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은 전화를 끊고 허리를 살짝 풀어준 뒤, 물컵을 들고 발코니로 나가 햇볕을 쬐었다. 그러다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멀리, 빨간색 포르쉐 911이 진석의 집 앞에 주차되어 있었고, 누군가 차에서 내려 과일 바구니를 들고 진석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비록 멀리서였지만, 강솔은 단번에 그 사람이 민명주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 순간, 강솔은 어젯밤의 꿈이 떠올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강솔은 물을 다 마시고 자신에게 침착하라고 다짐하며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갔다. 고운해가 보내준 모든 의상 사진을 고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강솔의 시선은 종종 창밖으로 향했다. 명주가 진석의 집에 갔다니, 분명 진석을 만나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혹시 명주가 진석에게 다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는 걸까? 어젯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진석도 명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강솔은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진석에게서는 한 통의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에 대한 소식도 없었다. ‘두 사람, 혹시 데이트라도 나간 걸까?’ 강솔은 물을 따르러 내려가면서, 윤미래가 꽃게와 오래 끓인 닭 육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육수를 보온병에 담아 강솔에게 말했다. “진석이네 집에 좀 다녀오려고 해. 이 꽃게 육수는 네 허수희 아주머니가 보내준 건데, 내가 조금 많이 만들었어. 그래서 그녀에게도 좀 나눠주려고 해.” 강솔은 얼른 대답했다. “제가 다녀올게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지런해?” 윤미래가 농담을 하자 강솔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침 진석에게 디자인 자료도 전해줄 일이 있어서요. 겸사겸사 다녀오면 되니까요.” “그래, 그러면 네가 다녀와. 네 허수희 이모께 따뜻할 때 드시라고 전해줘.” 윤미래는 보온병을 뚜껑을 덮어 강솔에게 건넸고, 강솔은 그것을 받아 들고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진석의 집에 도착하자, 허수희가 마침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진석은 민명주에게 말했다. “네가 말했던 그 투자 건, 내가 분석해 봤는데, 수익이 꽤 높아. 그리고 리스크도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 시작해도 괜찮아.” 강솔은 진석을 바라보며, 어젯밤 새벽 2시까지도 그가 잠들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명주의 리스크 분석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 그럼 설 연휴가 끝나고 바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게.” 명주는 진석을 향해 눈에 사랑이 가득한 채 말했다. 진석은 물 한 잔을 따랐다. 원래는 강솔에게 주려고 했으나, 손을 멈추고 결국 명주에게 건넸다. “밖에 추우니까, 따뜻한 물 좀 마셔.” 명주는 따뜻한 물을 두 손으로 받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오빠가 이렇게 세심한 줄은 몰랐어!” 강솔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둘이 이야기해. 나는 먼저 가볼게!” 진석은 무의식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점심 먹고 가라니까?” 강솔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오늘 점심에 만두를 만든다고 했어. 제가 좋아하는 소고기 부추 만두요. 이모한테 말씀드려 줘. 난 집에 가서 만두 먹을게요!” 진석은 특별히 뭐라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솔은 명주에게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오후에 시간 있으면, 진석 오빠랑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가까워서 금방 갈 수 있어요.” “알겠어!” 명주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강솔은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 진석은 강솔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네가 보기엔 그녀가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것 같아?” “안 그럴까?” 명주는 물잔을 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히려 강솔이 질투해서 자리를 못 지키고 떠난 것 같던데.” 진석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내가 왜 그걸 못 봤지?” 분명 평소와 똑같이 웃고 있었는데 말이다. 명주는 웃으며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 금방 들통날 거야.” 진석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말했
윤미래는 강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강솔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오랜만에 TV를 켜서 그런지 나오는 사람 중 아는 이가 없었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골라 조금 보았더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마침 윤미래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윤미래의 표정에는 약간 실망스러운 기색이 있었다. “이제 우리 강솔이랑 진석이는 가망이 없겠네.”점심으로 나온 찐빵은 강솔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소였지만, 오늘따라 입맛이 없었다. 평소에는 네 개를 거뜬히 먹던 강솔이었지만, 오늘은 하나만 먹고도 배가 불렀다. 강솔은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뒤척이던 끝에, 아마도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인지 금세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 2시 반이었다. 일어나서 고운해에게 보내줄 모델 사진들을 정리했고,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모든 작업을 마쳤다. 물을 마시러 일은 정말 끝났구나.” “무슨 일인데요?” 가사도우미인 오해현이 차를 따라 윤미래에게 건네자 윤미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방금 진씨 저택에 갔는데, 진석을 찾아온 여자애가 있더라고. 점심도 진씨 저택에서 먹고, 방금 두 사람이 함께 나가는 걸 봤어.” 강솔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저랑 진석이로 농담하지 말라고요.” “그땐 몰랐으니 그랬지. 이제 다시는 그런 말 안 할게!” 윤미래는 아쉬운 듯 말했다. “정말 아쉽구나!” 오해현이 물었다. “그 여자애는 어땠나요? 설마 아가씨보다 예쁘진 않겠죠?” 강솔이 대답했다. “저보다 예쁜 건 물론이고, 말도 잘하고 능력도 있고, 외모도 출중하더라고요. 진석이랑 아주 잘 어울리는 커플이죠.” 윤미래가 손을 들어 강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딸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아!” 강솔은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며, 윤미래 품에 기대어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네요!” “기분 좋지
이상하게도 긴장되었다. 진석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보냈어도, 강솔은 지금처럼 떨리지 않았다. 휴대폰이 끊기기 직전에야 강솔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진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나 너희 집 앞이야. 잠깐 나와봐.” 강솔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벽 너머에 서 있는 커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나와서 얘기해.” “아.” 강솔은 대답하고 신발과 외투를 챙겨 집 밖으로 나갔다. 진석이 서 있는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강솔은 발걸음을 늦췄지만,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순간 강솔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당장 돌아가고 싶어졌다. 발소리를 듣고 진석이 고개를 돌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진석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알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고상하고 차가워 보였다. 강솔은 입을 다문 채 가까이 다가갔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진석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슈크림 빵, 네가 좋아하는 맛으로 샀어.” 진석은 오후에 민명주와 함께 있지 않았고, 그저 같이 나가 친구 두 명을 만나 저녁을 먹고, 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집에 가던 길에 어제 들렀던 디저트 가게에 들러 강솔이 좋아하는 슈크림 빵을 샀다. 그러나 강솔은 받지 않았다. “말했잖아. 요즘 살쪄서 밤에는 안 먹어.” “그럼 내일 아침에 먹어. 냉장고에 넣어둬.” 진석은 여전히 슈크림 빵을 내밀자, 강솔은 그제야 받아 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무 늦었으니 이제 돌아가.” 진석은 움직이지 않고 강솔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물어볼 말이 없어?” “어?” 강솔은 당황해 눈을 들어 진석을 보았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없어?” 진석은 다시 물었으나 강솔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강솔이 말을 마친 순간, 이마에 찬 바람이 스쳐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진석은 강솔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진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응시하며 말했다.“나는 사랑했지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했어. 그래서 내 감정을 숨기고, 친구로서, 상사로서 그 사람 곁을 지키기만 했지.”“상처투성이가 되어도, 놓을 수가 없었어.”강솔은 온몸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이에 진석은 한 발 더 다가오며 말을 이어갔다.“겨우 이별하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날 아버지처럼 생각한다고 말했어.”“그리고 이제는 내가 다른 여자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잖아!”“강솔!” 진석의 눈빛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넌 도대체 나를 얼마나 더 아프게 해야겠어?”강솔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오빠가 어떻게...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가 있어?”진석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일 리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왜 안 돼?” 진석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비참해져야 하지? 네가 주예형을 좋아할 때, 매일 그 얘기를 들어주며 걔가 널 사랑하는지 분석해 줘야 했다고.”“네가 걔와 헤어지고 길에서 울 때, 난 너보다 더 고통스러웠어. 네가 널 괴롭히는 게 아니야, 넌 항상 날 괴롭혀 왔다고!”“네가 아파할 때, 나는 매일 네가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너랑 뛰고, 놀이공원에 가고, 영화도 보고. 나 정말로 한가해서 그런 줄 알았어?”“내 감정을 숨기느라 늘 조심스러웠어. 네가 불편할까 봐.”“강솔, 대답해 줘.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진석의 말에 강솔은 또다시 물러서며 벽에 다다랐고, 진석은 두려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나, 나는...” 강솔은 혼란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난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왔어.”함께 자라온 친구, 마치 가족 같은 존재였다.“이제 알았으면, 네 마음은 어때?” 진석은 강솔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이렇게 눈 내리는 밤,
강솔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본능적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는 차갑고 단단한 벽이 있었고, 앞에는 진석의 얼음 같은 기운이 휘감고 있었다. 강솔의 모든 저항은 진석의 키스에 의해 막혀버렸다. “읍!”강솔은 필사적으로 진석의 어깨를 쳤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항에 더욱 격분한 듯, 강솔을 벽에 더 강하게 밀어붙이며 고삐가 풀린 듯 키스를 이어갔다.이런 진석의 모습에 강솔은 무서워졌다. 진석이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놀리고, 비웃을 때도 진석의 눈빛에는 항상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오늘 그는 완전히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진석의 거친 숨결과 술기운이 섞인 입맞춤은 마치 강솔의 입속에서 휘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같았다.강솔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자, 결국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그에게 자신을 내맡겼다. 강솔의 길고 떨리는 속눈썹은 분노와 서러움에 젖어 있었다.‘어디 한번, 네가 나를 어떻게 할지 보자.’강솔은 그런 심정으로 진석에게 입술을 내줬다.진석은 자신이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어두운 세계가 자기를 감싸는 가운데, 강솔의 따뜻한 입술만이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진석은 강솔의 저항과 분노, 그리고 체념했음을 느꼈다. 그 포기가 오히려 진석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강솔은 분명 진석을 미워할 것이었다. 오늘 이후로, 두 사람은 완전히 끝났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진석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민명주의 조언을 듣고 이런 바보 같은 방법으로 강솔을 시험하다니.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화를 내고, 더 어리석은 행동을 해버렸다. 하지만 진석의 광기가 깊어질수록, 절망도 함께 커졌다.이제 강솔과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나무 조각에 매달리듯이, 진석은 강솔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설령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도, 진석은 끝까지 그 길을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강솔은 진석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이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진석이 사랑한 사람이 항상 나였다니!’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 전혀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진석이 자신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무조건 감싸준 것. 그리고 이별하던 밤, 진석은 경성에서 급히 달려와 안아주었을 때. 강솔은 진석이 미세하게 떨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강솔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해 왔다.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진석이었고 늘 자신에게 그래왔기 때문에, 그의 그런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오빠 같고 아빠 같은 존재였기에,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강솔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서러워할 사람은 강솔이 아니라 진석이었다. 순간, 조금 전의 분노와 수치심이 모두 사라지고, 진석이 빨리 집에 돌아가길 바랐다.진석이 저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돌덩이가 짓누르는 듯 무겁고 답답했다. 강솔은 휴대폰을 들어 몇 초간 쳐다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집어 들었다.몇 번을 반복한 끝에, 강솔은 결단을 내리고 진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진석의 휴대폰 화면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강솔의 창문을 바라보았다.강솔은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숨기고 커튼 뒤로 피했다. 잠시 후, 진석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갔다. 강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녀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강솔은 패딩을 벗고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 거울을 보니, 강솔의 입술은 부어 있었고, 진석에게 물린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강솔은 화가 나고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갑자기 진석이 32년 만의 첫 키스를 자신에게 바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진석은 항상 강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이 생각에 강솔은 알 수 없는 떨림을 느끼며 급히 찬물을 한 움큼 떠서 얼굴에 뿌렸
진석은 거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씻고, 창밖에 쌓인 눈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제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되겠군.’아침 식사 시간에, 허수희가 물었다.“오늘은 왜 뛰지 않니?”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젯밤에 눈이 왔으니, 아마 강솔도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진석은 무심하게 짧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너무 무거웠다.“네.”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갔을 때, 진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모?”[진석아, 강솔이 오늘 아침 일찍 강성으로 돌아갔어. 알고 있었니?]진석의 눈동자가 잠시 수축하였고,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래요?”[너희들 싸웠니?]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짐을 싸서 나가더라. 얼굴도 별로 안 좋았고.]진석은 고개를 숙이며,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모, 죄송해요.”윤미래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따지려고 전화한 게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할 필요는 없어. 강솔은 어릴 때부터 네가 돌봐줬잖아.][강솔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빴고, 나도 예전에 바빴으니 너랑 함께 자랐지. 그 사실을 내가 몰랐겠니?]진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앞으로는 강솔의 곁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앞으로 강솔은 자신을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윤미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천천히 말했다.“진석아, 이모가 하나만 묻고 싶구나. 너, 강솔을 좋아하니?”진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네, 아주 아주 좋아해요.”그 말에 윤미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집의 그 바보 같은 강솔만 몰랐던 거지.”진석은 속으로 생각했다.‘이제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도망갔죠.[강솔의 성격을 네가 제일 잘 알잖니. 약간 영리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어리석고, 아주 고집도 세지.][네가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거야.][걔는 너 없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