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소동은 항상 가볍고 여유로워 보였고 방송국에서 종종 안단희와 함께 앉아 수다를 떨며 티타임을 즐겼다. 진연에게 들은 바로는, 소동이 집에서도 매우 편안해 보였으며, 매일 밤 자신과 드라마를 봤다는 것이었다.그렇다면 소동의 놀라운 디자인 초안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소시연 자신은 매일 디자인 초안을 생각하느라 거의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낮에는 소유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이런 자리에서조차 디자인 초안에 대해 생각했다.‘혹시 소동은 정말 디자인 천재일까?’‘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 왜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까?’시연은 소동을 보며 고민에 빠져 깊게 미간을 찌푸렸지만, 시연은 소동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곧 자신의 디자인에 몰두했다. 주변의 소란과 환호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척했다.……임구택은 소희가 저녁에 소씨 집안의 축하연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고 돌핀 호텔로 소희와 함께 갔다.호텔에 도착하자, 소희는 뒤돌아보며 말했다. “나 혼자 올라갈게. 거기 가서 잠깐 시연에게 인사하고 바로 나올 거야.”하지만 구택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이미 우리 관계를 알고 있는데, 소씨 집안이 안다고 뭐가 달라져?”소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임씨 집안 사람들이 알게 된 후부터 이미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소씨 집안사람들까지 알게 되는 건 전혀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소정인 만이 아니라 마치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었다.구택은 소희의 고민스러운 모습을 보고 급히 말했다. “난 네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갈게.”그러면서 구택은 차에서 초대장을 꺼내자 소희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소씨 집안에서도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어?”“응, 네 사촌 소설아가 준 거야.” 구택이 소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당당하게 갈 수 있겠지?”소희는 그의 의도를 잘 알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들어가면 네가 따라와.”“
“소희 언니!”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축하해, 소시연. 인터넷에서 너를 응원하는 많은 댓글을 봤어.”“내 디자인도 봤어?” 시연은 기대와 긴장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소희는 이번 주에 바빴던 탓에 사과하며 말했다. “아직 못 봤어. 며칠 정도 바쁜 거 해결하면 꼭 제대로 볼게.”“응!” 소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 시선이 어두워졌다. “아쉽게도 나는 계속 소동에게 밀려. 솔직히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 해. 소동이 디자인한 옷이 내 것보다 낫더라고.”시연의 말에 찬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소동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거야?”“나도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게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재능과 능력을 갖추게 됐을까?” 시연이 착잡해져 탄식했다.“디자인은 입는 사람의 스타일, 체형, 피부 등과 잘 어울려야 완벽해져.”“아마 소동이 안단희와 더 잘 맞추고, 그녀의 매력을 찾아서 디자인한 옷이 더 놀라운 효과를 낸 걸 거야.”“조급해하지 마, 너와 소유가 더 많이 소통하면서 소유의 특징에 맞춰 디자인을 완성하면 돼.” 소희가 천천히 말하자 시연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마치 영감을 얻은 듯 말했다. “알겠어, 열심히 할게.”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으로 걸어갔고, 시연은 소희를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하순희는 자신의 자녀들이 모두 소희를 좋아하니 소희에 대한 인상도 조금 나아져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소희야, 이제 퇴근했니?”“네.”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드라마 촬영이 힘들지? 생활이나 일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나한테 말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든, 나는 널 우리 가족처럼 생각하니까.” 하순희가 웃으며 말하자 소희 역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숙모!”시연은 하순희의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마음이 넓어졌어? 나 정말 적응이 안 돼!”“내가 예전에 마음이 안 넓었어?” 하순희가 웃으며 묻자 시연은 반사적
하순희는 두 사람을 데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두 분은 손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소희를 본 소해덕은 다소 놀랐지만 이내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도 왔구나?”하순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소희도 우리 소씨 집안 사람이니까 당연히 와야죠!”주변의 몇몇 손님들이 소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분이 소정인 씨의 딸이시죠? TV에서도 봤어요, 참 멋지더라고요!”“손녀들이 모두 훌륭하네요!”“모두 재능이 있고 예쁘기까지 하군요!”“소시연도 나중에 소동 씨 못지않을 거예요!”하순희는 다른 사람들이 시연을 칭찬하면서도 소동을 잊지 않고 언급하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때 한 손님이 소희를 보며 물었다. “이분도 손녀세요? 어느 집안 출신인지, 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우리 집안 사람이죠!” 진연이 갑자기 다가와 웃으며 말하자 소동은 손을 꽉 쥐고 놀란 눈으로 진연을 바라보았다. 소희도 진연을 향해 다소 놀란 눈길을 보냈고 하순희도 진연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오, 오늘 드디어 모두 앞에서 자기 딸을 인정하려고 하는 거야?”하지만 진연은 말을 돌려 그 손님에게 계속 말했다. “저랑 소정인 씨가 함께 입양한 딸이에요.”“고향은 운성 산골이고,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가 불쌍히 여겨 대학까지 보냈어요.”“얘가 강성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우리는 그냥 양딸로 삼았죠!”소동은 포커페이스를 지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입가에는 자제하지 못한 미소가 번졌다.하순희는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하며 조롱했다. “어쩌다 높게 평가했더니만!”소희는 차갑고 평온한 눈빛을 유지하며 표정에 변화가 없었고 다른 손님들은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두 내외가 정말 너무 착하셔서, 불우한 학생을 대학까지 보내주시고 딸로 입양하셨군요!”“자신이 키운 딸도 이렇게 훌륭하니, 진정한 선행은 복을 가져오는 법이에요!”“대단하네요!”한 여자 손님이 소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소희가 소씨 집안에 온 이후로부터 소동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큰 짐을 오늘에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홀가분해진 소동은 긴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활짝 웃었다.한편, 조금 조용한 곳에서, 소시연은 분노를 표출했다. “큰엄마가 너무 심했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소희를 양딸이라고 말했다니!”“앞으로 소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하순희는 동정의 눈길로 소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늘 편파적이지만, 진연의 그 마음은 정말 너무 과해.”시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리고 제일 어이없는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하신 거예요!”하순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이미 나간 말을 어떻게 다시 주워 담겠어?”하순희는 소씨 집안 어른들이 소희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 임씨 집안의 지원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소희가 임씨 집안을 뒤에 업은 것이 확실한 지금 누구도 몰랐다.소문에 의하면 소소해덕이 임씨 집안의 입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했다.하지만 임씨 집안이 소씨 집안에 대해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기에, 이 뒷배경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이와 반면에 소동은 확실히 소씨 가문의 명예를 빛냈기 때문에 가족들은 소동이 소씨 집안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저 소희만 불쌍해진 꼴이 된 것이었다.하순희는 겉은 차갑지만 마음씨는 따듯한 여인이었고, 진연이 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소희에게 연민을 느낀 하순희는 머리를 돌려 소희에게 말했다.“진연이 널 딸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내 딸로 삼을게.”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소희는 이미 두 해 전에 진연의 결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상황에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진연이 자신을 딸로 부를 때 놀랐다. 소희는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소씨 집안으로 돌아갈 생각을 포기했다.시연은 하순희에게 의미심장하
임구택이 오늘 입은 것은 짙은 남색 셔츠에 검은색과 갈색 체크무늬 넥타이였는데, 그것은 아침에 소희가 그에게 골라준 것이었다.구택의 태도는 본래 무심하고 냉담했다.이러한 진중하고 어두운 복장은 그의 고상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켜, 마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듯한 존재감을 드러냈다.구택이 도착하자마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몰려와 인맥을 쌓으려고 애썼다.소희는 마치 팬들에 둘러싸인 연예인 같은 구택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소시연도 홀린 듯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 정말 멋있네요. 뭔가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주인공과 똑같아.”소희는 시연을 바라보며 더 밝게 웃자 시연은 소희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말했다.“웃지 마. 예쁘고 잘생긴 걸 좋아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니까.”“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저런 권력과 돈, 외모를 갖춘 남자가 도대체 어떤 여자와 결혼할지 너무 궁금해.”시연이 말을 마치고,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야, 구택 씨랑 친해? 집에서 자주 보나? 혹시 짝사랑한 적 있어?”“응 있어!” 소희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고 잘생긴 걸 좋아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니까.”시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보다 더 위험하네, 그런 남자는 가까이할수록 위험하니까!”소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여자 친구 있어?” 시연이 궁금해하며 묻자 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소희는 구택의 아내였으니, 여자친구는 아니었다.시연은 혼잣말로 말했다. “여자친구가 없다 해도 저런 남자 주변에 널린 게 여자겠지. 따지도 못할 별 쳐다보지도 말아야지.”“어차피 그런 남자 주변에는 여자가 많겠죠. 꿈꾸지 말아야겠어요.”……한편, 장연경은 구택을 보고 소소해덕 앞에서 일부러 물었다. “소설아, 임구택 사장님이 네가 초대장 보내서 온거지?”설아는 키가 크고 잘생긴 구택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해덕이 구택에게 초대장을 보내라고 했을 때, 그는
“아마도 소희일 거야.”소정인의 추측에 진연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소희 얼굴이 그렇게 대단히 예뻐?”“일단 그건 접어두고, 임구택 사장님이 오셨으니 인사를 해야 해. 당신도 잠시 후에 소동이 데리고 같이 와.”소정인은 진지하게 당부한 후 말을 더 붙였다. “어쨌든 오늘은 소동의 축하연이니, 임구택 사장님이 오셨으니 소동이가 직접 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해.”진연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소정인이 떠난 후, 진연은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소동을 불러다가 조용히 물었다. “임구택 사장님이 오셨어. 봤어?”소동은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도 꼼짝 못 하시는데, 어떻게 보지 않았겠어요?”진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소동아, 넌 남자친구 없지?”“없어요, 없어!” 소동은 즉시 부인했다.“그럼 됐어!” 진연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사실 우리 소씨 집안과 임씨 집안은 예전부터 교류가 있었어.”“비록 지금은 임씨 집안에 미치지 못하지만, 네가 이렇게 뛰어나니 연합이 불가능하지 않아.”소동은 진연의 말에 놀랐다. “엄마, 내가 구택 씨와 결혼할 수 있다는 거예요?”소동은 구택 같은 남자가 자신에게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예전에는 나도 상상조차 못 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넌 유명하고, 재능도 있으며, 예쁘기까지 해. 진짜로 부잣집 딸이야!”“구택이 네 축하연에 왔다는 건, 아마 TV에서 널 보고 매우 감탄했기 때문일 거야!” 진연은 점점 흥분하며 말했다. “그러니 이젠 가능하다고 생각해!”소동의 얼굴에 수줍은 붉은 기가 돌았다. “소설아 언니가 나보다 더 뛰어난데, 구택 씨 곁에서 몇 년을 보냈어도 여전히 비서일 뿐이잖아요. 그런데 구택 씨가 저를 좋아할 리가 있나요?”“설아처럼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많지 않아. 남자들은 유능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를 좋아해. 이 점에서 넌 설아보다 우위에 있고!” 진연은 이어서 말했다. “소동아, 엄마가 너에게 남자친구를 사귀지
임구택은 고개를 돌려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마치 소동이 들고 있는 차를 보지 못한 듯, 받지도 않았다. 소동은 여전히 차를 건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물러서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소동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장연경은 참지 못하고 킬킬 웃었다. 작은 소리였지만 눈에 띄었고, 진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흘깃 쳐다보았고 소정인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임구택 사장님, 차 드세요!”구택은 고개를 들어 소정인을 보았지만, 소동을 아예 무시한 채 일부러 물었다. “소희는 어디에 있나요?”소동은 얼굴색이 바뀌며, 꽉 깨문 입술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택에게 무시당하는 것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어쩔 수 없이 차를 구택 앞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소정인은 바삐 말했다. “소희는 방금 전에 여기 있었는데, 아마 소시연과 함께 놀러 갔을 거예요. 임 구택 사장님이 찾으시면 제가 지금 불러오겠습니다.”진연은 소정인에게 눈짓을 보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희는 이런 장소에 익숙하지 않아요. 불러오지 마세요.”구택은 거만한 자세로 앉아, 무심한 눈으로 진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희가 왜 이런 장소에 익숙하지 않다는 거죠?”진연은 구택의 의도를 몰라, 당황하며 말했다. “소희는 시연과 함께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옆에 앉은 전자 산업 관련 회사의 이사는 소씨 집안과 임씨 집안이 친하다고 생각하고, 소씨 집안에 아첨하려고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임구택 사장님이 말씀하신 건 소정인씨와 진연 부부가 후원하는 그 입양된 여자인가요?”“제 생각에는 유전자가 지능과 발전을 결정한다고, 그 여자는 소동 씨에 비할 바가 못 돼요!”구택은 고개를 돌려 윤상현을 쳐다보며, 얇은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오? 그럼 사장님은 소희가 소동에 비해 어디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나요?”상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 생각에는 어느 면에서도 못 미칩니다. 소동 씨는 강성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자신의 작업실을 차렸어요
소희의 심장은 두근거리며, 자신이 임구택의 아내가 된다면 강성에서도 상류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설레었다.구택은 담배를 입에 물고 다시 소정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조소가 감돌았다. “소희는 당신이 입양한 딸인가요?”소정인의 등에 한기가 돋았지만, 말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진연이 말했다. “네, 소희는 우리가 후원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에요.”“강성대학에 입학한 후, 우리가 소희를 입양했죠. 하지만 소희는 별로 열심히 하지 않고, 평소에는 온라인 게임만 해요.”소정인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진연을 끌어당겨 말을 줄이라고 시그널을 보냈다.이에 구택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물었다. “사모님은 왜 소희를 그렇게 싫어하나요?”진연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좀 더 열심히 하기를 바랄 뿐이죠. 저와 소정인이 소희를 위해 애쓴 걸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요.”“애쓴 거라고요? 당신들이 소희에게 어떤 정성을 쏟았는지 말해보세요. 소희의 대학 등록금은 당신들이 낸 게 아니잖아요.”“소희가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고,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애쓴 거’라고 말할 수 있나요?”“당신들은 어떻게 소희한테 정성을 쏟았다는 건가요?”구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어마다 찬기가 담겨 있었는데, 마치 시베리아 한파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진연은 임구택이 소희를 위해 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말했다. “우리는 평소에 소희를 좀 소홀히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와 함께 살지 않아서 소희와 친하지 않았거든요.”주변의 손님들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소정인 부부가 소희의 대학 등록금을 대줬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말이 바뀌었다.“소희는 당신들 곁에서 자라지 않았죠. 친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희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소희에게 아무런 은혜를 베푼 적이 없으니까.”구택의 얼굴은 차가워졌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