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석은 강솔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래?”강솔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밥이나 먹어. 괜히 생각하면 소화 안 돼.” 진석은 그녀에게 음식을 덜어주자, 강솔도 진석에게 갈비 한 조각을 덜어주며 말했다.“여기, 오빠가 좋아하는 거.”강솔은 이제 더는 예전처럼 진석의 모든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았다. 강솔도 노력해야 했다. 지금부터, 작은 일부터라도 진석에게 마음을 표현해야 했다.진석은 잠시 멈칫하며 강솔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고, 강솔은 오히려 조금 부끄러워졌다.“얼른 먹어.”진석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진석의 마음속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했다. 비록 희미한 빛일지라도, 진석은 그 빛을 쫓는 나방처럼 강솔에게 더욱 빠져들고 있었다....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진석은 바로 자기 외투를 벗어 강솔의 머리 위에 덮어주고는, 보호하며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고, 강솔은 진석이 입고 있는 셔츠가 젖은 걸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안 추워?”“괜찮아. 곧 집에 도착할 거야.” 진석은 차를 출발시켰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차창은 흐릿해졌다.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도 어슴푸레 보일 뿐이었다.차 안은 따뜻하고, 느릿한 멜로디의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강솔은 창문에 기대어 있었다. 아마도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해 배가 부르니 몸이 이완되며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진석은 자기 외투를 강솔에게 덮어주고,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뒤로 젖혔다. 차 속도도 더 천천히 유지했다.반 시간 후, 진석의 집에 도착했다. 진석은 강솔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깨우지 않고 자신도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사실 며칠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한 건 강솔만이 아니었다. 차 안의 음악 소리는 더욱 부드러워졌고, 차 밖의 빗소리는 도시의 소란을 흐리게 만들었다. 세상은 고요해졌다.진석은 천천히 눈을 뜨
진석은 잠에서 놀라 깨며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잠에서 깬 그의 어두운 눈은 약간의 잠기운과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강솔은 눈을 굴리며 조용히 물었다. “나, 많이 잤어? 지금 몇 시야?” 진석의 눈빛은 이미 다시 차분해졌고,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방금 8시가 됐어.” 진석은 창밖의 여전히 내리는 가랑비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먼저 내릴게. 너는 차 안에서 기다려.” 진석은 차문에 걸려 있던 우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고, 자기 외투를 강솔에게 감싸줬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어깨를 감싸며 강솔이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했다.그 덕에 강솔은 전혀 젖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단지 안으로 걸어갔고, 진석은 우산을 기울여 강솔을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강솔은 진석의 젖은 어깨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우산이 충분히 큰데, 왜 굳이 비에 젖어?” “괜찮아. 곧 집에 도착할 거야.” 진석은 담담하게 말하자, 강솔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문득 의문이 떠올라 물었다. “그런데 왜 차를 주차장에 두지 않고 밖에 세운 거야?” ‘차고에 세웠다면 비를 맞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진석은 강솔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빗소리를 들으니까 더 잘 자지 않나?” 강솔은 말을 잃고, 눈을 동그랗게 굴렸다.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처럼 장난을 치던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강솔은 익숙하게 현관에서 슬리퍼를 찾고는 거실로 걸어갔다. 진석의 집은 아주 넓었고, 거실만 해도 강솔이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컸다. 인테리어는 차분한 색조로 꾸며졌고, 갈색 소파와 크림색 카펫, 그리고 거실과 복도 사이에는 커다란 금속 선반이 놓여 있었다.선반에는 진석이 수상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장식품이 없었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보낸 물건은 어디 있어
편지는 오래전의 것이었고, 글씨는 진석이 학생 시절 썼던 것 같았다. 그러니 이 편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강솔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황급히 편지를 다시 접어 그 자리에 돌려놓고, 액자도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두었다. 하지만 강솔의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음에도, 마치 새로운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뛰었다. ...진석이 금세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는 어두운 색상의 편안한 옷을 입고 있었다. “뭐 좀 마실래? 따뜻한 것만 있어. 생강차 아니면 우유?” 강솔은 아무것도 모른 척하며 대답했다. “마시고 싶지 않아. 우리 엄마가 보낸 물건은 어디 있어? 못 찾겠어.” 진석은 팔짱을 끼고 문틀에 기대어 강솔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물건은 없어. 대신 너에게 한 마디를 전해달라고 하셨지.” 강솔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었다. “무슨 말이야?” 진석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진석의 큰 그림자가 방의 불빛을 가리며 방 안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어두운 눈으로 강솔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모께서 네게 전해달라고 하셨어. 나를 소중히 여기고, 다시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강솔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며 책상에 몸을 기대었다. 진석은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으며 거의 자신의 품에 안았다. 진석의 젖은 눈빛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강솔은 몸을 뒤로 젖히며, 방금 발견한 편지를 떠올렸다. 이에 귀가 천천히 빨개졌고, 눈동자는 이리저리 헤매었다. “우리 오늘 다 말했잖아. 다 정리된 거 아니야?” 진석은 강솔의 이마 가까이 입술을 대며 속삭이듯 물었다. “뭐라고 말했는데?” 강솔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오빠가 말했잖아. 감동의 사랑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어.” “그러면 얼마나 더 생각해야 하지?” 진석은 눈을 내리깔며 강솔을 응
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말을 마친 진석은 손을 들어 안경을 벗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강솔의 이마에 댔다. “어디 한번 보자. 열이 난 건 너 아닌가?” 둘은 갑자기 가까워졌고, 시선이 마주쳤다. 안경을 벗은 진석의 어두운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고 깊었다. 그걸 본 강솔은 심장이 떨리고 온몸이 힘이 빠졌다.진석은 강솔을 응시하며 천천히 입술 쪽으로 다가갔다. 입술이 거의 닿을 순간, 강솔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이 어디 있어? 내가 약을 가져다줄게!” 진석은 잠시 공허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져올게!” 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강솔은 그가 사라진 뒤에야 크게 숨을 내쉬며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갔다. 진석은 약상자를 들고 돌아와 뒤적였지만 감기약은 없고,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붕대만 있었다. 이에 강솔이 일어났다. “내가 사 올게!” “네가 사 오는 것보다 내가 가는 게 낫지. 밖에 비도 오는데, 어딜 간다는 거야?” 진석이 강솔을 잡으며 말했다. “기침 좀 한 거지 별일 없어. 네가 걱정된다면 나한테 남아서 간호나 해. 나도 밤에 진짜 열이 날지도 모르거든.” “그러면 침대에 가서 누워 있어.” 강솔이 말하자, 진석은 아직 누워 있을 상태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눈을 한 번 굴리고는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안방으로 돌아섰다. 강솔도 뒤따라가 진석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눕게 했다. 무의식적으로 진석의 이마를 만져보았지만 다행히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물 마실래?” 강솔이 묻자, 진석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역할을 바꾸니 꽤 좋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물 한 잔 가져와.” 강솔은 끓는 물을 컵에 담아 진석에게 건넸다. “내 경험상, 기침에는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게 더 나아.” 진석은 침대에 기대앉아 천천히 물을 마셨다. 물이 꽤 뜨거웠는지 그
진석의 검은 눈동자가 강솔을 꿰뚫어 보듯 바라보자, 강솔은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강솔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너에게 가서 심서진의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 들어줄래?] 강솔은 이미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서 차갑게 말했다. “듣기 싫어. 할 말도 없어. 우리 관계를 배신한 건 너잖아. 더 얘기해봤자 아무 의미 없어.” [강솔, 나와 만나 얘기할 마지막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거야?] 예형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그때, 방 안에서 갑자기 급하게 기침 소리가 들리자, 강솔은 방을 쳐다보고는 바로 말했다. “끊을게!” 전화를 끊은 강솔은 서둘러 안방으로 돌아와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왜 그래?” 진석은 무표정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기분이 안 좋아.” “어디가 안 좋은데?” 강솔은 긴장하며 묻자, 진석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안 좋아.” 강솔은 말이 없었고, 그저 물을 한 잔 따라 진석에게 건넸다. “따뜻한 물 좀 더 마셔.” “네가 아플 때는 약 사오고, 먹여주고,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밤새 잠도 못 자고 지켜줬잖아. 그런데 내가 아프니까 그냥 따뜻한 물이나 마시라고?” 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강솔은 당황했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진석은 침대 한쪽을 툭툭 쳤다. “여기 올라와서 나랑 있어.” 강솔은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이 붉어졌다.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오빠한테 빚진 게 있어도 이렇게 위협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진석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여기서 내가 밤에 열이 나면 네가 알 수 있도록 옆에 있어 달라는 거야. 아니면 밤새 여기에 앉아 있을 거야?” “그럼 그냥 여기 앉아 있을게!” 강솔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를 응시하자 진석은 황당해했다. “너 그러면 내가 어떻게 자?” 강솔은 풀이 죽은 듯 말했다. “오빠는 정말 까다롭구나.”
하지만 강솔은 정말로 수리 때문에 3일을 울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 생이별과 죽음을 감당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솔은 돌아서서 진석을 바라보며 약간 슬프게 말했다. “수리 얘기하니까 또 생각나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난 오빠가 벌써 수리를 잊은 줄 알았어.” 진석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잊지 않았어.” 수리는 두 사람이 함께 키운 강아지였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너 수리가 이미 환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쩌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금쯤이면 열 살쯤 되었을지도 몰라!” 강솔의 눈이 반짝이자, 진석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쓸며 말했다. “또 쓸데없는 상상하고 있네.” 수리가 죽었을 때, 강솔이 가장 슬퍼했다. 그 후로 진씨 집안에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강솔은 그 아기가 매의 환생이 아닐까 하며 달려가 묻곤 했다. 진석은 강솔이 수리에 너무 집착할까 봐 나중에 고양이를 사줬지만, 강솔은 그 고양이를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녀의 마음속엔 오직 수리만 있었기 때문이다. 강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잖아!” 진석의 목소리가 갑자기 깊어졌다. “내가 더 정이 깊은 거 아니야?” 강솔은 깜짝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다행히 방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근데 오빠는 왜 날 좋아하는 거야?” “이유가 필요해?” “필요하지. 내가 예전에 주예형을 좋아했던 이유는 정의롭고 강인하며,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었어.”“나중에 내 기대를 저버리긴 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건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강솔의 말에 진석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맞아, 네가 주예형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의 장점들이었지. 아마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장점이 있다면, 넌 그 사람도 좋아했을 거야.”“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는 건, 네가 너이기 때문이야. 너에게 장점이 있든 없든, 아니면 단점이 많든,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석은 강솔의 속옷을 벗기고 한쪽에 두었다. 진석의 손은 나오지 않고, 부드럽고 매끈한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 어둠 속에서, 강솔의 얼굴은 매끈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완전히 방심한 채 달콤하게 잠들어 있었다. 분홍빛 입술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 탐닉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진석은 더 이상 참지 않고 강솔의 입술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강솔은 혼란 속에서 진석의 인도에 따라 반응하기 시작했다. 강솔은 마치 달콤한 사탕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입맞춤에 무의식적으로 응했다. 강솔이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진석의 진지하고 깊은 표정을 보자 온몸에 힘이 풀려 밀어낼 수 없었다. 방 안은 더욱 뜨거워지고, 둘의 숨결이 서로 섞여가며, 긴장감은 더욱 짙어졌다. 진석은 살짝 몸을 일으켜 강솔을 꼭 껴안고 계속해서 입맞춤을 퍼부었다. 강솔은 점점 더 숨이 가빠지고, 거의 산소가 부족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진석이 놓아줬다. 그러나 그는 턱 아래로 내려가며 입맞춤을 이어갔다. 강솔은 겨우 자유를 얻고 급히 숨을 들이쉬며,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이제 이건 꿈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어둠 속에서 강솔은 천장을 응시하며, 흐릿하게 떠오르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얼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스쳤고, 무심코 진석의 어깨를 잡았다. “오빠!” 진석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강솔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강솔의 잠옷 단추를 다시 채워주었다. 두 사람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잠시 후, 강솔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 진석은 낮고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석도 사실 오늘 밤 강솔을 원하지는 않았다. 비록 오래전부터 원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너무 빠른 일이었다. 강솔은 진석이 온몸에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강솔의 숨결이 거칠어지자 긴장하며 물었다. “너 괜찮아?” 강솔은 진석이 감기가
입술과 혀가 얽혀드는 순간, 진석과 강솔의 관계는 완전히 변화했다. 오랫동안 진석은 멈춰 서서, 강솔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가 참아내고 있다는 걸 강솔은 느낄 수 있었다.“진석...” 강솔은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나... 나 진짜 변덕스럽지 않아?” 강솔은 후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나랑 주예형이 제대로 헤어진 지 보름도 안 됐는데, 벌써 오빠랑 키스하잖아.”진석은 한숨을 내쉬며 거의 웃을 뻔했다. “네가 변덕스러운 사람이었으면, 지난 10년 동안 네 깊은 감정은 뭐로 설명할 거야?”진석은 강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죄책감이 들어?”강솔은 고개를 저으며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그냥 좀 이해가 안 돼.”“그럼 내가 널 키스하는 게 좋았어?”강솔의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속눈썹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진석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강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널 지켜주면서, 네가 한 번도 고통받지 않게 했잖아.”“내 가장 큰 소망은 네가 언제나 네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고, 영원히 나의 걱정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남는 거야.”“누구도 네가 지난 감정에 얽매여 떠나지 못하도록 강요하지 않아. 얼마나 빨리 떠나느냐고 내 능력에 달린 거니까, 어때?”강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어!”진석은 가볍게 웃었다. “결국 내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거지? 그냥 말하면 되잖아.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내가 너 대신 책임져 온 거 익숙하니까.”강솔은 다시 한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내 감정이 감동인지 아니면 의존인지 말해줘.”진석은 강솔을 깊게 바라보았다. “그게 뭐든 상관없어. 내 곁에만 있어줘. 내가 널 사랑하게 해줄 시간이 충분하니까.”강솔은 가슴이 따뜻해지며 그를 꼭 껴안았다. “오빠!”진석은 강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 말하는 건지
“흥성.”흥성은 강성의 옆도시로, 관광 도시였다. 이에 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나도 같이 갈게요!”꽤 발랄하게 말하는 유진에 서인은 코웃음을 쳤다.“내가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면서 따라가겠다고?”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뭘 하든 상관없어요. 어쨌든 나도 갈 거니까요!”서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안 돼.”“왜 안 돼요?”“오늘 돌아오지 못할 거야. 거기서 이틀은 머물러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면 불편해.”“그냥 여행 가는 셈 치면 되잖아요!”서인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다음 사거리에서 임씨 저택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에 유진은 여유롭게 말했다.“그러면 집에 데려다줘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내 차로 흥성으로 갈게요. 어쩌면 거기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는데요?”“임유진.”서인은 얼굴을 굳히자, 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우리 동료들은 다 놀러 갔는데, 난 너 때문에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두고 혼자 나가겠다고요? 그게 맞는 거예요?”서인은 설명했다.“나는 노는 게 아니라, 일이 생겨서 가는 거야.”“몰라요. 어쨌든 따라갈 거예요. 나 어린애 아니니까 방해 안 할게요. 그냥 나 없는 셈 치면 되잖아요!”유진은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사장님은 일 보러 다니고, 난 혼자 놀러 다닐게요. 절대 방해 안 할 거예요. 됐죠?”서인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더 미루면 해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럼 말 잘 들어야 해.”서인이 신신당부했다.“약속할게요!”유진은 신나서 손까지 들며 맹세할 기세였다.서인은 고속도로에 올라탄 뒤 오현빈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은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다.유진도 노정순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설명 없이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만 말했다. 노정순은 오전에 여진구가 찾아와 회사 워크숍을 언급했던 걸 기억하고, 그녀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는 줄 알고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당부했다.전화를 끊
강성의 한 묘지.홍복과 표용을 비롯한 전우들의 묘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전우들은 이제 백랑의 곁에서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서인은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씩 놓았고, 임유진도 묘지 밖에서 사 온 꽃을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돌계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유진도 서인의 곁에서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이야기 좀 더 해 주세요!”서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다 얘기했잖아.”유진은 묘지를 찾을 때마다 늘 삼각주에서의 과거를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서인이 기억하는 건 이미 다 말해 준 상태였다. 그러나 유진은 질세라 다시 말했다.“이번에 전우들 묘지가 새로 생겼잖아요. 분명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요!”“없어.”서인은 한쪽 다리를 굽힌 채 느슨하게 앉아 있었고, 말투 역시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이에 유진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러면 다음에 소희한테 물어봐야겠네!”그제야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진을 노려봤다.“진짜 듣고 싶어?”“당연하죠!”유진은 활짝 웃으며 턱을 괴고, 이야기 들을 준비를 했다. 유진은 과거가 늘 궁금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가 맨날 말하는 내 229명의 여자친구들 얘기, 하나씩 다 해 줄까?”유진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옆에 있던 꽃을 집어 들어 서인에게 던졌다.서인은 피식 웃으며, 거친 목소리 속에 장난기가 묻어났다.“이야기 듣고 싶다며? 229개의 이야기가 있지. 아마 내년까지도 다 못 들을걸.”“아직도 그 말을 해요?”유진은 씩씩거리며 서인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서인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는 별다른 힘을 쓰지도 않았지만, 유진은 아무리 버둥거려도 밀어낼 수 없었다.마치 큰 회색 늑대 앞에 선 어린 토끼처럼,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잠시 후, 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문신 남자는 점점 짜증이 났다.“겨우 서빙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잘난 척이야? 내가 맞팔 달라는 것도 네 급을 봐준 거라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사장님! 여기서 행패 부리는 사람이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은 주변 공기마저도 서늘하게 만들었다.서인의 싸늘한 눈빛이 문신 남자를 향하자, 그는 마치 얼음장 같은 시선에 찔린 듯 등골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유진은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이 돈을 내기 전에 제 SNS 맞팔하라고 요구했어요.”그제야 문신 남자의 일행이 이쪽 상황을 알아차리고 하나둘 일어나 힐끗거리며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때, 오현빈과 이문이 후원에서 걸어 나왔다.현빈은 본래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손에 주방칼까지 들고 있었다.문신 남자의 일행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그때, 서인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며 문신 남자를 향해 말했다.“좋아. 내꺼를 추가해요. 나랑 얘기 좀 하자고요.”문신 남자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결제를 마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동료들을 불러 가게를 빠져나갔다.사람들이 나가자, 현빈이 비웃으며 말했다.“이런 겁쟁이 녀석들. 다음에 또 이런 쓰레기들이 나타나면 말도 필요 없어. 바로 나를 불러.”유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알겠어요!”서인은 유진을 한 번 쓱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문은 그를 따라가며 넌지시 물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임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 찻주전자를 훔쳐 가겠어요? 안심하세요!”서인은 유진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손님이 너 찾으러 왔으면, 할 얘기 끝났으면 나가라. 가게 바쁘다.”유진은 서인의 표정이 더 이상 좋지 않자, 정말로 화를 낼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그냥 먼저 보낼게요!”그렇게 말한 뒤, 유진은 황급히 돌아서서 여진구를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진구가 서인의 찻주전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그거 내려놔요!”유진은 깜짝 놀라 뛰어가며 소리쳤다. 놀란 진구는 손을 헛디뎌 찻주전자를 떨어뜨릴 뻔했다.“왜 그래?”유진은 재빨리 찻주전자를 낚아채듯 빼앗았다.“이거 사장님이 2,000만 원 주고 산 거예요. 깨지면 감당할 수 있어요?”“뭐? 2,000만 원?”진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게 2,000만 원짜리 골동품 같지는 않은데?”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되물었다.“선배 골동품에 대해 알아요?”“아니?”“그럼 됐죠!”유진은 찻주전자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2,000만 원인데 한 푼도 깎지 않고 샀어요. 그만큼 애착이 있다는 거죠. 깨지면 당연히 화내겠죠!”진구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난 잘 모르지만, 우리 작은아버지는 골동품 전문가야. 가져가서 감정받아 볼까?”그리고 그는 서둘러 덧붙였다.“오해하지 마. 혹시라도 바가지를 썼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이 찻주전자가 아무리 봐도 2,000만 원짜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찻주전자를 내려놓더니, 진구를 밖으로 밀어냈다.“무슨 바가지요? 마음에 들면 2,000만 원이든 2억이든 가치가 있는 거고, 마음에 안들면 2천원도 아까운 거죠.”“그러니까 선배도 선배 할 일 하러 가요! 내 일 방해하지 말고요!”진구는 서인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마지못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유진아, 연애
여진구는 바로 문을 나가려 했다. 임유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따라붙으며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선배 지금 우리 엄마한테 말하러 가는 거예요?”진구는 붉어진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어린애들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안 될 이유가 뭐야?”“안 돼요! 절대 가면 안 돼요!”유진은 온 힘을 다해 진구를 붙잡았다. 그러나 진구는 유진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줘서 떼어내려 했다.“손 놔!”“안 놔요! 선배, 선배가 뭔데 내 일에 참견죠?”“너희 가족은 전부 내가 너를 회사에서 관리한다고 알고 있어. 그러니 난 너에 대한 책임이 있고!”“뭐요? 지금 미쳤어요? 선배 회사가 무슨 어린이집이에요? 선배는 그냥 내 상사죠,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잖아요!”“너 내 부서 사람이잖아. 내 책임이야!”“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요!”“넌 너무 철이 없어!”“뭐요? 철이 없다고요?”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순식간에 진구의 팔을 붙잡고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차려 했다. 진구는 황급히 몸을 피하면서도, 유진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봐 신경을 썼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서인이 커다란 뼈다귀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무뚝뚝했고, 목소리에도 차가움이 묻어 있었다.“비키지?”유진은 순간 당황해 손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섰다. 서인은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야옹이에게 가서 음식을 내려놓았다. 애옹이는 음식 냄새를 맡고 서인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서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살짝 밀어냈다.서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애옹이는 몸이 가볍고 재빠른 덕분에 부드럽게 착지했다.야옹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마치 동정을 하듯, 입에 물고 있던 뼈 하나를 작은 애옹이 쪽으로 던졌다.그리고 유진은 이 장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서인이 애옹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이런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때
가끔 서인이 몇 마디 맞장구를 쳤지만, 대부분은 임유진이 혼자 말하는 시간이었다.“옆 부서에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있는데, 자꾸 우리 사무실에 와요. 꼭 진구 선배가 있을 때 찾아와서, 다들 걔가 짝사랑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그런데 문제는 진구 선배가 그 애를 네 번이나 봤는데도 아직 이름을 기억 못 한다는 거죠.”“이번 워크숍에 그 부서도 같이 가는데, 혹시 이번 기회에 좀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죠!”“우리 동료 중 한 명이 집에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는데, 벌써 한 살이 넘었대요. 내가 애옹이 사진 보여줬더니 완전 반하더라고요.”“나중에 둘이 고양이 맞선 한 번 보자더라고요. 물론, 이건 사장님 허락이 필요하죠!”...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하던 유진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서인을 바라보았다. 이에 서인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유진은 입술을 앙다물다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결혼하면, 매일 이렇게 같이 있는 거잖아요. 꽤 괜찮지 않아요?”서인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무심한 듯 말했다.“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맨날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 거야?”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사장님 생각이죠!”유진은 서인의 등 뒤에서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서인의 어깨가 살짝 경직되었고, 발걸음이 반 박자 느려졌다. 그러나 서인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유진은 애옹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너 말해 봐. 저 사람,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 맞지?”“냐옹.”애옹이는 맑은 크리스탈 같은 눈동자로 유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울었다.잠시 후, 오현빈이 다가와 유진을 불렀다.“유진아, 수박 가져왔어. 먹고 가!”유진은 애옹이를 내려놓고, 마당을 정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한 수박을 먹으며 쉬던 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러나 바로, 유진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앞에
소희는 우청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더 좋아질 거야!”금요일, 샤부샤부 가게아침에는 영업하지 않기 때문에, 오현빈과 직원들은 늦게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가게 청소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재료를 구매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그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 막 가게 문을 연 순간, 임유진이 커다란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자 안에는 애옹이를 위한 사료, 간식, 모래 등이 잔뜩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현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오늘 평일인데, 너 출근 안 했어?”유진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회사 단체 워크숍이 있는데 안 갔어요.”이문이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워크숍 좋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도 하고.”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뭐가 좋아요? 차라리 집에서 푹 쉬는 게 낫죠.”현빈은 이문과 눈을 맞추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주된 이유는 워크숍에 사장님이 없어서겠지?”“사장님이랑 무슨 상관이죠?”유진은 턱을 치켜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게 위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사장님, 아직 안 일어났어요?”현빈과 이문을 비롯한 직원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전까지 서인이랑 상관없다고 하더니, 바로 그의 일정을 묻다니!유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상자 안에서 작은 공을 꺼내 현빈에게 던졌다.“뭘 웃어요?”“아직도 웃어요?”오현빈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며 두 손을 들었다.“알겠어,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한바탕 장난을 친 후, 유진은 후원으로 가서 애옹이를 보러 갔다.한편, 서인은 아침 운동으로 샌드백을 몇 번 친 뒤, 아래층 주방에서 야옹이의 밥그릇을 챙겼다. 그리고 후원으로 가려고 문을 열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작은 나무집
도설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어졌다.“지금 나를 일부러 모욕하는 거예요?”심명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졌다고, 차갑고 무심한 눈빛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내가 준 거울은 가져가고, 이제 꺼져요. 그 따위로 소희에게 덤비다니, 집에 거울이 부족했나 보군.”설유는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그래서 이 모든 게 일부러였다는 거네요!”설유는 심명의 말을 곱씹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설마, 당신도 임구택을 좋아하는 거예요?”‘그래서 자신이 임구택에게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일부러 약혼식장에서 데려왔던 거라면?’콜록! 상상을 초월하는 말에 심명은 담배 연기에 기침이 나왔다. 그러고는 차가운 시선으로 설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당장 꺼져요.”‘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거야?’설유는 계속 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며 버텼다. 그러자 심명은 그대로 차 문을 열어 설유를 밀어냈다.마침 밖에 있던 남자가 설유가 다치지 않게 잡아주려 했지만, 설유는 격분하며 그를 마구 밀쳤다.“건방지게 어디 감히 날 만져?”남자는 설유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곧바로 손을 놓아버렸다.쿵! 그리고 설유는 땅바닥에 세게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아파서 이를 악물었지만, 제대로 화를 낼 틈도 없이, 앞에서 스포츠카가 급가속하며 떠났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가 설유의 얼굴을 향해 뿜어졌다....연회장에서 소희와 우청아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희는 심명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소희야, 너 때문에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까지 들었어!]뒤에는 벽에 숨어 우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소희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그 여자가 나한테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어?]심명은 단호하게 답장을 보냈다.[안 돼, 네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면 안 돼.]소희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물었다.[그래서, 무슨 짓을 했어?]심명은 여전히 장난스러
소희는 임구택의 넓고 단단한 어깨에 몸을 기댔다. 소희의 섬세한 눈매에는 부드러움이 깃들었고, 손가락은 그의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 구택의 손이 소희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가슴으로 끌어안았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맞춤이 소희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도설유는 화원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물었다.“아까 장시원 사장 옆에 있던 남자,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누구야?”설유의 질문에 몇 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짐작했다.“장시원 사장이랑 친한 사람이라면, 임구택, 조백림, 장명원 정도인데, 누구 말하는 거야?”설유는 직감적으로 대답했다.“임구택? 임씨 그룹의 사장?”“맞아, 임구택!”도설유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그 사람, 결혼했어?”그 말을 듣자 상대방은 흥분한 듯 대답했다.“당연하지! 엄청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어. 그때 인터넷에서도 라이브로 방송됐었는데!”설유는 곧바로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던 여자를 떠올리고는 비웃듯이 말했다.“그 사람 와이프, 성격 엄청 안 좋아 보이던데? 그런 남자가 왜 그렇게 무서운 와이프를 골랐을까?”그때, 옆에서 부드럽고도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임구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나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난 그의 모든 걸 알고 있는데요?”도설유가 뒤를 돌아보자, 순간적으로 눈이 커졌다. 베이지 캐주얼 슈트를 입고, 귓가에는 흑요석 귀걸이가 반짝이는 남자.그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남이었고, 요염한 매력까지 풍기자, 설유의 눈빛이 흔들렸다.“당신 임구택 사장을 알아요?”그 남자는 능청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당연하죠!”남자는 입꼬리를 날렵하게 올리며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고, 도발적인 눈길은 상대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설유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나 나눌까요? 궁금한 거, 다 알려줄게요. 심지어 네가 임구택을 쫓아다니게 도와줄 수도 있어요.”설유는 살짝 당황한 듯 입술을 깨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