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이강현은 핸드폰을 꺼내 진성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진성택의 공손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도련님, 무슨 분부를 하시렵니까?” “팔용을 만나야겠어.” 이강현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진성택은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당황하여 말했다. “도련님, 그런 농담은 하지 마세요. 팔용은 용후의 사람입니다. 이번에 한성에 온 목적도 아직 확인 중이고요. 그의 곁에 사람이 적지 않아요.” “걱정 마, 나한테 계획이 다 있어. 넌 그냥 걔보고 날 만나러 오라고 하면 돼. 내가 위치 보내줄게.” 이강현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보고 진성택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련님께선 반드시 안전에 주의해야 해요. 저도 곧 일손을 배치하겠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팔용부터 여기로 보내.” 이강현은 전화를 끊고 나서 위치를 진성택에게 보냈다. 엽중천 등인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팔어르신이 이강현의 입에선 팔용이라니? 이강현이 대체 어떤 신분이길래 팔어르신을 팔용이라고 부르지? 그럼 팔어르신과 동년배 인물이라는 말이잖아?’ “허세 좀 그만 부리지? 팔어르신은 용문의 팔용왕 중 한 명이야. 그런데 팔용이라니? 네가 용문의 핵심인물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허세를 부려도 정도가 있지. 이 자식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직접 정신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 것 같아. 감히 팔어르신보고 팔용이라니, 이 세상에서 팔어르신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삼십 명 밖에 없을 걸.” 용병들은 모두 이강현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강현이 팔어르신에 대한 호칭이 논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위용 등 킬러들은 모두 한쪽에 웅크리고 작은 소리로 의논했다. 그들도 모두 이강현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이번에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냐? 만나는 사람마다 미친놈이라니. 그리고 이강현 이 자식 팔어르신보고 팔용이라니, 그분은 용문의 용왕이라고. 이 놈이
팔어르신은 별장 지하실에서 미녀 두 명을 양 쪽에 껴안고 있었다. 한성에 있는 동안 팔어르신은 안전을 위해 별장에서 나가지 않고 가장 안전한 지하실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강현이 한성에 있는 한 위험할 수 있으니까. 비록 팔어르신은 이강현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만 용문호위대는 방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두 명의 미녀를 품에 안고 있는 팔어르신의 마음이 불안했다. 왠지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팔어르신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한 미녀가 술잔을 들고 그의 입술에 갖다 댔다. “어르신, 술 한 모금 마셔요, 술을 마시면 즐거워질 거예요.” 팔어르신은 웃으며 미녀를 껴안고 말했다. “컵으로 마시는 건 재미없지. 너의 작은 입으로 나에게 먹여줘.” “어르신 정말 못됐어.” 미녀는 투정 부리더니 바로 술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요염한 붉은 입술을 팔어르신의 입술 쪽으로 갖다 댔다. 팔어르신이 미녀의 입에서 술을 받아 마시려고 할 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난폭하게 미녀를 밀치며 말했다. “누구야? 눈치도 없이, 내 기분을 다 망쳤잖아.” 핸드폰을 들어 화면에서 진성복이란 세 글자를 본 팔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늙다리가 왜 나한테 전화한 거지?” 팔어르신은 중얼거리며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전화가 자동으로 끊어질 때쯤 수신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이 늙다리가 네 앞잡이 노릇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나한테 전화는 왜 해?” 팔어르신이 거칠게 말했다. 진성택의 얼굴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번졌지만 이강현의 명령 때문에 팔어르신께 욕은 하지 않았다. “단도직입 적으로 말할게. 도련님이 널 만나려고 해.” “도련님이? 날? 너희들 매복하려고 그러는 거지? 누굴 바보로 아나, 내가 속을 것 같아?” 팔어르신은 냉소하며 말했다. “널 매복해서 뭐 해? 곧 용후가 올 텐데 널 매복하느니 용후를 매복하는 게 낫지. 도련님이 널 안중에나 둘 것 같아? 도련님에겐 넌 그냥
“알겠습니다.”부하는 바로 컴퓨터를 꺼내 도시 감시 시스템에 들어가 이강현과 용문 호위의 동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자료가 종합 되더니 이강현의 움직임이 나타났다.“이강현은 교외의 한 폐기된 공장에 있는데 그 폐기공장이 서울 진씨네 소유예요. 자료에 따르면 그 공장이 킬러와 용병들의 아지트로 사용 되고 있다는데 폐기공장 부근의 도시 감시 시스템에 따르면 오늘 첫번째로 진입한 사람은 진광철과 그의 경호원이고 두번째는 열 몇명의 킬러들이며 세번째는 이강현, 그리고 마지막엔 천남병왕 엽중천이 관리하고 있는 용병단이었습니다. 용문호위의 현재 위치는 이강현과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이강현의 아내 고운란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수하가 자료를 하나하나 읽어드리자 팔어르신은 담배를 피우며 묵묵히 생각했다.‘용문호위는 곁에 없고 오히려 한 무리의 킬러랑 용병들과 섞여 있다? 설마 킬러와 용병들과 함께 날 상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정말 유치하구나. 용성에서 병신노릇 하더니 지력도 따라 낮아진 건가?’이강현이 병신이라고 떠도는 소문을 생각하니 팔어르신의 얼굴엔 하찮은 웃음이 피었다.용문의 호위가 곁에 없는 한 어떠한 킬러나 용병도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팔어르신은 이번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이강현을 잡아서 충분히 괴롭힌 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용문 도련님으로 훈련시켜 용후에게 넘긴다면 용후가 분명히 만족할 거야.’팔어르신은 이익에 눈이 멀어 마치 아름다운 미래를 본 것 같았다.그는 핸드폰을 꺼내 진성택에게 전화를 걸어 웃으며 말했다.“허허, 너 이자식, 혹시 앞잡이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 되서 도련님을 배신하려는 건 아니야? 하하하.”“헛소리 좀 작작 해. 도련님이 내 충고를 듣지 않아서 그런 거야. 내가 경고하는데 도련님을 만나서 허튼 짓 할 생각 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땅 끝까지 쫒아가서 널 죽일 테니까!”“나 너무 무서워, 그건 내가 이강현 그 병신을 만난 다음에 생각할게.
양옥은 팔어르신이 고가를 치러 보디가드로 초빙한 벚꽃닌자였다. 방금 팔어르신의 그림자 속에 섞인 회색 그림자도 벚꽃인술 비법 중 하나였다. 그 회색 그림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팔어르신을 도와 치명타를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팔어르신에게 생명을 하나 더 가해준 샘이었다. 그러나 비법을 사용하면 양옥도 큰 소모를 하게 되어 지금 그녀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양옥은 별장 구석에 가서 지프차에 올라 타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운전해서 팔어르신의 차량을 따라갔다. 팔어르신은 차 안에서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 속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궁리하고 있었다. 수하가 세운 계획에 따르면 이따가 먼저 공장의 감제고지를 점거해서 유리한 지형을 탈취한 후에 팔어르신을 보호하여 폐기공장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 폐기공장 내부. 진광철이 시간을 보니 이미 반시간이 지났다. “너 설마 우리 보고 여기서 하루종일 기다리라는 건 아니겠지? 곧 한 시간이 되어가는데 팔어르신 쪽엔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잖아.” 엽중천은 냉소하며 말했다. “틀림없이 이 병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새벽 12시까지 기다려봐라 팔어르신이 오나. 넌 질 준비나 해.” 이강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른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성급해? 지금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인내심을 가져야지.” “젠장, 내 시간은 아주 보귀하다고. 너와 여기서 헛소리나 지껄일 시간이 없어. 너에게 30분 더 줄 테니 만약 그때도 팔어르신이 오지 않는다면 넌 컨트롤러를 내놔.” 진광철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짜증 나게 했다. 이강현의 손에 컨트롤러만 없었다면 사람들은 진작에 흩어졌을 것이었다. 이강현은 웃으며 손에 든 컨트롤러를 흔들며 부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엽중천, 위용 등인은 눈꺼풀이 뛰더니 순식간에 숨을 죽였다. 그들은 정말 이강현이 충동적으로 내려칠까 봐 걱정되었다.엽중천 등인의 표정을 보고 이강현은 웃으며 말했다. “너
“팔어르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네가 이겼다고 할 수 있어? 어디서 이런 병신 같은 녀석이 굴러온 건지 모르겠네.” “이따가 자기가 구세주 혹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이런 사람은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하는데. 내가 이길 수 없어서 그렇지. 아니면 정말 호되게 때려주고 싶다.” 킬러와 용병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모두 이강현이 미쳐서 환각을 일으켜 헛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다소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진광철을 쳐다보았다. “너는 팔어르신의 거처를 주시하라고 사람을 보내긴 했냐? 보냈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보고 안 보냈으면 지금 당장 보내.” 그러자 진광철은 멍해졌다. 그는 그제야 사람을 배치하여 팔어르신의 거처를 주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줄곧 팔어르신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순찰하는 보초에게 발견될까 봐 사람을 파견해서 감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감시하라고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데. 하지만 감시할 필요가 있나? 팔어르신이 별장에서 나올 리가 없는데, 넌 꿈 깨!”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광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은 후 진광철은 두 번 대답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잘못 본 거 아니야? 정말 팔어르신의 차량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진광철은 놀라서 소리쳤다. 진광철이 놀라서 함성을 지르자 모든 사람이 귀신을 보듯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팔어르신이 별장에서 나왔다고? 고작 이강현의 전화 한 통 때문에? 그런데 이강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팔어르신이 왜 별장에서 나왔을까?’ 모두들 마음속에 이해하지 못할 문제들로 가득 찼다. 그때 진광철이 상대방에게 다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팔어르신이 확실히 별장에서 나왔다고 대답했다. 진광철은 넋이 나가 전화를 끊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받은 전화가 환각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팔어르신이 올 리가 없는데?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거지?’엽중천 등인도 모두 어
엽중천 등인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누가 너라는 걸 모르냐? 너의 신분 배경을 알고 싶은 거지!’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 엽중천도 화가 나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목숨이 이강현의 손에 달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강현은 은색 상자를 흔들며 불안해하는 진광철을 바라보았다. “네가 졌으니 약속을 지켜야지.” “나, 그게…….” 진광철은 긴장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아직 감응 폭탄이 열몇 개나 남았는데, 모두 먹어버리면 충돌로 인해 폭발하지 않을까?’ 진광철은 자신이 폭탄에 의해 폭사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당황해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는 폭탄을 먹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돈 줄게, 너에게 돈을 아주 많이 줄게.” 진광철은 울먹이며 말했다. “졌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네가 먹지 않는다면 지금 널 선조한테 보내줄게.” 이강현의 차가운 목소리에 진광철은 부들부들 떨었다. 진광철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일어나 이강현에게로 다가갔다.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하나?’ 진광철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이강현의 앞에 이르러도 그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강현은 은색상자를 열어 진광철에게 스스로 감응 폭탄을 삼키라고 눈치 줬다. 진광철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파킨슨 환자처럼 부들부들 떨며 감응 폭탄을 들었다. “나, 나, 나…….” 진광철은 말을 더듬더니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을 국화 같이 찌푸렸다. “겁먹지 마, 쟤네도 다 먹었는데 멀쩡하잖아.” 이강현은 진광철을 위로했다. 진광철이 엽중천을 한 눈 보니 엽중천은 자기 처지가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 진광철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진광철은 망설이다가 눈을 감고 감응 폭탄을 삼키고 흐느끼며 말했다. “흑흑, 나 먼저 하나만 먹으면 안 돼? 다시 먹어도 같은 효과일 거잖아. 더 먹었다가 내 뱃속에서 부딪혀 터지면 어떡해?” “그래, 하나만 먹어. 그건 내가 봐준다.
갑자기 이강현의 몸에서 나타난 살기를 느낀 엽중천, 위용 등인은 모두 놀라서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맹렬한 살기 앞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었던 그들도 무서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엽중천은 이강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살기를 자세히 느끼더니 얼굴색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건 살기가 아니야.” “뭐라고?” 위용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엽중천을 바라보았다. 엽중천이 이강현을 보는 눈빛이 갑자기 공경스러워지며 기억 속의 천남산 전쟁이 엽중천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때도 이강현 몸에서 풍기는 살기와 비슷한 기운을 가진 신비한 사람이 엽중천을 도와줘서 그가 천남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 신비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엽중천은 자신이 벌써 시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그 사람과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어. 나 엽중천은 당신의 명령을 받들 것을 맹세해. 내가 죽을힘을 다해 팔어르신의 호위가 여기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을 게. 들어오려면 내 시체를 밟고 들어와야 할 거야.” 엽중천이 이강현에 대한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은 진광철 등인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엽중천이 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이강현의 살기에 놀라기라도 한 건가?’ “엽형, 왜 그래? 무슨 헛소리야?” 진광철은 놀라서 물었다. “허허, 네가 뭘 알아?” 엽중천은 몸을 돌려 용병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집합, 이 선생에게 경례.” 용병들은 가지런한 대오로 집결하여 엽중천과 함께 이강현에게 경례했다. 이강현은 마치 수령이 사열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엽중천은 손을 내리고 이강현을 지긋히 보더니 몸을 돌려 용병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엽중천의 뒤를 따라가던 용병이 궁금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왜 갑자기 이 선생에게 그렇게 공손하십니까?”“이강현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옛날에 그와
팔어르신 차가 천천히 멈춰 서더니 차문을 닫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호위병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경계하는 눈빛으로 엽중천이 미리 설계해 놓은 방어선을 쳐다보았다.“경계!”우두머리가 외치자 호위병들이 차들을 에워싸며 영충천을 비롯한 사람들의 방어선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심지어 뒤에 따른 차에서는 로켓 발사기가 보이자 진광철은 눈까풀이 떨리기 시작했다.진광철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두 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며 허리를 굽신거리며 저 멀리서 달려오는 방탄 벤츠를 바라보았다.너비와 길이 그리고 두께까지 더 해진 방탄 벤츠는 다른 차들보다 더 커 보였는데 마치 언제라도 달려들 맹수 같았다.“다들 총 내려놓으세요, 긴장들 하시지 마시고요, 저 팔어르신이랑 얘기 좀 나눠봐도 될까요? 저는 이강현 선생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사람일 뿐이에요,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합시다,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군이 다치게 되잖아요.”진광철은 다리를 떨고 있으면서도 차근차근 얘기를 이어나갔다.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은 팔어르신을 마주하는 것 보다 진광철은 이강현을 마주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벤츠 차창이 살며시 내려지더니 팔어르신이 한껏 경계하는 눈빛으로 차창을 내다보았다. 팔어르신은 밖에 저격수라도 있지 않을까 하여 차창을 내리시지 못하고 있었다.호위병이 벤츠 옆으로 다가가더니 차창 틈으로 나지막 하게 말했다.“팔어르신, 쳐들어갈까요? 로켓 발사기도 있으니 여길 순식간에 밀어버릴 수 있을 거에요, 엽중천은 큰 무기를 들고 온 것 같지 않아요.”“조급해 할 필요 없어, 일단 진광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자고.”호위병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진광철한테로 터벅터벅 걸어가 진광철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따라와, 팔어르신이 널 만나고 싶어 하니까.”진광철은 두 손을 더 높이 치켜들고는 호위병을 따라 팔어르신이 타 계신 차창옆으로 걸어갔다.팔어르신은 차창으로 진광철을 훑어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자네가 로엘스가 국내에서 둔 부하인가? 자네 로엘스랑 우리 용문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