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했던 기억도 퇴색된 얼룩처럼 변해버렸다. 한참을 더 앉아있던 강솔은, 결국 완전히 식어버린 핫초코를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사로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아직 얼굴에 남아 있는 슬픔을 거두지 못했다. 이때, 강솔은 자신이 앉아야 할 의자에 앉아 있던 진석과 시선이 마주쳤다.진석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손에 든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표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디 갔다 온 거야?”아마도 가정 환경 때문에, 진석은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차갑고 냉정한 성격이었고, 평소에도 무표정한 얼굴을 자주 했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강솔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강솔은 진석이 무서웠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에게 들킨 것 같은 긴장과 불안이 그녀를 휘감았다.진석이 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늘 세심하고 따뜻하게 자신을 돌봐주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마치 아버지 같은 위압감도 있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강솔은 솔직히 말하기로 결심했다.“나 주예형을 만나고 왔어.”순간, 진석의 눈빛이 차갑고 어두워지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너에게 사과하고, 아직도 너를 좋아한다고 했겠지?”강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맞아.”“혹시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니겠지?” 진석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손에 든 만년필은 허공에 멈춰 있었고, 갑자기 불안해졌다.“미안해, 나는 여전히 주예형을 좋아해. 그에게 돌아가기로 했어.”강솔의 다음 말이 이럴까 봐 두려웠다. 강솔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분명히 미칠 것이었다. 그러나 강솔은 잠시 얼굴빛이 변하더니, 곧 말했다.“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나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어. 그 사람이 나를 배신했고, 얼마나 더러운 짓을 했는지 다 알게 되었어.”“근데 어떻게 다시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겠어?”진석은 표정 변화 없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에 든 만년필을 한 번 돌리고 말했다.“이리 와.”강솔이 진석의 쪽
운성.임시호와 노정순은 운성에 가보겠다고 줄곧 말해왔는데, 마침 소희와 임구택이 강재석을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두 사람의 결혼식 이야기도 나누기로 했다.강씨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강재석은 미리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모두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가사도우미인 이미수가 점심 준비가 다 됐다고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임시호는 일어나 강재석에게 술을 따라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소희와 구택이가 상의해서 결혼 날짜를 4월 29일로 정했습니다. 그날이 구택이 생일이라 소희가 신경을 많이 썼어요.”“저희는 기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직접 찾아뵙고 어르신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강재석은 소희를 한 번 바라보더니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한 일인데, 어느 날이든 좋은 날 아니겠나? 난 아무 의견 없다네!”노정순이 말했다.“어르신께서 워낙 개방적인 분이라 소희 같은 훌륭한 아이를 잘 키우신 거죠.”강재석은 진지하게 말했다.“소희는 어릴 때부터 많은 고생을 했고, 그 덕에 철이 일찍 들었지. 예전에는 오해가 있었지만 이제 더는 그 얘기하지 않겠네.”“앞으로는 두 사람이 나 대신 소희를 잘 돌봐주셨으면 좋겠어.”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제가 잘못했죠. 소희가 저를 기다리던 그 3년을 허비했으니, 이제부터는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임시호와 노정순 앞이라 소희는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누가 너한테 한 발짝도 떨어지지 말라고 했어?”그러자 구택은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다.“다들 알고 있잖아!”이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임시호도 말했다.“예전에는 소희와 구택이의 인연을 몰랐었지만, 다행히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네요.”“소희는 우리 임씨 집안의 며느리로 정해져 있었던 거죠. 인연이 일찍 오든 늦게 오든, 절대 비껴가지 않는 법이니까.”“좋은 말이군!” 강재석은 웃으며 말했
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너희 둘이 먼저 놀고 있어라. 난 한 시간만 잘 테니, 한 시간 후에 구택이가 와서 나랑 바둑 두자꾸나.”“네, 그럴게요!” 구택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강재석이 낮잠을 자러 간 후, 소희와 구택은 후원으로 향했다. 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있었고, 그 검고 긴 눈동자에 오후의 햇살이 비치며 온화한 빛을 띠고 있었다.“소희야, 드디어 우리 결혼하게 되었네!”두 집안이 서로 만난 후에야 결혼이 확정된 느낌이 들어, 그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소희는 정교한 이목구비에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 대체 나한테 어떤 예물을 준비한 거야? 설마 또 집을 준비한 건 아니겠지?”“맞아, 엄청나게 많은 집!”구택은 소회를 들어 올리며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너에게 언제나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줄 거야.”소희는 귀가 뜨거워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그렇게 변덕스럽지 않아. 나는 청원이 제일 좋아.”그러자 구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네가 이런 말을 하니,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게 청원 때문이었던 게 의심스럽네!”“물론 진짜지,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해?”소희는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구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난 뭐지?”소희는 그를 끌어안고 어깨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당신은 청원 안에 있잖아. 당신 없이는 청원이 있을 수 없지.”구택은 한순간에 표정이 풀어지더니, 소희의 얼굴을 살짝 키스하며 말했다.“욕심도 많네. 나도 갖고 싶고, 행복도 원하고, 집도 원하다니.”소희는 문득 구택이 예전에 했던 질문이 떠올라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내가 노리는 목표는 절대 놓친 적 없어!”“내가 너의 오래된 목표 중 하나겠네?”소희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절대 놓칠 수 없는 대상이지!”구택은 흐뭇하게 웃으며 소희를 안고 복도를 걸어갔다.“한 시간. 그동안 우리 뭐할 수 있을까?”구택의 낮은 목소리에 소희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급히 고개를 들
주란아는 넘버 나인에 미리 방을 예약했고, 모두가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강성의 거리는 온통 불빛으로 가득 차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차 안에 있어도 도시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아심은 창밖의 반짝이는 불빛들을 보며 문득 강시언을 떠올렸다. 그를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처럼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시언도 저쪽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시언은 이런 명절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아심을 떠올릴까?아심은 고개를 떨구고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분명 그럴 리 없었다. 애정 따위는 시언의 마음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지난 연휴 동안 시언이 보여준 배려는 그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이었을 것이다.아심은 고개를 들어 다시 창밖을 보며, 더 멀리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언이 무사하길 간절히 빌었다.넘버 나인에 도착해 6층으로 올라갔을 때, 강아심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온통 신선한 꽃들로 가득했다. 이에 아심은 잠시 놀란 듯 멈춰 섰다그 순간, 지승현이 꽃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며, 손에 커다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불빛 아래 붉은 장미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화려해 마치 그곳에 서 있는 강아심 같았다.승현은 두 손으로 꽃을 건네며 말했다.“명절 축하해!”아심의 뒤에서 놀라움과 감탄의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심은 고개를 돌려 아현을 바라보았고, 아현은 란아의 뒤로 숨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에 란아가 웃으며 말했다.“인정할게요. 지승현 씨가 저한테 부탁했어요. 오늘 다 같이 사장님과 명절을 보내자고 말이에요.”“지승현 씨는 미리 와서 준비했고, 우리는 사장님을 여기로 데려오는 역할을 맡았죠.”승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절대 화내지 마. 이건 내가 모두를 설득해서 한 일이니까, 화가 났다면 나한테 화를 내.”아심은 꽃을 받으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모두가 나랑 함께 명절을 보내주려고 한 건데
아심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이 없었다. 이때 정아현이 쿠키 한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사장님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전부 사장님 몫이에요!”다른 사람들도 모여들어 아심과 함께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명절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승현은 모두의 성화에 못 이겨서 남은 인생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노래를 부르다 말고 그는 자꾸 아심을 쳐다보았지만, 아심은 화면을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분위기에 속하지 않는 듯했다. 승현은 아심의 이런 성격이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팠다.마음이 아련해지면서, 노래는 점점 더 진지하고 감정이 실려 불리게 되었다. 그가 노래를 끝내자,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승현은 아심을 돌아보며 말했다.“노래 하나 부르지? 내가 도와서 곡을 선택해 줄게.”이에 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노래 못 불러.”승현은 아심을 강요하지 않고 마이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다시 그녀 옆에 앉았다. 방 안에는 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모두가 승현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술을 마시고 즐겼다. 승현은 언제나 부드러운 성격으로 그들과 어울렸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아심을 세심하게 챙겼다. 그의 배려 깊은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좋은 인상을 주었다. 아현은 아심의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장님, 지승현 씨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아심은 장난스럽게 물었다.“그런 남자가 마음에 들어?”그러자 아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저분이 저한테 관심 있겠어요? 사장님도 알면서 왜 그러세요!”아심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쥐고 미소만 지었고, 아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을 상사로도 친구로도 생각해요. 오늘 술을 마셨으니, 한마디만 솔직하게 할게요.”“사장님은 언제나 옆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아심은 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하고 싶은
사람들은 늦게서야 흩어졌고, 모두 술을 마셨기에 대리 운전을 불러 집으로 돌아갔다. 지승현은 굳이 강아심을 데려다주겠다고 나섰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아심은 그 자리에서 그를 거절할 수 없어 말없이 승낙했다. 차 뒷좌석에 앉자, 지승현이 패션 후르츠 맛 요거트 병을 내밀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패션 후르츠 맛이야.”아심은 잠시 그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언제 샀어?”“방금 대리 기사를 기다리면서 맞은편 가게에서 샀어. 네가 술을 좀 많이 마셨잖아.”“밤에 속이 불편할까 봐, 특별히 가게에 부탁해서 네가 좋아하는 시리얼과 말린 과일도 넣었어. 한번 먹어봐.”어두운 조명 아래, 승현의 얼굴은 따뜻해 보였고, 아심은 요거트를 받아 들고 말했다.“고마워.”“나한테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승현은 가볍게 웃었지만, 그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아심은 요거트 병을 쥐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참!”승현이 웃으며 말했다.“네 회사 업무를 몇몇 협력사에 소개했어. 걱정하지 마. 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회사들이야. 절대 임성현 같은 일은 없을 거야.”아심은 임성현 이야기에 자연스레 강시언을 떠올리며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얼굴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굳이 이렇게 부탁할 필요는 없어. 회사 일도 충분히 바쁜걸.”“네가 돈을 얼마나 벌든 상관없다는 건 알아. 그냥 네가 하는 일이 정말 훌륭하다는 걸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해서야.”승현은 밝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한마디면 되는 일이니까. 네가 잘해서 그들도 이익을 얻을 테고, 나중에 그들이 나한테 고마워할걸?”승현의 농담 섞인 말에 강아심도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가 한결 편해졌다.“그래도 고마워.”“그럼 네가 큰 계약을 따면, 나한테 밥 한 끼 사줘.”“알겠어!”차가 아심이 사는 곳
강솔은 갑자기 한 가지가 떠올랐다.“맞다, 전에 경성에서 스승님께 드리려고 산 목도리가 있었는데, 지난번에 스승님 댁에 갈 때 깜빡하고 가져가지 않았어. 일단 집에 가서 목도리 좀 가져올게.”지난번에 진석을 피해서 강성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불안정해서 소희와 함께 스승님을 보러 갔을 때도 목도리를 깜빡 잊었다.“그래.”진석은 차를 몰아 강솔이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강솔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주예형의 차가 아파트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에 강솔은 살짝 놀랐다. 오늘 카페에서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눈 뒤, 더 이상 그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시 강솔의 집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근데 도대체 왜 또 찾아온 걸까?진석은 예형의 차를 몰랐지만, 강솔의 표정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그는 얼굴을 살짝 굳히며 말했다.“내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고, 진석은 강솔의 손을 꼭 잡고 아파트로 올라갔다. 예형의 차를 지나칠 때, 강솔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살짝 빼려 했다.진석의 얼굴은 점점 차가워졌고, 강솔은 힐끗 쳐다보며 손을 놓지 않았다. 강솔도 이제는 담담해졌다. 그녀는 차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고, 모르는 척했다.아파트로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석은 강솔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왜 피했어? 그 사람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알까 봐?”“아니야!”강솔은 급히 설명했다.“그 사람이 오해할까 봐.”진석의 화가 치밀었고, 얼굴은 점점 더 무섭게 굳어지며 말했다.“오해? 그 사람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알까 봐 그렇게 두려워해? 아직도 그 사람에게 미련이 남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그런 뜻이 아니야!”강솔은 답답해하며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사람이 내가 오빠 때문에 자신이랑 헤어졌다고 오해할까 봐 걱정된다는 거야.”강솔은 급하게 말하면서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아마 오늘 예형의 그 말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도경수의 집에 도착하자, 강솔은 진석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하인이 슬리퍼를 가져오며 웃었다.“아가씨, 돌아오셨군요. 오늘 아침 어르신께서도 아가씨가 안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강솔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스승님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퇴근하자마자 바로 왔어요.”강솔은 신발을 갈아신으며 안쪽을 살폈다.“스승님은 어디 계세요?”“어르신은 서재에서 손님과 대화 중이시고, 양재아 아가씨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어요.” 도우미는 웃으며 말했다. 강솔은 안쪽으로 걸어가니, 재아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지, 소리가 시끌벅적했고 매우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강솔이 들어서자 양재아의 웃음은 순간 굳어졌다.강솔은 재아에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재아는 눈을 굴리며 리모컨을 내려놓고 강솔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강솔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코트를 침대에 올려두고, 옷장 문을 열어 갈아입을 옷을 꺼내려 했다.그때 재아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강솔 언니!”강솔이 돌아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재아는 공손하게 말했다.“사실 언니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강솔은 짧은 머리를 뒤로 쓸어올리며 대답했다.“그래, 말해봐.”재아는 한 발 더 다가와 말했다.“저 요즘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심심해서요. 언니네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너 디자인을 배운 적 있어?”재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렇진 않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강솔은 단호히 말했다.“좋아하는 것과 전공은 다르지. 우리 작업실 디자이너 채용 기준은 엄격해서, 넌 아마도 통과하지 못할 거야.”재아는 급히 말했다.“제가 배울게요! 원래 제 꿈이 보석 디자이너가 되는 거였거든요. 언니가 저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요?”강솔은 진지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네가 대학에서 무슨 전공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에 맞는 직업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
여진구는 바로 문을 나가려 했다. 임유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따라붙으며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선배 지금 우리 엄마한테 말하러 가는 거예요?”진구는 붉어진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어린애들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안 될 이유가 뭐야?”“안 돼요! 절대 가면 안 돼요!”유진은 온 힘을 다해 진구를 붙잡았다. 그러나 진구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줘서 떼어내려 했다.“손 놔!”“안 놔요! 선배, 선배가 뭔데 내 일에 참견죠?”“너희 가족은 전부 내가 너를 회사에서 관리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 난 너에 대한 책임이 있고!”“뭐요? 지금 미쳤어요? 선배 회사가 무슨 어린이집이에요? 선배는 그냥 내 상사죠,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잖아요!”“너 내 부서 사람이잖아. 내 책임이야!”“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요!”“넌 너무 철이 없어!”“뭐요? 철이 없다고요?”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순식간에 진구의 팔을 붙잡고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차려 했다. 진구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도, 유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봐 신경을 썼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서인이 커다란 뼈다귀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무뚝뚝했고, 목소리에도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비키지?”유진은 순간 당황해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서인은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야옹이에게 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애옹이는 음식 냄새를 맡고 서인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서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살짝 밀어냈다.서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애옹이는 몸이 가볍고 재빠른 덕분에 부드럽게 착지했다.야옹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마치 동정을 하듯, 입에 물고 있던 뼈 하나를 작은 애옹이 쪽으로 던졌다.그리고 유진은 이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인이 애옹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때
가끔 서인이 몇 마디 맞장구를 쳤지만, 대부분은 임유진이 혼자 말하는 시간이었다.“옆 부서에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있는데, 자꾸 우리 사무실에 와요. 꼭 진구 선배가 있을 때 찾아와서, 다들 걔가 짝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그런데 문제는 진구 선배가 그 애를 네 번이나 봤는데도 아직 이름을 기억 못 한다는 거죠.”“이번 워크숍에 그 부서도 같이 가는데, 혹시 이번 기회에 좀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죠!”“우리 동료 중 한 명이 집에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는데, 벌써 한 살이 넘었대요. 내가 애옹이 사진 보여줬더니 완전 반하더라고요.”“나중에 둘이 고양이 맞선 한 번 보자더라고요. 물론, 이건 사장님 허락이 필요하죠!”...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던 유진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서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서인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유진은 입술을 앙다물다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결혼하면, 매일 이렇게 같이 있는 거잖아요. 꽤 괜찮지 않아요?”서인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무심한 듯 말했다.“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맨날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 거야?”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사장님 생각이죠!”유진은 서인의 등 뒤에서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서인의 어깨가 살짝 경직되었고,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그러나 서인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유진은 애옹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너 말해 봐. 저 사람,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 맞지?”“냐옹.”애옹이는 맑은 크리스탈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울었다.잠시 후, 오현빈이 다가와 유진을 불렀다.“유진아, 수박 가져왔어. 먹고 가!”유진은 애옹이를 내려놓고, 마당을 정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수박을 먹으며 쉬던 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러나 바로, 유진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앞에
소희는 우청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금요일, 샤부샤부 가게아침에는 영업하지 않기 때문에, 오현빈과 직원들은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가게 청소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재료를 구매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 막 가게 문을 연 순간, 임유진이 커다란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자 안에는 애옹이를 위한 사료, 간식, 모래 등이 잔뜩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현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평일인데, 너 출근 안 했어?”유진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회사 단체 워크숍이 있는데 안 갔어요.”이문이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워크숍 좋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뭐가 좋아요? 차라리 집에서 푹 쉬는 게 낫죠.”현빈은 이문과 눈을 맞추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주된 이유는 워크숍에 사장님이 없어서겠지?”“사장님이랑 무슨 상관이죠?”유진은 턱을 치켜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위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사장님, 아직 안 일어났어요?”현빈과 이문을 비롯한 직원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서인이랑 상관없다고 하더니, 바로 그의 일정을 묻다니!유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상자 안에서 작은 공을 꺼내 현빈에게 던졌다.“뭘 웃어요?”“아직도 웃어요?”오현빈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두 손을 들었다.“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한바탕 장난을 친 후, 유진은 후원으로 가서 애옹이를 보러 갔다.한편, 서인은 아침 운동으로 샌드백을 몇 번 친 뒤, 아래층 주방에서 야옹이의 밥그릇을 챙겼다. 그리고 후원으로 가려고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작은 나무집
도설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졌다.“지금 나를 일부러 모욕하는 거예요?”심명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내가 준 거울은 가져가고, 이제 꺼져요. 그 따위로 소희에게 덤비다니, 집에 거울이 부족했나 보군.”설유는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그래서 이 모든 게 일부러였다는 거네요!”설유는 심명의 말을 곱씹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설마, 당신도 임구택을 좋아하는 거예요?”‘그래서 자신이 임구택에게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약혼식장에서 데려왔던 거라면?’콜록!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심명은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그러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설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장 꺼져요.”‘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거야?’설유는 계속 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자 심명은 그대로 차 문을 열어 설유를 밀어냈다.마침 밖에 있던 남자가 설유가 다치지 않게 잡아주려 했지만, 설유는 격분하며 그를 마구 밀쳤다.“건방지게 어디 감히 날 만져?”남자는 설유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놓아버렸다.쿵! 그리고 설유는 땅바닥에 세게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지만, 제대로 화를 낼 틈도 없이, 앞에서 스포츠카가 급가속하며 떠났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설유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연회장에서 소희와 우청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희는 심명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소희야, 너 때문에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어!]뒤에는 벽에 숨어 우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소희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그 여자가 나한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어?]심명은 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안 돼, 네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면 안 돼.]소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그래서, 무슨 짓을 했어?]심명은 여전히 장난스러
소희는 임구택의 넓고 단단한 어깨에 몸을 기댔다. 소희의 섬세한 눈매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었고, 손가락은 그의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구택의 손이 소희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가슴으로 끌어안았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맞춤이 소희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도설유는 화원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아까 장시원 사장 옆에 있던 남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누구야?”설유의 질문에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짐작했다.“장시원 사장이랑 친한 사람이라면, 임구택, 조백림, 장명원 정도인데, 누구 말하는 거야?”설유는 직감적으로 대답했다.“임구택? 임씨 그룹의 사장?”“맞아, 임구택!”도설유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 사람, 결혼했어?”그 말을 듣자 상대방은 흥분한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엄청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 그때 인터넷에서도 라이브로 방송됐었는데!”설유는 곧바로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던 여자를 떠올리고는 비웃듯이 말했다.“그 사람 와이프, 성격 엄청 안 좋아 보이던데? 그런 남자가 왜 그렇게 무서운 와이프를 골랐을까?”그때, 옆에서 부드럽고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임구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난 그의 모든 걸 알고 있는데요?”도설유가 뒤를 돌아보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 베이지 캐주얼 슈트를 입고, 귓가에는 흑요석 귀걸이가 반짝이는 남자.그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이었고, 요염한 매력까지 풍기자, 설유의 눈빛이 흔들렸다.“당신 임구택 사장을 알아요?”그 남자는 능청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남자는 입꼬리를 날렵하게 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도발적인 눈길은 상대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설유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나 나눌까요? 궁금한 거, 다 알려줄게요. 심지어 네가 임구택을 쫓아다니게 도와줄 수도 있어요.”설유는 살짝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