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원은 어리숙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나는 네가 나를 괴롭히는 게 좋아.”간미연은 눈을 부릅뜨며 명원이 입을 다물게 했다. 미연의 아버지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미연의 손을 명원에게 건네주었다. “너무 괴롭히면, 나한테 와서 하소연해. 내가 너를 지켜줄게.”명원은 미연의 손을 잡고, 미연의 아버지에게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연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이에 미연의 아버지는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라.”미연은 아버지를 한 번 더 바라보고, 명원과 나란히 서서, 그들 둘만의 인생을 향해 걸어갔다. 예식장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엄숙했다. 두 사람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은 본래 엄숙하고 신성한 일이었다. 주례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의 서약은 신랑이 자진해서 직접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장 엄숙한 시간을 신랑에게 맡겨, 신부에 대한 신랑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명원은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 그러고는 미연의 손을 잡고,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여, 오늘 여기 모인 모든 증인 앞에서, 나는 너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서약합니다.”“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아니 다음 생까지 우리는 함께 할 것입니다. 순탄한 길이든 험난한 길이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건강하든 아프든, 당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당신에게 충실할 것입니다.”“지금, 저는 진심으로 당신에게 저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저의 부탁을 받아주시겠습니까?”미연의 차분하고 냉철한 눈빛이 눈앞의 명원에 의해 온화함과 햇살로 변했다. 미연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받아줄게요!”그러자 명원은 즉시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가 물어봐야지!”미연은 명원을 바라보자,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 순간,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 아래, 눈에는 오직 명원만이
비록 탈의실 주변은 한산했지만, 외부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기에, 소희는 임구택과의 키스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구택이 소희의 입술을 살짝 물자, 소희는 손으로 밀어냈다. 구택은 소희의 입술을 살짝 핥으며 미소를 지었다.“부모님과 형님, 형수님도 다 왔어. 가서 인사드리자.”소희는 놀라며 말했다.“아주버님과 형님도 돌아오셨다고?”“맞아, 어제 오후에 도착했어. 원래는 너에게 식사를 초대하려 했지만, 결혼식 후로 미뤘어.”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 소희는 자신이 곧 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떠나기 전에 함께 식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나는 내일 오후에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면 내일 점심에 함께 식사하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언제든지 좋아. 어차피 오늘도 만났으니까.”구택이 부드럽게 말했다.“내일 오후에 우리 함께 떠나자.”“함께?”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연말이라 바쁠 텐데. 내가 먼저 갈 테니, 만약 네가 오고 싶다면, 설에 와도 늦지 않을 거야.”“나는 이미 다 준비해 놓았어. 아무리 바빠도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해. 회사 모든 사람이 이해할 거야.”구택이 웃으며 말하자 소희는 눈을 크게 뜨며 구택을 바라보았다.“너 또 진우행이나 칼리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제는 그들 마음속에서 네 지위가 나보다 높아.”그 말에 소희는 맑은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장시원은 요요를 안고 화원에서 우청아를 찾으러 갔다. 청아는 간미연과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꽃밭을 가로질러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서 청아를 기다리고 있는 장시원과 요요가 보였다. 요요는 장시원의 품에서 내려와 작은 길을 따라 청아에게 달려갔다.“엄마!”청아는 달려오는 요요를 꽉 안았다. 얇은 드레스를 입은 청아와 공주 드레스를 입은 요요가 서로를 끌어안고, 주변의 꽃밭과 함
최정화가 손녀 이야기를 꺼내자, 김화연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일어섰다.“네가 먼저 가봐. 나는 우리 요요를 찾으러 가야 해. 요즘 잘 먹지 않아서 장시원이 요요를 너무 애지중지해. 그래서 내가 직접 돌봐야 해.”“내가 주방에 가서 요요에게 영양죽을 따로 준비하라고 지시할게요.”“한마디만 해도 되니, 직접 갈 필요는 없어.”“안 돼요,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해요. 요요도 제 손녀니까요.”김화연의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한마디로 응답하고 요요를 찾으러 돌아섰다. 청아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시원은 요요와 함께 밖의 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화연이 오자, 요요는 소파에서 기어 내려와 김화연에게 달려갔다.“우리 아가, 천천히 와. 넘어지지 않게!”김화연은 빠르게 걸어가 요요를 안자 요요는 김화연의 목을 끌어안고 웃었다. 요요가 매우 의지하는 모습이었다. 김화연은 요요를 몹시 사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청아는 어디 있니?”“옷을 갈아입고 있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시원은 소파에 기대어 나른한 태도로 말하자 김화연은 그 옆에 앉아 요요를 달래며, 무심한 듯 말했다.“장명원은 결혼을 했는데,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계획이 있니?”이에 시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나는 결혼하고 싶지만, 청아가 원하지 않은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김화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청아는 왜 결혼을 원하지 않지?”시원은 귤을 까서 요요에게 주며, 자신의 어머니를 한 번 보고 웃었다.“엄마, 왜 그런지 엄마가 잘 알잖아요. 엄마가 청아 앞에서 비슷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잖아요.”“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청아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요요를 핑계 삼아 내 곁에 붙들어 놓지 않았다면, 이미 나를 떠났을 거예요!”김화연은 즉시 걱정스럽게 말했다.“이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어. 청아는 너의 아이까지 낳았어. 근데 우리가 어떻게 반대할 수 있겠니?”화연의 질문에 시원이 천천히 말했다.“이제 아이가 청아가 낳았다는 것
장시원은 비웃었다. “누가 나한테 장명원이 결혼했다고 말했는데요? 그건 내가 엄마에게 말한 게 아니잖아요?”김화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알았어. 자식의 마음은 부모가 잘 알아. 네 마음도 이해하니까, 요요 데리고 가서 놀아. 청아는 내가 맡을게.”시원은 웃으며 요요에게 외투를 입히고는 안아서 밖으로 나갔다. 김화연은 몇 분을 기다리다가 청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청아, 여기 와서 앉아.”청아는 김화연이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긴장했다. 이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소파에 앉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어머니!”김화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명원이는 시원보다 몇 살 어리지만, 오늘 결혼했어. 아까 시원에게 너희는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었더니, 너에게 물어보라고 하더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청아는 잠시 놀랐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청아는 김화연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김화연이 일부러 떠보는 건지, 아니면 다시 한번 그를 장시원에게서 떼어놓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잠시 멈칫한 순간, 청아는 이미 마음을 먹었다. 만약 김화연이 떠나라고 하면, 어떻게 거절할지까지 생각해 두었다. 어떤 경우에도 청아는 다시 시원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자 김화연은 청아의 망설임을 알아차린 듯, 더욱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그냥 이야기를 나누자고. 오랫동안 해야 했을 말들을 솔직하게 얘기해 보자.”청아는 차분하고 공손하게 말했다. “말씀하세요.”“청아야, 너는 시원일 사랑하니? 아니면 요요 때문에 함께 있는 거야?”청아의 눈은 맑고 단호했다. “어머니, 처음에 시원 오빠가 아니었다면 저는 요요를 임신하지도, 낳지도 않았을 거예요.”“저는 그 사람을 사랑해요. 그 사람의 가문이나 돈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김화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상관이 있어.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고, 좋은 교육을 받았기에 시원의 지금 성격과 기질이 형성된 거
우청아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감동에 겨워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이런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김화연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시원과 결혼할 생각이 있니?”청아는 눈물을 머금은 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는 결코 결혼을 원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김화연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시원이 나한테 일을 떠넘겨서 너를 설득하라고 한 거라고.”청아는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청아는 눈물을 닦고 진지한 눈빛으로 김화연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저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오빠랑 저의 차이를 저는 잘 알고 있어요.”“언젠가 제가 더 나아져서 오빠와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때 결혼하고 싶어요.” “너는 이미 충분히 훌륭해.”청아는 고개를 저었다. “집안을 비교했을 때 오빠랑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이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하지만 저는 다른 면에서 조금이라도 성취를 이루어 우리가 더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김화연은 천천히 말했다. “네 마음을 이해해. 그렇다면 오늘 시원의 계획은 틀어졌네.”“아니에요!” 청아는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이 말씀이 저에게 큰 용기를 주셨어요. 시원이랑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우리의 미래를 꿈꿀 용기도 생겼어요.”김화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도 서두르지 않을게. 내 마음속에는 이미 네가 우리 장씨 가문의 일원이니까.”청아는 진지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김화연은 청아를 살짝 안아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사랑에 있어서는 현실적이어야 하고, 돈에 있어서는 독립적이어야 해.”“하지만 너무 힘들게 살지 말고, 때로는 남자에게 기대는 것도 필요해. 이것이 내가 경험에서 얻은 조언이야.”청아는 미소 지었다. “네, 기억할게요!”그제야 김화연은 청아를 놓아주며 말했다. “시원이랑 요요가 정원에 있어. 가서 그들을 찾아. 연회가 끝나면 함께 집으로
유정은 놀라며 성준을 바라보았다.“너, 이선이랑 헤어졌어?”“이미 오래전에 헤어졌어. 계속 결혼하자고 졸랐는데, 알고 보니 걔는 내 돈과 가문을 사랑했던 것뿐이었어!” 성준은 후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우리가 헤어진 순간부터 후회했지만, 자존심 때문에 너를 찾을 수가 없었어.”성준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유정, 나는 이선을 좋아한 적이 없어. 내 마음에는 오직 너뿐이야.”유정은 성준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서 처음의 거부감도 사라졌다....한편, 잔디밭 너머에서 조백림과 오진수 등이 웃으며 연회장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백림은 무심코 눈을 돌리다 맞은편에 서 있는 남녀를 발견했다. 백림은 성준을 알아차리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것은 무슨 일일까?백림은 진수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자신은 긴 의자에 기대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백림은 유정이 성준을 매우 미워하여 다시는 상종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성준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고, 유정은 어딘가 홀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유정이 그렇게 명확하고 변절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결국 연애에 쉽게 흔들리는 멍청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같은 남자로서, 조백림은 성준이 유정을 바라보는 눈빛에 진정한 감정은 없고 오직 욕망만이 담겨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런데 유정은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림은 화가 나서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 속에서 유정이 그 남자를 다시 받아들일지 지켜보고 싶었다.한편, 성준은 유정과 헤어진 후 유정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야기하며, 전에 공원에서 만난 것도 질투심에 그녀를 일부러 자극하려던 것이라고 말했다.“유정, 정말로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 줘. 다시는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다른 여자도 절대 안 쳐다볼게!” 성준은 맹세하듯 말하자 유정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정말 나를 아직도 사랑해?”“당연하지!” 확신에 차서 말하는 성준
“쓰레기 같은 새끼, 내가 정말 그렇게 어리석다고 생각해? 한두 번 속아 넘어갈 줄 알아?” 유정은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 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더 역겨워!”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성준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분수대의 물은 깊지 않았지만, 성준은 온몸이 젖었고 물이 차가웠다. 성준은 추위에 몸을 떨며 물속에서 일어섰다.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유정을 노려보는 성준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유정, 너 이 미친 년아!”“네가 미쳤지, 네가 먼저 건드렸잖아!” 유정은 독설을 내뱉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또 나타나면, 다음번에는 모두 앞에서 망신을 줄 거야!”성준은 온몸을 떨며, 분노와 충격으로 유정을 노려보았다. 과거에는 자기에게 그렇게 집착했던 여자가 지금은 이렇게 무정하게 대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성준은 유정이 진짜로 그런 것인지 연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유정은 경멸의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성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유정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마음이 상쾌해졌다. 만약 이선 그 여자도 함께 물에 던져 넣고, 둘 다 한 대씩 때릴 수 있다면 더 통쾌할 것 같았다.유정은 웃음을 띠며 정원을 지나가다가, 앞에서 간미연이 부케를 던지는 장면을 보았다. 유정이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뒤에서 조백림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쓰레기 같은 남자와 화해해서 그렇게 기뻐?”유정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자 백림이 서 있었고, 표정은 비웃음과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유정은 눈을 굴리며 물었다. “봤어?”백림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자기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얽히는 걸 안 볼 수가 없지!”백림의 말에 유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걱정하지 마. 우리 관계가 가짜이긴 하지만, 약혼 기간 동안 다른 남자와 얽히지 않을 거야.”“그래서?” 백림은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약혼을 깨고 성준과 다시 사귀고 싶어?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와 함께하고 싶다니, 너를 과대평가했네!”
방 안은 모두 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분위기가 가벼우면서도 즐거웠다. 임구택, 장시원, 노명성 등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희와 성연희 등이 모여 있었다. 연희는 한참 요요를 달래다가 우청아에게 물었다.“며칠 있으면 설인데, 장씨 저택에서 설을 보내려고?”모두 청아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우씨 집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청아는 원래 설을 혼자서 보낼 계획이었다. 청아와 시원이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에 잠깐 들르는 건 괜찮았다. 또한 설날처럼 전통적인 명절에는 장씨 저택처럼 대가족이 모이는 곳에 자신이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김화연이 한 말이 청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사실 저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요. 일도 많고, 어쩌면 설에도 일할지도 몰라요.” 청아는 무심한 듯 말했다. 가족이 없어서 그런지 명절도 큰 의미가 없어졌다. 소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시원 오빠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청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는 초콜릿을 까서 반은 요요에게, 반은 소희에게 주었다.“너는 언제 운성으로 돌아갈 거야?”“내일 오후.”연희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나도 같이 가고 싶어!”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는 올해를 노씨 집안에서 보내야지. 첫 결혼인데, 좀 참아.”연희는 무엇인가 떠오른 듯 한숨을 쉬었다.“난 강시언 오빠와 강아심이 잘될 줄 알았는데, 괜히 흥분했잖아. 시언 오빠는 운성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 정말로 미련 하나 없네.”“역시 시언 오빠야, 마음이 너무 단단해!”소희는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연희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아심이 혼자서 설을 보내게 될 텐데, 네가 아심을 데리고 운성에 가는 건 어때?”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심이 나와 함께 가겠어?”“맞아, 이유가 없지.” 연희는 중얼거리며 말하다가 갑자기 눈이 반짝였다.“이유가
구은정이 갑작스럽게 회사로 돌아오자, 그룹 내에서는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해하는 이들은 바로 외척인 서씨 집안이었다.한편, 구은서는 서선영을 원망하며 말했다.“엄마가 굳이 진수아를 구은정에게 소개해 줄 필요가 없었어요. 그게 결국 회사로 돌아오게 만든 거잖아요.”하지만 서선영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로 담담하게 말했다.“구은정은 어차피 언젠가는 돌아올 사람이야. 진수아가 아니었어도, 결국 돌아왔겠지.”은서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외삼촌께서 아직 완전히 회사를 장악한 것도 아니잖아요.”서선영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파우더를 두드리면서 비웃듯 말했다.“너희 아버지를 몰라? 왜 그렇게 외삼촌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그건 결국 구은정을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구은태는 모든 걸 철저히 계산하고 있어. 너희 외삼촌들에게 맡긴 일들은 죄다 돈이 되는 자리야. 설령 실수하더라도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줬지.”“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에는 단 한 번도 관여하지 못했어.”“구은태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구은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거야. 심지어 구은정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도 않을 거야.”“나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구은정만 돌아오면, 구은태도 경계를 늦출 테니까.”서선영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구은태가 철저한 전략가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구은태가 살아 있는 한, 서씨 집안은 그저 작은 이득을 취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구씨 그룹의 핵심 권한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은정은 달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반항적이었고, 타고난 기질이 자유분방했다. 오랫동안 밖에서 떠돌며 방탕하게 살아왔고, 배운 것도 없으며, 늘 무기력하고 한심한 태도를 보였다.은정이 회사를 맡는다는 것은, 곧 회사를 한심한 인물의 손에 맡기는 것이나 다
유진은 서인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도 참회할 수 없었고, 자기 잘못을 만회할 수도 없었다.소희는 서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함께 저려왔다.“유진이를 좋아한다면, 다시 찾아가서 붙잡아.”서인은 고개를 저었다.“유진은 다시 여기로 오지 않을 거야.”소희는 단호하게 말했다.“여기로 오지 않는다면, 네가 직접 찾아가. 구은정의 신분으로 다시 그녀를 만나봐! 너희는 혈연관계도 아니잖아.”“족보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어. 네가 그녀를 좋아한다면, 도덕적인 문제도 없고, 다른 건 전부 중요하지 않아.”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나보고 구은정으로 돌아가라는 거야?”소희의 시선이 깊어졌다.“그래. 정말로 구씨 가문을 서씨 집안 사람들에게 넘길 생각이야? 네 어머니가 생전에 쏟아부은 정성과 노력이 원수에게 돌아가도 괜찮아?”“네가 말했잖아. 임유진은 샤부샤부 가게의 사장이 될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구씨 집안의 안주인으로 만들어. 네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거야!”“유진이는 이미 충분히 노력했어. 이제 네가 노력할 차례야!”“내가 아는 서인은 혹독한 훈련 끝에 무적의 저격수가 된 사람이야.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할 정도였잖아.”“네가 가졌던 영광은 절망과 패배감 속에서 얻은 게 아니었어! 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잃어버린 것들은 전부 되찾을 수 있어!”서인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나한테도 기회가 있을까?”그는 구씨 가문의 운명이 누구 손에 들어가든 상관없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유진뿐이었다.“당연하지!”소희는 따뜻하면서도 힘이 실린 미소를 지었다.“서인은 유진을 잃었지만, 구은정은 그렇지 않아. 다시 사랑하게 만들어. 네가 유진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돌려줄 기회를 가져!”“임구택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슬픔도 기쁨도 상대방이 전부라고. 네가 유진이에게 주는 행복이야말로 유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거야!”“유진이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본 서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어두워졌고, 그 무엇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듯한 무기력함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소희는 가슴 한쪽이 시큰해져,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조용히 옮겼다.서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차갑고 고독했던 눈빛은 이제 빛을 잃어버린 채, 텅 비어 있었다.이윽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왜 왔어?”소희는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조용히 말했다.“너 보러 왔어.”서인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희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내가 뭐 볼 게 있다고. 여전한데.”소희는 서인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진짜 네가 여전하다고 생각해?”서인은 찻잔을 들던 손을 멈췄다. 손가락이 살짝 떨리더니, 컵에 떨어지는 차가 잔 속에서 잔물결을 일으켰다. 그 투명한 소리는 고요한 오후에 묘하게 날카롭게 들려왔다.서인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얼굴이 더욱 피곤하고 초췌해 보였다.이윽고 서인은 조용히 물었다.“최근에 유진이를 봤어?”유진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서인의 눈빛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생기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희미한 빛은 마치 어두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듯, 다시 사라져 버렸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잘 회복하고 있어. 오른손도 가벼운 물건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고, 정신 상태도 아주 괜찮아.”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잘됐네.”서인의 목소리는 더욱 가벼워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를, 기억해 냈어?”소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서인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입가를 살짝 비틀며, 마치 스스로를 조롱하듯이 중얼거렸다.“기억 못 해도 괜찮아.”소희는 깊은숨을 내쉬었다.“이게 원했던 거 아니야? 근데 왜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는 거야?”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손을 뻗어 담배를 찾았지만, 막상 담배를 손에 쥐고 나서야,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그대로 담배
서인은 돌아왔지만,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지 않았다. 혼자 후원에 머물러 있었고, 도대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임유진이 사고를 당한 이후, 서인은 점점 더 후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오현빈은 서인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걸려 했지만, 문득 이 순간만큼은 그가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잠시 머뭇거리던 현빈은, 결국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서인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 구은태는 의식을 되찾았고, 그는 직접 서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와 회사를 맡으라고 말했다.병을 앓은 뒤라 기력이 쇠한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절실하고 진심 어린 듯 들렸다.[은정아, 돌아와라. 예전의 일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진심으로 사과할게.][네가 아무리 아빠를 미워해도, 네가 구씨 집안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이제 나는 더 이상 그룹을 이끌 힘이 없어. 그러니 네가 이 책임을 맡아야 해!]서인은 미소인지 냉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씨 사람들이 좋다면서요? 그럼 그룹도 구은서에게 넘기면 되겠네요. 그럼 그쪽도 더 이상 싸울 필요 없겠죠?”구은태는 숨을 한 번 거칠게 들이쉬었다.[은정아, 정말 나를 그토록 미워해서, 우리 집안 사업까지 함께 외면하려는 거냐? 하지만 잊지 마. 회사에는 네 어머니의 노력과 땀도 스며 있어.]서인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이제서야 그게 기억났나 보죠?”구은태는 목소리를 낮추며, 한층 더 간절한 톤으로 말했다.[난 네 어머니에게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반드시 회사를 네 손에 넘겨야 해.]그러나 서인은 비웃듯, 차갑게 내뱉었다.“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그러는 거겠죠?”이에 구은태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서인은 아무런 미련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구은태가 자신에게 설득당하지 않자, 어디선가 알아낸 정보를 이용해 소희
마심호가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의사 말로는, 회장님께서 저녁에 술을 드셨다고 해요. 게다가 두 종류의 술을 함께 마셨고, 이번 심장 발작도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요.”서선영은 즉시 말했다. “회장님께서 직접 술을 마시겠다고 하셨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회장님 성격상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도 말릴 수 없어요.”“제가 말릴수록 더 화를 내시니까요.”구은서는 서선영의 팔을 붙잡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엄마, 굳이 변명할 필요 없어요. 매일 아빠를 돌보며 고생하는 건 엄마잖아요. 엄마는 늘 집안을 위해 애쓰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부모에게 최소한의 효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아빠를 걱정시키고 속상하게 만들죠.”“지금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딴청 피우는 사람 아닌가요?”마심호는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아가씨, 그렇게 단정 지을 문제는 아니에요. 도련님께서 집을 떠나 계셨던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은서는 그의 말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며 쏘아붙였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말씀 속에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차라리 대놓고 말해보시죠. 오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제 어머니가 계모라는 이유로요?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오빠를 차별한 적 없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무엇이든 다 맞춰주려 하셨죠.”“그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요? 계모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그렇게 애쓰고도, 결국 오해받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은서의 날카로운 공격에 마심호는 더 이상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아가씨께서 너무 깊이 생각하신 것 같군요.”하지만 은서는 물러서지 않았다.“제가 생각이 많은 건가요? 아니면 당신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걸 제가 말한 건가요?”은서
소희는 어린 시절의 서인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삼각주에서 함께 지냈던 그 시절,서인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그렇게 무기력하지도 않았고, 이처럼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여 있지도 않았다. 말수가 적다는 점은 같았지만, 그때의 서인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그때의 서인이 임유진을 만났다면, 분명 그런 복잡한 집안과 신분 문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유진을 깊이 사랑하고, 망설임 없이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임무가 실패한 순간부터, 서인은 변했다.서인은 과거의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둬 버렸다. 빛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행복을 허락하지도 않았다.모든 것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소희는 서인을 이해했기에 그래서 안타까웠다.서인은 말하는 것처럼 유진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감정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구택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어깨뼈를 감싸 쥔 채, 천천히 얼굴을 숙여 소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그만 생각해. 유진이는 서인을 잊을 거야. 그게 운명이야.”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어떤 일들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유진이가 정말 영원히 서인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둘의 결말일 것이다.구택의 가운이 풀어지면서, 튼튼한 몸이 드러났다. 구택의 피부는 탄탄하고 섹시했으며, 몸을 숙여 소희의 어깨를 입맞출 때, 그의 손은 아래로, 그리고 앞으로 움직였다.소희는 구택의 손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자기야, 아까는 씻고 나면 바로 잘 수 있다고 했잖아.”구택은 낮고 흐린 목소리로 대꾸했다.“아직 열 시야.”“그렇지만 나 졸려.”구택은 소희가 요즘 바쁘고, 유진이 걱정으로 지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에 구택은 소희를 부드럽게 품에 안고, 침대 머리맡의 조명을 어둡게 조절했다.“같이 자자.”소희는 구택의 품에 기대면서도, 머릿속이 서인과 유진이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구택의
수아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도 당신을 좋아하긴 해요. 하지만 당신이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이 가게에서 살겠다는 거예요?”그러나 서인의 마음은 이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더욱 냉정한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그 문제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함께할 수 없어요.”수아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듯,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다시 생각해 봐요. 당신은 구씨 집안의 장남이야. 당연히 돌아가서 그룹을 이끌어야죠.”“이 작은 샤부샤부 가게에 머물러서 무슨 미래가 있겠어요? 난 다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서인은 수아를 바라보며, 불현듯 소희의 말이 떠올랐다.“앞으로 순수하게 좋아해 줄 유진이 같은 아이는 다시 못 만날 거야. 한 번 놓치면, 영영 없는 거야.”서인의 가슴이 죄어들 듯 아팠고, 차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단호하게 말했다.“진수아 씨, 더 이상 여기 오지 마세요.”그 말과 함께 서인은 주저 없이 돌아서 걸어 나갔다. 수아는 서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화가 난 듯 핸드백을 탁자 위에 내던졌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서인은 구씨 집안으로 돌아가 왕처럼 살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고, 이런 작은 샤부샤부 가게에서 지내려 하는 걸까?수아가 꿈꿨던 재벌가 사모님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서인은 후원으로 돌아왔다. 마당에는 장미 덩굴이 늘어서 있고, 계화나무가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고양이 집, 새로 바뀐 나무 테이블...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마치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서인의 마음을 찔러댔다.이곳의 모든 것이 유진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유진은 이 모든 기억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작은 고양이 애옹이는 불안한 듯 몸을 일으켜 그를 바라보며 약한 울음소리를 냈다.야옹이조차도 초조한 듯,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서인은 묵묵히 의자
유진의 다리는 아직 움직일 수 없었기에, 침대에 누워 있거나 침대 머리를 높여 반쯤 기대는 상태로 있어야 했다.그녀는 리모컨 버튼을 눌러 침대 머리를 살짝 올린 뒤, 소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구은정 삼촌이 여기 와서 이상한 말을 많이 했어. 그리고 자기가 날 친 거라고 했어!”소희는 조용히 물었다.“아무런 기억도 안 나?”유진은 잠시 생각하려다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는데, 고개를 저었다.“정말 기억이 안 나. 내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아!”소희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기억이 안 나면 그냥 두는 게 좋겠어. 너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소희, 엄마도 갔고, 이제 우리 둘뿐이잖아!”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물었다.“그래서?”유진은 더욱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맛있는 거 좀 먹자!”그녀는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고, 치킨을 먹고 싶었으며,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었다.이에 소희도 웃으며 말했다.“좋아!”유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을 두 바퀴쯤 뛰어다닌 뒤, 소희에게 커다란 포옹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기에, 대신 눈빛으로 기쁨을 표현했다.소희는 배달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의사에게 먼저 문의하여, 유진이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확인한 뒤, 철저히 지시를 따르며 간식을 골랐다....유진의 머릿속에서 서인과 관련된 기억은 마치 흐릿한 공백이 된 듯했다. 그와 연관된 오현빈 같은 사람들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 유진은 침대 곁에서 말을 걸던 구은정 삼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그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었고, 머리도 아팠다.그래서 유진은 본능적으로 서인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한편, 서인은 샤부샤부 가게로 돌아왔는데, 마침 진수아도 와 있었다.수아는 자리에서 일
유진은 찡그리며 눈을 떴다. 눈앞에 서인이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고, 이내 놀란 기색과 함께 경계심이 스며들었다.서인은 푸른 기운이 감도는 눈 밑과 덥수룩한 수염, 깊고 어두운 시선으로 인해 영락없이 위협적인 인상으로 보였다.“구은정, 삼촌?”유진은 낮게 중얼거리며 본능적으로 거실 쪽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정숙이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왜 낯선 이상한 아저씨가 자신의 침대 곁에 앉아 있는 걸까?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깊은 상처를 숨긴 채, 갈라진 목소리로 묻듯이 말했다.“너, 정말 날 잊었어?”유진은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기억하는데요. 어릴 때 한 번 본 적 있어요.”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의 기억 속 모습과는 꽤 많이 달랐지만, 그의 깊고도 아픈 시선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녹아 있었다.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낯설고도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잊어버린 게 차라리 잘된 거야.”서인은 시선을 떨구며, 굳게 다문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애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 알아서는 안 됐어.”둘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이었다.서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짙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고, 목소리는 더욱 잠겨 있었다.“유진아, 미안해.”유진은 눈썹을 찌푸리며 서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문득 놀란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설마, 삼촌이 날 친 건 아니죠?”서인은 유진을 바라보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은 울음보다도 더 아프고 쓸쓸했다.“내가 직접 그랬던 건 아니지만 나와 관련이 있어.”유진은 아, 하고 가볍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상했다. 이에 유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다.“삼촌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믿어요. 난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