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에게서 뭔가 캐내려 하지 마요. 나도 몇 년 군대를 다녀와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이번 일은 나와 아무 관련 없고 그냥 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우연히 들은 것뿐이에요.]가뜩이나 화가 잔뜩 난 아심이 겨우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경찰차가 아직 경찰서에 도착하지 않았을 텐데요? 사장님이 아시는 사람, 정말 빠르게 보고하시네요!”[우리는 다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돌려 말하지 않을게요. 난 그냥 당신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성현은 직설적이고 오만하게 말했다. [하룻밤만 나와 함께해요. 그러면 내가 사람을 써서 강시언이 덜 고생하게 해줄 테니까, 어때요?]아심은 혐오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꿈 깨.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워.”꽤나 불편한 상황에 성현의 숨결이 무거워지며, 차갑게 말했다. [강아심, 기회를 줘도 거절하지 마. 몸 팔면서 뭐 그렇게 고상한 척이야!]아심은 깊이 숨을 쉬며 말했다. “임성현, 넌 후회하게 될 거야!”이에 성현은 냉소하며 말했다. [강시언을 구하지 않으면 네가 후회하게 될 거야! 강시언은 고의 살인죄로 기소될 거야. 그렇게 되면 최소 몇 년은 감옥에서 보내야 해. 정말 그를 구하고 싶지 않아?][하룻밤만 나와 함께하면 기소하지 않게 해줄게, 어때? 이 거래는 충분히 이득이잖아?]“너희 부모도 이런 거래로 너를 낳게 됐나 봐?”[강아심, 너 정말!]아심의 계속되는 도발에 성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한마디 하려다가 아심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아심, 내가 너에게 생각할 시간을 줄게. 저녁까지 나를 찾아오면 강시언을 풀어줄게. 그렇지 않으면 면회 갈 준비나 해.]아심은 성현의 번호를 차단하고, 의자에 앉아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경찰서.많은 사람이 다쳤고, 한 사람은 과다출혈로 병원에 긴급히 실려 갔기 때문에 경찰서 전체가 큰 사건인 줄 알고 분주했다. 시언은 조사실에 갇혀 있었기에, 오히려 가장 조용했다. 곧 시언의 전화
시언은 휴대폰을 내려놓자 마침 조사관이 들어왔다. 조사관은 시언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내놓으라고 차갑게 말했다. “이름이 뭐죠?”다른 기록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남자의 신원을 조회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언은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고, 무심하게 말했다. “강시언.”정보 조회원이 시스템에 이름을 입력했지만,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아해하며, 이름을 잘못 입력했나 생각했다. 그러자 시스템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정보 조회원은 경고 메시지를 열어 암호를 입력했고, 시언의 일부 신원 정보가 나타났다.물론, 모든 정보가 다 나타나지는 않았는데 더 많은 기밀 정보는 조회 권한이 없었다. 하지만 나타난 정보만으로도 기록원은 놀라며, 시언을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일어나 경례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시언을 바라보며, 그대로 나갔다....강아심은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며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특히 길고 고통스러웠다. 아심이 더 이상 참지 못할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일어나서 빠르게 문을 열었다.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아침에 나설 때와 똑같이 옷이 하나도 더러워지지 않았고, 기품이 있었다. 시언을 본 아심은 눈물이 글썽하며 꽉 껴안았다. 시언은 손을 들어 아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아심은 시언의 품에 안겨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그냥 그냥 화가 나서.”시언이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나? 불량배들에게 얽혀서, 용의자로 체포되어야 한다니.“별거 아니야!” 시언은 무심하게 말했다. 사무실 밖에서 직원들이 지나가다가, 사장님과 시언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정말 진행이 빠르네! 첫날에는 사무실 밖에 앉아 있었는데, 이제 하루 만에 껴안고 있다니! 이제 와서 남자친구가 아니라 할 수 있을까?’시언도 뒤에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아심을 안
상대방은 다급하게 말했다. [강시언이 사장님의 친구인가요?]“친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서 물어본 거예요!”[아, 그렇군요.]상대방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강시언은 괜찮습니다.]“근데 살인 미수 아닌가요?”[저희가 CCTV를 조사해 보니, 먼저 강시언의 여자친구를 괴롭힌 것은 그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이는 정당방위에 해당합니다.][상처 입은 사람이 찔린 장면은 CCTV에 찍히지 않았지만, 칼에서 강시언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아 혐의는 벗겨졌습니다.]임성현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검사 결과가 그렇게 빨리 나왔나요?”‘나는 준비한 사람을 아직 써먹지도 못했는데!’[네, 요즘 사건 해결도 효율이 중요하니까요!] 서장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성현은 어색하게 웃었다.“고생 많으셨습니다.”[당연한 일이죠!]성현은 전화를 끊고,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리고는 발로 앞에 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랐다. 성현이 애써 준비한 일이 시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았다. 성현이 한창 화를 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는데 방설윤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시언은 어떻게 됐어? 걔가 내 제안을 거절했어!]되는 일이 하나도 없자 성현은 기분이 나빠서 말했다. “걔는 이제 괜찮아. 이미 강아심을 찾으러 갔어.”성현의 말에 설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망할,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다고!”성현이 욕을 퍼붓자 설윤은 약간 실망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매수한 사람이, 조사 때 너를 배신하지 않겠지?]“그럴 리 없어. 프로들이니까, 잘 대응할 거야!”성현은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자 설윤은 차분하게 말했다. “이 방법은 안 되겠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합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어.”[좋아, 네가 어떻게 하라는 대로 할게!]이
저녁 8시, 강아심과 강시언은 함께 블루드에 나타났다. 9층에 올라가서 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니,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두 사람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때 방시혁 부사장이 일어나며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오셨군요. 딱 맞춰 오셨네요. 제가 몇몇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괜찮으신가요?”아심은 방설윤과 임성현을 훑어보며 얕게 웃었다. “모두 아는 사람들이니까, 괜찮아요!”서건호가 일어나서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사장님이 손님을 초대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당신들이었군요. 우리 정말 인연이 깊네요. 어서 앉으세요!”시언은 아심을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설윤은 두 사람의 친밀한 행동을 보며, 눈에 어두운 빛을 띄고, 술을 따르며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아심은 방시혁 부사장에게 말했다. “제가 계약서를 가져왔어요. 귀사의 지출과 전체 발표회 비용에 대해 상세히 적어두었으니, 한 번 보세요.”방시혁 부사장은 계약서를 받았지만, 곧바로 옆에 두며 말했다. “서두르지 마세요. 강아심 사장님과 우리 사장님이 알고 지내니까, 오늘은 일 얘기 말고 다 같이 술 마시고 얘기하면서 편하게 지내죠.”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현은 몇 잔의 술을 따라 시언과 아심의 앞에 밀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들었어. 그 불량배들은 제대로 혼내줘야 해. 그때 아심 씨가 무서워할까 봐 전화를 걸어 도와줄까 물어봤어.”“또 경찰서에도 전화해서 아는 사람을 통해 도와준 거야. 다행히 큰일이 아니기도 하고. 자, 다들 그럼 시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다 같이 한잔하죠!”성현은 얼굴도 붉히지 않고 의구심에 불타는 듯한 어조로 말하자마자, 곧바로 한 잔을 비웠다. 이에 건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강성에서 시언이 형이 문제가 생길 리가 없죠. 어디서든, 우리 성현이 형 이름을 대면 만사가 해결되니까. 이 잔은 성현이 형을 위해 마시죠.”말하면서 건호도 술을 마셨다. 하지만 아심은 잔을 들고, 의미
서건호는 강아심 곁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강아심 씨, 정말 궁금한데, 강시언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아심은 대답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는 서건호 씨는 시언 오빠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우리는 전우였어요!”아심은 일부러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전우가 뭐죠?”“아심 씨, 저랑 장난치시는 건가요?” 건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우는 당연히 함께 싸우는 친구를 뜻해요.”“아!” 아심은 그제야 깨달은 듯이 말했다. “저는 전우가 함께 싸우면서 등에 칼을 꽂는 친구인 줄 알았어요!”건호의 얼굴에 웃음이 굳어지고 안절부절하며 말했다. “아심 씨는 정말 농담을 잘하시네요.”“저는 농담하지 않아요, 특히 잘 모르는 사람과는요!”건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약간 화가 났지만, 아심이 성현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어 그저 자리를 피했다.성현은 한쪽에 앉아, 아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아심이 이렇게 재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뼛속 깊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심을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싶었다.설윤은 건호가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성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설윤도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방에서 나가자, 방시혁 부사장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설윤은 복도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 시언을 찾았다. 시언이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설윤을 보았다.“나 할 말 있어!” 설윤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유혹적인 눈빛으로 시언을 바라보았다. 벽에 설치된 벽등이 따뜻한 노란빛을 발했지만, 시언의 얼굴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무심하게 말했다. “말해, 한 번에 다 말해. 나한테는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어.”이에 설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나는 줄곧 너를 좋아했어. 나중에 성현과 사귄 것도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너야!”“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농담이라면, 당연히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죠.” 강아심도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농담은 앞으로 하지 말아주세요.”“알겠어요!” 임성현은 아심이 술을 마신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회사는 아심 씨 회사와 계속 협력할 거니까, 관계를 악화시키면 안 되죠.”성현은 다시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심 씨,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강아심은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하면서도 거리를 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노래 안 부르세요?”“건호더러 부르게 하고, 우리 둘이서 얘기해요.” 성현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시간을 체크하면서 아심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일반적으로는 3분이 지나면 몸에 힘이 빠지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건호가 두 곡을 부르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성현은 초조해졌다.“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아심은 갑자기 일어나며 말하자 성현도 바로 일어나며 말했다. “블루드 같은 곳은 좀 위험하니까, 내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아심은 거부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문을 열자마자, 문밖에서 들어오려는 강시언을 보았다. 성현은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시언의 뒤에 있는 방설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이 멍청한 여자가 이거 하나 막지 못하네.’아심도 약간 실망했지만, 손목을 돌리며 손바닥에 감춰둔 냉기를 소매 속에 숨겼다. 그리고는 시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몸이 좀 안 좋으니까 우리 먼저 가요.”아심의 말에 성현은 심장이 뛰며, 아심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아심은 몸을 기울이며, 시언의 팔에 기대었다. 그리고는 뒤돌아 설윤에게 말했다. “방시혁 부사장님이 이미 가셨으니, 우리도 먼저 가볼게요.”시언은 아심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성현은 속이 타들어 갔지만, 두 사람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설윤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거의 성공했는데, 왜 다시 들여보낸 거야?”설윤도 성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아심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느긋한 눈동자에 밤의 차가운 어둠이 비쳤다.‘나에게 약을 먹이려 했다니?’열 명이 감시하고 있었는데도, 아심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잔을 바꿔치웠다.‘임성현은 그런 얕은 수작이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누군가는 아심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항상 말했는데, 아심은 절대로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강시언은 아심의 끊임없이 변하는 표정을 보며,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또 취했어?”아심은 시언의 팔에 기대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요, 나중에 내가 무슨 과한 행동을 하거나 과한 말을 해도, 취했다고 생각해 줘요. 따지지 말고!”약간 불만을 토로하듯 말하는 아심에 시언은 힐끔 쳐다보았다. “평소에 내가 너한테 굉장히 엄격한 것처럼 말하네!”“당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요!”아심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시언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아심은 의자에 기대고는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았다. “지금은 존경하죠!”시언은 앞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그게 존경이야?”아심은 시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는데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고, 시언의 몸에 기대어 웃었다. 그렇게 한참 웃자 추운 밤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시언은 그런 아심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도 따라서 약간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서 두 사람은 거실에서 오랫동안 키스하고는 아심이 시언의 입술에서 떨어져 낮게 속삭였다.“술 마실래요?”“저녁에 충분히 마시지 않았어?”“취하고 싶어요. 그러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부드럽게 말하는 시언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 “가져와.”잠시 후, 두 사람은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 앞에 위스키 한 병을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실의 스탠드 램프가 자동으로 꺼졌다. 방 안은 어둠에 휩싸였고, 밖의 희미한 불빛만이 들어와, 마치 얇은 베일처럼 두 사람의 몸에 내려앉았다.“노래도 부를 줄 알았어요? 그럼 나를
아심은 고개를 들어 시언을 바라보았는데 술기운으로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더욱 매혹적이었다. “방설윤이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요. 내가 예전에 당신 노래를 들었더라면 나도 빠졌을지도 모르죠.”시언은 설윤의 이름이 나오자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잠이나 자자.”하지만 아심은 반 취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요?”“말해 봐.”“나 정말 취해서 일어날 수가 없어요.”그 말에 시언은 아심의 손에서 잔을 가져가고는 아심을 번쩍 안아 들고 침실로 걸어갔다....밤에 아심은 시언에게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며, 시언에 대한 존경어린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미 늦었지만, 아심은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직접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머리 아파?”식사 중에 시언이 묻자 아심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금요!”“다음번에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내 몸을 걱정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또 달라붙는 게 싫은 거예요?”시언은 숟가락을 멈추고 아심을 바라보자 아심은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요, 알았어, 당신 말대로 반항하지 않을게요!”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국을 마셨다. 그날 아심은 시언이 계속 보디가드를 할지 묻지 않았고 집을 나설 때, 차 키를 자연스럽게 시언에게 건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아심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사무실에 도착하니 정아현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왔고 시언을 힐끔 보고는 아심의 앞에 다가와 몰래 웃었다. “사장님, 요즘 더 예뻐지셨어요!”갑작스러운 말에 아심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전에는 안 예뻤나요?”“지금이 더 예뻐요!”아현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아심은 펜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일하러 가요. 그리고 소문 퍼뜨리면 보너스 깎을 거예요!”이에 아현은 웃으며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갔다. 아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았다.[강아심, 네 회사 밑에 있어. 당장 내려와. 여자끼
강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챙겼어요.”강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아 침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그러면 오늘 바로 하자. 먼저 씻고 아침 먹고, 곧바로 서류 처리하러 가자!”...한 시간 후, 아심은 서류를 작성한 뒤, 직원의 안내를 받고는 앉아서 기다렸고,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그럴 만도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녀의 감정은 너무 큰 변화를 겪었고, 벌어진 일들이 모두 예상 밖이었다.예를 들어, 어제는 시언을 배웅하러 왔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강성에 남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오히려 아심에게 더 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 기쁨에 흥분을 주체 못 했고, 오늘 아침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쪽지는 그녀를 더더욱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결혼 얘기를 꺼냈는데, 시언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줄은 정말 몰랐다.불과 한 시간 전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이제는 이미 서류 작성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건물을 나와 정말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심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멍해졌다.아심은 옆에 있는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우리 진짜 결혼한 거예요?”어제까지만 해도 어떻게 시언과 작별할지 고민하던 자신이, 오늘은 이미 그와 부부가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시언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게다가 후회도 못 하는 결혼이야.”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혼식은 언제 하고 싶어?”“아?” 아심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무심코 대답했다.“지금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좀 시원해지면 하죠.”“좋아, 네가 정한 대로 하자.”시언은 아심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갔다.“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요?” 아심이 시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집으로 가자. 할아버지께 이 좋은 소식을 알려드려야지.”아심은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우리가 양쪽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결혼한 건, 좀 예의에 어긋난 거 아닐까요?”시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강아심은 눈가가 붉어지며 살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할아버지께도 말씀 좀 전해주세요.”[알겠어. 비행기 표는 취소했으니 집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게. 네가 돌아오고 나서 떠나자.] 도도희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이반스와 이야기를 나눴어.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너도 이해해 줬어.”아심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요.”[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반스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준비할 거야.] 도도희는 웃으며 덧붙였다.[너와 시언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그 순간 아심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도도희와의 통화를 마친 후, 아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책장을 지나치던 중, 아심은 왼쪽 서랍 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쪽에서 뭔가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어딘가 낯익은 물건 같았다.아심은 이미 서랍을 지나쳤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돌아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스케치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전에 시언과 함께 저택에서 수업을 들을 때, 시언이 자주 손에 들고 있던 그 스케치북이었다.아마도 시언이 저택을 떠날 당시 이곳에 들러, 소지품 몇 가지를 여기에 두고 간 듯했다. 그녀는 시언이 수업 시간마다 손에 들고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한 번도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에야말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였다.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스케치북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림들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스케치북에는 약 열다섯 장 정도의 인물 스케치가 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그림의 주인공은 아심이었다.아심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표정, 아이들과 정원에서 노는 모습,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옆모습까지...모든 그림의 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했고, 구도는 빈틈없이 완벽했다. 각
“어. 직원이 말하길, 네가 막 떠났다고 하더라고.”“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너무 늦었으니 집으로는 가지 말고, 전에 머물렀던 저택으로 가죠.”강아심은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확실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저택에 도착하자, 강시언은 아심을 안은 채로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침실에 들어서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지만, 아심은 손을 뻗어 그 불을 꺼버렸다.침실은 넓고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그림자를 만들었고, 어둠 속에서 둘 사이의 긴장감과 온도가 빠르게 고조되었다. 아심의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쇄골과 옥처럼 빛나는 피부는 시언을 더욱 사로잡았다. 그녀는 시언의 강인한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싼 채, 살짝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씻어야 해요.”“응.” 시언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답하며, 아심을 욕실로 데려갔다. 욕실에 들어가자 그는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뜯어내며 아심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아심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숨을 고르고, 살짝 깨문 입술 사이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은 달빛보다도 더 매혹적이고 아릿했다.그 밤은 길었다. 아심은 처음으로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강언의 품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녀의 감정과 감각은 더없이 충만했다....다음 날, 아심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아심은 눈을 깜빡이며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지만, 시언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거실에서 그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시언도 막 일어난 듯했다. 아심 옆자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햇살이 따뜻하게 창을 통해 들어와 짙은 회색 침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심의 벌거벗은 어깨에도 햇빛이 내려앉아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몸이 나른하게 풀린 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이제
달빛이 강시언의 눈썹과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시언의 모습을 더욱 고귀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삼각주의 일은 이미 시경 걔네들한테 맡겼어. 난 본국으로 돌아왔고.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야.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야겠지만.”아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눈동자에 작은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이에요?”“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겠어?”아심의 마음속에서 억누를 수 없었던 환희가 점점 커져갔다.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났고, 붉은 입술은 매혹적으로 빛나며 시언을 뜨겁게 바라봤다. 시언은 아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아심은 한껏 들뜬 마음속에서 약간의 이성을 찾아냈다. 그녀는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눈썹을 살짝 올려 물었다.“당신이 떠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언제부터였죠?”시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심의 얼굴에서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화가 난 기색으로 변해갔다.“이번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결정한 거죠?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시언이 은퇴를 결심한 것은 분명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돌아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아심은 최근의 갈등과 고민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언을 밀어내며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긴 팔로 아심의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고의는 아니었어.”방금까지 울었던 아심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머물러 있었다. 붉어진 눈꼬리는 그녀의 화난 표정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아니라고요? 이게 어떻게 고의가 아니에요?”아심은 힘껏 시언을 밀어냈지만, 그는 손쉽게 아심의 손목을 붙잡고 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에 실린 애잔한 사랑 노래가 밤을 더욱 고요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강아심의 눈에는 언제나 강시언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늘 아심의 시선 끝에 있었다.아심은 시언을 꼭 끌어안고,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살짝 쉰 채로 말했다.“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잔잔하게 흘러가던 물이 끝없이 휘돌아 결국 마음을 강하게 휘감고 넘쳐흐르는 듯했다.“예전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설날에 당신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을 때부터, 나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했어요.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려고, 자유로운 미래를 꿈꾸려고요.”“그런데 왜 결국엔 이 모든 게 당신 하나를 이기지 못하죠?”모든 것을 잃었을 때, 시언은 아심의 전부였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조차, 그는 아심의 전부를 초월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들, 시언이 없다면 아심의 인생에는 기쁨도, 의미도 없었다.시언은 아심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에 스며드는 눈물을 느꼈다. 마음이 찌르듯 아파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아심아...”하지만 아심은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절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사랑해요. 하지만 정말로 미워요. 왜 나에게 도망칠 길 하나조차 남겨주지 않았나요? 왜, 단 하나도!”어두운 밤 속, 시언의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저음으로 물었다.“그래도 떠날 거야?”아심은 시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참고자 했지만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여기 강성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1년이든, 2년이든, 당신이 언제 돌아오든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정월 대보름 그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심 스스로 찾았다.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아심은 시언을 사랑했다. 이 사랑은
강시언은 오후 네 시가 되도록 강아심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도희는 아심이 운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했다.시언은 아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비교적 침착하던 강재석마저 걱정하기 시작했다.“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시언은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에 강재석은 뒤에서 당부했다.“아심을 만나거든 꼭 내게도 알려라.”시언은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언은 문밖으로 나갔다. 오석이 방으로 들어와 강재석에게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르신, 오늘의 바둑은 좀 난잡해 보이네요.”강재석은 바둑판 위의 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마음이 복잡하니, 바둑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겠나.”오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아직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강재석은 잠시 바둑판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은 이미 짜여 있어. 어떤 상황이든 계속 두어야 해. 끝까지 두다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있을 거야.”...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서점에도 손님이 줄어들었다. 아심은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서며 책 두 권을 계산했다.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밝게 말했다.“혼자 오셨나요?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알아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에 먹죠.”돈을 지불한 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직원에게 말했다.“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좋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안녕히 계세요.”서점을 나온 아심은 저물어가는 황혼 속 긴 골목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곧 어둠이 깔릴 듯했다. 그녀는 만나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골목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산책을 하던 아심은 문득 자신이 왜 이곳에 계속 머무
강아심이 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강씨 저택으로 향하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음이 흔들렸다.도로 옆에 차를 잠시 멈추고 고민한 뒤, 아심은 차를 다시 움직여 차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운성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고즈넉한 고장을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아심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배낭을 메거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마을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은 청량하고 상쾌했다. 강아심은 깨끗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정오의 햇살 아래 깊고 조용한 골목은 한결 평온했다. 이따금 떠도는 햇빛과 그림자 속, 누군가의 고양이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담장 위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이끼 낀 벽돌 구석에 내려앉았다.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서점. 서점 뒤뜰의 붉은 담장 위로 장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향기는 골목 특유의 습한 공기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졌다.서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강아심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몇몇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책을 정리하던 직원이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어서 오세요!” 직원이 인사하며 웃고는 아심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아, 손님이시네요!”아심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직원은 연한 하늘색 멜빵 청바지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던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아심의 앞으로 다가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올 줄 알았어요!”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
그날 밤, 강아심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밤이 깊어지며 바람이 일었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이어졌다. 새벽녘이 되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도도희는 이른 아침에 조깅하러 나가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 아심과 마주쳤다.“운성으로 가는 거니?”이에 아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작별하려고요.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돌아올게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잘 다녀와. 아침은 먹고 가는 게 어때?”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가는 길에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도경수는 아심이 강시언을 배웅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심이 떠나자, 도경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둘 다 내일 떠날 텐데, 왜 시언이 우리 아심일 배웅하지 않는 거야?”도도희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렇게 따지지 마세요. 아심이가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요.”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아심이가 삼각주로 끌려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내가 절대 못 봐!”도도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그러나 도경수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아심인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가지 말라고 막았어야 했는데. 시언은 늘 여유로우니 우리도 좀 참을 수 있었잖아!”도도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운성, 강씨 저택.강재석은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집사인 오석이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어젯밤에 도련님 방의 불이 밤새 켜져 있었습니다.”강재석은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엔 걱정의 기색 없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
아심은 눈에 은은한 빛을 띠며 성연희를 바라보았다.“연희야, 고마워.”연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됐어! 저기 가서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를 잊으면 안 돼.”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절대 잊지 않을 거야.”그날 저녁아심은 이전에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파티를 마친 후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방 안은 이미 얇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강시언의 셔츠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밤, 세탁소 직원이 가져가 깨끗이 세탁한 후 다시 배달해 놓은 것이었다.강심은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어두었다. 옷장에는 남성용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대신 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두 권의 책과 고즈넉한 설에 갔던 서점에서 소녀가 건넨 엽서가 놓여 있었다.아심은 책을 들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거기엔 남자가 힘 있게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강아심 2월 3일, 인가마을특색거리책을 내려놓고, 그녀는 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성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수한 밤들, 아심은 늘 이 자리에서 강성의 밤을 바라보았다.고요하거나, 떠들썩하거나, 혹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거나, 아니면 별빛이 찬란한 밤들. 하지만 아심은 늘 방관자처럼, 조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그러나 시언의 등장으로, 그 후의 밤들은 전과는 다른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했지만, 머릿속의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유리창에 비친 아심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힌 포로처럼, 어떻게 이 족쇄를 깨부술지 고민하는 듯했다.‘떠나는 것이 해답일까?’아심은 창문 앞에 오래 서 있다가 테이블 위의 책과 엽서를 모두 여행 가방에 넣었다.도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도희는 거실 밖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