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석은 이마를 찡그리며 칼과 포크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국내 뉴스를 확인했다. 이전의 사진들은 이미 삭제되었지만, 고하선과 조길영의 공개 사과문은 여전히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진석은 그들의 사과문을 읽으며 강솔이 그들로부터 입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점점 더 분명히 느꼈다. 진석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강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자 한 조각을 물고 대답했다. “일이 금방 해결됐거든. 소희가 나를 도와줬어.” 진석은 강솔의 말에 이어 경성대 포럼을 열어 관련된 글들을 다시 확인했다. 심서진이 올린 글은 이미 삭제되었지만, 주예형이 올린 해명 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댓글을 훑어보면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진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심서진은 어디 있어?” “잡혀갔어. 소희 말로는 몇 년 동안은 못 나올 거야. 감옥에서 썩게 될걸.” 강솔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한테 뭐라 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오빠를 모욕한 건 용서할 수 없어. 경찰서에 가서 한 번 더 걷어차고 싶을 정도였어.” 진석의 마음은 원래 무거웠지만, 강솔의 말을 듣고 그의 눈에 부드러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강솔은 큰 한 모금의 채소 수프를 마시며 자연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강솔은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잠시 멈추었고, 눈을 살짝 굴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시 고기를 먹었다. 진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까는 말이 없더니, 이제 와서 솔직하네.” 강솔은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말했다. “대화 주제나 흐리지 마.” 진석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었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조금 무거웠다. “내가 없는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구나.” “사실 별거 아니야.” 강솔은 낙천적인 성격답게 대답했다. “조길영과 유사랑의 일은 겉보기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심서진이 뒤에서 조종한 거야.
“사랑해.” 진석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강솔을 품 안에 끌어안았다. “영원히 사랑할 거야.” ... 그날 밤, 강솔은 진석의 품 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더 이상 그 품이 답답하다며 멀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졌다. 반면, 진석은 밤에 몇 번이나 깨어나 강솔에게 하는 입맞춤을 참을 수 없었고, 더 많은 것을 원했지만, 달콤한 꿈을 방해할 수 없어 억눌렀다. 다음 날 아침, 강솔이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해가 막 떠오를 무렵이었다. 강솔은 진석의 품 안에 더 깊이 파고들며, 진석의 따뜻한 향기에 취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해 떴어?” 진석은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낮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출근 안 해도 되니까 좀 더 자.” 잠시 후, 강솔은 게으르게 고개를 들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오늘 귀국하는 거야?” 그말에 진석은 강솔의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빠져들었다. “원래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네가 왔으니 며칠 더 있어도 돼.” 강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출근해야 해. 딱 이틀 휴가만 냈거든.” 진석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장님이 여기 있잖아. 언제든지 휴가 연장해 줄 수 있어.” 강솔도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 돼, 난 성실한 직원이거든.” 진석은 강솔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럼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같이 집에 가자.” “응.” 강솔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진석의 팔을 베고 다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일어나서 강솔은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진석이 함께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전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돌아왔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 시간이 가까웠다. 그들은 아래층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고, 강솔은 침대에 몸을 던지며 말했다. “사장님, 하루만 더 쉬고 내일 출근하면 안 될까요?” 진석은 강솔의 어깨를 살짝
진석은 드라이어를 들고 와 침대 옆에 앉아 천천히 강솔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강솔은 눈을 감은 채, 진석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질 때 느껴지는 편안함에 빠져 있었다. 머리가 다 마르기도 전에 강솔은 반쯤 엎드린 채 잠들어버렸다. 진석은 드라이어를 치우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그는 서재로 가 몇 통의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한 뒤,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 위를 보니 강솔은 이미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 끝으로 굴러가 있었다. 진석은 강솔을 다시 안아 제자리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준 후, 그녀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강솔은 한 시간쯤 자고 나서 진석의 입맞춤에 깨어났다. 아직 정신이 몽롱했지만, 그의 뜨거운 가슴이 자신에게 닿는 게 느껴졌다. 창문에 드리운 커튼이 서서히 닫히면서 방안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강솔의 작고 귀여운 항의는 진석의 키스에 의해 완전히 제지당했다....오후 5시, 강솔은 침대에 엎드린 채 밖에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욕실에서 나온 진석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나 배고파!” 진석은 안경을 쓰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아직 축축했다. 깊고 냉철한 눈매였지만, 눈빛은 부드러웠다. “뭐 먹고 싶어?” 강솔은 눈을 살짝 굴리며 말했다. “우리 스승님 뵈러 가자, 저녁 시간에 딱 맞을 거야.” “좋아.”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당연하지!” 강솔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리고 진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진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네 옷이 도착했으니까 내가 가져올게. 잠시만 쉬고 있어.” 강솔은 진석이 방을 나서는 것을 보며, 이불을 확 걷어 머리 위로 덮어버렸다....두 사람이 도경수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양재아가 진석을 보자마자 달려와 말했다. “진석 오빠!” 진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일 뿐이니, 호칭에 예의를
도경수는 바로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있냐?” 강솔이 대답했다. “위층에 있어요, 곧 내려올 거예요.” 도경수는 그제야 깨닫고 물었다. “너랑 진석이랑 사귀는 거야?” 강솔의 귓불이 살짝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도경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강솔의 이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톡 쳤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너!” 이에 강솔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부님은 왜 진석이 이제 눈 떴다고는 안 하세요?” “아, 진석의 마음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어. 네가 눈치가 너무 없었던 거지! 이제야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도경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진석이가 너에게 쏟은 그 마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강솔은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 “맞아요, 오빠가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알면 됐어. 앞으로는 너도 진석에게 잘해줘야 해.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도경수는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 “알겠어요, 스승님 말이라면 제가 어디 감히 안 듣겠어요?” 강솔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정말 그렇게 순종적이라면, 내가 분명히 10년은 더 살 수 있겠구나!” 강솔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히 백세까지 징수하실 거예요!” 두 사람은 잠시 웃고 떠들다가, 강솔은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저 소고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배고파서 더는 못 참겠어요. 저 가서 아주머니한테 소고기 좀 덜어달라고 할래요.” “가라, 가. 배고프면 먼저 먹어도 된다.” 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강솔은 소고기 냄새에 이끌려, 먹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갔다.잠시 후, 진석이 들어와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도경수는 고개를 들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기분이 풀렸냐?” 진석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눈빛에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벌써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겨울 동안 잠잠했던 강성의 거리도 어느새 화사한 색들로 물들었다. 강아심은 밤 8시가 되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사무실의 불을 끄고 회사 건물을 나서니, 거리의 불빛이 눈부셨다. 도로는 사람들로 붐볐고,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창문을 반쯤 내리자 바깥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간판에 봄옷 광고가 번쩍이는 것을 보며, 아심은 그제야 봄이 정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아심은 다시 차를 몰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늦은 시간이었고, 피곤해서 집에 가서 밥을 해 먹을 기운이 없던 그녀는 자주 가는 단골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사람이 많았다. 데이트하는 연인들, 아심처럼 퇴근길에 저녁을 먹으러 들른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심은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식사가 나오기 전 잠깐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을 때도 이렇게 바쁘면, 몸이 보복할 거야!” 청아한 목소리에 아심은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띤 지승현이 서 있었다. 그는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사가 나왔으니 먼저 밥부터 먹어, 일은 잠시 접어둬. 일이야 언제나 바쁘지만, 하루 세 끼는 제대로 먹어야지.”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기서 널 보게 될 줄이야. 어떻게 여기에 있어?” 그러자 승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우연히 마주쳤다고 하면 믿을 거야?” 아심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 솔직히 말할게. 우연은 아니야. 정아현 씨가 네가 자주 이곳에 온다고 해서 일부러 와봤어.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만났네!” 승현이 웃으며 말하자, 아심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 “먼저 밥부터 먹자. 다 먹고 나서 이야기해.” 승현은 자신의 쟁반을 가져오며 말
“정말?” 지승현은 웃으며 즉시 직원을 불러 토마토 크림수프를 주문했다. 곧이어 수프가 나오자, 그는 한입 맛보고 눈이 반짝였다. “정말 맛있다! 특히 이 바삭바삭한 게 입안에서 너무 고소해.” “그건 비스킷이야.” 강아심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맛있어!” 승현은 감탄하며 수프를 크게 한 모금 먹었다. 결국, 승현이 주문한 다른 요리들은 절반도 먹지 않았지만, 토마토 크림수프만큼은 싹싹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둘은 함께 식당을 나섰고, 아심은 그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난 차 가지고 왔으니까 먼저 갈게.” “잠깐만!” 승현은 서둘러 자신의 차로 가더니 조수석에서 두 개의 가방을 꺼내 아심에게 건넸다. “이건 내가 직접 준비한 새벽부터 끓인 연잎차야. 너는 요즘 너무 바쁘니까, 매일 한 병씩 마시면 건강에 좋을 거야.” 이에 아심은 즉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러지 않아도 돼. 필요한 거 있으면 내가 직접 살게.” “이건 시중에서 파는 게 아니야. 집에서 아주머니가 정성껏 끓여서 밀봉해 둔 거라 신선하고 깨끗해. 밖에서 파는 것과는 달라.” 승현은 가방을 강아심에게 내밀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정말 괜찮아, 난...” 아심이 거절하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승현은 그녀의 차로 가 조수석 문을 열고 손가방을 넣어버렸다. “이미 다 준비해 놓은 건데, 네가 안 마시면 그게 더 아깝잖아.” 승현은 문을 닫으며 덧붙였다. “마시기 전에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마셔. 차가운 걸로 먹지 말고.” 아심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고맙단 말은 이제 그만해. 얼른 집에 가서 푹 쉬어. 일은 내일 해도 되니까, 퇴근했을 때는 좀 편히 쉬어야지.” 승현은 아심이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아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잘 가.”“조심해서 가!” 승현은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배웅했고, 아심은 차에 올라타
강아심은 연잎차를 모두 냉장고에 넣고 나서 지승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포스트잇 봤어. 그림 정말 예쁘더라, 고마워!] 지승현은 즉시 답장을 보냈다. [네가 좋아한다니 다행이야.] 아심은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 화면에 타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제발 더 이상 이렇게 하지 말아줘. 난...] 하지만 아심의 메시지가 완성되기 전에, 승현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 [비록 너와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난 네가 일찍 자길 더 원해. 자,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자도록 해.][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잘 자!] 아심은 승현의 메시지를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자신이 작성한 글자를 하나씩 지웠다. 그리고는 간단히 두 글자만 보냈다. [잘 자!] ...다음 날 회사에 도착하자, 비서 정아현이 한 무더기의 서류를 안고 들어왔다. “서류들 사인 부탁드려요.” 아심은 서류들을 전달하면서 그동안의 업무 보고도 했다. 보고가 끝난 후, 강아심이 천천히 물었다. “내가 자주 가는 그 식당을 지승현에게 알려준 게 아현 씨 맞죠?” 정아현은 살짝 긴장한 듯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대답했다. “네, 저한테 물어보셔서 말씀드렸어요.” 아심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내가 매일 하는 일도 다 그 사람한테 보고할 건가요?” 아현의 얼굴은 금세 창백해졌고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그 사람 비서로 일해요. 내 일정 보고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거니까.” 아심은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러나 아현은 아심이 화가 난 것을 직감하고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사장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시간이 증명해 줄 거예요. 영원히 사장님을 따를게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절대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아심은 아현을 흘겨보며 말했다. “점심은 채식만 먹도록 해요.” 아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었다.
정서적으로나 이치적으로나, 아심은 병문안을 갔어야 했다. 그래서 아심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정아현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후, 차를 몰고 지승현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밖에서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산 아심은 VIP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네댓 명의 방문객이 있었고, 조금 전 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도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눴다.승현은 원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심이 들어오자마자 그의 눈이 반짝이며, 곧바로 일어나 앉았다.“아심아!”다른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며 아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아심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옆에 있는 링거를 한 번 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승현은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작은 문제일 뿐이야.”아심이 다시 물으려던 순간, 한 여자가 들어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또 친구가 왔나 보네?”아심은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틀며 한 걸음 물러섰고, 들어온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명품 정장을 입고, 약간 웨이브가 있는 짧은 머리와 정교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관리가 잘 된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승현과 약간 닮아 있었다.이에 승현이 소개했다.“이분들은 다 제 친구들이에요!”그리고 아심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덧붙였다.“이분이 내 어머니시고!”승현은 말을 마친 뒤, 특히 아심을 한 번 쳐다보았다. 승현의 소개에 모두가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어머니!”“어머니, 정말 젊으세요!”“어머니께서 정말 예쁘시네요. 아드님이 잘생긴 이유가 있었네요, 엄마를 닮아서 잘생겼던 거네요!”...이때 승현이 물었다.“엄마, 왜 또 오셨어요? 집에 가서 쉬시라니까?”그러자 권수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나를 귀찮아할 자격이 있니? 네가 한 일을 좀 돌아봐. 어릴 때부터 너는 토마토를 먹을 수 없었잖아.”“먹으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걸 네가 모를 리가 있어? 어젯밤에 가사 도우미가 네 방에 옷을 갖다주러 가지 않았으면, 지금 이 침대에 누워
소희는 강재석과 함께 잠시 시간을 보냈다. 조용한 회랑에 앉아, 두 사람은 멀리 만찬장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술잔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재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즐거워?”소희는 고개를 돌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 즐거워요.”소희의 이 기쁨은 임구택이 선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오빠가 그녀에게 준 선물이기도 했다.오늘의 결혼식에서 소희는 감동했고,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컸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강재석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만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해.”소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오늘 도도희 이모를 만났어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는데, 양재아를 만난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물어보시더라고요.”강재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도도희도 마음속으로는 재아가 정말 자기 딸인지 궁금한 거겠지.”도도희는 마음속 깊이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딸을 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막상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두려워 차분하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그럼 도도희 이모는 재아를 만났나요?”“만났지.”강재석은 약간의 주름이 진 이마를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그런데 그 아이는 머릿속 계산이 많은 것 같더구나. 도도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어.”소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강재석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늘은 네 결혼식이다. 너는 그저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면 돼.”“도도희와 재아의 문제는 지금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야.”“유전자 검사가 끝나고 모든 게 명확해진 다음, 그때 나타나는 문제가 진짜 문제야. 그때 가서 우리가 해결책을 찾으면 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소희는 강재석의 어깨에 기대어 밤하늘에 펼쳐진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며 낮은
강시언은 약간의 불쾌함을 담아 미간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강아심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다시 기대게 했다.“자.”아심은 순순히 대답했다.“네.”아심은 눈을 감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시 눈을 떴다. 아심의 눈은 별빛을 가득 담은 듯 반짝였고, 시선은 시언의 목젖에 고정되었다.곧 손가락이 천천히 그의 목으로 올라갔다.시언의 목은 곧고 강인한 근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녀의 손은 투명한 매니큐어가 발린 매끄럽고 깨끗한 손이었다.아심의 손톱 끝이 그의 목젖 위를 살짝 스치자, 강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속삭이듯 물었다.“여기, 제가 입 맞춰도 돼요?”시언은 그녀를 흘낏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안 돼.”아심은 조금 찡그리며 물었다.“왜 안 되는데요?”시언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아심, 너 지금 취한 척하는 거 아니야? 안 취했으면 내려서 걸어가.”아심은 손을 시언의 목에서 내려 긴장한 듯 그의 목을 더욱 단단히 껴안았다. 숙소로 가는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배를 타거나 차로 돌아가는 것. 시언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심을 품에 안은 채 다리를 건너 우회로를 걸어가기로 했다.술기운이 깃든 목소리로 강아심이 물었다.“우리는 왜 배를 타지 않아요?”시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배가 흔들리면 너 토할까 봐.”“그럼 왜 차는 안 타요?”“널 안고 어떻게 운전하냐?”“그럼 제가 조수석에 타면 되잖아요.”“네가 조수석에 앉으면 내가 어떻게 널 안고 있을 수 있겠어?”아심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말했다.“그런가 보네요.”아심은 더욱 안심한 듯 시언의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숙소에 도착한 후, 시언은 2층 방까지 그녀를 품에 안고 갔다. 방에 들어가 아심을 침대에 내려놓고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굽혀 물었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침실의 벽등에서 따스한 노란빛이 흘러나왔다.아심은 시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목이 좀 말라요.”“물을
강시언은 도도희와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은 강아심과 시야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심이 잔을 한 잔, 또 한 잔 마시는 모습을 보고 점점 얼굴을 찌푸렸다.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아심이 취한 것 같네요. 가서 봐야겠어요.”도도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많이 늦었네요. 저도 이제 가서 쉬어야겠어. 아심이 잘 부탁해.”시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그렇게 할게요.”시언은 긴 다리로 빠르게 시야 일행 쪽으로 걸어갔다.아심은 손에 술잔을 들고 시야가 백협에서 겪은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생동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그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누군가 자기 손에서 술잔을 빼앗아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강시언 씨, 함께 한잔하시겠어요?”아심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시언은 그녀의 눈을 한 번 보고 바로 알아챘다.‘취했군.’술이 들어가면 아심의 눈빛은 유난히 순진해 보였다.시언은 고개를 들어 시야와 시경을 비롯한 일행을 쭉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희가 술을 억지로 권했나?”시야는 시언의 목소리에 약간의 화가 담긴 것을 눈치채고,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억지로 마신 게 아니에요. 다들 기분이 좋아서요. 기분 좋으면 한두 잔 더 하게 되잖아요?”그는 고의로 비틀거리며 자신도 취한 척했다.“아무도 저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았어요. 화내지 마세요.”아심은 시언의 옷깃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했다.“앉아서 같이 술 마셔요!”시언은 아심의 손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시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시경은 긴장한 듯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취했으니 물러날게요. 둘이 이야기를 나누시죠.”시경은 시야와 다른 일행에게 눈짓을 보내자, 모두 알아차리고 한 사람씩 자리를 떠났다.시야가 제일 먼저 나갔고, 순식간에 강시언과 강아심만 남게 되었다.“왜 당신만 오면 모두 가버리는 걸까요?”아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네.’강시언은 속으로 생각하며 잔을 천천히 기울였다.“보아하니, 지승현은 여전히 강아심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아심과 다시 잘해보려는 건 아닐까 다시?”그리고 도도희가 제안했다.“내가 아심을 이쪽으로 불러올까?”시언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시언은 다시 술잔을 들며 아심 쪽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몇 분 후, 도도희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아심의 주위에는 다섯에서 여섯 명의 남자가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너무 멀어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도도희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술에 취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 아닐까?”하지만 시언은 상황을 보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신경 쓰지 마세요.”아심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시야와 시경을 포함한 시언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단숨에 지승현을 옆으로 밀어냈다.승현은 화를 내려고 했지만, 시야가 시경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태연히 말했다.“우리는 아심 씨의 친구예요. 오랜만에 만난 사이니, 자리를 양보해 주시겠어요? 우리가 옛날이야기를 좀 나누려고요.”겉으로는 예의 바른 말투였지만, 표정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양보해도 좋고, 양보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자리는 우리가 차지할 거니까.’시야는 그야말로 무례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심을 바라보자, 아심은 약간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내 친구들이야. 미안해.”승현은 아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그렇지만 시야와 시경을 포함한 그들의 모습은 단정한 옷차림과는 달리, 일반인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살벌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승현은 그런 분위기에 약간 불안해졌고, 떠나기 전 강아심에게 말했다.“멀리 가지 않을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불러.”그 말에 시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함께 한잔하시겠습니까?”아심은 시야가 의미하는 한 잔
강시언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와서 건배를 청하려 했지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지나갔다.시언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으며 물었다.“왜 도경수 할아버지랑 같이 안 계세요?”도도희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답했다.“오랜만에 만나면 결국 싸우게 되더라고. 우리 부녀는 전생에 원수였나 봐. 그 업보를 이번 생까지 끌고 온 거지.”도도희는 아침에 아버지를 봤을 때 한동안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는 이제 늙어서 젊은 시절처럼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어쩌면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강압적이고 독선적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양재아의 말에 휘둘리는 모습까지 보였다.만약 재아가 그녀의 딸이 아니라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도도희 자신도 알 수 없었다.“싸우셨나요?”시언이 길고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강아심과 양재아 때문인가요?”도도희는 시언의 예리함에 전혀 놀라지 않은 채, 잔에 술을 따르며 조소 섞인 미소를 지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시언은 말을 이었다.“아심은 제가 지켜요. 양재아의 작은 계략으로 아심이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 일로 할아버지와 다투지 마요.”“할아버지는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 양재아를 손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그렇게 감싸고 아끼는 모습은 오히려 이재희에 대한 깊은 죄책감 때문일 거예요.”도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생각해 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도도희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난 양재아에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만약 걔가 내 딸이라면, 우리가 20년 넘게 떨어져 있었더라도 무언가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지만 양재아를 볼 때, 난 이재희와 연결될 만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이번엔 또 뭐야? 강아라니’아직도 그리운 배강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불렀던 별명이 떠올랐다.윤성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소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왜 배 부사장님을 해치겠어요? 그런 헛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 부사장님이 고용한 사람이죠? 일부러 쇼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쇼?”시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연기하는 게 훨씬 낫네요!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 배강 씨를 함정에 빠뜨리러 온 주제에, 그렇게 억울한 척 깊이 있는 연기를 하다니!”“내가 배강 씨를 잘 몰랐다면, 진짜 믿었을지도 모르겠네요.”성아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당신이 배강을 안다고요? 만약 배강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건 저 사람이 바람둥이라는 뜻이겠죠!”이에 시연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배강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배강을 사랑하는 거죠!”시연은 배강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강아, 걱정 마. 내가 이 여자가 거짓말쟁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 당신은 저 여자를 모를뿐더러, 저 여자도 당신을 전혀 모르니까!”“이게 다 무슨 일인가?”배기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녹음을 들려드릴게요!”소시연은 아까 녹음한 내용을 틀었다. 녹음은 윤성아가 빨간 드레스의 여자에게 배강이 어떻게 언니를 화나게 했나요? 라고 묻는 부분부터 시작됐다.녹음의 후반부는 더욱 명확했다.배강이 정진아 집안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정진아가 이를 앙심에 품고, 배강의 맞선을 망치고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며 장씨 그룹까지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성아는 녹음 내용을 듣다가 도망치려 했고, 배강이 다가와 시연에게 말했다.“놔줘요. 그냥 가게 두고요.”배강은 냉소를 띠며 덧붙였다.“그리고 돌아가서 정진아에게 전하세요. 오늘 일에 대해, 정진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시연이 손을 놓자 성아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이윽고 배기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윤성아는 망설이며 물었다.“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그 말을 믿을까요?”정진아는 냉혹하고 독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배강의 맞선 자리를 망치면 되는 거야!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망신당하게 만들고, 동시에 장씨 그룹에도 타격을 줄 수 있어.”“이걸로 우리 집안의 복수를 갚는 거지.”만약 회사 부사장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린다면, 장씨 그룹도 연관되어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어쩌면 내일 주식시장에 변동이 생길지도 모른다.진아는 한꺼번에 배강과 장씨 그룹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다시 소곤소곤하며 세부 사항을 논의한 뒤,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소시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입안 가득 치즈 케이크를 물고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약자를 돕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시연은 케이크를 삼키고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갔다....한편, 배강의 부모는 배강을 위해 맞선 상대를 소개하고 있었다. 배강의 집안은 꽤 괜찮은 편이었고, 부모가 소개한 상대 역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다.여자는 대학 졸업 후 직접 회사를 차려 성공을 거두고 있어,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컸다.지금 두 집안은 막 서로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좋은 결과가 나올 듯했다.그 순간, 파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부사장님!”모두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배강은 성아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저를 아시나요?”그러자 성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죠? 어제 밤에 우리 함께 있었잖아요.”배강은 순간 멍해졌고, 그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함께 있던 상대방 집안 사람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표정이 굳었다.배강의
“아까 이문 오빠는 알아보지 못했어요.”“그런데 난 한눈에 알아봤잖아!”유진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고, 유진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그건 내가 사장님 눈에만 비치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니 나를 보자마자 알아챌 수밖에 없지.”서인의 심장이 순간 철렁이었다.“자, 춤춰요!”유진은 서인의 다른 손을 자기 허리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춤 한 곡 추는 거예요. 사장님이 저격용 총을 다루는 것보다는 어렵진 않을 거고요.”“만약 사장님이 안 따라주면, 우리가 여기서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게 오히려 더 눈에 띌 거예요.”서인은 한숨을 쉬며 속으로 이 어린 여자애에게 종종 속수무책이 되는 자신을 탓했다.“난 정말 춤을 못 춰.”“내가 가르쳐준다잖아요. 내가 천천히 추고, 사장님은 내 페이스에 맞춰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유진은 왼손으로 서인의 손가락을 깍지 끼고, 고개를 들어 밝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됐어요? 시작해도 돼요?”결혼식의 즐거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서인은 오늘만큼은 유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마음을 따라주기로 했다.서인은 손바닥으로 유진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며 드레스의 실크 같은 감촉과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느꼈다.손가락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펴졌고, 서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약간 쉰 소리로 말했다.“좋아, 시작하자.”“내 리듬에 맞춰야 해요!”유진은 눈만 드러낸 가면 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눈 속에는 오로지 서인만이 비치고 있었다.서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맞췄다. 하지만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고정되었고, 서인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져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그와 반해 유진은 너무나 즐거웠고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서인의 단단한 팔과 유진의 기본적인 춤 실력 덕분에, 서인이 미숙하게 움직여도 유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춤을 이어갔다.회전하고 날아오르는 유진의 춤사위는 서인의 시선
유정은 아는 사람들을 만나 연달아 다섯, 여섯 잔의 술을 마셨다.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약간 어지러워져 바람을 쐬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그때 누군가 다가와 차가운 과일 주스를 건네며 말했다.“유정 씨,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들러리도 하시고, 손님도 상대하시느라 힘드셨겠네요.”유정은 주스를 받아들며 가볍게 웃었다.“손님을 상대한다고 하기엔 그렇죠. 다들 좋은 분들이고, 또 우리 사장님의 경사이니 다들 즐겁게 몇 잔씩 하게 되네요.”진우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일로 실례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유정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에요. 그런 상황에서 우행 씨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어요.”“처음인가요?”“처음인가요?”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고, 잠시 멈칫한 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정이 먼저 말했다.“네, 처음이에요!”우행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저도 처음이라, 경험이 없네요.”“그래도 진짜 침착하셨던데요!” 유정이 칭찬하자, 우행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정 씨도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주위에서 떠들어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하고 단아했죠.”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장님 곁에 있다 보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우행은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사장님도 그럭저럭 괜찮죠. 다만 갑자기 일이 생기면 저한테 전화해서 대신 처리하라 하시곤 한 달씩 사라져 버리세요.”유정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공감되나요?”우행이 묻자 유정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유정은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시원한 바람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부드럽게 말했다.“저기 친구가 보여서요. 먼저 가볼게요!”“네.”우행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과일 주스, 고마워요!”유정은 몇 걸음 물러난 뒤, 컵을 들어 보이며 고운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