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요! 참, 시원 씨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그냥 오빠라고 부르라니까요, 왜 또 이렇게 존댓말 쓰는 거예요? 소희 씨가 날 시원 오빠라 부르면 구택은 기껏해야 기분이 안 좋겠지만 이렇게 존댓말 쓰면 구택은 정말 나한테 화낼 거라니까요!"시원은 농담을 하며 소파를 가리켰다."무슨 일이에요, 앉아서 말해봐요!"소희는 소파에 앉아 카드 한 장을 꺼내 시원 앞으로 건네주었다."이 안에는 2000만 원이에요. 내가 청아 대신해서 그 돈 갚을게요."시원은 의외라 느끼며 테이블 위의 카드를 보고 웃었다."소희 씨, 지금 내 체면을 구기는 거예요!"소희는 즉시 말했다."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단지 청아가 너무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녀 대신해서 이 돈을 갚으려는 거예요. 이 일은 구택 씨와도, 우리의 관계와도 상관이 없어요."시원은 소파에 기대며 부드럽고 우아했다."소희 씨는 청아 씨의 친구니까 틀림없이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그녀가 원한다면 나는 아예 그녀더러 이 2000만 원을 갚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소희 씨의 돈을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가 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녀는 들을 수 있겠어요? 소희 씨가 이 돈을 대신해서 갚았다는 것을 알면 그녀는 틀림없이 또 소희 씨한테 갚으려고 할 거예요!"그는 잠시 멈추다 계속 말했다."아니면 소희 씨는 청아 씨가 소희 씨에게 빚진 돈을 급하게 갚을 필요가 없으니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힘들 거예요!"소희는 눈을 떨구었다. 시원의 말이 맞았다. 청아의 성격은 집요하고 또 솔직해서 소희한테 돈을 빚지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갚도록 자신을 강요할 것이다."그녀의 성격으로 다른 사람이 베푸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건 사실 좋은 일이에요. 앞으로 그녀가 사회에 나가면 적어도 이 방면의 손해를 보지 않을 테니까요!"시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녀더러
소희는 더는 여기에 앉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은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나 먼저 갈게요. 필요하면 나 부르고요!"구택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바쁘지도 않은데 어딜 가는 거예요?"시원도 말했다."가지 마요, 마침 우리 세 사람 카드놀이할 수 있잖아요. 소희 씨가 가면 내가 또 어디 가서 사람 찾아요!"소희는 구택 그들과 몇 번 놀았지만 여전히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난 틀림없이 질 거예요."시원은 포커를 꺼내 웃으며 말했다."내가 챙겨준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편하게 놀아요. 이기면 소희 씨 몫이고, 지면 내 몫이에요!"구택은 그를 흘겨보았다."성벽도 네 낯가죽보다 얇겠다!"시원은 웃으며 말했다."그건 내가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그는 두 손으로 카드를 뒤섞다가 갑자기 명원이 달려와 흥분해하며 말했다."뭘 놀아요, 나도 끼워주면 안 돼요!"소희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세 분이서 놀아요!"시원은 명원을 힐끗 쳐다보았다."왜 거기 가서 안 놀고?"명원이 말했다."백림이 나를 대신해 주고 있어요!"시원은 말했다."그럼 구택이랑 놀아줘, 내가 거기 가서 놀게."명원은 그의 손에 있는 카드를 받았다."응, 그럼 가봐요!"시원은 소희에게 웃으며 말했다."여전히 그 말이에요. 이기면 소희 씨 몫, 지면 내 몫이에요. 이 오빠는 아이스크림도 사줄 수 있어요!"구택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자 시원은 도발하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고 몸을 돌려 오락 구역으로 갔다.명원은 카드를 씻을 때 소희를 한 번 보았다. 그는 그녀가 도대체 시원의 사람인지 아니면 구택의 사람인지 좀 헷갈렸다.세 사람이 카드놀이를 시작하자 명원은 카드를 가지고 와서 판돈을 말했다.소희는 깜짝 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너무 큰 거 아니에요?"명원은 일부러 그녀한테 겁을 주려고 했기에 담담하게 말했다."커요? 우린 평소에 다 이렇게 노는데!""전혀 안 커!" 구택은
소희는 구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시원은 소희의 자리에 앉아 "쯧쯧"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다르다니까!"명원은 고개를 들었다."뭐가 달라요?"시원은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구택의 전화가 울리자 그는 시원의 야유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화받으러 갔다.구택이 떠나자 명원은 안색이 담담해지더니 술 한 잔을 따랐다."형, 구택 형하고 방금 그 소희는 무슨 관계예요?”시원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아무튼 앞으로 소희 씨를 보면 예의 있게 굴어!"명원은 콧방귀를 뀌었다."구택 형이 여자 하나 때문에 나와 싸우겠어요?"시원은 웃음을 거두고 정색했다."너 내 말을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명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구택 형 정말 그녀를 좋아하는 거예요?"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은서 누나는요?"시원은 눈빛이 깊어지며 나지막이 말했다."구은서가 스스로 구택을 포기한 거야!"시원은 명원이 입을 열자마자 그의 말을 끊었다."구택이 도대체 누구를 좋아하는지 묻지 마. 나는 단지 구은서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으면 구택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라는 것만 알아!"명원은 안색이 어두운 채 말을 하지 않고 술잔의 술을 단숨에 마시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구택 형이 결혼을 한다면 난 은서 누나만 인정할 거예요. 은서 누나도 종래로 구택 형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누난 돌아올 것이라고요!"......소희는 휴게실로 돌아와 잠시 책을 보다가 인차 돈을 입금 받았다. 그녀가 방금 이긴 칩이었다. 시원은 다른 사람더러 현금으로 바꾸게 했다.그녀가 케이슬에서 일 년 내내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소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시원이 사실 이런 방식으로 명원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사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필경 그녀가 이긴 돈은 대부분 명원의 것이었다.시원은 이렇게 섬세하고 매너가 있었으니 그렇게 많은 소녀들이 그를 떠나면 죽거니 살거니 했던 것이다. 그는 확실히 이런 능력이 있었다.소희는
시원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욕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진 것 같았다."우청아 씨?" 시원은 바로 그녀를 불렀다.그는 재빨리 욕실 문 앞으로 걸어가서 문을 두드렸다."청아 씨, 왜 그래요?"그는 두 번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원은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문을 밀었다.욕실 안에는 물기가 감돌았고 그윽한 향기는 은은하게 시원을 향해 덮쳤다. 그는 또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서야 욕실 안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보았다. 그녀는 몸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피부는 하얗고 머리카락은 무척 검었다. 그런 시각적 충격에 시원은 제자리에 굳어졌다.샤워 꼭지는 켜져 있었고 콸콸 흐르는 물은 소녀의 몸에 내리쳤다. 마치 시원이 오늘 창문 앞에서 본 정경과 같았다. 큰비는 소녀를 향해 쏟아졌고 그녀의 얼굴은 비에 젖어 하얬지만 두 눈은 맑고 강인했다. 분명 그렇게 비참했지만 여전히 생활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시원은 무려 3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성큼성큼 걸어가서 물을 끈 다음 바닥에 있는 소녀를 안았다.청아는 조용하게 그의 두 팔에 누워있었고 시원도 눈빛을 피하지 않아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 여자애는 보기엔 매우 말랐지만 옷을 벗었는데도 여전히 매우 말랐다는 것이었다.그래도, 나름 괜찮았다…...시원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매끄러운 그녀의 피부의 촉감을 최대한 무시하고 목욕 수건으로 그녀를 감싸서 욕실에서 안고 나왔다.청아를 침대에 놓은 뒤 시원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줬고 그는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니 무척 뜨거웠다.그동안 청아는 배달 때문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이 원래 허약한 데다가 오늘 또 비를 맞고 젖은 옷을 입고 배달하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으니 감기에 걸린 것이었다.시원은 먼저 그녀에게 이불을 잘 덮어 준 뒤 본가 쪽 개인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하 의사는 이미 잠이 들었지만 시원의
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하 의사는 계속해서 말했다."열은 곧 내려갈 겁니다. 근데 땀을 좀 많이 흘릴 수도 있으니 도련님께서도 따뜻한 하나 수건 준비해서 닦아주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음!"하 의사는 떠나기 전에 처방한 약을 어떻게 먹고 또 주사를 어떻게 뽑는지 신신당부했고 시원은 그의 말을 모두 마음속으로 새겼다.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시원은 작은방으로 돌아가서 청아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그녀는 아주 깊이 잠들었다. 긴 속눈썹은 드리워진 채 마치 달빛을 가린 얇은 면사포처럼 얼굴에 잔잔한 그림자를 비추며 무척 고요했다.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 정도로 고요했다.시원은 링거 다 맞기를 기다리며 한쪽의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그는 눈을 감자마자 침대에서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고 눈빛은 한순간 희미해지다 점차 멈칫해졌다.청아는 링거를 맞고 열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온몸에서 땀이 났고 그녀의 몸은 또 시원에 의해 꽁꽁 이불로 덮여 있었기에 너무 괴로워서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거리며 스스로 자신의 몸에 덮은 이불을 젖혔다.그녀는 몸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의식도 아직 회복하지 않았으며 눈을 감은 채 고통스럽게 잠꼬대를 했다.시원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일어나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잘못 움직여서 왼쪽 팔에 있는 주사를 누를까 봐 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소녀의 하얗고 섬세한 피부에는 땀이 났고 마치 아침 이슬처럼 어두컴컴한 등불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시원은 한 번만 보고 인차 고개를 돌려 링거를 보았다. 눈앞의 정경은 그의 마음을 좀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양심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종래로 청아를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그는 한 남자였다!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 의사가 당부한 말을 생각했다. 그는 이불을 청아에게 잘 정리해 준 다음 욕실로 가서 따뜻한 수건을 가지러 갔다.그가 돌아왔을 때, 청아는 또 이불을 걷어찼다.시원, "…..."그는 다
그는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녀가 잠잠해진 후에야 그는 계속 그녀의 몸을 닦아주며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30분 뒤, 그는 재차 따뜻한 수건으로 그녀의 땀을 닦아주었다. 이번에 청아는 여전히 가만있지 않고 침대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을 쳤다. 시원은 또 그녀가 주사를 누르는 것까지 주의해야 했기에 엄청 지쳤다.몇 번 시도한 뒤, 그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시중을 든 적이 없었다.땀을 닦고 나니 소녀는 편안해졌는지 마침내 움직이지 않고 다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시원은 잠든 소녀를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안방으로 돌아가서 샤워를 했다. 돌아왔을 때, 링거는 거의 다 맞아 갔고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위해 주삿바늘을 뽑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은 이미 다 내려갔다.그는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그녀의 옷장에서 잠옷을 찾아 그녀에게 입혔고, 또 그녀에게 이불을 잘 덮어 주고서야 조심스럽게 방을 떠났다.시간은 이미 3시가 다 되어갔다. 안방으로 돌아온 시원은 분명 무척 졸렸지만 또 잠이 안 왔다. 그는 자꾸 청아가 다시 이불을 걷어찼을까 봐 걱정했다.한참 뒤척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자 시원은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 또 청아의 방에 가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는 달콤하게 자고 있었고 이불도 그가 덮어준 그대로였다.그는 그녀를 도와 문을 닫고 나오며 왠지 이러는 자신이 좀 우습다고 느꼈다.......날이 곧 밝을 때에야 시원은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6시에 외출해야 하기 때문에 알람이 울릴 때 그는 두 시간도 자지 못했다.날은 이미 어느 정도 밝아졌다. 시원은 먼저 작은방으로 갔고 청아가 열도 나지 않고 이불도 차지 않은 채 푹 자고 있는 모습을 잠시 동안 지켜보다가 방에서 나왔다.6시에 시원은 소희에게 전화를 했다.소희는 청아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 바로 잠에서 깨며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시원이 말했다."미안해요, 이때 깨워서."소희는 고개를
소희가 말했다."난 청아 보러 갈 테니, 구택 씨는 위층으로 돌아가서 좀 더 자요."구택이 말했다."이미 일어난 이상 잠도 안 오네요. 가서 우청아 씨 어떤지 보러 가요. 난 소파에 가서 좀 앉을게요.""넵!" 소희는 대답하고는 혼자 작은방으로 향했다.청아는 아직 자고 있었다. 소희는 그녀의 이마를 한 번 만져보니 열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그녀는 방에 잠시 앉아 있다가 청아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살금살금 방에서 나왔다.소파에 앉은 남자는 팔걸이에 기대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또 잠든 것 같았다.소희가 담요를 가져와 그에게 덮으려고 하자 구택은 갑자기 눈을 뜨더니 그윽하고 또 좀 어렴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짓했다."소희야, 이리 와요!"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그녀를 “소희야”라고 불렀는데, 소희는 가슴이 설레며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시간은 방금 6시였고, 아침 햇살은 이미 온 방을 가득 비추었다. 잔잔한 빛에서 뿜어 나오는 은은한 금색은 남자의 온몸을 둘러싸며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를 더욱 정교하게 비추었다.그윽한 눈빛은 부드러웠고 얇은 입술은 빨갰으며 하얀 셔츠에는 아침 햇살이 내려앉았고 손바닥은 길고 힘이 있었다.소희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가볍게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당기며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따뜻했다."어젯밤에 늦게 잤는데 또 이렇게 일찍 일어났으니 안 졸려요? 내 품 안에서 좀 더 자요."남자는 몸에 소희가 익숙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셔츠 안의 근육은 튼튼하면서도 탄탄했다. 소희는 편안하게 그의 품 안에 기대였다. 아침 6시의 강성은 너무 조용했고 방 안도 조용했기에, 그녀의 마음은 무척 평온했다.구택은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손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옷깃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좀 더 자요, 7시 될 때 내가 깨울게요!"소희는 원래 별로 안 졸렸지만, 이렇게 그의 품에 누워있으니 왠
구택은 아침을 시켰고 소희는 몇 가지 담백한 채소를 골라 청아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건네주며 약을 먹으라고 했다.청아는 속으로 매우 미안했다. 그녀는 아픈 적이 거의 없었지만 열 한 번 났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더러 그녀를 신경 쓰게 하다니.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소희야, 나 괜찮아. 너도 얼른 가서 일봐!"소희가 말했다."구택 씨는 출근했으니까 내가 너랑 같이 있어줄게. 어차피 나도 낮엔 할 일 없으니까."청아는 약을 먹은 뒤 상태가 좀 나아진 것 같아 출근하려 했지만 소희가 그녀를 막았다."시원 오빠가 나한테 부탁했어. 네가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지켜보라고. 그래야 너 다시 아르바이트하러 가게 할 수 있어."시원을 언급하자 청아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뻘쭘하게 말했다."난 괜찮아, 정말이야,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소희는 응하지 않았다."어쨌든 적어도 하루는 쉬어야 해. 너 방금 약 먹었으니 일단 좀 자!"청아는 어쩔 수 없이 누웠고 고운 한 쌍의 눈은 웃음을 머금으며 소희를 바라보았다."고마워, 소희야!""얼른 자!" 소희가 벽에 있는 전자 스크린을 누르자 커튼이 닫혔고 방안은 점점 어두워지며 머리 위의 천장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변했다.청아는 여전히 머리가 좀 무거워서 자고 싶었지만 잠이 안 왔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시원은 자신의 개인 비행기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밤새 별로 자지 못한 그는 흔들리는 비행기에서 점점 졸리기 시작했다.그렇게 눈을 끔뻑하기 시작할 때,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에 그는 문자를 확인했는데, 청아가 보낸 것이었다. [시원 오빠, 어젯밤 아픈 나를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요]시원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답장했다. [천만에요, 푹 쉬어요]……며칠 뒤, 소찬호는 카카오톡에서 소희한테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냈다.[소희 누나, 소연 누나가 우리 누나한테 준 King의 사인이에요.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
진구는 고개를 돌려 방연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가 나더러 너 데리러 오라고 하셨어.”연하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투덜거렸다.“엄마한테 곧 간다고 말했는데, 왜 또 오빠까지 부른 거야?”“너 데리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진구의 말투는 점점 더 다정해졌고, 하현욱은 재빨리 말했다.“연하 씨, 남자친구가 왔으니 얼른 들어가요!”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한에게 말했다.“다음에 꼭 사장님 노래 들을게요. 전 먼저 갈게요.”구석한도 더는 말할 수 없어, 체면상 걱정스러운 말만 건넸다.“조심히 들어가요.”연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진구를 바라봤다.“가자, 집에 가자.”진구는 연하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연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대듯 기대고는 완전히 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근데 선배 어떻게 거기 있었어요?”진구는 말했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어. 몇 명이랑 실랑이 중인 거 같아서 혹시 곤란한 일 생긴 건가 싶더라고.”연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안 그랬으면 오늘은 진짜 피 토했을지도 몰라요.”진구는 그제야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무슨 일 있어?”연하는 그를 친구처럼 여겼기에 거리낌 없이 말했다.“생리 중인데, 배가 너무 아파서요.”진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병원 갈래?”“괜찮아요!”방연하는 씩 웃었다.“딱 봐도 여자친구 없어 보여요. 이거 매달 하는 되게 평범한 거예요.”“아...”진구는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그렇게 아픈데도 술 마시러 나갔어?”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쩔 수 없잖아요.”“그러면 잠깐 눈 좀 붙여. 집까지 데려다줄게.”진구가 말에, 연하는 감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선배, 진짜 고마워요.”“고맙긴.”연하는 정말 배가 아파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눈을 감았다.진구는 연하가 어깨를 감싸 쥐고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며, 평소의 활달한 모습과
은정은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내려놓았다.“이거 먼저 마셔. 곧 밥이 다 돼.”그 말을 남기고, 곧장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유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고, 이내 푸르스름해졌다.‘이게 어떻게 친구 사이야?’‘예전엔 왜 몰랐을까, 이 남자 이렇게 능숙하고, 설레게 하는 타입이었나? 하.’역시, 유진은 은정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었다. 은정은 지난번 남겨 냉동해 두었던 생선을 꺼내 생선찜을 만들었다.맛은 나쁘지 않았고 달걀 몇 개를 볶고, 간단한 국도 하나 끓였다. 유진은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이 익숙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건지, 자리에 앉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은정은 생선살을 발라 접시에 담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유진은 한 손으로는 자신이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애옹이에게 먹이를 주었다.계란볶음은 아주 평범한 요리였지만, 유진은 파티장에서 먹던 최고급 참치초밥보다도 더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졌다.은정은 말없이 생선 살을 모두 유진의 앞 접시에 덜어주고, 조용히 유진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며 업무 관련 메시지 몇 개를 간단히 회신했다.유진이 물었다.“왜 안 먹어요?”이에 은정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파티 가기 전에 먹었거든.”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야근해서, 진구와 함께 바로 파티장으로 갔었다. 원래는 파티가 끝나면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었다. 유진은 이내 그 생각이 나 휴대폰을 꺼내 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요.]진구는 이미 파티장을 떠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유진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괜찮아.]폰을 내려놓은 진구는, 갑자기 집에 가고 싶지도 않고,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봐도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 만한 사람도 딱히 없었다.대학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모인 지도 오래됐다. 회사에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선, 누군가와 진심을 나누는 것도 어렵다.유진이 그나마
“그날 밤 이후로, 계속 잠을 못 잤어.”“나, 좀 수척해 보이지 않아?”유진이 잠깐 멈칫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 거지?’유진은 순간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남자의 말이 괜히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은정은 반쯤 눈을 뜬 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유진은 은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지었다.“친구가 되니까 마음이 놓였다고요? 그럼 우린 원래 친구였잖아요. 왜 그렇게 돌아서 가려고 했는데요?”어두운 조명 아래, 은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더욱 짙고 어두워져 먹물처럼 깊었고, 저음의 목소리는 자석처럼 끌리는 울림이 있었다.“왜 그런 것 같아?”유진은 은정의 눈 속에서 깊은 바다 같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괜히 빠져들 것만 같아서, 아예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투덜거렸다.“그럴 만하니까 그렇죠.”은정은 다시 눈을 감으며,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내가 그럴 만하지.”원래 하늘이 은정에게는 치트키를 줬다. 왕으로 곧장 올라설 수 있었던 삶을, 굳이 밑바닥 계급부터 정글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던 그였다.27층으로 돌아왔을 때, 유진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이제는 좀 놔줘도 되지 않아요?”그러나 은정은 손을 놓지 않았다.“애옹이 보고 싶지 않아?”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내가 야식 만들어줄게. 넌 애옹이랑 잠깐 놀고 있어.”은정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리고 유진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자, 그는 그녀가 동의한 것으로 알고 그대로 유진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집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문득 말했다.“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요.”그 말에 그제야 구은정이 손을 놓았다.“얼른 다녀와.”“네.”유진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답하고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은정은 문을 닫지도 않고 열어둔 채, 달려오는 애옹이를 받
은정은 유진을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이제 좀 진지한 얘기를 하자.”“진지한 얘기?”유진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구은정을 도와 서성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기에,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은정의 짙은 눈동자는 깊었다.“친구로 지낼 건지, 아니면 내가 널 계속 쫓아다닐 건지. 결정했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듯 말했다.“그게 지금 진지한 얘기예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유진의 가슴 한쪽이 찌릿하며 저렸다. 분노도 사라지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잘 모르겠어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이미 고백도 받고, 키스도 했는데, 어떻게 친구로 돌아가라는 걸까?’“결정 못 했으면, 그럼 나는 계속 널 쫓아다닐게.”은정의 목소리는 장난기 섞인 당당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고, 유진의 입술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그리고 유진은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났고, 등이 소파에 닿을 만큼 밀려나며 외쳤다.“친구 할게요!”은정의 얇은 입술은 유진의 입술 코앞에서 멈췄다. 단 몇 센티미터만 더 가면 닿을 거리였다.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숨을 참은 채 눈을 내리깔고 은정의 어깨를 밀었다.은정은 결국 몸을 물러섰다. 이 이상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 이 정도면 충분했다.은정은 유진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좋아. 친구 하자. 하지만 조건 있어. 예전처럼 나 피하지 않기!”유진은 속눈썹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고, 은정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우리 이제 집에 가자.”유진은 급히 말했다.“아직 난 못 가요.”말이 끝나기도 전,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는 여진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통화를 받았다.“선배!”진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유진아, 어디야? 파티장 안에 네가 안 보여서.]유진은 자기를 바라보는 은정의 눈빛이 너무나 뜨겁다는 걸 느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