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임구택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디자인 그림은 아니야.”그러자 구택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럼 뭐 하고 있었던 거야?”“회의 기록을 했어.” 소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보고 싶어?”“회의 기록이라고?” 구택은 약간 놀랐다. “어, 보여줘!”소희는 자신의 노트를 집어 구택에게 건네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사장님, 검토해 주세요!”구택이 노트를 받아 들고 펼쳤을 때, 잠시 당황했는지 멈춰 섰다. 소희가 그린 건 자기 모습이었다. 하나는 구택이 보고를 듣고 있을 때의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서를 읽고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두 장의 그림은 구택의 집중한 모습과 심각한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구택은 그 두 장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구름 위로 올라간 것처럼 기분이 좋고,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은 느낌에 소희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회의실에서 이걸 그린 거야?”구택은 소희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소희가 그렇게 진지하게 그리고 있어서, 당연히 디자인 초안을 작업하고 있다고 여겼었다.소희는 구택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한 번 본 건 바로 머릿속에 남아. 굳이 계속 쳐다볼 필요 없어.”이에 구택의 눈빛이 깊어졌다. 구택은 소희에 대한 감동을 감추지 못하고 소희를 꼭 안았다. 구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결국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는 줄 몰랐어.”이에 소희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그린 게 좋은 건가, 아니면 네가 잘생긴 게 좋은 건가?”구택은 소희를 더욱 꽉 안으며 볼에 키스했는데 구택의 숨결에는 약간의 열기가 담겨 있었다. “물론 네가 그려줘서 좋은 거지!”“네가 이렇게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난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네 모든 것이 나를 자랑스럽게 해.”소희는
이선유의 앳된 목소리에 경멸이 가득한 말이 들려왔다.“어머, 나를 기억하시네요! 이지민 감독에게 해고당하고 일자리도 잃었나요?”“한 번만 더 물어볼게요, 내 드레스 디자인 초안 만들어줄래요? 이건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예요.”“만약 당신이 동의한다면, 바로 드라마 촬영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요.”“약속한 대로 금액도 넉넉히 주고, 이전의 불쾌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거로 해요.”소희는 일어나 선유의 말을 들으며 발코니로 걸어갔다. 눈 부신 햇살이 소희의 얼굴을 비추었지만, 눈 속의 차가움은 녹이지 못했다. “시간도 없고, 마음도 없어요. 물론, 지금 시간이 있다고 해도 당신 디자인을 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만들 옷은 당신 같은 사람한테 주기 아까우니까!”소희의 말이 끝나자 선유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소희 씨, 오늘 한 말 잊지 마세요. 후회하지 않길 바랄게요!”“난 아침부터 기분이 잡쳤어! 당신 전화를 받은 걸 후회하고!” 소희가 차갑게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자 곧 선유가 보낸 메시지가 떴다. [소희 씨, 당신이 나한테 와서 싹싹 빌면서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기가 막히는 문자에 소희는 이선유의 번호를 바로 차단했다.…정오 무렵, 인터넷에 한 포스트가 올라왔는데‘King의 성장 과정’이라는 제목이었다. 포스트에서는 소희의 성장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20여 년 전 운성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부모에게 학대받고 어린 나이에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했다.게시글 작성자는 당시 사고 상황도 조사했다고 한다. 소희의 부모가 사고 당일 산물을 팔러 도시로 갔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서 트럭과 충돌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했다.또한 작성자는 소희의 친동생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또한 친동생의 말에 따르면 사고 전날 소희가 자전거 앞에서 가위를 들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소희가 다음 날 부모가 나갈 것을 알고 일부러 브레이크를 고장 내 부모를 죽이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
[학비 지원해 준 사람이 정말 실망할 거 같다. 돈과 정성을 들였는데 결국 은혜도 모르니.][도경수 선생님도 King이 이런 사람인 줄 알았을까?][아마 모를걸. King의 정체가 밝혀진 영상을 봐봐.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도경수 선생님과 자기를 지원한 사람들을 모두 속였겠지!][King의 정체가 밝혀진 영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너무 어린데 어떻게 그렇게 큰 성과를 낼 수 있어? 천재가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 역시 뒤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거지.]…하지만 King의 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반박했다. [King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만약 King이 게시물에서 말한 것처럼 명예를 좇는 사람이라면, 진작 자신의 정체를 밝혔겠지. 다른 사람이 카피를 하고 벼랑 끝까지 몰리니 어쩔 수 없이 나선 거지!][맞아. 우리가 King을 좋아하는 건 얼굴이나 도경수 때문이 아니야. 창작물을 좋아하는 거지.][작품을 모두 다 봤는데 상은 순전히 잘해서 탄 거다.][시물을 올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숨어서 난리 치지 말고, 정면돌파 해라!]…몇 달 동안 잠잠했던 King에 관한 논쟁이 다시 불붙으며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명의 인터넷 유저들, King의 팬들이 끝없는 논쟁을 벌였고, 모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오후에 소희는 성연희로부터 전화를 받고, 온라인에서 떠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청아를 포함한 지인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걸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이에 게시물을 훑어보던 소희는 어이가 없어 냉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건 바로 이선유의 짓이 틀림없어 보였다.‘하,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한 게 고작 이거야? 내 뒷조사를 했던 거야?’경성의 재벌가 딸로 태어나서 가지고 싶은 건 뭐가 됐든 다 가졌던 선유라 어렸을 때부터 그 누구도 선유의 고집을 꺾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선유가 소희에게 거절을 당하니 이렇게 치사하고 더러운 수법을 쓴 것이었다.연희가 차갑게 말했다. “이미 PR
임구택이 핸드폰을 받아 들고 잠시 살펴보았는데 표정이 금방 어두워졌다. 글과 몇몇 댓글을 모두 읽은 후, 얼굴엔 살기로 가득했다.“알겠어요, 이제 다른 소식이 있으면 또 알려줘요.”구택이 무겁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저는 소희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기에 열심히 반박 댓글을 달겠습니다.”칼리가 진심을 표하고 방을 나서자마자 소설아가 마주 오고 있었다. 설아 역시 인터넷상의 소희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을 본 것 같았다. 이에 설아는 차갑게 조롱하며 말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디어 알게 되었나요? 이제 제가 왜 소희를 싫어하는지 이해하시겠어요?”하지만 칼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소희는 저 글에서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소희를 싫어하고, 잘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사장님 앞에서 하세요!”“그럴 엄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에 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소희가 당신에게 어떤 혜택을 줬길래 저한테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보이는 거죠?”“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눈으로 볼 줄 알고, 귀로 들을 줄 알며,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리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책상으로 큰 걸음으로 걸어갔고 설아는 비웃으며 칼리를 한 번 더 쳐다보고 걸음을 옮겼다.사무실 안에서 구택은 분노를 억누르며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소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자, 정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 갑자기 전화하셔서 무슨 일인가요?”“소희에 대한 인터넷 폭로를 보셨습니까?” 구택이 차갑게 묻자 소정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빠르게 답했다.“아니요, 오늘 하루 종일 회의에 참석해서 핸드폰을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소희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누군가가 당신들이 소희의 양부모라고 말하며, 소희가 당신들의 지원을 받고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이니 당장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고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핸드폰을 던지고 임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 속에서도 소희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소희가 어렸을 때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소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에도 친부모에게 상처받는다니!‘소희가 왜 소씨 가문으로 돌아갔을까?’소희는 구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소희는 구택을 위해 온 것이었는데, 구택은 소희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 아니면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서인의 일이 터졌을 때, 조금 더 깊게 조사해야 했다. 그랬다면, 소희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것이고, 계속해서 운성까지 쫓아갔을 것이었다, 둘 사이에 이렇게 많은 오해와 갈등 때문에 돌고 돌아 만날 필요가 없게 될 것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다시 소씨 집안으로 돌아가 그런 사람들과 마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구택은 소희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희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신경 쓴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희가 걱정되었다.결국, 소정인 부부는 소희의 친부모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지 않아 하겠는가?구택은 자책과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소희가 소정인 부부에게 키워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소정인이 전화를 끊은 후 자신의 사무실을 오가며 걸었다. 소정인은 지금 소희와 구택의 정확한 관계가 무엇인지 몰랐다.원칙적으로 두 사람은 이미 파혼했다. 처음에 구택의 태도는 차가웠고 소희를 매우 싫어했기에 소정인은 둘 사이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파혼을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구택이 소희를 대하는 태도는 180도로 달라졌다.‘왜 소희를 이렇게까지 챙기는 거지? 단지 가정교사라서? 고작 그 정도로 임구택이 소희를 감싸준다고?’소정인이 한참을 고민한 끝에,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알람이 여러 번 울려서야 소희가 받았다.소정인은 급하고 걱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야, 괜찮니?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봤는데 걱정돼서 전화했어. 지금 어디야? 아빠가 데리러 갈까?”소희는 여느 때처럼 차분하고 냉담하게 말했다. “지금 집에
소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니요, 전혀 놀랍지 않아요. 내 아버지가 전날 나를 찾아왔고, 내가 거절하자마자 인터넷에 내 출신에 대한 악성 게시물이 올라왔어요.”“누가 한 건지 너무 뻔하잖아요!”이에 소정인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야, 아빠를 의심하는 거야? 어쨌든 넌 내 딸이야. 내가 어떻게 널 해치겠어?”“당신이 했는지 안 했는지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아니,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죠!” 소희는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이선유가 폭로하도록 내버려두세요. 나는 하나도 안 두려우니까.”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고 느낀 소희는 소정인과의 대화를 여기서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소정인은 뚝 소리를 듣자 심장이 쿵 하는 것 같았다.소정인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본인 딸은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정말로 영리하다는 것을. 그리고 소희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예전처럼 차갑고 냉담했지만, 소희의 결연한 말 속에서 소정인은 무언가 다른 것을 느꼈다.‘소희도 슬퍼할까?’갑자기 소정인의 마음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고, 소정인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소정인의 얼굴이 안 좋아 보이자 진연이 놀라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일이 잘 안 풀리나요?”소정인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왔어. 우리가 소희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인터넷의 소문을 명확히 해명하라고 하더군.”소정인의 말에 진연이 화가 나서 말했다. “왜 임씨 집안은 계속해서 이 일에 관여하려고 하는 거죠?”“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소희가 임씨 집안을 끌어들여 자기편을 들게 만드니, 이제 그게 소희의 방패막이 된 거죠.”그러자 소정인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좀 지나치게 한 거 같아. 소희도 결국 우리 딸이잖아.”“비록 소희가 성격이 좀 안 좋긴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우리도 책임이 있어.”“우리가 소동에게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소희가 마음이 뒤틀려서 이상한 행동을 한 거야.”진연의 얼
소정인은 깜짝 놀랐다.“그리고 소희가 King이라는 것을 내세워서 자랑하고 다니지 마세요, 만약 그랬다가 저한테 들키면, 당신 집안 후폭풍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소희는 제 사람이고 전 누가 내 사람을 건드리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러니 유의해서 행동하세요!”임구택의 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자기 할 말을 하고 바로 끊었다. 그리고 소정인은 멍하니 앉아서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구택의 강렬한 압박감이 전화 너머로도 느껴져 심장이 두근거렸다. ‘과연 구택이 정말로 소희를 위해 소씨 가문에 손을 대려 할까?’곧 진연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전화 끝났어요? 임구택이 뭐라고 하는데요?”소정인은 멍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아.”이에 진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임구택이 대체 뭐라고 한 거야?”“우리보고 소희를 건드리지 말래. King의 이름을 가지고 외부에서 거들먹거리지 말라고 했어.”“그렇지 않으면 우리 소씨 가문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직면할 거라고.”멍해 있는 소정인이 어이가 없는지 진연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겁을 먹은 거예요? 그저 말만 그렇게 한 거일 거예요. 소희를 위해 정말로 큰일을 벌일 리가 있겠어요? 무슨 이득 보려고?”하지만 소정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직접 듣지 못해서 그렇게 생각될 거야. 임구택은 정말로 할 것처럼 얘기했어.” 진연은 당황했는지 눈을 굴리며 말했다. “걱정 마요. 이선유가 소희를 상대하고 있고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임구택이 화를 내도 우리한테는 불똥이 튀지 않아.”이에 소정인은 땀을 닦으며 물었다. “혹시 이선유하고 사적으로 연락한 적 있어요?”소정인의 질문에 진연은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모든 통화 기록과 채팅 기록을 지워. 나도 지금 핸드폰을 확인할게. 빨리 지워. 이선유를 차단하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 소정인도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조작하기 시작했지만 진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우청아가 오늘 일찍 퇴근해서 소희네 집에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소희가 발코니에서 디자인 스케치를 그리고 있는 걸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터넷이 그렇게 시끄러운데, 넌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어? 정말 대단하다!”“불안한 사람만이 발을 동동 구르겠지만 난 하나도 불안하지 않아!”소희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웃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새 일은 어때?”“일단은 다 괜찮아!” 청아가 소희 옆에 앉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청아는 소희가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희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아가 할 수 있는 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청아의 말에 소희가 방금 요리 두 가지를 말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곧 소희가 전화를 받았다. “간미연?”“게시글 작성자의 IP를 찾았어. 작성자 컴퓨터를 해킹했는데 모든 채팅 메시지를 삭제했어.”“그래서 복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컴퓨터로 로그인한 카카오톡을 통해 휴대폰을 찾았어.”“이선유라는 사람과 연락했던데, 이선유라고 알아?”소희는 간미연의 뛰어난 기술에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선유라는 이름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알아, 수고했어!”“별거 아니야!” 미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작성자 컴퓨터에서 삭제된 내용을 최대한 빨리 복구해서 유용한 정보를 찾으면 다시 연락할게.”“그래.”소희가 전화를 끊고 청아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패스할게, 내일로 미루자고. 내일 맛있는 거 해줘!”갑작스러운 상화에 청아가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뭘 발견했어?”소희는 디자인 스케치를 접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를 계속 자극하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웠던 건 이제 그만해야겠어. 단순하고 거친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어.”이에 청아가 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고 그래? 일단 구택 오빠한테 말해보는 게 어때?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