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손에 남은 마지막 작은 채소를 토끼에게 먹이고 손을 털며 말했다.“가자!”“응!” 임구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일어섰고 소희가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 나는 혼자 집에 갈게.”“회사에 안 가. 오후엔 너랑 있을 거야.” 구택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하자 소희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거야? 걱정 마, 소동이 문제가 생기니까 회사가 고용한 물의를 일으키던 사람들은 모두 철수했어”“소동도 응급실에 누워서 나를 괴롭힐 에너지가 없을 거야.”“그냥 너랑 있고 싶어서야!” 구택은 소희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가자!”구택은 회사 일을 정리하고 휴대폰을 끄고는, 오후 내내 소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둘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함께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소희도 휴대폰을 끄고 폭풍 후의 평화로운 오후를 즐겼다.다음 날 저녁, 소시연이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소동이 전날 밤에 살아났다고 알려줬다. 또한 프로그램 제작사, 스타쉽 매니지먼트, 그리고 소동이 계약한 광고 대행사들이 모두 소동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고 배상금을 요구했다.하지만 소동은 갓 깨어나 몸이 아직 매우 약했기에 소동을 대신해 소정인과 진연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진연은 여정이 연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소동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여정은 소동이 자신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이미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그리고 소동과 친분이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소동이 이미 그들과 연을 끊었기에, 아무도 소동을 돕고 싶어 하지 않았다.결국, 진연은 소정인에게 가지고 있는 두 회사를 팔아 소동의 빚을 갚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소해덕이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진연과 소씨 가문 본가 사이에는 신경전이 일어나고 있었다.또한, ‘여신의 옷장’ 이라는 프로그램은 소동의 모든 출연 장면을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중단 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제작진은 소동을 혐오하고 있었고, 안
이 일은 점차 잠잠해졌고, 다른 스타들의 비밀 결혼과 출산 뉴스로 관심이 옮겨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소시연은 소희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소씨 가문의 일들을 알려주었다. 그랬기에 소희는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소씨 가문의 소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예를 들어, 소동은 이미 퇴원해 집에 돌아왔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다. 우울하고 폐쇄적으로 되어 사람을 꺼리고, 몸이 많이 야위었다고…….그래서 진연은 소동을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소정인은 소동의 배상금을 갚기 위해 결국 두 회사를 팔아, 소동의 모든 빚을 갚았다. 배상하지 않으면 소동은 감옥에 가야 했기에, 이 일로 인해 본가와 정인 사이에 큰 불화가 생겼다.이 일주일 동안 소해덕과 그의 아내는 소희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둘의 태도는 너무나 온화하다 못해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둘은 소희에게 반드시 집에 들러야 한다고 말했고, 소희를 위해 화려한 환영식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희는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늘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임구택은 매일 소희와 함께 출근했고, 회의실을 자신의 사무실로 옮겨 항상 그녀를 지켜보았다. 소희가 소파에 앉아 디자인을 그리는 동안, 구택은 옆에서 회의를 했다.소희가 가끔씩 고개를 돌려 회의를 지켜보았는데, 소희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고위직들을 보며 자신이 희귀한 전시품처럼 느껴졌다.정신적 문제를 겪는 것은 소동이지 소희가 아니었기에, 소희는 구택이 왜 그렇게 긴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소설아의 태도가 가장 흥미로웠다. 설아는 소희를 볼 때마다 표정이 복잡했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에 소희한테 했던 오만함이 사라진 것이었다.……토요일, 소희는 임씨 저택을 방문했다. 일주일 동안 피하려 했지만, 결국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구택은 한 손으로 운전하며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안심시켰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그러자 소희는 구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이모가 내게 끓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농담이에요!” 우정숙이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올라가 봐요. 임유민도 아까부터 소희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계단을 오르며 소희가 임구택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좀 그렇지 않나?”소희는 노정순과 우정숙을 매우 좋아했지만, 한 가족으로 녹아들기까지는 아마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괜찮은데?” 구택이 소희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그 무엇도 네 행복보다 중요한 건 없어.”구택은 걸음을 멈추고 소희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을 믿어. 네가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해줄게. 억지로 누군가를 응대하거나, 눈치 볼 필요 없어.”“나랑 결혼했다고 해서 예전에 누렸던 자유를 잃게 하고 싶지 않아.”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눈빛이 반짝였다. “나 억지로 그러는 건 아니야. 정말로 집안사람들 다 좋아해. 그저 가끔 적응하기 어렵고, 굉장히 열정적인데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모르겠어.”구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많이 생각할 필요 없어. 그저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돼.”소희는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계단을 오르는 하인을 마주치자 소희가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 “유민이 수업 가야 해!”“응.” 구택이 소희의 볼에 뽀뽀하며 말했다. “가 봐.”소희는 수업을 하러 갔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유민이 환호하며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를 속였다고 뭐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유민은 평소와 같이 차분히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고, 소희가 들어오자 담담하게 말했다. “탁자 위에 사인 카드가 있으니까 사인해 줘요.”소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말도 없이, 심지어 누구의 사인을 원하는지도 묻지 않고 사인 카드를 들고 사인을 하려고 준비했다.사인을 하려고 할 때, 소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K
“너희가 내 선물을 샀다고?” 소희가 선물을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목걸이 아래에는 ‘King'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또한, 글자 뒤에는 더 작게 ‘희'라는 글자가 숨겨져 있어 매우 섬세했다.소희가 목걸이를 착용하고는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사인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겠지? 너무 티 내는 거 아냐?”임유민은 소희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마음이 고마우니 목걸이는 받을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다시는 선물하지 마. 이건 룰을 어기는 거야!” 소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어떤 룰인데, 내 숙모니까 선물하는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유민이 당당하게 말했지만 강경한 소희의 태도에 결국 의견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안 돼, 나는 여전히 네 과외 선생님이니까. 아무튼 다음부터는 선물하지 마, 아니면 이것도 안 받을 거야.”“알았어요, 알았어, 이번만 할게요!” “자, 수업 시작하자!”……수업이 끝난 후, 구택이 다가와 소희의 목에 걸린 은색 목걸이를 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 “뭐 걸고 있어?”“자기 사인을 목에 거는 사람 본 적 있어?”“음?” 소희의 대답에 구택이 미묘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이윽고 소희가 옷깃 속에 숨겨진 펜던트를 꺼내 구택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봐, 유민의 아이디어야!”구택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흐뭇하게 웃었다.……월요일, 소희는 정식으로 드라마 촬영장으로 복귀했다.스타쉽 매니지먼트가 고용한 댓글 알바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동의 소수 팬들도 팬에서 안티로 돌아섰으며, King의 팬들보다 더 심하게 소동을 비난했다.King의 팬들은 원래 숨어있는 팬이 많아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동이 King을 공격한 것이 모든 팬의 보호 의식을 일깨워 King을 보호했다.소희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후, 이들 팬은 분명히 한바탕 흥분했지만, 곧 그날 회장에 있던 팬들은 소
이정남이 소곤거렸다. “제작자가 소희 씨를 이 드라마 홍보에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누군가에게 경고받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못했죠.”소희는 눈썹을 치켜올렸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임구택이었다.전화해서 물어보려다가, 그가 자신을 위해 해온 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알고 있기만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눈 깜짝할 새에 또 한 주가 지나갔고, 수요일에 소정인이 드라마 촬영장에 그녀를 찾아왔지만 소희는 만나지 않았다.소씨 집안에서도 사람을 보내 소희를 찾았지만, 촬영장 스태프가 모두 막아섰다. 이전에 누군가가 숨어 들어와 황산병을 던져 소희를 다치게 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지민 감독은 촬영장의 보안을 강화했고, 다른 스태프들도 자발적으로 소희를 보호했다.소희는 여전히 바쁘게 지냈고, 다른 사람들도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자 점차 그녀와 예전처럼 지내기 시작했다.……금요일 오후, 구택이 소희를 데리러 오기 전에 미리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모두 모여서 소희를 위한 축하 파티를 열자고 하자 구택도 동의를 했다.사실, 장시원, 조백림 등은 이미 여러 번 소희를 위한 파티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구택은 그들의 제안을 여러 번 미뤘다.이번에 몇몇 사람들이 함께 전화를 걸어왔을 때, 구택은 King의 논란은 끝났고, 영원히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들 모두가 친한 사이였으니까 말이었다.“나도 좋아, 근데 일이 조금 남아서 조금 있어야 끝날 것 같아.” “응, 서두를 필요 없어.” 구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늦어도 기다릴게!”해맑게 웃는 구택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은 후 전화를 끊었다.일이 끝나고 저녁이 되자 소희는 구택이 주차해 둔 곳으로 걸어갔다.구택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소희가 차에 탄 후에 몸을 기울여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소희는 처음에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눈을 굴리며 복숭아 사탕의 달콤한 맛을
조백림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구택이 형, 그게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꽃도 한 번 안 보냈는데, 어떻게 소희를 사로잡은 거죠?”그러자 임유진이 말을 받아쳤다. “우리 삼촌은 당연히 인격적 매력으로 사로잡은 거죠!”그러자 백림이 인정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모두 웃음과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소희와 간미연은 밖 테라스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미연이 칵테일 한 잔을 소희에게 건네며 말했다. “유명 인사가 된 기분은 어때?”“소동이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저는 나설 생각이 없었어요.” 소희가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각각의 정체성은 내 경험의 한 부분이고, 그것은 항상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왔어요.”소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미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생각 너 이해가 돼. 마치 매부리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코드일 뿐이지만, 너한테는 그저 일부에 불과하니까.”“맞아요!”“소동은 어떻게 됐어?” 미연이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난 그동안 대회를 이끌고 있어서 소동이 가장 날뛰던 때를 놓쳤어. 하지만 나중에 자살 시도를 했다고 들었거든.”“살았어요.” 소희가 담담히 말하자 미연이 비웃었다.“일부러 그런 거겠지,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자살 시도로 가장해 도망치려고 했을 거니까.”“하지만 회사도, ‘여신의 옷장’도 소동을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번 일을 피해 가더라도 앞으로의 삶은 쉽지 않을 거니까.”소희는 잔잔한 호수같이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소동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그걸 대신 짊어질 사람이 있어요.”그러자 미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부모님 때문에? 아니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가짜로 도배된 사람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미연이 소희를 대신해 화를 내며 말했다. “이번에 저지른 실수는 소씨 집안 사람들이 그냥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그 배상금을 모두
간미연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이 두 해 동안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그러자 우청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연락을 안 했어. 처음에 급하게 떠나고 일이 생겨서 국내와의 연락을 끊었거든.”“그럼 지금 장시원이랑 사귀고 있는 거야?”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미연은 곧 장명원과 약혼할 예정이었는데, 명원은 시원의 사촌동생이다. 만약 청아가 시원과 사귀는 중이라면, 앞으로 그들은 가족이 될 수도 있다.청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저 무력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시적으로 만나는 거야!”하지만 미연은 청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시원 씨 예전에는 여자를 많이 만났지만, 네 딸을 받아들였다면 분명 너를 많이 좋아하는 거야!”청아는 맑고 솔직한 눈빛으로 말했다. “시원 씨는 나한테 정말 잘 해줘. 그저 내가 그와 너무 차이가 나.”이에 미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너도 훌륭해. 시원 씨가 너에게 마음을 빼앗긴 건, 너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야.”“시원 씨가 널 좋아한다는 건, 너도 그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야. 너희 둘은 평등해!”미연의 말에 청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 미연아!”임유민과 임유진이 장난감을 가지고 와 요요와 놀아주었다. 두 사람은 아직 동심이 남아있었기에 요요를 매우 좋아했다.특히 유민은 귀엽고 예쁜 요요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 나머지 유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누나, 우리 삼촌이랑 소희 선생님한테 말해서 아기 한 명 낳아달라고 하자.”유민은 구택과 소희도 딸을 낳아 예쁜 드레스를 입히고 집안을 뛰어다니게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할머니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택에게 아기가 생기면 그 아이가 가족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었다.유진이 리치를 까서 요요에게 먹이며 웃으며 말했다. “소희한테 기대하는 건, 우리 엄마가 셋째를 낳는 것만큼이나 빠르지 않을 거야.”유민은 뼈를 때리
임유진은 발코니의 소파에 앉아 요요의 작은 머리에 꽃무늬 끈으로 머리를 땋았고, 가는 머리끈에 작은 데이지꽃을 꼽았다. 땋은 머리가 완성되자 요요는 난간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시대를 느낄 수 있는 검은색 철제 난간 옆에는 붉은 나무 꽃대 위에 매달린 긴 꽃줄기가 있는 한 그루의 플라워 바인이 있었다. 요요는 연두색 작은 드레스를 입고 땋은 머리를 한 채, 철제 난간에 기대어 순진하고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직 어둡지 않아, 저녁노을이 요요의 얼굴에 비치며 따뜻하고 소녀소녀한 매력을 더해주었다.유진은 빠르게 사진을 찍고는 요요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요요 진짜 잘했어, 나중에 사진 엄마한테 보여줄게.”임유민이 사진을 보러 왔고, 그들은 각자 차례로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놀았다.저녁이 되자, 웨이터가 식사 카트를 끌고 와서 식사를 전달했고, 장시원도 요요를 안고 밥을 먹으러 왔다. 유진이 찍은 사진을 보고는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며 부탁했다.“요요 사진 좀 보내줘.”“그래요!” 유진이 시원과 번호를 교환해 요요의 사진을 모두 보냈다. 시원은 사진을 보며 점점 더 마음에 들어, 배경 화면으로 설정할 계획이었다.유진이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밖을 한 번 보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머무는 스위트룸은 19층에 있었고, 12층에는 꽃과 녹색 식물로 가득 찬 테라스가 하나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정원 같았다.그때 서인이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반쯤 녹색 식물에 가려져 있었다. 또한 빛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한눈에 서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꽃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유진은 서인의 옆모습을 응시하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자친구 생겼나?’“유진아, 밥 먹으러 와!” 소희가 그녀를 부르자 유진은 눈길을 돌려 자기 가방을 들고 소희에게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먼저 식사해요. 나 기다리지 말고
방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서인도 고개를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눈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녹음 속에서는 두 사람의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처음에는 안주설의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나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어요. 창문으로 기어들었을 수도 있고요.”“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강성에서 월세 살고 있나 봐요?”“음, 그렇죠!”...녹음이 계속 이어지다, 주설의 목소리가 확연히 낮아졌다.“유진 씨랑 서인 사장님, 토니네 일에서 손 떼면 안 될까요?”유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뭐요?”“내가 400만 원 줄게요. 그러니까 서인 사장님 설득해서 여기서 떠나게 해 줘요.제발, 네?”“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묻지 말고, 그냥 네가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돌아가게 해 줘요. 우린 모두 토니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같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손 떼고 돌아가 줘요.”...유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설마 주설 씨였어요?”“뭐가요?”“주설 씨, 이 민박집이 철거되길 바라고 있네요. 보상금 받아서 해성에 집 사려는 거죠?”“그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왜 우리 집 문제에 왜 당신이 끼어드는데요? 지나치게 참견하는 거 아닌가요?”“보상금 받아서 집 사면, 토니 씨 부모님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가 토니 씨 부모님들이 가진 전부예요.”“집이 무너지면, 부모님을 해성으로 모셔 갈 거예요?”“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잖아요! 본인이 집 못 사니까 우리도 못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질투하는 거죠? 솔직히?”녹음은 거기서 끝났다. 유진은 녹음이 끝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충격에 빠진 주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누가 이 집을 철거시키려 했는지, 누가 보상금을 노렸는지, 누가 우리를 여기서 쫓아내려 했는지 이제 다들 알겠죠?”모든
윤석경은 손에 청경채를 들고 뛰어나오며 소리쳤다.“박민란 씨! 또 무슨 일이죠?”박민란은 서인과 임유진을 발견하자 더욱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당신들 가족 전부 나오라고 해요! 안토니도 불러요! 오늘은 꼭 이 비열한 배신자를 색출해야겠어요!”그 말에 윤석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예요?”곧 가족들이 모두 1층 거실에 모였다. 그리고 박민란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자, 직접 보세요!”유진의 시선이 사진에 닿자마자 눈이 커졌다. 사진 속에는 서인과 유진이 있었다. 일요일, 호텔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오석준이 서인에게 차 한 상자를 건네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이에 박민란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자, 똑똑히 보세요! 다들 잘 보라고요!”본래도 목소리가 컸던 그녀는, 화까지 난 상태라 더욱 격렬하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다 입을 열 때마다 침까지 튀었다. “이 두 사람이 호텔 측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당신네 집을 팔아넘겼어요!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에요?”토니 가족은 사진을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토니도 호텔에서 공사 담당자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기에, 사진 속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유진은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고, 바로 박민란을 향해 따져 물었다.“이 사진 어디서 난 거죠? 누가 보낸 거예요?”박민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당신이랑 상관없어요! 아무튼 당신들 얼른 떠나요!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요!”토니 가족들은 사진을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고, 유진은 단호하게 설명했다.“사장님이 친구를 통해 호텔 공사 담당자를 만났고, 그 사람이 여기를 철거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그날 저녁에 그 사람과 식사한 것도 그 자리에서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저 가방 안에는 차가 들어 있어요.”“지금도 차 안에 있으니까 가져와서 보여드릴게요!”토니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임유진은 주변을 살피며 혹시라도 쥐구멍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안주설은 창가에 기대어 웃으며 말했다.“쥐구멍이 없어도 쥐는 나타날 거예요. 쥐는 정말 어디든 들어올 수 있거든요. 창문을 통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그러자 유진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전에 내가 살던 원룸에도 한 번 쥐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주설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강성에서 월세로 살고 있나 봐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그렇죠!”주설은 조심스레 떠보듯 물었다.“그러면 나중에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집을 살 테니까 더 이상 월세 살 일은 없겠네요? 사장님은 꽤 돈이 많아 보이던데요.”유진은 한숨을 쉬었다.“사장님이요? 무슨 돈이 많아요? 차 한 대 그나마 좀 값나가는 거지, 그거 팔아도 강성에서 집 사긴 어림도 없어요. 강성 집값 엄청 비싸요.”주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전 집 없이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예요. 자기 집이 있어야 마음 편하잖아요.”“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유진은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물었다.“두 사람은 언제 결혼할 거예요?”그러자 주설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연말쯤이요. 우리 둘 다 직장도 안정적이고, 하반기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고 해요.”“그럼 집은 샀어요?”유진은 궁금한 눈빛으로 묻자 주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지금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좋겠네요! 해성 집값도 강성이랑 비슷하게 비싸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나랑 사장님은 언제쯤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으려나?”유진이 부러워하는 듯한 말투를 쓰자, 주설의 얼굴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스쳤다.“열심히 일하면 언젠간 생길 거예요!”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툴툴거렸다.“월급 모아서 집 사려면 늙어야 가능할걸요? 하늘에서 갑자기 돈 보따리라도 떨어지면 좋겠네요!”주설은 그녀의 말을 듣고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졌고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유진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안토니의 부모님은 점심을 준비하러 갔고, 안주설은 안토니를 방으로 끌고 가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임유진은 서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당에 나서자, 유진이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내 생각엔, 토니 가족 중에 뭔가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서인은 눈을 살짝 들며 유진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유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 토니가 우리한테 언제 돌아가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사장님이 바로 강성으로 간다고 했죠.”그러나 돌아가는 과정에 산길에 교통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지체되었고 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이 되어 떠나지 못했다.“하지만 토니 가족은 우리가 이미 떠난 줄 알았겠죠.”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우리가 떠난 줄 알고 철거팀이 몰래 들이닥친 거라는 거군.”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미심쩍잖아요.”서인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토니일 리는 없어.”며칠간 함께 지내며 그를 지켜본 결과, 토니는 형과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올곧은 성격이었다.무엇보다 부모님께 극진한 효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도와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배신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유진은 눈을 반짝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죠?”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야 할 것 같아.”지금 상황으로 보면, 철거팀은 무슨 짓이든 할 가능성이 컸다. 만약 토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린 거라면, 오늘 밤 서인과 유진이 없는 틈을 타 다시 올지도 모른다.그러자 유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난 2층에 올라가서 전에 묵었던 방에 아직도 쥐가 있는지 봐야겠어요.”서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고, 유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2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유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임구택이었다. 유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
안토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서인 형! 호텔 철거팀이 또 왔어요! 이번엔 포크레인까지 끌고 와서 우리 집을 당장 부수겠다고 해요!][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분명 철거하지 않기로 합의한 거 아니었어요? 우린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한 적 없고, 동의한 적도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거죠?]서인의 얼굴이 굳어졌고, 눈빛은 차갑게 변했다.“지금 바로 갈 테니까 철거 인부들을 최대한 막아봐. 하지만 네 안전이 최우선이야. 가족들도 꼭 보호해야 해!”[네!]토니는 급히 대답했다.[일단 어떻게든 붙잡아 볼게요!]“반드시 조심해!”전화를 끊고 나서야 임유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서인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유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확실히 협의 끝난 거 아니었어요? 혹시 아래 직원들이 전달을 못 받은 거 아닐까요?”서인은 차 시동을 걸면서 오석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러나 신호가 길게 가더니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이에 곧바로 이한우에게 전화하자, 한우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바로 형님한테 전화해 볼게. 안 받으면 직접 찾아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서인은 급히 차를 몰아 토니의 집으로 향했다. 차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포크레인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고, 토니의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토니와 다른 두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윤석경은 철거 인부들에게 울며 애원했지만, 한 명이 그녀를 밀쳐버렸고, 이내 윤석경은 중심을 잃고 벽에 부딪칠 뻔했다.그 순간, 서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토니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단숨에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막 아버지를 부축하려던 순간, 유진이 소리쳤다.“조심해요!”서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유진은 한눈에 서인의 잠든 모습을 훑어보았다. 거칠고 자유분방한 그의 잠든 모습조차도 심장을 뛰게 했다. 정말 사랑에 빠지면 상대가 제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유진은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신의 최고 미남을 바라보며 말했다.“사장님, 나 이야기 듣고 싶어요!”서인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유진을 곁눈질하며 말했다.“내 229명의 여자친구 이야기라도 들려줄까?”그 말에 유진은 눈을 부릅떴다.“말할 용기가 있으면, 난 들을 용기도 있어요!”“좋아.”서인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으며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첫 번째 여자는 나랑.”그러자 유진은 휙 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머리까지 덮어버렸다. 서인은 마치 타조처럼 몸을 숨기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서인은 손을 들어 조용히 불을 껐다.다음 날, 서인은 유진과 함께 흥성 주변의 명소를 둘러보았다. 유진은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월요일전과 같은 찻집에서 서인은 한우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미리 10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서인은 유진에게 말차 케이크를 하나 주문해 주었고, 그녀는 속으로 조금 설렜다.‘지난번에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구나.’정확히 10시가 되자, 한우와 그가 부른 사람이 도착했다. 한우는 두 사람에게 소개를 건넸다.호텔 프로젝트의 공사 책임자는 오석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머리 위가 약간 벗겨졌고, 몸집이 풍채가 있었다. 늘어지는 듯한 눈꺼풀 사이로 날카롭고 계산적인 눈빛이 스쳤다.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한우가 오늘 만남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했고, 서인도 안토니 가족의 상황을 차분히 이야기했다.한우는 이야기를 들은 뒤, 바로 전화를 걸어 토니 가족의 집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그 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원래 안토니 씨 댁은 철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어요.”“하지만 서인 사장님이 직접 나를 찾아왔
유진은 맑은 눈으로 서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애잔한 눈빛으로 변하며 말했다.“내가 멍청하고, 잘 몰라서 이렇게 남아서 당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배우려는 거잖아요. 내가 함부로 아무거나 따거나 건드리지 않을게요.”“약속할게요, 그래도 안 될까요?”서인은 유진의 애처로운 표정을 보며 결국 마음이 약해졌다.“그럼 네 일은 어떻게 할 건데?”“휴가 내야죠. 마침 프로젝트 하나 끝낸 참인데, 여진구 선배가 며칠 쉬라고 했어요.”유진은 덧붙였다.“걱정 안 해도 돼요. 저 그런 무책임한 사람 아니에요. 일에 지장 주지 않을 거예요.”서인은 잠시 고민했는데, 유진을 혼자 차 타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그러면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되, 혼자 돌아다니지는 마.”이에 유진은 환하게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하루 24시간 내내 사장님이랑 붙어 있고 싶을 정도니까요.”서인은 할 말을 잃었고, 순간 유진이 일부러 자신을 흔드는 게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그러나 유진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이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마당에서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진은 의자에 편하게 몸을 묻고 앉아 서인에게 물었다.“이한우 씨한테서 연락이 왔어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호텔 공사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어. 월요일에 만나서 이야기할 거야.”유진은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그 사람이 안토니 씨 집을 허물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문제는 해결된 거네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아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길 바랄 뿐이지.”유진은 미소를 지었다.“동의하지 않을 거면 굳이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서인은 문득 유진에게 물었다.“회사에서는 무슨 일 해?”그러자 유진의 눈빛이 반짝였다.“드디어 내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네요?”서인은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어색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했다.“그
그 말에 서인은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는다는 듯이 옷장을 열어 옷을 꺼냈다. 그러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 있어.”임유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내가 훔쳐볼 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경솔하지 않아요. 보면 당당하게 보죠!”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밀어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서인은 유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유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서인은 서둘러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이내 서인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기며 유진을 불렀다.“임유진!”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수영장 주변은 조용했고, 희미한 조명 아래로 물결만이 은은하게 일렁이고 있었다.검은색 철제 울타리 너머로 다른 객실의 정원이 보였지만, 어디에도 유진은 없었다. 서인의 목소리가 낮아졌고,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임유진!”그때, 화악 물살을 가르며, 유진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촉촉한 얼굴에는 물방울이 반짝였고,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맑게 빛났다. 유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서인을 바라보았다.잔물결이 유진의 주변에서 별빛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마치 물에서 갓 피어난 연꽃처럼 수면 위에 떠 있었다.서인은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고, 유진은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수영하며 천천히 다가왔다.그리곤 눈앞에서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왜 그래요? 놀랐어요?”서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유진은 웃으며 수영장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나오자마자 재채기했다.그러자 서인은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가 수건을 꺼내고는, 곧장 유진에게 다가가 수건을 둘러주며 나지막이 말했다.“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유진, 너 혹시 뇌를 물에 빠뜨린 거 아니야?”유진은 수건을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옷을 안 입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안주설과 안토니를 힐끗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장님, 힘들지 않아요? 내려줄까요?”서인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두 시간은 거뜬해.”그 말에 유진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몸을 더욱 기대고, 탄탄한 팔뚝을 베개 삼아 살짝 눈을 감았다.따뜻한 햇살과 산속의 상쾌한 공기, 그리고 서인이 주는 안정감.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유진의 몸은 가볍고 부드러웠고, 땀방울이 살짝 맺힌 피부는 촉촉하고 서늘했다. 그리고 은은한 향이 서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서인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걸음을 뗐다.그러나 그때, 유진이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사장님,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갑작스러운 말에 서인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유진의 숨결이 서인의 목을 스쳤고,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깊었다.그러나 서인은 단호하게 말했다.“안 좋아해.”유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녀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도 좋아요. 사장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안 좋아하면, 난 그걸로 괜찮아요.”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인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고,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었다.“그만 말해.”유진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인은 다시 묵묵히 걸었다.마침내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진과 서인은 산 정상의 너른 바위 위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토니와 주설도 간신히 정상에 도착했다. 둘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반면, 서인과 유진은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토니는 헉헉대며 엄지를 치켜세웠다.“서인 형, 진짜 대단해요!”주설은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산할 때는 토니와 주설이 더욱 느리게 걸었고, 결국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토니의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