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요요가 청아의 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어. 설령 안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일 줄은 생각지도 못할 거야."그래서 그녀는 안심하고 장시원에게 요요를 맡겼던 것이다. 설령 옆에서 무심코 요요와 그가 닮았다고 농담하더라도 장시원은 절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심명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재밋네."소희가 듣더니 농담하듯 말했다."내가 너라면 나도 밖에 사생아가 있지 않을까하고 먼저 생각할 것 같은데."심명의 웃음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바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절대 그럴 리가 없어!""그렇게 자신이 없어?"소희가 계속 놀리듯 물었다.심명이 눈부시도록 이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무튼 절대 그럴 리는 없으니까, 걱정마."심명의 대답에 소희는 눈썹만 한 번 올리고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오늘 청아가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날이라 소희가 요요와 함께 자야 했다. 처음엔 요요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집으로 가는 도중에 깊이 잠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차에서 내릴 때 심명이 담요로 요요를 감싸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 다행히도 요요가 한 번도 깨지 않았다.보아하니 오늘 밖에서 노느라 많이 지친 듯 했다.소희는 요요의 신발을 벗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수건으로 요요의 얼굴과 손발도 닦아줬지만 요요는 여전히 달콤하게 잠들어 있었다.그 모습에 소희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에서 나오니 심명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나온 걸 보고 즉시 고개를 들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내가 남아줄까?"이에 소희가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자꾸 그런 농담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내가 잘못했어!"심명이 즉시 그녀의 말허리를 끊고 일어섰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넌 나와 선을 그을 수도 없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막을 수도 없어."소희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심명, 진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너에게
소희가 얼굴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탄식했다."확실히 나의 잘못이긴 하지. 나만 아니었으면 너와 노명성은 진작에 아이를 낳았겠는데.”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성연희가 노명성과 헤어졌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소희와 함께 떠나고 싶어서.소희 때문에 그들은 결혼식을 취소했고, 지금까지도 거행하지 않았다."왜 또 그 얘길 꺼내?"성연희가 시큰둥하게 소희를 흘겨보았다.그러면서 요요를 안고 다가가 소희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표정이 왠지 복잡해 보였다."소희야, 그냥 솔직히 말할게. 나와 노명성 사이에 정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소희가 바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뜻이야? 설마 또 회사 연예인이 그를 꼬시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어?""아니! 아마 너무 오래 함께 있어서 이젠 상대방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소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상대방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안전감이 없이."성연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라는게 항상 변하잖아!"성연희의 말에 소희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사람 마음이 변한다라......그녀보다 이 말에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소희가 성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세상 사람들이 다 헤어지더라도 너희 둘은 헤어져서는 안 돼.""감정에 있어서 누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겠어."성연희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너희가 헤어지면 난 죄인이 될 거야.""그렇게 무슨 잘못이든 전부 다 네 자신한테 돌리려 하지마."성연희가 소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어차피 변할 사랑이라면 결혼해도 소용이 없어. 더 번거로울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날씨도 좋은데 우리 요요를 데리고 놀러 가자!""나 사부님 뵈러 가고 싶어."소희는 돌아온 지 며칠이 되었지만 한 번도 사부님을 보러 가지 못했다. 갔다가 욕만 먹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데 마침 오늘 성연희도 있으니, 함께 사부님의 화에 마주하면 딱 좋을 것
옆에 있던 성연희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도 할아버지, 진장하시고요. 이 아이는 소희의 아이가 아니라 저희 친구의 아이입니다. 지금은 친구가 일이 있어 저와 소희가 며칠 동안 데리고 있는 거고요.""정말이야? 날 속이는 거 아니지?"도 어르신이 유심히 요요를 쳐다보았다.확실히 임구택을 닮지 않은 것 같았다.요요는 눈 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속으로는 왠 할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냐고 의아해 하고 있을 법 했다."정말이에요."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앞으로 다시는 거짓말 안 할게요."도 어르신이 듣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요요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아가 참 이쁘구나. 이름이 뭐니?""요요라고 해요."소희가 재빨리 요요를 대신해 대답했다."너한테 물었어?"도 어르신은 순간 웃음을 굳히고 소희를 힐끗 쳐다보았다."예전의 일이 쉽게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성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어르신의 팔을 잡고 어르신을 의자에 앉혔다."일단 화를 가라앉히시고요. 할아버지께서 계속 소희를 혼냈다간 소희가 앞으로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오늘에도 저를 데리고 왔잖아요."도 어르신이 냉소하며 말했다."쟤가 감히 못할 일도 있어? 내가 보기엔 하늘도 날아올라갈 것 같은데?""하마터면 날아갈 뻔했는데, 할아버지가 걱정된다고 해서 다시 돌아온 겁니다."성연희가 소희를 위해 좋은 말을 하면서 도 어르신의 어깨를 두드렸다.도 어르신이 듣더니 마음이 시큰시큰해 나면서 분노도 덩달아 많이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희를 바라보며 걱정되어 물었다."몸의 상처는 다 나았어?”"네!"소희가 얌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눈은?”"눈도 괜찮아졌습니다!"성연희가 히죽거리며 물었다."이제 화 풀리셨죠?""이번만 봐준다."도 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강성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앞으로 임씨 가문과 멀리 떨어져 있어. 너 만약 임구택과 다시 만나게 되면 난 더는 너의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장시원이 그래도 많이 조용해졌어. 더 이상 공개적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지도 않았고. 우민율이 계속 그를 쫓아다녔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잖아."성연희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소희는 순간 조백림의 약혼식에 참석했던 그 여인이 떠올랐다. 성연희가 말한 우민율이 그 여인인 게 분명한 것 같았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비웃음부터 나왔다.장시원은 이름 난 바람둥이라 공개된 여자친구는 없다 하더라도 섹파는 절대 적지 않을 거니까.정원에서 한창 놀고 있는데 점심 밥상을 다 차렸다는 하인의 말에 그들은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그런데 이때, 진석이 갑자기 나타났다.소희를 본 그의 눈에는 의아한 빛이 번쩍였지만 곧 다정한 웃음으로 바뀌었다."돌아왔으면서 왜 연락도 하지 않았어요? 만약 내가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 피하려고 했는데요?"소희가 억울하다는듯 대답했다."저 돌아온 요 며칠 엄청 바빴거든요.""바빴다고요?"진석이 냉소하며 물었다."뭐하느라 바빴는데요?""아이를 보느라고요."소희가 요요를 가리켰다.진석은 소희의 대답에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았다. 한 어린아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 큰 눈으로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진석이 순간 놀랐다."몰래 아이까지 낳은 겁니까?"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안은 온통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점심을 먹고 있는 동안 도 어르신은 계속 진석더러 빨리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했다. 아이를 돌보는 게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으니까.이에 진석은 오늘 괜히 왔다며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그러다 밥을 반쯤 먹은 진석이 소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마침 아가씨가 돌아와서 하는 얘긴데요, 한 영화 제작팀에서 아가씨에게 영화 복장 디자인을 맡기고 싶다고 이미 나한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어요.”주 감독의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높은 시청률을 획득하였고 평판도 엄청 좋았다. 특히 영화 속의 치파오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로 이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가 GK 여름 신상을 입고 건물에서 나왔다. 청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가 진 셔츠 원피스는 심플하고도 대범한 스타일이었지만 소희의 앳된 얼굴 때문이었는지 다소 깜찍 발랄해 보였다.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젓살이 남아 있었던 볼이 줄어들고 두 눈이 더욱 밝고 커진 것과 이목구비도 더욱 뚜렷해진 거 빼고는.소희가 차에 올라 엷게 웃으며 말했다."가요!"그런데 진석이 대답하기도 전에 소희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진석은 단번에 화면에 뜬 이름을 보았다.심명이었다.소희가 전화를 받아 참을성 있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영화 미팅에 참가하러.""돌아올 필요 없어. 선배랑 같이 갈 거니까.""그래. 볼 일 계속 봐. 급히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까."진석이 천천히 차에 시동을 걸다 소희가 전화를 끊은 걸 보고 바로 물었다."심명이랑 만나고 있는 거예요?"심명이 전에 소희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또 소희의 제일 암흑했던 시기를 함께 보내 주었다. 심지어 지난 2년 동안은 가문의 업무도 뒷전으로 하고 소희를 데리고 온 세상을 돌아다녔으니 두 사람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이 생겼고, 소희가 심명을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딱히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아니요."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냥 친구예요."진석이 앞을 보며 덤덤하게 웃었다."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느 남자가 친구 곁에 그렇게 주구창창 붙어 있겠어요?"소희의 눈동자가 약간 어두워지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기색이 드러났다.처음 심명을 알게 되었을 떄 그녀는 심명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 같은 바람둥이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으니까.하지만 2년 전 밀수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여전히 심명이 자신과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정말 자신을 속이는 것과 같았다.그들 두 사람은 이미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소희는 심명에게 자신이
문을 지키는 직원이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화려하고 웅장한 연회장에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오늘은 주로 영화 제작팀과 투자측의 미팅이라 한껏 차려 입은 남성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쁘게 꾸민 여인들이 그들 사이를 오가며 연회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진석이 한 번 둘러보고는 감독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소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자리가 싫으면 조용한 구석을 찾아 쉬고 있어요. 내가 가서 감독과 이야기하면 되니까.""괜찮아요, 언젠가는 적응해야죠."소희가 그의 팔짱을 낀 채 다정하게 웃었다.그러다 문득 매서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익숙한 그림자를 본 순간 살짝 멍해졌다. 임구택이 몇 명의 상업계 명사들과 함께 서서 담소하고 있었다.점잖고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임구택은 심플한 흰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지만, 오직 그만이 단조로운 흰색을 고귀하고 우아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임구택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소희는 그냥 일시적인 착각으로 여기고 다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이태명 감독은 진석과 소희를 보자마자 열정적으로 맞이 했고, 다시 한 번 소희의 합류에 환영을 표했다.소희가 담담하게 두 마디 인사말을 하고는 무심코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노명성을 보았던 것이다.노씨 가문도 엔터테인먼트를 경영하고 있는 가문이라 이번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노명성의 팔짱을 끼고 있는 건 등을 드러내는 밝은 은색 드레스를 입은 낯선 여인이었다.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은 노명성에게 바짝 붙어 서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소희의 마음속에는 한기가 돌았다. ‘평소라면 노명성은 항상 연희를 데리고 이런 장소에 참석했는데. 오늘따라 전혀 꺼리지도 않고 다른 파트너를 데리고 오다니. 어쩐지 이틀 전에 연희가 그런 말을 한다 했네.’여인의 직감은 역시 틀린 적이 없었다.소희는 노명성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소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임구택은 앞으로 몸을 기울여 소희를 주시하면서 소리를 내지말라는 동작을 했다.소희는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떨구었다. 그러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벽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아직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바람을 피웠다는 걸 잡더라도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야 한다.여인을 안은 남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여인을 품에 안고 키스를 했다.두 사람이 키스하면서 격렬하게 삼키는 소리는 어둡고 고요한 복도에서 매우 뚜렷하게 퍼졌다.소희의 빠른 심장 박동에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뜻이 더해졌다. 특히 남자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하고 차가운 향기가 코를 따라 그녀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더욱 그랬다. 너무 익숙한 냄새는 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반응을 불러일으키곤 했다.임구택이 그녀에게 가져다 주는 이상한 느낌을 억누르고 소희는 밖에 있는 두 사람에게 주의를 돌렸다. 그러자 마음속의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노명성이 어떻게 연희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임구택이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가린 손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곳이 너무 좁은 탓에 딱히 손을 내려놓을 곳이 없어 소희의 허리 쪽에 놓았고, 또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고 자기 품속으로 당겼다.그러자 소희가 바로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이에 임구택이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움직이지 마."그의 얇은 입술이 그녀의 제일 예민한 귓바퀴를 스치면서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을 휩쓸었다. 애써 소홀하고 있었던 짜릿함이 빠르게 다시 용솟음쳤다.그러던 중 어렴풋이 임구택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소희는 고개를 돌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임구택을 밖의 온천으로 걷어차 버리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게.분재 쪽의 남자는 이미 많이 조급해 하는 것 같았고, 여인의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돼, 여기서는 안 돼."남자는 전혀 듣지 않고 여인의 목덜미에
고명계는 임구택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곧 깨달았다는 표정을 드러냈다.아무래도 임구택의 여인이 여민이 꼬신 사람이 임구택인 줄 알고 화가 나서 달려들어 여민을 때린 것 같았다.설사 임구택의 여인이 때린 사람이 그라고 하더라도 그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일은 원래 크게 벌려서는 안 되는 거라 그는 순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오해네요, 그럼! 임 대표님의 여자친구분은 손을 안 다쳤죠?"여민은 얼굴을 가린 채 고명계의 뒤로 물러나 임구택과 소희를 주시하였다.소희는 한 번도 이런 큰 실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창피함에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 사과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임구택이 소녀의 궁핍한 뒷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려 고명계에게 말했다."실례했습니다. 하던 걸 계속하세요."그러고는 돌아서서 소희를 쫓아갔다.여민은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임구택을 보며 고명계에게 물었다."저 사람이 바로 임구택이에요?”"그래! 왜, 마음에 들어?"고명계가 여인의 허리를 꼬집으며 웃었다.여민이 듣더니 눈썹을 올렸다."전 제가 어떤 신분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런 허황한 꿈은 안 꾼다고요."하지만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번쩍였다.다들 임구택이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이현이라고 하지 않았나?그럼 방금 그 여인은 누구지?그녀는 이미 부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콧방귀를 뀌었다. 언젠가는 복수할 거라고 다짐하면서.*소희는 앞에서 아주 빨리 걸었고, 임구택은 뒤에서 서두르지 않고 따라갔다.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연회장 안에 있어 온천 화원은 엄청 어둡고 조용했다.임구택은 조용하게 앞의 소녀를 주시하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렇게 충동적인 모습은 처음이네."소희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그녀는 입술을 굳게 오므리고 생각에 잠겼다.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그의 접근으로 인해 그녀가 잠시 정서가 불안해져서 실수했다고?"임 대표님이 왜 여기에 있는 거
도도희가 말했다.“집으로 가져올 짐이 있으면 내가 같이 가서 챙길게.”강심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제가 혼자 해도 돼요. 짐이 많지 않거든요.”도경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일이 끝나면 꼭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외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일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러자 양재아가 말을 받으며 웃었다.“아심이 집에 오면 내 옆방에서 지내면 어때? 우리 같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도도희는 잔잔히 웃으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가 이미 내 옆방을 정리해 두었어요. 재희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거든요.”그 말에 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것도 괜찮네요.”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시언은 아심을 회사까지 데려다주었고, 도경수는 끝까지 마당 문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재아는 도씨 집안의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도경수가 시언의 차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기운이 들었다.‘역시 친자식은 다르구나.’ 재아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몇 달 동안 도씨 집안에서 도경수를 모셨는데도, 강아심이 하루 있는 것만 못하네.’“가요, 늦겠어요.”재아는 시선을 거두며 운전사에게 말했다....시언은 앞을 응시한 채 운전하며 물었다.“저녁에 정말 약속이 있는 거야?”아심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에 떨어져 따뜻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이예요.”그러자 시언은 그녀를 힐끔 보며 말없이 운전했고, 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녁에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굳이 데리러 오지 않아도 돼요.”“그래.” 시언은 담담히 대답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심은 가벼운 질문을 하였다.“강재석 할아버지랑 언제 강성으로 돌아가세요?”시언이 물었다.“왜 그러는데?”“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아심은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강재석 할아버지가 제 일
“‘강’ 씨 성이면 어때? 아심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야.”강재석이 논리적으로 반박했다.“그건 아심이 예전에 도씨 가문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 돌아왔으니 성은 반드시 바꿔야 해요.”도경수는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재희로?”도경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재희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도도희는 계속 다퉜어. 얼마 후 도도희는 재희를 데리고 강성을 떠났고, 그저 재희라는 예비 이름만 붙여줬어.”“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재희로 이름을 지어주자고 했지만, 나와 도도희의 의견이 매번 엇갈려 결국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강재석은 기뻐하며 말했다.“그 말은 재희의 운명적인 이름이 이미 강아심이라는 뜻이니 바꿀 필요가 없다는 거야!”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절대 불가능해. 내일 바로 도도희와 상의해서 재희를 우리 도씨 가문의 호적에 올릴 거야.”“그 문제는 아심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강재석이 말했다.“네 멋대로 결정하면 아심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어.”그 말을 듣고 도경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했다.“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그는 위층을 올려다보며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도도희와 아심이가 한방에서 지내고 있어.”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모녀가 이미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거리감도 줄었겠지.”“맞아!” 도경수가 감탄하며 말했다.“볼수록 아심은 우리 도씨 가문의 사람처럼 보여.”강재석이 비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사람 깎아내릴 때는 아니었나 봐?”도경수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그때는...”“그때는 뭐? 양재아의 한마디에 휘둘려, 본 적도 없는 아가씨를 편견으로 대했잖아.”강재석이 차갑게 말했다.“그러니 아심이가 당신을 무시하는 게 당연하지.”도경수는 주름이 가득 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야!”“잘못을 인정한다니 다행이네!”그 말에 도경수는 찡그리며 말했다.“지금까지 재희가 날 외할
소희는 손을 뒤로 돌려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이제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볼 수 있겠네.”구택의 긴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가고 싶은 곳 있어?”그 말에 소희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사실, 아직 양재아가 조금 걱정돼.”“걱정하지 마. 형님이 있으니까.” 구택이 웃으며 말했다.“형님은 절대 아무도 아심을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그건 그렇지!” 소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우리가 돌아왔을 때, 오빠랑 아심이 사귀고 있었으면 좋겠어.”“그럴 거야.”...그날 밤, 도도희는 아심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오늘 밤은 한방에서 지내자. 아직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도우미들이 아심을 위해 새 세면도구와 잠옷을 준비해 놓았다. 아심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도도희는 침대에 앉아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손짓했다.“침대로 와.”아심은 신발을 벗고 도희 옆에 앉았다. 방 안은 냉방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도도희는 이불을 들어 그녀의 다리에 덮어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이 너무 차게 하면 안 돼. 특히 너는 위가 안 좋잖아.”아심은 스스로 이불을 위로 끌어올리며 웃었다.“이제 알았어요. 제가 위가 안 좋은 건, 알고 보니 유전 때문이었네요.”이에 도도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원인을 찾았구나!”아심은 사진첩을 넘기다가 자신이 세 살이 되기 직전의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양부모님 댁에서도 제 어릴 적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습과 거의 비슷했어요.”도도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사람들이 널 자주 때렸니?”“친자식이 아니니까, 당연히 정이 없었죠.” 아심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도 다행히 할머니가 아주 착해서 저를 보호해 주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아들이 병에 걸리자 저를 팔아버렸어요.”도도희는 가슴이 아파 그녀를
강재석이 말했다.“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내면 다 지난 일이 된다. 재희가 돌아왔으니 기쁜 일이야. 너까지 이러면 재희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다.”“그렇지!” 도경수가 눈물을 닦으며 강아심을 향해 말했다.“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지난 20년의 세월을 되찾아야지!”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식사가 끝난 후,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재석이 소희에게 말했다.“너희 부부도 신혼여행을 가야 하지 않느냐? 이제 재희도 찾았으니 내일부터 떠나도록 해.”소희는 만화에서나 볼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기뻐서 신혼여행이고 뭐고 갈 마음이 없어요.”그 말에 강시언이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이 그룹 일을 전부 내려놓고 널 위해 시간을 냈는데,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많으니 신혼여행을 미루지 마.”구택이 소희를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걱정하지 마.” 시언이 잔잔히 미소 지었고, 도경수도 진석과 강솔을 향해 말했다.“너희도 나를 계속 돌보려 하지 말고 할 일 있으면 하러 가라. 여기 강재석도 있고, 나와 이야기하면 충분하다.”진석이 말했다.“그러면 강재석 할아버지께서 강성에 며칠 더 머물러 주세요.”강재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은 떠날 수 없구나!”도도희가 말했다.“아저씨, 어떤 일이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그 말에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그건 너희 아빠에게 물어봐라!”도경수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돌아가려면 얼른 돌아가!”도도희가 호기심에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에요?”“시언과 아심의 혼사 얘기다!” 강재석이 웃으며 말했다.“네 아버지가 전에 재희를 찾으면 두 집안이 결혼을 통해 인연을 더 깊게 맺자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어.”모두가
양재아는 그 자리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정원을 응시했다. 저녁노을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자, 묘한 냉랭함이 깃들었다.‘이제 겨우 첫날인데, 강아심이 나에게 벌써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분명 나를 내쫓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목이 메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차가운 얼굴로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재아는 두 도우미가 아심을 둘러싸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았다.“아가씨, 주방에서 진귀한 홍삼 특급 탕을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입맛에 맞지 않으시면 다른 탕으로 바꿔 드릴게요.”“아가씨, 요리는 찜으로 드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것으로 조리해 드릴까요? 도경수 어르신께서 아가씨의 의견을 꼭 여쭙고 준비하라고 하셨어요.”“아가씨, 평소에 단맛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매운맛을 좋아하시나요?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아가씨 입맛에 맞게 요리해 드릴게요.”...그들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재아의 가슴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동시에 도우미들의 태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저녁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경수는 특별히 풍성한 식탁을 준비했고, 모든 사람이 한데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웠다.도경수는 가장 먼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늘 첫 잔은 시언 그리고 모두를 위해 건배하네. 너희가 없었다면 나와 도도희는 우리 아심이를 찾지 못했을 거야.”도도희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저도 여러분께 감사의 잔을 드려요. 20년간 간절히 바라온 소원이 오늘에서야 이루어졌어요.”“지난 20년 동안, 저는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었고, 하루도 제 딸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도도희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졌다.“이제야 제 마음이 놓이네요.”도도희의 감동적인 말에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렸다.“도도희 이모, 축하드려요!”“스승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시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도도희는 아심을 의미심장하게 흘낏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뒤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아심은 도도희가 시언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주려 한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꽃이 가득한 정원에는 어느새 둘만 남아 있었다. 도도희가 좋아하는 꽃은 자스민이었다. 도경수의 정원에는 자스민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오월의 따뜻한 날씨 덕에 이미 꽃망울이 터졌고, 얼음 조각처럼 하얀 꽃잎들이 싱그러운 초록 잎 사이에 피어 있었다. 작고 귀여운 꽃들이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와 함께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요한 정원에서 시언은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를 살짝 닦아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울었어?”아심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도도희 이모가 제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엄마라고 불러야지.” 시언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오늘부터는 엄마라고 불러야 해.”아심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의 매혹적인 눈동자에는 어색함이 서려 있었다.시언은 부드럽게 말했다.“첫마디는 어렵겠지만, 한 번 입을 떼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질 거야.”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아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언은 아심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천천히 그녀를 품에 안았다.“가족을 찾은 기분이 어때?”시언의 넓은 어깨에 기대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심은 조용히 말했다.“좋아요.”“나도 기뻐.” 시언의 거친 손끝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었다.“네가 도도희 이모의 딸이라는 사실이 정말 기쁘거든.”아심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은 왜 기쁜 거죠?”시언의 눈빛에는 노을이 어스름이 비쳤고, 그의 표정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네가 드디어 가족을 찾았으니까. 그리고 나도 약속을 지켰으니까.”그 말에 아심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맞았다. 아심은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가족이 생겼다. 아심은 시언의 팔
도경수는 상황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재아야, 어떤 상황이든 내가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하단다. 네가 친부모를 찾고 싶지 않다면 계속 이 집에 살아도 돼. 우리는 언제까지나 너의 가족이야.”그러자 양재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인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도경수는 서둘러 달래듯 말했다.“알고 있어.”재아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할아버지, 저도 생각해 봤어요. 저는 친손녀도 아닌데 이 집에 계속 머물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이제 진짜 손녀분이 돌아오셨으니, 제가 여기 남아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어요.”“하지만 저는 정말 갈 곳이 없어요. 양부모님 댁에는 돌아갈 수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도경수는 재아의 말을 듣고 더욱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우리 손녀를 찾지 못했더라면, 걔도 너처럼 집 없이 외롭게 살았을지 모른다. 어디에도 갈 필요 없어.” “그냥 여기 계속 살아. 도도희가 아심이를 찾은 지금 정말 행복해하니까, 너한테 뭐라 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너와 아심이가 친한 자매처럼 지낼 수도 있겠지.”재아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저는 아심이와 아무것도 경쟁하지 않을 거예요. 여기 남아서 도우미로 일해도 괜찮아요.”“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나한테 몇 달 동안이나 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도우미 취급을 하겠느냐.” 도경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렴.”그 말에 재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감사해요, 할아버지. 아마 저희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할아버지 곁에 오게 된 거겠죠.”도경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것도 다 인연이지.”그때 강재석이 입을 열었다.“도경수, 내 생각에는 양재아의 친부모를 찾아보는 게 좋겠어. 이 아이도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 집에서
이 모든 것을 보며 강아심의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진짜로 자신이 이재희라는 사실을 실감했다.“이 나무 목마는 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거야. 위에 색칠한 것도 그분이 손수 한 거고.” 도도희는 눈가에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여기 달린 금방울도 네 할아버지가 금을 녹여 특별히 만들어주신 거야. 네가 어렸을 때 이 목마를 정말 좋아했거든.”아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목마 앞에 그대로 앉아 조각처럼 섬세하고 생생한 나무 목마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도 이 목마가 참 마음에 들었다.도도희는 옷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드레스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이건 네가 어렸을 때 입었던 옷들이야.”20년이 지난 옷들은 다소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눈에 익은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그리고...”도도희는 옷장 아래 서랍에서 두 권의 커다란 사진첩을 꺼냈다. 그녀는 강아심과 함께 바닥에 앉아 사진첩을 열었다.“여기에 너의 어린 시절이 담겨 있어.”사진첩은 그동안 아무도 펼치지 못한 채 20년간 봉인되어 있었다. 겉면에는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도도희가 그것을 열기 전부터 이미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사진첩을 열자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갓난아이의 사진이었다.20년 전의 사진이라 화질은 다소 흐릿했지만, 뽀얀 볼과 크고 또렷한 눈동자는 여전히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릴 만큼 사랑스러웠다.“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사진이야. 그때 네 아빠는 이미 떠난 후였고, 넌 나에게 살아갈 유일한 이유였어.”도도희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이건 해성에서 찍은 사진이야. 그때 네 할아버지와 다투고 나서 널 데리고 해성으로 갔었지. 우리 둘이서만 거의 1년을 해성에서 지냈어.”“그때 나는 막 졸업한 상태라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미술 선생님으로 일했어. 넌 정말 착한 아이였어.”“내가 수업할 때면 늘 조용히 잠들어 있어서 나를 한 번도 방해한 적이 없었지.”“이건 우리가 다
도경수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너는 동의 안 했잖아? 뭐라 그랬더라,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연애해야 한다고 했었지?”“요즘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손녀를 찾으니까 이제 와서 네가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건가?”강재석은 시언을 향해 물으며 말했다.“누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요.”이에 도경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할아버지와 손자가 둘이 함께 일부러 얼버무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냐?”시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자유롭게 연애하는 걸로 할게요. 그것도 문제없거든요.”그 말에 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였다는 듯했다. 그러나 도경수는 곧바로 반대했다.“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손녀를 건드리려 하지 마. 나와 도도희는 절대 그렇게 서둘러 재희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어. 최소 몇 년은 집에 두고 보고 싶단 말이야.”강재석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아까까지는 강시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게 그에 대한 보답이야?”도경수는 서둘러 말했다.“시언아, 내가 너한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해봐라. 내 수집품 중에 골라.”“골동품이든 진품 그림이든 상관없어.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탐내던 서화도 내줄게.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그러나 시언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도경수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강아심뿐이예요.”당당한 시언에 도경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강재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경수를 바라보았다.“들었지? 우리 시언이 널 대신해 손녀를 찾아줬잖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으면 그것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지.”도경수는 화가 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희 집안은 이걸 빌미로 우리 손녀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