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부샤부 가게.임유진은 음식을 담은 상자를 들고 서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꺼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내가 닭고기 수프를 만들었어요. 특별히 배웠으니까 한번 맛봐요.”서인은 몸을 일으키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니 큰 남자가 닭고기 수프를 왜 마셔!”“성별 차별 안 하면 안 돼요? 수프가 어떻다고.” 유진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남자라면 왜요? 남자도 약해질 때가 있고, 보충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이에 서인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어디서 배운 소리야?”유진은 자신이 한 말을 듣고 나서야 반응하며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당신이 이상하게 생각한 거죠!”이에 서인은 주제를 바꾸었다.“수프 냄새는 좋네, 아주 향기로워.”유진은 닭고기 수프를 서인에게 건네며 기대에 찬 눈으로 말했다.“한 번 맛보고, 맛이 어떤지 말해줘요.”이에 서인은 웃으며 말했다.“너는 왜 맛보지 않아?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거야?”“그렇게 쪼잔하게 안 굴면, 안 돼요?” 유진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자기가 만든 음식은 필터링이 되어서, 진짜 맛을 느낄 수 없어요. 그래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고요!”서인은 그릇을 받아 한 입 맛보며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말했다.“괜찮네.”“진짜요?” 유진의 눈이 반짝였다.“저 처음 만든 건데, 요리에 재능이 있나 봐요.”“그런 재능이 뭐가 필요해? 언제 요리할 일이 있겠어?” 서인이 담담하게 말했다.“물론 필요하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 행복감을 주는 일 이잖아요.” 유진은 눈을 내리며 무심한 듯 말하자 서인은 수프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대꾸하지 않았다....아래층에서 소희와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점심시간이었고, 가게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오현빈 등은 무척 바빴다. 소희가 들어오자마자, 현빈은 즉시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소희 씨, 임구택 사장님, 오셨군요!”현빈은 또한 강시언을 봤는데, 어딘가 익숙한 느
임구택 앞에서, 서인의 우려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정말 함께하게 된다면, 관계가 꽤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서인은 구택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외삼촌? 강시언의 차가운 얼굴이 조금 어색해지며 웃음이 나올 뻔했다. 위층에 올라가자 서인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들은 오자마자 서인은 웃으며 말했다.“왔구나!”이에 임유진은 무심결에 말했다.“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조금 떠난 사이에 또 피우다니.”말을 끝낸 후, 유진은 자신의 삼촌이 뒤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뒤돌아보자 구택의 의미심장한 시선에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려서 당장 2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소희가 이어서 말했다.“내가 참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이에 서인은 자연스럽게 말했다.“내 상처는 이제 괜찮아. 너희들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서인은 구택과 시언을 보며 말했다.“시언이 형, 사장님, 편하게 앉으세요.”시언이 말했다.“상처가 심해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한 것은 맞아. 자제해야지.”서인은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말 들을게요.”그러자 유진은 시언을 바라보며 경탄했다.“역시 대단하시네요. 당신이 한마디 하니 사장님이 바로 듣네요. 우리가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거든요!”“말을 듣지 않으면, 팔굽혀펴기를 한 500개 정도 시키면 되죠!”“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니, 아찔해 나네요!”그러자 소희는 웃으며 말했다.“모든 사람 중에, 내가 벌을 가장 적게 받았죠?”이에 서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백양이 대신 얼마나 많은 벌을 받았는지 몰라?”그들은 예전 이야기를 하며 점차 편안해지자 유진이 물었다.“아직 식사 안 하셨죠? 뭐 드시고 싶으세요?”“샤부샤부 먹을래. 이문 오빠가 만든 샤부샤부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거든.”유진은 기쁘게 대답했다.“알겠어! 위층에 가서 이문 오빠에게 말할게. 조금만 기다려.”그렇게 말하고 유진은 기쁘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구택이 일어났다.“나도 내려갈게.
임유진은 눈을 굴리며 불만스럽지만 반박하지 않았고 임구택은 계속해서 말했다.“너를 가게에 오게 한 것은 맞지만, 남자친구를 찾으러 오라고 한 적은 없어.”유진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구택의 시선을 피하며, 용기를 내어 말했다.“삼촌, 저는 정말로 서인 사장님을 좋아해요!”그러자 구택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얼마나 사귄 거니?”유진은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삼촌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는, 사귀지 않아요.”그러자 구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니?”유진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냥 제가 짝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사장님은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이에 구택은 말문이 막혔다.“그렇다면, 바로 그만둬. 다시는 여기 오지 마.”“왜요?” 유진은 절박하게 말했다.“저도 제 사랑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요!”“너희 부모님이 집에 없으니, 내가 너를 책임져야 해. 내 말 들어, 너와 서인은 어울리지 않아.”유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어디가 안 어울린다는 거예요?”“나이도, 경험도 모두 안 맞아.”“삼촌이 서인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당신은 소희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데도 결혼했잖아요. 왜 저는 안 되죠?”구택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빛이 더 차가워지자 유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구택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해 확인해 보니 소희가 보낸 것이었다.[유진에게 너무 엄하게 대하지 마!]그제야 구택의 얼굴이 조금 풀리며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유진은 여전히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도덕 안에서의 사랑은 어떤 구속도 당하지 않아요!”이에 구택은 웃으며 말했다.“사랑? 네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서인이 널 좋아하기라도 하니?”유진은 눈물이 맺히며 말했다.“삼촌, 그렇게까지 팩트로 폭행하지 마세요.”“나는 너를 일깨우고 싶어서 그래.”“소용없어요, 사장님이 저를 크게 실망하게 했지만, 저는 더 집착하게 돼요.”그러
임구택은 순간 씁쓸하지만 웃긴 상황에 되물었다.“그래도 계속할 거니?”“계속할 거예요!” 임유진은 고집스럽게 대답하자 구택은 잠시 침묵한 후 물었다.“소희를 원망하지는 않아?”어쨌든 서인이 유진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중 일부는 소희를 고려해서일 것이지만 유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아니에요. 저는 그 정도로 분별력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서인을 좋아하지만, 소희도 저에게 매우 중요한 친구예요. 게다가, 제 숙모잖아요!”“그래, 그 정도는 알아야지.”유진은 애원했다.“삼촌, 저는 이미 성인이에요. 대학원도 졸업했어요.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서인에 대한 제 감정은 호기심으로 시작되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절대 신선함 때문이 아니에요. 제 감정에 확신이 있어요.”“하지만 서인은 너를 좋아하지 않잖아!” 구택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유진은 서글프게 말했다.“삼촌, 그 말은 정말 상처가 되네요.”“진실은 항상 상처를 주지.”유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유진은 구택의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참기 힘들었고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사장님은 예전에는 항상 저를 피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 둘이 약속했어요.”“사장님은 제가 가게에 오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했고, 저는 규칙을 지키며 예전처럼 친구로 지낼 거예요.”구택은 냉소하며 말했다.“네가 위층에서 서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냥 친구는 아니지.”하지만 유진은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다.“소희도 여기 있으면 서인을 돌볼 거예요. 어쩌면 저보다 더 많이 돌볼지도 몰라요.”이에 구택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유진은 더 이상 구택을 자극하지 않으려 서둘러 설명했다.“소희는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죠. 하지만 삼촌에게는 다르잖아요.”구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무엇이 다르지?”“소희는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지만, 항상 거리를 두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소희는 먼저 삼촌을 안았잖아요.”“다른
유진은 대답했다.“알겠어요, 제가 도울게요!”“좋아!” 이문은 응답하고 주방으로 돌아갔고 임구택은 일어나 임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서인은 많은 일을 겪었고, 마음이 성숙하고 심지어는 냉혹할 수도 있어. 그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그러니 네가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 상처받고 울지 말고, 특히 너의 숙모를 원망하지 마.”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마지막 말이 핵심이네요!”이에 구택은 유진을 힐끗 보며 말했다.“모두 중요해.”유진은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삼촌, 당신의 말을 명심할게요. 사실 저는 이미 절망을 경험했어요.”“그래서 앞으로도 여전히 저를 좋아하지 않아도, 저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에 후회는 없을 거예요.”그러자 구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야.”유진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샤부샤부 먹으러 가요. 이문 오빠가 소희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어요.”정말로 소희 이야기를 꺼내면 구택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가자.”두 사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소희는 그들이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유진의 얼굴이 가벼워진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소희는 구택이 서인과 유진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희는 구택이 유진을 혼낼까 봐 두려웠다.이문은 샤부샤부를 모두 위층으로 가져다 놓으며 미소 지었다.“다들 맛있게 드세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바로 가져다드릴게요!”이에 소희가 말했다.“고마워요!”“우리끼리 고맙긴!” 이문은 웃으며 내려갔고 구택 앞에서 유진은 서인과 너무 가까이 있지 않고 소희 옆에 앉았다. 그러자 소희는 유진의 작은 속셈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물었다.“혼났어?”그러자 유진은 작게 대답했다.“다행히 너를 끌어들여서 막았어. 소희야, 이제 네가 내 방패야!”유진은 구택이 소희를 원망할까 봐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소희에게 기대고 있었고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얼마든지 막아줄게. 효과만 있으면 돼!
서인이 말을 이었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사건은, 소희가 백양의 바지 주머니에 초콜릿을 잔뜩 넣어둔 일이었어.”“훈련 중 날이 더워지면서 초콜릿이 녹았는데, 마침 백양이 소희와 대련을 하다가 소희가 백양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지.”“백양이 바닥에 앉는 순간, 녹은 초콜릿이 1미터나 뿜어져 나왔고,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어!”서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백양은 일주일 내내 놀림을 받았지!”“하하하하!” 임유진이 크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면 소희는요?”“소희는 팔굽혀펴기 100개와 함께 한 달 동안 백양의 바지를 빨아야 하는 벌을 받았어!”그러자 임구택이 갑자기 고개를 들며 담담하게 물었다. “진짜로 빨았나?”서인이 대답했다. “아니, 백양이 화가 나서 소희를 쫓아 훈련장을 세 바퀴 돌았지만, 결국 바지를 빨게 하진 않았어.”백양을 언급하자 소희는 마음이 아팠다. 소희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때는 훈련이 너무 힘들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어.”구택이 소희를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서인이 말했다. “그래서 강시언 형님은 계속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거야.”만약 그 임무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서인과 소희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에 시언이 말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야.”소희가 물었다. “그럼 진심으로 선택한다면, 삼각주에 남을 거예요? 아니면 운성으로 돌아올 거예요?”시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선택을 했겠지. 아마도 이 두 달 동안의 휴가에서도 그곳을 잊지 못할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곳은 형님 없이는 돌아가지 않으니까.”시언은 차가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서인이 말했다. “하지만 백협의 모든 사람은 형님을 주인으로만 생각해요!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기는 어렵죠!”하지만 소희가 반박했다. “어려운 건 아니지만, 할 수 있어
[소희야, 삼촌이 내가 사장님을 좋아한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어. 만약 삼촌이 너에게 의견을 물어본다면, 나를 좋게 말해줘.]소희는 웃음을 참으며 답장을 보냈다. [너를 혼냈어?]임유진은 슬픈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혼났어!]소희는 천천히 답장을 썼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각해?][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나는 여전히 사장님 곁에 있고 싶어. 그러니 부탁이야, 숙모.]소희는 유진이 자기를 숙모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임구택이 눈을 돌려 소희를 보며 물었다. “유진이야?”“응!” 소희는 휴대폰을 치우며 말했다. “사실 유진이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미안, 계속 말하지 않아서.”말하지 않은 이유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인을 좋아하는 것은 유진의 개인적인 비밀이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러자 구택이 이해한다는 듯 말하자 소희는 비꼬듯이 말했다. “이제 와서야 그렇게 말하네? 처음에 내 코앞에서 날 욕하던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구택이 소희를 보며 말했다. “내가 너를 욕했다고? 내가 무슨 배짱으로?”소희는 구택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구택은 소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그것은 구택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구택은 유진 때문에 화가 났지만, 소희에게 화를 낸 이유 중 하나는 질투 때문이었다. 구택이 질투하고 불안해하면서 이성을 잃은 것이 결국 이별로 이어졌고, 소희가 다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랬기에 구택에게 영원히 가시로 남아있었다. 구택의 표정만 보아도 소희는 구택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내 소희는 구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자기야, 내가 다친 것과 우리가 헤어진 그 2년은 우리 사이의 후회가 아니야.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그 사건 이전에는 내 과거를 너에게 털어놓지 않았고, 너도 나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을 하지 않았잖아.”“
따뜻한 방 안에서 소희는 침대에 누워 임구택과 손을 맞잡고 있었고 눈에는 아련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저녁 무렵의 햇살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약간의 나른함과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소희는 구택과 키스하며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이때 구택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소희의 얼굴과 귓가에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병 시절의 나날들은 즐거웠다며? 그렇다면 나와 함께한 나날들은?”소희의 눈빛은 조금 맑아졌고, 소희는 구택이 키스할 때 간지러워져서 살짝 몸을 피했다. “자기야, 좀 더 아량이 넓게 생각할 수 없나요?”“어, 안 돼!” 구택은 소희의 쇄골을 깨물며 말했다. “빨리 말해!”이에 소희는 천장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행복했어?” 구택이 내려다보며 묻자 소희는 구택의 얼굴을 감싸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준 행복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해.”소희의 긍정에 구택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더 노력할게!”“노력할 필요 없어, 이미 아주 좋아!”“더 노력하면 더 좋아질 거야!”...그날 밤, 강아심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10시였다. 아심은 오후에 술자리에 참석했고, 이후에도 행사가 있었지만, 핑계를 대고 일찍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의 불을 켜고 벽에 기대어 어두운 거실을 바라보니 갑자기 무기력해졌다.아심은 휴대폰을 꺼내 특정 인물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하자 대화창에는 며칠 전 강시언을 초대했던 대화만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어서 친구처럼 가볍게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랬기에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시언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아심은 안전감이 심각하게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했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었고 아심은 이런 적당한 거리를 좋아했다.
강아심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챙겼어요.”강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아 침실로 걸어가며 말했다.“그러면 오늘 바로 하자. 먼저 씻고 아침 먹고, 곧바로 서류 처리하러 가자!”...한 시간 후, 아심은 서류를 작성한 뒤, 직원의 안내를 받고는 앉아서 기다렸고,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그럴 만도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녀의 감정은 너무 큰 변화를 겪었고, 벌어진 일들이 모두 예상 밖이었다.예를 들어, 어제는 시언을 배웅하러 왔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강성에 남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오히려 아심에게 더 이상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그 기쁨에 흥분을 주체 못 했고, 오늘 아침 스케치북에서 발견한 쪽지는 그녀를 더더욱 설레게 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결혼 얘기를 꺼냈는데, 시언이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할 줄은 정말 몰랐다.불과 한 시간 전에 결혼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이제는 이미 서류 작성하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건물을 나와 정말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심은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멍해졌다.아심은 옆에 있는 시언을 돌아보며 물었다.“우리 진짜 결혼한 거예요?”어제까지만 해도 어떻게 시언과 작별할지 고민하던 자신이, 오늘은 이미 그와 부부가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시언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게다가 후회도 못 하는 결혼이야.”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결혼식은 언제 하고 싶어?”“아?” 아심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다 무심코 대답했다.“지금 날씨가 너무 더우니까, 좀 시원해지면 하죠.”“좋아, 네가 정한 대로 하자.”시언은 아심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갔다.“그럼 지금은 어디로 가요?” 아심이 시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집으로 가자. 할아버지께 이 좋은 소식을 알려드려야지.”아심은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우리가 양쪽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결혼한 건, 좀 예의에 어긋난 거 아닐까요?”시언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강아심은 눈가가 붉어지며 살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할아버지께도 말씀 좀 전해주세요.”[알겠어. 비행기 표는 취소했으니 집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릴게. 네가 돌아오고 나서 떠나자.] 도도희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미 이반스와 이야기를 나눴어. 그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너도 이해해 줬어.”아심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요.”[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반스를 먼저 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준비할 거야.] 도도희는 웃으며 덧붙였다.[너와 시언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그 순간 아심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고,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었다.도도희와의 통화를 마친 후, 아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책장을 지나치던 중, 아심은 왼쪽 서랍 중 하나가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쪽에서 뭔가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어딘가 낯익은 물건 같았다.아심은 이미 서랍을 지나쳤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돌아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스케치북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전에 시언과 함께 저택에서 수업을 들을 때, 시언이 자주 손에 들고 있던 그 스케치북이었다.아마도 시언이 저택을 떠날 당시 이곳에 들러, 소지품 몇 가지를 여기에 두고 간 듯했다. 그녀는 시언이 수업 시간마다 손에 들고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한 번도 그가 무엇을 그렸는지 직접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에야말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회였다.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스케치북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그림들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스케치북에는 약 열다섯 장 정도의 인물 스케치가 있었다. 놀랍게도, 모든 그림의 주인공은 아심이었다.아심이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표정, 아이들과 정원에서 노는 모습,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긴 옆모습까지...모든 그림의 선은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했고, 구도는 빈틈없이 완벽했다. 각
“어. 직원이 말하길, 네가 막 떠났다고 하더라고.”“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요?”“너무 늦었으니 집으로는 가지 말고, 전에 머물렀던 저택으로 가죠.”강아심은 시간을 확인했다. 밤 9시, 확실히 꽤 늦은 시간이었다. ...저택에 도착하자, 강시언은 아심을 안은 채로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침실에 들어서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지만, 아심은 손을 뻗어 그 불을 꺼버렸다.침실은 넓고 고요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그림자를 만들었고, 어둠 속에서 둘 사이의 긴장감과 온도가 빠르게 고조되었다. 아심의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쇄골과 옥처럼 빛나는 피부는 시언을 더욱 사로잡았다. 그녀는 시언의 강인한 허리를 두 다리로 감싼 채, 살짝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씻어야 해요.”“응.” 시언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답하며, 아심을 욕실로 데려갔다. 욕실에 들어가자 그는 셔츠의 단추를 단숨에 뜯어내며 아심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아심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숨을 고르고, 살짝 깨문 입술 사이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쯤 감긴 눈은 달빛보다도 더 매혹적이고 아릿했다.그 밤은 길었다. 아심은 처음으로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강언의 품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녀의 감정과 감각은 더없이 충만했다....다음 날, 아심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아심은 눈을 깜빡이며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봤지만, 시언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거실에서 그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시언도 막 일어난 듯했다. 아심 옆자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녀를 깨우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햇살이 따뜻하게 창을 통해 들어와 짙은 회색 침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심의 벌거벗은 어깨에도 햇빛이 내려앉아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몸이 나른하게 풀린 아심은 반쯤 감긴 눈으로 침대에 누운 채 생각했다. 이제
달빛이 강시언의 눈썹과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아, 시언의 모습을 더욱 고귀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삼각주의 일은 이미 시경 걔네들한테 맡겼어. 난 본국으로 돌아왔고. 물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야.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나서야겠지만.”아심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눈동자에 작은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이에요?”“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겠어?”아심의 마음속에서 억누를 수 없었던 환희가 점점 커져갔다.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났고, 붉은 입술은 매혹적으로 빛나며 시언을 뜨겁게 바라봤다. 시언은 아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아심은 한껏 들뜬 마음속에서 약간의 이성을 찾아냈다. 그녀는 살짝 몸을 뒤로 젖히며 눈썹을 살짝 올려 물었다.“당신이 떠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건 언제부터였죠?”시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살짝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심의 얼굴에서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화가 난 기색으로 변해갔다.“이번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결정한 거죠? 그런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시언이 은퇴를 결심한 것은 분명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돌아오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아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아심은 최근의 갈등과 고민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언을 밀어내며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시언은 긴 팔로 아심의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고의는 아니었어.”방금까지 울었던 아심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머물러 있었다. 붉어진 눈꼬리는 그녀의 화난 표정을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아니라고요? 이게 어떻게 고의가 아니에요?”아심은 힘껏 시언을 밀어냈지만, 그는 손쉽게 아심의 손목을 붙잡고 품에 가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시언은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선율에 실린 애잔한 사랑 노래가 밤을 더욱 고요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강아심의 눈에는 언제나 강시언이 있었고, 그의 모습은 늘 아심의 시선 끝에 있었다.아심은 시언을 꼭 끌어안고,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살짝 쉰 채로 말했다.“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오랫동안 감춰왔던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잔잔하게 흘러가던 물이 끝없이 휘돌아 결국 마음을 강하게 휘감고 넘쳐흐르는 듯했다.“예전엔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설날에 당신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을 때부터, 나는 점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했어요.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려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려고, 자유로운 미래를 꿈꾸려고요.”“그런데 왜 결국엔 이 모든 게 당신 하나를 이기지 못하죠?”모든 것을 잃었을 때, 시언은 아심의 전부였다. 모든 것을 얻었을 때조차, 그는 아심의 전부를 초월했다. 이 세상에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들, 시언이 없다면 아심의 인생에는 기쁨도, 의미도 없었다.시언은 아심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등에 스며드는 눈물을 느꼈다. 마음이 찌르듯 아파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아심아...”하지만 아심은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절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사랑해요. 하지만 정말로 미워요. 왜 나에게 도망칠 길 하나조차 남겨주지 않았나요? 왜, 단 하나도!”어두운 밤 속, 시언의 눈동자는 깊은 바다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저음으로 물었다.“그래도 떠날 거야?”아심은 시언의 등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참고자 했지만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여기 강성에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1년이든, 2년이든, 당신이 언제 돌아오든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정월 대보름 그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아심 스스로 찾았다.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아심은 시언을 사랑했다. 이 사랑은
강시언은 오후 네 시가 되도록 강아심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도도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도도희는 아심이 운성으로 갔다는 사실을 전했다.시언은 아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비교적 침착하던 강재석마저 걱정하기 시작했다.“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시언은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에 강재석은 뒤에서 당부했다.“아심을 만나거든 꼭 내게도 알려라.”시언은 가볍게 대답했다.“알겠어요.”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시언은 문밖으로 나갔다. 오석이 방으로 들어와 강재석에게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르신, 오늘의 바둑은 좀 난잡해 보이네요.”강재석은 바둑판 위의 돌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마음이 복잡하니, 바둑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겠나.”오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아직 회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강재석은 잠시 바둑판을 주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판은 이미 짜여 있어. 어떤 상황이든 계속 두어야 해. 끝까지 두다 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있을 거야.”...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서점에도 손님이 줄어들었다. 아심은 마지막으로 서점을 나서며 책 두 권을 계산했다.계산대에 있던 직원이 밝게 말했다.“혼자 오셨나요? 제가 저녁 식사 대접할게요. 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알아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마워요. 하지만 다음에 먹죠.”돈을 지불한 뒤 책을 가방에 넣으며 직원에게 말했다.“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좋아요. 다음에 또 오세요!”“안녕히 계세요.”서점을 나온 아심은 저물어가는 황혼 속 긴 골목길을 걸었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고, 곧 어둠이 깔릴 듯했다. 그녀는 만나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골목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무의미하게 산책을 하던 아심은 문득 자신이 왜 이곳에 계속 머무
강아심이 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하지만 강씨 저택으로 향하던 중,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음이 흔들렸다.도로 옆에 차를 잠시 멈추고 고민한 뒤, 아심은 차를 다시 움직여 차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는 운성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고즈넉한 고장을 향해 운전하기 시작했다.약 두 시간에 걸친 이동 끝에 아심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배낭을 메거나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마을은 산과 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름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안은 청량하고 상쾌했다. 강아심은 깨끗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익숙한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정오의 햇살 아래 깊고 조용한 골목은 한결 평온했다. 이따금 떠도는 햇빛과 그림자 속, 누군가의 고양이가 담장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담장 위의 꽃잎 하나가 떨어져 이끼 낀 벽돌 구석에 내려앉았다.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서점. 서점 뒤뜰의 붉은 담장 위로 장미꽃 몇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향기는 골목 특유의 습한 공기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퍼졌다.서점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강아심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몇몇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책을 정리하던 직원이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했다.“어서 오세요!” 직원이 인사하며 웃고는 아심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놀라움과 기쁨이 그녀의 눈에 스쳤다.“아, 손님이시네요!”아심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직원은 연한 하늘색 멜빵 청바지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녀는 책장을 정리하던 사다리에서 내려오더니 아심의 앞으로 다가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역시 올 줄 알았어요!”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그렇
그날 밤, 강아심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지만, 뒤척이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딘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밤이 깊어지며 바람이 일었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이어졌다. 새벽녘이 되자 비가 조금씩 잦아들었다.도도희는 이른 아침에 조깅하러 나가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날은 비 때문에 늦게 일어났다. 문을 열자마자 이미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는 아심과 마주쳤다.“운성으로 가는 거니?”이에 아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작별하려고요. 내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돌아올게요.”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잘 다녀와. 아침은 먹고 가는 게 어때?”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가는 길에 먹을게요.”두 사람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도경수는 아심이 강시언을 배웅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고, 다만 길에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심이 떠나자, 도경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둘 다 내일 떠날 텐데, 왜 시언이 우리 아심일 배웅하지 않는 거야?”도도희는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그렇게 따지지 마세요. 아심이가 행복하면 되는 거잖아요.”도경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우리 아심이가 삼각주로 끌려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그건 내가 절대 못 봐!”도도희는 웃으며 답했다.“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세요. 자, 이제 밥 먹으러 가요.”그러나 도경수는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아심인 아침도 못 먹고 나갔는데, 날씨도 안 좋은데 내가 가지 말라고 막았어야 했는데. 시언은 늘 여유로우니 우리도 좀 참을 수 있었잖아!”도도희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운성, 강씨 저택.강재석은 아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집사인 오석이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어젯밤에 도련님 방의 불이 밤새 켜져 있었습니다.”강재석은 고개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얼굴엔 걱정의 기색 없이 여전히 온화한 미소
아심은 눈에 은은한 빛을 띠며 성연희를 바라보았다.“연희야, 고마워.”연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내가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지만 않으면 됐어! 저기 가서 새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를 잊으면 안 돼.”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절대 잊지 않을 거야.”그날 저녁아심은 이전에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 파티를 마친 후 한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방 안은 이미 얇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소파 위에는 강시언의 셔츠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밤, 세탁소 직원이 가져가 깨끗이 세탁한 후 다시 배달해 놓은 것이었다.강심은 그 옷을 옷장에 다시 걸어두었다. 옷장에는 남성용 셔츠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 후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대신 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한 후,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두 권의 책과 고즈넉한 설에 갔던 서점에서 소녀가 건넨 엽서가 놓여 있었다.아심은 책을 들어 첫 페이지를 펼쳤고, 거기엔 남자가 힘 있게 써놓은 글씨가 있었다.강아심 2월 3일, 인가마을특색거리책을 내려놓고, 그녀는 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강성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수한 밤들, 아심은 늘 이 자리에서 강성의 밤을 바라보았다.고요하거나, 떠들썩하거나, 혹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거나, 아니면 별빛이 찬란한 밤들. 하지만 아심은 늘 방관자처럼, 조용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봤다.그러나 시언의 등장으로, 그 후의 밤들은 전과는 다른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심은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했지만, 머릿속의 그 기억은 금세 사라져 잡을 수가 없었다.유리창에 비친 아심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벽 속에 갇힌 포로처럼, 어떻게 이 족쇄를 깨부술지 고민하는 듯했다.‘떠나는 것이 해답일까?’아심은 창문 앞에 오래 서 있다가 테이블 위의 책과 엽서를 모두 여행 가방에 넣었다.도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도도희는 거실 밖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