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효영은 이강현의 뒤로 돌아갔다.얼굴이 갸름한 그 외국인의 손에 쥐어진 바늘통 모양의 것을 보니 이미 십여 밀리리터의 피가 빨려들어 있었다.대동맥이 아니기 때문에 채혈기는 모세혈관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만약 대동맥에 박혀 있다면 이미 채취는 끝났을 것이다.진효영이 깜짝 놀랐다. 비록 상대방이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쁜 짓이라는 것은 확신하였다.“뭐 하는 거야!”진효영이 소리를 지르며, 외국인을 향해 달려들었다.‘채취한 혈액 많지 않지만 돌아가서 업무를 보고하기에 충분해, 이강현의 피를 더 많이 채취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 수는 없어.’상대방이 도망가려고 하자, 진효영은 얼떨결에 달려들어 상대방의 옷을 잡아당겼다.“어디 도망가! 이강현 오빠 빨리 와요! 이 사람 오빠 피를 뽑았어요!”진효영은 상대방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기며 이강현에게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이강현은 바로 몸을 돌려 진효영과 붙잡힌 외국인들을 바라보았다.나머지 외국인들은 일이 발각되자 하나같이 주먹을 휘두르며 이강현을 둘러싸고 시간을 끌었다.진효영이 붙잡은 외국놈은 발을 들고 진효영을 걷어찼다. 진효영은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허벅지 바깥쪽이 걷어차이며 바닥에 쓰러졌다.진효영의 위험을 알아챈 우지민이 몸을 날려 도망치는 외국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상대의 발을 끌어안고 도망치려고 하던 외인놈을 억지로 잡았다.“이 망할 놈들!”땅바닥에 쓰러진 외국놈은 힘껏 우지민을 걷어찼다.“놔, X발! 내 발 놔라고!”“안 놔!”우지민이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외국놈은 이를 악물고 뒷허리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몸을 돌려 우지민을 죽이려 하였다.그러나 막 비수를 꺼냈을 때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소리와 함께 발도 날아왔다. 순간 비수를 쥔 그의 손뼈가 부러졌다!“아!”외국인은 비명을 지르며 당황한 표정으로 불쑥 자기 앞에 나타난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이강현을 에워싸고 있던 외국인들 모두 쓰러졌고, 하나같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강현은 어이없어 하며 진효영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우지민은 이강현이 잡아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일어섰다. 외국인은 눈알을 굴리더니 지금이 도망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일어나 두 다리를 벌려 밖으로 내달렸다.“어디로 도망가!”우지민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려고 하였다.이강현은 가볍게 입을 삐죽거리며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 던졌다.종이 조각은 딱딱한 판지로 인쇄된 작은 광고라 이강현도 언제 주머니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이때 꺼내서 쓰기로는 아주 좋았다.종이 조각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외국인의 뒤로 날아갔다.푸!고속으로 회전하는 종이 조각이 도망가는 외국인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냈다.푹!허벅지의 극심한 통증에 외국인은 다리 힘을 잃고, 균형을 잡지 못해 바로 넘어졌다.“와! 이강현 오빠 대단해요.”이강현의 품에서 날뛰며 진효영은 칭찬을 금지 못했다.이상한 기분이 든 이강현은 진효영을 가볍게 밀어냈다.“그만해, 아직 물어볼 게 남아있어.”“네.”진효영은 억울한 듯 입을 삐죽 내밀고, 아쉬움을 담아 이강현을 풀어주었다.이강현은 외국인에게 다가가 오른발을 들어 가슴을 세게 밟았다.외국인은 순간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곧이어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쳐 피를 내뿜었다.“내, 내가 잘못했어, 콜콜콜, 도망 안 갈게.”“크레티는 어딨어?”이강현이 차갑게 물었다.“백, 백스테이지 감시실, 제발 죽이지 말아줘.”이강현은 차갑게 웃더니 오른발로 외국인의 머리를 찼다. 외국인의 머리가 돌려지면서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다.“사부님, 그 크레티를 잡으러 감시실에 가는 건가요?”우지민이 다가와서 물었다.“당연하지, 우리 베팅 돈 물어줘야 하지 않겠어?”우지민이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지금 이때 이강현이 아직도 판돈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정중천이 문간에서 황급히 뛰어 들어왔는데, 얼굴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이때 정중천이 문간에서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얼굴에는 아직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이
“어디 갔는지 조사해 보세요, 이번 일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이강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베팅, 그리고 피를 채취하는 일까지, 이 모든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혈액을 채취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다.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만약 그 외국놈들이 자신을 복제해낸다면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래서 크레티를 붙잡고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물어봐야 했다.정중천은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이미 관련 부서에 도로 감시를 주의하라고 연락했으니 그들의 움직임이 잡히면 바로 저한테 보고할 겁니다. 지금 그들은 교외의 공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교외 공항은 소형 공항으로 일반적으로 중소형 화물 항공기 또는 헬리콥터가 이착륙하고 있다. 일반 여객 공항과는 매우 다르며, 간혹 교외 공항에서도 자가용 비행기가 이착륙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일반 여객터미널보다 프라이버시가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비행기를 타고 떠나려는 모양인데요.”우지민이 큰소리로 말했다.“따라가보죠.”이강현이 정중천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후 우지민과 진효영도 쏜살같이 따라갔다.길을 가다가 정중천은 부하들에게 총 네 자루와 탄창 몇 개를 달라고 했다.우지민의 벤츠에 올랐다. 이강현은 바로 운전석에 앉았고, 정중천은 조수석, 우지민과 진효영은 뒷좌석에 앉았다.이강현은 차에 시동을 걸고 탄알같이 튀어나가 길에서 미친듯이 질주하였다.우지민은 매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이강현의 운전 조작을 보고 있었다.“사부님! 너무 센데요! 3초도 안 되어서 100을 넘을 것 같아요!”우지민은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안전벨트를 매.”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아, 네.”우지민과 진효영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나서 정중천은 그들에게 총 두 자루를 건네주었다.우지민은 잠시 멍해 있다가 약간 떨리는 손으로 정중천이 건네주는 권총을 받았다.영화에서 본 적은 있지만 손에 총을 쥐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총을 쓸 필요가 있나요? 저
“경호원을 믿어? 중요한 순간에 경호원은 절대 믿을 수 없어, 너 돌아가서 영화 봐봐.”진효영이 머리를 흔들었다.이강현은 백미러를 통해 우지민을 보았다.“긴장할 필요 없어, 네가 총을 쓸 정도는 아니야, 단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총을 가지고 있어라는 거야.”“네네, 알아요.”정중천은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크레티 일행 정보를 이강현에게 보고했다.“공항까지 10㎞ 남았는데, 별일 없으면 곧 공항에 도착할 겁니다. 친구한테 연락해 볼게요, 임시 항로가 남았는지.”이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가속페달을 힘껏 밟자 벤츠가 으르렁거리더니 쏜살같이 튀어나갔다.질주하는 속도감은 차 안의 모든 사람을 매우 짜릿하게 했다. 특히 우지민은 긴장한 것마저 잊어버렸다.정중천은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방과 몇 마디 나눈 뒤 전화를 내려놓았다.“15분 전에 누군가가 긴급 항로에 연락했는데, 개인 비행기였습니다. 항로 목적지는 영해, 아마 날다가 바닷길로 나가려는 모양입니다.”이강현은 말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차를 몰았다. 차 안은 조용했고 엔진 소리만 들려왔다.……넓은 링컨 차 안에서 톰슨의 얼굴은 어두웠다.“어떻게 우리 계획이 실패했지?”“원래 거의 성공하는데 그 여자한테 망했어요, 운이 나쁜 건지, 정말 어느 교회에 가서 기도나 해야겠어요. 하느님 한테.”크레티는 요 며칠 동안 하느님에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망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Fuck!”톰슨은 욕설을 퍼부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힘껏 비볐다.“항로는 다 확인했어?”“긴급 항로는 영해까지만 신청할 수 있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누가 바다에 간다고 했어? 그냥 몇 사람 불러서 올려 보내, 우리는 숨으면 돼!”톰슨은 화를 내며 말했다.“숨어요? 어디에 숨어요?”“공항 화물창고에 내가 마련한 임시 안전실이 있는데 거기에 숨어 있으면 돼, 내일이면 아마 문제없을 거야.”“아직도 보고하지 않을 셈인가요? 사람 부르지 않으면 우리 여
차량 교외 비행장으로 들어가 곧바로 계류장으로 달렸다.거기에 이미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 멈추고 있었고, 트랩은 이미 설치되었으며, 승무원들은 트랩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톰슨과 크레티는 차에서 내려 부하들을 데리고 서둘러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에 오른 톰슨과 크레티는 자리에 앉지 않고 네 명의 경호원을 태우고 곧장 뒷쪽으로 향했다.비행기 뒷쪽 문은 열려 있었고, 문 밖에 정비차 한 대가 서 있었다.상자를 들고 있던 한 정비공이 톰슨 등이 오자 상자를 열어 정비공 복장을 몇 벌을 꺼냈다.“어서 옷을 갈아입으세요.”톰슨 등은 서둘러 정비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쓰자 정비공과 똑같이 변했다. “됐어, 어서 내려가자, 그리고 애들 빨리 날게 해! 이강현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면 성공한 거야!”톰슨은 그렇게 말한 뒤 뒷쪽 문에서 내려 일행은 정비차에 올라탄 뒤 멀지 않은 공항 정비창고로 향했다. 정비차가 창고에 들어섰을 때 비행기는 이미 활주하기 시작했다.그때 벤츠 한 대가 들이닥쳤다.벤츠 뒤에선 공항 보안 차량 2대가 맹렬히 추격했다.이미 머리 위로 날아오른 비행기를 보며 정중천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한발 늦었네요. 이 녀석들은 너무 빨리 도망갔어요!”벤츠는 활주로 옆에 멈춰 섰고, 이강현은 문을 밀고 내렸다.정중천 등은 어리둥절하며 같이 차에서 내렸다. 이강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강현이 차에서 내렸으니 그들도 함께 내릴 수밖에 없었다.이강현은 활주로 중간에 주차된 한 줄의 자동차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 톰슨과 부하들이 앞서 달려온 차들이었다.지금 사람은 떠났지만, 차는 모두 남아 있다.차들을 한 번 훑어보고 이강현은 똑바로 그 링컨에게 다가갔다.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링컨은 바다 건너에서는 아주 유명하다.이강현은 링컨 차량 옆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차 안의 흔적과 물건을 들여다봤다.삐걱!급정거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경비차 두 대가 뒤쫓아왔다.쾅쾅.거센 문 닫는 소리와 함께 경비원이 욕설을
“네.”정중천은 앞에 선 경비원을 바라보더니 권총을 꺼내 그의 머리를 가리켰다.“담당자 불러와.”“네네, 담당자 연결해드릴 테니 총은 내려놓으시죠?”“네가 얌전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초중이 기세를 보이며 말했다.“네,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핸드폰 꺼내며 안 될까요? 전화로 연결해야 해서요.”정중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원이 핸드폰을 꺼내 담당자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연락을 취한 뒤 경비원이 말했다.“담당자가 동의했어요, 근데 CCTV를 보시려면 감시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가긴 어디로 가, 온라인 연결 몰라? 영상 찾아 핸드폰으로 연결하면 돼, 거기 화면 여기로 보내.”이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네네, 그럼 다시 연락하겠습니다.”경비원이 다시 연락하였다.진효영은 이강현의 곁으로 다가갔다.“이강현 오빠, 무슨 뜻이에요? 그들이 아직 가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건가요?”“갔을 수도 있지만 안 갔을 가능성이 커.”이강현은 말을 마치고 한쪽 격납고와 창고를 바라보았다.……정비창고 안.정비차에서 내린 톰슨과 크레티는 그 정비공의 안내로 창고 가장 깊은 정비실로 곧장 향했다.“오래된 정비실인데 반폐기 상태라 평소에는 사람이 오지 않아요.”정비공이 걸어가면서 말했다.“그런 건 듣고 싶지 않고, 내가 보내온 물건은 준비해 뒀어? 이제 우리는 화장을 하고 이 빌어먹을 곳을 떠나야 해! 지금 너무 불안해, 느낌이 좋지 않아.”톰슨은 당황했다.마치 사신에 걸린 것 같이 톰슨은 비행기에 오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바다 그쪽으로 날아가서 쾌속정을 타고 공해상으로 가서 배를 타고 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날아간 비행기가 돌아올 리도 없다.“보내신 물건은 모두 여기에 보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정비실에는 나갈 수 있는 뒷문이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의 담장은 제가 이미 손을 써서 보내드릴 수 있는데 차의 위치가 좀 멀어요, 2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 두었습니다.”정비공은 톰슨 등을 데리
공항 담당자는 곧 부하들을 데리고 이강현 앞에 나타났다.정중천이 공항 담당자에게 말하고, 신분을 밝히자 거만한 기색이 역력하던 공항 담당자는 바로 공손한 태도로 확 바뀌었다.공항 담당자라면 공항 안에서는 지위가 있을 지 모르지만 공항 밖을 벗어나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특히 가족들이 한성에서 살고 있어 만약 그들을 건드리기만 하면 가족도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공항 담당자가 웃는 얼굴로 정중천을 향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선생에게 돈을 빚졌으니 도우려 온 거야, 빨리 CCTV를 이 선생한테 보여줘.”공항 담당자는 정중천의 시선을 따라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이강현은 젊어 보였지만 공항 담당자는 이강현을 얕보지 않았다. 정중천도 충성하는 주님인데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이 선생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사람을 시켜 CCTV 보여드리겠습니다.”공항 담당자가 손짓을 하자 한 직원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켜고 빠른 손놀림을 보였다. 곧 CCTV 화면이 노트북에 나타났다.공항 담당자는 부하 직원들로부터 노트북을 받아 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강현을 향해 다가갔다.“이 선생님, 보세요, 방금 그들이 공항에 들어온 후의 감시 영상입니다.”이강현은 정중천 등과 함께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CCTV는 톰슨의 차량이 공항에 들어오면서 시작됐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움직였다.“좀 빨리 해봐요.”공항 담당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부하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화면 속도가 빨라졌다.“괜찮으신가요? 지금 4배속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기에 알맞춤한 속도지요.”“더 빨리 해.”이강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선생 말 안 들려?! 몇 배로 올리라고 말하면 그대로 움직여.”공항 담당자가 부하를 호통쳤다. 부하가 목을 움츠리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 선생, 몇 배로 하실 건가요?”“24배속으로 놓아요.”순간 부하의 눈이 휘둥그래졌다.“2, 24배속? 그렇게 빨리 달리면 너무 빨라서 아무
“왜 이럴 때 정비차가 나오죠?”이강현은 cctv 속 정비차를 가리키며 물었다.공항 담당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이 비행기는 이륙 전에 정비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정비공 기록은 있나요?”이강현이 따졌다.공항 담당자는 부하를 바라보았다.“이 선생이 묻는 말 못 들었어? 정비공 기록 빨리 확인해.”“제가 정비 부서 담당자인데 이쪽에서는 아까 그 비행기 정비 지시한 적 없는데요, 저도 그 정비차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정비 담당 부서의 직원들은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나른해졌다.공항 담당자는 욕설을 퍼부었다.“너희들 뭐하는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도대체 누가 정비차를 몰고 갔는지 빨리 확인해.”“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정비 담당자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부하 직원에게 연락하여 정비차를 몰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하기 시작했다.이강현은 CCTV 영상을 계속 보다가 정비차가 정비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 창고는 뭐 하는 곳이죠?”“이게 바로 정비창고예요. 정비차량, 정비용 소모품 뭐 이런 것들이 다 그 창고에 보관돼 있어요.”영상 속 정비차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닫힌 창고 문을 보며 이강현은 턱을 살짝 만졌다.“창고 문을 지금 열 수 있나요?”“네, 네, 저희 창고 문을 원격 제어가 가능하니 지금 바로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공항 담당자가 황급히 돌아왔다.“창고 문을 열고 아무도 못 나가게 그곳을 통제하세요. 우리 먼저 가보죠.”이강현은 정중천에게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차를 몰고 정비창고를 향했다. 진효영도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강현은 눈빛으로 진효영을 제지했다.“너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그러면 안 돼요, 제가 가서 도와줄게요, 아까 저도 도움이 됐잖아요.”진효영은 입을 삐죽 내밀고 꽤 억울한 듯 이강현을 바라보았다.이강현은 머리가 아팠다. 머뭇거리는 사이 진효영은 이미 이강현의 팔을 붙잡고, 한사코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