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녀가 이 비적이 가짜라는 확신을 들게 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비적을 훔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김서진이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비적을 우해영이 힘들게 훔쳐 온 비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이라면 잃어버린 순간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정상이다. 김서진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만약 자기가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제 성을 뒤집어서라도 꼭 찾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적을 훔쳐 오고부터 김서진 쪽은 조용하다 못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전에 김승엽도 김서진이 그에게 따지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렇다는 건 비적이 잃어버리건 말건 김 서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 결론은 하나다. 바로, 이 비적은 처음부터 가짜였다는 것이다. 김서진이 김승엽에게 두 개, 세 개의 함정을 준비했다면, 분명 자기에게도 함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모든 일이 다 납득이 갔다. “그렇다는 건 진짜 비적은 아직 당신들 손에 있다는 말이군요.” 우해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 물었다. 반면, 한소은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한소은의 반응은 우해영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녀는 멈칫하더니 믿지 못한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당신들 손에 없다고? 이건 말도 안 돼요! 그럼,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비적을 태워 없앴다거나 누군가 보관하도록 맡겨두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아니요.”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비적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우해영의 말은 한소은의 말과 동시에 입에서 튀어 나갔다. 그녀는 조금도 한소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해가면서 날 속이는 이유가 뭐예요? 오늘 난 성의를 가지고 당신과 얘기하려고 부른 거예요. 내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것도 다 밝혔는데 지금 비적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
“몇 년 동안 무술을 배우고 나서 스승님께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날 데리고 하산했어요. 절을 떠나면서 스승님께서 내게 불경을 한 박스나 전해주면서 시간 날 때 자주 보라고 당부했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김서진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이어서 말했다. “나중에 스승님이 주신 불경을 여러 번 보고 나서야 모든 무술은 다 심법을 먼저 잘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심법은 모든 무술의 근본이에요. 사실 아무리 대단한 수법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에요. 게다가 무술뿐만 아니라 사업에서 닥친 어려움도 불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의 말을 듣고 한소은은 반쯤 농담으로 말했다. “그 말은 당신이 자칫하면 스님이 될 뻔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하마터면 그녀의 남편은 불자가 되어 그녀와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그녀의 말에 김서진은 사뭇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맞아요.” 김서진의 진지한 대답에 한소은은 웃으며 그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지금 이 말들을 우해영에게 알려주자, 처음에는 흠칫 놀라더니 이윽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소은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우해영에게는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항상 믿으며 쫓아왔던 것이 결국에는 거짓이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물건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 수 있다. “당신이 이 말들을 믿기 힘들다는 거 알지만…….” 한소은이 잠시 멈칫하다 느릿하게 이어서 말했다. “서진 씨가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당신의 무술이 이미 충분히 대단하다는 거예요. 사업에서든 무술에서든 자기보다 대단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이렇게 발전한 사회에서 살면서 왜 이토록 최고의 자리를 집착하는 거죠?” “사실,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에 비해 당신은 이미 성공적인 사람이에요. 우씨 가문을 더욱 빛내어 가문의 사람들이 편하게 살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천하제일의 자리를 쫓는 거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
“독에 중독된 거예요?” 우해영이 기침하는 모습을 보며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한소은이 물었다. 그녀의 말에 우해영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기가 독에 중독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사실이 소문이 나게 되면 자기에게 원수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데일은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우해영이 이 시기에 이 사실을 한소은에게 알려줄 거라는 걸 생각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한소은은 잠시 머뭇거리다 앞선 모든 일들을 연결하고는 결론을 내렸다. “당신에게 독을 탄 사람은 바로 당신의 쌍둥이 동생인 거죠?” 이번을 우해영이 흠칫 놀랐다. 그녀는 고개를 획 들며 의아한 표정으로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우해민이 자기에게 독을 탄 사실은 그녀와 김승엽, 그리고 옆에 있는 데일 만 알고 있는 일이다. 데일이 한소은에게 말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한소은은 어떻게 알았을까? 우해영의 반응에 한소은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사실 알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당신처럼 신중한 사람에게 독을 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쉽게 성공했고 또 당신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분명 당신이 가장 신뢰하고 쉽게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 했을 거예요.” “며칠 동안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동생이었으니, 이 모든 일들을 같이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수밖에 없죠.” 우해영은 잠시 침묵했다. 느릿하게 한숨을 쉬더니 한소은에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요.” “너무 방심한 탓이죠? 당신처럼 예민한 사람이 쉽게 독에 중독될 리가 없는데. 다만, 당신의 쌍둥이 동생은 왜 당신에게 독을 탄 거예요? 친자매잖아요.” 한소은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우해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남자 때문이에요
우해영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를 한번 보고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해민이가 당신이 어디가 좋아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당신 같은 남자가 왜 끌리는 거지?” “그래, 맞아. 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더더욱 당신을 해칠 능력이 없어. 그러니까 제발, 날 놔줘!” 김승엽은 잠시 머뭇거리다 한소은을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조카며느리, 아니 사모님, 한소은 씨! 당신은 날 구하러 온 거지? 김씨 가문으로 날 데려가려고 온갖? 어떻게 되었든 어머니가 날 이렇게 버리지 않을 거야. 맞지?” 죽음 앞에서 겁에 질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은 김승엽을 보면서 한소은은 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김서진이 죽음을 직면했을 때는 겁에 질린 모습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항상 어떤 일이 닥쳐와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일을 헤쳐 나간다. 마치 모든 일이 그의 손에 잡혀있는 것처럼 항상 그녀를 안심하게 해주었다. ‘김승엽은 역시 김씨 가문의 자식이 아니야. 서진 씨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어.” 목숨을 살려달라 구걸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소은이 담담하게 말했다. “할머니 지금 많이 아프세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더 이상 충격을 받아선 안 된대요.” 그의 일로 반복적으로 충격을 받은 노부인의 심장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조금의 충격도 받아선 안 된다. “그래, 내가 죽으면 어머니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줄 거야. 그러니까 난 죽으면 안 돼. 빨리 날 데려가 줘! 김씨 가문으로 돌아갈게!” 김승엽이 황급히 말했다. 그의 말에 한소은은 어이가 없었다. “…….” “이 사람 데려가도 될까요?” 잠시 고민하다 한소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노부인이 그를 보고 싶어 하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김씨 가문에 데려가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김씨 가문에서 쫓아낸 사람일지라도 다른 가문이 나서서 처리한다면 이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우해영은 작게 고개
“지금 너희 둘을 놔줄게. 네게 자유를 줄 테니 이 사람과 멀리 떠나. 어때?” 우해영이 느릿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우해민은 그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뭘 원하는지 말해. 이렇게 돌아서 말할 필요 없어!” 한소은을 우해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해영이 이런 말을 하는 건 분명 다른 뜻이 있을 거라는걸 알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 있기만 했다. “정말이야. 너희 두 사람에게 기회를 줄게. 넌 이 사람을 죽을 만큼 사랑하잖아? 함께 떠나고 싶지 않아?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지 않아?” 이 말은 우해민에게 있어서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설령 이것이 함정이라 해도 우해민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고개를 들어 김승엽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자기의 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조건이 뭔데?” 한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난 쌍둥이 안 데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두 사람이었기에 우해민은 우해영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녀가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자기와 김승엽을 놓아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분명 조건이 있다는 뜻이다. 우해민은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조건은 아주 간단해. 첫째, 앞으로 우씨 가문과 연을 끊고 살아야 해. 네가 어떤 일을 하든 우씨 가문과 상관이 없는 거야. 넌 이제 우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 다신 우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 없어. 우리의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도망가서 네 삶을 살아!” “…….” 우해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런 조건은 그녀에게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씨 가문은 그녀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 집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그곳에서의 기억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이었고 악몽과도 같았다. 이제 드디어 그곳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다시
“해민씨, 이건 충동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김승엽이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그러자 우해민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없다 해도 난 아직 발이 있고 눈도 있고 입도 있어. 우리가 함께라면 어떻게서든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했었지? 당신과 함께라면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이렇게 순정적인 사람인지 몰랐네!” 우해영이 피식 웃더니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잘 생각해. 우씨 가문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손까지 없고, 네가 사랑하는 이 남자도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야. 앞으로 정말 서로의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언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내 마음을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우해민은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그러자 우해영이 데일에게 눈짓했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 앞에 퍼런빛이 서려 있는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네 뜻을 따르지. 칼이 닿는 순간, 더 이상 후회할 수 없는 거 알지?” 한소은은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 바닥에 떨어진 칼은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두 동강 날 정도로 날카로워 보였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우해민을 한번 쳐다보았다. 우해민은 여전히 굳건히 결심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이것이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직접 자를게!” 이렇게 말하면서 우해민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려 허리를 숙으렷다. 손이 칼에 닿으려던 순간 데일이 발로 칼을 콱 밟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해영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가 그렇게 급해!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세 번째 조건이 아직 남았단 말이야!” 우해영이 잠시 멈칫하다 김승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번째, 김승엽의 다리 하나도 잘라야 해!” 이 말을 듣자, 김승엽은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우해민도 충격을 받고 소리를 질렀다. “뭐? 안돼!” “안돼!” 김승엽과 우해
“난 언니를 너무 잘 알아. 승엽 씨의 다리를 자르고도 다른 조건을 더 걸 거잖아. 언니는 우리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 조금도 없던 거야. 난 떠나지 않을게. 날 죽여줘!” 우해민은 한껏 의로운 모습으로 우해영에게 말했다. 우해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김승엽만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기의 태도를 표명할 뜻도 없었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서로를 위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왜? 기회를 주겠다는데 다리 하나 아쉬운 거야?” 우해영은 비웃으며 한 글자 한 글자 김승엽을 향해 말했다. “작은아버지.” 한소은이 작은 목소리로 김승엽을 불렀다. “우해민 씨가 이렇게 많은 걸 포기한다는데 작은아버지는…… 할 말이 없는 건가요?”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김승엽이 고개를 들어 한소은을 바라보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투에는 조금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어? 내 다리를 자르라고? 미안한데, 난 싫어!” “너희들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잖아. 높은 곳에서 쥐새끼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잖아.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내 다리까지 빼앗아 가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다리가 없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김씨 가문이 날 먹여 살려 준대? 평생 먹여 살려 줄 거냐고? 해민 씨는 어떻고?” 김승엽을 우해민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이어서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거잖아! 당신들은 그저 사람을 가지고 놀 줄만 알지!” “난 그저 살아가고 싶을 뿐이야.” 김승엽은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이게…….” 우해영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내 마지막 조건이라고 장담하지. 해민이의 두 손과 당신의 다리 한쪽만 내놓는다면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어. 앞으로 다시는 너희를 찾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심지어 여기를 떠날 돈도 준비해 줄게. 어디에 가서 뭘 하든 다 나와 상
“해민아!” 우해영은 깜짝 놀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막으려 했다. 옆에 있던 한소은도 깜짝 놀라 손을 뻗었지만 조금 늦어졌다. 아무도 우해민이 자결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우해영이 우해민에게로 몸을 날리자, 데일은 우해민이 자기의 주인에게 해를 가할까 봐 몸으로 우해영을 막아 나섰다. 뾰족한 칼끝이 살을 뚫고 들어오자, 우해민은 고통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윽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한껏 찡그렸던 미간을 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해민아!” 우해영은 빠르게 그녀 앞으로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우해영도 버틸 힘이 없어 두 사람 모두 쓰러져 내렸다. 마침 데일이 달여와 두 사람을 지탱했다. “해민아! 이 계집애야! 미친 거야? 이딴 남자 때문에 죽으려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우해영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놀라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우해민은 어느 때보다 더 활짝 웃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칼을 부여잡고 피범벅이 된 다른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기분 정말 좋아. 이제 난 드디어 자유야. 더 이상 언니의 그림자가 아니란 말이야.” “승엽 씨…….” 우해민은 고개를 돌려 김승엽을 바라보았다. 미약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돼. 사실 난 당신이 날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난…… 난 당신을 좋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내가 당신을 좋아한 거면 됐어.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됐어! 그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 우해영이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의사 불러. 빨리 의사 부르란 말이야!” 그러자 우해민이 손을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필요 없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둬!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언니, 나 너무 힘들어…….” 우해민의 시선이 서서히 우해영에게로 가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