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기는 이때 까지만 해도 힘이 없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곁눈으로 차갑게 주현철을 바라보자, 주현철은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었다.순간 주현철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정말 고생했어.”진정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말투는 나른했고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났다.난데없게 칭찬을 듣자, 주현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그런 말 하지 마요, 매형! 수고는 무슨! 이건 다 당연한 일이잖아요. 우리는 한 가족인데! 매형, 지금 기분이 어때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내가 보기엔 역시 병원에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매형이 깨어났으니 우리 대학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라도 받아봐요.”“대학 병원은 조건도 좋고 치료도 더 정확하잖아요. 여기서 웬 엉뚱한 사람이 틈새를 파고들어 매형에게 나쁜 짓이라도 하면 어떻게요.”주현철은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서 있는 김서진을 쓱 쳐다보았다.“내가 잠드는 동안 엉뚱한 사람이 많이 다녀갔어?”진정기는 깊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진가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진가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아빠, 아니에요. 외삼촌이…….”주현철이 변명을 하려 하자 진정기가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엉뚱한 사람뿐만 아니라 은혜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거 같은데? 아까는 내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자세히 듣지 못했어. 현철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주현철은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했다.진정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진가연이 입술을 오므리고 웃기 시작했다.“아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바로 나예요.”보아하니 진정기는 방금 깨어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다 들은 것 같다.‘오히려 잘됐어. 굳이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겠네!’“뭐라고?”눈썹을 찌푸린 진정기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진가연을 바라보며 정색했다.“우리 딸이 어떻게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야? 누가 너 더러 은혜를 모른다고 했어?”“그게…….”진가연
“이 바보 같은 놈아, 네 머리에는 물이 들었구나!”진정기의 온화한 얼굴이 갑자기 변하더니, 닥치는 대로 가장자리에 있는 베개를 집어 들어 주현철을 향해 내리쳤다.“매형!”주현철은 깜짝 놀라 몸을 비켜 베개를 피하며 전전긍긍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진정기가 베개를 던지는 힘이 얼마나 큰 것도 아니었다. 오랜 잠에서 이제 겨우 깨어나다 보니 사실 조금의 힘도 없었다. 베개를 힘껏 내던져도 침대를 겨우 벗어났을 정도였다. 그런 힘으로 주현철이 피하지 않는다 해도 그를 맞힐 수는 없었다.그러나 진정기가 눈을 뜨고 주현철을 바라본다는 사실 자체가 위엄이 있었고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주현철은 줄곧 진정기에게 눌려 살았기 때문에 주현철은 그를 두려워했다.진정기가 깨어나기 몇 분 전에 자신이 소란을 피우기도 했고, 또 그의 딸을 욕하기도 했다. 지금 진정기에게 이렇게 욕하고 얻어맞으니 순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뜨끔했다.“이 멍청한 놈아! 내가 며칠 동안 잠이 들었을 뿐인데 여기서 이런 일들을 저질러? 그동안 내가 화도 안 내고 잘해주니까 내가 만만하다 생각하는 거야? 밖에서 네가 한 짓들! 내가 모르는 줄 알아? 지금 당장, 이 방에서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져!”진정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는 걸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현철의 체면을 깎아내리며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주현철은 자기가 데려온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조금도 남지 않았지만, 아무런 대꾸도 감히 할 수 없었다. 마치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속으로 조금 불복할 뿐이었다.“매형이 잠든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난 다 매형을 위해서…… 이 사람한테 넘어가지 말아야 해요.”주현철은 진정기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돌리며 우물쭈물했다.“꺼져!”진정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힘껏 호통을 쳤다. 이어서 또 한마디 덧붙였다.“만약 네 손에 쥐고 있는 프로젝트를 지키고 싶다면 당장 꺼지란 말이야!”이 말을 듣고, 주현철은 더 이상 변명을 늘어놓지 못하고 곧장
방 안에 진정기와 김서진 두 사람만 남자 분위기가 순간 느슨해졌다.진정기를 마주한 김서진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랫동안 못 본 두 친구처럼 닥치는 대로 의자를 잡아당겨 앉았다.“지금 기분이 어때요?”김서진이 담담하게 진정기에게 물었다.“가슴이 좀 답답하고 머리도 좀 혼란스럽지만, 많이 나아졌어요.”진정기는 한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두어 번 기침을 가볍게 하고 김서진의 물음에 대답했다.이번 기침 소리는 이전과 달리 약간 억눌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침 소리도 크지 않았다. 진정기는 기침을 두어 번 하고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정신은 방금보다 훨씬 맑아 보였다.“그건 정상이에요. 오랫동안 잠에 들어 있었으니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어요. 게다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그 정도 잠에 들어있었다면 머리가 멍할 거예요.”김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김서진은 말끝을 돌렸다.“하지만, 잠에 깊게 들어 밖의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진정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빛이 침울하게 김서진을 바라보았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믿어요.”김서진은 잠시 멈칫하다 한마디 덧붙였다.진정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동안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정신은 밖의 일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에요. 분명히 내 몸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 느낌은 정말 이상하더군요.”진정기는 팔을 들어 올리며 자기의 손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몸이 자기의 몸인데 자기의 몸이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그의 눈빛은 조금 흐리멍덩했다. 이런 눈빛은, 결코 그에게 나타난 적이 없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그런 느낌인가요?”김서진은 잠시 생각했지만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기가 말한 그런 느낌을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진정기의 설명을 들으면서 묘하긴 했다. 분명 자기의 몸인데 통제할 수 없고 자기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두 알 수
진정기는 분명히 주현철의 가족에게 경계심이 있었고, 분명히 주효영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방법을 쓸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김서진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나도 몰라요. 주효영이 당신에게 사용한 독, 혹은 이 조직에서 연구하고 있는 독은 모두 신종 바이러스에요. 게다가 아마 오랫동안 연구해 왔을 거예요. 그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신종 바이러스가 터져 나온 거죠.”사실 진정기는 자기가 주효영에게 통제당하기 전,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내부에서 높은 직위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비밀적인 것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을 대처하면서 그 조직의 사람들을 체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다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주효영도 그중 하나였고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 그들의 술수에 넘어갔다는 것이다.“이제 백신 프로젝트는 그들의 손에 넘어갔어요!”진정기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사실 이건 그가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주효영에게 통제 당하던 때, 진정기는 자신이 어떻게 조작하여 이 백신 프로젝트를 회수하고 다시 프로젝트를 주현철의 손에 넘겨졌는지 똑똑히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자신이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고 그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막을 힘이 없었다.지금 간신히 정신을 차렸으니,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백신 개발을 막아야 했다.“사실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에요.”김서진은 느릿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진정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서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대응책이 있다는 것이다.“현재 백신 프로젝트는 주현철의 손에 있어요. 그 조직은 백신 기지를 거점으로 각종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어요. 백신이라는 허울을 빌려 돈을 쓸어 모으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피해가 매우 크지만 적어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해 졌죠.”김서진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진가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아빠.”진정기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들어와.”진가연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죽 한 그릇과 약간의 반찬이 놓여 있었다. 작은 접시에 몇 개 나누어 담는 것이 매우 정교해 보였다.“아빠, 아주머니에게 쌀죽을 좀 끓여 달라고 했고 반찬도 좀 가져왔어요. 어서 드세요.”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아빠가 방금 잠에서 깨어났으니 너무 기름진 것을 먹으면 안 되니까 조금 담백하게 만들게 했어요.”“그래.”쌀죽의 냄새를 맡자 배가 고팠던 진정기는 허기가 솟구쳤다. 진가연이 침대 위에 작은 상을 차려 놓고 죽과 반찬을 올려놓자 진정기가 몸을 바로 앉고 느릿하게 죽을 한술 떴다.김서진은 진가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간 후 전화를 받았다.“아빠, 좀 어때요?”진가연은 침대 옆에 앉아서 진정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진정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많이 좋아졌어. 우리 딸 그동안 고생 많았다.”“아니요, 고생은 무슨!”진가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진정기가 잠들어 있는 동안 피곤하고 항상 걱정이 한가득이었지만, 아버지가 자기를 홀로 키워온 세월이 쉽지 않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진정기는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 진가연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밖에서 돈을 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린 진가연을 돌봐야 했고,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다.그러나 진가연은 한 번도 진정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진가연이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진정기는 항상 인내심이 가득했다. 하루가 달리 뚱뚱해지는 몸과 점점 더 괴상해진 성격에 진정기는 모두 포용했다.그러나 진가연은 결코 그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전에는 그저 그를 탓을 할 뿐이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함께 해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만 탓할 뿐이었다.이번에 잠든 아버지를 돌보고 입장을 바꾸어서야 진정기가 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진정기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아니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꼭 죽는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거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거나, 이런 것들이 가장 먼저 표현되겠죠. 가장 두려운 것은 장기에 대한 손상이에요. 그리고 뇌에 손상이 올 수 있어요.”이런 증상들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관찰할 수밖에 없다.가장 좋은 방법은 한소은이 여기에서 지내면서 매일 진정기의 맥을 짚으며 증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소은은 지금 백신 연구 기지에서 나올 수 없었다.“당분간 죽지 않으면 괜찮아요.”진정기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얼굴색도 어떤 변화도 없었다.그는 숱한 풍랑을 겪었던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총알이 빗발치는 곳까지 지나왔는데 고작 이런 게 겁나진 않았다.더구나 그는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 이 일들을 다 하고 나면 다른 후유증이 있더라도 직위에서 물러나 잘 치료하면 그만이다.“아빠…….”진가연은 걱정이 가득해 그의 손을 꽉 움켜잡았지만, 진정기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자신은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현재로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 알약이 두 개 더 있어요. 내가 말한 대로 잘 챙겨 드세요. 다른 것들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진가연의 걱정을 두 눈으로 지켜보던 김서진이 말했다.진정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알겠어요!”“그럼, 우리 아빠가 위험하지 않을까요?”이 두 사람은 모두 후유증을 개의치 않는 것 같지만, 진가연의 마음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행여나 자기의 아버지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진가연은 그 말들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걱정돼 죽을 것 같은데 정작 그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괜찮아.”진정기가 먼저 입을 열어 진가연을 안심시켰다.“아빠는
점심, 햇빛은 살이 타들어 갈듯 뜨거웠다.한소은은 방호복을 입고 실험 건물 안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매우 바빠 보였다.복도에는 누구도 없이 조용했는데, 이것도 그녀가 예상했던 일이었다.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작업 장소는 낮에는 바쁘고 밤에는 조용했다. 그녀가 이틀 동안 관찰한 바로는 이곳은 완전히 반대였다. 심야에는 사람이 가장 많고, 또한 가장 바쁜 시간 때이며, 낮에는 오히려 고요했다.사실 이곳은 그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어낸 장소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상적인 작업패턴으로 되돌아와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들이 몰래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지, 아니면 이런 실험은 반드시 밤에만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곳의 작업패턴은 완전히 거꾸로 된 것이다.그렇기에 한소은이 무슨 일을 하려면 낮에 해야 했다.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훨씬 더 편하게 해 주었다.늦게까지 밤을 새울 필요도 없고, 많은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정상대로 하면 된다.실험실에서 일하는 극소수의 사람 외에, 점심시간에 누워 있는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복도에는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한소은은 한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으로 실험센터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전에 임상언이 그녀를 데리고 들어간 적이 있어 그녀의 홍채와 지문 입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이 실험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기밀을 찾고 싶었다.그날 그 사람이 자기에게 준 자료를 뒤져보면 자료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조직은 적극적으로 그녀를 이용하려 했지만, 항상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날 그 거대한 변종 뇌공등은 봤을 때 침착한 척했지만, 마음속은 충격적이었다.이전에 TV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종말의 위기는 인간 자신에게서 비롯된다고 했었다. 환경오염이나 화학 연구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언젠가 이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고, 그것이 자기의 눈앞에서 일어났다.그 거대한 돌연변이 뇌공등 말고도 그들이 다른
한소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츠렸고 깜짝 놀라 심장이 벌렁거렸다.방금 그 느낌이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았다. 그녀가 이런 것을 연구하면서 뇌공등의 독성을 모를 수가 없었다.하물며 이렇게 변이된 것은 더더욱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만지고 싶어지는 것이 마치 뇌공등에게 통제된 것 같다.이런 느낌은, 너무 기괴했다.정신을 차리고 한소은은 소리를 내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떤 남자였고 방호복을 입고 있는 터라 두 눈만 확인할 수 있었다.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낯설고 서로 알지 못하지만, 이 남자는 놀랍게도 어딘가 친숙했다.“누구세요?”한소은이 경계하며 물었다.“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어요. 다만, 충고하는데 빨리 여기를 떠나는 것이 좋아요.”남자는 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문밖으로 걸어갔다.한소은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자신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인가?한소은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이미 문을 나서서 모퉁이를 돌아 입구로 사라져 버렸다.바삐 그 사람의 뒤를 쫓아 나갔지만, 뒷모습 하나가 황급히 지나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비록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뒷모습도 낯이 익었다.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빠른 걸음으로 쫓아갔다.하지만 방을 나와 다시 모퉁이를 돌아가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양쪽 옆으로 갈라진 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을 정도였다. 마치 그 사람이 나타난 적 없었던 것 같았다. 방금 모든 것이 그녀의 환각이었던 것 같았다.‘말도 안 돼!’그 사람은 분명 실존하는 사람이다. 자기의 내공으로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방금 뇌공등에 홀렸다 하더라도 금방 쫓아 나왔는데 그 사람의 기척을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자기가 꿈을 꾼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의 내공이 자기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이런 조직에서 어떤 능력자가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