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결이 기주현을 향해 말했다.“기주현, 너나 먹어. 괜히 아심 핑계 대지 마.”“선생님, 선배 좀 혼내주세요! 평소에야 저를 놀리는 건 그렇다 쳐도, 오늘은 내 남신, 여신 앞에서 제 체면을 구겨버리잖아요.”주현은 도도희에게 장난스레 투덜댔고, 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도도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만 부수지 말고, 내 화구만 무사하면 돼. 그 외엔 네 마음대로 다투든 싸우든 상관없어.” 한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항상 고자질로 해결하려 했지? 이제 너도 알겠지,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다는 거.”주현은 분한 듯 고개를 홱 돌리고는 시언에게 무를 올려주며 말했다.“남신 오빠, 이 무전 좀 드셔보세요. 여기가 자랑하는 명물이에요. 전 아직 안 먹어봤지만, 오빠 먼저 드시라고요.”그러자 한결이 건너편에서 장난스럽게 말했다.“강시언 형, 저 아이 말을 믿지 마세요. 오는 길에 혼자 무전 두 상자 먹고 트림만 열 번 했어요. 덕분에 차가 덜컹거렸죠.”모두가 한결의 유머에 큰 소리로 웃었고, 아심도 웃음을 참지 못해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우연히 시언과 눈이 마주쳤고, 그의 미묘한 미소를 보고 다시 머리를 돌렸다. 시언은 그저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주현은 갑자기 술병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마을에서 직접 사 온 술이에요. 오늘은 취할 때까지 마시는 거예요!” 한결은 도도희와 아심에게 음식을 권하며 말했다.“선생님, 아심, 이건 마을에서 유명한 족발이니 한번 드셔보세요.”아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아이들은 저녁 식사했나요?”도도희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주방에서 아이들 저녁을 따로 준비했어. 아이들은 이미 다 먹고 방으로 돌아갔고.”그 말에 아심은 안도하며 자신에게 과일 주스를 따르며 말했다.“저는 요즘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주스로 대신할게요. 도도희 이모의 초대에 감사드리고, 오늘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해요.”모두 함께 잔을 들어 건배했다. 유리잔이 부딪치며
기주현이 급히 말했다.“제가 잘못했네요. 정말 몰랐어요. 모르고 한 거니까, 너무 나를 탓하지는 마요. 그리고 이 술은 내가 마실게요!”주현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여자였다. 자신이 강시언에게 따라준 술을 직접 마셔버리고, 그에게는 대신 과일 주스를 따랐다.시언이 이번에는 주스를 마시자, 주현은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승리의 표정을 짓고는, 시언을 향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따른 주스를 마셨으니, 이제 우리 친구예요!”이에 시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축음기는 고쳐졌어? 지금 들어볼 수 있어?”주한결이 곧바로 일어나며 말했다.“제가 가져올게요.”한결은 차를 몰고 갔고, 금세 돌아와서 조규성과 함께 탁자를 하나 더 가져와 축음기를 그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도도희가 가져온 바이닐 음반을 올려놓았다.맑고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왔고, 도도희는 미소 지으며 시언을 바라보며 칭찬했다.“정말 고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이 축음기는 오래된 거라 부품도 일부 손상돼서 대체할 수도 없었는데, 설마 고친다고 해도 예전 음질을 되찾기 어려울 줄 알았어.”시언은 살짝 미소 지었다.“예전에 한 번 고친 적이 있어서, 예비 부품을 조금 남겨뒀거든요.”아심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이 정원이 강씨 집안의 소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한결은 경쾌한 곡으로 바꿔 분위기를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에블리와 규성은 춤을 추러 갔고, 한결은 아심에게 춤을 청했으나 아심은 정중히 거절했다. 주현도 시언에게 춤을 권했지만 거절당했다.결국 주현은 한결과 임시로 짝을 이뤄 춤을 추게 되었다. 하지만 곧 기주현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발 밟았잖아요, 춤출 줄 알아요?”“손은 왜 거기 있어? 어딜 만지려고 그래?”한결은 화가 치밀어 폭발할 것 같았지만, 주현에게 다시 잡혀 춤을 이어갔다. 이에 도도희는 두 쌍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
아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시언이 이전에 자신의 붉은 흔적을 봤던 것과 도도희의 가족을 찾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도도희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잠시 화면을 바라본 뒤 전화를 받고 한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심은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서툴게 말하고 있었다.테이블 앞에는 아심과 시언 두 사람만이 마주 앉아 있었고, 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도도희 이모는 예전에 딸이 있었어. 하지만 잃어버렸고, 그 뒤로 찾지 못했지.”“그런데 예전에 온두리에서 소희가 한 여자를 만났어. 나이와 신체적 특징이 이모 딸과 일치했어.”“양재아?” 아심이 물었다. 온두리에서 만난 사람은 재아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중에 소희가 재아를 강성으로 데리고 온 것도 이해가 되었다.“맞아!” 시언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심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이미 찾았다면, 왜 이모는 돌아가서 만나지 않은 거죠?”“예전에 몇 번이나 잘못 찾아서 상처받은 적이 많아. 아마 이번에도 실망할까 봐 두려운 거겠지.”시언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덧붙였다.“딸을 잃어버린 고통은 그 누구보다도 컸을 거니까.”시언은 아직도 이재희가 사라졌을 당시, 도도희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아심은 비록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한 적은 없었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도도희가 전화를 받고 있는 모습을 돌아보자,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이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자신이 갑작스레 답답해졌다.시언이 아심에게 물었다.“여기 며칠 더 있을 건가?”아심은 과일 주스 잔을 살짝 건드리며, 눈을 떨구고 말했다.“아직 생각 중이에요. 아마 며칠 더 있을 거예요.”“왜?” 시언이 아심을 응시하며 묻자, 아심은 눈빛을 피하며, 태연한 척 말했다.“딱히 이유는 없어요. 도도희 이모가 오랜만에 돌아오셨으니까,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 겸사겸사 그림도 배우고요.”그녀는
밤의 어둠 속에서,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난 널 데려다주는 게 아니었어!”아심은 갑자기 자신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1층 방을 정리 중이던 도우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비로소 상황을 깨닫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자신의 착각이었다니, 너무나도 민망했다.다행히도 밤이라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고, 아심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미소는 너무나도 어색했다.시언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당장이라도 아심의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두 사람은 차례로 별채에 들어섰다. 젊은 여자 도우미가 부엌 쪽에서 나왔다.“강아심 씨, 강시언 씨, 방은 모두 정리되었고, 혹시 필요한 것이나 야식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세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고마워요. 지금은 필요한 게 없어요.”잠시 멈칫하던 아심은 뒤따라 들어온 시언을 향해 물었다.“시언 씨는 필요한 게 있나요?”시언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난 약을 발라줄 사람이 필요해요.”이에 아심은 여자 도우미에게 말했다.“그럼, 시언 씨의 약을 좀 발라주세요.”여자 도우미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시언을 바라보며 수줍은 듯한 눈빛을 보였다.“네, 알겠어요. 저는 간호를 배웠고, 자격증도 있어요.”시언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섰다. 아심은 바에 다가가 물을 따라 작은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곧 여자 도우미가 구급상자를 들고 돌아왔고, 아심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제가 할게요. 가서 쉬세요.”여자 도우미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아심에게 말했다.“강시언 씨 좋아하시죠?”아심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사람을 좋아하면 감출 수가 없어요!” 그녀는 비록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활발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여전했다. 그러나 아심의 눈에는 순간 슬픔이 스쳤고, 입꼬리의 미소는 쓴웃음으로 변했다.여자 도우미는 너무
아심의 심장은 한 박자 멎는 듯하더니,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구급상자를 바라보며 흩어진 머리카락으로 옆얼굴을 가리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시언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미묘한 어둠이 스쳤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이번엔 유난히 심하게 다쳤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돌려 눈가에 반짝이는 눈물을 숨기려 했지만, 그가 보지 않기를 바랐다. 이에 시언은 그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집에서 약을 바르지 않은 건, 할아버지가 알게 될까 봐 걱정돼서였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시언의 해명에 아심의 마음은 부드러워졌다. 아심은 몸을 돌려 시언의 팔에 감겨 있는 붕대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상처를 보자, 그녀의 이마는 이미 찌푸려졌다.“다음번에도 이러면, 진짜로 신경 안 쓸 거예요. 어차피 당신 몸이니까, 심해지면 고통도 본인 몫이니까.”시언은 살짝 눈을 내리깔고 아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나 혼자선 약 바르기 힘들어. 더 신경 써서 잘 발라줘.”아심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내일 떠나는 거예요?”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이번에는 목소리에 약간의 급함이 묻어났다. 말이 끝나자 아심은 스스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시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안 가.”앞으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심이 정말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 한.아심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심은 시언의 상처를 다시 소독하기 시작했고, 손길은 부드러웠으나 동작은 여전히 재빨랐다.시언은 답답한 느낌에 셔츠의 단추를 전부 풀어버리자 그의 복근이 그대로 드러났다.아심의 눈 끝이 시언의 몸을 스치자 손이 살짝 떨렸다. 시언은 아심을 바라보았고, 몇 초 뒤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시언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훈련 중에는 상반신을 드러내는 일이 흔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심도 자기 몸을 한두 번 본 게 아니
갑자기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깜빡였다. 강아심은 그것을 집어 들고 확인했다. 지승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휴대폰에 반짝이는 이름이 마치 한 바가지 찬물을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아심의 머리를 순식간에 맑게 해주었다. 아심은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 하며 메시지를 열었다.[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어? 오늘 하루 종일 네가 보고 싶었어.]아심은 베개에 기대어 앉아 천천히 타이핑했다.[정말 즐거웠어.][나도 함께 가고 싶었어. 사실 일을 마치고 널 보러 가려고 했는데, 최근에 할머니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 시점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이해해. 할머니께서 많이 필요하실 테니까, 잘 챙겨드려.][네가 이렇게 이해해 주니 고마워.][당연한 걸.][왜 이렇게 정중해?]이에 아심은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내며 답장했다.[장시간 운전해서 좀 피곤하네. 너도 일찍 자.][좋은 꿈 꿔!]휴대폰을 내려놓은 아심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아심은 이날 밤 유난히 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꿈 하나 꾸지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눈을 떴을 때,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커튼을 닫지 않아 햇빛이 곧장 이불 위로 비추고 있었고, 아심의 부드러운 얼굴에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아심은 한 번 눈을 깜빡이며 눈 속에 가득 찬 빛을 느꼈다.시간을 확인한 후, 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 준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여자 도우미가 다가와 물었다.“아심 씨, 아침 식사 드릴까요?”“네.”아심은 대답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시언도 밖에서 돌아오던 참이었다.“안녕하세요!” 아심이 인사하자, 시언은 아심을 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정말 예의 바르시네요.”“당연하죠. 예의는 많아도 나쁠 게 없잖아요!” 아심은 부드럽게 웃자, 시언은 아심을 잠시 힐끗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아침 식사는 아주 풍성했다. 한쪽에는 커다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도도희는 화판을 내려놓으며 물을 따르다가 물었다.“어젯밤엔 잘 잤어?”“정말 잘 잤어요!” “여기 공기가 워낙 좋아서 며칠 더 머물면 건강에도 좋을 거야.”“네, 맞아요.”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언제 수업 시작하세요? 수업 듣고 싶어요.”도도희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10분 남았어, 지금 가면 되겠다.”“좋아요!”두 사람은 함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도도희는 교실 옆 방에서 교재를 가져오기 위해 잠시 멈췄고, 아심은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 막 교실 문에 도착했을 때, 한결이 한 손에 신선한 딸기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아침에 한 학생의 부모님이 보내신 거야, 깨끗이 씻어 왔어.”아심은 딸기를 받으며 말했다.“고마워!”“별말씀을.” 한결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수업 들으러 왔어? 곧 시작할 거야.”“응.” 아심이 고개를 끄덕였다.“곧 보자고.”아심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이미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심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때, 빨간 원피스를 입은 한 소녀가 물었다.“선생님이세요?”그 말에 아심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 나도 너희랑 같은 학생이야.”교실 안은 곧 놀라움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고, 아심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말했다.“쉿! 조용히 하자. 선생님이 오실 거야. 수업 끝나고 잘한 사람에게 딸기를 나눠줄게. 어때?”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에는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다.아심은 교실 뒤쪽 자리로 걸어가서, 마지막 줄에 앉아 자신의 스케치북과 펜을 꺼냈다.도도희는 유화를 주로 다루지만, 이곳의 제한된 조건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주로 스케치를 가르쳤다. 아심은 막 앉아 딸기 하나를 입에 넣으려 할 때, 갑자기 한 그림자가 그녀 옆에 앉았다.아심은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자, 시언이 의자에 기대며 담담하게 말했다.“할 일도 없어서, 같이 수업이나 들으려고.”시언이 들어서자 원래 약간 소란스럽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몇몇 남학
“그럼 계속 수업 들어.” 시언은 말을 마치고 스케치북을 들고 자리를 떴다.아심은 그의 당당하고 도도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쳐보았고, 그 안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한쪽 옆얼굴의 스케치가 있었다.도도희가 다가오며 물었다.“여기 앉아서 수업 듣는 게 어땠어?”아심은 스케치북을 접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편안했어요. 더 두세 번은 듣고 싶어요.”도도희가 웃으며 물었다.“어렸을 때 학교 다닐 때 느낌이 다시 난 거야?”“난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이게 새로워요.” 아심이 대답하자, 도도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이렇게 교실에 앉아서 뭔가를 배운 적이 없어요.”도도희는 갑자기 아심의 과거가 궁금해졌지만, 아심이 쉽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이번 기회에 어린 시절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채워보자.”“네.”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시언은 교실을 나와 복도에서 마주친 한결을 보았다. 한결은 손에 국어 교재를 들고 있었다.“시언이 형!” 한결이 환한 미소로 인사하자, 시언은 살짝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다음 수업이 한결 씨 수업인가요?”“맞아요!” 한결은 웃으며 말했다.“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시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말없이 2층으로 향했다.10분 후, 한결이 교실로 들어와 아심이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학생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하려고 한결은 아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아심도 국어책을 한 권 꺼내고, 앞에 앉은 학생에게서 공책과 펜을 빌려 주한결의 지시에 따라 책의 23페이지를 펼쳤다. 23페이지에는 경치를 묘사한 한 편의 시가 실려 있었다.아심은 수업에 집중하며 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뒷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그녀의 옆자리로 다가왔다.고개를 돌리자, 시언이 이미 자리에 앉아
강아심은 강시언 맞은편 의자에 앉아 부드럽게 웃으며 그를 한 번 바라봤다. 아심은 테이블 위에 있던 술잔을 들고 머리를 살짝 젖혀 술을 한 모금에 들이켰다.시언은 아심이 고개를 젖히며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을 바라보았다. 삼킬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목선이 더욱 선명해졌다.이에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강아심, 넌 그저 약간의 잔재주 말고는 다른 건 할 줄 모르지?”아심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더 큰 처벌을 피하려고 미리 그를 자극하며 시언의 입을 막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게 분명했다.아심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가는 술기운에 촉촉해졌고, 붉어진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그런 순진한 표정은 아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시언의 눈빛이 깊어지며 목소리는 더욱 낮고 묵직해졌다.“네가 매번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 잔재주 때문이 아니야. 그건 내가 네게 관대했기 때문이지, 이해했어?”아심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술기운은 더욱 올라와 눈동자는 한층 더 촉촉해졌다.시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권수영과 양재아가 웃으며 멀어지는 모습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다시 아심을 보며, 다소 조롱 섞인 어조로 물었다.“네 남자친구 어머니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아심은 입가에 묻은 술 자국을 가볍게 닦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정한 사랑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야죠.”그 말에 시언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변했고, 웃음에서도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진정한 사랑? 겨우 한 잔 마시고 취한 거야?”아심은 그의 말에 되받아칠 말을 찾으려 했지만, 어딘가 찔리는 마음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결국 아심은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은 때로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법이었다.시언은 아심의 옆모습을 지켜보며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바라봤다. 그러다 미소를 띠며 물었다.“내가 도와줄까?”아심은 놀란 듯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뭘 도와준다는 건데요?”“네가 버틸
강아심은 고개를 끄덕이고 양재아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권수영은 아심이 떠나자 안도한 듯 숨을 내쉬며 지승현에게 말했다.“너는 재아 씨랑 좀 더 이야기를 나눠봐. 젊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이야기가 더 많을 테니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저는 재아 양과 잘 모르는 사이예요. 특별히 나눌 얘기도 없고요. 엄마 친구분이시니까 엄마가 알아서 모시세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재아를 향해 간단히 묵례하고 자리를 떴다.재아는 표정을 잃지 않았지만, 손을 꼭 움켜쥐었다. 재아가 승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재아의 마음일 뿐이었지만, 승현이 재아를 무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권수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속으로는 승현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생각했다.‘승현이가 저 모양이라니! 만약 수철이 결혼할 나이가 됐으면 그에게 재아를 소개했을 텐데!’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권수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승현이는 원래 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요.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잘 못해요.”“게다가 평소엔 일에 치여서 여자들을 만날 시간도 없거든요.”재아는 냉소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런데 보니까 승현 씨는 아심 씨와 대화는 잘하던데요.”권수영은 당황했지만 재빨리 웃으며 말을 돌렸다.“강아심 씨는 공공 관계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한 거죠.”“하지만 재아 씨는 진짜 명문가의 아가씨에다가 품위 있고 아름다우니 비교가 되겠어요?”권수영의 말에 재아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사람들은 강아심 같은 사람을 더 좋아하더라고요.”권수영은 속셈이 담긴 태도로 재아의 심리를 읽으며 대답했다.“그건 그냥 재미로 그러는 거예요. 그런 여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남자가 얼마나 있겠어요?”재아는 가볍게 웃으며 대화를 다른 주제로 돌렸다.“지아윤은 안 왔나요?”“왔죠.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전화해서 불러볼게요.”권수영은 곧장 대답하며
권수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강아심을 일부러 무시한 채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양재아 씨, 여기는 내 아들 지승현이예요. 경성대 졸업생이고, 졸업 후 집안 사업을 도와주고 있죠. 지금 우리 집안은 승현이 혼자 다 책임지고 있어요!”권수영은 아들을 한껏 칭찬한 뒤, 다시 승현에게 말했다.“여기는 도재아 양, 국화 대가인 도경수 선생님의 손녀야. 외모도 빼어나지만 재능도 대단하단다!”승현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도재아 씨, 반가워요.”재아도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지승현 씨, 반가워요.”사실 재아는 권수영에게서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다. 세 번이나 전화로 만남을 요청하길래, 받은 선물도 많았고 관계를 틀고 싶지는 않아 마지못해 만나기로 했다.그녀는 권수영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밭으로 안내받았고, 승현을 보자마자 권수영의 의도를 눈치챘다.승현은 깔끔하고 점잖은 인상이었고, 예전 남자친구인 임예현과 닮은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언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상당히 컸다.그래서 재아는 자신의 태도를 차분하고 품위 있게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거리감을 두는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승현에게 말했다.“승현아,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하자. 나는 먼저 가볼게.”“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승현은 다급히 그녀를 막아섰으나 강아심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계를 흘낏 보았다. 이미 2분이 지나 있었다.권수영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아니, 이게 누구야? 강아심 씨 아니신가. 이제 공공 관계 사업까지 린 씨 결혼식장에 진출한 건가?”“어머니, 그런 말씀은 삼가세요.”승현이 얼굴을 굳히며 강하게 말렸다.“아심 씨는 연희 씨의 친구이자, 신부 소희 씨와도 친한 사이예요.”이때 재아가 입을 열었다.“아심 씨, 저를 못 알아보겠어요?”재아는 승현이 아심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 회사 개업식에서 아심이 어려움을 겪던 중, 승현이 그녀
“승현아.”강아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먼저 뭐라도 먹어봐.”승현은 케이크를 그녀 앞에 밀어놓으며 말했다.“점심은 아직 못 먹었을 것 같은데.”아심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조금 전에 뭔가 먹어서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지승현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오늘 만난 이유는 할머니의 유산 문제 때문이야. 할머니 유언장에 따르면, 돌아가신 지 한 달 뒤에 유산을 상속해야 한다고 했어.”“할머니의 뜻에 따라 네가 상속받을 부분을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진심이야.”아심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법정 상속에 따라 유산은 승현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승현은 그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유산을 받게 되면 즉시 팔아치우고, 자금을 회수할 게 뻔했다.승현은 그런 방식으로 할머니의 유품이 처분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우려를 솔직히 전했다.“할머니의 유품이 엉뚱한 사람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꼭 네가 받아줬으면 해.”아심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유품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야.”“하지만 지금은 이미 헤어진 상태에서 제가 그걸 받는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승현은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할머니는 널 진심으로 좋아하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말씀하셨어. 언젠가 당신이 나를 떠날 수도 있으니 절대 억지로 붙잡지 말라고.”“그렇게 모든 걸 알고 계시면서도 유품을 당신에게 남기셨잖아. 그러니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파티장 2층.강시언은 프랑스풍의 큰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깊은 눈은 정원에서 대화 중인 두 사람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었다.얇은 입술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그의 표정은 연기로 흐릿해졌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아심이 거실로 들어오자, 소희와 가볍게 포옹하며 부드럽게 웃었다.“결혼 축하해. 정말 완벽한 결혼식이었어. 모든 사람이 감동했어!”“고마워!” 소희도 따뜻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심은 한발 물러서서 소희에게 소개했다.“여기는 도도희 이모야!”소희는 눈앞의 여성을 보고 순간 멍해지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혹시 스승님의 딸, 도도희님이세요?”도도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나도 소희 씨 이름을 들어봤어.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제자라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니 아쉬웠어요.”소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도도희가 찾아올 줄 몰랐기에 마음이 벅차올랐다.“스승님도 오신 걸 알고 계세요?”양재아의 일로 스승님과 도도희 사이의 일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소희는, 스승님이 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도도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는 이미 만났어요.”“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소희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도도희는 부드럽게 물었다.“듣기로 양재아를 삼각주에서 찾아내 데려온 게 소희 씨라던데, 내 친딸이든 아니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소희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만, 두 분께 헛된 기대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어요.”도도희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일은 수없이 겪어봤거든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도도희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녀가 왜 지금까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소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도도희는 처음 만난 소희에게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고요하고 담백한 성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투명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면모가 아심과도 닮아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했다.도도희는 한층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운성에서 산간 지역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틀 후면 일이 끝나니, 강성으로 돌아
멀리서 도경수와 강아심이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구택과 눈이 마주쳤다.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두 손으로 잡은 소희는 가볍게 손을 들어 부케를 뒤로 던졌다.햇살이 소희를 온통 감싸고, 드레스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그녀의 웃음은 그림처럼 찬란했다. 앞쪽에 서 있던 사람들은 부케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만 볼 수 있었다.몇몇 사람들은 점프했지만, 손끝과 부케는 20에서 30cm쯤 차이가 나 닿지 않았다. 시원은 부케가 멀리 날아갈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소희의 던지기 실력을 과소평가했다.시원과 백림은 함께 점프했으나 손가락 끝이 꽃잎에 닿았을 뿐 결국 부케를 놓치고 말았다.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부케는 무려 10미터 이상 날아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들고 있는 손에 정확히 떨어졌다.아심은 꽤 멀리 서 있었고, 부케가 자신에게 떨어질 줄 몰랐는지 놀라 손에 들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도경수는 아심이 손에 든 부케를 보며 뜻밖이라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이건 정말 하늘의 뜻인 것 같아!”아심은 말없이 웃으며 부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곤 소희와 군중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현장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다.주변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심 쪽으로 몰려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희도 멀리서 아심을 향해 웃었지만, 당장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먼저 할아버지께 가서 술을 올리자. 그 뒤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서 있는 아심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구택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소희는 웨딩드레스를 갈아입고 피로연 드레스를 입은 뒤 강재석 쪽으로 가서 술을 올렸다. 그곳에는 임씨 집안의 어른들과 강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소희를 아끼며 환대했다.가볍게 술 한 잔을 권한 뒤, 소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었다. 소희는 오후 내내 쉴 수 있었고, 연희와 몇몇 친구들이 함께 시간을
남궁민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남궁민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확실히 당신은 나보다 서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심명은 남궁민의 말을 듣고 흘긋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하죠. 당신은 그게 좋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남궁민은 반박하며 말했다.“왜 아니죠? 난 서희 말고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거든요.”심명은 그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햇빛을 향해 걸어가는 심명의 모습은 빛에 둘러싸여 희미하게 흐려져 보였다. 남궁민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따라가며 물었다.“설마 도망치려는 거예요?”심명의 귀에 달린 흑요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매혹적인 광채를 뿜었다.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망치긴 뭘 도망쳐요?”만약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남궁민은 심명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둘 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서 너와 나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요. 술 마시고 취할 때까지 놀아보는 건 어때요?”심명은 남궁민의 손을 곁눈질하며 투덜거렸다.“손 치워요.”그러나 남궁민의 제안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 멀리서 여기까지 온 네 성의를 봐서라도, 서희 대신 내가 너를 잘 챙겨 주도록 하죠.”...결혼식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커다란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 커팅식이 끝나고 결혼식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축하 파티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내며 말했다.“와이프, 신혼 축하하고 사랑해.”수많은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예식장의 조명은 더욱 환하게 빛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축복과 환희로 가득했다.소희는 구택만을 바라보았다. 소희의 맑고 투명한 눈에는 세상의 그 어떤 소란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욕망도 담겨 있지
“그때, 나는 마침내 깨달았어. 네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그 이외의 어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임구택은 소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분홍빛 다이아몬드는 그녀의 눈부신 피부 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빛을 받아 반짝이며 찬란한 광채를 뿜어냈다.소희도 손에 든 반지를 꺼내 들었고, 구택의 손은 매끄럽고 아름다웠다.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은 완벽했고, 마치 차가운 백옥으로 조각한 듯 뚜렷한 관절선에는 부드러운 온기와 견고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구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조용히 미소 짓고는 물었다.“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면서, 왜 나를 다시 데려왔어?”구택은 그녀의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답했다.“왜냐하면 또 하나를 깨달았으니까.”“뭔데?”“내가 주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거야.”소희는 반지를 끝까지 밀어 넣고 고개를 들어 구택을 바라보았다. 구택의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다.“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만이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어. 그러니까 넌 도망칠 수 없고, 나도 도망칠 수 없어.”“처음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오늘 이 순간이 정해져 있었어. 네가 나와 결혼하게 될 운명 말이야.”구택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강렬한 키스로 소희의 입술을 덮자, 주변에서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임유민은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역시 우리 삼촌은 다르지.”요요도 뒤를 보려고 하자, 유민은 손으로 요요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어린아이는 이런 거 보면 안 돼!”요요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럼 오빠는 어른이에요?”그 말에 유민이 당황하며 대답했다.“나, 나는 반쯤 어른이야!”요요는 까만 눈을 반짝이며 더 궁금해졌다.“그럼 오빠는 머리 쪽이에요, 아니면 발 쪽이에요?”유민은 요요의 진지하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가 차분히 설명했다.“머리가
예식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주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이제 신랑과 신부의 결혼 서약을 낭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서도 함께 느껴 보시고,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주례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엄숙해졌다.“임구택 군, 당신은 이 아름다운 소희 양을 아내로 맞이하시겠습니까?”“소희 양의 손을 맞잡고 백년해로하며,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구택은 깊은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단호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예, 서약합니다. 소희를 평생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충실히 사랑하겠습니다.”주례자는 이번에는 소희를 향해 물었다.“소희 양, 당신은 임구택 님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임구택 군과 함께 인생의 길을 나란히 걷고, 그 어떤 간난신고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곁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하겠다고 서약하시겠습니까?”소희는 구택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서약합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구택의 눈에는 감정이 빛나고 있었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온기는 오직 소희를 위해 존재했다.주례자는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이제 임구택 군과 소희 양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두 사람을 위해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세요!”예식장은 다시 한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모든 하객은 이 감동적인 순간에 눈물을 글썽이며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는 끝없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울려 퍼졌다.연희는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는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우청아 또한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주례자는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제 신랑과 신부께서 결혼의 영원함과 순수함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를 교환하시겠습니다.”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임유민이 요요를 안고 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