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택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됐어, 난 그래도 익숙한 사람이 편해."시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림이 와서 구택과 시원더러 같이 카드 게임하자고 불렀다. 구택이 말했다."너희들끼리 놀아. 난 앉아 있다 바로 갈 거라서."시원은 비웃었다."뭐야, 소희 씨도 없는데, 우리랑 같이 못 놀겠다 이거야?"구택은 태연했다."내가 너희들 보고 싶어서 매일 여기로 오는 줄 아니?"많은 사람들이 한바탕 떠들고 웃을 때, 시원은 일부러 상심한 척했다."20년 친구인 내가 들어도 너무 슬퍼서 가슴에 산산조각 날 거 같아."구택은 코웃음쳤다."주워서 테이프로 좀 붙여. 계속해서 여자 꼬셔도 되는걸!"시원은 웃었다."난 그 누구도 꼬신 적 없어. 나 모함하지 마!"몇 마디 나눈 뒤, 시원은 진지하게 물었다."소희 씨는 언제 돌아온데?""2, 3일 정도 더 있어야 할 거 같아!"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잘생기고 완벽한 얼굴은 남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할 부드러운 기색을 드러냈다.......이때, 병실에 또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간호하는 여자는 오자마자 바로 남은 침대 하나를 차지했고 소희는 그녀와 다투기 귀찮아서 저녁에 그냥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잤다.한밤중에 서인은 의자에 웅크려서 자고 있는 소희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간호사를 불렀다."임시로 침대 하나 추가해 줄 순 없어요?"간호사가 말했다."죄송해요. 요즘 입원한 환자들이 많아서 침대가 많이 부족하네요."서인은 얼굴이 차가워졌다."그럼 담요 좀 가져올 순 없을까요?"간호사는 그의 안색을 보고 겁에 질렸다."네, 곧 가지러 갈게요."간호사가 담요를 가져오자 서인은 침대 옆으로 움직이며 말했다."올라와, 침대에서 자."소희는 담요를 가지러 오며 안색은 담담했다."아니야!"그녀가 담요를 들고 가려고 하자, 서인은 그녀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침대는 충분히 크고, 넌 또 원숭이처럼 말랐으니,
소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곧장 다가가서 차가운 목소리로 여자에게 질문했다."누구랑 누가 안고 잤다는 거죠?"여자는 깜짝 놀라 인차 고개를 돌렸다. 소희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가운 것을 보고 그녀는 급히 헛웃음을 지었다."농담이에요, 농담."말이 끝나자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소희가 죽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마침 물을 마시고 있었다. 소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찔린 듯 몸을 돌아섰다.소희는 밥을 탁자 위에 놓고 서인에게 밥을 먹였다.밥을 먹은 뒤, 마침 의사가 회진하러 왔고 소희는 물병을 들고 뜨거운 물을 받으러 나갔다.......백림은 마침 부상당한 친구를 보러 왔고 복도에서 앞의 여자애가 좀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걸으면서 소희와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물병을 들고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백림은 눈빛을 돌려 간호사를 찾아가서 물었다."19호 병실에 어떤 환자가 있는 거죠?"간호사는 그의 고귀한 옷차림에 기질이 비범하다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19호 병실에 환자 두 명이 있는데, 어느 환자를 물어보시는 거예요?"백림은 눈알을 굴리며 웃으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요.""아, 그 환자는 다리 근이 부러져서 금방 수술했어요."간호사가 말했다."그럼 그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죠?"어린 간호사가 말했다. "여동생이요."옆에 있던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여동생은 무슨, 한 침대에서 자는 거 보면 틀림없이 커플이죠!"백림과 말하던 어린 간호사는 콧방귀를 뀌었다."환자분이 여동생이라고 했으니 그냥 여동생이라고요!"옆의 간호사가 말했다."넌 왜 화를 내는데? 설마 그 사람한테 반한 거야!"백림은 두 사람이 농담하는 것을 듣고 안색이 좀 차가워졌다. 그는 19호 병실을 한 번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그는 병원에서 나와 차에 앉으며 생각을 하다가 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백림은 농담하며 말했다."구택, 소희 씨가 강성으로 돌아온 거 같은데. 우
구택은 옥상에 서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뒷모습은 무척 차가웠다. 멀리 우뚝 솟은 건물은 어두컴컴한 하늘 속에서 무척 쓸쓸하고 썰렁했다.음침한 날씨와 어두운 광선에 남자의 안색은 희미했다.그는 따라오는 소녀를 힐끗 쳐다보며 비꼬았다."병실에 있는 그 사람이 소희 씨 할아버지예요?"소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드리우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구택 씨를 속였어요. 나는 운성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그는 누구죠?" 구택이 물었다."친구예요."구택은 코웃음쳤다."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친구?"소희는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해명하지 않았다.구택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그녀가 떠난 그날 밤, 그는 안절부절못했고 그녀가 한밤중에 나쁜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으며 그녀가 말한 그 사촌 오빠가 그녀를 데리러 가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고 또 그녀의 집에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두려웠다. 그는 그때 하마터면 차를 몰고 바로 운성으로 가서 그녀를 찾을 뻔했다.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은 그의 모든 걱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그의 열정도 그녀의 침묵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그는 자신을 비웃으며 말을 가리지 않았다."소희 씨가 어디로 가든, 어떤 사람과 함께 있든, 사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죠! 우리는 애인도 아닌 그냥 밤에 같이 자는 사이일 뿐,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죠!"소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은 빛을 등지고 서있었다. 어슴푸레한 날씨는 그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며 그의 이목구비의 윤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소희 씨 자신이 우리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자신의 주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나를 속일 생각을 한 거예요! 사실 난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날씨는 더욱 흐려졌고 바람 한 점 조차 없어 공기가 무더웠으며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소희는 안색이 하늘처럼 창백하고 처량해졌다. 그녀는 손을 천천히 꽉 쥐며 마치 맞은편 건물이
두 시간 전, 그들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구택은 전화 한 통을 받고 떠나며 이따 돌아올 테니 우행더러 회의를 계속 진행하라고 했지만 결국 회의가 끝나도 구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Kally가 말했다."돌아오셨어요. 한 시간 전에요. 근데 대표님 안색이 어찌나 보기 흉한지, 화가 엄청 나신 것 같아요."구택은 화를 거의 내지 않았다. Kally는 지난번에 그가 기분이 좋지 않아 며칠 동안 화를 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왜요?"우행은 영문 몰라 하며 물었다. 분명 회의 때는 괜찮았는데.Kally는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아무튼 돌아오실 때 이미 화가 나신 상태였어요."우행은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섰다.오후까지 구택은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설아는 서류를 들고 와서 Kally에게 물었다."대표님 점심 식사하셨어요?"Kally가 대답했다."아니요. 점심때 대표님께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는데, 대표님께서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설아는 시선을 돌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 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밀고 들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이 몇 부의 서류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해외 부문과의 영상회의가 있으시고요. 저는 이미 모든 자료를 준비했습니다.""진 팀장 보내요!"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서류를 보며 표정은 싸늘했다.설아는 잠시 멈칫하다 얼른 말했다."네, 그리고 스탤 그룹의 오 대표님과 4시에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미뤄요." 남자는 바로 말했다.설아는 잠시 멈추다 목소리는 더욱 나지막해졌다."대표님, Kally가 대표님께서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구택은 고개를 들어 눈빛은 어두웠다."또 다른 일 있어요?"설아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나가요!"설아는 남자의 차갑고 매서운 잘생긴 얼굴을 보며 가슴이 떨리더니 즉시 대답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구택은
잠자리에 들 때 이미 새벽 1시였다. 이불 속에는 여전히 남자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소희는 이불을 품에 안고 참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문자를 보냈다. [속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는 나의 친구일 뿐이에요.]그녀는 남자가 이미 잠든 줄 알았지만 곧 답장이 왔다.그녀는 즉시 핸드폰을 들고 확인했고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렸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관계로 말하자면 더욱 설명할 필요가 없고요.]그날 병원에서 소희는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어정으로 돌아오니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정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가 아마도 홧김에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갔지만 남자의 답장은 한 글자마다 그녀의 마음을 짓밟는 것 같았다.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잘못 파악했고 자신의 주제를 몰라서 이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이튿날, 소희는 하루 종일 방에 있었다. 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 고친다는 논문도 미처 다 고치지 못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재빨리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틈만 나면 멍을 때렸고 오후가 돼도 논문에는 아무런 진도가 없었다.저녁에 그녀는 케이슬로 가서 출근했다.시원은 복도에서 소희를 보고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소희 씨, 언제 돌아왔어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웃었다."오늘 금방 돌아와서 출근하는 거예요.""집안일은 해결됐어요? 방금 돌아왔으면 며칠 더 쉬지 그래요."시원이 걱정해하며 말했다."괜찮아요, 시원 오빠 오늘 무슨 술 마실래요? 이따가 내가 갖다 줄게요." 소희가 말했다.시원은 그녀와 몇 마디 말을 한 뒤, 룸에 돌아오자마자 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희 씨가 돌아왔는데, 너 오늘 저녁 올 거야 안 올 거야?""안 가!"구택은 목소리가 차가웠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시원은 끊긴 전화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왜 이러는 거지?전에 구택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구택은 지금 화를 내
남자는 소희를 몇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나가봐!"소희는 쟁반을 들고 미선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이 적은 곳에 이르러서야 미선이 당부했다."이 룸에 있는 손님은 성이 성 씨라고 넌 그를 성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돼. 너 앞으로 이 룸을 책임져야 하니까 몇 가지 잘 기억해둬. 성 대표님은 매번 올 때마다 고정된 호스티스를 찾아서 함부로 그에게 다른 호스티스 불러주면 안 돼. 그가 주문한 술은 꼭 그의 앞에서 열어야 하고. 그리고 그가 부르지 않는 한, 절대 들어가지 마."소희는 일일이 대답했다."알겠어요!""응, 너 그냥 6616호만 책임지면 돼. 다른 건 상관하지 마. 수미 언니도 나보고 너 좀 챙기라고 했고. 무슨 일 있으면 얼마든지 나한테 말해." 미선은 웃으며 말했다.소희는 가볍게 웃었다."고마워요, 미선 언니."며칠 뒤, 구택이 케이슬에 오자 수미는 얼른 가서 인사를 했다."소희는 6층에서 주혜정을 대신해서 주문받고 있습니다. 제가 즉시 불러오겠습니다."구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잘생긴 얼굴은 담담했다."아니에요, 술만 가져다주는 거니까 누구든 상관없어요!"수미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영문을 몰라 하며 시원을 바라보았다.시원은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가 바쁜 이상 다른 사람 보내요.""네!" 수미는 대답하고는 이유비더러 8809호를 책임지라고 했다.두 사람만 남았을 때 시원은 그제야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소희 씨가 뭘 했는데 이렇게 화가 났어?"구택은 연기를 내뿜었고 연기는 피어올라 그의 표정을 가렸다."앞으로 내 앞에서 그녀 언급하지 마!"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헤어졌어?"구택은 코웃음치며 말했다."나와 그녀의 관계는 헤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시원은 웃었다."그래, 여자일 뿐. 싫으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게 별일이라고. 하지만 너 차인 것처럼 화난 표정 좀 짓지 말아 줄래?"구택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와 상관없어!"시원이 말했다."그럼 소희 씨가
백림은 구택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오늘 종업원이 유비로 바뀐 것과 시원이 소희를 언급할 때 구택이 고개도 들지 않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것을 느꼈다.그날 그가 했던 전화와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무척 불안했다.후에 구택은 연속 두 판 이겼고 얼굴에는 아무런 정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얘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무척 유쾌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그 후 며칠, 구택은 가끔 와서 시원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거나 혼자 소파에 앉아 술을 마셨고 종래로 소희를 언급하지 않았다.시원은 두 사람이 정말 헤어졌다고 느꼈다.구택은 평소에도 안색이 담담했고 정서를 밖으로 드러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일한 변화는 그저 그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보다 더 심했다.......시원은 청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의 한 회사에서 건축설계사의 조수로 일하는 것이었다. 청아는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디저트 가게에 지금 일손이 부족해서 청아는 이번 달까지 가게에서 일하고 개학 후 다시 시원의 회사에 가서 졸업 전의 정식 인턴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청아는 배달을 그만뒀으니 시간이 많아져서 계속 소희를 위해 아침밥을 해주었고 저녁에도 소희가 돌아오면 야식을 만들어 줬다.소희는 마트에 가면 식재료를 잔뜩 사서 청아의 냉장고에 넣었고, 또 자신의 냉장고에는 다시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로 가득 채웠다.청아는 오랫동안 구택을 보지 못한 거 같아 소희에게 물어보았지만 소희는 그저 그가 최근에 아주 바쁘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러나 청아는 여전히 소희가 기분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표정과 행동만 봐도 그녀에게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병원에서는 서인의 수하 이문이 그를 돌보고 있었다. 이문은 이름이 꽤 듣기 좋았지만 사실상 아주 건장하고 위풍당당한 사나이였다. 그는 병실에 오자마자 간호침대를 차지했고 저녁에 잘 때
"그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서인이 물었다."그럼요." 소년은 해맑게 웃었다. "우리 여동생도 벌써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어요."서인이 물었다."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소년이 대답했다."우리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여기에 입원하셨어요. 내가 그를 간병하고 있고요.""그렇군!" 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했다."나한테 현금은 이것밖에 없어서. 먼저 받아. 그리고 계좌 번호 좀 알려줘, 내가 입금해 줄게."소년은 놀라며 물었다."뭐 하시는 거예요?"서인이 말했다."너희 부모님은 너와 네 여동생 학교에 보낸다고 무척 고생했잖아. 병원에 입원하면 또 돈을 써야 하고. 나와 네 형은 아주 좋은 친구니까 너도 네 형이 너에게 준 돈이라고 생각해."소년은 거절하면서 말했다."고맙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우리한테도 돈이 있어요. 정말이에요!""넌 금방 졸업해서 아직 취직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서인은 믿지 않았다."정말이에요!" 남자는 헤헤 웃었다."요 몇 년 동안 우리 형도 줄곧 집으로 돈을 부쳤어요, 매달 부모님께 고정적으로 용돈도 주고, 나와 내 여동생이 학교 갈 돈도 모두 우리 형이 준 것이에요."서인은 멈칫했다."네 형이?""맞아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인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더니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다."매달 너희들한테 얼마 주는데?""500 만 원요!" 남자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한 편으로는 또 좀 유감스러웠다."형은 매달 우리 아버지에게 500만 원을 입금해 줬는데 줄곧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밖에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서인은 머리가 윙윙거리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소년이 말했다."우리 아버지도 링거를 거의 다 맞아가서요, 이만 가볼게요."서인은 인차 정신을 차렸다."어, 그래, 빨리 가봐!"소년은 밖으로 나가며 문을 열 때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인에게 물었다."우리 형 아시면 형이 지금
서인은 안토니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눈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윤석경 씨, 잠깐 나와 보세요! 이 사람이 당신네 집 손님 맞나요?”서인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예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향했다. 토니의 부모도 급히 그를 따라 나갔다. 밖에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곱슬머리로 말려 있었다. 여자는 토니네 가족을 보자마자, 곧장 손가락으로 한쪽에 서 있는 유진을 가리켰다.“이 사람이 당신네 손님 맞아요?”유진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제발 소리치지 마세요! 제가 돈 드린다고 했잖아요!”유진은 당장이라도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서인은 다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박민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이 여자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내 난초를 뽑아서 토끼 먹이로 줬어요! 내 난초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조금만 늦었어도 다 뽑혀 나갔을 거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이건 엄연한 도둑질이라고요!”유진은 머리를 싸매고 싶었고, 작은 목소리로 서인에게 변명했다.“난초인 줄 몰랐어요. 그냥 잡초인 줄 알았어요.”유진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위축되었다. 그러나 박민란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쏘아붙였다.“변명하지 마요! 어쨌든 내 난초를 뽑은 건 사실이잖아요!”그때, 윤석경이 나서서 말했다.“우리 집에도 난초가 있으니까, 그걸로 대신 보상해 줄게요. 어린애한테 그렇게 큰소리칠 필요까지야 있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하지만 박민란은 완강했다.“안 돼요! 당신네 집 난초랑 내 난초는 품종이 달라요! 그러니 난 절대 못 받아요!”윤석경도 화가 났다.“똑같은 난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박민란이 계속해서 억지를 부렸다.“내 난초는 특별히 돈 들여 키운 거예요. 이미 손님이 예약한 거라고요! 근데 이제 어쩌란 말이에
안토니는 이미 저들과 한 차례 몸싸움을 벌였는지,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그는 부모님 앞을 가로막고 서서,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시키려는 남자들과 격렬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그때, 서인이 안으로 들어섰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서인을 바라봤다. 서인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이윽고 한 손으로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차갑게 말했다.“안토니네 가족은 이사하지 않으니까, 당장 꺼져요!”그때, 상대편의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당신 누구야? 당신이 뭔데 결정해?”서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금부터 이 집안일은 내가 결정해.”임유진도 단호하게 나섰다.“당신들, 합법적인 철거 허가서라도 있어요? 없으면, 지금 이건 불법으로 민가에 침입한 거고, 타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예요! 신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요!”남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신고? 해보시지, 이 계집애가!”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는데, 서인의 차가운 눈빛이 번뜩이며 그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이내 남자는 수치심에 휩싸여 분노를 터뜨렸고 뒤에 있던 부하에게 눈짓을 보냈다. 곧, 우락부락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먹을 쥐고 서인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서인은 간단하게 공격을 막았다. 팔을 낚아채어 비틀어버린 후,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쿵! 남자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으악!”놀란 안주설과 토니네 부모님이 급히 뒤로 물러섰다. 토니는 같이 싸우려 했지만, 서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넌 신경 쓰지 마.”서인의 태도는 한결같이 차분했지만, 움직임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몇 초 만에 남은 두 명까지 모두 쓰러졌다.우두머리는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보며, 서인이 보통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대로 정면으로 붙었다가는 자기들이 더 크게 당할 것이 뻔했다.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기
서인이 약속한 장소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찻집이었다. 두 사람이 몇 분을 기다리자, 상대가 도착했다.그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짙은 남색의 운동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멀리서 서인을 발견한 남자는 곧바로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걸어오면서 팔을 벌렸고, 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한 뒤, 어깨를 가볍게 맞댔다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같았다.“이렇게 오래 못 봤는데, 네가 갑자기 연락할 줄이야. 아직도 믿기지 않네!”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그는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에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이에 서인은 담담하게 웃었다.“정말 오랜만이긴 하죠.”“예전에 너희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남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살아 있어서 다행이네.”서인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은 남자를 데리고 자리로 돌아왔다.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남자는 놀란 듯 서인을 쳐다보았다.“여자친구야?”서인은 짧게 답했다.“아니요. 그냥 같이 온 친구예요. 임유진.”그는 이어서 남자를 소개했다.“이한우라고 해요.”유진은 그를 한 번 보더니 따라 불렀다.“한우 씨!”한우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인의 친구라면 나한테도 친구나 다름없죠. 편하게 있어요.”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서인과 한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진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다실에서 나온 말차 케이크와 재스민 차를 즐겼다.서인은 흥성에서 기반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우는 지역에 오래 정착한 사업가로, 여러 방면에 인맥이 있었다.서인은 안토니네 가족을 돕기 위해 한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우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흔쾌히 말했다.“리조트 호텔 사장은 모르지만, 철거 보상 담당자는 잘 알지. 같이 술도 마셨던 사이라, 내
서인이 자신을 바라보자, 임유진은 재빨리 침대 옆 협탁에서 안대를 꺼내 들었다. 자신이 눈을 가릴 거라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이미 씻었어.”서인은 무심하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물었다.“불 꺼도 돼?”방 안에는 서인의 쪽에만 벽 등이 켜져 있었다. 이에 반쯤 몸을 돌린 채 유진을 바라자, 유진도 마찬가지로 그를 바라봤다. 둘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공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흘렀다.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작 오초였지만, 묘하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유진의 눈빛은 마치 깊고 맑은 호수 같았다. 그 안에 잔잔한 물결이 퍼지는 듯했다.어둠 속에서도 유진의 눈빛이 한층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헐렁한 티셔츠의 목 부분이 흘러내려, 가느다란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유진의 피부는 눈이 부시게 하얗고 매끄러웠다. 마치 만지기라도 하면 부서질 듯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방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짧은 순간에 묘한 분위기도 함께 사라졌다. 유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은 서인의 침대 너머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야외 수영장의 물이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마치 유진의 들뜬 마음처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그러나 곧, 자동으로 커튼이 내려졌다.그 작은 물결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인이 일부러 그런 것임을 알고, 유진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이윽고 이불을 단정하게 덮고 눈을 감았다.서인도 조용히 눈을 감았으나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유진의 상쾌한 바디워시 향이 공기 속에 가볍게 떠돌았다. 희미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서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곧 모든 감각이 선명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게 뭐지?’유진은 원래 잘 때 얌전한 모습이었으나 자고 나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이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침대 위에
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챙겼다. 왜냐하면 유진이 가져온 것은 오직 휴대전화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어둑한 복도에서, 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서인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번에는 서인이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씩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더 깊이 엮었고, 결국 그의 손 전체를 단단히 쥐었다.서인의 손은 크고 뼈마디가 굵었으며, 손바닥에는 거칠지만 단단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유진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이상하게도 더 마음에 들었다.깊은 밤, 조용한 복도에서, 유진은 자기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쿵, 쿵. 긴장과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민박집을 떠난 뒤, 서인은 차를 몰아 유진과 함께 산을 내려가 도시로 향했다. 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 위에 걸쳤다. 어둠 속에서 서인의 날렵한 얼굴선이 더욱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잠깐 눈 붙여. 도착하면 깨울게.”하지만 깊은 밤 도로를 달리는 이 순간이, 유진에게는 너무나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진은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전방을 바라보며 서인과 대화를 나눴다.“그 쥐덫, 아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쥐는 계속 나올 거라고요.”그곳의 쥐들은 너무 대담했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창가에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했다.서인은 물었다.“그러면 왜 날 안 불렀어?”유진은 서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입을 막고 있었거든요!”유진은 서인이 피곤할까 봐 일부러 참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운전했으니, 이미 녹초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대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밤새도록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바로 맞은편 방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그 순간, 유진은 차라리 쥐랑 함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서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진은 본능적
“임유진!”서인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거칠게 떨렸다. 그는 급히 옆방 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리는 순간, 임유진이 그대로 서인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인은 방 안을 빠르게 둘러봤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저, 저기 쥐가 있어요!”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반쯤 설명하고 반쯤 달래듯 말했다.“이런 곳에서는 쥐가 나오는 게 당연해. 그냥 네 방을 지나간 거야. 널 물지는 않아. 오히려 네가 더 무서울걸?”하지만 유진은 서인의 품 안에서 겁에 질린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제야 서인은 유진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커다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채, 하얀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창백할 정도로 희고 매끈한 피부가 시각을 자극했다.반면, 서인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나왔기에, 바지만 입고 상의는 벗은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 서인은 목이 바짝 타는 듯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얼굴이 굳어버렸다.손을 뻗어 유진을 떼어내려 했지만, 유진은 겁에 질려 서인의 허리를 더 꼭 붙잡았다. 두 사람은 문 앞에서 그렇게 서 있었다.혹시라도 누가 지나갈까 걱정된 서인은 유진을 가볍게 안아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 그러나 유진의 티셔츠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녀의 부드러운 체온이 서인의 맨가슴에 고스란히 닿았다.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들자, 서인은 서둘러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로 감싸주었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유진은 얼굴이 불타오르듯 붉어졌다.그녀는 이불을 꼭 움켜쥔 채 눈을 피했고, 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안토니한테 가서 쥐 잡을 도구가 있는지 물어볼게.”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자, 서인은 곧장 방을 나섰다. 유진은 그의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길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가, 황급히 창밖으로 시
안토니는 서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여기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모든 절차는 다 정식으로 등록된 거예요. 게다가 이 땅은 호텔 부지에 포함되지도 않고요.”“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철거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보상금도 터무니없이 적고, 우리 부모님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라는 거죠?”“하지만 호텔 뒤에는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도 우리 편에 서지 않아요.”임유진은 분통이 터져 소리쳤다.“이건 완전히 강도질이잖아요! 소송이라도 걸어야 하죠!”토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소용없어요.”“사실, 보상금이 충분하다면 철거를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그 옆에서 안주설이 조용히 말하자, 토니는 즉시 그녀의 말을 끊었다.“얼마를 준다 해도 안 돼. 우리 고향 집도 이미 팔아버렸어. 부모님께 남은 건 이 민박집뿐이야. 여기가 없어지면 어디로 가란 말이야?”주설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며 변명했다.“그냥 의견을 낸 것뿐이야.”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상황은 알겠으니까 방법을 찾아볼게.”토니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어쩔 수 없어서 서인 형한테 전화한 거예요. 형이 강성에 있는 거 알지만, 흥성 일에는 개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토니는 분노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서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서인은 그날 바로 달려와 주었다.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토니 형과 나는 형제나 다름없어요. 걔의 일은 내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요.”토니의 부모는 연신 감사를 표했다.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 11시가 되었다. 토니는 2층에 서인과 유진을 위한 방 두 개를 준비해 주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유진은 서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나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돌려 토니에게 물었다.“새 세면도구 있어? 갑자기 오느라 아무것도 못 챙겼어.”“당연하죠! 다른 건 몰라도 세면도구는 넉넉
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비싼 건 아니네요!”서인의 품에 안겼으니, 20만원이라도 아깝지 않았다. 서인은 본래 유진을 위로하려 했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순간 서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유진은 기분이 좋아진 듯 미소를 지었다.“이미 산 거니까, 그냥 먹어요. 버리긴 아깝잖아요!”그녀는 티슈로 사과를 닦아내고 서인에게 하나 건넸지만, 서인은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난 안 먹어.”“그럼 저 혼자 먹을게요!”유진은 사과를 입에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가 신선해서 아삭하게 씹히며 입안 가득 달콤한 과즙이 퍼졌다.이윽고 차 안에 오직 사과를 씹는 소리만 울렸다. 서인은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계속했지만, 무심결에 목젖이 한 번 움찔거렸다. 유진은 연달아 몇 입을 베어 물다가 반쯤 먹은 사과를 들고 서인을 바라봤다.“정말 안 먹어요? 진짜 맛있어요!”2만원으로 이 정도 퀄리티라면 완전 대박이었다. 그러나 서인은 도로를 응시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보통 과수원에서는 사람들이 몰래 따 먹는 걸 방지하려고 사과에 농약을 뿌려 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든 사과를 바라봤다가 곧 얼굴이 새파래졌다.“왜 이제야 말하는 거예요?”서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방금 떠올랐어.”“어떡하죠? 나 중독되는 거 아니에요?”유진은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억울한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내가 만약 중독돼서 장애라도 생기거나, 바보가 되면, 사장님이 평생 책임져야 해요!”서인은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왜 내 탓이지?”“사장님이 산 사과잖아요!”당당한 유진의 태도에 서인은 말문이 막혔다. 물론, 사과에 농약 따위는 없었다. 결국 유진은 바보가 되지도, 장애가 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 배 아픈 일조차 없었다.두 사람이 안토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 토니네 민박집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주변에는 몇 개의 민박집이 듬
산길 위로 가끔 여행객들의 차가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민박집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도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이게 무슨 냄새지? 사과 향 같은데?”임유진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기쁜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저기 사과나무가 있어요!”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만 가자. 이제 출발해야 해.”“딱 하나만 따면 돼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사과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무에 열린 사과를 봤다. 달빛을 받아 가장 크고 탐스러운 사과를 골라 따냈다. 그리고 서인에게 줄 사과도 하나 더 따려 했다.사과를 막 손에 쥐려던 찰나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내 사과를 훔쳐 가지? 거기 서요!”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이 깜박였고,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멀리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유진은 얼어붙었다. 사과나무가 야생인 줄 알았는데, 주인이 있는 나무였다니!유진은 처음에는 자리에 서서 주인을 기다려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의 고함과 함께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커다란 개가 사나운 기세로 유진을 향해 돌진했다.유진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의 털이 곤두서, 본능적으로 뒤돌아 도망쳤다.“사장님!”멍! 멍멍멍! 사람 허리까지 올 법한 덩치 큰 검은 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유진이 달아나는 것을 보자 더욱 거칠게 그녀를 향해 뛰어들었다. 유진은 손에 사과 두 개를 꼭 쥔 채, 있는 힘껏 서인을 향해 달렸다.서인도 상황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고, 유진을 향해 달려갔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유진은 순식간에 뛰어올라 그의 품에 안겼다. 유진은 겁에 질린 채 서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 순간, 개가 가까이 다가왔고, 서인은 한쪽 다리를 들어 강하게 개를 걷어찼다. 50킬로그램은 나갈 듯한 큰 개가 힘껏 날아가 땅에 쾅 하고 떨어졌다.개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몇 번 뒤틀다가 겨우 일어났지만, 아까의 사나운 기세는 사라지고 멀찍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