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우청아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는데 보니 배강이 보낸 메시지였다. [청아, 나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니까 시원이 좀 잘 챙겨줘.]청아는 할 말을 잃었다.[일부러 그러는 거예요?][아니, 정말 아니야. 잠시 후에 돌아올 테니까 일단 좀 도와줘!]배강의 설명에 청아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물을 들고 침실로 돌아갔다. 들어가 보니 시원은 잠들어 있었다. 청아는 물을 옆에 두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떠날 생각이었다.“으 더워!” 시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말했고, 손을 들어 이불을 걷어냈다. 그러자 청아는 시원이 깨어난 것 같아 다시 물었다. “물 더 드실래요?”청아의 목소리에 시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청아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청아야?”“네!” 청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시원은 갑자기 손을 들어 청아의 손목을 잡고 침대 위로 세게 끌어당긴 후, 몸을 숙여 청아를 짓눌렀다. 시원의 검은 눈동자가 청아를 깊게 바라보았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청아는 깜짝 놀라 바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원은 청아의 손목을 놓지 않고, 눈빛이 다소 혼란스러워 보였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왜 있어?”“술에 취하셨어요!” 청아가 말했고, 시원의 손을 빼려고 애썼다. “시원 씨, 그만해요!”“난 장난치는 게 아니야!” 시원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시원은 청아를 가만히 응시하며 서운한 눈빛을 보냈다. “네가 나를 떠나라고 했고, 나도 손을 놨어. 그런데 넌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시원의 말에 청아의 몸부림이 멈추고, 청아의 큰 눈이 놀라서 시원을 바라보았다. 시원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으로 가득했다. “난 널 잊을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청아야, 나 어떡하면 좋지?”“네가 떠난 2년 동안, 난 정말로 네가 그리웠어.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 널 사랑하는 내 자신이 바보 같아 보였어.”“난 스스로를 속여 네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고 믿고, 널 강제로 내 곁에
“다른 사람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만 있었지!”우청아는 쓰라린 아픔을 참으며 일어나 방을 떠났다.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때, 청아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정신이 몽롱한 채 밖으로 걸어가던 중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청아 씨!”청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고명기 부사장이었다. 뜻밖의 인물에 청아는 조금 놀랐다.“어떻게 여기 계세요?”이에 고명기가 청아를 훑어보며 말했다. “괜찮아요?”고명기의 말에 청아는 그제야 깨달았다. 고명기는 청아가 또다시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돼 술자리가 끝난 후에도 떠나지 않고 여기서 청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에 청아는 감동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청아 씨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아직 순수해요. 하지만 거절해야 할 것은 거절해야 하죠. 성수현 사장님 문제는 대처를 잘했고요.”그러자 청아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저와 장시원 사장님은 친구니까, 저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고명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집에 갈 테니까 청아 씨도 일찍 들어가요.”“네!”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일터에서 이런 상사를 만난 것은 청아에게 큰 행운이었다.“아닙니다.” 고명기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청아가 호텔을 떠나 택시에 앉아 있을 때, 시원의 말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파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집에 돌아와 보니 이경숙 아주머니는 아직 잠들지 않았고, 우청아 몸에서 나는 술냄새를 맡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청아 씨,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힘들게 하지 마요. 잠깐 앉아서 쉬어요. 물 좀 갖다줄게요.”“괜찮아요, 이렇게 늦었는데 빨리 들어가세요!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오지 마세요.”이경숙 아주머니가 물을 가져다주며 청아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 있어?”청아가 물을 받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냥 좀
우청아는 장시원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절대 기대하지 않았으며, 그런 꿈조차 꾸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시원의 말은 청아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예전에 했던 고백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그때 청아는 시원이 단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자신이 그를 처음으로 거절한 사람이기 때문에 시원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청아는 시원의 고통을 알았다. 시원은 청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자 청아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고집이 옳은 것인지, 자신이 시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둘에게 진정한 미래가 있을지 혼란스러웠다....다음 날시원이 호텔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아침 9시였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더니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신 적이 없었다. 주름진 셔츠를 보며, 시원은 주성에게 전화를 걸어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시원이 옷을 벗고 샤워하러 갔고, 몇 분 후 목욕가운을 입고 나왔을 때, 배강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배강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서.”이에 시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음?”배강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은근슬쩍 물었다. “방에 다른 사람 없어?”시원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꺼내며 배강을 힐끔 바라보았다. “귀신이라도 있을까봐? 들어가서 찾아볼래?”그러자 배강은 놀라며 말했다. “청아 씨 갔어?”청아의 이름에 시원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이 멈췄다. “우청아?”“응, 어젯밤 일부러 청아 씨 남겨서 널 챙겨달라고 했어. 너희 둘이 술기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랐는데, 정말로 갔다니!” 배강이 아쉬워했지만 시원의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한 번만 또 이러면, 너 운강으로 유배 보낼 거야!”“아, 알았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배강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게 내가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시원은 불붙지 않은 담배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차가운 표정으로 앉았
우청아는 일찍 일어나 만두를 삶고, 국을 끓이고는 소희에게 문자를 보내 식사에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식사 준비가 거의 다 됐을 때 요요도 깨어났다. 청아는 요요의 얼굴을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혔으며, 소파에 앉아 요요에게 작은 땋은 머리를 해주었다.“엄마, 오늘 쉬는 날이야?” 요요가 큰 눈을 뜨고 귀엽게 물었다. 아마 이경숙 아주머니가 오지 않았으니 엄마가 쉬는 날인가 싶어 물어본 듯했다.“응, 밖에 나가 놀고 싶어?” 청아가 웃으며 묻자 요요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그럼 착하게 밥 먹고 나면 엄마랑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청아의 제안에 요요는 기뻐서 웃었고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소희 이모랑 성연희 이모도 함께 가?”“소희 이모는 수업이 있어서 시간이 없어. 연희 이모도 자기 일이 있으니까, 오늘은 엄마랑 둘이 가야 해. 괜찮지?”“응!” 요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아가 요요의 머리를 다 빗겨주고 식사하러 갔을 때,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는데 허홍연이였다.“엄마!”허홍연이 웃으며 말했다. “청아야, 오늘 쉬는 날이지? 오랜만에 집에 와. 오늘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 줄게.”이에 청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안 돼요, 요요를 놀이공원에 데려가기로 했어요.”“그래?” 허홍연이 조금 머쓱해서 웃었다. “사실은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직접 만나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바쁘면 전화로 할게.”“네 이모 집 사촌이 장씨 그룹에서 일하고 싶은데 면접에 떨어졌어. 네가 사장이랑 사이가 좋으니까, 그쪽 인사부에 좋게 얘기 좀 해줄 수 있어?”“사실 사장 한 마디면 해결되는 일이잖아.”청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와줄 수 없어요, 저 이미 회사 그만뒀어요.”“그만뒀어?” 허홍연이 놀라서 물었다. “언제?”“한 달 조금 넘었고 새 회사로 이직했어요.” 청아의 말에 허홍연은 조금 당황했다. “장씨 그룹처럼 좋은 직장을 어떻게 그냥 그만두니? 게다가 그만두기 전에 적어도 나랑 상의는 해야 하는
우청아는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뱉지 못하고, 한참 동안 참고 있었다.청아는 자신의 가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홍연 혼자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여름 방학마다 일을 해서 학비를 벌었고, 대학에 가서는 가족에게 한 푼도 쓰지 않았다.2년 동안 외국에서 혼자 지내면서 가족이 그리웠다. 귀국 후 가족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기를 바랐다. 허홍연이 아팠을 때, 청아는 최선을 다해 돌봤다. 외국에 있던 2년 동안 허홍연 곁에 있지 못한 것을 보상하고자 했다.근데 청아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효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처음에 허홍연과 허연이 청아를 속였을 때, 그녀는 진실을 알고 난 후 슬프고 상처받았지만 지금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졌고, 마음도 점점 더 차가워졌다.이때 요요가 청아의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며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무슨 일이야?”청아는 몸을 숙여 요요를 안았다. 청아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고, 오직 슬픔만이 있었다. 이때 휴대폰이 다시 울려 봤더니 청아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야!” 허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청아, 돌아왔어? 네가 돌아왔다고 해서 널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 마. 네가 나한테 빚진 돈 아직 4천만원이나 남았어. 언제 갚을 거야?”청아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고, 목소리는 조금 쉬었다. “지금 2천만원밖에 없으니까 먼저 줄게요.”“그래, 일단 2천만원 보내고 나머지 2천만원은 일주일 안에 줘. 급하게 써야 할데가 있어!”허연의 말에 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일주일 안에는 못 갚아요.”허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 “우청아, 처음에 네가 3년 안에 1억을 다 갚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민다고?”“아직 두 달 남았고 오리 발 내미는 것도 아니에요. 전부 다 갚을 건데,
“그러다가 고급 디자이너가 될 거야!”이지현이 몇 걸음을 뛰어가며 화를 내며 말했다. “김민주 씨 디자인 초안 다 됐어요? 여기서 놀고 있으면서 부사장님한테 혼나고 싶나 봐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요!” 지현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회사를 다니는 디자이너인가요, 아니면 동네 마실 나갔다가 수다나 떠는 아주머니들인가요?”김민주 일행이 대꾸하려다가 우청아도 같이 있는 걸 보았다. 며칠 전 황대헌이 청아를 잘 챙기라고 했던 걸 생각하며, 말을 꺼내지 못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서 떠났다.“디자인할 때는 멍청이 같이 가만히 있으면서, 수다 떨때는 그 누구보다 집중해서 하시네요! 그럴거면 아예 수다 국가대표를 하시지 왜 여기에 있는거죠?” 지현이 청아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요!”하지만 청아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인데요?”그러자 지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하면 청아 씨가 화낼까 봐 걱정되는데, 오늘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더라고요.”“지난 금요일 밤에 청아 씨가 장시원 사장님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방문을 두드렸다고, 그리고 밤새도록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요.”청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덧붙였다. “난 물론 믿지 않지만요!”어이없는 얘기에 청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이 소문을 누가 냈는지 사실은 알아보기 쉬워요. 그날 밤 호텔에 간 사람들은 몇 명 안 되니까, 누군지 감이 오는 사람이 있나요?” 지현의 질문에 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요.”고명기는 가능성이 없고, 황대헌도 디자이너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을 테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진도준이었다. 청아가 장씨 그룹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 도준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문이 도준에 의해 퍼진 것인지, 아니면 도준의 비서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그리고 청아가 도준을 찾아간다 해도, 도준은 분명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어떻게 할 거예요?” 지현이 묻자 청아가 물을 따
“너무 긴장하지 마!” 배강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 “별거 아니고 그냥 금요일 밤에 우청아가 널 방으로 모시고 가는 걸 누군가가 보고, 그걸 가지고 청아를 비방하고 있어. 청아 씨한테 더러운 물을 끼얹고 있지.”장시원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진도준이야?”배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야.”그러자 시원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접어두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 콜드스프링에 한번 가볼게.”그가 몇 걸음 걷다가 마치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멈춰 서며 배강을 돌아보았다. “네가 이 일을 처리해.”“청아 씨를 위해 직접 나서고 싶지 않은 거야?”배강의 말에 시원의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 “네가 청아에게 문제를 일으킨 거니까 네가 해결해. 해결 못 하면 돌아올 필요 없고.”그러자 배강이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내가 갈게. 콜드스프링을 뒤집어엎든, 청아 씨도 지키고 내 직장도 지킬 거야.”“떠들지 말고 빨리 가!” 시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배강은 시원이 속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시원의 상황을 이해가 돼 씁쓸해졌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어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이에 배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황대헌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있어서 청아가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황대헌의 비서가 배강이 찾아왔다고 전화를 받고서야 서둘러 돌아왔다.“배강 부사장님!” 황대헌이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미리 연락을 주지 않으셔서,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이에 배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아 씨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들어서 한번 보러 왔죠.”“무슨 문제요?” 황대헌이 어리둥절해하자 비서가 서둘러 사무실에서 청아에 대한 찌라시들을 설명했다. 그러자 황대헌의 얼굴색이 급격히 변했다. “이 소문은 어디서 시작된 거야, 조사했어?”비서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있자 배강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그날 술자리에
진도준은 반박할 수 없었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그저 술에 취해 비서에게 몇 마디 투덜거렸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번질 줄은 몰랐습니다.”그러자 황대헌이 말했다. “장시원 사장님이 배강 부사장을 직접 보내 조사하게 했어요. 아무리 저라도 당신을 지킬 순 없다는 뜻입니다. 회사 측에서 자르기 전에 자진사퇴 하세요.”원래라면 회사 내부에서 조사해 도준에게 경고나 감봉 정도로 끝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배강이 사무실에 앉아 시원의 명예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일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도준은 눈을 크게 뜨고 황대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부사장님,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많은 말들이 저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과장해서 퍼뜨린 건데요!”“하지만 배강 부사장이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가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황대헌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이번 일은 아마 도준 씨 인생에 큰 교훈이 될 겁니다.”“저도 가능한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노력할게요.”콜드스프링 건축회사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며 고생 끝에 고급 디자이너가 된 도준은 단 한마디의 험담 때문에 해고될 처지에 놓이자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황대헌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심지어 도준의 비서까지 함께 해고했다. 도준을 해고한 후, 황대헌은 디자인 부서에 가서 말했다. “금요일 밤, 장시원 사장님을 위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청아 씨가 장시원 사장님을 챙겨드린 건 사실입니다.”“하지만, 저와 고명기 부사장이 청아 씨와 함께 호텔을 떠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건 고명기 부사장도 증명할 수 있고요.”“소문들은 모두 고의로 날조된 것입니다. 제가 다시 이 문제에 대해 누군가의 뒷담화를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을 바로 해고시킬 겁니다.”모두가 조용히 듣고 있었고, 도준이 해고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무분별하게 소문을 퍼뜨린 사람
다음 날.아침 열 시도 채 되기 전에 조백림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밤 임구택과 소희의 싱글 파티를 넘버 나인에서 열어!]장시원이 답했다.[확실히 싱글 파티라고 부를 수 있어? 구택에게 가서 물어봐, 싱글이라고 말할 면목이 있냐고.]그러자 구택이 쿨하게 답했다.[자녀까지 둔 어떤 사람은 여전히 싱글이라고 떠들고 다니던데, 내가 뭐 어때서.][내가 언제 그런 소리 했다고! 모함 그만하고 메시지 빨리 취소해!]이때 청아가 등장했다.[임구택 사장님, 저랑 잠시 통화 가능할까요?][물론이죠. 그리고 소희도 바로 옆에 있어. 내 사랑 앞에서 전부 털어놓고 진실만 말할게요.]시원이 분노 이모티콘을 보내며 말했다.[임구택, 내가 신랑 들러리인 거 잊었어?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해도 돼?]구택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왜 그렇게 초조해?]시원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아마 서둘러 청아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해명하고 있는 듯했다.이때 성연희 등 여러 사람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냈다.[백림, 파티 나눠서 하는 게 어때? 임구택 사장님은 당신들이 맡고, 우리 소희는 내가 맡을게!]연희의 말에 백림이 말했다.[나눠서 하는 건 괜찮지만 많은 사람이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신청할걸.]시원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와서 말했다.[연희 씨, 저희 청아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이에 명성도 거들었다.[연희도 가족 동반 신청할게요.][나도 소희 가족으로 동반 신청.][우리 집 간미연도 가족 동반 신청이요!]백림은 계속해서 유정을 태그하며 말했다.[유정, 이제 네 차례야!]유정은 장난스럽게 응수했다.[다들 남자가 신청하길래 나도 나서야 하는 거야?][우린 각별한 사이잖아. 네가 날 제일 사랑하니까 당연히 너도 신청해야지!]유정은 그에게 발차기 이모티콘을 날렸다. 모두가 단체 채팅방에서 떠들썩하게 농담을 주고받다가 저녁 계획을 확정하고 각자 할 일을 하러 떠났다.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소희를 끌어안고 그녀의 옆 얼굴에 키스를
소희는 남궁민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나 임구택을 정말 사랑해. 전에 말했잖아, 우리 이미 결혼한 상태야. 이번 결혼식은 그저 형식일 뿐이야.”남궁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소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심명이 장난친 거야.”남궁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심명에게 짧게 눈길을 보내며 깨달은 듯 얼굴을 굳혔다. 화가 나고 민망한 듯이 다시 한번 심명을 노려봤다.십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구택에게 말했다.“궁금하지 않아요? 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구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대답했다.“아니, 전혀요.”심명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자신감이 넘치는 건가?”구택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뇨, 내 아내를 믿는 거죠. 알다시피, 네가 소희가 나에게 시집가는 걸 못마땅해하는 건 알고 있어요.”“그렇지만 이런 식의 얕은 수작, 조금 저급하지 않나?”심명은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그의 손은 하얗고 긴 손가락이 우아하게 뻗어져 있어 그 모습이 여성보다도 더 우아해 보였다. 찻잔을 손에 든 그 모습은 기품이 넘쳤고 차갑게 빛나는 매력이 묻어났다.심명은 찻잔을 가볍게 들어 마시며 미소 지었다.“걱정 마요. 난 단지 소희를 축복해 주기 위해 온 거고 다른 의도는 없으니까. 작은 장난일 뿐이니.”“어차피 소희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나 역시 소희가 당신과 행복하게 살길 바라고 있고.”“만약 누군가가 이 결혼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그 자리를 정리할 거거든요.”구택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역시 똑똑하시네요.”심명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층 더 농담조로 말했다.“적어도 남궁민보다는 더 똑똑하긴 하죠.”잠시 후 소희와 남궁민이 걸어왔고, 소희는 말했다.“대화는 끝났어. 이제 가자.”심명은 남궁민의 냉랭한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구택은 남궁민에게 택시를 불러
임구택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고, 얇은 입술이 일자로 굳어졌다.“무슨 뜻이지?”남궁민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사장님은 분명히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그저 소희를 놓아주기만 하신다면, 조건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제가 무조건 받아들일게요.”구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할게요. 당신이 소희를 배신했던 일에 대해 나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다만 소희가 널 친구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 역시 소희와 똑같이 너를 친구로 대하는 거예요.”“네가 결혼식에 와서 진심으로 축복해 주겠다면 환영하겠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면 미리 말해 두지. 강성이든 삼각주든, 어디든 내 말이 통하는 곳이니.”남궁민은 일어나 구택과 비슷한 키로 그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도 결연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자신의 강함을 내세워 여자를 옭아매는 것뿐이라면, 그게 이디야의 수준인가 보군요.”그 말을 남긴 채 남궁민이 먼저 걸어 나갔고, 구택은 순간 당황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궁 가문에서 후계자를 정할 때는 정말 지능 검사를 안 하는 건가?...그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전채 요리가 이미 나와 있었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묘했다. 그나마 소희가 아까 미리 경고해 둔 덕분에 큰 언쟁은 벌어지지 않았다.식사 중간, 남궁민은 한참을 떠들며 C국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어렸을 적 외할머니가 자주 C국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며 자신은 C국 음식을 먹고 자란 셈이라고 덧붙였다.구택이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남궁민 씨의 약혼녀가 Y국 사람이라던데, 앞으로는 Y국 음식을 더 즐기게 되겠군요.”남궁민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저와 린다는 이미 파혼해서요.”구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당신 아버지가 다시 선택한 약혼녀도 Y국 황실의 사람이라던데요.”남궁민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는 더
남궁민은 얼른 말했다.“서희, 나 아무 말도 안 했어!”소희가 눈을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자, 남궁민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제 셋 다 말없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찰나에 임구택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잠깐 확인하더니 소희에게 말했다.“전화 좀 받고 올게. 네가 먼저 주문하고 있어, 금방 올 거야.”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다녀와.”구택이 전화를 받으며 나가자, 남궁민도 잠시 눈빛을 빛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에게 말했다.“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남궁민 또한 방을 나갔다.이제 방 안에는 소희와 심명만 남았고, 소희는 그에게 말했다.“그만 좀 그 사람 자극해.”심명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야. 그 사람에게 네 곁엔 언제나 널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지. 위기의식을 좀 심어주려고.”소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난 그런 거 필요 없어.”심명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하지만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불편할 거야.”“그걸 피하려고 나와 연을 끊고 영영 남처럼 지내겠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그럴 일 없을 거야.”심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이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일 거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진지하게 말했다.“이젠 여자친구를 사귀어 봐.”심명은 갑작스러운 말에 마시던 주스를 거의 뿜을 뻔했고, 소희는 재빨리 휴지를 건넸다.심명은 못마땅한 얼굴로 휴지를 받아 들고는 말했다.“그런 말로 날 상처 주려고? 네가 임구택 때문에 이렇게 나한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거야?”소희는 휴지를 더 건네며 말했다.“나 진심이야. 진지한 연애를 해봐.”심명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날 잊어버리게 하려는 거지? 정말 못됐어.”소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좋아, 연애하지 마. 평생 연애도 하지 말고, 나중에 네가 늙으면 나랑
소희가 메시지를 보낸 지 3초 만에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 안에서 소희는 깜빡거리는 전화 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남궁민이 불편해할까 싶어 임구택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어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끊고,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문자로 해.][왜 전화 끊었어? 그 사람은 왜 왔어?]소희는 첫 질문은 넘기고 대답했다.[아마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온 것 같아.][그런데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밥까지 사?][손님이니까 예의를 지켜야지.]그러자 구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그럼 어디로 가는지 주소 보내.]소희는 예정된 식당 주소를 보냈다. 그 사이 앞좌석에서는 심명과 남궁민이 여전히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고, 소희는 눈을 감아버렸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소희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날렵하고 우아한 맞춤 정장을 입고, 시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소희에게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심명도 구택을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리며 소희에게 물었다.“왜 임구택까지 불렀어?”소희가 대답했다.“구택도 남궁민을 알아.”심명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가려고 했다. 그때 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뭐죠? 얼굴 보기도 전에 도망가려는 건가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여자를 남에게 뺏긴 거죠.”소희는 남궁민을 향해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무슨 말이야?”심명은 얼굴이 굳어지며 남궁민에게 한 대 더 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다가 소희의 물음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임구택이 왔으면 잘됐네. 나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겠군.”구택은 이미 소희를 보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소희의 손을 먼저 잡은 뒤 남궁민과 심명을 번갈아 보았다. 이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남궁민이 입을 열기 전, 소희가 먼저 소개했다.“내 남자친구, 임구택.”남궁민은 이미 이디야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내밀며 태연하게 말했다.“사장님, 반가
“남궁민은 어디 있어?” 소희가 물었다. 심명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희는 소파에 다리와 팔이 묶인 채 앉아 있는 남궁민을 보게 되었다.둘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소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남궁민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희, 드디어 다시 만났네!”소희는 다가가 직접 그의 묶인 끈을 풀어주며 물었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남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당신을 보러 왔지!심명은 이 광경에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불편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말하려면 제대로 해. 그 지독한 표정은 뭐야? 나도 아직 여기 있거든.”남궁민은 심명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소희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사실 예전부터 찾아오고 싶었어. 그런데 한동안 강시언의 일을 돕느라 조금 늦었거든.”소희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새해에 그 메시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남궁민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나야!”소희는 살짝 웃으며 물었다.“지금 어디서 묵고 있는데?”“호텔에 있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그럼 점심은 내가 대접할게.”“좋지!” 남궁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사는 곳이니, 네가 주인이지.”그때 심명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희에게 애교 섞인 불만을 표했다.“나도 같이 갈래! 그런데 왜 나한텐 밥 사준다고 안 해?”남궁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여긴 네 구역이라며. 자기 땅에서 뭘 또 사달라고 하는 거야?”“우리 둘 사이에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니거든요!” 심명은 이를 악물자, 소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둘 다 그만 좀 해. 점심은 내가 두 사람 다 대접할 테니까.”두 사람은 동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서로를 한 번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점심시간이 다가와 세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소희는 차를 가져왔고, 남궁민은 아까까지 묶여 있었기에 당연히 소희의 차에 탔다. 그는 앞좌석 문을 열
소희는 놀란 듯 말했다.[남궁민? 어디 있어?]“지금 내 곁에 있어. 네가 오랫동안 미행을 당하는 걸 보고 그를 데려왔어.”“그자가 혹시라도 너를 괴롭히는 거라면, 내가 당장 그를 돌려보내 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심명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소희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주소 좀 보내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그 사람한테 손대지 마.]“알았어!” 심명은 기쁘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소희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심명은 소희와 곧 만나게 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즉시 주소를 보냈다. 그러자 남궁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심명을 쳐다보았다.“이제 내가 소희의 친구라는 걸 알았으니, 얼른 나 좀 풀어줄래요?”심명은 남궁민이 자신을 소희의 전 남자친구라 소개한 이후로 불편함이 가득했기에, 냉소하며 말했다.“소희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나요? 얌전히 기다려요.”남궁민은 손이 뒤로 묶여 있었지만, 다리는 자유로워 스스로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는 심명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심명은 남궁민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소희랑 어떻게 알게 된 사이에요?”남궁민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무시하듯 말했다.“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심명은 냉소하며 말했다.“그럼 내가 소희가 오기 전에 널 영영 소희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릴 권리도 있다는 거 잊지 마요.”남궁민은 심명이 실제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알고,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우린 꽤 오래된 친구예요.”“꽤 오래됐다고요? 그럼 내가 소희를 만난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절이라는 건가요?”“당연히 그렇죠!” 남궁민은 소희와의 만남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며 말했다.“그때 소희가 나한테 총을 건네줬거든요.”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자기 보호도 못 하는 주제에 전장에 나간 걸 자랑이라고 해요?”“난 그래서 그 생사를 함께한 친
남궁민은 코웃음을 치며 느긋하게 말했다.“나랑 소희의 관계? 나는 소희의 전 남친이자, 생사를 함께한 친구...”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명은 벌떡 일어나 그의 얼굴을 위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당신의 소희의 뭐라고요? 방금 잘 못 들었으니까 다시 말해봐요.”남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소희의 전...”퍽! 심명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심명의 매력적인 눈매는 분노로 붉게 물들었고, 섬뜩하고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내가 아는 한, 소희에게 전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건 나뿐이에요. 감히 나의 소희를 핑계 삼으려고 하다니, 죽여서 내쫓아버릴 줄 알아요!”남궁민은 입가에 상처가 생겨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물고 심명을 노려보며 말했다.“여기도 법과 인권이 있는 나라니 조심해요. 내가 당신을 고소할 거니까. 아니, 지금 내 인신 자유를 불법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꼭 법적 조치를 취할 거예요!”심명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이곳은 내 구역인데, 당신이 뭘 하든 내가 겁낼 줄 알아요?”그리고 옆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데려가서 실컷 두들겨 패.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남궁민은 심명이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난 진짜로 서희를 알아요. 그래서 C 국까지 찾아온 거라고요!”심명은 남궁민이 서희라는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경계심이 더해졌다.“찾으러 온 이유가 뭐죠?”남궁민은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말했잖아요. 우리는 친구이자, 생사를 함께한 사이라고.”“생사를 함께 했다고요?” 심명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우리 소희를 구한 적이라도 있다는 건가요?”“서희가 날 구했죠.” 남궁민은 자부심이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또한 우린 함께 싸운 적도 있다고.”심명은 소희의 과거에 대해 일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약간의 신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남자가 여자에게 구원받았다니, 정말 큰 은혜를 입었네.”남궁민은 심명의 비꼬는
지엠 본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 소희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몇 대 떨어진 곳에 파란색 페라리가 멈춰 서더니, 연한 파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가 소희 쪽을 바라보며 걸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자는 몸을 돌릴 겨를도 없이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며 눈앞이 깜깜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다가와 검은색 롤스로이스로 끌고 가 태웠고, 차는 신속히 사라졌다.소희는 차 뒤쪽을 돌아가며 누가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페라리가 주차된 자리까지 가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차의 주인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소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했나 싶었다. 그저 우연히 그곳에 주차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떠나버린 걸까?더 이상 찾을 수 없자, 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화영을 만나러 갔다.화영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화영은 회의 중이었다. 소희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기다렸다.약 30분 후, 화영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소희는 소파에 기대어 쿠션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소희는 소리에 금세 눈을 떴다. 화영인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잠을 깨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영은 소희에게 커피 한 잔을 준비해 건네주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화영은 소희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웃으며 말했다.“며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구택 사장님이 자제를 좀 하셔야겠어.”소희는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며, 눈가에 핀 연한 홍조가 스며들었다.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물었다.“설탕 넣었지?”“넣었어. 세상에, King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화영이 웃저, 소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먼저 마시고, 다 마시면 드레스 피팅하러 가자.” 화영이 말에, 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투덜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