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한소은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 의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의사는 그곳에 서서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한소은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전문가입니다. 두 간호사분도 들어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 안심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검사해도 됩니다. 다만...”머리 위쪽을 한 번 쳐다보고 그 의사는 계속 말했다.“저는 개의치 않지만 당신이 개의치 않는지는 모르겠습니다.”그 말의 뜻은 여기에 CCTV가 있으니 더욱 프라이버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저는 모두 신경이 쓰입니다.”한소은이 말했다.“저는 당신들이 무슨 산전 검사를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들의 주인 보고 저를 만나러 오게 하세요.”“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할 수 없습니다.”그 의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협조해 주세요.”“만약 제가 협조하지 않는다면요?”한소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설마, 당신의 솜씨로 저를 강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그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는 당연히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소은 씨, 잊지 마세요. 여기는 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그냥 정상적인 산부인과 검사일 뿐이고 다른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그 의사는 말하면서 문밖을 내다보았다.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밖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은 들어오지 않았고 방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지만 한소은은 그들이 경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한다면 그들은 바로 쳐들어올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손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열무기가 있는지 이것은 정말 확실하지 않았다.‘자신이 죽으면 안 돼. 적어도 이때 죽어서는 안돼.’잠시 생각한 후 한소은은 그 의사를 깊이 한 번 보고, 몸을 돌려 침실 방향으로 걸어갔다.“당신도 두렵지 않은 이상, 제가 뭐가 두렵겠어요. 들어오세요!”한소은은 배를 받치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의사와 간호사들도 곧장 따라갔다. 이어서 몸을
방안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그 의사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엘리베이터안에서 누군가가 검은색 천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이어서 그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서 또 홀을 지난 후 마지막에 한 방으로 온 것 같았다.그러고는 입구에서 잠시 동안 서 있다가 누군가가 그의 안대를 벗기고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방은 매우 크고 비어 있었고, 창가에 있는 가죽 소파에는 프레드가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그의 한 손은 손잡이에 걸쳐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검은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다. 손가락은 짙은 남색 보석 위에 살짝 걸치고, 동작은 가볍고 부드러워서 더없이 소중한 것 같았다.“어떻게 됐어요?”프레드는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분부하신 대로 약물을 투여하였습니다.”그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무슨 약인가요?”프레드는 마치 모르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그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모르겠습니다.”“왜 그 여인에게 주사를 놓았습니까?”프레드가 다시 물었다. 그러나 의사는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르겠습니다.”“좋아요!”프레드는 웃기 시작했고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었다.“모르는 것이 맞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겠죠?”“알겠습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 빨리 대답했다. 그러자 프레드는 의사를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했다.“그 여인은 반항하지 않았나요?”“반항할 뜻은 있었지만 실제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도 반항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잠시 생각한 후 의사는 솔직하게 말했다.“알면 당연히 좋죠. 하지만...”프레드는 잠시 멈추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그 여자가 이렇게 쉽게 굴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이렇게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자신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모든 것이 가치가 있었다. 곧 있으면! 곧 있으면 그들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방 안에서 한소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지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한 손은 자신의 다른 손에 얹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자신의 맥을 짚었다.잠시 살펴보니 맥의 상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아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비록 암호는 맞았고 그 사람의 말도 확실히 의심을 사지 않았으며, 그가 자신에게 전달한 것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이다.아무래도 특수한 곳에 처해 있으니 경계심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임상언처럼 그렇게 익숙한 친구도 자신의 아들을 위해 속이고 숨길 수 있는데, 낯선 사람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화장실로 들어가 반지 속에서 아주 작은 종이쪽지를 천천히 펼치자, 역시나 낯익은 글씨가 눈에 띄었다.[거점을 찾았어, 기다려!]아주 간략한 몇 글자이지만, 한소은은 알아보았다.보아하니, 김서진은 이미 이 조직의 거점을 찾았고, 그녀를 구할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다만, 한소은을 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구하는 것 외에 또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존재할 수 있거나 이미 폭발한 바이러스들을 고려해야 했다. 처음부터 그들은 이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고, 가장 어려운 것은 모든 바이러스가 파괴되고 전파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조직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종이쪽지를 구겨서 변기에 버리려다가,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두 손으로 몇 번 비벼 종이를 갈기갈기 찢은 다음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여러 번 반복해서 물을 내리고 난 후, 수도꼭지를 틀고 샤워를 했다.한소은은 눈을 감고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아슬아슬했다.그 두 간호사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그 의사는 자신과 물건을 인계하고 암호를 전달했다.그 의사가 말한 ‘주사는 비록 아프지만 쓴 약을 먹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이전에 한소은이 김서진에게 한 사적인 말이었다.그때 한소은이 아파서 주사를 맞으러 가려고 하자 김서진은 쉽게 주사를
큼지막한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의사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핸드백만 한쪽에 던지고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절망했다.갑자기 무언가가 옆으로 번쩍인 것을 느끼고 겁에 질려 옆을 쳐다보았다.“누구야?!”“의사 선생님, 긴장하지 마세요.”어둠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방안의 불이 켜졌다.“집에 돌아오셨는데 왜 불을 켜지도 않으셨습니까?”“전...”그 남자를 보고 의사는 흥분하여 일어서며 말했다.“전 이미 당신의 요구대로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제 가족을 풀어줄 수 있습니까?”“당신의 가족은 우리가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도와 사람을 구출했습니다!”그 남자는 의사의 말을 바로잡고 자신이 납치범이 아니라는 것을 표시했다. 그러자 의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그럼 제 가족은 언제 돌아올 수 있고, 저는 언제 제 가족을 볼 수 있을까요?”“지금이 당신의 가족을 집으로 돌려보낼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까?”어둠에서 나온 서한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 의사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당신의 가족이 집에 돌아오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당신을 찾은 그곳은 다시 한번 당신의 가족을 잡아가지 않을까요?”이 질문에 의사는 침묵하고 잠시 동안 멍하니 있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의사의 얼굴에는 눈물 범벅이가 되었고 심지어 몸을 쪼그리고 앉았다.“저는 그냥 평범한 의사일 뿐인데, 왜 저를 찾는 건가요? 당신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입니까!”의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아니요. 당신은 평범한 의사가 아닙니다. 당신은 산부인과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신경과와 이식 수술에도 능숙합니다. 당신의 능력은 아주 강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들도 당신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저...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의사는 고개를 들
의사는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쁘게 그 쪽지를 꺼냈다.“이거...”당시 상황이 급한 데다 간호사가 있어서 소식을 교환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한소은은 똑똑해서 조금만 힌트 주면 바로 알아차렸다.“네.”그러자 서한은 쪽지를 열어보지도 않고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그 아가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괜찮아요! 한소은 씨는 정말 정신적 스트레스 저항력이 강합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소은 씨처럼 그렇게 강인한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서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바삐 말을 바꾸었다.“한소은 씨와 뱃속의 아이는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제 가족은...”“그분들도 모두 안전하고 건강합니다.”서한은 재빨리 말했다.“그 사람들은 당신보고 무엇을 하라고 했습니까?”“그들은 저에게 약을 건네주고 한소은 씨에게 주사를 놓으라고 분부했습니다.”의사는 우물거렸지만 여전히 성실하게 대답했다.“무슨 약인가요?!”약이라는 것을 듣자 서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그 사람들은 저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의 의료 경험으로 봤을 때 일종의 만성 마취제인 것 같아요.”“만성 마취제?”“네, 이 약은 점점 저항력을 잃게 합니다. 한소은 씨는 비록 솜씨가 좋고 무술도 뛰어나지만, 이 마취제를 오랫동안 맞으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그 마취제는 뱃속의 아이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나요? 한소은 자신에게도 또 다른 피해가 있을까요?”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서한은 의사의 멱살을 잡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한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계속 말했다.“확실히 있을 것입니다! 이 마취제를 오래 맞으면 뱃속의 아이가 기형아로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사산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한소은 씨를 잘 보살피고 침해받지 않도록 하면 됩니다.”의사의 말을 끊고 서한이 말했다.그 조직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들은 알고 있었고, 그들한테 열무기도 있으며 심지어 중량급 무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중국에서 그들이 싸울 계획이 아니면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다.“네, 이건 제가 할 수 있어요.”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들이 구출작전을 도와달라고 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한은 이어서 또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매번 그 사람들은 저의 눈을 가리고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저에게 에틸에테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깨어날 때마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그들은 매우 신중합니다. 제가 그들의 우두머리를 만나러 갔을 때도 모두 눈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건물의 내부 구조를 잘 모릅니다.”의사도 사실 얼떨떨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모르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그들의 우두머리?”서한은 잠시 망설였다.“당신은 그들의 보스를 만난 적이 있어요?”“아마 그렇습니다!”생각해 보니, 그도 실은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봤을 때 맞는 것 같아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맞다, 그들은 모두 외국인이에요!”“알겠어요! 당신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고 다른 건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의 가족은 우리가 잘 돌볼 것입니다!”원하는 정보를 얻은 서한은 철수하려고 했을 때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서한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그 의사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한을 쳐다보았다.“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이어폰 속에서 김서진은 무거운 목소리로 분부했다.“핸드폰을 보여줘. 그 사람이 맞는지 한번 알아보게 해.”말을 마치자
서한은 재빨리 차로 돌아갔다.김서진은 차 안에 앉아 있었고, 예전의 반듯한 모습과는 달리 완전히 자리에 기대어 있었다.차 안은 충분히 넓어서 김서진은 다리를 쭉 뻗고 몸을 펴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 밑의 다크서클은 여전히 감출 수 없었고 너무 피곤해 보였다.요 며칠 정말 너무 피곤했다. 그는 거의 쉬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그러자 마침내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그 의사를 통해 한소은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고 안심하고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은...“김 대표님, 그 사람은...”서한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 사진 속의 사람을 첫눈에 봤을 때 낯이 익다고 느꼈고, 나중에 자세히 생각해 보니 생각이 났다. 서한은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이전에 김서진을 따라 한 번 교제한 적이 있었다.만약 정말 그 사람이라면 좀 곤란할 것이다.“그 사람 맞아.” 김서진은 콧등 뼈 가운데를 주무르며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사실 속으로는 이미 답이 있었지만, 의사의 대답은 그의 마음을 더욱 확신하게 했다.“어떻게 그 사람일 수 있죠! 만약 그 사람이라면 이 조직의 배후는...”여기까지 생각하자 서한은 몸서리를 쳤다.‘만약 정말 그 사람이라면, 이 조직의 배후는 너무 무서울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되면 더욱 말이 됐다. 왜 줄곧 조직의 내부 핵심을 타격하지 못하고, 아이가 Y 국 왕궁의 범위 내에 있는데도 줄곧 임남의 행방을 찾지 못했는지.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그 사람들은 이렇게 풍부한 후원자를 갖고 있는지.’‘그러나 만약 사실이라면 이것은 얼마나 큰 음모일까. 상대해야 할 것은 그들 개인이 아니라... 전 세계의 재난이지 않을까.’‘그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서한은 더 이상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김서진을 쳐다보았는데, 김서진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김서진 곁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면서 그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를 정말 걱정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
차의 시동을 걸자 김서진은 또 무엇이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여러 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자 김서진은 얼굴을 찌푸리고 핸드폰을 한번 보고는 다시 누웠다.임상언은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이미 한참 동안 토했고, 지금은 뱃속에 아무것도 없고 위가 비어 있었지만 여전히 토하고 싶었다.속이 메스꺼울 뿐만 아니라 코를 찌르는 냄새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저 사람...”구역질을 참고 겨우 몇 글자가 튀어나왔지만, 또 곧 토할 것 같아 바로 밖으로 뛰어나가 꽥꽥거리며 산수를 토하기 시작했다.“너 정말 쓸모없구나!”주효영은 시큰둥한 눈으로 임상언을 한 번 흘겨보고, 또 바닥의 그 시체를 한번 보았다.이것은 확실히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주효영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장갑을 낀 채 그 시체를 살짝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기울이고 훑어보았다.“너 심지어... 웩...”겨우 구역질을 멈췄던 임상언은 고개를 돌려 주효영을 한 번 보았는데, 그녀가 평온한 표정으로 시체를 만지는 것을 보고 다시 구역질이 났다.이번에는 산수마저 토해내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하며 오장육부를 모두 토해낼 것 같았다.임상언의 이러한 반응에 주효영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계속 시체를 만지작거리며 검사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치대로라면 이렇게 빠르지 않을 것인데.”“???”주효영의 말을 들은 임상언은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섰지만 애써 그 시체를 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렇게 해야만 속이 좀 괜찮은 것 같았다.“이렇게 빠르지 않을 것이라니, 그 말은 이 사람이 원래부터 죽을 것이라는 거야?”“물론이지!”주효영은 고개를 들어 홀가분한 말투로 말했다.“이 사람이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부려먹었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거야!”“...”“그런데 나의 약효와 용량에 의하면, 이렇게 빨리 죽지는 않을 것인데!”주효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리고 약효는 아직 4단계까지 이르지 않았고, 겨우 3단계인데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