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형은 술에서 깨자마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을 깨닫고 다시 옷을 찾으러 돌아갔다.그리고 예형이 다시 나왔을 때, 강솔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문 앞에는 강솔의 캐리어만 남아 있었고, 옆에는 꽃다발이 떨어져 있었다. 꽃잎이 흩어져 마치 시든 꽃처럼 보였다. 예형은 멍하니 서 있었는데 이제 자신과 강솔은 완전히 끝났음을 깨달았다.강솔은 예형의 집을 나와, 추운 거리에서 혼자서 멀리까지 걸었다. 그제야 자신의 캐리어를 잊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혐오감이 치밀어 올라 그 물건들을 두고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추운 바람 속에서 강솔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어리석게도 또 한 번 주예형을 믿었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예형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심서진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설날에 그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강솔은 길가에 앉아, 몸을 멈출 수 없이 떨었다. 슬픔, 절망, 분노, 혐오감이 강솔의 마음을 휘감았다. 강솔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북적이는 거리에서 홀로 흐느꼈다....진석은 점심을 대충 먹고 오후 내내 서재에 머물렀다. 머릿속이 텅 비어 있었고, 마음도 공허했다. 아마도 강솔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돌이켜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짝사랑했던 이 시기는 너무도 길고 고통스러웠다. 잠깐의 기쁨이 있더라도 결국 깊은 상처만 남았다. 진석은 자신이 이미 무감각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상처가 다시 드러나면 여전히 아픔이 밀려왔다.이제 놓아줄 때가 되었다. 강솔이 행복을 찾도록 하고, 자신도 고통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야 했다. 진석은 오랜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주변 모든 것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솔은 진석의 인생에서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강솔에게도 그랬다. 강솔이 떠
“어디에 있어?” 진석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길에 있어.] 강솔이 울면서 말했다.“일단 집으로 돌아가. 곧 갈게!” 진석은 대답하며 외투를 집어 들고 빠르게 나갔다.[너는 집에서 설을 보내. 나는 괜찮아. 나 혼자서 진정할게!]“네 아파트로 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겠지?” 진석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응!] 강솔이 울면서 대답했다. 진석은 진씨 집안의 인맥을 동원해 전세기를 준비하고, 바로 강성으로 날아갔다. 진석이 강성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강솔의 아파트 문 앞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안은 어두컴컴하고 아무도 없자 휴대폰을 꺼내 강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강솔의 목소리는 쉰 목소리였다. [너 강성에 왔어? 나 아직 여기 있어.]“일단 집에 가라고 했잖아?” 진석은 더 이상 책망하지 않고 말했다. “위치 보내줘.”전화를 끊고, 강솔은 곧 위치를 보내자 진석은 급히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화려한 불빛과 차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진석은 차에서 내려 멀리서 강솔이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상처받은 강아지처럼 보였다. 진석은 길을 건너 강솔에게 다가가며, 강솔을 보며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쌍했다.‘여기서 오후 내내 있었던 걸까?’진석은 강솔 앞에 다다라 5초간 서 있었다. 그제야 강솔은 고개를 들었고, 진석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진석은 강솔 앞에 무릎을 꿇고 묵묵히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집에 가서 만두 다 준비했어. 집도 따뜻하고, 여기서 추위 맞지 말고.”강솔은 진석의 품에 안겨 진석의 옷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자 진석의 마음도 무겁고 아팠다.“정말로 남을 돌아봐야 할 때가 와서야 깨닫는 거야. 지금 어때? 이제는 깨달았어? 그 사람이 몇 마디 좋은 말 하면 다시 그리로 달려갈 거야?” 진석은 강솔을 안고 냉소적으로 말하자 강솔은 진석의 품 안에서 고개를
심서진은 여전히 주예형의 집에 있었다. 옷을 다 입고는 방을 치우고 식당도 깨끗이 정리했다. 서진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예형이 여전히 침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자책하며 말했다. “오빠, 잘못했어요. 제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어요. 미안해요.”예형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안 돌아가요!” 서진은 두려운 눈빛으로 예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가 저를 혼내줘야 마음이 편해요. 혼자 돌아가면 더 괴로워요.”“그냥 돌아가. 나 혼자 있고 싶어.” 예형은 차분하게 말했다.“선배, 아직도 강솔을 좋아하나요?” 서진의 눈에 슬픔이 비쳤고 예형은 후회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솔은 나랑 설을 보내기 위해 돌아왔어. 원래 우리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형은 강솔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만약 서진이 없었다면, 강솔이 돌아와서 그들은 분명히 다시 잘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끝났다.서진은 눈물을 머금고 눈을 닦으며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 “다 내 잘못이에요.”“네 잘못만은 아니야, 나도...” 예형은 머리를 움켜잡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자책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당시에는 어떻게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는지 몰랐다.“선배, 그러지 마세요!” 서진은 불쌍한 표정으로 울며 말했다. “선배가 이렇게 하면, 나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켜서 미안해요.”예형이 막 말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급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서진의 눈에 순간적으로 빛이 스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솔 언니가 돌아온 거 아니에요?”예형은 급히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키가 크고 냉정한 남자가 서 있었고, 그 남자는 주예형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예형은 그 충격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입가의 피를 닦으며 놀란 눈으로 진석을 바라보
서진은 얼굴을 맞고 뒤로 물러나며 얼굴이 일그러졌고 다시 술병을 잡고 다시 강솔을 때리려 했다. 진석은 예형을 때리면서도 강솔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서진이 흥분한 것을 보자 재빨리 다가가 손에서 술병을 발로 차 날려버렸다.서진은 비틀거리며 넘어졌고, 강솔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꽃다발을 들고 서진을 향해 다가갔다. 서진은 몸을 일으켜 반격하려 했으나, 강솔의 꽃다발이 커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몇 번 치지 않았는데도 서진의 하얀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서진은 계속 뒤로 물러나며 비명을 질렀다. 강솔은 승기를 잡고 꽃다발을 서진의 얼굴에 계속 내리쳤고 꽃이 떨어지면 꽃줄기로 때렸다.“예전부터 네가 좋은 사람일 리 없다는 걸 알았어. 남의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게 그렇게 기분 좋았니?”“네가 애써 빼앗지 않아도 돼, 줄게!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아니면 볼 때마다 팰 거니까!”강솔은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채 꽃다발을 서진에게 던졌고, 서진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속이 시원해졌다. 진석도 예형을 때려 쓰러뜨리고 맥을 못 추자 진석은 손을 털고 물러났다. 그러고는 방 안의 한 쌍의 불쌍한 남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 손으로 강솔의 캐리어를 들고 다른 손으로 강솔을 잡고 나섰다.“가자, 집에 가자!”강솔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진석과 함께 나갔다. 아파트를 나와서, 강솔은 조금 전의 상황을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이제 마음이 조금 나아졌지?”강솔은 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짐을 가지러 간 게 아니라, 나랑 화풀이하러 간 거였네!”“누군가가 너를 괴롭히면, 바로 응징해야지. 왜 네가 눈물을 흘리며 숨어 있어야 하겠어?” 진석은 강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남의 잘못으로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강솔은 진석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와줘서 다행이야!”“그래, 너 때문에 속이 터질 뻔했어!” 진석이 냉소적으로 말하자 강솔은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부끄러워!”“부끄러운 건 네
하지만 오늘 와서 그런 추악한 장면을 보게 되어, 주예형에 대한 헛된 기대를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강솔은 또다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랬기에 진석에게 고마워해야겠다. 강솔을 완전히 실망시키게 만들어줘서.강솔은 이미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은 석양을 바라보며,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그 사람에게 마지막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거의 9년에 걸친 짝사랑과 완전히 작별을 고했다. 그동안의 청춘을 그냥 개에게나 줘버린 셈이었다. 진석은 따뜻하고 힘찬 손으로 아무 말 없이 강솔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비행기를 타기 전에 진석은 강솔에게 감기 예방용 생강차를 사주었다. 강솔이 찬바람 속에서 오후 내내 있었기 때문에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비행기에 오른 후, 강솔은 피곤했는지 약물의 영향으로 진석의 어깨에 기대어 금세 잠들었다. 진석은 살짝 고개를 돌려 강솔의 약간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눈썹과 눈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 후 강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꼭 안아주었다.진석의 소중한 여자가 돌아왔다. 비록 상처를 입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활발하고 착한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다. 상처는 치유될 것이고, 과거는 잊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석은 항상 강솔의 곁에 있다는 것이었다. ...경성에 도착한 것은 이미 밤 8시쯤이었다. 강씨 저택은 집 안팎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진씨 저택에서 설을 보내고 있었다.“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와. 아래층에서 기다릴게. 엄마에게 우리가 돌아왔다고 말했으니까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응.”강솔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몸 상태도 훨씬 좋아졌다. 진씨 저택에 도착하자, 강솔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비웃지 않더라도 엄마는 비웃을 것이었다. 진석은 강솔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미소를 지으며 강솔의 어깨를 감싸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허수희와 강미래는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방송을 함께 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강솔의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려댔는데 대부분은 새해 인사 메시지였고, 주예형의 사과 메시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솔이 확인할 마음조차 없었다.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강솔은 한 번 보고는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바로 절친 이윤주였다. 현재 해외에 있는 윤주는 전화를 받자마자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솔, 새해 복 많이 받아!]이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너 돌아왔어?”[아니, 급한 과제가 있어서 설이 끝나고 돌아갈 거야!]윤주가 웃으며 말했다. [너와 주예형이 설을 쇨 거고, 곧 결혼식 올리겠네. 내가 돌아가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강솔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헤어졌어.”[뭐?] 윤주는 충격과 불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이 헤어졌다고?]강솔이 예형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실을 알았던 윤주는, 두 사람이 오랜 시간 끝에 맺어진 사랑이니까 견고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짝사랑이 연애로 발전한 지 1년도 안 돼 헤어질 줄은 몰랐다.“정말이야.” 강솔은 한숨을 쉬었다.[무슨 일이야?] “그냥,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 걸 알게 됐어.”윤주의 질문에 강솔은 담담하게 말했다. 강솔은 예형이 어떤 짓을 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았고. 필경 자신이 꽤 절절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응, 그래도 마음 편히 가져.] 윤주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난 네가 진석과 사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어. 진석은 너에게 잘해주고 잘생겼잖아. 내가 너라면 바로 그 품에 안겼을 거야!]윤주는 대학 때 강솔과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고, 몇 번 진석을 본 적이 있었다. 강솔의 친구들 사이에서 진석은 항상 남신으로 불렸다.“나와 걔가 어떻게 가능하겠어? 농담하지 마.” 강솔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윤주는 강솔이 방금 이별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진석은 강솔과 나란히 서서 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습관, 오래 곁에 있던 사람을 갑자기 잃으면 누구나 힘들고 어색해질 거야.”진석은 강솔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네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야.”강솔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내 나름의 원칙이 있어. 아무리 좋아해도 자존심을 버릴 순 없어.”이전에는 주예형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었기에, 화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미래는 아직 길어. 잃은 것들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 진석이 부드럽게 말하자 강솔은 살짝 고개를 기울여 진석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갑자기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예형 없이 살 수 있지만, 너 없이 살 수는 없어! 너는 마치 아빠 같아!”강솔의 첫 마디에 진석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솟구쳤다. 마치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질주하는 기분이었지만, 다음 마디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설날에 나를 아빠로 지위 격상시키다니!”강솔은 진심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진석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강솔의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세심하게 돌봐 주었다. 아빠가 바쁜 일로 함께하지 못했을 때, 진석은 강솔의 인생에서 아빠 역할을 했다.진석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하늘이 캄캄하게 느껴졌다. 언제쯤 별이 보일까?...방 안에서, 허순희는 창밖을 보며 윤미래에게 말했다. “우리 두 집이 사돈이 되는 건 어떨까?”그러자 윤미래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내 딸을 당당하게 빼앗아 가려는 건가?”허순희는 차를 들고 평화롭고 부드러운 눈길로 말했다. “난 진심으로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강솔이 다른 집에 시집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예전에는 강솔에게 남자친구가 있어서 말하지 못했지만, 이제 헤어졌으니 진지하게 생각해 봐.”강솔의 어머니는 한숨을
강재석은 사탕 두 개를 넣은 만두를 빚었고, 나머지는 아직 빚지 않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소희가 휴대폰을 가져오자, 도경수에게서 영상 통화 요청이 왔다. 강재석은 손을 닦으며 말했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난 도경수랑 얘기 좀 나누겠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빚을게요.” 황선국 셰프가 웃으며 말했다. 강재석이 밖으로 나가 도경수와 영상 통화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만두를 빚기 위해 의욕을 불태웠다.“우리도 만두를 빚자!” 소희가 제안하자 강아심도 흥미진진하게 말했다. “좋아, 하지만 나는 만두를 빚을 줄 몰라. 가르쳐줘야 해!”“나도 빚을 줄 모르지만, 보기에는 쉬워 보여.”“그럼 시작하자!” 임구택이 웃으며 말했다. “반죽을 펴는 게 어려워 보이니까, 황선국 셰프에게 맡기고 우리는 만두를 빚자.”모두 손을 씻고 둥근 테이블에 모여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황선국 셰프가 반죽을 펴고, 네 사람이 만두를 빚었다. 구택과 강시언은 남은 돈과 두부 만두를 빚었다.곧 덮개 위에는 다양한 모양의 만두가 나타났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니 다 똑같이 만들기는 어려웠다. 네 사람 중 누구도 서로의 만두를 비웃지 않았다. 각자 빚은 만두가 서로 더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렇게도 괜찮네!” 구택은 조용히 말했다. “자신이 빚은 만두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익으면 자신이 빚은 만두는 자신이 먹으면 돼.”소희는 웃음을 참으며 자기 만두를 구택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합이 맞지 않아. 끓일 때 속이 터지지 않을까?”옆에서 아심이 새로운 것을 알아냈다는 듯 감탄했다.“원래 속이 터지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였어?”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속을 조금 덜어내고 천천히 만두를 접으며 말했다. “밀가루를 너무 많이 묻히지 말고, 이렇게 하면 안 새.”소희는 몇 가지 요령을 찾으며 만두를 점점 잘 빚기 시작했다. 아심은 소희가 빚은 만두를 부러워하며 보다가 자기
유정은 아는 사람들을 만나 연달아 다섯, 여섯 잔의 술을 마셨다.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약간 어지러워져 바람을 쐬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그때 누군가 다가와 차가운 과일 주스를 건네며 말했다.“유정 씨,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들러리도 하시고, 손님도 상대하시느라 힘드셨겠네요.”유정은 주스를 받아들며 가볍게 웃었다.“손님을 상대한다고 하기엔 그렇죠. 다들 좋은 분들이고, 또 우리 사장님의 경사이니 다들 즐겁게 몇 잔씩 하게 되네요.”진우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일로 실례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유정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에요. 그런 상황에서 우행 씨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어요.”“처음인가요?”“처음인가요?”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고, 잠시 멈칫한 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정이 먼저 말했다.“네, 처음이에요!”우행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저도 처음이라, 경험이 없네요.”“그래도 진짜 침착하셨던데요!” 유정이 칭찬하자, 우행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정 씨도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주위에서 떠들어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하고 단아했죠.”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장님 곁에 있다 보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우행은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사장님도 그럭저럭 괜찮죠. 다만 갑자기 일이 생기면 저한테 전화해서 대신 처리하라 하시곤 한 달씩 사라져 버리세요.”유정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공감되나요?”우행이 묻자 유정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유정은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시원한 바람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부드럽게 말했다.“저기 친구가 보여서요. 먼저 가볼게요!”“네.”우행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과일 주스, 고마워요!”유정은 몇 걸음 물러난 뒤, 컵을 들어 보이며 고운 미소를 보였다
소희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옅은 금빛의 실크 광택이 흐르는 비대칭 어깨 드레스였다. 겹겹이 화려하게 층을 이룬 치맛자락 덕분에 그녀의 모습은 한층 더 늘씬하고 우아해 보였다. 고귀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풍겼다.임구택은 그녀의 드레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높은 하이힐로 인해 걸음이 불편할 것을 알기에, 그는 소희를 아예 들어 올려 계단을 내려왔다.1층에 도착하자 구택은 소희를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아 춤추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음악이 흘렀고, 두 사람은 음악에 발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주변 사람들은 점점 뒤로 물러서며 중앙의 공간을 온전히 두 사람에게 내주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들 주변에 모여들었고, 모두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춤추는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았다.갑자기 하늘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몇 대의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가자, 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비행기가 지나간 하늘에는 커다란 원형 디스크들이 나타났고, 그 디스크가 회전하면서 수많은 불꽃놀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우와!”군중 속에서 감탄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디스크에서 터져 나온 불꽃은 저택의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쏟아지는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화려한 불꽃들은 마치 꿈처럼 눈부시고 장엄한 장관을 만들어냈다.그 불꽃 아래서도 구택과 소희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은은하고 고운 왈츠 선율 속에서, 남자는 길고 날렵한 실루엣을 자랑했고, 여자는 가벼운 몸짓으로 우아함을 뽐냈다.아름다운 드레스 위에는 하늘의 불꽃이 비치며 마치 은하수를 두른 듯한 환상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몸짓에 따라 은하수는 흐르고 춤추는 듯했다.그 화려한 광경은 마치 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 아래 모든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황홀했다.춤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늘에는 한 줄로 늘어선 드론들이 등장했다. 소희는 구택의 어깨에 기대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독수리 한
강재석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그럼 시언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렴. 그 녀석도 한 번쯤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껴봐야지!”강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마 시언 씨랑 사귀지 않을 거예요.”아심이 시언에게 자신과 승현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사귀지 않을 관계라면 말하든 말든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왜 그러니?”강재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심은 멀리 바라보며 눈빛에 자유에 대한 동경을 띄었다.“그냥,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아심은 앞으로의 삶을 기다림과 실망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강재석은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단지 말했다.“젊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있는 법이지. 너만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죄송해요, 할아버지.”아심은 이 할아버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너는 나에게 조금도 미안할 필요가 없다.”강재석은 여전히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오히려 우리가 일방적으로 너의 감정을 무시하며 계획을 강요했을 뿐이지.”“아니에요.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따뜻함은 언제나 저를 위로했고,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을 줬어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강재석은 그녀가 고아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더욱 마음이 아팠다.그들은 산책을 이어갔고, 강재석은 말했다.“아까 재아가 너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 같던데, 그 아이의 말에는 신경 쓰지 마라.”아심은 이미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신경 쓰지 않을게요.”두 사람은 정원을 한 바퀴 더 돌아서 돌아와서 강재석이 말했다.“가서 놀아라. 소희랑 도도희랑 저녁 만찬도 즐기고, 기분을 좀 풀어봐.”아심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네, 그럼 도도희 이모를 먼저 찾아볼게요.”“그래, 즐겁게 놀아. 다
강재석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아심에게 온화한 미소로 말했다.“아심아, 여기 공기가 답답하구나. 나랑 같이 밖에 좀 나가자.”“좋아요!”아심이 즉시 대답하며 그를 따라 일어섰다.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가자, 강시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할아버지, 도도희 이모랑 천천히 이야기 나누세요. 전 잠깐 밖에 다녀올게요.”“그래, 다녀오너라.”도경수가 응답했다.시언이 떠난 후, 재아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혹시 말실수한 건가요?”도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도희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양재아 씨, 좀 급했던 것 같네요.”뼈를 때리는 말에 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을 더듬었다.“저, 저는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도도희는 차갑게 말했다.“잔꾀는 결국 본인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에요.”“도도희!”도경수가 그녀의 말을 막았으나 도도희는 아버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는 여전히 본질을 보지 못하시고, 모든 것을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하시네요.”도경수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재아가 무슨 말을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냐? 그 강아심이라는 아이는 분명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강시언과 엮이면서도 다른 남자와 엉뚱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도도희는 얼굴을 붉히며 날카롭게 대꾸했다.“엉뚱한 관계라니요? 그걸 직접 보시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단지 추측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시는 건가요?”도경수는 흔들리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직접 보지 않아도 다를 바 없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게. 재아는 네 친딸이야. 너야말로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해.”도도희는 재아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내 딸이 만약 저 아이처럼 행동했다면, 차라리 딸로 인정하지 않겠어요.”그 말을 남기고 도도희는 단호히 자리를 떠났다. 이에 도경수는 분노로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거의 내던질 뻔했으나, 재아는 급히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이 모든 게 제
“아심아!”강재석이 먼저 웃으며 이름을 부르며 반겼다.“할아버지!”강아심이 미소를 띠며 다가갔다.“오랜만이에요. 건강은 어떠세요?”“좋아, 아주 좋아!”강재석은 더욱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축하드려요. 소희가 이렇게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정말 부러워요!”강재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같이 기뻐해야지, 같이!”도경수는 여전히 아심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바로 강아심인가?”아심은 도경수를 향해 고개를 돌려 고운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네, 제가 강아심이예요. 도경수 어르신 맞으시죠? 안녕하세요!”도경수는 이전에 아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으나, 지금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보자 목이 메고 눈이 뜨거워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모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에 도경수도 정신을 가다듬고 도도희에게 물었다.“소희는 봤니?”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봤어요.”강재석은 바로 물었다.“우리 소희는 지금 뭐 하고 있나?”“친구들과 함께 있어요.”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좀 더 일찍 소희와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늦게 만난 게 아쉬울 정도로 대화가 잘 통했어요.”그 말에 강재석은 호탕하게 웃었다.“그렇게 오래 이야기했다면, 정말 서로 마음에 든다는 뜻이지!”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도경수가 질문을 던졌다. “도도희, 너는 아심 양과 어떻게 알게 된 거니?”도도희는 아심을 바라봤고, 아심은 침착하게 대답했다.“꽤 오래전이죠. 한 미술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어요.”도경수는 바로 물었다.“미술을 좋아하나?”“네, 좋아해요. 하지만 진지하게 배워본 적은 없어요.”아심이 부드럽게 대답했다.“예전엔 무슨 일을 했나?”도경수가 다시 묻자, 강재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갑자기 조사라도 하려는 거야? 이제 막 알게 된 아이에게 이것저것 묻다 보면 겁을 줄지도 몰라.”이에 강시언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가지 마세요!”양재아가 급히 권수영을 막아서며 말했다.“오늘 강아심도 초대받은 손님이에요. 만약 일을 크게 만들면, 장씨 집안만이 아니라 임씨 집안에서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임씨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권수영의 분노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장씨 집안도, 임씨 집안도 지씨 집안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그랬기에 권수영은 그 어느 쪽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녀는 갈 곳 없는 분노를 강아심에 대한 증오로 바꾸며 이를 갈았다.“강아심,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아심과 강시언은 강재석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때, 아심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까 그 일, 고마워요.”만약 시언이 아심을 위해 지씨 집안을 봐줬다면, 아심이야말로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언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지씨 집안 같은 사람들과는 애초에 엮이지 말았어야 했어.”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지승현은 저 사람들과 달라요. 제가 엮인 건 지씨 집안 때문이 아니고요.”“아니라고?”시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지승현이 지씨 집안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지씨 집안의 중심인물이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은 지씨 집안의 눈길을 끌지. 이게 관계가 없다고?”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래서요? 무슨 일이 생기면 겁을 먹고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시언은 아심을 깊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좋아, 네 진정한 사랑, 참으로 대단해.”시언은 그 말을 남기고 단숨에 앞서 걸어가 버렸다. 아심은 시언의 차가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후,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강재석의 휴게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언은 반대쪽 벽에 기대어 아심을 기다리고 있었다.이때, 아심이 조용히 다가가며 말했다.“안 들어가요?”시언은 여전히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아심을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전에 할아
김화연은 상황의 전말을 간략히 설명했고, 강시언은 차가운 눈으로 지수철을 훑어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누구의 체면을 고려할 필요도 없어요. 결혼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이들에게는 체면을 논할 자격이 없어요. 당장 지씨 집안을 떠나게 조치하겠어요.”양재아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고, 그녀는 시언을 향해 돌아서며 간절히 말했다.“시언 오빠, 수철이는 정말로 자기 잘못을 인정했어요!”시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히 대답했다.“잘못인 줄 알면서도 저지른 행동은 더 큰 잘못이죠. 그리고 처벌이 두려워서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요.”재아는 그의 냉혹한 대답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다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곧 시선을 돌려 강아심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다.“아심아, 네가 수철이를 위해 한마디만 해주라!”김화연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다들 아는 사이인가요?”재아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심이는 수철이 형의 여자친구예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시언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심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재아를 담담히 바라보며 말했다.“누구의 동생이든 그건 나와 아무 상관없어요. 다만 다행히도 내 친구의 동생일 뿐이지, 내 친동생은 아니네요.”“만약 내 친동생이 이렇게 자라서 고작 세 살짜리 여자아이를 괴롭혔다면, 난 엄하게 혼내서 다시는 그딴 짓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거예요.”아심의 단호하고 확고한 말에 재아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고, 수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심을 향해 음험한 시선을 한 번 보냈다.재아는 시언이 김화연의 입장을 지지하고, 아심 역시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더 이상 지씨 집안을 위해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짧은 판단 끝에 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심의 말이 맞네요. 내가 처음부터 마음 약해져서 지씨 집안을 돕겠다고 나선 게 잘못이었네요.”“제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네요. 수철이를 데리고 가서 바로 돌아갈게요.”재아는 진심 어린 목
지수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입을 열지 못하자, 양재아는 곧장 말을 꺼냈다.“제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 말한 거예요. 아까 권수영 여사님께서도 수철이를 혼내셨고, 수철이도 이미 잘못을 인정했어요.”“여사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 오늘은 소희와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잖아요. 만약 지씨 집안을 여기서 내쫓는다면 서로 얼굴을 들기 힘들어질 거예요.”재아는 소희의 이름을 직설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이 단순히 도씨 집안의 손녀가 아니라, 소희와도 친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김화연은 재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도씨 집안과 소희 모두를 떠올리며, 이 상황에서 체면을 지켜줄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김화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씨 집안 때문이든, 소희 때문이든, 이번에는 넘어가야 했다.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가던 오후, 2층 방에서 강아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시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녀의 휴대폰을 대신 끊어줄까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심은 이미 눈을 떴다.아심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잠시 멍해졌고, 이내 휴대폰 벨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손을 들어 휴대폰을 집어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도희 이모!”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넌 어디 있어? 오후 내내 보이지 않더구나. 지금 강재석 어르신을 뵈러 가려는데, 그분이 너도 이 결혼식에 왔다고 하더라. 같이 갈래?]그 시각, 강재석은 점심 식사 후 도경수와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도경수는 끊임없이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강재석은 그의 속내를 간파하고 먼저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찾아오라고 부탁했다. 도도희는 전화를 끊고 강재석을 찾아가면서, 강재석이 아심의 이름을 듣고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라 아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갓 잠에서 깨어난 강아심은 반쯤 내려앉은 긴 속눈썹으로 잠기운 어린 분위기를 풍기며 느릿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 저도 인사드려야죠. 먼저 가 계세요. 곧 따라갈게요.”두 사람은 통화를 마쳤다.아
전화를 받은 양재아는 먼저 권수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권수영은 다소 억울한 어조로 말했다.“재아양, 우리 수철이가 잠깐 장난 좀 친 거예요. 그 어린 여자아이랑 그냥 놀다 그런 거지, 걔도 아직 어린애잖아요. 그 애한테 뭘 어쩌겠어요?”“게다가 우리 수철이도 이미 혼이 났어요. 수철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알 거예요.”“오늘이 임씨 집안의 경사스러운 날이라 내가 참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고요!”“그런데 지금 김화연 여사님이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재아 양이 나서서 부탁 좀 해주면 안 될까?”“오늘은 임씨 집안 결혼식이고, 신부도 재아 양 외할아버지의 제자잖아요. 재아 양이 한마디만 해주면 여사님도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거예요.”권수영은 최대한 간곡하게 부탁하자, 재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재아는 지씨 집안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그렇게 깊은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도움을 준다면 지씨 집안도 체면을 세워줄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잠시 후, 재아는 결정을 내렸다.[알겠어요. 제가 여사님께 가서 얘기해 볼게요. 그냥 애들이 장난친 일이라고 하면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실 거예요.]“정말 고마워요, 재아 양. 정말로 우리 지씨 집안의 은인이에요!”권수영은 과장된 어조로 감사의 말을 전하자, 재아는 말했다.[어디 계신가요? 수철이를 데리고 오세요. 제가 함께 여사님께 가서 말씀드릴게요.]권수영은 재아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하고 말했다.“지금 데리고 갈게요.”재아와 권수영이 만났을 때, 재아는 지수철의 부은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너무 심하게 맞았잖아요!”“고작 어린애랑 장난 좀 쳤다고 이렇게까지 때리다니요. 참 권력이 대단한 집안이네요.”권수영은 주위를 살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임씨 집안과 관련된 일이기에 재아는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제가 여사님께서 어디 계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