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진정기와 김서진 두 사람만 남자 분위기가 순간 느슨해졌다.진정기를 마주한 김서진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랫동안 못 본 두 친구처럼 닥치는 대로 의자를 잡아당겨 앉았다.“지금 기분이 어때요?”김서진이 담담하게 진정기에게 물었다.“가슴이 좀 답답하고 머리도 좀 혼란스럽지만, 많이 나아졌어요.”진정기는 한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어 번 기침을 가볍게 하고 김서진의 물음에 대답했다.이번 기침 소리는 이전과 달리 약간 억눌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침 소리도 크지 않았다. 진정기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신은 방금보다 훨씬 맑아 보였다.“그건 정상이에요. 오랫동안 잠에 들어 있었으니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그 정도 잠에 들어있었다면 머리가 멍할 거예요.”김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김서진은 말끝을 돌렸다.“하지만, 잠에 깊게 들어 밖의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진정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빛이 침울하게 김서진을 바라보았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믿어요.”김서진은 잠시 멈칫하다 한마디 덧붙였다.진정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동안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정신은 밖의 일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에요. 분명히 내 몸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 느낌은 정말 이상하더군요.”진정기는 팔을 들어 올리며 자기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몸이 자기의 몸인데 자기의 몸이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그의 눈빛은 조금 흐리멍덩했다. 이런 눈빛은, 결코 그에게 나타난 적이 없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그런 느낌인가요?”김서진은 잠시 생각했지만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기가 말한 그런 느낌을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진정기의 설명을 들으면서 묘하긴 했다. 분명 자기의 몸인데 통제할 수 없고 자기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두 알 수
진정기는 분명히 주현철의 가족에게 경계심이 있었고, 분명히 주효영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방법을 쓸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김서진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나도 몰라요. 주효영이 당신에게 사용한 독, 혹은 이 조직에서 연구하고 있는 독은 모두 신종 바이러스에요. 게다가 아마 오랫동안 연구해 왔을 거예요. 그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신종 바이러스가 터져 나온 거죠.”사실 진정기는 자기가 주효영에게 통제당하기 전,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부에서 높은 직위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밀적인 것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대처하면서 그 조직의 사람들을 체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다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주효영도 그중 하나였고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 그들의 술수에 넘어갔다는 것이다.“이제 백신 프로젝트는 그들의 손에 넘어갔어요!”진정기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사실 이건 그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주효영에게 통제 당하던 때, 진정기는 자신이 어떻게 조작하여 이 백신 프로젝트를 회수하고 다시 프로젝트를 주현철의 손에 넘겨졌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자신이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고 그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막을 힘이 없었다.지금 간신히 정신을 차렸으니,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신 개발을 막아야 했다.“사실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김서진은 느릿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진정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서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대응책이 있다는 것이다.“현재 백신 프로젝트는 주현철의 손에 있어요. 그 조직은 백신 기지를 거점으로 각종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어요. 백신이라는 허울을 빌려 돈을 쓸어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피해가 매우 크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해 졌죠.”김서진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진가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아빠.”진정기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들어와.”진가연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죽 한 그릇과 약간의 반찬이 놓여 있었다. 작은 접시에 몇 개 나누어 담는 것이 매우 정교해 보였다.“아빠, 아주머니에게 쌀죽을 좀 끓여 달라고 했고 반찬도 좀 가져왔어요. 어서 드세요.”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아빠가 방금 잠에서 깨어났으니 너무 기름진 것을 먹으면 안 되니까 조금 담백하게 만들게 했어요.”“그래.”쌀죽의 냄새를 맡자 배가 고팠던 진정기는 허기가 솟구쳤다. 진가연이 침대 위에 작은 상을 차려 놓고 죽과 반찬을 올려놓자 진정기가 몸을 바로 앉고 느릿하게 죽을 한술 떴다.김서진은 진가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간 후 전화를 받았다.“아빠, 좀 어때요?”진가연은 침대 옆에 앉아서 진정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진정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많이 좋아졌어. 우리 딸 그동안 고생 많았다.”“아니요, 고생은 무슨!”진가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진정기가 잠들어 있는 동안 피곤하고 항상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아버지가 자기를 홀로 키워온 세월이 쉽지 않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진정기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 진가연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 진가연을 돌봐야 했고,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다.그러나 진가연은 한 번도 진정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진가연이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진정기는 항상 인내심이 가득했다. 하루가 달리 뚱뚱해지는 몸과 점점 더 괴상해진 성격에 진정기는 모두 포용했다.그러나 진가연은 결코 그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전에는 그저 그를 탓을 할 뿐이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함께 해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만 탓할 뿐이었다.이번에 잠든 아버지를 돌보고 입장을 바꾸어서야 진정기가 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진정기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꼭 죽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거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거나,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표현되겠죠. 가장 두려운 것은 장기에 대한 손상이에요. 그리고 뇌에 손상이 올 수 있어요.”이런 증상들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관찰할 수밖에 없다.가장 좋은 방법은 한소은이 여기에서 지내면서 매일 진정기의 맥을 짚으며 증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소은은 지금 백신 연구 기지에서 나올 수 없었다.“당분간 죽지 않으면 괜찮아요.”진정기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얼굴색도 어떤 변화도 없었다.그는 숱한 풍랑을 겪었던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총알이 빗발치는 곳까지 지나왔는데 고작 이런 게 겁나진 않았다.더구나 그는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 이 일들을 다 하고 나면 다른 후유증이 있더라도 직위에서 물러나 잘 치료하면 그만이다.“아빠…….”진가연은 걱정이 가득해 그의 손을 꽉 움켜잡았지만, 진정기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자신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현재로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 알약이 두 개 더 있어요. 내가 말한 대로 잘 챙겨 드세요. 다른 것들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진가연의 걱정을 두 눈으로 지켜보던 김서진이 말했다.진정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알겠어요!”“그럼, 우리 아빠가 위험하지 않을까요?”이 두 사람은 모두 후유증을 개의치 않는 것 같지만, 진가연의 마음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행여나 자기의 아버지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진가연은 그 말들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걱정돼 죽을 것 같은데 정작 그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괜찮아.”진정기가 먼저 입을 열어 진가연을 안심시켰다.“아빠는
점심, 햇빛은 살이 타들어 갈듯 뜨거웠다.한소은은 방호복을 입고 실험 건물 안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매우 바빠 보였다.복도에는 누구도 없이 조용했는데, 이것도 그녀가 예상했던 일이었다.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작업 장소는 낮에는 바쁘고 밤에는 조용했다. 그녀가 이틀 동안 관찰한 바로는 이곳은 완전히 반대였다. 심야에는 사람이 가장 많고, 또한 가장 바쁜 시간 때이며, 낮에는 오히려 고요했다.사실 이곳은 그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어낸 장소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상적인 작업패턴으로 되돌아와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들이 몰래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 아니면 이런 실험은 반드시 밤에만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곳의 작업패턴은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이다.그렇기에 한소은이 무슨 일을 하려면 낮에 해야 했다.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훨씬 더 편하게 해 주었다.늦게까지 밤을 새울 필요도 없고, 많은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정상대로 하면 된다.실험실에서 일하는 극소수의 사람 외에, 점심시간에 누워 있는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복도에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한소은은 한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으로 실험센터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전에 임상언이 그녀를 데리고 들어간 적이 있어 그녀의 홍채와 지문 입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이 실험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기밀을 찾고 싶었다.그날 그 사람이 자기에게 준 자료를 뒤져보면 자료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조직은 적극적으로 그녀를 이용하려 했지만, 항상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날 그 거대한 변종 뇌공등은 봤을 때 침착한 척했지만, 마음속은 충격적이었다.이전에 TV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종말의 위기는 인간 자신에게서 비롯된다고 했었다. 환경오염이나 화학 연구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언젠가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고, 그것이 자기의 눈앞에서 일어났다.그 거대한 돌연변이 뇌공등 말고도 그들이 다른
한소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고 깜짝 놀라 심장이 벌렁거렸다.방금 그 느낌이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았다. 그녀가 이런 것을 연구하면서 뇌공등의 독성을 모를 수가 없었다.하물며 이렇게 변이된 것은 더더욱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만지고 싶어지는 것이 마치 뇌공등에게 통제된 것 같다.이런 느낌은, 너무 기괴했다.정신을 차리고 한소은은 소리를 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떤 남자였고 방호복을 입고 있는 터라 두 눈만 확인할 수 있었다.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낯설고 서로 알지 못하지만, 이 남자는 놀랍게도 어딘가 친숙했다.“누구세요?”한소은이 경계하며 물었다.“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어요. 다만, 충고하는데 빨리 여기를 떠나는 것이 좋아요.”남자는 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문밖으로 걸어갔다.한소은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자신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인가?한소은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이미 문을 나서서 모퉁이를 돌아 입구로 사라져 버렸다.바삐 그 사람의 뒤를 쫓아 나갔지만, 뒷모습 하나가 황급히 지나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비록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뒷모습도 낯이 익었다.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하지만 방을 나와 다시 모퉁이를 돌아가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양쪽 옆으로 갈라진 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을 정도였다. 마치 그 사람이 나타난 적 없었던 것 같았다. 방금 모든 것이 그녀의 환각이었던 것 같았다.‘말도 안 돼!’그 사람은 분명 실존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내공으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방금 뇌공등에 홀렸다 하더라도 금방 쫓아 나왔는데 그 사람의 기척을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자기가 꿈을 꾼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의 내공이 자기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이런 조직에서 어떤 능력자가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위
위험할 뻔한 순간이 생기다 보니, 한소은은 마음을 다잡았다.여기서 진상을 알아내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실험을 계속하기 시작했다.사실, 이 실험은 거의 반 정도 진행되었다. 향과 약 성분의 융합에 있어서 한계점에 달았고, 그 다음에는 비례를 조절하는 것만 남았다.그들이 준 과거 자료에서, 한소은은 이 사람들, 또는 이 실험을 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전에 알려주었던 비율로, 즉 이전에 자기가 실험실에서 성공했던 사례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 데이터를 보고 나서 한소은은 전의 사람이 향을 몰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확히 말하면 향과 약초의 약 성분의 융합을 전혀 몰랐고 할 수 있다.이전 성공 사례의 데이터는 정확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다른 약초에 같은 데이터를 대입할 수는 없다. 모든 분량과 비율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안에 첨가해야 할 융합제도 모두 달랐다.왜 이 조직에서 계속 자기를 끌어들이려 했는지 한소은은 이해가 갔다. 어쩌면 이 일에 있어서 자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사람을 찾아낼 시간이 없다.이 연구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하고, 익숙해져야 했다. 게다가 이 실험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한소은이 아니면 안 된다.모든 데이터를 확인하고 나서 한소은은 아예 자료를 던져 버렸다. 그녀에게 있어서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한소은은 자신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율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수많은 샘플을 만들어 냈다.이렇게 하면 가장 먼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발견할 수 있고, 그 다음 피드백에 따라 다시 양을 조절할 수 있으며, 여러 번 진행하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한소은이 한 실험이 비록 독극물은 하지만, 뇌공등 덩굴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거대한 변종 독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실험을 하루 종일 바삐 진행하다 보니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아파
“당신 보스가 물어보라고 했나요?”한소은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임상언은 대답 대신 침묵했다.“아직도 날 경계하는 건가요?”“네.”조금도 피하지 않고 한소은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그동안 그가 숨기고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자신을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람의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는 것은 그렇게 한두 마디 말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다만,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라 할 수 있다.“이 실험실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요?”한소은이 난데없이 물었다.임상언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세히 생각한 후에야 그녀에게 대답했다.“전에 당신이 그 실험실에 있을 때 당신과 일했던 몇 사람이 이곳에 합류했어요. 왜요, 그 사람들을 알아봤나요?”“그들이 아니에요.”한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전에 그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지극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하는 기회는 많지 않고, 그렇게 밀접하게 왕래하지 않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상황이 드물었다. 더군다나 그들에 대한 인상이 깊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뒷모습은 눈에 너무 익었다.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고, 심지어는 관계가 비교적 밀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다만 그 순간 생각나지도 않았고 알고 있는 사람과 맞추어 보아도 뒷모습이 맞지 않았다.한소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말했다.“돌아서 봐요.”임상언은 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한소은의 끈질긴 시선을 보고 느릿느릿 돌아섰다.한소은은 그의 뒷모습을 자세히 보고,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각도를 조절하면서 확인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 사람이 아니야!’사실 한소은은 처음부터 임상언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일부러 그의 뒷모습을 다시 보았다. 결론은 확실했다.‘그럼 임상언이 아니라면 누구였을까?’“왜 그래요? 누굴 만났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