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입술은 모두 차가워 닿자마자 무시할 수 없는 설렘을 만들어냈다.구택은 그녀의 턱을 쥐고 부드럽게 키스했다. 마치 절세의 보물에 키스하는 것처럼 힘을 쓰기가 아까웠지만 떠나기도 아까웠다.소희는 그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응답했다.눈송이가 그녀의 눈썹, 콧날, 입술 끝에 떨어진 후에 곧 뜨거운 키스 속에 녹았다.그 서늘한 기운은 소희의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더해주었고 구택은 그녀의 기쁨을 느낀 듯 키스에 더욱 집중했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밖에 있었다. 구택은 소희가 감기에 걸릴까 봐 자기 전에 또 그녀를 데리고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거대한 2인용 욕조 안에서 소희는 남자의 가슴에 엎드려 온몸은 온기로 둘러싸였다.차가움와 더움의 충돌은 원래 추웠던 이 겨울을 소희의 기억 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만들었다.……저녁명원은 식탁을 치우고 손을 씻고 소파에 앉아 미연과 함께 게임을 하길 기다리다가 미연이 침실에서 나와 팔에 검은색 패딩을 걸치고 외출하려는 것을 보았다.명원은 갑자기 안색이 옅어지더니 눈살을 찌푸렸다."눈이 오는데도 나가는 거야?"그날 밤 미연은 묵언과 만난 이후 연속 사나흘 저녁에 외출하였는데 명원은 그녀가 묵언을 만나러 가는 줄 알고도 말릴 구실도 없었다.결국 두 사람은 전에 연애를 하는 것은 가짜이며, 누구도 상대방의 사생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약속했다.미연은 곧장 현관으로 가서 담담하게 말했다."요 며칠 오지 마. 난 너와 함께 게임 할 시간 없어!"명원은 다소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나 혼자 놀아! 그리고, 난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잘 거야!""맘대로 해!"미연은 대답한 뒤 문을 열고 나갔다.방안이 조용해지자 명원은 마음이 당황했다.미연은 집에 있어도 말을 잘 하지 않는 차가운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니 마치 방이 갑자기 텅 빈 것 같았다.명원은 마음이 답답해져 게임도 할 수 없어 일어나 베란다로 걸어갔는데, 밖에 눈이 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녀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그윽하게 물었다.“너 묵언이랑 연애 해?”간미연은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니!”“근데 왜 맨날 만나?”장명원의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 담겨져 있다.그런 그를 간미연은 가볍게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거절했어. 우리가 따로 만난건 어플을 만들려고 상의할게 있어서 만난거야. 그리고 밤에 만난건 그 사람 낮에 출근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래.”나는 그를 거절했다. 그 후 나간 것은 우리가 함께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낮에는 출근해야 하고 밤에만 시간이 있다."“그래도 안 돼, 난 네가 그 사람이랑 둘이 만나는 게 싫어!”“왜 싫어?”장명원의 숨결은 소녀의 귓불을 스치고 짙은 술기운을 띠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왜냐하면......넌 내꺼잖아!”그의 말에 간미연이 몸이 약간 굳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장명원! 내일 술이 깨고 나면 넌 분명 네가 한말을 후회할거야!”장명원은 팔을 벽에 받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간미연의 눈을 쳐다보며 서서히 눈빛이 몽롱해졌다.“미연아.”“응.”간미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키스하고 싶어.”장명원은 그녀의 입술을 응시하면서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해도 돼?”간미연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장명원은 그녀의 턱을 잡고 뒤로 약간 젖히며 천천히 다가갔다.간미연은 그가 닿는 순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물지 마!”“응, 안 물어!”장명원은 얼버무리며 그녀의 입가에 입을 맞추고 천천히 키스했다.마치 어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을 얻은 것처럼 장명원은 눈을 감고 달콤한 키스에 빠졌다. 한손으로는 벽을 받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간미연의 허리를 껴안았는데 점점 거칠어지는 숨과 불타오르는 몸은 그의 공허함을 메울 수 없었다.숨막히게 열정적인 남자의 키스에 간미연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고개를돌렸지만 곧 그에게 잡혀 다시 깊은 키스를 하게 된다.온 몸이
임유민은 하루 동안 기말고사를 보았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는 완전히 해방되었다.소희는 더 이상 주말에도 임유민에게 수업을 할 필요가 없다.성적이 내려오던 그날 우정숙은 소희한테 전화가 왔었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동시에명절에 선물이라도 보내주려고 물었었다.전화를 끊은 후 소희는 우정숙으로부터 장려금을 받았다.소희는 액수를 보고 경악했고 너무 많이 줬다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러자 우정숙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선물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요......부담 가지지 말고갖고 싶은거 가서 사세요.”소희는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우정숙은 그냥 받으라고 당부했다. 하여 소희는 그저 감사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다.우정숙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소희는 또 집사로부터 온 돈을 받게 되었는데 오정숙의3배나 되는 액수였다.소희는 임구택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번정도 울리더니 전화가 연결되었다. 곧 임구택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소희야.” “너무 많이 줘라고 시킨거 아니에요? 방금 사모님한테서도 받았어요. 이건 돌려줄게요!”임구택은 가볍게 웃었다.“형수꺼는 받으면서 내 꺼는 안 받는다 이거에요?”소희는 눈썹을 찌푸렸다.“억지 부리지 마세요!”평소에도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의식주는 기본으로 그가 책임지고 있는데 때론 구은서의 말대로 정말로 비단꽃이 된 기분이 든다.“받아요! 억지를 부리든 아니든 그건 제 마음이에요.”남자의 웃음 섞인 말투에는 횡포가 배어 있다.소희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밥은? 먹었어요?”“아니요, 이제 막 회의 끝냈고 입맛도 없어요.”임구택은 갑자기 멈칫거리더니 웃으며 이어 말했다.“이쪽으로 와요. 같이 밥 먹어요.”그는 소희가 오늘 쉬는 것을 안다.그러자 소희는 시원하게 대답했다.“그래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살게요.”원래는 해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마 그는 그녀가 직접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임구택은 전화에서 낮은 소리로 웃
김슬아는 좌우를 둘러보았다.“조용히 해! 소비서 듣겠어!”“밥먹으러 나가던데!”칼리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비서인데 연애까지 간섭하는 건 좀 아니잖아!”김슬아는 그녀보고 앉으라고 했다.“대표님이 나보고 음식 주문하라고 했는데 특별히 디저트도 시키셨어! 소희씨한테 주려고 그런거겠지?”“당연하지!”칼리는 남들 연애에 매우 흥분했다.“들어가보고 싶어!”“나도!”두 사람은 도란도란 속삭이며 당장이라도 벽을 뚫고 들어가서 볼 기세였다.사무실 안에서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그녀를 다리에 안히고 이마에 뽀뽀를 했다.“추워요?”“아니요. 운전하고 왔어요.”소희는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은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먼저 밥부터 먹어요.”“배 안 고파요. 먼저 일부터 보세요.”소희는 그의 목덜미를 안았다.“소희씨가 내 눈앞에 있는데 일이 눈에 들어가겠어요?”임구택은 웃으며 그녀를 안고 소파로 갔다.“나보고 비서해달라고 부탁하던 사람이 누구였더라?”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비서로 남으면 일 하나도 안 할겁니까?”“소희씨가 비서로 도와준다면 난 24시간동안 출근할 수 있어요.”임구택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소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의 몸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았다.그리고 탁자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화제를 돌렸다.“뭐가 맛있어요?”......밥을 다 먹고 칼리가 들어와서 도시락을 치우고 겸사겸사 소희에게 밀크티 한 잔을 가져다 주면서 친절하게 웃었다.“필요한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네, 고마워!”소희는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웃었다.“별 말씀이세요.”칼리는 웃으며 나갔다.화장실에서 나온 임구택은 소희에게 가볍게 뽀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피곤하면 저기 가서 쉬고 있어요. 일 다 보고 나면 집으로 데려다 줄게요.”“아니에요. 가서 일 보세요. 저도 디자인 초고 좀 그리려고요.”소희는 말하면서 가방을 두드렸다.“그래요!”임구택은 그녀와 한참 동
임구택의 다리에 걸터앉은 소희는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을 번쩍 뜨고 손목으로 책상의 가장자리를 누르며 힘을 주어 신속하게 의자를 반 바퀴를 돌렸다.소설아가 들어왔을 때 마침 의자가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거대한 남목책상이 소희의 다리를 막았다. 소설아는 임구택의 뒷모습만 보았는데 목적에 달성하지 못하자 그녀는 방안을 훑어보며 소희의 그림자를 찾으려 했다.그러나 소희의 가방과 스케치만 덩그러니 남은 채 소희는 없었다.‘없네?’‘어디 갔지?’소희는 임구택의 허리를 안고 그의 가슴에 엎드려 있다. 임구택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띠었고 소희는 그를 노려보았다.임구택이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가요?”소설아는 어리둥절했다. 남자는 그녀를 등지고 아주 나지막한 섹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만으로도 그녀를 매료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대......대표님, 소희씨는요?”“소희씨는 왜 찾습니까?”임구택은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지면서 품안에 있는 소희를 바라보며 그녀의 허리를 꼬집았다.그는 그녀의 몸을 그녀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여 일부러 놀리는데 소희는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소설아가 대답했다.“영화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다른 일도 있나요?”임구택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소설아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멋쩍게 말했다.“없습니다.”“그럼, 그만 나가요!”임구택의 목소리는 더없이 냉담했다.“들어오기전에 노크는 기본이 아닌가요? 이런 저급한 실수를 범하다니!”임구택과 근 1년동안 함께 일하면서 소설아는 평소에도 그에게 신임을 받아 왔었다.근데 오늘 갑자기 꾸지람을 듣게 되니 그녀는 얼굴색이 붉어지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할게요.”말을 마치고는 나가려고 했는데 탁자 위의 물건을 보면서 뭔가 찝찝했다.문이 닫히자마자 임구택은 두손으로 소희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를 들어 안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는데 곧 터지기 일보 직전 이었다. 하여 그는
장시원은 조백림을 바라보자 조백림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즉시 말했다.“그럼, 우리도 한정 호텔에 갈까? 킹크랩 맜있다던데...... .”장시원은 웃으며 임구택을 바라보았다.“어때? 생선이 별로면 킹크랩은 어때?”임구택은 표정이 평소와 같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장시원은 갑자기 웃음이 터지면서 조백림한테 말했다.“어서 제일 크고 신선한 킹크랩 준비하라고 전화해.”조백림도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알았어!”그들은 카드놀이를 한 참을 더 했는데 장명원이 와서 조백림 대신 놀았다. 그리고 한정 호텔에 간다는 말을 드고 그는 베란다에 가서 구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모처럼 임구택이 소희 없이 모임에 참석한 날인데 그는 오늘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는 늦게 와서 전의 대화를 듣지 못해 소희도 한정 호텔에 있다는것을 몰랐다.날이 어두워졌고 그들은 한정 호텔로 출발했다.한정 호텔 문 밖에서 마침 차에서 내린 구은서를 만나자 장시원은 그녀도 회식에 참석하러 온 줄 알고 웃으며 물었다.“왜 혼자 왔어?”구은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은 임구택만 향하고 있었다.“시원이가 나보고 오라고 그랬는데. 왜? 나 그냥 가?”장시원은 다소 의외였지만 웃으며 말했다.“아니아니, 네가 바쁠까 봐 그러지!”구은서는 조백림과도 인사를 나누고 나중에야 임구택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을 걸었다.“잘 지냈어?”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럭저럭!”구은서는 온화하고 옅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장시원의 옆에 서서 함께 한정 호텔로 들어갔다.조백림은 일찍 룸을 예약했는데 마침 소희네 제작팀 옆자리다. 다들 자리에 착석하자 종업원이 들어왔다.옆방의 소희들도 도착했는데 주 감독은 오늘 꽤 통이 컸다.“킹크랩, 오스트랄리아 바우, 토마호크 스테이크......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키세요.”이현과 소희는 함께 앉아 감격에 겨워 말했다.“드디어 한정 호텔에 밥 먹으러 오다니! 여기 킹크랩이 강성에서 제일 유명하다고 했어요!
임구택은 성기고 옅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너무 오래되서 기억안나.”“난 기억하고 있어.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네가 우리 집 사위가 된다면 내가 졸업하는대로 혼수 준비 해주신대.”구은서가 장난치듯 말했다.임구택은 침묵을 유지했다.구은서는 임구택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색한듯 화제를 돌렸다.“맞다, 우리 이모네 사촌 오빠도 특전사야, 국제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들었어. 몇년동안이나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이번 설에는 돌아온다고 들었는데 그때가 되면 자리 한번 잡아볼게,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일수도 있어.”임구택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래.”“구택아.”구은서가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임구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앞으로 걸어갔다.구은서 입밖까지 튀여나오려던 말을 삼키고는 앞으로 걸어가는 남자의 뒤모습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임구택은 맞은켠에 있는 베란다로 걸어갔다. 소희가 옆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너가지 못하는 이 상황이 갑갑했다.“보고싶으면 건너가봐. 어짜피 네가 이 영화 투자자잖아, 핑계거리가 널리고 널리지 않았어?”장시원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임구택은 난간에 걸쳐서서 장시원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동료들이랑 같이 있을거야. 내가 가면 불편해할거야.”임구택은 늘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자신만의 공간도 필요할것이라 생각했다.그녀옆에서 지켜보는것만해도 만족스러웠다.장시원이 웃으며 말했다.“좋으면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하는거야, 뭔 걱정이 그렇게 많아?”임구택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모를거야.”장시원이 피씩 웃으며 말했다.“나야 모르지, 네가 이렇게 푹 빠져있는 모습 누가 봤으면 소희가 너한테 약이라도 탄줄 알겠어.”임구택은 난간을 붙잡고 있던 두손을 맞잡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너뿐만 아니라 나도 의심했었어.”장시원은 못볼꼴을 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건넸다.“한 대 피워, 소희가 여긴 있긴 하지만 너 담배 태우는건 보지 못할거야, 얼마나 자극적이야?”임구택은 장시원의
임구택은 잠깐 사색에 잠기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난 상관 없어, 우리 둘 지금도 신혼부부랑 다를것이 없으니까. 난 소희가 기뻐하면 그걸로 충분해.”임구택은 둘 사이를 온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결혼식이라면 소희가 기뻐하면 그만이었다. 여자들은 결혼으로 자신에게 안전감을 준다는것을 임구택은 알고 있었다.장시원이 물었다.“소희가 너한테 결혼하자고 매달릴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말이야.”임구택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나한테 두번 얘기했었어.”장시원은 주춤거리더니 하려던 말을 삼켰다.임구택이 손에 든 담배를 태우고 나서야 둘은 방으로 돌아갔다.이때 주 감독님의 매니저가 옆방에서 건너와 임구택한테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주 감독님은 안색이 변하더니 영화를 책임진 다른 감독들과 부 감독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제작진 쪽에서 초청한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테이블 3개에 나눠 앉았다. 주 감독님이 소희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지나갈때 소희를 향해 손짓했다.“소희씨, 좀 나와볼래요?”이현은 소희를 툭 치며 말했다.“얼른 가봐, 주 감독님이 너한테 연말 보너스 챙겨주나봐.”이현은 어떤 환경에서 자란 아이인지 머리속에는 온통 돈이었다.소희는 주 감독님을 따라 나섰다. 밖으로 나온 주 감독님이 말씀하셨다.“임 대표님이 옆방에 계세요, 우리 건너가서 인사라도 올립시다.”주 감독님은 임구택과 소희의 관계에 대해 들은것이 없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얼마전 소희가 서이현을 출연금지 시키는 바람에 임구택이 촬영장에 빈번하게 드나들군 했다. 게다가 소희는 워낙 예뻤기에 주 감독님은 임구택이 소희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짐작했다.하여 특별히 소희를 부른것이다.소희는 의외였다.임구택이 여기 있다고?왜 말하지 않았지?그 시각 임구택이 있는 방은 시끌벅적했다.방에 있는 사람들이 진실게임을 놀기 시작했다. 장명원이 돌린 젓가락이 마침 임구택 쪽을 가리겼다.임구택은 모험을 선택했다.“말해봐, 내가 뭘 하면 되는데?”장명원이 말했다.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