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구택은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이 철렁했고 점차 커지는 공포감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순간, 구택은 2년 전, 소희가 떠난 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날 구택은 완전히 텅 빈 것 같았고, 끝없는 슬픔이 구택을 집어삼켰고 그 이후로는 숨 쉬는 것조차 아파왔다.‘소희가 또 떠났나?’‘다시 나를 떠난 건가?’구택은 온몸이 얼어붙고, 잠시 후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예상대로 전화는 꺼져 있었다.구택은 거실로 돌아와 어둠 속에 조용히 소파에 앉았고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그를 완전히 삼켜버렸다.이번에는 몇 년 동안 기다려야 할까? 왜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여전히 이런 것일까?바늘이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에 점차 원망이 생기고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되었다.잠시 후, 구택은 다시 휴대폰을 꺼내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의 출국 기록을 조사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명우는 잠시 놀랐지만, 곧 알겠다고 대답했다.어둠 속에서 구택은 조용히 기다렸다. 일분일초가 1시간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고 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라 구택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였다.짧은 몇 분이었지만, 구택은 또 2년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고 소희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나갔다.그 시간 동안 소희와의 첫 만남, 데이트,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소희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빼내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소희가 없이 어떻게 살아갈 가 있겠는가?휴대폰이 진동하면서 빛이 나자 구택은 실눈을 뜨고 떨리는 마음으로 잠금 해제를 하고 전화를 받았다.“소희 어디 있어요?”“사장님, 사모님은 출국하지 않고 운성에 가셨습니다.” 명우가 이어서 말했다. “아무래도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구택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가, 느리게 물었다. “운성에?”“네.”어둠속에서 한 줄기 비춘 구택은 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비행기 준비해, 지금 운성에 갈 거니까.”“알겠
오늘 강재석이 그렇게 혼수상태로 침대에 누워 계신 걸 보고, 소희는 재석이 이미 나이를 많이 드셨고, 심지어 병에 걸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할아버지, 제발 깨어나 주세요, 부탁드려요!” 소희는 재석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저, 구택 씨랑 다시 만나고 있으니까 빨리 깨어나서 저를 꾸짖어 주세요!”소희는 재석 곁에 엎드렸고 처음으로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꼈다.문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고, 오석이 죽 한 그릇을 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좀 드세요. 오후부터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잖아요.”“밥 먹고 싶지 않아요. 목구멍에 들어가지도 않을 거 같아요.” 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아가씨, 어르신은 괜찮을 거예요. 아가씨와 임유민 씨를 보지 못한 채로 그냥 가시지 않을 거예요.” 오석의 목소리에서 연륜이 묻어났고 잠겨 있었고 마치 자신에게 되뇌이듯 반복해서 말했다. “어르신은 괜찮으실 거야.”소희는 오석의 목소리를 듣자 코가 시큰해졌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장의건 의사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오석은 뿌옇게 흐린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부엌에서 약을 달이고 계세요.”소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 할아버지도 좀 쉬고 계세요. 제가 할아버지 곁을 지킬 테니까 깨어나시면 알려드릴게요.”하지만 오석은 천천히 벽에 기대어 앉았다. “저도 잠들 수가 없네요. 여기 아가씨와 함께 있을게요.”시계는 째깍째깍하며 속절없이 흘러가자 오석은 점점 안절부절하며 말했다.“의사 선생님께서 약을 다 달였는지 확인하러 가볼게요.”소희는 재석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고, 그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자 안심했다. “가보세요.”오석은 떨리는 몸을 일으켜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는데 정문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오석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재석이 아프다는 소식을 퍼뜨리지 않았고, 회사 사람들은
오석은 주방으로 돌아가자 마침 장의건 의사 선생님이 준비한 약을 그릇에 따르고 있었고 오석은 자신이 침실로 가져가겠다고 넘겨받았다. “제가 들게요.”“약이 식으면 어르신에게 먹이세요. 반 시간 후에 다시 주사를 놓겠습니다”오석에게 넘겨주며 의건이 말했다.“알겠어요.”오석은 약을 들고 나와 정원을 건너 강재석의 방으로 돌아왔고 소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약 다 끓였나요?”“네, 준비됐어요.”오석은 소희의 질문에 대답하며 약을 건넸다.소희는 약의 온도를 확인하고 한 숟가락씩 재석에게 먹였다. 약을 거의 다 먹일 무렵, 오석이 망설이며 말했다. “아가씨, 임구택씨가 오셨어요.”소희는 놀라서 뒤돌아보며 물었다.“구택 씨가 왔나요? 어디에 있죠?”“뒷마당 복도에 있어요.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가씨한테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오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희의 긴 눈꺼풀은 파르르 떨렸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몇 숟가락을 재석에게 먹였다.원래 우정숙의 말을 다 듣고 구택한테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재석이 쓰러지는 바람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지금 소희의 유일한 바람은 재석이 하루빨리 깨어나는 것이지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소희는 그릇을 내려놓았는데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해져서 말했다.“방으로 안내해서 거기서 기다리게 해주세요.”“제가 말했는데 방으로 안 가고 어르신이 깨어나실 때까지 아가씨를 기다리겠다고 하네요.”소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창문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그럼 내버려두세요.”반 시간 후, 의건이 방으로 돌아와 재석에게 다시 주사를 놓았다.그리고 또다시 기다림이 이어졌다.소희는 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고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끔 재석한테 예전에 구택과 있었던 일이나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긴 밤을 지샜다.그리고 드디어 새벽녘이 되어서야 재석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천천히 눈을 떴다.재석이 눈을 뜨자마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희를 보았고 다정
“알겠어, 말해줄게!” 강재석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자 장의건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새벽이니 마셔야 할 약을 다시 달여야겠네요. 어르신이 기운이 있으시다면 소희 씨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시고 피곤하시면 주무시죠.”“깨어났는데 그 쓴 약을 계속 마셔야 하나?”재석이 약을 마셔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 말 좀 들으세요!” 소희가 재석을 노려보자 재석은 한숨을 내쉬며 무력하게 말했다. “그럼 약에 설탕 좀 넣어.”의건은 당연히 그의 의견을 수렴하였다.“알겠어요, 설탕을 넣어드릴게요.”말을 마친 후 의건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고 재석은 컨디션이 좋았기에, 한참 동안 소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새벽녘, 오석이 소희에게 말했다.“소희 아가씨, 임구택 씨가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이 말을 들은 소희는 가슴이 조였다. 재석이 구택에 대해 듣고 감정이 격해져 병세가 악화될까 두려워하며, 재석에게 급히 설명했다.“저랑 함께 온 게 아니에요. 본인이 스스로 온 거예요.”재석과 오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직도 나를 속이는 거야?”“할아버지?” 소희가 입술을 깨물며 되묻자 재석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없는 2년 동안, 구택이 매년 설날에 찾아와 같이 보냈다. 처음에는 나도 구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지내다 보니 꽤 괜찮은 놈이더구나. 내가 탐탁치 않은 걸 알면서도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더라. 그러다 너와 계속 교제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그러자 소희의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그러니까 구택이…….”“맞아!” 오석이 웃으며 말했다. “매년 30일이면 구택 씨가 방문하여 재석 어르신과 함께 식사도 하고, 체스도 두시고 등산, 낚시를 하며 보냈습니다. 어르신과 관계가 아주 좋았어요!”소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설날에 제가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할 때 구택을 본 적이 없는데요?”“내가 보여주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볼 수 있겠어?”
임구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소희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물었다.“할아버지는 괜찮아?” 소희는 구택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의건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의식을 되찾으면 괜찮을거래. 지금은 정신도 맑으신 상태야.”“그래 다행이다!” 구택은 소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곁에 있고 싶었지만, 네가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봐 들어가지 못했어.”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어.”그리고는 구택의 셔츠를 꽉 쥐고 목 멘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소희의 물음에 구택이 천천히 말했다. “너를 그렇게 다치게 해놓고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넌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잖아.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난 네가 정말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고 나를 내가 너를 위해 한 일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다시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어.”“그래도 넌 더 일찍 말했어야 했어!” 소희는 구택의 품 안에서 마음이 아픈 듯 말하자 구택은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불편한 일이 있는 거야? 다 말해봐. 내가 들어 줄게.”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제 괜찮아.”“혹시 아직도 아이를 갖고 싶어? 우리 둘 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되면 아이를 갖는 게 어때?”구택은 소희를 꼭 안았다. “어쩌면 나는 너보다 더 아이를 갖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요요를 볼 때마다 장시원이 얼마나 부러운 지. 수없이 생각했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너를 더 닮을까 아니면 나를 더 닮을까.”그러자 소희가 조용히 대답했다.“그래.”구택이 소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진석이 너에게 잘해주는 게 좀 신경 쓰여. 하지만 난 널 믿어.”소희가 말했다. “진석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진석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또한 내가
“좀 있다 데려다줄게, 지금은 할아버지를 뵙고 오자.” 임구택이 말했다.“할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실 수 있어, 날이 밝으면 가자. 일단 같이 쉬러 가.”“그럼 네 방으로 가는 거야?”“내 방에 몇 번이나 와봤잖아?” 소희가 그를 흘끗 보며 말했다. “그런데도 물어?”구택이 웃으며 말했다. “음, 네가 없을 때 난 항상 네 방에서 잤어.”소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고 구택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구택도 순순히 소희를 따라갔다. 그 순간 구택의 눈과 마음에는 오직 소희만이 가득했다.방으로 돌아온 소희는 먼저 침대 옆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맨 아래 서랍을 열자, 두 개의 큰 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모두 소희 이름으로 된 집문서였다.하나는 청원의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별장이었다.소희는 눈썹을 치켜 세우며 구택을 바라보았다. “왜 이걸 나에게 주는 거야?”구택은 다가와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다 네 것이야!”소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구택이 소희가 고의로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때 소희에게 무엇을 얻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소희가 집이라고 말했다.구택은 그것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소희는 집문서를 다시 서랍에 넣으며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약혼 선물로 하자!”구택의 눈빛이 깊어졌다. “세뱃돈이 약혼 선물이 되다니, 할아버지가 날 꾸짖지 않을까?”소희는 미소를 감추며 옷장에서 잠옷을 꺼냈다. “잠깐 앉아 있어, 나 샤워하고 올게.”“나도 샤워하고 싶어.” 구택이 따라갔다.“여기 네 잠옷은 없어,” 소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택은 옷장에서 남자 잠옷을 꺼냈다.소희는 한숨을 내쉬며 구택을 쳐다보았다. “내 방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겨놓은 거야?”“많아, 천천히 찾아봐.” 구택은 씩 웃으며 그녀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다.오늘 하루 감정 기복이 심했던 소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택은
는 구택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 “힘들면 옆방에서 자.”“싫어!” 구택은 단칼에 거부했다.“그럼 방해하지 마, 난 잘 거야.” 소희는 오늘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이제야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는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그럼 자, 나는 이렇게 안고 있을 테니까.” 구택이 낮게 말했다.“응.” 소희가 희미하게 대답했다.그녀가 잠이 들 무렵, 구택이 다시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소희야, 다시 한번 말해줘, 날 사랑한다고.”소희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사랑해.”“얼마나 사랑해?”“많이……, 사랑해.”“다시 말해봐.”“임구택, 입 좀 다물어, 아니면 당장 나가!” 소희는 구택을 밀어내고 이불을 쥐고 침대에서 일어나 옆방에서 자려고 하자 구택이 팔을 뻗어 소희를 다시 끌어당겼다. “알았어, 알았어, 잘게, 더 이상 널 괴롭히지 않을게.”소희는 불편한 마음으로 누웠지만, 다시 구택에게 안기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소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높이 떠 있었다. 소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침대에는 혼자여서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워 났다. 어젯밤이 꿈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휴대폰을 확인하자 구택이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조금 더 자, 난 할아버지 모시러 갈게.]문자를 확인한 소희는 가볍게 웃고는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집을 나섰다. 그때 복도에서 설희가 짖었다.“왈왈!”소희는 작은 가방에서 몇 개의 해바라기씨를 꺼내 설희에게 던졌다. “할아버지 좀 보고 올게, 그러고 나서 놀자.”설희는 해바라기 씨를 물고 껍질을 벗겨내며 좋다고 날뛰었다.이윽고 소희는 앞마당으로 걸어갔는데 그때 할아버지 방문 앞에 서 있는 장의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막 깨셨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의건은 웃으며 말했다.“수고하셨어요!” 소희는 감사했다.“제가 할 일을 한 건데요 뭘.”의건의 얼굴도 전날 밤보다 많이 좋아 보였다.“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가서 건강
소희는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이 아니라 정말 놀랐어요. 아까 장의건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오늘같이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으려고 한다고요.”이 말을 들은 강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괜찮아졌는데 무슨 검사를 더 해? 아픈 것도 없는데 병을 만들어내네.”그러자 구택이 재석을 달래며 말했다. “미리 병원에 알려 두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검사를 할 수 있고, 검사 항목도 한 곳에서 다 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불편하지는 않을 겁니다.”“나는 병원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가 나. 아픈 데도 없는데 없는 병을 만들어내면 안 되지.”재석은 말하면서 의건에게 눈짓을 하자 의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예전에 매달 저희가 직접 찾아와 맥도 짚고 몸 상태도 확인하였었는데, 앞으로는 열흘에 한 번으로 바꾸고 약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요.”소희도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럼 병원에 안 가도 돼요. 하지만 의건 선생님 말씀대로 약은 꼭 드셔야 해요. 오석 집사님을 속이고 몰래 약을 버리는 짓은 절대 안 돼요. 저를 또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재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오석이 나를 잘 챙길 거야.”소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아침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직접 만들어 드릴게요.”소희의 말에 방 안은 고요해졌고 구택은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잖아. 좀 쉬어. 부엌에서 이미 아침을 준비하고 있어.”그러자 재석이 구택을 바라보며 중요한 말을 했다. “우리 소희는 참 좋은 아이야. 하지만 이 점만큼은 네가 좀 이해해줘.”구택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도 요리사가 있습니다. 요리사가 없어도 저도 요리를 할 수 있으니까 소희가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소희는 두 사람이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