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농담이에요!” 우정숙이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올라가 봐요. 임유민도 아까부터 소희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계단을 오르며 소희가 임구택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좀 그렇지 않나?”소희는 노정순과 우정숙을 매우 좋아했지만, 한 가족으로 녹아들기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괜찮은데?” 구택이 소희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 무엇도 네 행복보다 중요한 건 없어.”구택은 걸음을 멈추고 소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을 믿어. 네가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해줄게. 억지로 누군가를 응대하거나, 눈치 볼 필요 없어.”“나랑 결혼했다고 해서 예전에 누렸던 자유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아.”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눈빛이 반짝였다. “나 억지로 그러는 건 아니야. 정말로 집안사람들 다 좋아해. 그저 가끔 적응하기 어렵고, 굉장히 열정적인데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어.”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그저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돼.”소희는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계단을 오르는 하인을 마주치자 소희가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유민이 수업 가야 해!”“응.” 구택이 소희의 볼에 뽀뽀하며 말했다. “가 봐.”소희는 수업을 하러 갔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유민이 환호하며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를 속였다고 뭐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유민은 평소와 같이 차분히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고, 소희가 들어오자 담담하게 말했다. “탁자 위에 사인 카드가 있으니까 사인해 줘요.”소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말도 없이, 심지어 누구의 사인을 원하는지도 묻지 않고 사인 카드를 들고 사인을 하려고 준비했다.사인을 하려고 할 때, 소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K
“너희가 내 선물을 샀다고?” 소희가 선물을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목걸이 아래에는 ‘King'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또한, 글자 뒤에는 더 작게 ‘희'라는 글자가 숨겨져 있어 매우 섬세했다.소희가 목걸이를 착용하고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사인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겠지? 너무 티 내는 거 아냐?”임유민은 소희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마음이 고마우니 목걸이는 받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다시는 선물하지 마. 이건 룰을 어기는 거야!” 소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어떤 룰인데, 내 숙모니까 선물하는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유민이 당당하게 말했지만 강경한 소희의 태도에 결국 의견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안 돼, 나는 여전히 네 과외 선생님이니까. 아무튼 다음부터는 선물하지 마, 아니면 이것도 안 받을 거야.”“알았어요, 알았어, 이번만 할게요!” “자, 수업 시작하자!”……수업이 끝난 후, 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목에 걸린 은색 목걸이를 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뭐 걸고 있어?”“자기 사인을 목에 거는 사람 본 적 있어?”“음?” 소희의 대답에 구택이 미묘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이윽고 소희가 옷깃 속에 숨겨진 펜던트를 꺼내 구택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봐, 유민의 아이디어야!”구택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흐뭇하게 웃었다.……월요일, 소희는 정식으로 드라마 촬영장으로 복귀했다.스타쉽 매니지먼트가 고용한 댓글 알바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동의 소수 팬들도 팬에서 안티로 돌아섰으며, King의 팬들보다 더 심하게 소동을 비난했다.King의 팬들은 원래 숨어있는 팬이 많아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동이 King을 공격한 것이 모든 팬의 보호 의식을 일깨워 King을 보호했다.소희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후, 이들 팬은 분명히 한바탕 흥분했지만, 곧 그날 회장에 있던 팬들은 소
이정남이 소곤거렸다. “제작자가 소희 씨를 이 드라마 홍보에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누군가에게 경고받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못했죠.”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렸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임구택이었다.전화해서 물어보려다가, 그가 자신을 위해 해온 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알고 있기만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눈 깜짝할 새에 또 한 주가 지나갔고, 수요일에 소정인이 드라마 촬영장에 그녀를 찾아왔지만 소희는 만나지 않았다.소씨 집안에서도 사람을 보내 소희를 찾았지만, 촬영장 스태프가 모두 막아섰다. 이전에 누군가가 숨어 들어와 황산병을 던져 소희를 다치게 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지민 감독은 촬영장의 보안을 강화했고, 다른 스태프들도 자발적으로 소희를 보호했다.소희는 여전히 바쁘게 지냈고, 다른 사람들도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자 점차 그녀와 예전처럼 지내기 시작했다.……금요일 오후, 구택이 소희를 데리러 오기 전에 미리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모두 모여서 소희를 위한 축하 파티를 열자고 하자 구택도 동의를 했다.사실, 장시원, 조백림 등은 이미 여러 번 소희를 위한 파티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구택은 그들의 제안을 여러 번 미뤘다.이번에 몇몇 사람들이 함께 전화를 걸어왔을 때, 구택은 King의 논란은 끝났고, 영원히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들 모두가 친한 사이였으니까 말이었다.“나도 좋아, 근데 일이 조금 남아서 조금 있어야 끝날 것 같아.” “응, 서두를 필요 없어.” 구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늦어도 기다릴게!”해맑게 웃는 구택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일이 끝나고 저녁이 되자 소희는 구택이 주차해 둔 곳으로 걸어갔다.구택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소희가 차에 탄 후에 몸을 기울여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소희는 처음에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눈을 굴리며 복숭아 사탕의 달콤한 맛을
조백림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구택이 형, 그게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꽃도 한 번 안 보냈는데, 어떻게 소희를 사로잡은 거죠?”그러자 임유진이 말을 받아쳤다. “우리 삼촌은 당연히 인격적 매력으로 사로잡은 거죠!”그러자 백림이 인정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모두 웃음과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소희와 간미연은 밖 테라스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미연이 칵테일 한 잔을 소희에게 건네며 말했다. “유명 인사가 된 기분은 어때?”“소동이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저는 나설 생각이 없었어요.” 소희가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각각의 정체성은 내 경험의 한 부분이고, 그것은 항상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왔어요.”소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생각 너 이해가 돼. 마치 매부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코드일 뿐이지만, 너한테는 그저 일부에 불과하니까.”“맞아요!”“소동은 어떻게 됐어?” 미연이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난 그동안 대회를 이끌고 있어서 소동이 가장 날뛰던 때를 놓쳤어. 하지만 나중에 자살 시도를 했다고 들었거든.”“살았어요.” 소희가 담담히 말하자 미연이 비웃었다.“일부러 그런 거겠지,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자살 시도로 가장해 도망치려고 했을 거니까.”“하지만 회사도, ‘여신의 옷장’도 소동을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번 일을 피해 가더라도 앞으로의 삶은 쉽지 않을 거니까.”소희는 잔잔한 호수같이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소동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걸 대신 짊어질 사람이 있어요.”그러자 미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부모님 때문에? 아니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가짜로 도배된 사람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미연이 소희를 대신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번에 저지른 실수는 소씨 집안 사람들이 그냥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그 배상금을 모두
간미연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이 두 해 동안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그러자 우청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연락을 안 했어. 처음에 급하게 떠나고 일이 생겨서 국내와의 연락을 끊었거든.”“그럼 지금 장시원이랑 사귀고 있는 거야?”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미연은 곧 장명원과 약혼할 예정이었는데, 명원은 시원의 사촌동생이다. 만약 청아가 시원과 사귀는 중이라면, 앞으로 그들은 가족이 될 수도 있다.청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력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시적으로 만나는 거야!”하지만 미연은 청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시원 씨 예전에는 여자를 많이 만났지만, 네 딸을 받아들였다면 분명 너를 많이 좋아하는 거야!”청아는 맑고 솔직한 눈빛으로 말했다. “시원 씨는 나한테 정말 잘 해줘. 그저 내가 그와 너무 차이가 나.”이에 미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너도 훌륭해. 시원 씨가 너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너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야.”“시원 씨가 널 좋아한다는 건, 너도 그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야. 너희 둘은 평등해!”미연의 말에 청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 미연아!”임유민과 임유진이 장난감을 가지고 와 요요와 놀아주었다. 두 사람은 아직 동심이 남아있었기에 요요를 매우 좋아했다.특히 유민은 귀엽고 예쁜 요요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 나머지 유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누나, 우리 삼촌이랑 소희 선생님한테 말해서 아기 한 명 낳아달라고 하자.”유민은 구택과 소희도 딸을 낳아 예쁜 드레스를 입히고 집안을 뛰어다니게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할머니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택에게 아기가 생기면 그 아이가 가족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었다.유진이 리치를 까서 요요에게 먹이며 웃으며 말했다. “소희한테 기대하는 건, 우리 엄마가 셋째를 낳는 것만큼이나 빠르지 않을 거야.”유민은 뼈를 때리
임유진은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 요요의 작은 머리에 꽃무늬 끈으로 머리를 땋았고, 가는 머리끈에 작은 데이지꽃을 꼽았다. 땋은 머리가 완성되자 요요는 난간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시대를 느낄 수 있는 검은색 철제 난간 옆에는 붉은 나무 꽃대 위에 매달린 긴 꽃줄기가 있는 한 그루의 플라워 바인이 있었다. 요요는 연두색 작은 드레스를 입고 땋은 머리를 한 채, 철제 난간에 기대어 순진하고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직 어둡지 않아, 저녁노을이 요요의 얼굴에 비치며 따뜻하고 소녀소녀한 매력을 더해주었다.유진은 빠르게 사진을 찍고는 요요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요요 진짜 잘했어, 나중에 사진 엄마한테 보여줄게.”임유민이 사진을 보러 왔고, 그들은 각자 차례로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놀았다.저녁이 되자, 웨이터가 식사 카트를 끌고 와서 식사를 전달했고, 장시원도 요요를 안고 밥을 먹으러 왔다. 유진이 찍은 사진을 보고는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며 부탁했다.“요요 사진 좀 보내줘.”“그래요!” 유진이 시원과 번호를 교환해 요요의 사진을 모두 보냈다. 시원은 사진을 보며 점점 더 마음에 들어, 배경 화면으로 설정할 계획이었다.유진이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밖을 한 번 보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머무는 스위트룸은 19층에 있었고, 12층에는 꽃과 녹색 식물로 가득 찬 테라스가 하나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정원 같았다.그때 서인이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반쯤 녹색 식물에 가려져 있었다. 또한 빛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한눈에 서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유진은 서인의 옆모습을 응시하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자친구 생겼나?’“유진아, 밥 먹으러 와!” 소희가 그녀를 부르자 유진은 눈길을 돌려 자기 가방을 들고 소희에게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먼저 식사해요. 나 기다리지 말고
“별로 크지 않아요, 작은 가게예요.” 서인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맞은편에 여자가 앉아 있어서 담배를 피울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그의 짜증이 더욱 커졌다.방금 떠날 핑계를 생각하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눈이 가늘어지며 맞은편에 걸어오는 여자를 바라봤다.임유진은 서인을 모른 척하며 그들 옆자리에 앉았고, 웨이터가 오자 유진은 따뜻한 초콜릿 한 잔과 크림 파인애플 빵 한 큰 접시를 주문했다.서인은 고개를 돌려 유진의 옆모습을 바라봤지만 유진은 곧장 난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서인 씨?” 정인정이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서인이 고개를 돌려 회답했다.“음.” “또 무슨 일이세요?”그러자 인정이 웃으며 말했다. “서인 씨가 운영하는 샤부샤부 가게는 어디에 있나요? 저 샤부샤부를 정말 좋아하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요.”“충무로 쪽에 있어요.”서인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러자 서인은 인정에게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숙이고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으러 갔다.서인이 떠나자, 인정은 좀 더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어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정인의 휴대폰이 환하게 빛나더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인은 바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구하영!”상대방은 정인의 소개팅 결과가 어땠는지 묻자 인정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엄마가 그의 집안이 부자라고 했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그냥 샤부샤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가게도 엄청 작고, 옷차림도 평범한 데다가 명품 한 벌도 없어.” “아마도 이모가 엄마를 속인 것 같아!”정인은 테이블 위의 커피를 저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나는 내가 부족할까 봐 걱정했는데, 너의 넘버 나인 멤버십 카드를 빌려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지금은 결제할 돈이 없을까 봐 걱정돼, 정말 창피할 것 같아!”상대방이 그의 외모에 대해 묻자 인정은 눈을 굴리며 답했다.“외모는 괜찮고 몸도 아주 좋아요. 외모가 괜찮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떠났을 거야!”
“저희 매니저는 부르지 말아 주세요! 조금만 깎아주세요. 저 강성 출신이 아니라서, 월세 내고 나면 정말 없어요!” 웨이터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했다.“내가 얼마라고 했으면 그만큼이에요. 빨리 변상하세요!” 정인정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서인이 전화를 끊고 돌아오기 전에 웨이터에게 서둘러 돈을 보내라고 재촉했다.웨이터는 스무 살 정도로 보였고, 당황하고 겁에 질려 조용히 인정과 협상하려 했다. “600만 원은 어떨까요? 제가 지금 600만 원밖에 없어요.”“600만 원이요?” 인정은 조소를 터뜨리며 돌아서려고 했다. “거두절미하고 매니저 찾으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제발 매니저님 한테 말하지 말아주세요, 아니면 저 잘릴 거예요!” 웨이터는 도움을 청하며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제가 각서를 쓰고 월급 받는 즉시로 갚을게요.”“안 돼요! 고작 600만 원 가지고 각서를 쓰다니, 당신은 남 비웃음거리가 되는 게 창피하지 않아요?”“나는 창피해 죽을 것 같으니까 빨리 친구한테 빌려서 입금하세요!” 인정은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내가 갚을게요.”임유진이 일어나 웨이터가 전화로 돈을 빌리려던 것을 막으며 인정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 드레스 얼마에요? 내가 살게요.”“누구세요?” 인정은 유진을 훑어보며, 그녀의 옷이 브랜드는 모르겠지만 재질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넘버 나인에 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가난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유진은 웨이터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친구예요.”웨이터는 유진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유진이 눈 깜짝하지 않고 되레 눈을 크게 떴다.인정은 유진이 정말 웨이터의 친구인지는 상관없었다. 돈만 받으면 되었기에, 인정은 휴대폰을 꺼내 계좌번호를 유진의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1200만원, 1원도 빠짐없이 보내요!”“방금 들었는데, 그 드레스 1360만원이라고 하셨죠? 제가 사는 거니까 전액을 지불해야죠, 손해 보시면 안 되니까요
아심은 표정 변함없이 물을 따라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눈치챘어?”승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말했다.“응. 원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그는 아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내 개인 계좌에 정아현 씨가 보낸 돈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아현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어.”“아현 씨가 그러더라고. 네가 부탁한 거라고, 네가 소개해 준 고객에 대한 커미션이라고 말이야.”“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너는 정말로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는 사람이구나.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병원에서 서명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그리고, 그때 이미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내 곁에 있어 주며 힘든 시기를 함께해준 거고.”“또한 예전에 네가 아플 때 내가 곁을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고.”“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너는 일부러 강성을 떠났지.”“혹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을까 봐,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임종을 앞둔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아심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 나도 아쉬워.”승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매일 할머니와 통화했잖아. 할머니는 정말 기뻐하셨고, 가시는 길도 평온하셨어.”“그렇다면 다행이네.”아심은 승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별할 때 얽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승현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아심아, 정말로 나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아심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사실 중간에 너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해 볼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미안해, 그건 내겐 무리였어.”승현이 물었다.“그 사람 때문이야?”아심은 솔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래.”승현의
승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심을 따라가며 계속 불렀다.“아심아!”아심은 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더 이상 묘지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너 대신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려줘.”승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해. 우리 엄마 성격이 원래 그렇고, 내 동생도 엄마가 너무 편애해서 버릇이 없거든. 그들이 한 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승현은 아심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며칠 동안 나와 함께 해주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 집에 가서 푹 쉬어. 며칠 지나고 나면 다시 보자.”아심은 답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집에 도착하면 알려줘.”“들어가 봐.”아심은 주차된 곳으로 걸어가 차를 몰고 자리를 떠났다.그날 밤, 아심은 승현과 통화를 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다음 날, 아심은 출근했고, 한 주 동안 밀려 있던 업무가 그녀를 압도했다. 비서인 정아현이 서류 한 묶음을 들고 와서 서명을 부탁하며 조심스레 물었다.“사장님, 요 며칠은 지승현 사장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으시나 봐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앞으로 며칠 동안 지씨 집안에 관한 동향, 특히 주식 쪽에 신경 좀 써줘요.”아현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말했다.“사장님이 여전히 신경 쓰시는 줄 알았어요. 사실 전에도 사장님이...”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제가 꼼꼼히 살펴볼게요!”“그래, 가서 일 봐요.” 아심은 미소 지었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쌓인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고, 승현도 여러 가지 일에 얽혀 있었다. 두 사람은 중간에 점심을 함께 먹은 것 외에는 별다른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셋째 날 오후, 아심은 마침내 모든 업무를 끝냈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아현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사장님, 뉴스 보셨어요? 지씨 집안의 주식이 크게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 지승현의 눈 아래는 푸른 기운이 돌았고,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어머니 권수영을 깊이 응시했다. 권수영은 승현의 눈빛에 약간 겁먹은 듯 물었다.“그게 무슨 눈빛이니?”승현은 냉소하며 말했다.“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지수철이 태어난 순간부터 하루하루 그 애만 편애하더니, 지금은 핑계를 대며 모든 재산을 작은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거잖아요!”권수영은 그의 말을 듣고 당황한 듯 눈빛이 흔들렸지만 변명했다.“너와 수철은 모두 내 아들인데 내가 어찌 편애하겠니? 네가 굳이 그딴 업계 종사하는 여자를 여자친구로 사귀니, 내가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니!”승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다면 엄마 말대로 모든 재산을 수철에게 넘기세요!”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걸어 나갔다. 권수영은 분노로 씩씩거렸고, 창백해진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정말 내가 못 할 줄 아나? 그 천한 여자랑 결혼이라도 하면, 너도 당장 집에서 내쫓아버릴 거야!”“과연 이 집안 도련님의 자리를 잃으면 그 여자가 여전히 널 곁에 둘지 보자고!”승현은 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권수영뿐만 아니라, 다른 지씨 가문의 사람들도 모두 아심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아심이 김후연의 유산 대부분을 상속받게 된 후로 지씨 가문의 첫째와 둘째 집안 식구들, 심지어 승현의 할아버지까지도 아심의 배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모두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후연의 유산이 아심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었다.지아윤은 기회를 보아 수철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 아심 쪽을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저 여자 보여?”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봤어. 근데 왜?”아윤은 말했다.“저 여자가 네 집 재산에 눈독 들이고 네 형에게 달라붙어서 돈을 빼앗아 가려고 해. 네 엄마가 지금 무척 화가 났거든.”“가서 몇 마디 쏘아붙이고, 장례식장에서 쫓아내 버려!”수
지승현은 서둘러 말했다.“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앞으로 우린 가족이나 다름없잖아요.”사실 양세민은 김후연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김후연이 없으니, 굳이 자기를 계속 고용할 이유도 없고, 집마저도 팔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승현의 말에 그녀는 비로소 안심되었다.“도련님, 저에게 이 집까지 주실 필요 없어요. 그냥 여기 머물 수 있게만 해주시면 돼요. 급여도 필요 없어요.”“나중에 도련님이 오실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게요.” 양세민이 감격해 말하자 승현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양세민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강아심은 오후 내내 승현과 함께 김후연의 유품을 정리해 주었다.김후연은 승현이 어렸을 때 입었던 옷들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받았던 상장, 심지어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며 받은 작은 플라스틱 메달까지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승현은 그 물건들을 바라보다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심은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그 후 이틀 동안 아심은 승현의 곁에 머물며 김후연의 장례 준비를 도왔다. 아심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승현의 옆에서 함께 있어 주기만 했다.셋째 날, 김후연의 장례식이 열렸다. 아심은 조문객으로 참석해 마지막으로 꽃 한 다발을 헌화했다.이날 많은 사람이 김후연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였다. 아심은 그곳에서 승현의 할아버지가 유가족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할머니의 영정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아심은 그가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아내와 함께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승현은 곧바로 그의 어머니 권수영에게 불려 나갔다. 권수영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일부러 물었다.“아까 네 옆에 있던 그 여자는 누구니?”승현이 대답했다.“제 여자친구예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
도도희는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다시 인연이 있기를 바랄게.”도도희의 말뜻을 짐작한 아심은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볼게. 수업 들어가요!”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녀가 짐을 든 걸 보고 창가에 머리를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언니!”“아심 언니, 다시 돌아올 거예요?”“누나, 우리 모두 누나를 그리워할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강성에 있는 대학에 와야 해!”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아심은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 머물지 않고 도도희에게 인사를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차에 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강시언은 2층으로 올라가 그 오래된 창고 방에 들어갔다. 그의 키 큰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밖의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너 나한테 복수하는 거냐?”이 시간 동안 그녀의 애매한 태도와 고통스러운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시언은 처음으로 차갑게 아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고,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의 온기와 친밀함이 마치 빗속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텅 빈 회색만이 남아 있었다.아심은 운전 중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눈을 살짝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시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넌 모든 걸 계산했겠지만, 네 마음은 계산해 봤냐?”아심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본인이 분명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특수 요원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시언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게 했던 말 중 진심이 뭐야?”아심은 천천히 대답했다.[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당신에
다음 날.강아심은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방 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여보세요?”[아심아!] 전화기 너머에서 지승현의 슬픔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그 말에 아심은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몸은 깨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온화하던 김후연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심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아심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 후, 별장의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 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배웅은 사양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다.채팅방에서 모두가 놀라며 아쉬워했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강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답장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집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닫고 나섰다.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강시언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고 아심을 찾으려 올라가던 중이었다.아심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본 그는 마음이 답답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아심이 대답했다. “강성에 일이 좀 생겨서요.”시언은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어젯밤 일 때문이야? 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요!” 아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아심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언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심!”아심은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안 가면 안 될까?”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말처럼, 간절하게 이어졌다. “안 가면, 안 돼?”아심은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강시언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이에 아심이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쉬세요.”“그래!”세 사람은 함께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헤어졌다. 시언과 아심은 각자 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우미는 이미 퇴근해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시언이 말했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뭐라도 좀 준비해 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심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어요. 그냥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그럼 그렇게 해. 만약 밤에 배고프면 언제든 전화해.”시언의 말투는 다정했고, 아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걸어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 보이는 듯해 말문을 열었다.“이번 일, 나도 미리 알지 못했어.”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알아.”“하지만.” 시언의 목소리는 밤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야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치챘어. 몸을 감추려고 일부러 옷을 더 입고, 변성기를 썼지만, 그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차렸지.”“걔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라서 모른 척했어.”아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묶였을 때 시언이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점이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또한, 그 용병들이 두 사람에게 밧줄을 묶을 때 시언의 상처 부위를 피해서 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다만 그 당시 아심은 마음이 급하고 혼란스러워서, 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서 움직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난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진짜 노도의 부하들이 사람을 사서 복수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심은 얕게 웃으며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멈춰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