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언이 돌아왔을 때 마침 복도에서 떠나려던 주효영을 만났다.지난번 이후로 매번 그를 보았을 때 주효영 눈에는 모두 약간의 노여움을 띠고 있었다.두 사람이 스쳐 지나갈 때 주효영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사장님께서 한소은을 찾아라고 하지 않았나요?”걸음을 멈추고 임상언은 뒷덜미를 문지르며 냉소했다.“사장님한테 가서 물어보시죠.”“내가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 같아요, 한소은을 찾는다고 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실험실에서 나는 대체 불가능해요!”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공부에서 일에 이르기까지 어느 분야에서든 그녀는 최고이고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도 한소은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그냥 조금 인기 있는 조향사일 뿐이잖아. 한의약을 알고 원 어르신 옆에서 배웠다고 하여 뭐 어쩔 건데, 난 바이러스 연구팀에 있어.’오늘날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마구 퍼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다.언젠가 그녀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울 정도로 유명해질 것이다.“자신만만해 보이는데 뭐가 두려워요?”그녀를 곁눈질하며 임상언은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당신…….”속마음이 들킨 주효영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난 두렵지 않죠, 근데 당신은 잘 모르겠네요, 한소은을 찾아와야 하는데 걔 성격으로 순순히 돌아오겠어요? 기어이 떠나겠다고 제 발로 나간 사람을 어떻게 잡아요? 가능할 거 같아요?”임상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한 말 사장님도 들었어야 하는데.”“사장님을 가지고 날 놀릴 필요 없어요. 나도 사장님도 다 같은 배 탄 사람이니까 내 충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당신이라면…… 얘기가 다르죠!”임상언을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나서 주효영은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아드님, 요즘 잘 지내고 있나요?”“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은 아니예요!”임상언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비웃으며 말했다.“듣기로 부모님 사업이 요즘 잘 된다고
“한소은이 약에 얼마나 민감한지 너 잘 알잖아, 그런데도 걔 차에 약을 타, 그건 걔한테 알려 차를 바꾸게 한 거랑 뭐가 달라, 너 정말 일부러 놓친 거 아니야?”그는 느릿느릿 몇 걸음 걸으며 걸상에 올라 그 위에 서서 임상언의 눈을 내려다보았다.“난 그냥 내 약이 걔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임상언은 침착한 기색으로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면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면 뒤의 눈은 매우 음산하고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는 임상언을 잠시 노려보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왜 상자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건데!”그의 말을 듣고 임상언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안 좋은 예감이 떠올랐다.상자를 들어 벌컥 열었는데, 안에는 작은 손가락이 있었다.핏자국은 말라버렸지만 모양과 크기로 보아 성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머리 속에 폭탄이 던져진 것 같았고, 그 폭탄은 ‘쾅’하고 터졌다!임상언은 순간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그는 울부짖으며 두 눈을 붉혔다. 이 사람을 찢어놓고 싶은 심정이다.짐승처럼 격노하는 임상언에게 남자는 겁먹지 않고 더욱 날뛰며 웃었다. 마치 임상언에 허공에 잡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왜 무서워? 겁먹었구나! 내가 경고했지, 날 거역하지 말라고, 그런데 내 앞에서 그런 수작과 잔꾀를 부려? 너의 그 독선적인 행동들 마지막에는 다 너의 아들에게 주어질 거야! 하하하하…….”“네가 감히 내 아들을 건드리면 내가 죽더라도 널 지옥으로 끌어드릴 거야!”임상언은 그를 높이 쳐들었고 눈빛은 점점 험악해졌다.남자는 힘들게 숨을 쉬며 힘겹게 말했다.“잘 봐, 그게 네 아들 거야?”임상은 멍한 표정으로 무의식적으로 그 상자를 보았다.작은 손가락은 확실이 성인 거는 아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임남의 것도 아니었다.임남의 손가락은 가늘고 피부색도 그렇게 희지 않았다.임남의 손가락이
한소은은 이미 이틀 동안 눈을 붙이지 못했다.그녀는 눈앞의 약즙을 지켜보며 안에서 약간의 샘플을 꺼내 흰 생쥐 한 마리에게 조심스럽게 먹였다. 흰 생쥐가 약즙을 다 들이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빨대를 내려놓고 쥐를 다시 관찰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았다.옆에서 줄곧 침묵하고 있던 모 선생은 궁금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정말 쥐가 먹은 게 소용 있을 가요?”한소은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요.”“확실하지 않으니 실험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요? 확신도 할 수 없는 약을 사람 몸에는 쓸 수 없으니까요.”한소은은 일어나 그를 한 번 보고 돌아서서 다른 생쥐들에게 먹이를 주었다.한소은은 며칠 동안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워낙 교활하여 맥박의 기복, 사람들의 나이와 체질에 따라 다른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모든 사람의 바이러스 샘플을 추출하여 실험용 쥐에 넣었다.마찬가지로 생쥐도 서로 다른 레벨을 택했고 상대적으로 정확성을 높였다.그리고 상황에 따라 약성도 다르게 조정하였다. 한소은은 가능한 한 빨리 대응하는 해독제를 개발하여 이 역병을 빨리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솔직히 저는 이 실험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아요.”그녀가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보고 모 선생은 책상에 몸을 기대며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네.”한소은도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만 했다.“한약은 약 효과가 있다고 해도 너무 느려요. 빨리 변하는 바이러스라 약 효과가 나기도 전에 또 돌변할 가능성도 있고, 바로 말씀드린다면 약효가 바이러스 변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예요.”모 선생은 사실 한소은을 적대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단순히 믿음이 가지 않은 것이다.너무 어리기 때문이다!대단하고 유명한 한의사를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한의사는 많았다. 말하자면 모두 경험으로 쌓은 실력이다.이것은 서양 의학과는 달리 기기와 데이터가 없었다.그
모 선생은 더 의문스러웠다.솔직히 잘 알아듣지 못했다.“그 뜻은…… 그대로 방치하고 변이하게 놔둔다는 말씀인 가요?”모 선생이 고민하다 물었다.한소은이 고개를 흔들었다.“제 말은 우리 한약의 역할은 인체가 침해당한 오장육부를 조절하고 자신의 면역 기능을 동원하여 기를 보양하고 공격을 방어하는 뜻이예요. 모든 사람의 몸은 스스로에 대해 보호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통 감기는 약을 먹지 않아도 며칠 지나면 나아요. 그게 인체의 자기 보호와 방어이고요.”“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이 방어기제를 파괴했고, 제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약의 역할은 사람의 방어기제를 복구해 신체가 능동적으로 대항하고 박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한소은 진지한 설명에 모 선생도 멍하니 듣기만 하였다.몇 초가 지난 후, 그는 입술이 움직였다.“그게 가능해요?”그가 듣기에 이것은 그야말로 헛소리 같았다!‘인체 방어 메커니즘이 복구되고 스스로 대항할 수 있으면 의사가 왜 필요해?’‘약물 개발, 그거 표적 바이러스를 공격하기 위한 거 아닌가?’‘역시 한의사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하고!’그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일어섰다.“저 일단 다른 부서로 가볼게요, 일 보시면 필요한 거 있으면 호출하세요.”“네.”한소은은 그의 경멸을 이해했고 따로 해석하지도 않았다.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아는 사람은 자연히 알고 믿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설명해도 의미가 없다.관찰 데이터를 기록한 후 그녀는 실험실에서 나와 일련의 소독을 마치고 일반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고 주임을 보았다.“소은 씨, 밤새운지 며칠 재예요?”“얼마 안 됐어요.”눈을 비비며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하품을 했다.“얼마 안 됐다니! 지금 눈에 붉은기가 가득한데.”고 주임은 정색하고 엄숙하게 말했다.“이러면 안 돼요! 임무가 급하긴 하지만 사람도 쉬어야 하니까, 이러다가 약은커녕 소은 씨가 먼저 쓰러질 수도 있어요!”“알아요.”
‘이해는 한다만…… 서진 씨는 어떻하지?’거기에 돌봐주는 사람도 있고 경씨도, 의료진도 있지만 그래도 바이러스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고 하여 걱정이 되었다.다행히 핸드폰은 여전히 사용 가능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 여기에 남을 게요.”고 주임이 한숨을 내쉬었다.“소은 씨, 그리고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러니 이해해주었으면 해요. 나도 여기에 같이 남을 거예요.”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막 떠나려던 참에 다시 몸을 돌렸다.“혹시 잠복기는 어느 정도되나요?”“현재로선 7일 정도인데, 아시잖아요, 우리 데이터 부족한 거, 국내 케이스도 제한되어 있어 7일 이상인 거는 장담할 수 없어요.”그 말은 적어도 7일 동안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는 얘기다.한소은은 그녀를 위해 마련해 준 휴게실로 돌아왔다. 크지는 않지만 정말 고 주임이 말씀하신 것처럼 물건은 준비되어 있고 안에 샤워 가능한 작은 화장실도 있어 그래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한소은은 손으로 허리를 짚고 앉았다. 뒷허리가 뻐근한 것 같았다. 이때 비로소 피곤함을 느꼈다. 아마도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좀 졸리기도 하였다.원래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김서진에게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번호가 뜨기도 전에 위아래 눈꺼풀이 달라붙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잠이 들었다.얼마나 오래 잤는지 모르겠지만, 손의 진동이 그녀를 깨웠고 갑자기 놀라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뇌는 이미 다운된 상태였다.몇 초가 지나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반응을 하고 핸드폰을 보았다. 진가연의 전화였다.그녀는 약간 부풀어 오른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몸을 일으켜 전화를 눌렀다.“여보세요?”“언니, 요즘 집에 안 갔어요?”진가연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응, 밖에 좀 볼일 있어서 요즘 돌아갈 수 없을 거 같아.”“그럼…….”머뭇거리다가 진가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약간 망설였다. 한소은이 생각하고
진가연은 지금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왜 다른 사람처럼 변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변화는 사촌 언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들어보니 단순히 변화 것만 아닌 것 같았다.녀는 갈 곳도 없고 털어놓을 사람도 없으니 한소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렸다.진가연이 처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당시 그녀의 모든 마음은 김서진한테 있었고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어느 위치야?”“저…….”진가연이 주위를 둘러본 뒤 말했다.“오동거리 도로변에 있는 밀크티 가게 앞에 있어요. 언니 나 정말 어디에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다시 집에 돌아간다면 아버지가 또 날 가둬놓을 거예요. 나…….”“움직이지 말고 거기에서 기다려, 내가 사람 보낼 게.”한소은이 조용히 말했다.“걱정마, 일단 자리부터 잡고 천천히 얘기하자.”“네!”진가연이 얌전히 대답했다.“고마워요…….”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소은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이런 인사치레의 고마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자 혼자서 한밤중에 밖에서 이러고 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그녀도 지금 밖에 나갈 수 없다. 그런데 그대로 진가연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전화를 걸어 부하들에게 차를 보내 진가연을 데려오라고 분부하고 진가연을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로 보내라고 지시했다.호텔은 진정기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집도 그렇게 마땅한 곳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되고 나서야 그녀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정말 너무 힘들다.에너지 소모가 많아 한소은은 흐리멍덩하게 또 잠이 들었다.잠이 든 후, 그녀는 아주 긴 꿈을 꾸었다. 한소은은 이 기지에서 떠나는 꿈을 꾸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진가연이 막 진정기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꿈속이라 진정기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표정은 흉악했다. 그리고 한창 다투고 있을 때 김서진도 돌아왔다.김서진은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한소은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마중 나
한소은은 물을 한 잔 가득 붓고 단숨에 반쯤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었다.한소은은 심호흡을 했다. 꿈속의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이 바이러스가 사람을 괴물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모든 사람의 머리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될 수 있다. 그쪽 정부에서도 남아시아의 현재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염 현상이 매우 심각하고 전염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각 지역을 봉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염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심지어 때로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이 퍼지기도 하였다.국내는 지금 일찍 발견했고 통제도 일찍 했지만 상황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계속하면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 바이러스는 사람마다 반응이 달라서 정말 다루기 힘들어.’한소은은 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직도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옷을 다시 입고 휴게실을 나선 그녀는 그 환자가 사는 구역에 이르렀다.여전히 그 칸막이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작은 방이다. 한소은은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 서서 잠시 바라보았다.어린 여자 아이는 잠들지 않았다. 침대 위에 앉아 두 손으로 바비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모 선생의 말로 그 인형은 그녀의 엄마가 그녀에게 남겨준 것이라고 하였다.지금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즐거운 웃음이 가득했다. 구부러진 눈매도 보기에 매우 예쁘고 사랑스러웠다.밖에서 보고 있는 한소은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굽혀 그녀의 웃음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어린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문 밖에 서 있는 한소은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벌리고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한소은도 손을 흔들며 응했고 이어서 문을 밀고 들어갔다.“언니…….”“아줌마야.”한소은이 그녀의 호칭을 바로잡았다.“예쁘잖아요, 그럼 언니예요, 아줌마가 아니고.”소녀는 입도 달콤하고 웃음도 더 달콤했다. 한소은은 마음속까지 달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기침을
간단하지만 소희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난 엄마 밖에 없어요.”작고 가벼운 목소리가 한소은의 가슴을 쥐어뜯었다.하소은은 심호흡 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왜 엄마밖에 없어, 언니도 있잖아, 그리고 삼촌이랑 이모도 있고, 여기 의사 선생과 간호사 언니도 소희를 많이 좋아하고 아끼고 있어.”이 말을 듣고 소녀의 미소는 마침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코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천천히 콧구멍에서 입술로 미끄러졌다. 한소은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옆에서 휴지를 꺼내 닦았다. 소녀는 불편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멍하니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소희야, 너 코피 흘렸어!”한소은은 한 손으로는 어린 소녀의 이마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지로 코피를 닦았다.그러나 그 피는 곧 휴지로 스며들었고 그녀는 다시 새 종이를 잡아당기고 다시 막았다. 그렇게 몇 번 반복했다.한소은은 비상벨을 눌렀고 그 소리에 곧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들도 이 상황에 놀라며 급히 기구, 소독솜, 거즈를 챙겨왔다.가까스로 피를 멈추었지만 소녀는 혼수상태에 빠졌다.지금 상황으로 한소은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소희의 맥을 봤고, 맥은 매우 불안정하고 허부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기허혈손의 증상이다. 그녀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의사들의 지금 최신 의료 기기로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호흡이 한결 진정되고 나서야 한소은은 몇 걸음 물러서서 방을 나갔다. 이마에는 땀투성이고 이마의 땀으로 머리카락까지 젖었다.가슴이 마치 큰 바위가 눌린 듯 숨이 막혔다.아직 어린 아이인데 미친 바이러스의 고통을 겪어야 하니 정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누구도 이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피할 수 없다.조금 더 속도를 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그렇고, 소희가 먼저 버틸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애가 어리지만 철도 들고 또…… 불쌍하기도 하였다. 한소은은 그 아이가 자기 눈앞에서 그렇게 다시 고통스러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