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든은 냉소하며 말했다. “더 이상 그런 말로 모든 사람을 속이지 마! 네가 전에 라펠트에게 배신한 것을 질책했는데, 너는?”“백양!”“더 이상 나를 백양이라고 부르지 마!” 레이든은 소희를 노려보며 화를 내며 말했다. “백양은 이미 죽었어. 너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어!”서인은 차갑게 말했다. “얘는 서희야. 우리는 동료였고, 영원한 동료야. 근데 왜 자격이 없지?”“나에게 묻지 마!” 레이든은 표정이 돌변하며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표용, 홍복이랑 영자에게 물어봐야 해. 그들이 서희를 용서할 수 있을지!”“그때 일은 서희 탓이 아니야!” 서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서희는 아무것도 몰랐어!”“몰랐다고?” 레이든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럼 왜 살아남았고, 왜 조직을 탈퇴할 수 있었지?”“그리고 소씨 집안의 딸이 되었고, 강성의 새로운 귀족이 되었으며, 임씨 집안에 시집가서 호화로운 삶을 누렸지?”“이 모든 것은 표용과 다른 사람들의 피로 이루어진 거야, 그런데 쟤는 그것을 당연하게 즐기고 있어!”서인은 눈이 붉어지며 말했다. “그래서, 너는 서희가 이 모든 시간 동안 너무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래, 쟤가 강성에서 안락하고 부유하게 상류층의 삶을 즐길 때, 너희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레이든의 눈은 칼날처럼 두 사람을 훑어보았고,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긴 흉터가 이마에서 시작해 얼굴 전체를 가로질렀는데 마치 얼굴을 두 개로 나누어 놓은 것 같았다.끔찍하고, 무서웠으며 가슴이 아파왔다. 당시 어떤 상처였을까? 그런 흉터가 남기까지 얼마나 고됬을까! 소희는 눈앞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 서인도 잠시 멍해졌다가 눈이 점점 붉어졌다. 이에 레이든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만으로 너희가 놀라겠어? 아니야, 이 흉터는 내가 당시 받은 고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서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나도 몰라, 그
“아니야!” 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진언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리사욕 때문에 부하를 희생시키지 않아!”서인도 말했다. “나도 진언을 믿어!”“그건 너희가 이득을 본 사람이기 때문이야!” 레이든은 냉소하며 말했다. “주옥, 네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었고, 진언은 너를 강성에 보낸 건 계속 서희를 보호하게 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아직도 사리사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서희를 보호하라고?” 서인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너는 내가 서희를 언제 처음 만났는지 알아? 서희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너처럼 증오했어.”서인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서희가 우리를 위해 한 일을 발견한 후에야, 마음속의 원한을 내려놓고 서희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예전에는 그들은 모두 서희가 냉혈한이라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고.“도대체 우리를 위해 한 일이 뭐야?” 레이든은 냉정하게 물었다.“우리 가족을 돌보고 있어!” 서인은 백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너의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2년 전, 너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거의 자살하려 했을 때, 서희가 그의 빚을 갚아주었어. 지금까지도, 너의 부모는 서희가 매달 보내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어!”레이든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비웃으며 말했다. “그저 죄책감 때문에, 보상하려고 했을 뿐이야!”“서희가 네게 무슨 죄가 있지? 진언이 서희한테 죽은 척하게 하려고 한 것이 사실이라면, 서희도 몰랐던 일이야.”“서희도 우리와 함께 그 폐기된 공장에 들어갔고, 불곰의 사람들에게 포위당해 거의 죽을 뻔했어!” 서인은 화를 내며 말했다. “서희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서희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었을까?”“너는 서희가 우리에게 가진 감정을 알고, 그것을 이용했어. 그런데도 넌 서희를 증오하잖아!”레이든은 손에 든 총을 들어 소희를 겨누며 말했다.
옥상에서 사람들이 구르며 피했고, 소희는 폭발의 기류에 휩쓸려 멀리 날아가 땅에 세게 떨어졌다.“소희!” “서희!”레이든과 서인은 동시에 소희를 향해 달려갔다. 삼각용은 기관총을 바꾸어, 부상으로 인해 움직임이 느려진 소희를 조준해 쏘기 시작했다.“서희!” 레이든은 몸을 던져 소희 앞을 막아섰고, 레이든의 등 뒤에 총알이 박히며 소희 위로 쓰러졌는데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공중에서는 진언과 이디야의 헬리콥터가 삼각용의 헬리콥터를 포위하고, 요하네스버그 내부에서는 남궁 가문의 최정예 경호원들이 요하네스버그를 마구 폭격하고 있었다.요하네스버그 내부는 연기로 뒤덮이고, 폭격과 포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혼란 속에 탈출했다. 옥상에서는 소희가 백양을 안고 등에서 쏟아지는 피를 막으려 했지만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서인은 자기 옷을 벗어 상처를 감싸고 손을 잡으며 말했다. “버텨!”백양은 소희를 바라보며 상처로 가득한 얼굴이 창백했고, 자조했다.“주옥의 말이 맞아. 결국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말하지 마, 백양!” 소희는 두려움에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날 죽이고 싶다면 난 기꺼이 너의 총에 죽겠어. 난 이미 네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 서인이 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어!”레이든은 소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개를 무서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숲에서 소희는 이미 레이든이 백양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예전에 백양이 사탕 회사의 비밀 레시피를 훔쳤던 일을 아는 사람은 백양과 소희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소희에게 말했다. “만약 언젠가 우리가 조직을 떠난다면, 나는 너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사탕 회사를 세울 거야!”하지만 그 기회는 오지 않았고 백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네가 당연히 알아챌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서로의 기운에 너무 익숙해졌어. 내가 변해도 넌 알아차릴 거라고.”“너를 여기로 부른 건 그저 너를 다시 보고 싶어서야.” 백양의 입에서 피가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왔고, 백양의 공허한 눈이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며 어렵게 말했다. “진언!”진언은 백양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목소리가 잠기고 천천히 말했다. “그 당시의 일은 내가 미리 알지 못했어. 서옥의 전화를 도청한 사람과 표용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일부러 나에게 도청한 내용을 숨기고 구조 시간을 지연시켰어.”“그 때문에 나중에 죽였어.”백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얼굴에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표정이 한결 편해졌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믿어.”백양 이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고, 마치 하늘의 마지막 별처럼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도 붙잡을 수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소희는 울음을 억누르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사지가 찢기는 것 같았다. 백양은 다시 소희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조심해, 이씨 집안.”바이러스 개발과 무기 제작은 모두 이씨 집안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백양은 소희가 삼각주에 올 것을 알고 특별히 연락해 소희를 죽이라고 말했다. 백양은 소희를 죽이고 싶어도, 다른 사람이 소희에게 상처를 입히게 할 수는 없었다. 백양은 마지막 힘을 다해 몸에서 약병을 꺼내 소희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이 약은 너의 독을 해독할 수 있어. 대신, 대신 우리를 위해 잘 살아가!”“백양!” 소희는 백양이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숨이 끊기는 모습을 보며 참을 수 없었고 백양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백양!” 서인은 무릎을 꿇고 앉아, 큰 몸을 깊이 숙였다. 구택은 삼각용을 죽이고 헬리콥터에서 내려왔다. 어둠 속에서 서인은 소희가 피투성이인 백양을 안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소희의 울음소리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슬펐다.밤바람이 강하게 불어 소희의 울음소리를 덮어버렸다. 마치 동료를 잃은 새가 밤하늘에서 슬프게 우는 것 같았다. 백양은 죽었다. 다시 한번 소희의 눈앞에서 죽었다. 소희의 오랜 악몽이 다시 재현되었고, 소희의 고통을 임구택은 온전히 공감했
“소희야!” 임구택의 목소리는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서희!” “보스!” “서희!”모두가 소희에게 몰려들었다. 서인은 자신의 상처의 고통을 참으며 자기 옷을 찢어 소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방금 폭탄의 파편에 맞아서 피를 많이 흘렸어. 당장 파편을 제거해야 해!”진언도 얼굴이 굳어졌다. “가장 가까운 곳은 내 쪽이야.”구택은 소희를 안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헬리콥터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서북흥주백협 일대로 가면 너무 머니 제 쪽으로 가시죠!” 이에 남궁민이 서둘러 구택을 막았다.“비켜!” 구택의 얼굴은 어두웠고 무서운 포스를 풍겼다.“저희 쪽에는 완벽한 의료 시설과 의사가 있어요. 소희를 살리고 싶다면, 먼저 저희 쪽으로 가시죠!” 남궁민의 눈은 피로 붉어져 있었고, 전혀 물러서지 않고 구택과 대치했다.“구택아, 진정해!” 진언이 구택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소희는 지금 긴급하게 치료가 필요해. 먼저 남궁민 말대로 하자.”구택은 굉장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소희를 안고 있는 그의 팔에는 핏줄이 드러났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남궁민 씨 쪽으로 바로 가죠!”남궁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희를 보호하며 헬리콥터에 올랐다. 서인의 상처도 긴급히 치료가 필요했고, 장명원과 간미연 등 사람들과 함께 헬리콥터에 올랐다. 진언은 뒷처리를 위해 사람들을 남겨두고, 지하 12층을 폭파하라고 지시한 후 직접 헬리콥터를 조종해 남궁민의 성으로 향했다.30분 후, 헬리콥터는 성의 착륙장에 도착했다. 남궁민은 이미 집사에게 수술실 준비를 시켰고, 의사와 혈액도 모두 준비되었다. 소희와 서인은 함께 수술실로 옮겨졌다.양재아는 소희를 기다리며 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수술실 밖의 넓은 거실에서는 모든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었고,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이때 진언의 전화가 울려 진언은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갔는데 진언의 부하가 보고했다.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남궁민은 창가에 서서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한 시간 후, 수술실 문이 열리자 모두가 일제히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의사가 나와 긴장한 표정을 풀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에 있는 두 분은 모두 괜찮습니다. 총알과 파편은 이미 제거되었고, 중요한 부위를 다치지 않았습니다.”“다만 과다출혈로 인해 조금 휴식을 취하면 될 겁니다.”구택은 발걸음을 옮겨 수술실로 들어갔다. 소희는 옆의 침대에 누워 있었고, 링거를 맞고 있었기에 소희가 깨어날 때까지 다른 방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소희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매우 슬퍼 보였다. 구택은 침대에 손을 짚고 그녀를 내려다보며, 마음속에 안도감과 고통,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을 느꼈다. 오랫동안, 구택은 소희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소희야, 잘 자. 난 여기 있어. 항상 여기에 있을 거야.”남궁민은 문 앞에 서서 침대에 누워 있는 소희와 소희에게 몸을 굽히고 있는 구택을 바라보자 마음은 혼란스러웠다.소희는 서희였고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궁민은 거의 소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뻔했다.‘얼마나 어리석었던 거지? 그래서 항상 나를 멀리했던 거구나! 그리고 이디야, 소희가 사랑하는 사람인가?’남궁민은 그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디야는 소희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그렇겠지!’남궁민의 마음은 혼란스러웠고,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섰다....이미 밤은 깊었고 재아와 아심이 소희를 돌보고 싶어 했지만, 구택은 이를 거절했다. 이때 진언이 말했다. “소희는 이제 괜찮으니까 모두 가서 쉬러 가죠.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나도 가지 않을 거예요. 서인을 챙길 수 있어요.” 명원마저 거절하자 결국 모두가 거실에 남아 기다리며 밤을 지새웠
“진정해!” 진언은 차분히 말했다. “나는 백양을 비난하는 게 아니야. 백양이 소희에게 손을 댈 때 자비를 베푼 것을 봤어. 그때의 일은 나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나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해.”서인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서인은 온두리에 도착하자마자 레이든이 있던 곳을 조사했다. 그래서 요하네스버그에 오기 전, 레이든이 백양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아무래도 7년 동안 함께 지냈던 전우였기 때문에, 서인은 진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인은 오기 전에는 매우 화가 났고, 백양이 왜 삼각용에 붙어 진언과 적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서인이 옥상에 도착했을 때, 백양이 소희를 죽이려 하는 것을 보고 거의 이성을 잃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그때 그렇게 흥분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7년 만의 재회는 그렇게 급하고 대립적이지 않았을 것이었고 백양은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이다. 백양이 그렇게 많은 고문을 겪고 살아남았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할 필요는 없었다.“아마도 이것이 백양의 운명일지도 몰라.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진언이 말했다. “몸을 잘 회복하고, 빨리 귀국해.”“넌?” “현재로서는 임무가 없어. 아마도 너희와 함께 돌아갈 거야.” 진언은 오랜 세월 동안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할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았기에 이제 돌아가서 그를 만나야 했다.“좋아!” 서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가 깨어나면 알려줘!”“응.”하지만 점심이 되도록 소희는 깨어나지 않았다. 구택은 식사도 하지 않고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계속 침대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상황이 이상해 보이자, 구택은 일어나 의사를 찾으러 갔다. 문을 열자마자 남궁민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남궁민은 방 안의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희를 깨우려고 노력해 봐요. 누군가가 불러야 깨어날 수 있으니까.”그러자 구택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무슨 말이죠?”남궁민은 이마를 찌푸리며 후
진언은 말했다. “너의 말은 남궁민이 소희를 다치게 했다는 거야? 아마도 오해가 있을 거야.”“어제 남궁민이 자신의 경비원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와 함께 삼각용의 사람들과 싸우고, 소희를 여기로 데려와 치료하게 했어.”“그러니 소희를 다치게 했을 리 없어.”남궁민은 고개를 숙이고, 변명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 형!” 장명원도 설득했다. “여기 의사 덕분에 보스가 무사한 거예요. 아마도 진짜 오해가 있을 거고 보스가 깨어나면 그때 얘기해요!”양재아도 달려와 남궁민을 변호했다. “임구택 씨, 소희가 레이든에게 잡혀갔을 때 남궁민 씨가 소희를 구했어요. 제가 직접 본 일이에요.”“설령 남궁민 씨가 뭔가 잘못했더라도, 소희를 구한 것을 봐서라도 죽이지 마세요!”재아는 소희와 남궁민을 가장 먼저 알았고 재아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서로 더 가까운 존재였다. 그리고 요하네스버그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 동안, 항상 소희와 남궁민이 재아를 도왔다. 그리고 어제도 남궁민이 재아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왔기에 재아는 무의식적으로 남궁민을 보호하려 했다.구택은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안에 누워 있는 소희를 더 걱정하고 있었고 남궁민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너를 죽이지는 않겠어. 소희가 깨어나면 그때 가서 하나하나 청산할 거니까!”남궁민의 눈은 멍들어 있었고,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어. 소희가 나를 어떻게 하든,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니까.”남궁민은 거의 서희를 죽일 뻔했기 때문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구택은 총을 내려놓고, 방으로 걸어갔다. 잠들어 있는 소희는 여전히 찡그린 얼굴로 누워 있었기에 구택은 지금 소희의 상처가 아프다는 것을 이해했다.소희가 구택에게 이상한 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목걸이를 벗고 잤던 이유를 이제 알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택은 소희의 방에 갔을 때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때는 소희가 낯선 환경에서 악몽을 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소희가 실험당하고 정신이 통제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