거거든. 이거 먹으면 건강 진짜 좋아질 거야. 어쩌면 앞으로 약 안 먹어도 될지도 몰라.”그가 말을 마치자 진수현은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약이 20알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하나를 먹었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야?”유강후는 아무 대꾸 없이 옆에 있던 곶감을 집어 온다연의 입가로
“너도 명색에 안씨 가문의 큰딸이야. 가문이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지만, 여전히 명문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좋은 물건이 부족할 리도 없는데 왜 이러는 거니...”안심은 말을 멈추고 온다연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다연아, 그저 한 세트의 장신구일 뿐이야. 너무 기분 상하지 말고, 엄마가 더 좋은 걸로 새로 준비해 줄게.”온다연은 안윤희 눈에 잠깐 스친 뚜렷한 분노를 보고는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배은망덕하다는 말이 딱 적합했다.“엄마, 더 큰 금고를 하나 마련해 주세요. 귀중한 물건들은 거기 보관하고 제가 직접 관리할게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안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물건은 네가 직접 챙기는 게 맞지.”안윤희의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이건 분명 안윤희를 경계하려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안윤희는 개의치 않았다. 고작 몇 개의 장신구일 뿐이었고 갚지 못할 정도의 거금도 아니었다. 대진 그룹의 부대표가 된다면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온다연은 바보처럼 자신의 손에 놀아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안윤희의 눈에 스친 냉소는 온다연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지난 3년간 아버지 진수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운 온다연은 속으로 생각했다.회사 관리를 원하지 않는 것과 관리 능력이 없는 건 엄연히 다른 거라고.비록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사업을 결코 남의 손에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온다연은 진수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아빠, 이제 제 신분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대진 그룹을 정식으로 이어받아 앞길을 열어가고 싶습니다.”온다연의 말에 안윤희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다연아, 아직 몸이 좋지 않잖아. 건강을 회복한 뒤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 회사 일은 우리한테 맡겨도 되잖아.”온다연은 안윤희의 말을 무시한 채 진수현을 향해 말했다.“아빠, 언제까지 아빠 뒤에만 숨을 수는 없어요. 이
안씨 가문도 명문가이긴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할 뿐 이미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만약 진씨 가문이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안윤희는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게다가 예전에 온다연에게서 가져간 물건 중 상당수는 이미 팔아버려 이제 와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그때 밖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윤희의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나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다연아, 이러지 마. 예전에 네가 선물로 줬던 물건들을 이제 와서 돌려달라니, 말이 돼? 난 우리를 자매처럼 생각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안윤희를 차갑게 바라보았고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잠시 후, 진씨 부부가 방으로 들어왔다.안심은 안윤희가 온다연의 병상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온다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윤희가 먼저 말했다.“이모, 다연이가 제가 예전에 받았던 장신구들을 다 돌려달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뭘 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줬어요... 어젯밤에 제가 다연이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둔 걸로 저를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제 일이 있었는데 말이에요...”안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심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연아, 정말 그런 거야?”온다연은 상체를 일으키며 안윤희를 차갑게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짜증이 치밀었다.“언니, 연기 그만해. 그동안 언니가 내 물건 가져간 건 전부 언니 멋대로였잖아. 빌린다고 말했지만, 내가 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리고 어제 언니가 가져간 건 내가 결혼식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장신구였어.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건데, 그냥 가져가더라. 난 허락한 적이 없었는데. 아니면 진씨 가문 물건은 언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이야?”온다연의 말투에는 서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언제부터 진씨 가문이 안씨 가문과 한 식구가 됐는데?”
그때 유강후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에 표시된 번호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몇 분 후, 안윤희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안윤희는 연한 하늘색 발목 길이 드레스를 입고 하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있어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러나 침대 위에서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온다연의 모습이 훨씬 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안윤희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안윤희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유강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안윤희는 장미꽃을 창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다연아, 몸은 좀 괜찮아졌어?”하지만 온다연은 원래부터 백장미를 싫어했다.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윤희를 쏘아보며 물었다.“왜 왔어?”안윤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깨어났다고 해서 와봤어. 그런데 아직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시 누가 진씨 가문을 노리기라도 했어?”온다연은 이번 일에 안윤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내가 깨어난 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언니가 더 잘 알지 않아?”안윤희는 순간 당황했다.온순했던 온다연이 요즘은 마치 가시가 돋은 듯 상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다연아, 혹시 어제 내가 목걸이를 빌려 간 것 때문에 아직도 화난 거야?”안윤희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제 급해서 미처 말 못 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온다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빌린 거라고? 그럼 어제 가져간 장신구 다시 돌려줄래? 내가 다시 쓸 일은 없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내 혼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라 남에게 줄 수는 없어.”안윤희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돌려달라고 요구하다니, 감히!원래 그 장신구는 안윤희,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온다연이 중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