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심은 애서린이 임성현에게 가면 기껏해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오만하게 납치까지 감행할 줄은 몰랐다. 전화는 아직 끊기지 않았고, 단지 음소거가 된 상태였다.“위치를 확인해 봐. 애서린이 어디에 있는지 보자.”이때 강시언이 다가와 말하자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를 기반으로 애서린의 위치를 검색했다. 애서린은 이미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위치는 계속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위치를 확인한 시언은 아심에게 외투를 건네며 말했다.“가자.”아심은 외투를 받아 입고, 정아현에게 말했다. “이 일은 먼저 알리지 말고 공포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해요. 우리가 애서린을 찾으러 갈 거니까.”하지만 아현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장님과 미스터 강 두 분만 가시면 너무 위험해요.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성현이 애서린을 납치할 정도로 악랄한 짓을 했다는 것은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아현은 두 사람만으로 어떻게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이 섰다.“경찰은 필요 없어요.” 아심은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 마요. 애서린을 구하고 나서 연락할 테니까.”아현은 여전히 걱정스럽게 말했다. “사장님...”아심은 아현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시언에게 말했다. “가요.”...시언은 위치를 따라 차를 몰며 길을 따라갔다. 해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차는 한 시간 넘게 달려 점점 도심에서 멀어졌고, 생태 공원이 주변에 있는 교외 지역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차는 공원에 들어가, 숲속 깊은 곳에 있는 오두막 앞에 멈췄다.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상황에서, 주변 나무들은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어두운 그림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두막에서 나오는 눈부신 흰 빛은 겨울의 차가운 밤에 전혀 따뜻함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무리하지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시언이 당부하자 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령을 따를게요.”원하는 대답을 들은 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두
강시언은 빠르게 움직였고, 다른 사람들은 시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들이 행동을 취하려고 할 때, 임성현은 이미 시언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 성현은 손목이 부러져 고통에 찬 얼굴로 시언을 노려보며 말했다. “날 죽일 용기는 있어?”시언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 훈련 때도 네가 불만이 많아서, 나를 찾아왔지만 결국 이 말만 했지.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실력은 늘지 않았구나.”성현은 분노에 찬 채 이를 악물고 시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성현은 특수한 가정 출신으로, 본능적으로 야성과 난폭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불법 행위를 일삼으며 거침없이 행동해 왔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언에 대한 경멸과 질투도 있었다.성현이 시언을 향해 몸을 던지는 동시에, 방설윤도 차량에서 뛰어내려 시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시언은 임성현을 발로 차서 물리치고, 반대 손으로 설윤을 한 손으로 때려 날려버렸다. 이에 설윤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져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갑게 웃었다. “네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자!”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성현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자, 시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현은 기회를 틈타 도망쳐 차량 뒤로 몸을 피하며, 몇 개의 막대기를 주워 자기 손목을 고정했다.“숨을 만한 곳을 찾아 숨어있어. 두려워하지 마.”한편 강아심은 이미 애서린을 기둥에서 풀어주고, 자기 외투를 벗어 입혀주었다. 애서린은 겉보기에는 성현이 해치지 않은 것 같았고, 단지 겁을 주려고 옷을 벗기고 아심과 시언을 유인한 것 같았다. 애서린은 눈이 부은 채 울고 있었고, 몸을 떨며 말했다. “사장님, 사장님.”“돌아가서 얘기하죠.”아심은 한 발로 막대기를 들고 덤벼드는 남자를 차서 날려버리고, 애서린을 밀쳐 숨도록 했다. “먼저 숨어 있어요!”아심은 말하면서 돌아서서 싸우기 시작했다. 애서린은 몸을 떨며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 없는 곳을 찾아 숨어들었다.아심은 휘두르는 막대기를 피하면서, 옆에
아심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나를 노려보겠다고? 확 눈을 뽑아버릴라!”“아니!” 방설윤은 두려움에 빠져 고개를 숙였다. 아심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갑자기 몸을 돌려 한 손으로 막대기를 휘둘러 자기를 공격하려던 사람의 얼굴에 맞췄다. 이에 그 사람은 바로 이빨이 2개나 빠졌다. 생각보다 꼬여버린 상황에 그 뒤에 서 있던 다른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아심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심은 차분한 눈빛으로 몸을 날려 돌려차고, 막대기를 휘둘러 그들을 제압했다.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연습을 안 해서,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이자 점점 움직임이 느려졌다. 어깨에 한 방 맞자, 이를 악물며 공중에서 발차기를 날려 두 명을 쓰러뜨리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강시언의 발밑에는 이미 열 명 넘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임성현이 얼마나 큰 금액을 약속했는지 맞아도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 듯 계속 달려들었다.아심과 달리, 시언의 싸움에는 어떤 변수도 없었고, 모든 공격이 정확히 급소를 향했고, 움직임은 빠르고 힘이 넘쳤다.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시언의 눈에 띈 아심이 시언을 향해 달려가자, 시언은 발로 몇 자루의 긴 칼을 차서 날려 보냈다. 날카로운 칼날이 휘몰아치며 혼란스러운 인파 속에 길을 내었다. 그리고 아심은 날카로운 칼날을 따라 시언을 향해 뛰어가며 말했다.“이길 수 없어!”아심은 달리며 소리쳤고, 곧바로 시언의 품에 안겼다. 시언은 한 팔로 아심을 안아 들고, 아무런 고민도 없이 몸을 돌려 한 명의 가슴을 발로 차서 멀리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사람은 3미터나 날아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혔다.방 전체에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고, 오두막 지붕을 뚫고 숲 전체에 메아리쳤다. 이에 날아가는 새들까지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성현이 데려온 사람들은 이제 절반도 남지 않았고, 시언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들도 훈련된 타격대였지만, 숫자에 의존하지 않으면 눈앞의 남자에
임성현은 몸이 굳어졌고 강아심은 냉소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말할 차례야, 움직이지 마!”성현은 얼굴이 긴장된 채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어디서 총을 구했어?”“주었다고 하면 믿을래?” 아심은 차량에서 뛰어내리며, 성현의 손에서 총을 발로 차서 떨어뜨리고,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이제야 알겠어? 너는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너희가?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성현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난 네가 강시언을 과소평가했지만, 어느 정도의 실력이 뭐 어때서? 한 번 날 건드려봐!”“오빠도 너 때문에 더럽히지 말라고 했지만, 어떡하지, 난 네놈을 직접 처리하고 싶어!” 아심은 총을 성현의 머리에 겨누며, 천천히 내려가며 말했다. “여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해?”성현은 반쯤 앉아 아심을 올려다보며,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뭐, 뭘 하려는 거야?”“너무 오만하면 결국 벌을 받게 되지!” 아심은 총을 장전하는 소리에 성현의 얼굴이 변하며, 두려움이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 “강아심, 제발 무모한 짓 하지 마. 네가 날 다치게 하면, 난...”탕! 아심은 직접 총을 쐈고, 이번에는 매우 정확했다.“아아!”성현은 땅에 쓰러지며, 두 다리 사이에서 피가 터졌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뜨고, 고통보다 절망이 먼저 뇌리를 스쳤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심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지금의 고통을 잘 즐겨봐. 앞으로의 날들은 이보다 더할 테니까!”시언이 다가와 바닥에 뒹구는 성현을 한 번 쳐다보고, 자기 외투를 벗어 아심에게 입히며 말했다. “속이 시원해?”아심은 시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정말 시원해요!”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타격대를 보며 말했다. “이제 갈까요?”“먼저 널 집에 데려다줄게.”“애서린을 찾아야 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애서린은 목제 판자 뒤에 숨어있다가 아심이
차량의 전조등이 강아심이 들어가는 방향을 비추고 있었다. 아심이 건물로 들어가고, 불을 켜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강시언은 차를 돌려 떠났다....아심은 아파트에 돌아와 외투를 걸어두고, 샤워를 한 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베란다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가끔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책상 위의 시계가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아심은 전혀 불안하지 않았는데 시언이 곧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한 시가 가까워졌을 때, 아심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맨발로 달려 나가 현관에 있는 검은 셔츠를 입은 시언을 보자마자 그를 껴안았다. “추웠어요?”시언의 몸은 단단하고 차가웠지만, 아심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시언은 아심의 어깨에 멍이 든 것을 보고 눈빛이 깊어졌다. “다쳤어?”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아파요.”시언은 아심을 안고 소파로 데려가며 말했다. “약은 있어?”아심은 시언의 목에 얼굴을 묻고 웃으며 말했다. “처음 훈련할 때 팔을 다쳐서, 오빠한테 약이 있는지 물어봤던 게 기억나요? 그때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해요?”시언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참고 고통을 기억해. 그래야 다음에 피할 수 있지.”아심은 시언의 말투를 흉내 내며 웃었다. “정말 무서웠거든요. 눈물이 바로 쏙 들어가고, 다시는 오빠 앞에서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거든요.”시언은 아심을 소파에 내려놓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다친 후에 약을 쓰기보다는, 스스로 상처를 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나아.”아심은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 말은 평생 유용할 거예요.”결국 시언은 약을 찾아 아심에게 발라주었다. 그리고 아심을 안고 잠이 들었을 때, 아심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내 방에 약을 놓게 한 거 맞죠?”“썼어?”시언이 묻자 아심은 시언의 품에 파묻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요.”이미 다친 후에는, 약을 쓰든 안 쓰든 그저 심리
임성현은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강시언 때문이라고요? 그 사람이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그 사람은...]임철호는 말하려다 멈칫하더니 결국 말하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모르는 게 좋아. 날이 밝으면 삼촌과 함께 해외로 가라. 내가 돌아오라고 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마라.]“난 가기 싫어요. 난 복수해야 한다고요!”[무슨 복수를 하겠다는 거야?] 임철호는 분노에 차 소리쳤고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며 말했다. [네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면, 우리 가문 전체가 함께 망할 거야. 네 할아버지와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알겠어?]성현은 멍하니 있었고 마침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 가야 해. 더는 너와 얘기할 수 없어. 모든 건 삼촌의 지시를 따르고,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그렇지 않으면, 나도 너를 보호할 수 없어.”전화를 끊은 후였지만, 성현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임철혁은 성현을 위로하려다가,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며 몇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구속영장을 들고 있었다. “임성현, 당신은 불법 무기 소지, 납치, 강간, 불법 집행 및 뇌물 수수 등 여러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계속되는 청천벽력에 성현은 침대 위에서 떨어졌고 임철혁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임씨 가문의 힘이 소용없음을 깨달았고 이번에는 도망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한겨울의 한밤중에도 강성은 여전히 번화했지만, 번화한 겉모습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성현은 체포되었고, 회사는 밤새 감사되었다. 그리고 성현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증거와 증인들이 빠짐없이 발견되었다.서건호는 성현을 도와 여러 일을 했기에 밤사이에 경찰서로 끌려갔다. 방설윤 역시 같은 운명으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설윤이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성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자 성현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설윤은 자신의 아버지
임철호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제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여러모로 폐를 끼쳤습니다. 마지막에 어떻게 판결이 나든, 저는 절대로 아들을 위해 항소하거나 선처를 구하지 않겠습니다.]강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기회를 줬습니다.”[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임철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항상 바빠서 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임성현의 성격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들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임성현의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지만, 당신들 내부에서 어떻게 처리할지는 제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당신이 추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배려입니다.][저는 성현의 아버지로서 성현의 행동에 책임이 있습니다. 위에서 어떻게 처리하든, 저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또한, 앞으로 강성에서 절대로 누구도 강아심 양에게 손을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그럼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시언은 전화를 끊고, 발코니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침실로 돌아갔다. 시언이 눕자마자, 아심은 바로 품에 안겨 왔다. 시언은 아심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잠시 후 아심을 꼭 껴안았다....다음 날,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아심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매일 아침 메뉴는 달랐지만, 항상 맛과 품질이 뛰어났다. 밀키트도 오성급 호텔의 음식처럼 보였다. 식사 중에 시언이 말했다. “임성현의 일은 다 해결되었어.”아심은 시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으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이건 우리 둘의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 없어.” 시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아심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계속해서 수프를 마셨다.“그리고, 오늘은 회사에 함께 가지 않을 거야.”시언이 아심을 바라보며 말하자 아심은 수저를 깨물었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여기 며칠 있었으니, 할아버님이 분명 걱정하실 거예요. 빨리 할아버님을
강재석은 평온한 표정으로 도경수를 보며 말했다. “쟤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장기나 둬!”도경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좀 신경 써주면 안 돼? 너처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건 좀 그렇지 않나?”“이게 더 좋지 않나? 나는 걱정이 없고, 그들도 자유로워서 좋잖아!” 강재석은 무심하게 말하자 도경수는 냉소하며 말했다. “네가 예전에 소희를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임씨 집안에 시집가서 3년이나 소외당하지 않았을 거야!”“임씨 집안에 시집간 게 어때서? 그건 소희가 선견지명이 있는 거야!” 강재석은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임씨 집안의 그 녀석도 소희의 손아귀에 있잖아.”두 사람은 장기를 두며 다투었지만, 말다툼하면서도 장기 두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양재아는 입술을 깨물며 시언에게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들이 싸우는 게 참 볼만해요. 옆에서 듣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시언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먼저 위로 올라갈게요.”시언이 올라가려고 하자 재아는 뒤따라가며 말했다. “오빠, 주방에서 만든 대추 꿀떡 먹어볼래요?”“아니, 괜찮아.” 시언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위층으로 걸어갔다. 재아는 계단을 붙잡고, 시언의 뒷모습을 보며 눈빛이 슬프고 어두웠다. 시언이 강성에서 어떤 친구를 사귀었겠는가? 분명 강아심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아심은 정말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고, 모든 여자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재아 역시 아심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강씨 집안 같은 가문에서는 결혼할 때 반드시 가문을 따져야 했다. 소희가 임씨 집안에 시집간 것처럼 시언 역시 아심 같은 출신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리가 없었다. 또한 결혼할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강재석에게 데려왔을 것이다. 재아는 이렇게 정신 승리를 하자 다시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강재석은 운성에서 온 서류 한 묶음을 시언에게 건네며 말했다.“
강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챙겼어요.”강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아 침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그러면 오늘 바로 하자. 먼저 씻고 아침 먹고, 곧바로 서류 처리하러 가자!”...한 시간 후, 아심은 서류를 작성한 뒤, 직원의 안내를 받고는 앉아서 기다렸고,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그럴 만도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녀의 감정은 너무 큰 변화를 겪었고, 벌어진 일들이 모두 예상 밖이었다.예를 들어, 어제는 시언을 배웅하러 왔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강성에 남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오히려 아심에게 더 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 기쁨에 흥분을 주체 못 했고, 오늘 아침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쪽지는 그녀를 더더욱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결혼 얘기를 꺼냈는데, 시언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줄은 정말 몰랐다.불과 한 시간 전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이제는 이미 서류 작성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건물을 나와 정말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심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멍해졌다.아심은 옆에 있는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우리 진짜 결혼한 거예요?”어제까지만 해도 어떻게 시언과 작별할지 고민하던 자신이, 오늘은 이미 그와 부부가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시언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게다가 후회도 못 하는 결혼이야.”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혼식은 언제 하고 싶어?”“아?” 아심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무심코 대답했다.“지금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좀 시원해지면 하죠.”“좋아, 네가 정한 대로 하자.”시언은 아심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갔다.“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요?” 아심이 시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집으로 가자. 할아버지께 이 좋은 소식을 알려드려야지.”아심은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우리가 양쪽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결혼한 건, 좀 예의에 어긋난 거 아닐까요?”시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강아심은 눈가가 붉어지며 살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할아버지께도 말씀 좀 전해주세요.”[알겠어. 비행기 표는 취소했으니 집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게. 네가 돌아오고 나서 떠나자.] 도도희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이반스와 이야기를 나눴어.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너도 이해해 줬어.”아심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요.”[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반스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준비할 거야.] 도도희는 웃으며 덧붙였다.[너와 시언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그 순간 아심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도도희와의 통화를 마친 후, 아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책장을 지나치던 중, 아심은 왼쪽 서랍 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쪽에서 뭔가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어딘가 낯익은 물건 같았다.아심은 이미 서랍을 지나쳤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돌아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스케치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전에 시언과 함께 저택에서 수업을 들을 때, 시언이 자주 손에 들고 있던 그 스케치북이었다.아마도 시언이 저택을 떠날 당시 이곳에 들러, 소지품 몇 가지를 여기에 두고 간 듯했다. 그녀는 시언이 수업 시간마다 손에 들고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한 번도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에야말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였다.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스케치북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림들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스케치북에는 약 열다섯 장 정도의 인물 스케치가 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그림의 주인공은 아심이었다.아심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표정, 아이들과 정원에서 노는 모습,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옆모습까지...모든 그림의 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했고, 구도는 빈틈없이 완벽했다. 각
“어. 직원이 말하길, 네가 막 떠났다고 하더라고.”“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너무 늦었으니 집으로는 가지 말고, 전에 머물렀던 저택으로 가죠.”강아심은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확실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저택에 도착하자, 강시언은 아심을 안은 채로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침실에 들어서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지만, 아심은 손을 뻗어 그 불을 꺼버렸다.침실은 넓고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그림자를 만들었고, 어둠 속에서 둘 사이의 긴장감과 온도가 빠르게 고조되었다. 아심의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쇄골과 옥처럼 빛나는 피부는 시언을 더욱 사로잡았다. 그녀는 시언의 강인한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싼 채, 살짝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씻어야 해요.”“응.” 시언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답하며, 아심을 욕실로 데려갔다. 욕실에 들어가자 그는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뜯어내며 아심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아심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숨을 고르고, 살짝 깨문 입술 사이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은 달빛보다도 더 매혹적이고 아릿했다.그 밤은 길었다. 아심은 처음으로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강언의 품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녀의 감정과 감각은 더없이 충만했다....다음 날, 아심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아심은 눈을 깜빡이며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지만, 시언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거실에서 그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시언도 막 일어난 듯했다. 아심 옆자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햇살이 따뜻하게 창을 통해 들어와 짙은 회색 침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심의 벌거벗은 어깨에도 햇빛이 내려앉아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몸이 나른하게 풀린 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이제
달빛이 강시언의 눈썹과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시언의 모습을 더욱 고귀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삼각주의 일은 이미 시경 걔네들한테 맡겼어. 난 본국으로 돌아왔고.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야.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야겠지만.”아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눈동자에 작은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이에요?”“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겠어?”아심의 마음속에서 억누를 수 없었던 환희가 점점 커져갔다.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났고, 붉은 입술은 매혹적으로 빛나며 시언을 뜨겁게 바라봤다. 시언은 아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아심은 한껏 들뜬 마음속에서 약간의 이성을 찾아냈다. 그녀는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눈썹을 살짝 올려 물었다.“당신이 떠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언제부터였죠?”시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심의 얼굴에서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화가 난 기색으로 변해갔다.“이번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결정한 거죠?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시언이 은퇴를 결심한 것은 분명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돌아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아심은 최근의 갈등과 고민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언을 밀어내며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긴 팔로 아심의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고의는 아니었어.”방금까지 울었던 아심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머물러 있었다. 붉어진 눈꼬리는 그녀의 화난 표정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아니라고요? 이게 어떻게 고의가 아니에요?”아심은 힘껏 시언을 밀어냈지만, 그는 손쉽게 아심의 손목을 붙잡고 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에 실린 애잔한 사랑 노래가 밤을 더욱 고요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강아심의 눈에는 언제나 강시언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늘 아심의 시선 끝에 있었다.아심은 시언을 꼭 끌어안고,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살짝 쉰 채로 말했다.“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잔잔하게 흘러가던 물이 끝없이 휘돌아 결국 마음을 강하게 휘감고 넘쳐흐르는 듯했다.“예전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설날에 당신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을 때부터, 나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했어요.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려고, 자유로운 미래를 꿈꾸려고요.”“그런데 왜 결국엔 이 모든 게 당신 하나를 이기지 못하죠?”모든 것을 잃었을 때, 시언은 아심의 전부였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조차, 그는 아심의 전부를 초월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들, 시언이 없다면 아심의 인생에는 기쁨도, 의미도 없었다.시언은 아심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에 스며드는 눈물을 느꼈다. 마음이 찌르듯 아파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아심아...”하지만 아심은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절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사랑해요. 하지만 정말로 미워요. 왜 나에게 도망칠 길 하나조차 남겨주지 않았나요? 왜, 단 하나도!”어두운 밤 속, 시언의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저음으로 물었다.“그래도 떠날 거야?”아심은 시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참고자 했지만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여기 강성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1년이든, 2년이든, 당신이 언제 돌아오든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정월 대보름 그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심 스스로 찾았다.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아심은 시언을 사랑했다. 이 사랑은
강시언은 오후 네 시가 되도록 강아심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도희는 아심이 운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했다.시언은 아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비교적 침착하던 강재석마저 걱정하기 시작했다.“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시언은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에 강재석은 뒤에서 당부했다.“아심을 만나거든 꼭 내게도 알려라.”시언은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언은 문밖으로 나갔다. 오석이 방으로 들어와 강재석에게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르신, 오늘의 바둑은 좀 난잡해 보이네요.”강재석은 바둑판 위의 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마음이 복잡하니, 바둑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겠나.”오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아직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강재석은 잠시 바둑판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은 이미 짜여 있어. 어떤 상황이든 계속 두어야 해. 끝까지 두다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있을 거야.”...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서점에도 손님이 줄어들었다. 아심은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서며 책 두 권을 계산했다.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밝게 말했다.“혼자 오셨나요?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알아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에 먹죠.”돈을 지불한 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직원에게 말했다.“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좋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안녕히 계세요.”서점을 나온 아심은 저물어가는 황혼 속 긴 골목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곧 어둠이 깔릴 듯했다. 그녀는 만나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골목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산책을 하던 아심은 문득 자신이 왜 이곳에 계속 머무
강아심이 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강씨 저택으로 향하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음이 흔들렸다.도로 옆에 차를 잠시 멈추고 고민한 뒤, 아심은 차를 다시 움직여 차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운성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고즈넉한 고장을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아심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배낭을 메거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마을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은 청량하고 상쾌했다. 강아심은 깨끗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정오의 햇살 아래 깊고 조용한 골목은 한결 평온했다. 이따금 떠도는 햇빛과 그림자 속, 누군가의 고양이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담장 위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이끼 낀 벽돌 구석에 내려앉았다.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서점. 서점 뒤뜰의 붉은 담장 위로 장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향기는 골목 특유의 습한 공기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졌다.서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강아심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몇몇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책을 정리하던 직원이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어서 오세요!” 직원이 인사하며 웃고는 아심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아, 손님이시네요!”아심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직원은 연한 하늘색 멜빵 청바지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던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아심의 앞으로 다가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올 줄 알았어요!”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
그날 밤, 강아심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밤이 깊어지며 바람이 일었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이어졌다. 새벽녘이 되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도도희는 이른 아침에 조깅하러 나가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 아심과 마주쳤다.“운성으로 가는 거니?”이에 아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작별하려고요.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돌아올게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잘 다녀와. 아침은 먹고 가는 게 어때?”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가는 길에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도경수는 아심이 강시언을 배웅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심이 떠나자, 도경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둘 다 내일 떠날 텐데, 왜 시언이 우리 아심일 배웅하지 않는 거야?”도도희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렇게 따지지 마세요. 아심이가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요.”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아심이가 삼각주로 끌려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내가 절대 못 봐!”도도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그러나 도경수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아심인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가지 말라고 막았어야 했는데. 시언은 늘 여유로우니 우리도 좀 참을 수 있었잖아!”도도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운성, 강씨 저택.강재석은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집사인 오석이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어젯밤에 도련님 방의 불이 밤새 켜져 있었습니다.”강재석은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엔 걱정의 기색 없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
아심은 눈에 은은한 빛을 띠며 성연희를 바라보았다.“연희야, 고마워.”연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됐어! 저기 가서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를 잊으면 안 돼.”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절대 잊지 않을 거야.”그날 저녁아심은 이전에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파티를 마친 후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방 안은 이미 얇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강시언의 셔츠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밤, 세탁소 직원이 가져가 깨끗이 세탁한 후 다시 배달해 놓은 것이었다.강심은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어두었다. 옷장에는 남성용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대신 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두 권의 책과 고즈넉한 설에 갔던 서점에서 소녀가 건넨 엽서가 놓여 있었다.아심은 책을 들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거기엔 남자가 힘 있게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강아심 2월 3일, 인가마을특색거리책을 내려놓고, 그녀는 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성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수한 밤들, 아심은 늘 이 자리에서 강성의 밤을 바라보았다.고요하거나, 떠들썩하거나, 혹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거나, 아니면 별빛이 찬란한 밤들. 하지만 아심은 늘 방관자처럼, 조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그러나 시언의 등장으로, 그 후의 밤들은 전과는 다른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했지만, 머릿속의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유리창에 비친 아심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힌 포로처럼, 어떻게 이 족쇄를 깨부술지 고민하는 듯했다.‘떠나는 것이 해답일까?’아심은 창문 앞에 오래 서 있다가 테이블 위의 책과 엽서를 모두 여행 가방에 넣었다.도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도희는 거실 밖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