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병실 문밖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조각상처럼 응급실 문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권은 그의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지만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다. 이때 유강후의 비서가 다가와서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유 대표님이 사인해야 할 아주 중요한 서류가 있습니다!” 이권은 고개를 저으며 막아섰다. “지금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잠시 기다려야 해요!” 이권은 유강후의 신임을 받는 측근이었기에 그의 말은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그 서류가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상대방이 계속 재촉했지만 비서는 이권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서는 평소에 당당한 모습으로 회사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던 유강후가 지금은 응급실 문 앞에 서서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는 유강후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평소 모든 이들이 의지하던 그가 지금은 심한 고통에 빠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아파하고 있었고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비서는 잠시 지켜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져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대표님을 계속 지켜봐 주세요. 저는 다시 회의로 돌아가겠습니다. 나중에 유대표 님께 급히 서명이 필요한 중요한 서류가 있다고 알려 주세요.” 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갈수록 마치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늘어나는 듯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 마침내 응급실의 문이 열렸다. 온다연이 침대에 실려 나왔다. 유강후의 마음이 순식간에 위로 치솟았다. 그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아는 일단 무사해요. 잘 돌보셔야 해요. 더 이상 자극을 받으면 안 됩니다. 온 아가씨가 너무 큰 감정적 충격을 받아 갑작스러운 심장 리듬 이상이 생겨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 겁니다...” 유강후의 마음은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마치 물 밖으로 튕겨 나갔던 물고기가 다시 물속으로 돌아온 듯 그는 정상적으로 숨
유강후의 손이 잠시 멈추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이미 구월이가 있잖아. 왜 아직도 그 고양이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때, 온다연의 손이 갑자기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의 옷을 꽉 잡았다. 마치 악몽에 갇힌 사람처럼 몸이 경직된 채로 하니만 애타게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불안과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녀의 꿈속에서 하니는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애틋하게 헤어진 누군가인 것처럼 느껴졌다. 유강후는 미간을 더욱 찡그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에 입 맞추며 낮게 말했다. “다연아, 그 고양이가 그렇게 중요해? 네 꿈속에 나도 있어?” 하니가 그냥 고양이여서 다행이었지 만약 그게 사람이었다면 온다연이 이렇게 애타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그는 미쳐버렸을 것이다. 유강후는 몰랐다. 온다연은 그 순간 악몽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주한이 죽을 때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검 붉은색의 피가 그녀의 꿈속 하늘을 뒤덮었고 온다연은 붉은 하늘 아래서 그의 부서진 몸이 서서히 사라지며 작은 거품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달려가 그 사라지는 거품을 잡으려 했지만 아무리 달려도 닿을 수 없었고 잡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반복되는 악몽은 그녀를 점점 더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다연아.”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를 그 꿈에서 천천히 끌어냈다. 그 목소리는 매우 익숙했고 그녀에게 안전한 느낌을 주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 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었다. 진정제가 그녀를 깊이 잠들게 했고 그녀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거대한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낯선 복도의 앞에 서 있었다. 복도의 끝에는 조그마한 아이가
말을 마친 아이는 온다연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 “저 이제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엄마, 아빠랑 꼭 빨리 저를 데리러 오셔야 해요.” 온다연은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학교? 가지 마!” “그냥 유치원이요. 엄마를 떠난 아이들은 모두 그곳에서 학교를 다녀요. 엄마, 아빠가 다시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꼭 저를 일찍 데리러 오셔야 해요. 거긴 너무 춥고 전혀 좋지 않아요. 어떤 친구는 엄마가 그곳에 두고 5년이 지나도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 엄마도 저를 5년 동안 거기 두면 저 엄마 안 좋아할 거예요!” 그 말을 마치고 아이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아이의 작아지는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깨달았다. 자신에게 정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급하게 그 아이를 쫓아가려 했지만 아이는 금방 멀리 달려가더니 작은 별빛이 되어 사라졌다. 온다연은 그 자리에 서서 울며 외쳤다. “아가야, 돌아와!” “아가야!” “다연아!” “온다연!”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온다연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인 것은 확대된 유강후의 얼굴이었다.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꿈속의 아이와 놀랍게도 닮아 있었다. 온다연은 여전히 꿈속에서의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고 손을 들어 유강후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기가 없어졌어...” 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한 후 그녀의 손을 그녀의 배 위에 얹었다. “만져봐, 여전히 있어.” 불룩하게 나온 배가 온다연에게 잠깐의 안도감을 주었다.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갑자기 유강후를 꽉 껴안았다. “꿈을 꿨어요. 아기가 사라지는 꿈을.” “너무 불쌍했어요. 신발도 안 신었고 너무 추웠어요...” 꿈속 장면을 떠올리자 그녀는 다시 슬퍼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게 진짜면 어떡해요...” 유강후는 그녀를 안고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뭔가 아부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한 번 열어봐.” 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석은 필요 없어요. 가져가서 다른 사람에게 줘요.” 유강후는 부드럽게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보석이 아니야. 열어보면 알아. 네가 좋아할 거야.” 온다연은 더 이상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컴퓨터 화면에서 보고 있던 드라마를 계속 봤다. 그 드라마는 주혜성이 출연한 새로운 캠퍼스 아이돌 드라마였는데 서브 남주로 등장한 주혜성의 분량이 남자 주인공보다도 많았다. 주혜성의 청초한 얼굴이 화면을 채우자마자 댓글 창에는 팬들의 주접이 폭주했다. 유강후는 온다연이 자신을 무시하고 주혜성의 영상을 보고만 있는 것을 보자 눈 속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번뜩였다. 분노가 가득한 감정이 잠시 그의 표정에 드러났지만 곧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깊은 어둠과 달콤한 애정이 채웠다. 그는 상자를 열며 말했다. “이거 봐, 네가 좋아할 거야.” 상자 안에는 유명한 중화TV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 초대장이 두 장 들어 있었다. 시간은 바로 오늘 저녁이었다. 온다연은 그를 바라봤고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바로는 일반 방송국이 유강후를 섭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 그를 초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강후는 초대장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저녁 하는 이 예능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야. 많은 인기 스타들이 초대되었고 네가 좋아하는 주혜성도 나와.” 온다연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가 자신이 주희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그런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주희의 커리어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의 활동을 꽤 지켜보는 편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그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본 건 그 작은 음식점에서였으니까. 온다연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녀는 초대장을 집어 들고 살펴보며 조용히 말했다. “가면 오래 있어야 해요
온다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마음이 좀 놓인 듯 계속 말했다. “남 씨 가문이랑 나 친해. 남하윤 그 아이도 너 본 적 있잖아. 네가 정말로 그 주혜성을 좋아하면 남하윤에게 부탁해서 너랑 친구 되게 해줄 수 있어. 어때?” 온다연은 마침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 지금 무슨 말 하려는 거예요?” 유강후의 눈빛에 그녀를 향한 애정이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작은 연예인일 뿐이야. 네가 좋아하면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거지. 다른 뜻은 없어.” 온다연은 더 이상 이 주제를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아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주희를 한 번 보고 싶었다. 멀리서 한 번 보기만 하면 충분했다. 아마도 이것이 주희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저녁에 유강후는 온다연을 데리고 약속대로 방송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앉은 자리는 시야가 탁월한 VIP 구역이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TV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었다. 유강후의 등장은 작은 소동을 일으켰다. 평소 지나치게 조용히 행동하던 유 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이런 예능 프로그램을 보러 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이 황태자의 태도는 매우 냉정했다. 인사를 건넨 사람들은 고작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반응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옆에 앉은 작은 여인에게는 다정하게 신경을 썼다. 사람을 불러 그녀에게 따뜻한 물을 쥐여주어 손을 녹이고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무릎에 덮어주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녀를 보석처럼 다루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잘못될 가봐 노심초사했다. 누군가 눈치 없이 그 여자아이를 몇 번이라도 더 쳐다보면 그의 시선이 바로 쏘아지곤 했다. 그 시선에 담긴 차가운 기운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란 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주희 얘가 정말 제대로 미친 걸까?만약 유강후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두 사람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하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주희야, 함부로 말하지 좀 마. 내가 여기 있는데, 이런 말은 밖에서 하면 안 되지.”그 말에 주희도 낮게 웃음을 흘리며 비웃기라도 하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래, 누나.”그러면서도 주희의 눈빛은 온다연을 스치듯 훑었다.“하지만 누나가 너무 보고 싶은걸요.”남하윤은 주희의 옷을 잡아당기며 얼굴을 찌푸렸다.“너 오늘 왜 이래?”주희는 시선을 돌려 유강후를 바라보더니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유 대표님께서 이런 시시한 곳에는 왜 오신 걸까요? 여긴 경제 프로그램도 아닌데.”유강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서늘한 기운을 머금은 채 주희를 바라보았다.방금 주희가 한 말이 남하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다연을 향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유강후는 냉랭한 눈빛으로 주희를 노려보았다. 그 살벌하고도 차가운 기운에 주위 사람들 모두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남하윤도 주희가 갑자기 유강후를 이런 식으로 도발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남하윤은 서둘러 주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더 이상 입을 열어선 안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그러면서 유강후에게는 사과의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대표님, 정말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이윽고 그녀는 송지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시장님께서도 오셨네요. 오늘 프로그램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 봐요. 이렇게 엄청난 분들까지 직접 오시다니.”송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희의 시선은 여전히 유강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송지원은 티 안 나게 표정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남하윤, 네 남자 친구 관리 똑바로 해. 말 함부로 하게 하지 말고, 시선 처리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철저히 하라고. 너희 같은 어린 애들이 함부로 건드려서
그래도 대인배였던 남하윤은 곧바로 미소를 되찾고 대답했다.“대표님의 충고, 감사히 받아들일게요. 저도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이윽고 그녀는 유강후의 곁에 있는 온다연에게 시선을 옮기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이분이 바로 다연 씨죠? 저희 만난 적 있잖아요.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예쁘신 것 같은데요.”온다연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감사합니다, 하윤 씨.”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주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희의 눈빛에는 분노와 증오만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온다연은 그 눈빛에 미세하게 표정을 찡그리며 유강후의 손을 살며시 잡고는 낮게 말했다.“아저씨, 우리 그냥 돌아갈까요? 저 조금 피곤해요.”하지만 유강후는 덤덤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차가운 음성으로 대답했다.“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보고 가자. 결혼식에 쓸 피아노 연주곡이 있다고 하던데, 들어보고 괜찮으면 우리 결혼식에 쓰지, 뭐.”그 말에 주희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에 온다연의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급히 유강후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낮게 속삭였다.“이런 얘기는 밖에서 하지 말라고요, 제발.”남하윤은 유강후의 말을 듣고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깊은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다연 씨, 유 대표님이랑 결혼하시는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제가 선물 엄청난 거 준비해드릴게요.”하지만 유강후는 계속해서 주희를 바라보았다.온다연이 주혜성과 아는 사이인지 아닌지 유강후는 몰랐다. 하지만 주혜성의 반응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확실히 온다연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니 유강후는 자연스레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주혜성을 온다연의 과거 동창으로, 온다연을 탐냈던 그 남자로 여겼다.잠시 후, 시선을 돌린 유강후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땐 네 남자 친구도 같이 데리고 와.”온다연을 이끌고 자리에 앉은 그는 더 이상 남하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남
싸늘한 시선으로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인 주희를 한 번 쏘아본 유강후는 몸을 일으켜 온다연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 순간,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더욱 애절해졌다. 그 음악은 마치 저주라도 된 듯 온다연을 감싸며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터뜨릴 듯 조여왔다.온다연은 유강후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파묻으며 말했다.“아저씨, 저 너무 피곤해서 그래요. 우리 이만 돌아가면 안 될까요.”유강후는 온다연을 더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그래.”그는 온다연을 데리고 빠르게 공연장을 빠져나갔다.밖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공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몰아치는 차가운 공기에 온다연은 유강후의 옷을 더욱 꽉 움켜잡고 말했다.“저 좀 추워요.”유강후는 온다연을 자신의 코트 안으로 감싸 안으며 낮게 물었다.“이래도 추워?”온다연은 여전히 유강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마음속이 너무 추워요.”그 말에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한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온다연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제 유강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얼마 전, 그는 예전에 유씨 가문에서 해고된 하인들과 집사들을 모두 찾아내 숨겨진 진실을 파헤쳤다.처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던 때, 온다연은 반항도 해보고 경찰에 신고까지 해봤지만 그 뒤에 따르는 것은 더욱 심한 모욕과 보복이었다.해고된 하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온다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끼니를 거르는 것 정도는 자연스럽고도 가벼운 일상이었다고 한다.겨울에는 온다연의 침대에 얼음을 쏟았고, 여름에는 그녀의 방에만 난방기를 틀어놓았다. 밥에는 작은 압정들을 뿌렸고, 죽은 쥐, 고양이나 강아지의 사체가 그녀의 침대 위에 놓여 있곤 했다.온다연이 전에 갇혔던 그 물탑 옆 방은 온다연이 한여름에 몇 번이고 갇혔다가 탈수 상태로 나왔던 방이었다. 심미진은 그런 온다연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 아무도 온다연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감히 상상도 못 했다.그 후부터 온다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