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연은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돌린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유강후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이 거리에서 그녀는 몇 년 동안 살았다. 곳곳에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설령 유씨 집안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해도 그녀는 거의 매일 이곳으로 왔다.물론 그때는 주한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이 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어느 골목 벽에 벽돌이 몇 개 떨어졌는지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다만 유감스럽게도 항상 그녀의 곁에 있어 주던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주한은 4년 전 악랄한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주한이 눈을 감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주한은 영원히 눈을 감게 되었다. 그리고 주한을 죽게 만든 인간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음료수를 꽉 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손등에 핏대가 드러났다.‘주한, 내가 꼭 복수해줄게!'멍 때리는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차를 세웠다.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던지라 춥기도 했고 습하기도 했다.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는 나무 그늘에 세웠던지라 불빛이 어두웠다.동시에 차 안의 분위기는 어둡고도 위험하기도 했다.유강후는 온다연의 고개를 억지로 돌리며 빤히 보았다.“말해 봐. 예전에 다른 남자랑 이 거리를 걸었어?”말을 마친 그는 온다연을 빤히 보았다.만약 온다연이 세심한 사람이었다면 유강후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그는 온다연이 그런 적 있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예전의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10년 전 그가 바꿀 수 없었던 그때, 그녀가 유난히도 힘들었던 그때, 조금 전 그 사장이 말한 것처럼 그녀에게 따듯함을 준 남자애가 있는지 궁금했다.만약 있었다면 그 남자애는 영원히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살게 될 것이다.그는 그녀의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
유강후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강제로 온다연의 고래를 돌렸다.“왜 피하는 거지?”온다연은 그의 손을 떼어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아저씨, 아파요. 정말로 아프단 말이에요.”나무 그늘 아래 불빛은 어두워졌고 그녀의 눈빛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작고 나른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꼭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오늘은 안 돼요. 아파요...”그녀는 이 거리에서 그와 키스하고 싶지 않았다. 행복했던 기억이 가득했던 이 거리에 불쾌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유강후는 손을 내렸다.“어느 식당에서 밥 먹고 싶어?”온다연은 시선을 내리깔며 음료수만 만지작거렸다.“제가 가고 싶은 식당은 그리 호화로운 곳은 아니에요. 혹시 아저씨가 싫으시면 안 가도 돼요.”그 식당은 그녀와 주한이 자주 가던 식당이었다. 방금 그 일로 그녀는 식당 주인이 또 그녀를 알아볼까 봐 조금 겁이 났다.지금은 주한이가 제일 좋아했던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으니 그와 함께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로 만족했다.그러나 뜻밖에도 유강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어느 식당인데?”온다연은 다소 뜻밖이었던지라 자심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냥 다른 식당 가요.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먹고 싶은 건 아니에요.”운전대를 잡고 있던 유강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어느 식당인데?”온다연은 앞을 보았다. 앞쪽 모퉁이에 예전에도 있었던 커다란 회화나무가 보였다.저도 모르게 주한이 떠올랐다. 주한은 커다란 회화나무 아래에서 쉬는 것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다.“저 앞쪽 모퉁이에 골목이 있을 거예요. 차로 들어가긴 힘든 길이에요. 그러니까 그냥 다른 곳으로 가요.”유강후는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에서 양털 목도리를 꺼내 온다연에게 꼬옥 둘러준 뒤 자신은 옷깃을 세웠다.“걸어가자.”말을 마친 뒤 그는 온다연의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쏙 넣었다.거리는 30, 40년 정도의 역사가 있었던지라 조금 낡았다.비까지 내리고 있어 길은 아주 미끄러웠고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질
유강후는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녀가 어렸을 때 풋풋하고 아름다운 연애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는 이미 많은 순간을 놓쳤다. 지금 다시 보상하려고 해도 늦은 것 같았다.유강후는 작은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누가 웃는데? 다른 커플들은 다 업고 다니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거지?”말을 마친 그는 코트 끝자락으로 그녀의 신발에 묻은 흙을 닦아주었고 이내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업혀!”온다연은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거절하고 싶기도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려 마음이 복잡했다.이 거리는 그녀와 주한의 추억이 가득한 거리였다. 그녀는 이런 거리에서 유강후와 애정행각을 벌이고 싶지 않았고 유강후와의 추억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고 내일이 없이 사는 사람이었던지라 많은 추억을 안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커다란 회화나무를 보더니 작게 말했다.“그럼, 저기 나무까지만 업어주면 안 돼요?”유강후는 그런 그녀가 이상해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안아서 가지.”말을 마치 그는 그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바로 오른팔로 안아 올렸다.그는 키가 컸지만, 그녀는 키가 작고 아담했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꼭 작은 동물을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아무리 거리의 조명이 어두워도 온다연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얼른 고개를 그의 어깨에 파묻으며 들지 않았다.귀가 빨갛게 익어버렸다.유강후는 키가 큰 만큼 다리도 길쭉했기에 얼마 걸리지 않아 바로 회화나무 아래로 왔다.모퉁이로 걸어가려던 때 그는 다시 그녀를 길가의 벤치에 세워두고 등으로 업으려고 했다.이번엔 얌전히 업혔다.그의 등은 아주 넓고 듬직했다. 등에 업혔을 때 그녀는 착각하게 되었다.어쩌면 그녀에게 제일 의지가 가는 사람은 유강후일 것이라고.옷가게를 지나쳐 갈 때 커다란 유리창에 비친 유강후의 모습을 힐끗 보았다.젊고, 키도 크고
온다연은 고개를 확 들었다. 그러자 맑은 두 눈과 눈이 마주쳤다.식당으로 들어온 사람은 소년미가 잔뜩 풍기는 사람이었다. 연한 회색의 목폴라 티에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는 얼굴도 훈훈해 꼭 영화 포스터에서 볼 법한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식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온다연은 그를 보자마자 놀라면서도 믿기지 않는 눈길로 보았다.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시선을 돌려 유강후를 보았다.온다연도 남자의 곁에 있던 사람을 보았다.젊고 예쁜 여자였다. 겨울인데도 옷차림이 얇았다. 여자는 크롭티에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화장은 조금 두꺼웠지만, 애티는 가릴 수 없었다.온다연은 시선을 돌려 바깥을 보았다. 그들이 내린 차가 보였다.붉은색 페라리는 대충 문 앞에 세워져 있었고 차 앞에 달린 번호도 특이했다.그녀는 시선을 빠르게 거두며 주문 받으러 온 직원에게 말했다.“농어찜이랑 닭볶음탕, 그리고...”온다연은 메뉴판을 보며 주문했다. 소년이 집요하고 막막한 시선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그녀는 이내 여자가 소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주희야, 우리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으니까 옆 테이블에 앉자.”주희와 여자는 두 사람의 뒤에 앉았다. 온다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유강후는 그녀가 차 안에서부터 들고 있던 음료수를 컵에 따라 주었다. 온다연이 마시기도 전에 여자가 다가왔다.여자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머, 유 대표님. 이런 곳에서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 남하윤이에요, 기억하고 계시죠? 저의 아빠 성함이 남재웅이에요.”유강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버님은 잘 지내고 계시죠?”여자는 웃으며 말했다.“네, 어제도 대표님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대표님이 영원에서 기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주 훌륭하다면서 칭찬하셨는걸요. 윗선에서도 아주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평진과 부현의 프로젝트도 대표님께 넘어갈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이때
주희의 신경은 온통 온다연에게 가 있었고 남하윤의 말이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다만 유감스럽게도 온다연은 그를 등지고 앉아 있었던지라 계속 유강후를 빤히 보게 되었다.한참 지난 후 온다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작은 식당 화장실 옆엔 문이 하나 있었다. 온다연은 화장실 가는 척 그 문으로 나갔다.2분 뒤, 주희도 그 문에서 나왔다.“누나.”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그녀를 불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온다연은 흐트러진 그의 옷깃을 정리해주며 작게 말했다.“연예계 들어가기로 한 거야?”주희가 답했다.“네, 돈 좀 벌려고요.”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어떤 길을 걸어가든 누나는 널 말릴 생각 없어. 하지만 아직 수능을 못 쳤잖아. 적어도 수능은 끝내고 해.”주희는 온다연의 손을 꼬옥 잡으며 결의에 찬 어투로 말했다.“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누나가 매일 유씨 집안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것만 떠올리면 너무 괴로워서 버틸 수 없어요. 게다가 누나는 제 약값까지 감당하고 있잖아요. 누나가 힘들게 사는 게 싫었어요. 요즘엔 누나가 유강후랑 함께 살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유강후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사람이라고요. 누나, 전 더는 누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소년의 눈빛은 단호했고 두 눈엔 오로지 온다연만 담고 있었다.온다연은 손을 빼내며 문 쪽을 힐끗 보더니 작게 말했다.“여긴 대화를 나누기엔 적합하지 않아. 짧게만 말할 수 있으니까 잘 들어야 해.”“첫째, 일단 수능부터 봐. 두 번째, 네 형 일은 신경 쓰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세 번째,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인 거야. 내가 죽든 말든 모른 척하고 살아. 이건 내가 네 형한테 빚진 것이기도 하고 너한테 빚진 것이라고 하니까...”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희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누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나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발걸음 소리도 가까이에서 들리자 마음 급해진 온다연은 있는 힘껏 주희의 손을 떼어낸 후 밀어버리곤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작은 나무문이 닫힌 순간 모퉁이에 서 있는 유강후가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키가 아주 컸던지라 좁은 복도에 서 있기만 해도 공간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기분이 들어 숨이 막혀왔다.온다연은 심호흡을 하곤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아저씨, 우리 돌아가요. 저 몸 상태가 좀 안 좋은 거 같아요.”바깥에서 다소 오래 서 있었던지라 그녀의 안색이 조금 창백했고 손도 차가웠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환자 같았고 보기만 해도 나약하고 가련해 보였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몸이 왜 이렇게 찬 거지?”온다연은 행여나 주희가 문을 확 열고 들어올까 봐 겁이 나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저 아파요.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 집으로 가요, 네?”불빛 아래서 본 그녀의 얼굴은 더 창백했다. 입술엔 혈기도 없어 유강후는 정말로 그녀가 아픈 줄 알고 안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손길을 피해버렸다.“안 돼요. 여긴 아저씨 지인이 있잖아요.”망을 마친 그녀는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물건을 챙긴 뒤 계산을 했다.유강후는 그녀가 수상했지만 창백한 그녀의 얼굴이 다시 눈에 들어오니 저도 모르게 의심을 지우게 되었다.나가기 전 온다연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힐긋 보았다.주희는 복도 모퉁이에 서서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주희의 얼굴은 주한과 닮아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빤히 보고 있을 때 그 눈빛은 죽은 주한과 똑같았다.온다연은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더는 그를 볼 겨를이 없었기에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나가버렸다.집으로 돌아왔을 때 장화연은 이미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두었다.유강후는 온다연을 안아 욕조에 담근 후 꼼꼼히 몸을 살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유강후는 천천히 강압적이면서도 부드럽게 그녀를 탐했다. 그녀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부끄러워하면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한때 경원에서 잘 나가던 부잣집 딸 고유정이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은.물론 사람들의 호기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더 큰 소식이 퍼졌다. 바로 이씨 가문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다.조사를 받게 된 원인은 이씨 집안의 딸 이효진이 영원에서 대놓고 남자를 불러 거창하게 놀았기 때문이다.이효진의 진짜 SNS 계정을 찾아낸 사람들은 그녀가 올린 사치스러운 사진과 영상에 넋을 잃고 말았다.몇억이나 하는 슈퍼카에 가치가 억에 달하는 보석까지, 그리고 엄청나게 호화로운 커다란 별장 전부 그녀가 찍은 영상에 나왔다.게다가 이효진은 부계정을 만들어 네티즌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간간이 [내가 누구 딸인지 알아?]라는 댓글도 달았다.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효진을 신고하면서 엄밀하게 이씨 집안을 조사해주길 바란다는 청원을 올렸다.이씨 집안은 여론의 압박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되었고 수색영장도 떨어졌다.이씨 집안에 폭풍우가 휘몰아쳐 곧 망할 것 같았다.이러한 사람들과 인기 검색어 순위를 다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연예인 주혜성이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예능을 하게 되었다. 뛰어난 예능 감각과 꿀 바른 듯한 목소리에 순식간에 수많은 팬을 보유하게 되었고 인기도 치솟았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또 몇 개월이 지났다. 온다연의 고양이 구월이도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오후에 경원으로 돌아갈 때 그녀는 구월이도 데리고 갔다.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원에 급한 일이 생겨 유강후는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몇 시간 뒤, 유씨 집안 집사인 주석진이 찾아왔다.“온다연 씨, 사모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셋째 회장님께서도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셋째 회장님은 유재성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유씨 집안의 셋째였던지라 젊었을 땐 셋째 도련님이라고 불렀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셋째 회장님이라고 불렀고, 셋째 도련님은 유강후의 호칭이 되었다.온다연은
차는 빠르게 달려 유씨 가문 본가로 왔다.차가 멈추자마자 온다연은 강제로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커다란 거실엔 유재성을 제외한 유씨 집안사람 전부 앉아 있었고 다들 사나운 눈빛으로 온다연을 보고 있었다.특히 최금영의 눈빛은 꼭 그녀를 이 자리에서 찢어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유자성의 표정도 한껏 일그러졌다.비록 유자성은 예전에도 온다연에게 눈길을 준 적 없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었다. 이렇듯 쳐다보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보아하니 그도 온다연을 죽여버리고 싶은 듯했다.이들 중에서 오직 심미진만이 복잡하고 난감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이들을 본 온다연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유강후의 관계를 알아버렸다고 생각했다.서늘한 한기가 그녀의 발밑으로부터 허리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오늘 어쩌면 정말로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시선을 돌려 유하령을 보았다.주먹을 꽉 움켜쥐며 생각했다. 만약 이 집에서 죽게 되면 반드시 유하령과 함께 죽이리라 말이다.이때 유하령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가와 손을 올리더니 그녀의 뺨을 갈궜다.“천박한 년!”온다연은 몸을 굽히며 유하령의 손길을 피해버렸다.그리고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유하령을 보더니 머리채를 확 잡고 힘껏 벽에 받아버렸다.그녀는 비록 키가 작았지만, 막상 궁지에 몰리게 되면 엄청난 괴력을 뿜어냈다.유하령은 소리를 질렀다. 벽에 머리가 부딪치고 나니 어질거렸다.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온다연, 이 천박한 X! 지금 날 때린 거야?!”온다연은 그녀가 일어서기도 전에 다시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또 벽에 받아버렸다.유하령의 이마엔 어느새 피가 흘러나왔고 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그녀는 손을 들어 까진 이마를 만졌다. 손에 피가 한가득 묻어났다.그러더니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아아악! 감히 날 때렸어! 이 미친 X이!”온다연은 한 걸음 물러서며 차갑게 그녀를 보았다.“난 왜 널 때릴 수 없는데? 네가 뭐라고?”
유자성이 차가운 얼굴로 문 앞에 나타나더니 경호원들을 향해 손짓했다.“유씨 저택으로 데려가요.”경호원이 망설였다.“문 앞의 경호원이 검문하면 어떡합니까?”유자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버지의 지시라고 말해요. 그 사람들이 감히 아버지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요.”“네!”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유자성 씨,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유자성은 혼수상태에 빠진 유강후를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얼른 데려가요. 그 다음 일은 할머님이 지시하실 거예요.”말하고 나서 그는 유재성의 병실에 들어갔다.유재성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병색을 띠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그는 유자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색하며 말했다.“또 강후에게 전화했어? 그냥 잔병이고 고질병이야. 2-3일 지나면 퇴원할 수 있어. 강후가 바쁠 텐데 방해하지 마.”유자성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그에게 건네주며 웃었다.“아버지, 걔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방금 전화했더니 비서가 받더라고요. 지금 국내에 없고 며칠 후에야 돌아온대요. 강씨 집안에 볼일이 있나 봐요.”유재성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더니 한참 후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두 형제가 얼마 전 마찰이 있었다던데, 강후가 돌아오면 내가 화해시켜 줄게. 친형제 사이에 분란이 생기면 안 돼야. 계속 이대로 나가면 유씨 집안에 조만간 큰 문제가 생길 거야.”유자성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걔가 남을 위해...”“그건 강후의 선택이야.”유재성은 언짢은 얼굴로 유자성의 말을 잘랐다.“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강후 자신의 선택이야. 형이라는 사람이 축하는 못 할망정 방해하다니. 그게 말이 돼?”유자성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걔는 이제 우리 집안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하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하령이 어렸을 때 그 고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든 잘못을 하령에게 돌리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령이
온다연은 그의 손을 반대로 잡았다.“혼인신고는 하루 이틀 늦출 수 있어요. 아버님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분은 다른 유씨 집안 사람들과 달라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유씨 가문이 무너지든 말든 그녀는 관심이 없다.하지만 유재성은 유강후의 친아버지다. 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적어 그녀와 마주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 유하령이 그녀를 괴롭히게 방임한 유자성과 달랐다.유강후의 눈빛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차에서 이권이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 강 대표님께 알릴까요?”유강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싶지 않으실 거야.”이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버지 사무실에 전화해서 정말 귀국했는지 확인해 봐. 너무 공교로운 것 같아.”이권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연결된 후 몇 마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서 회장님이 어제 귀국하셨고,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권이 또 입을 열었다.“참, 영상을 올린 사람을 찾았는데,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올렸고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고 잡아떼고 있어요.”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간단해. 지금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있는 사람이 두려워서야. 우리가 그쪽보다 더 무섭고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이권이 고개를 끄덕였다.“각 플랫폼에서 인기 댓글과 동영상을 삭제하면서 이미 열기가 식었어요. 댓글 알바들도 우리 쪽의 맹렬한 반격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고, 일부는 신상까지 털려 아우성이에요.”“주희가 올린 영상도 한몫했어요. 열광적 팬들이 물고 놓지 않아 악성 댓글 작성자들이 뭇매를 맞았나 봐요.”유강후는 표정이 극히 차가웠다.“배후에 있는 자는 잘 숨는 게 좋을 거야.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죽고
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오늘 휴대폰을 안 쓰기로 했잖아.”온다연이 잠시 머뭇거렸다.“아직 외출하지 않았으니 한번만 볼게요.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받지 않으면 되죠.”유강후는 성큼성큼 방에 들어가 온다연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안색이 흐려졌다.“왜 염지훈에게 네 전화번호가 있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휴대폰 번호는 그녀가 퇴원한 후 유강후가 특별히 새로 개통한 것이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염지훈이 어떻게 아는 거지?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염지훈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아, 괜찮아? 인터넷에서...”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유강후가 쌀쌀하게 잘라버렸다.“염지훈, 참 낯짝이 두껍구나. 우리 곧 결혼해. 나를 자극하지 마. 매번 네 형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수는 없어.”염지훈이 코웃음을 쳤다.“유강후 씨, 낯짝이 두꺼운 건 당신이에요. 아저씨라는 명분으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숨겼잖아요. 왜 그렇게 친절하게 온다연을 곁에 두는가 했더니 그런 더러운 마음을 숨기고 있었네요. 당신이 강요한 거죠?”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더라도 너하고는 상관없어. 다시는 우리 앞에 얼쩡대지 마.”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온다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던져버렸다.아침을 먹을 때, 온다연은 혼인신고 후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약간 뒤숭숭했다.그래서 대충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유와 계란찜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조금 더 먹어.”이때 장화연이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다급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셋째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대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편찮으시대요? 해외 방문 중이었는데, 귀국하셨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뇌경색인데,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손을 멈추었다.“심각하시대요?”
게다가 방금 뜨거운 사랑을 나눈 까닭에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와 천진하고 아리따워 보였다.유강후는 한참 지켜보다가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자그마한 양지옥 열쇠를 만지작거렸다.“진짜 예쁘네요. 언제 산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그 열쇠를 만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산 것이 아니야.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지.”온다연이 깜짝 놀랐다.“그렇게 비싸요?”유강후는 열쇠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옛날에 왕이 쓰던 옥인데, 큰돈을 들여 낙찰받은 후 최고의 수공예 장인을 모셔다 3년에 걸쳐 완성한 거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이지.”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이라 강씨 집안 여주인만 사용할 수 있어.”“이 열쇠는 강씨 집안 금고 열쇠야.”온다연이 화들짝 놀랐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 없어요.”그녀는 말하면서 목걸이를 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네가 감히 풀면 그 손을 분질러버릴 거야.”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에요, 아저씨...”그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우주그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재벌 그룹 중 하나이며 경제력이 탄탄해 한 나라의 경제를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 우주그룹의 금고 열쇠를 그녀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풀어서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유강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안 돼. 적어도 오늘은 꼭 착용해야 해. 오늘은 우리가 혼인신고 하는 날이잖아. 오늘부터 너는 내 아내야. 즉 강씨 집안의 여주인이 되는 거지. 앞으로 매일 재무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줄 거야. 덩치가 큰 강씨 가문을 관리하려면 장부를 보는 법과 자산관리를 배워야 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온다연은 지려 하지 않았다.“고쳐야죠. 계속 이러면 제가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어요.”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에 갑자기 힘이 실리고, 몸이 앞으로 확 끌려가 유강후의 다부진 몸에 찰싹 붙었다.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온다연, 다시 또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온다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화를 내면 어쩔 건데요?”유강후는 실눈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이렇게 벌을 내릴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다.곧 가쁜 숨소리가 전체 공간을 채웠다.온다연은 뒤에 있는 서랍장 때문에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뎠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저번에 서재에서 관계를 가진 이후로 유강후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힘 조절과 수위 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켰다.그는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떠날 거야?”온다연은 모든 신경이 그의 몸에 집중돼 사고력을 잃은 듯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아니, 떠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 더 큰 보상을 해주었다.온다연은 거의 통제력을 잃고 또 그의 옷을 더럽혔다.다 끝나고 그의 옷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본 그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몸이 달아올라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좋고, 그녀가 자기 손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수줍어하거나, 참지 못하거나, 약간 요염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넌 이런 게 좋아?”온다연은 방금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워 감히 대답하
온다연은 불만스러운 듯 볼에 바람을 넣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왜 아저씨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너무 귀여운 모습에, 유강후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 오늘은 업무용 휴대폰만 쓸게, 됐지?”몇 개 대기업을 관리하는 그에게 휴대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다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유강후의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금융시장에 꽤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온다연은 조금 걱정됐지만 기쁘기도 했다.그녀는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거예요?”그동안 유강후는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니 약간 기대가 됐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뽀뽀했다.“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도 함께했으면 더 좋을 텐데.”아기도 곧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가족은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가슴 쓰린 아픔을 알기에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며, 모든 고요한 밤과 희망찬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유강후도 이 아이를 몹시 아끼는 것 같고, 그녀가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걸 간절히 원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이건 저의 모든 희망이에요. 아저씨,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아기도 있고 아저씨도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걸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도 아기를 위해 큰 노력을 했어요. 아기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주혜성이고 오늘 실검에 오른 온다연의 죽마고우입니다. 우리 둘은 같이 자랐고,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온다연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고 상간녀가 될 리 없습니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온다연과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헛소문입니다.”수줍게 웃는 그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제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도 온다연은 저를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늙은 남자에게 반할 수 있겠습니까?”“제가 그 남자들보다 못생겼을까요? 그래서 그 남자들을 선택하고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온다연과 그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인 데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영상을 올린 분께서 전체 영상을 공개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만 공개해서 오해를 유발하지 마시고요.”“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법을 지키는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은 성에서 걸어 나온 왕자처럼 우아했다.유강후는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이 자식이 이런 방식으로 온다연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다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주씨네 형제는 둘 다 정말 성가시다.이때 온다연이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뒤에서 유강후를 끌어안더니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침부터 뉴스를 봐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돌아섰다.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잘 잤어? 점심까지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며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또 악몽을 꿨어요.”“무슨 꿈인데?”“꿈에 아기가...”그녀는 말을 멈추었다.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게다가 꿈속의 아이는 유강후와 똑 닮았다. 그녀는 꿈속에서 너무
나은별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기 시작했다.“강후 씨,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뻔한 짓을 왜 하겠어?”“믿어줘. 정말 아니야. 강후 씨,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나에게 이 정도의 믿음도 없어?”유강후가 침묵을 지키자, 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온다연 씨가 나를 오해하고 때렸어도 나는 온다연 씨한테 화풀이하지 않았어. 어쨌든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강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온다연 씨에게 손을 대지는 않아.”“내가 당장 해명 영상을 올려서 온다연 씨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 의심하지 마.”유강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쌀쌀하게 말했다.“나은별, 이 일이 너랑 상관없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권이 가자마자 한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일이 너무 크게 번졌어.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악성 댓글을 아무리 삭제해도 계속 올라와.”“실시간 검색어를 최대한 삭제하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서 덮기는 어려울 것 같다.”“뒤에서 누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퍼질 수 없어.”유강후는 휴대폰을 잡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어야 해. 악성 댓글 작성자 아이디를 전부 기록해.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그는 전화를 끊고 즉시 몇몇 대형 SNS와 동영상 사이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들 중 몇 명은 평소에도 미래그룹과 사업상 접촉이 많은 터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몇 명은 유강후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래그룹처럼 덩치가 큰 거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어쨌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점차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다.하지만 유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동향을 예의 주시하라고 부하에게 시켰다.잠시 후 이권이 누군가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인터넷에서 온다연의 과거를 캐기 시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