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택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됐어, 난 그래도 익숙한 사람이 편해."시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림이 와서 구택과 시원더러 같이 카드 게임하자고 불렀다. 구택이 말했다."너희들끼리 놀아. 난 앉아 있다 바로 갈 거라서."시원은 비웃었다."뭐야, 소희 씨도 없는데, 우리랑 같이 못 놀겠다 이거야?"구택은 태연했다."내가 너희들 보고 싶어서 매일 여기로 오는 줄 아니?"많은 사람들이 한바탕 떠들고 웃을 때, 시원은 일부러 상심한 척했다."20년 친구인 내가 들어도 너무 슬퍼서 가슴에 산산조각 날 거 같아."구택은 코웃음쳤다."주워서 테이프로 좀 붙여. 계속해서 여자 꼬셔도 되는걸!"시원은 웃었다."난 그 누구도 꼬신 적 없어. 나 모함하지 마!"몇 마디 나눈 뒤, 시원은 진지하게 물었다."소희 씨는 언제 돌아온데?""2, 3일 정도 더 있어야 할 거 같아!"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잘생기고 완벽한 얼굴은 남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할 부드러운 기색을 드러냈다.......이때, 병실에 또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간호하는 여자는 오자마자 바로 남은 침대 하나를 차지했고 소희는 그녀와 다투기 귀찮아서 저녁에 그냥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잤다.한밤중에 서인은 의자에 웅크려서 자고 있는 소희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간호사를 불렀다."임시로 침대 하나 추가해 줄 순 없어요?"간호사가 말했다."죄송해요. 요즘 입원한 환자들이 많아서 침대가 많이 부족하네요."서인은 얼굴이 차가워졌다."그럼 담요 좀 가져올 순 없을까요?"간호사는 그의 안색을 보고 겁에 질렸다."네, 곧 가지러 갈게요."간호사가 담요를 가져오자 서인은 침대 옆으로 움직이며 말했다."올라와, 침대에서 자."소희는 담요를 가지러 오며 안색은 담담했다."아니야!"그녀가 담요를 들고 가려고 하자, 서인은 그녀를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침대는 충분히 크고, 넌 또 원숭이처럼 말랐으니,
소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곧장 다가가서 차가운 목소리로 여자에게 질문했다."누구랑 누가 안고 잤다는 거죠?"여자는 깜짝 놀라 인차 고개를 돌렸다. 소희의 눈빛이 날카롭고 차가운 것을 보고 그녀는 급히 헛웃음을 지었다."농담이에요, 농담."말이 끝나자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소희가 죽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여자는 마침 물을 마시고 있었다. 소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찔린 듯 몸을 돌아섰다.소희는 밥을 탁자 위에 놓고 서인에게 밥을 먹였다.밥을 먹은 뒤, 마침 의사가 회진하러 왔고 소희는 물병을 들고 뜨거운 물을 받으러 나갔다.......백림은 마침 부상당한 친구를 보러 왔고 복도에서 앞의 여자애가 좀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걸으면서 소희와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물병을 들고 병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백림은 눈빛을 돌려 간호사를 찾아가서 물었다."19호 병실에 어떤 환자가 있는 거죠?"간호사는 그의 고귀한 옷차림에 기질이 비범하다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19호 병실에 환자 두 명이 있는데, 어느 환자를 물어보시는 거예요?"백림은 눈알을 굴리며 웃으며 말했다. "젊은 사람이요.""아, 그 환자는 다리 근이 부러져서 금방 수술했어요."간호사가 말했다."그럼 그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죠?"어린 간호사가 말했다. "여동생이요."옆에 있던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여동생은 무슨, 한 침대에서 자는 거 보면 틀림없이 커플이죠!"백림과 말하던 어린 간호사는 콧방귀를 뀌었다."환자분이 여동생이라고 했으니 그냥 여동생이라고요!"옆의 간호사가 말했다."넌 왜 화를 내는데? 설마 그 사람한테 반한 거야!"백림은 두 사람이 농담하는 것을 듣고 안색이 좀 차가워졌다. 그는 19호 병실을 한 번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그는 병원에서 나와 차에 앉으며 생각을 하다가 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백림은 농담하며 말했다."구택, 소희 씨가 강성으로 돌아온 거 같은데. 우
구택은 옥상에 서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뒷모습은 무척 차가웠다. 멀리 우뚝 솟은 건물은 어두컴컴한 하늘 속에서 무척 쓸쓸하고 썰렁했다.음침한 날씨와 어두운 광선에 남자의 안색은 희미했다.그는 따라오는 소녀를 힐끗 쳐다보며 비꼬았다."병실에 있는 그 사람이 소희 씨 할아버지예요?"소희는 담담한 표정으로 눈을 드리우며 말했다."미안해요, 내가 구택 씨를 속였어요. 나는 운성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그는 누구죠?" 구택이 물었다."친구예요."구택은 코웃음쳤다."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친구?"소희는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해명하지 않았다.구택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났다. 그녀가 떠난 그날 밤, 그는 안절부절못했고 그녀가 한밤중에 나쁜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으며 그녀가 말한 그 사촌 오빠가 그녀를 데리러 가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고 또 그녀의 집에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두려웠다. 그는 그때 하마터면 차를 몰고 바로 운성으로 가서 그녀를 찾을 뻔했다.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은 그의 모든 걱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그의 열정도 그녀의 침묵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그는 자신을 비웃으며 말을 가리지 않았다."소희 씨가 어디로 가든, 어떤 사람과 함께 있든, 사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죠! 우리는 애인도 아닌 그냥 밤에 같이 자는 사이일 뿐, 언제든지 갈라질 수 있죠!"소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구택은 빛을 등지고 서있었다. 어슴푸레한 날씨는 그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며 그의 이목구비의 윤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소희 씨 자신이 우리의 관계를 잘못 알고 자신의 주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나를 속일 생각을 한 거예요! 사실 난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날씨는 더욱 흐려졌고 바람 한 점 조차 없어 공기가 무더웠으며 사람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소희는 안색이 하늘처럼 창백하고 처량해졌다. 그녀는 손을 천천히 꽉 쥐며 마치 맞은편 건물이
두 시간 전, 그들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구택은 전화 한 통을 받고 떠나며 이따 돌아올 테니 우행더러 회의를 계속 진행하라고 했지만 결국 회의가 끝나도 구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Kally가 말했다."돌아오셨어요. 한 시간 전에요. 근데 대표님 안색이 어찌나 보기 흉한지, 화가 엄청 나신 것 같아요."구택은 화를 거의 내지 않았다. Kally는 지난번에 그가 기분이 좋지 않아 며칠 동안 화를 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왜요?"우행은 영문 몰라 하며 물었다. 분명 회의 때는 괜찮았는데.Kally는 고개를 저었다."몰라요, 아무튼 돌아오실 때 이미 화가 나신 상태였어요."우행은 눈살을 찌푸리고 돌아섰다.오후까지 구택은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설아는 서류를 들고 와서 Kally에게 물었다."대표님 점심 식사하셨어요?"Kally가 대답했다."아니요. 점심때 대표님께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는데, 대표님께서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설아는 시선을 돌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요!" 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밀고 들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이 몇 부의 서류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후 2시에 해외 부문과의 영상회의가 있으시고요. 저는 이미 모든 자료를 준비했습니다.""진 팀장 보내요!"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 서류를 보며 표정은 싸늘했다.설아는 잠시 멈칫하다 얼른 말했다."네, 그리고 스탤 그룹의 오 대표님과 4시에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미뤄요." 남자는 바로 말했다.설아는 잠시 멈추다 목소리는 더욱 나지막해졌다."대표님, Kally가 대표님께서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구택은 고개를 들어 눈빛은 어두웠다."또 다른 일 있어요?"설아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나가요!"설아는 남자의 차갑고 매서운 잘생긴 얼굴을 보며 가슴이 떨리더니 즉시 대답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구택은
잠자리에 들 때 이미 새벽 1시였다. 이불 속에는 여전히 남자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소희는 이불을 품에 안고 참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문자를 보냈다. [속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는 나의 친구일 뿐이에요.]그녀는 남자가 이미 잠든 줄 알았지만 곧 답장이 왔다.그녀는 즉시 핸드폰을 들고 확인했고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렸다.[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우리의 관계로 말하자면 더욱 설명할 필요가 없고요.]그날 병원에서 소희는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지만 어정으로 돌아오니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정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가 아마도 홧김에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먼저 다가갔지만 남자의 답장은 한 글자마다 그녀의 마음을 짓밟는 것 같았다.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두 사람의 관계를 잘못 파악했고 자신의 주제를 몰라서 이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이다.......이튿날, 소희는 하루 종일 방에 있었다. 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 고친다는 논문도 미처 다 고치지 못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재빨리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틈만 나면 멍을 때렸고 오후가 돼도 논문에는 아무런 진도가 없었다.저녁에 그녀는 케이슬로 가서 출근했다.시원은 복도에서 소희를 보고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소희 씨, 언제 돌아왔어요?"소희는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웃었다."오늘 금방 돌아와서 출근하는 거예요.""집안일은 해결됐어요? 방금 돌아왔으면 며칠 더 쉬지 그래요."시원이 걱정해하며 말했다."괜찮아요, 시원 오빠 오늘 무슨 술 마실래요? 이따가 내가 갖다 줄게요." 소희가 말했다.시원은 그녀와 몇 마디 말을 한 뒤, 룸에 돌아오자마자 구택에게 전화를 걸었다."소희 씨가 돌아왔는데, 너 오늘 저녁 올 거야 안 올 거야?""안 가!"구택은 목소리가 차가웠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시원은 끊긴 전화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왜 이러는 거지?전에 구택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구택은 지금 화를 내
남자는 소희를 몇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나가봐!"소희는 쟁반을 들고 미선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이 적은 곳에 이르러서야 미선이 당부했다."이 룸에 있는 손님은 성이 성 씨라고 넌 그를 성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돼. 너 앞으로 이 룸을 책임져야 하니까 몇 가지 잘 기억해둬. 성 대표님은 매번 올 때마다 고정된 호스티스를 찾아서 함부로 그에게 다른 호스티스 불러주면 안 돼. 그가 주문한 술은 꼭 그의 앞에서 열어야 하고. 그리고 그가 부르지 않는 한, 절대 들어가지 마."소희는 일일이 대답했다."알겠어요!""응, 너 그냥 6616호만 책임지면 돼. 다른 건 상관하지 마. 수미 언니도 나보고 너 좀 챙기라고 했고. 무슨 일 있으면 얼마든지 나한테 말해." 미선은 웃으며 말했다.소희는 가볍게 웃었다."고마워요, 미선 언니."며칠 뒤, 구택이 케이슬에 오자 수미는 얼른 가서 인사를 했다."소희는 6층에서 주혜정을 대신해서 주문받고 있습니다. 제가 즉시 불러오겠습니다."구택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잘생긴 얼굴은 담담했다."아니에요, 술만 가져다주는 거니까 누구든 상관없어요!"수미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영문을 몰라 하며 시원을 바라보았다.시원은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가 바쁜 이상 다른 사람 보내요.""네!" 수미는 대답하고는 이유비더러 8809호를 책임지라고 했다.두 사람만 남았을 때 시원은 그제야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소희 씨가 뭘 했는데 이렇게 화가 났어?"구택은 연기를 내뿜었고 연기는 피어올라 그의 표정을 가렸다."앞으로 내 앞에서 그녀 언급하지 마!"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헤어졌어?"구택은 코웃음치며 말했다."나와 그녀의 관계는 헤어진다고 말할 수 없지!"시원은 웃었다."그래, 여자일 뿐. 싫으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게 별일이라고. 하지만 너 차인 것처럼 화난 표정 좀 짓지 말아 줄래?"구택은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와 상관없어!"시원이 말했다."그럼 소희 씨가
백림은 구택 맞은편에 앉아 있었고 오늘 종업원이 유비로 바뀐 것과 시원이 소희를 언급할 때 구택이 고개도 들지 않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것을 느꼈다.그날 그가 했던 전화와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무척 불안했다.후에 구택은 연속 두 판 이겼고 얼굴에는 아무런 정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얘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무척 유쾌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그 후 며칠, 구택은 가끔 와서 시원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거나 혼자 소파에 앉아 술을 마셨고 종래로 소희를 언급하지 않았다.시원은 두 사람이 정말 헤어졌다고 느꼈다.구택은 평소에도 안색이 담담했고 정서를 밖으로 드러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유일한 변화는 그저 그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보다 더 심했다.......시원은 청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의 한 회사에서 건축설계사의 조수로 일하는 것이었다. 청아는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디저트 가게에 지금 일손이 부족해서 청아는 이번 달까지 가게에서 일하고 개학 후 다시 시원의 회사에 가서 졸업 전의 정식 인턴으로 일하기로 결정했다.청아는 배달을 그만뒀으니 시간이 많아져서 계속 소희를 위해 아침밥을 해주었고 저녁에도 소희가 돌아오면 야식을 만들어 줬다.소희는 마트에 가면 식재료를 잔뜩 사서 청아의 냉장고에 넣었고, 또 자신의 냉장고에는 다시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로 가득 채웠다.청아는 오랫동안 구택을 보지 못한 거 같아 소희에게 물어보았지만 소희는 그저 그가 최근에 아주 바쁘다고 말할 뿐이었다.그러나 청아는 여전히 소희가 기분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표정과 행동만 봐도 그녀에게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병원에서는 서인의 수하 이문이 그를 돌보고 있었다. 이문은 이름이 꽤 듣기 좋았지만 사실상 아주 건장하고 위풍당당한 사나이였다. 그는 병실에 오자마자 간호침대를 차지했고 저녁에 잘 때
"그래, 가족들은 잘 지내고?" 서인이 물었다."그럼요." 소년은 해맑게 웃었다. "우리 여동생도 벌써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어요."서인이 물었다."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소년이 대답했다."우리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여기에 입원하셨어요. 내가 그를 간병하고 있고요.""그렇군!" 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려 했다."나한테 현금은 이것밖에 없어서. 먼저 받아. 그리고 계좌 번호 좀 알려줘, 내가 입금해 줄게."소년은 놀라며 물었다."뭐 하시는 거예요?"서인이 말했다."너희 부모님은 너와 네 여동생 학교에 보낸다고 무척 고생했잖아. 병원에 입원하면 또 돈을 써야 하고. 나와 네 형은 아주 좋은 친구니까 너도 네 형이 너에게 준 돈이라고 생각해."소년은 거절하면서 말했다."고맙지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우리한테도 돈이 있어요. 정말이에요!""넌 금방 졸업해서 아직 취직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서인은 믿지 않았다."정말이에요!" 남자는 헤헤 웃었다."요 몇 년 동안 우리 형도 줄곧 집으로 돈을 부쳤어요, 매달 부모님께 고정적으로 용돈도 주고, 나와 내 여동생이 학교 갈 돈도 모두 우리 형이 준 것이에요."서인은 멈칫했다."네 형이?""맞아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서인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더니 목소리는 점점 더 낮아졌다."매달 너희들한테 얼마 주는데?""500 만 원요!" 남자는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한 편으로는 또 좀 유감스러웠다."형은 매달 우리 아버지에게 500만 원을 입금해 줬는데 줄곧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밖에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서인은 머리가 윙윙거리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소년이 말했다."우리 아버지도 링거를 거의 다 맞아가서요, 이만 가볼게요."서인은 인차 정신을 차렸다."어, 그래, 빨리 가봐!"소년은 밖으로 나가며 문을 열 때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인에게 물었다."우리 형 아시면 형이 지금
도경수는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너는 동의 안 했잖아? 뭐라 그랬더라, 젊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연애해야 한다고 했었지?”“요즘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손녀를 찾으니까 이제 와서 네가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건가?”강재석은 시언을 향해 물으며 말했다.“누가 맞선이 유행하지 않는다고 했어?”시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기억이 안 나요.”이에 도경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할아버지와 손자가 둘이 함께 일부러 얼버무리는 거야? 내가 한 말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냐?”시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자유롭게 연애하는 걸로 할게요. 그것도 문제없거든요.”그 말에 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모든 걸 예상하였다는 듯했다. 그러나 도경수는 곧바로 반대했다.“안 돼! 안 된다고! 우리 손녀를 건드리려 하지 마. 나와 도도희는 절대 그렇게 서둘러 재희를 시집보낼 생각이 없어. 최소 몇 년은 집에 두고 보고 싶단 말이야.”강재석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아까까지는 강시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게 그에 대한 보답이야?”도경수는 서둘러 말했다.“시언아, 내가 너한테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게 뭐든 말해봐라. 내 수집품 중에 골라.”“골동품이든 진품 그림이든 상관없어. 너희 할아버지가 평생 탐내던 서화도 내줄게.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그러나 시언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도경수 할아버지,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강아심뿐이예요.”당당한 시언에 도경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강재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경수를 바라보았다.“들었지? 우리 시언이 널 대신해 손녀를 찾아줬잖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으면 그것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지.”도경수는 화가 난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희 집안은 이걸 빌미로 우리 손녀를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야? 정말
도도희는 강시언에게 물었다.“아심이 어렸을 때 사진은 없어?”시언은 아심을 한 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있을 거예요. 돌아가서 찾아보도록 할게요.”“꼭 찾아줘.” 도도희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아심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녀에게는 모두가 공백이었다. 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마음이 조급했다.식탁은 오래된 황화리 목재로 만들어져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아심은 창가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고, 창밖에는 꽃이 만개한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도경수와 도도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다시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익숙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걸 느꼈다.아심은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저기요. 예전에 그 자리에 꽃받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꽃병이 놓여 있지 않았나요?”도경수와 도도희는 순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경수는 놀라 눈물을 머금은 채 물었다.“그걸 기억하고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도도희는 흥분하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맞아, 맞아! 거기에 분채 꽃병이 있었어. 할아버지가 그 안에 사탕을 숨겨두고는 널 안아 그 안에서 꺼내보라고 했잖니.”“너는 사탕을 집어 들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었어.”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서 기억에 남았나 봐요.”익숙함의 원인을 알게 된 아심의 마음에는 조금 더 따뜻한 친근함이 스며들었다....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거실로 돌아왔다. 곧 도도희는 강아심에게 물었다.“또 기억나는 게 있니?”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른 건 생각나지 않아요.”“그럼 내가 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보여줄게. 그러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지.”도도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심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향했다.이에 이반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도도희가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강솔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모두가 행복한 날이니까요!”그녀는 소희를
“자, 먼저 밥부터 먹자고! 밥 먹자!” 도경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렸다.식사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고, 모두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 도도희는 여전히 강아심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감정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그러니까, 세상에 이유 없는 호감은 없는 거야. 우리 첫 만남에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도 다 피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어.”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정말 신기해요.”도도희는 그녀를 식탁에 앉히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하자.”모두가 둘러앉아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은 그때, 도경수는 갑작스럽게 한쪽에 서 있던 가정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양재아는 어디 갔지? 아침부터 보이지 않던데.”그러자 도우미가 대답했다.“아가씨께서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하셔서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강시언은 아침에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만난 권수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었다.도도희는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라고요? 아심은 나의 유일한 딸이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외손녀예요. 그런데 집에서 다른 사람이 아가씨라고 불린다면, 아심은 뭐가 되는 거죠?”그 말에 도우미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도경수가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예전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부른 거야. 이제부터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하지만 도도희는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처음부터 양재아를 이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재아가 마치 이 집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아요.”“아심이 내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아이가 얼마나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네요.”소희가 나서서 말했다.“도도희 이모, 그건 제 불찰이에요. 저를 탓하세요. 스승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임구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잘못은 아니야. 네 의도는 선의였으니까. 애초에 양재아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에 도경수 어르신을 먼저 찾아간 게 문제였지
임구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결과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네요!”처음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진석은 강솔과 도경수에게 휴지를 건네며 강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그만 울어. 네가 이렇게 울면 스승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워.”강솔은 휴지를 받아 도경수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스승님, 이제 울지 마세요. 울지 말아요!”강재석 역시 소희가 건넨 휴지를 받아 눈가를 훔쳤다. 그는 강시언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손자, 잘했구나!’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아심에게 돌렸다.아심은 울지 않았지만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가 불안하고 복잡해 보였다.이런 기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기억 속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온두리에서 시언에게 끌려가던 날이었다.그때 아심은 시언의 차 안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지금의 감정도 그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었다.‘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어.’도도희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리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애틋함과 따스함이 가득했다. 도도희는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딸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어. 우리가 조금만 더 서로를 알았더라면, 진작에 만날 수 있었을 텐데...”아심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 지었다.“지금도 충분히 좋아요.”“맞아, 놓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도도희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너를 데려간 거니?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어?”아심은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 그때 저는 자주 맞았고, 기억이 흐릿해요. 조금 더 자랐을 때의 기억은 양부모님 댁에서예요.”“그분들은 제가 친딸이 아니라고 했어요. 강가에서 주웠다며,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더군요.”“널
강시언은 강아심을 데리고 도경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을 지나던 중, 아심은 마당의 풍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낯익은 감정이 가슴 속 깊이 몰려왔다. 아주 오래전,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그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왜 그래?” 시언이 멈춰 선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에 아심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본가에 돌아오니 긴장됐나? 그 용감한 강아심도 이런 상황은 무섭나 보네?”시언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부드럽게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자 도경수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결과가 나왔어?”“나왔어요.”시언은 결과지를 세 부로 나누어 도경수, 도도희, 그리고 강재석에게 각각 건넸다. 도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고 급히 훑어 내려갔다. 거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모두의 시선이 결과지를 쥔 세 사람에게 집중되었다.가장 먼저 결과를 확인한 것은 도도희였다. 그녀는 결과를 본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아심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도도희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곧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 정말, 우리가...”도도희는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려 이십 년. 그 모든 세월이 그녀에게는 과거를 묻어버린 긴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 모든 기억이 한순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도경수 역시 보고서를 들고 손을 떨며 아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반응만 보고도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아심을 향했고, 다들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감격과 놀라움이 가득했다.아심은 시언의 손을 꼭 잡으며 도도희를 향해 천천히 고개
“기뻐?” 강시언이 묻자, 강아심은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요.”“멍하나 보네?” 시언이 웃었다. 그리고 아심은 그저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천천히 받아들이면 돼. 모든 건 내가 함께할 거니까.”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도도희 이모를 찾아가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하자.” 시언은 미소 지으며 아심을 놓아주고 차 시동을 걸었다. 아심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만약 도도희 이모가 제 엄마라면 제 아빠는 누구예요?”시언은 그녀의 질문에 설명했다.“너의 아버지는 도도희 아줌마의 대학 동기였어. 나중에 유학을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았지.”“아마도 이미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을 거야. 지금 네 혈육은 도도희 아줌마와 도경수 할아버지뿐이야.”아심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그럼, 나는 버려진 게 아니었네요.”“당연히 아니지!” 시언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누군가에게 납치된 거야. 네가 사라진 뒤, 도도희 이모와 도경수 할아버지는 큰 고통을 겪었어. 그들은 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어.”아심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창가로 비추고 있었고, 그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어둠과 상처가 서서히 풀어져 가는 듯했다.‘나는 버려진 게 아니었어. 내 가족은 나를 찾으려고 했었어.’...한편, 권수영은 아직 유전자 검사 기관을 벗어나지도 못한 상황에서 양재아의 전화를 받았다.재아는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결과 가져왔어요? 나 지금 검사소 뒤쪽에 있는 작은 공원에 있어요. 빨리 결과를 가져다줘요!]권수영은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결과는 미리 받았는데 강시언이 그걸 가져갔어요.”[뭐라고요?] 재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분명 한 시간이나 일찍 준비했는데, 어떻게 시언이 자신보다 먼저 올 수 있었단 말인가?이에 권수영이 서둘러 말했다.“진정해요, 재아 양. 그래도 내가
“여기 결과야. 정말로 검사 의뢰인의 대리인 맞아?”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렇게 결과를 빼돌리는 건 나한테도 큰 리스크와 책임이 따른다고!”권수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맞아, 의뢰인이 부탁해서 제가 대신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문제 될 일 없을 거니까.”권수영은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보고서를 펼쳤다.앞부분의 글귀들은 건너뛰고, 그녀는 바로 결과 부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막 확인하려는 찰나, 보고서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겼다.깜짝 놀라 고개를 든 권수영은 앞에 서 있는 고고하고 냉랭한 남자를 보고 얼어붙었다. 강시언은 결과지를 한눈에 훑어본 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권수영 씨? 이 보고서가 당신과 무슨 관계죠? 검사 직원에게 돈을 주고 결과를 빼돌리다니, 이게 불법인 건 알고 있나요?”권수영은 강시언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변명했다.“이건 오해예요! 제가 아는 사람 대신 결과를 받으러 온 것뿐이에요. 아침에 양재아가 부탁해서요.”시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러니까 양재아가 당신을 보낸 건가요?”권수영은 순간 아침에 재아가 혹시라도 들키게 된다면 자신의 이름은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이에 그녀는 황급히 말을 바꾸며 웃었다.“아, 아니에요. 재아는 몰라요. 제가 여기서 검사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미리 확인하려고 온 거예요.”강시언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더 따질 시간 없으니 그대로 전하세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요.”권수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언이 자리를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양재아가 검사한 게 맞는데, 왜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 걸까?’권수영은 생각에 잠긴 사이, 아까 결과지를 전달해 준 직원이 급하게 달려왔다.“아직 안 갔네. 정말 검사 의뢰인의 친구 맞아? 상사가 이 일에 대해 저를 추궁하고 있어. 그러니 와서 설명 좀 해줘!”“나, 나도 어떻게
강아심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중간에서 저희를 위해 고생하셨잖아요. 제가 밥 한번 대접할게요.”그 말에 강시언은 비꼬듯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힘을 써서 네가 밥을 사준다는 거야?”아심은 눈을 빛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수고비를 원하신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이윽고 휴대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얼마면 적당할까요, 강시언 씨?”그 말에 시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또 돈을 보내기만 해봐!”아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심의 얼굴선이 빛을 받아 더욱 뚜렷하고 우아하게 빛났다. 눈가에 번진 따스한 빛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아심의 집에 도착한 후, 그녀는 말했다.“먼저 앉아 계세요. 물 좀 가져올게요.”아심은 냉장고에서 물 두 병을 꺼내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시언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아심은 물을 내밀며 무심하게 물었다.“바빠요?”그러자 시언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물 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가볍게 끌어당기자 아심은 시언의 품에 안겼다. 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검사도 끝났으니, 이제 우리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아심은 시언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우리 문제라뇨?”시언은 차갑고 또렷하게 말했다.“그날 돈을 보낸 건 무슨 뜻이었지?”그 말에 아심은 그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시언은 얼굴을 더욱 차갑게 굳히며 그녀의 뺨을 살짝 잡았다.“돈은 보낼 줄 알면서 말은 못 해?”아심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시언의 손은 아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다.강아심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고, 한참 후에야 시언의 어깨를 밀어내며 중단시켰다. 아심은 시선을 피하며 나직이 말했다.“우리 관계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선 안 돼요.”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예전 관계가 어떤 관계인데?
강솔과 진석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강솔은 기쁜 표정으로 소희를 부르며 소희에게 달려갔다.오늘은 모두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비록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불안감도 여전히 있었지만 말이다.진석과 임구택도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옆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희는 강솔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소희가 강솔에게 물었다.“양재아는 어디 있어?”강솔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아침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어. 상태도 괜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도경수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며 말했다.“걔도 마음이 복잡할 테니 억지로 불러내지 말게. 혼자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둬.”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아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했으니, 혼자 위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언젠가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아침 8시, 아심은 시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시언은 그녀에게 내려오라고 했다.몇 분 후, 아심은 차에 올라탔다.“도도희 이모는요?”“먼저 가셨어.” 시언은 도로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우리는 먼저 아침을 먹고 나서 합류할 거야.”“저는 이미 아침을 먹었어요.”시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심을 돌아보자, 아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왜요?”“아무것도 아니야.” 시언은 무심하게 대답하고 차를 출발시켰다.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아 조그만 아침 식당이 보였고, 아심이 말했다.“여기 아침 식사가 괜찮아요. 당신은 여기서 아침을 먹고 오세요. 저는 차에서 기다릴게요.”그러자 시언은 무심하게 말했다.“괜찮아, 안 먹어.”“안 먹으면 배고프지 않아요?” 아심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안 고파.” 시언은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운전만 계속했다. 아심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가방에서 따뜻한 우유 한 병과 직접 만든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샌드위치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시언은 그녀를 흘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