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석은 거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씻고, 창밖에 쌓인 눈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제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되겠군.’아침 식사 시간에, 허수희가 물었다.“오늘은 왜 뛰지 않니?”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어젯밤에 눈이 왔으니, 아마 강솔도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진석은 무심하게 짧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너무 무거웠다.“네.”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갔을 때, 진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모?”[진석아, 강솔이 오늘 아침 일찍 강성으로 돌아갔어. 알고 있었니?]진석의 눈동자가 잠시 수축하였고,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래요?”[너희들 싸웠니?]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짐을 싸서 나가더라. 얼굴도 별로 안 좋았고.]진석은 고개를 숙이며,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모, 죄송해요.”윤미래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따지려고 전화한 게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할 필요는 없어. 강솔은 어릴 때부터 네가 돌봐줬잖아.][강솔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빴고, 나도 예전에 바빴으니 너랑 함께 자랐지. 그 사실을 내가 몰랐겠니?]진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앞으로는 강솔의 곁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앞으로 강솔은 자신을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윤미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천천히 말했다.“진석아, 이모가 하나만 묻고 싶구나. 너, 강솔을 좋아하니?”진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네, 아주 아주 좋아해요.”그 말에 윤미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내가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집의 그 바보 같은 강솔만 몰랐던 거지.”진석은 속으로 생각했다.‘이제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도망갔죠.[강솔의 성격을 네가 제일 잘 알잖니. 약간 영리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어리석고, 아주 고집도 세지.][네가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거야.][걔는 너 없이는
진석은 말했다. “어젯밤 충격을 받았는지, 오늘 새벽 일찍 도망갔어!” 다행히 밤중에 도망간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걱정이 되어 밤새 쫓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명주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 너도 강성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며칠 후에 갈 거야.”[좋아. 이번에는 정말 시간을 줘야 해. 너희 둘의 관계 변화를 잘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거야.] “어떻게 됐든, 네가 도와줘서 고마워!” 명주는 부드럽게 말했다. [고맙긴, 네가 내 나쁜 조언 때문에 강솔이 도망간 걸로 날 미워하지 않으면 그걸로 만족이야.] “미워하지 않아.” 진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였으니까. 일찍 고백하고 일찍 넘어가는 게 낫지!” 명주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고, 네가 빨리 강솔을 쫓아다녀서 결혼하길 바랄게. 결혼할 때 잊지 말고 나도 초대해.] “물론이지!” 진석의 목소리는 더욱 결연해졌다....강솔은 오후에 강성에 도착했다. 방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청소부를 부르지 않고 혼자서 집을 정리했다.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야만 진석과 어젯밤의 그 통제 불능의 상황을 자꾸 떠올리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강솔은 주예형을 피하기 위해 경성으로 도망쳤었는데, 이제는 진석을 피하려고 강성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해가 저물 무렵, 집을 다 정리하고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야, 나 강성에 돌아왔어. 스승님을 뵈러 가고 싶은데, 너도 같이 갈래?”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함께 회사에 가지 않고, 어정에서 디자인 스케치를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좋아, 지금 출발할까?] “네 결혼식 드레스 디자인 스케치도 가져와. 내가 다시 한번 봐줄게.” [알겠어. 곧 만나!]약속하고 나서, 강솔은 코트를 입고 가방을 챙겨 나섰다. 혼자 차를 몰고 가던 중, 신호등에 걸렸을 때
양재아는 말을 마치고 강솔의 손에 든 떡을 보며 말했다. “강솔 언니, 이렇게 돈 쓸 필요 없어요. 설 때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져다줘서 지금도 주방에 쌓여있어요. 거의 상할 지경이에요.”“외할아버지가 떡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셨어요.” 강솔은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말했다. “그럼 스승님께서 버리라고 하시면 되겠네!” “언니, 화내지 마세요. 전 그냥 언니가 돈 낭비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너무 의미를 두지 마세요!” 강솔이 막 대꾸하려던 순간, 재아는 갑자기 얼굴을 바꾸며, 환한 미소로 갓 들어온 차를 향해 걸어갔다. “소희, 왔어!” 재아는 유난히 상냥하게 말하자, 강솔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차에서 내린 소희가 자신을 향해 서 있었다. 소희도 강솔을 발견하고 재아에게 인사한 후 그녀에게 다가왔다. “난 네가 정월 대보름이 지나야 돌아올 줄 알았어.”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빨리 돌아왔지.” “네가 그 유명한 떡집에서 떡을 샀구나?” “마침 스승님께서 며칠 전에도 떡 얘기하셨었어.” “그래?” 강솔은 양재아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재아는 스승님께서 떡을 보기도 싫어한다고 하던데, 사와도 스승님이 안 드실 거라고 했어.” 그러자 재아의 얼굴이 굳어졌고, 서둘러 소희에게 변명했다. “제 말은 집에 떡이 많으니까 강솔 언니가 괜히 돈 낭비하지 않도록 하려던 것뿐이에요.” 소희는 재아의 어색한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에 떡이 많이 있어도 스승님은 강솔이 사 온 걸 아주 맛있게 드실 거야.” 소희는 강솔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춥지 않아? 들어가자.” “응!” 강솔은 표정이 풀리며 소희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아는 서 있는 채로 얼굴이 굳어졌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도경수는 강솔을 보며 매우 기뻐했고, 강솔이 사 온 떡집의 떡을 연달아 두 개나 먹으며 말했다. “이 맛은 정말
뒷마당에 있는 정자에는 난로가 있었고, 강솔과 소희는 그곳에 가서 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눴다. 강솔은 망설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진석 오빠가 나한테 자기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어.” 소희는 잠시 놀라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고백했구나!” 강솔은 놀라며 물었다. “너도 알고 있었어?”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지. 네가 처음 귀국했을 때, 우리가 모였잖아. 그때 선배가 직접 나한테 말했어.” “그럼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강솔은 당황스러워하자 소희가 대답했다. “선배가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그리고 그때 너는 주예형이랑 사귀고 있었잖아. 선배는 네가 심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걸 원하지 않았어.” 강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렇구나. 결국 나만 모른 거네. 나는 그가 네 마음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 소희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건 네가 좀 오해한 거지.” 강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석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믿기 힘들어.”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해?”소희가 묻자 강솔은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어. 너무 뜻밖이라, 진석이랑 나 사이에 사랑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 난 우리가 아주 순수한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어.” 소희는 웃음이 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는 널 정말 사랑해.” 강솔은 갑자기 눈을 들어 소희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부드러워졌고, 그녀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화로 속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로 네가 서둘러 돌아온 거야?” “응.” 강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네가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아직도 주예형을 좋아한다면, 선배에게 거절하면 돼.”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랑이라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네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아니야. 게다가 이렇게 오랫동안 참아왔으니, 선배도 각오하고 있을 거
“정말 좋네!” 강솔의 눈빛이 반짝였다. “드디어 기쁜 소식이 있네. 이제 두 달 남았네. 엄청나게 바빠지겠구나?” “웨딩드레스, 들러리 드레스, 그리고 답례품 디자인은 내가 직접 하고, 나머지 일은 전부 임구택에게 맡겼어!” 웨딩드레스 최종 시안은 이미 화영에게 넘겼고, 나머지도 반달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생각해 둔 게 있어?” 강솔은 디자인 이야기만 나오면 흥미를 보였다. “조금.” 소희는 자신이 만든 들러리 드레스의 초안을 강솔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네가 입을 거야. 마음에 들어?” “와!” 강솔은 흥분하며 말했다. “정말 예쁘다!” 디자인 도안을 보자마자, 강솔은 그동안의 고민을 모두 잊고, 들러리 드레스와 답례품 디자인에 대해 소희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어둠이 완전히 깔릴 때쯤, 하인이 두 사람을 불러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맞다, 도도희 이모는 언제 돌아온다고 하셨지?” 이제 설도 지났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서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직 소식 없어.” 강솔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소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두자. 양재아가 계속 스승님 곁을 지키고 있으니, 스승님도 마음의 위안이 있을 거야.” 소희는 걸음을 멈추며 차분히 말했다. “재아가 무슨 말을 했든 신경 쓰지 마.” 강솔은 웃으며 소희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 스승님이 행복하시다면, 나는 괜찮아. 결국 스승님 곁에 있는 사람은 재아잖아.” 그래서 재아가 자신을 어떻게 몰아세우든, 소희와의 관계를 이간질하려 하든, 강솔은 개의치 않았다. 스승님께 가서 무슨 말을 할 생각도 없었다. 소희는 웃으며 강솔을 바라보았다. “네가 연애할 때도 이렇게 맑은 정신이었다면, 선배가 그렇게 오랫동안 고통받지 않았을 거야.” 강솔은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오빠 얘기는 그만해!” “알겠어, 그만할게. 이제 가서 밥 먹자!” 소희는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
임유진은 소희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주된 이야기는 서인과의 일이었다. 소개팅 이야기에서부터 백양을 보러 갔던 일, 돌아오는 길에 서인이 백양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했던 것까지. “소희야, 너 생각엔 사장님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유진은 집에 돌아온 뒤로 계속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인이 자신에게 조금 다르게 대하는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별 차이가 없었다.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서인의 생각은 단순해.” “뭔데?” 유진이 금세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숙모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거지.” 유진은 순간 멍하더니, 이내 배를 잡고 소파 위에서 구르며 웃기 시작했다. “나, 전에 이미 삼촌한테 주의를 들었어.” “응?” 이번에는 소희가 궁금해졌다. “우리 삼촌이 그러더라고.” 유진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너는 절대 소희를 원망하지 말라고.” 소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했네.” “너와 관련된 일이니까, 당연히 꼼꼼하게 챙기지.” 두 사람은 밤 10시 반까지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임구택이 회의를 마치고 와서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우리 소희 좀 돌려줄 수 있어?” 그러나 유진은 소희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삼촌, 오늘 밤만 소희가 여기서 자면 안 돼요? 딱 하루만!” 그러자 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돼.” 그는 소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기야, 이제 그만 가서 자자.” 소희는 구택의 손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오늘은 유진이랑 잘게. 당신 혼자 자.” 이에 구택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난 어떻게 자란 말이야?” “난 몰라요, 어쨌든 오늘 소희는 내 거얘요!” 유진은 소희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말했다. “삼촌, 너무 쪼잔한 거 아니에요?” “맞아!” 소희도 말을 덧붙이자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구택은 회사로 향했고, 소희는 임유진과 임유민을 데리고 운동하러 갔다. 체육관에 도착하자, 휴게실에 앉아 있는 서인을 본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는 소희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부른 거야?” 소희는 유진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기회를 잘 잡아봐.” 유진은 흥분해서 소희를 안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그 모습을 본 유민은 찡그리며 말했다. “좀 참아.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마.” 유진은 그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서인은 소희의 전화를 받고 온 것이었는데, 이제야 소희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래도 별말 없이 손에 든 라켓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같이 한 팀할래?” 유민은 곧바로 말했다. “저는 소희 선생님이랑 한 팀 할게요. 숙모가 나를 도와줄 거라서요!” 유진은 유민에게 고마운 눈빛을 보냈다. 평소엔 항상 소희를 숙모라고 부르던 그가, 오늘은 자신과 서인을 배려해 선생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서인은 유진을 향해 말했다. “너만 유민에게 지지 않으면, 나도 소희에게 지지 않을게.” 유진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해요!” 서인은 유진의 손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손이 맞부딪혀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함께 코트로 향했다. 유민은 소희에게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선생님, 이제 부담은 선생님께 넘어갔어요!” 소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누나의 행복을 위해, 내가 좀 봐줄게.” 그러자 유민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소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서인 삼촌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에요?” 소희는 유민을 째려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겁먹은 적 있어?” 이에 유민은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라켓 가져올게요. 그동안 몸 풀어둬요!”...그들은 하루 종일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임구택도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다음 날, 강솔은 회사로 출근했다. 며칠 늦게 출근한 만큼, 강솔은 모두를 위해 작은 선물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었지만, 아무도 진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강솔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비서인 배석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진석 사장님이랑 사귀시는 건가요?” 강솔은 손에 들고 있던 스케치를 멈추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석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그러던데요. 그날 회의할 때 팀장님이 진석 사장님 댁에 있었다고.” 강솔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사람들이 또 뭐라고 했는데요?” “아니에요, 그게 다예요!” 석류가 재빨리 답하자 강솔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집이 진석 사장님 댁이랑 가까워요. 휴가 중일 때 종종 일을 논의하려고 집에 가기도 해요. 그러니 별로 이상한 건 없잖아요.” “그렇군요. 죄송해요!” 석류는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만 떠들고 일이나 하죠.” “네!” 강솔은 연말에 일찍 집으로 돌아갔고, 연초에 출근이 늦었기에 일이 많이 쌓여 있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에 몰두했다. 바쁜 게 차라리 낫다. 생각을 덜어낼 수 있으니까. 다만 진석의 사무실 앞을 지날 때마다, 강솔은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늦추며 안을 살펴보곤 했다. 진석은 아직 강성에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왔다고 해도, 회사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회사는 진석과 소희가 취미로 만든 곳이었고,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어 업계의 선두가 되었다. 강솔은 잠깐 멈췄다가 곧 발걸음을 돌려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 후 이틀 동안, 진석은 회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고, 마치 사라진 듯했다. 강솔은 문득 주예형을 쫓아 M 국까지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예형은 매우 화가 났었고,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았었다. 그 당시 강솔은 예형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몰랐으나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때는 예형을 달래려고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진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