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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7화

작가: 금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고 주임이 뒤를 돌아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자 한소은은 두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화면에 몇 줄의 데이터가 나타났다.

한소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당신이 한의약의 관점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 주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 연구 데이터를 볼 수 있을까요?”

잠시 고민하다 한소은이 한마디 덧붙였다.

“특히 이 바이러스에 대한 샘플과 데이터를 보고 싶어요.”

“사실 우리의 데이터는 그다지 완벽하지 않아요.”

고 주임은 한숨을 쉬며 담담하게 말했다.

“현재 국내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고 확산하지 않았으며, 매우 빠르게 통제하고 있어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바이러스 샘플은 크게 참고할 만한 가치가 없을 거예요.”

“왜요?”

눈썹을 찌푸리며 한소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바이러스의 샘플인 한, 그것이 전파 사슬의 연결 고리라고 해도 결국은 그 바이러스일 뿐인데 어떻게 참고 가치가 없을 수 있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바이러스는 매우 빠르게 변이하고 진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채취한 샘플은 이미 전염 사슬의 마지막 단계에 있었어요. 바이러스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민감도가 그다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샘플로 연구하더라도 강력한 바이러스에는 여전히 효과가 없을 거예요.”

잠시 후 고 주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함께 협력하기를 희망하는 이유입니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관찰되는 것은 바이러스의 명백한 특성이 아니라 신체의 반응과 자가 면역에 기반한 것이죠.”

“나도 한의학에 정통한 편은 아니니 내가 말한 게 그런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한소은은 대충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약은 서양 의학과 아주 달랐다. 서양 의학은 과학적인 도구의 도움을 받아 많은 것들이 매우 직관적이었다.

인간의 혈관,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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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에 다시 들어갔지만 방금 타고 온 그 엘리베이터가 아닌 다른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갔다.한소은은 이 연구 기지가 거의 지하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러나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잠시 후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고 주임이 먼저 걸어 나갔다. 모 선생은 그 뒤를 바짝 뒤따랐다.이 층에는 기계와 사람이 별로 없었다. 대신 텅 빈 것 같았고, 공기에는 불안한 냄새가 떠돌았다.몇 발짝 더 가다 보니 희미하게 신음이 들렸다.귀를 기울여 들려고 하면 다시 사라져 환청처럼 들리기도 했다.그들이 스프레이로 다시 소독한 후 계속 앞으로 걷다 보니 한소은은 그것이 환청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확신했다!신음뿐만 아니라 억압된 흐느낌, 기침 소리, 쌕쌕거림도 있었고 이런 종류의 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얽혀서 마치 심장이 뽑힌 것처럼 듣기 거북했다.아마도 그녀가 두려움에 물러설까 봐 걱정되어 고 주임은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돌아보았다.한소은의 눈빛은 심각했고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다만 그녀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긴 복도가 있었고 양쪽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방문은 모두 닫혀있었다.“이건…….”망설이던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 고 주임은 그녀의 말에 자세히 설명했다.“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니에요.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각자가 별도의 병동에서 전문적인 관리와 치료를 받으므로 교차 오염이 발생하지 않았어요.”그의 설명을 듣고 한소은은 약간 마음을 내려놓았다.결국 그는 프로였고 이것이 실제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모든 방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한소은은 들어가지 않고 창문 밖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병실 내부는 비교적 단순했다. 침대가 있고, 작은 칸막이가 있고, 화장실처럼 보이는 방이 있었다.환자는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이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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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당신은 임산부잖아!”모 선생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한소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뭐?!”고 주임 역시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한소은의 배를 힐끗 쳐다보았다.무거운 보호복에 가려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고 주임은 한소은을 두 번 만났었다.그때마다 그녀는 보호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임산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원 어르신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알고 매우 당황했다.한소은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임산부가 왜요? 임산부도 사람이에요. 임산부이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를 없앨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피해가 우리의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그렇게 말한 후 한소은은 병실의 문을 열려고 했다.“안 돼!”이번에는 고 주임이 그녀를 막아 나섰다.“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놔둘 수 없어요.”“내가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밖에 있는 직원들은요? 그들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거예요?”한소은은 그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이 연구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들 알고 있고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나라고 왜 못 한다는 거예요?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전국의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누구나 친구와 친척이 있고 우리 중 누구도 그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고 주임님, 당신이 이 분야의 권위자인 내 스승님을 찾아갔다는 건 분명 다른 훌륭한 한의사들도 찾아갔었다는 걸 알아요.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난 당신이 뭐라 해도 연구에 참여해야겠어요.”“우리 협의도 했고 계약서에 사인도 했으니 날 막을 생각 하지 마요!”“하지만…….”고 주임은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이해했지만, 임산부가 감염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여전히 망설여졌다.“그런 생각 집어치워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바이러스가 창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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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한소은은 잠시 맥을 짚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구석에 놓아둔 소독제로 손을 닦은 후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갔다.모 선생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기대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고 주임을 바라보니 그도 질문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모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한소은을 따라 옆 방으로 갔다.늙은 사람, 건장한 청년, 여자, 아이, 병실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대충 열명정도 맥을 짚었을 때 한소은은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그녀가 지친 표정을 본 고 주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좀 쉴래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직 할 수 있어요!”그녀는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더 다양한 사례를 보고 싶었다.개별 상황을 결합하여 상대적으로 더 정확한 수치를 도출하고자 했다.옆방의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심장이 지끈거리며 아팠다.안에 있는 사람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손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많아야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어린 소녀의 머리카락은 풀어 헤쳐져 있었다.아이는 열심히 장난감을 놀고 있었고, 누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예쁜 두 눈은 검은 포도처럼 컸고 낯선 사람들의 모습에 긴장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 눈빛은 한소은의 가슴을 격렬하게 부딪쳐 왔다.아들 김준과 비슷한 나이에 불과했다. 한소은은 이렇게 작은 감염자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 아이도 감염된 건가요?”한소은은 떨리는 손이 아이를 가리켰다.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오’였다.그러나 고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모 선생은 계속해서 의료 기록 상태를 읽었다.“환자 33번, 3 세, 성별 여성. 확진 7일째. 증상은 기침, 고열, 신체 통증 등이 있음. 나이가 너무 어려서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다른 것은 아직 명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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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후에야 한소은의 손가락이 여자 아이의 손목에서 옮겨졌다.그동안 소녀는 울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한소은을 보고만 있었다.한소은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괴로움을 보고 고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만 관심을 담아 물었다.“쉴까요?”그러나 한소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소녀가 겁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난 죽는 가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넌 죽지 않아!”아무 말도 하지 않던 모 선생이 입을 열었다.모 선생은 재빨리 다가와 그녀의 이불을 다시 정리하고 장난감을 다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넌 그냥 아픈 거야, 기침과 열이 좀 있는데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근데…… 우리 엄마 죽었잖아요.”소녀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을 보니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린 나이라 벌써 눈물이 핑 돌았다.한소은은 놀라서 고개를 돌려 고 주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항상 온화했던 그도 고개를 돌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린 소녀의 말은 사실이다.“너의 어머니 병은 너와 달라. 그러니까 말 잘 들어야 해, 약도 잘 먹고, 침도 잘 맞아야 하고, 그러면 곧 낳아질 거야! 어머니 말 잊었어? 용감하게 살기로 약속했잖아.”평소 냉담했던 것과는 달리 모 선생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소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 모습이 보기에도 안타까웠다.“너는 죽지 않을 거야, 분명 치료될 거니 안심해!”한소은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만약 그전엔 단지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바이러스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면 지금의 한소은은 어떻게 해서든 이 어려운 문제를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굳게 결심했다.‘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해. 이런 아이까지 피해를 입게 해서는 안 돼!’방에서 나온 한소은은 기력이 빠진 듯 다리의 힘도 풀렸다.억지로 버티며 이 병동에서 나왔다. 세 사람 모두 침묵한 채 일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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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언이 돌아왔을 때 마침 복도에서 떠나려던 주효영을 만났다.지난번 이후로 매번 그를 보았을 때 주효영 눈에는 모두 약간의 노여움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이 스쳐 지나갈 때 주효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사장님께서 한소은을 찾아라고 하지 않았나요?”걸음을 멈추고 임상언은 뒷덜미를 문지르며 냉소했다.“사장님한테 가서 물어보시죠.”“내가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 같아요, 한소은을 찾는다고 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실험실에서 나는 대체 불가능해요!”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공부에서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분야에서든 그녀는 최고이고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도 한소은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그냥 조금 인기 있는 조향사일 뿐이잖아. 한의약을 알고 원 어르신 옆에서 배웠다고 하여 뭐 어쩔 건데, 난 바이러스 연구팀에 있어.’오늘날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마구 퍼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다.언젠가 그녀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울 정도로 유명해질 것이다.“자신만만해 보이는데 뭐가 두려워요?”그녀를 곁눈질하며 임상언은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당신…….”속마음이 들킨 주효영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난 두렵지 않죠, 근데 당신은 잘 모르겠네요, 한소은을 찾아와야 하는데 걔 성격으로 순순히 돌아오겠어요? 기어이 떠나겠다고 제 발로 나간 사람을 어떻게 잡아요? 가능할 거 같아요?”임상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한 말 사장님도 들었어야 하는데.”“사장님을 가지고 날 놀릴 필요 없어요. 나도 사장님도 다 같은 배 탄 사람이니까 내 충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당신이라면…… 얘기가 다르죠!”임상언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나서 주효영은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아드님, 요즘 잘 지내고 있나요?”“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은 아니예요!”임상언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비웃으며 말했다.“듣기로 부모님 사업이 요즘 잘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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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50화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9화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8화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7화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6화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5화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 대표님의 아내로 간택당했다   제2444화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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