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은 차를 몰고 배석류와 함께 작업실을 떠났다. 30분 후, 그들은 한 고급 저택 앞에 도착했다. 석류는 강솔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근처의 저택들은 정말 비싸네요. 분명 손이 큰 고객인 것 같아요.” 강솔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소희가 거실에서 나왔다. 이에 석류는 놀라서 급히 공손히 인사했고, 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솔에게 말했다. “조길영이 곧 올 거야.” 강솔은 안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어디서 찾았어?” “해성에서.” 강솔은 놀라며 물었다. “본인이 한 일이 아니라면 왜 숨은 거지?” 이에 소희는 차분하게 답했다. “아마 누가 했는지는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사람을 두려워해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잠시 숨은 거지.” 강솔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네.” 석류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물었다. “총감님, 총감님을 모함한 사람을 찾았어요?” “곧 올 거예요!” 강솔은 여전히 같은 말을 했다. 석류는 더 물으려 했지만, 마침 강솔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로 진석이였다. 그는 오늘 몇 시에 퇴근할 거냐고 물었다. 진석 쪽은 이제 막 아침이 밝았고, 아직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소식을 모르고 평소처럼 강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강솔은 진석에게 답장을 보냈다. [지금 소희랑 있어. 조금 늦게 들어갈 거야. 들어가서 전화할게.] [소희가 회사에 갔어?] [응.][그러면 너희들 얘기 잘 나눠. 밥 먹고 일찍 들어가.] [알겠어.] 소희가 물었다. “선배야?” “응.” 강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쪽 상황은 모르는 것 같아서 굳이 얘기하지 않으려고.” 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응, 선배 쪽도 복잡하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 우리끼리 해결하자.”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세 명의
조길영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 몰라요.” “좋아요, 그럼 나는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겠네요. 경찰이 오면 조길영 씨도 같이 연행돼서 조사받을 텐데, 다른 일이 드러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어요.” 소희는 휴대폰을 꺼내며 경찰에 전화를 걸 준비를 했다. “하지 마세요!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길영은 다급히 소희를 막으려고 다가섰지만, 뒤에 있던 경호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움직이지 마세요!” 길영은 온몸이 떨리며 소희를 향해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제발 신고하지 마세요. 다 말할 테니까, 신고는 제발...” 길영은 자수성가한 사업가였고, 사업을 여기까지 키우면서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찰과 얽히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말해보세요.” 소희는 휴대폰을 내려놓자, 길영은 주름진 이마를 찌푸리며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그건... 내 전처, 고하선이 한 짓이야!” “뭐라고요?” 강솔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당신 전처라고요?” “맞아요!” 길영은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찡그렸다. “그 사람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혀요. 이혼할 때 재산 대부분을 넘겼는데도, 내가 결혼하려는 걸 알고 일부러 방해하려고 한 거죠!” 강솔과 소희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예상 밖의 답변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소희는 길영이 전처 하선에 대해 말할 때 강솔과 자신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옆에 있던 배석류는 긴장하며 휴대폰을 움켜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에 소희가 물었다. “당신 전처는 어떻게 당신이 그날 강솔과 만난다는 걸 알았죠?” 길영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가 물어봤는데,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투를 들어보니 누군가가 미리 알려준 것 같았어요.” 길영은 말을 마치고 강솔 옆에 있는 석류를 바라보았다. 석류는 이 상황에 완전히 겁을 먹고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 “저 아니에요, 제가
그날 조길영이 강솔을 만나러 올 때, 배석류는 자신이 사진을 찍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미리 심서진을 찾아갔다. 서진은 드디어 기다리던 기회가 왔음을 알고, 당연히 전력을 다해 석류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래서 서진은 카페에 있는 고향 친구인 손원명을 다시 찾아갔다. 원명은 서진에게 400만 원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과 동시에 CCTV를 고장 내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사진은 처음에 서진의 손에 들어갔고, 석류는 서진에게 사진을 요구했다. 그리고 석류는 화장실에 있을 때 그 사진을 길영의 전처 고하선에게 전송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사진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석류도 정말 몰랐다. 하선은 길영과 유사랑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했고, 서진은 강솔을 몰아세우고 싶어 했으니, 둘 중 누구라도 가능성이 있었다. 석류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울먹였다. “총감님, 정말 미안해요.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 강솔은 실망과 불신으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배석류 씨, 회사에 온 이후로 제 비서로 일해왔는데, 제가 잘못 대우한 적이 있나요?” 석류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렇게 큰일이 될 줄 몰랐어요. 언니를 해치려는 건 아니었어요.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에 소희는 차갑게 말했다. “해칠 의도가 없었다고요? 당신이 사진을 보고 나서 그걸 보낸 건 맞죠?”“사진 속 상황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그게 강솔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단 말인가요?”“계산할 때는 그렇게 똑똑하더니, 이제 와서 바보인 척하는 거죠?” 소희의 말에 석류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계속 흐느꼈다. 이때 길영이 끼어들었다. “강솔 씨, 이제 상황을 다 아셨죠? 저와는 정말 관계없는 일이에요!” 그 말에 소희가 대꾸했다.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경찰서에서 말하죠.” 길영은 급히 아첨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아까 신고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사모님께서 말씀하시길, 사장님이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끝난 후에 전해드리라고 하셨거든요.” 명우가 대답했다. “지금 어디에 있지?” 임구택은 말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남강로 경찰서에 있어요.” 임구택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고, 그가 급히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이번엔 부인이 싸운 게 아니라, 누군가가 북극 디자인 작업실을 모함했는데, 사모님이 그 사람을 잡아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명우의 설명에 구택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 “남강로 경찰서로 바로 가지.” “네!” 명우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구택이 도착했을 때, 경찰은 이미 대부분의 조사를 끝낸 상태였다. 조길영의 전처인 고하선이 경찰에 끌려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모두 자백했다. 하선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갈영과 유사랑을 이간질하려 했을 뿐인데, 경찰서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조사 과정에서 겁을 먹고 모든 것을 털어놨다. 구택이 들어서자, 소희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의 차가운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구택은 소희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때?” 소희는 고개를 들어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다들 자백했어. 문제 될 건 없어.” 그때 경찰서장이 빠르게 걸어와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 구택은 몸을 바로 세우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경표 서장님.” “사장님을 이렇게 모시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서장은 웃으며 말했고, 두 사람은 한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일은 꽤 큰 파장을 일으켰어요. 북극 디자인 작업실 측에서는 변호사를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죠. 손해 규모에 맞춰 요구하시면 돼요.” 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선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북극 디자인 작업실과 디자이너의 명예를 회복해야 해요.” 서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소희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심서진은 주예형에게 해고당했으니 분명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거야. 어떤 극단적인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정말 조심해야 해. 사형도 요즘 집에 없으니, 차라리 우리 집에서 지내는 게 어때?” 강솔은 고개를 젓자, 그녀의 짧은 머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나, 너희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괜찮아, 난 진석이 있는 집에 있어.”“우리 아파트는 출입이 엄격하고, 회사에도 경비가 있어서 심서진이 날 해치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거야.” 소희는 말했다. “그래도 내가 사람을 보내서 심서진을 계속 찾을게.” “응.” 강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배석류는 어떻게 처리할 거야?” “업계에 통보하고, 해고할 거야.” 소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강솔은 업계 통보가 배석류의 직업적 생을 끝낼 것을 알았다. 석류에게 동정은 없었지만,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그녀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어. 평소엔 우리 둘 사이가 꽤 좋았는데...” 막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그러나 소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배석류가 아직 너에게 해가 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강솔은 잠시 멈칫하다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조길영과 관련된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사진을 찍어서 나를 모함한 것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없으니, 날 더 이상 해칠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강솔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여주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이제 너랑 사장님은 집에 가.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 나도 집에 갈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 “응, 알겠어!” 큰 문제를 해결한 후, 강솔은 기분이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소희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소희는 구택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차 안에서, 구택은 소희를 품에 안고 물었다. “기분이 괜
많은 네티즌이 자신이 속았다는 듯이 분노하며 조길영과 고하선을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욕했다. 또한 이제 와서 자신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그랬잖아, King의 작업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 그러나 다른 네티즌들은 고하선도 잘못은 했지만, 동시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조길영의 내연녀인 유사랑의 과거를 파헤쳤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랑의 개인 계정으로 가서 비난을 퍼부었다. 온라인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열기가 식기는커녕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강솔은 웹페이지를 닫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진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솔은 감자칩을 먹으며 다시 드라마에 몰두했다. 밤이 되자, 강솔은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진석의 침대에 누워 그에게 잘 자라고 인사했다. 강솔은 밤중에 꿈을 꿨다. 진석이 돌아왔고, 둘이 침대에서 키스를 하는 꿈이었다.강솔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녀는 이불을 꼭 끌어안고, 이불에 배어 있는 은은한 민트 향을 맡으며, 진석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다음 날, 강솔은 회사로 출근했다. 원래 배석류의 해고를 공식 발표하는 공문을 작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서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윤미가 사무실에서 나와 빠르게 강솔에게 다가오더니 조용히 물었다. “혹시 진석 사장님이랑 사귀고 있나요?” 그 말에 강솔은 잠시 멍해졌다. “배석류가 말한 건가요?” 최근 석류 때문에 의심이 많아진 강솔은, 그녀가 해고된 후 앙심을 품고 회사 단체 채팅방에 헛소문을 퍼트린 거라고 생각했다. 윤미는 고개를 저으며, 강솔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경성대 포럼을 한 번 보세요.” 강솔은 컴퓨터를 켜서 경성대 포럼에 접속했다. 그리고 가장 핫한 게시물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게시물의 제목은 경성대 재원 강솔, 희대의 어장관리녀 라는 것이였다. 게시물 내용은 장
구택은 소희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타자를 치며 경성대 포럼을 찾아냈다. 게시물은 여전히 상단에 걸려 있었고, 매우 눈에 띄었다. 소희는 그 글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에 구택은 소희를 더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화내지 마, 내가 해결할게.” “심서진이 숨어버렸어. 간미연한테 연락해서 그녀를 찾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 구택은 게시물을 아래로 스크롤 하다가 진석의 사진을 보고는 소희를 막아섰다. “연락할 필요 없어.” “왜?” 구택의 날카로운 눈빛 속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서진이 진석의 사진을 올렸어.” “선배 사진이 왜?” 소희가 의아하게 묻자, 구택은 미소를 살짝 지으며 대답했다. “진석의 사진을 올렸으니, 이제 네가 나설 필요가 없어.” 구택의 말대로,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게시물은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진석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흔적 없이 삭제되었다. 또한, 진석에 대해 언급했던 사람들의 계정도 차단되었다. 소희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려던 그때, 강솔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소희, 심서진이 잡혔어!] 소희는 놀라며 물었다. “이렇게 빨리? 너 경찰에 신고한 거야?” [아니, 주예형이 전화했어. 서진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대. 경찰이 외곽에 있는 한 임대주택에서 체포했어.]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됐네. 참고로, 인터넷에 올라왔던 글도 이미 다 삭제됐어.” [나도 봤어!]“심서진에 관한 소식은 내가 계속 지켜볼 테니까, 중요한 게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 전화를 끊고 나서, 소희는 구택에게 물었다. “우리, 심서진을 고소해서 감옥에 더 오래 있게 만들까?” 그 말에 구택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당분간 못 나올거야.” 소희가 다시 포럼을 새로고침하자, 예형이 실명으로 올린 글이 보였다. 그는 먼저 모두에게 사과한 후, 자신과 강솔은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다고 밝혔다
NY시의 새벽이 막 밝아올 무렵, 진석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는 메시지를 열어보았고, 그의 짙은 눈동자는 차가운 아침 햇살보다 더 서늘하게 변해갔다. 사진이 많았고, 대부분 강솔과 주예형이 함께 있는 사진이었다. 강솔이 회사의 리셉션에 서서 한 아름의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저녁 무렵, 사무실 앞에서 예형과 나란히 서 있는 강솔의 모습. 특히 한 장은 주예형이 강솔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깊은 애정을 담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강솔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해질녘의 마지막 햇살이 강솔의 반쯤 감긴 눈 위에 떨어져, 약간의 슬픔을 더하는 듯했다. 사진은 너무나도 잘 찍혀 있었다. 빛, 인물, 배경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고정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강솔은 분명히 진석에게 예형을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만난 것이었다. 진석의 마음속에는 불꽃이 일렁였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 항공권을 예약하라고 지시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문 앞에 다다른 순간, 진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침 햇살이 차갑게 그의 안경에 반사되었다. 청백색의 햇살 속에 은은한 회색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고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곧이어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항공권 예약 완료했어요.] 진석은 잠시 침묵한 후,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취소해요.” ...강성모든 일이 해결된 후, 강솔은 편안하게 잠을 잤고, 아침에는 집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작업실로 향했다. 오전 중에 회의가 있었고, 회의에서 온옥은 강솔의 비서 문제를 언급하며 곧 신뢰할 만한 새로운 비서를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강솔은 유사랑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사랑과 조길영의 결혼은 확실히 끝이 났다. 사랑의 목소리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
도도희는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다시 인연이 있기를 바랄게.”도도희의 말뜻을 짐작한 아심은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볼게. 수업 들어가요!”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녀가 짐을 든 걸 보고 창가에 머리를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언니!”“아심 언니, 다시 돌아올 거예요?”“누나, 우리 모두 누나를 그리워할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강성에 있는 대학에 와야 해!”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아심은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 머물지 않고 도도희에게 인사를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차에 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강시언은 2층으로 올라가 그 오래된 창고 방에 들어갔다. 그의 키 큰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밖의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너 나한테 복수하는 거냐?”이 시간 동안 그녀의 애매한 태도와 고통스러운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시언은 처음으로 차갑게 아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고,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의 온기와 친밀함이 마치 빗속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텅 빈 회색만이 남아 있었다.아심은 운전 중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눈을 살짝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시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넌 모든 걸 계산했겠지만, 네 마음은 계산해 봤냐?”아심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본인이 분명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특수 요원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시언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게 했던 말 중 진심이 뭐야?”아심은 천천히 대답했다.[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당신에
다음 날.강아심은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방 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여보세요?”[아심아!] 전화기 너머에서 지승현의 슬픔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그 말에 아심은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몸은 깨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온화하던 김후연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심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아심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 후, 별장의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 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배웅은 사양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다.채팅방에서 모두가 놀라며 아쉬워했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강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답장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집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닫고 나섰다.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강시언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고 아심을 찾으려 올라가던 중이었다.아심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본 그는 마음이 답답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아심이 대답했다. “강성에 일이 좀 생겨서요.”시언은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어젯밤 일 때문이야? 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요!” 아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아심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언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심!”아심은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안 가면 안 될까?”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말처럼, 간절하게 이어졌다. “안 가면, 안 돼?”아심은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강시언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이에 아심이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쉬세요.”“그래!”세 사람은 함께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헤어졌다. 시언과 아심은 각자 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우미는 이미 퇴근해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시언이 말했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뭐라도 좀 준비해 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심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어요. 그냥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그럼 그렇게 해. 만약 밤에 배고프면 언제든 전화해.”시언의 말투는 다정했고, 아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걸어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 보이는 듯해 말문을 열었다.“이번 일, 나도 미리 알지 못했어.”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알아.”“하지만.” 시언의 목소리는 밤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야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치챘어. 몸을 감추려고 일부러 옷을 더 입고, 변성기를 썼지만, 그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차렸지.”“걔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라서 모른 척했어.”아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묶였을 때 시언이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점이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또한, 그 용병들이 두 사람에게 밧줄을 묶을 때 시언의 상처 부위를 피해서 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다만 그 당시 아심은 마음이 급하고 혼란스러워서, 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서 움직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난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진짜 노도의 부하들이 사람을 사서 복수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심은 얕게 웃으며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멈춰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