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은 주방으로 돌아가자 마침 장의건 의사 선생님이 준비한 약을 그릇에 따르고 있었고 오석은 자신이 침실로 가져가겠다고 넘겨받았다. “제가 들게요.”“약이 식으면 어르신에게 먹이세요. 반 시간 후에 다시 주사를 놓겠습니다”오석에게 넘겨주며 의건이 말했다.“알겠어요.”오석은 약을 들고 나와 정원을 건너 강재석의 방으로 돌아왔고 소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약 다 끓였나요?”“네, 준비됐어요.”오석은 소희의 질문에 대답하며 약을 건넸다.소희는 약의 온도를 확인하고 한 숟가락씩 재석에게 먹였다. 약을 거의 다 먹일 무렵, 오석이 망설이며 말했다. “아가씨, 임구택씨가 오셨어요.”소희는 놀라서 뒤돌아보며 물었다.“구택 씨가 왔나요? 어디에 있죠?”“뒷마당 복도에 있어요.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가씨한테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오석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소희의 긴 눈꺼풀은 파르르 떨렸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몇 숟가락을 재석에게 먹였다.원래 우정숙의 말을 다 듣고 구택한테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재석이 쓰러지는 바람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지금 소희의 유일한 바람은 재석이 하루빨리 깨어나는 것이지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다.소희는 그릇을 내려놓았는데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해져서 말했다.“방으로 안내해서 거기서 기다리게 해주세요.”“제가 말했는데 방으로 안 가고 어르신이 깨어나실 때까지 아가씨를 기다리겠다고 하네요.”소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창문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그럼 내버려두세요.”반 시간 후, 의건이 방으로 돌아와 재석에게 다시 주사를 놓았다.그리고 또다시 기다림이 이어졌다.소희는 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고 그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가끔 재석한테 예전에 구택과 있었던 일이나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긴 밤을 지샜다.그리고 드디어 새벽녘이 되어서야 재석이 손가락을 움직이고 천천히 눈을 떴다.재석이 눈을 뜨자마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희를 보았고 다정
“알겠어, 말해줄게!” 강재석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자 장의건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곧 새벽이니 마셔야 할 약을 다시 달여야겠네요. 어르신이 기운이 있으시다면 소희 씨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시고 피곤하시면 주무시죠.”“깨어났는데 그 쓴 약을 계속 마셔야 하나?”재석이 약을 마셔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 말 좀 들으세요!” 소희가 재석을 노려보자 재석은 한숨을 내쉬며 무력하게 말했다. “그럼 약에 설탕 좀 넣어.”의건은 당연히 그의 의견을 수렴하였다.“알겠어요, 설탕을 넣어드릴게요.”말을 마친 후 의건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고 재석은 컨디션이 좋았기에, 한참 동안 소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새벽녘, 오석이 소희에게 말했다.“소희 아가씨, 임구택 씨가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이 말을 들은 소희는 가슴이 조였다. 재석이 구택에 대해 듣고 감정이 격해져 병세가 악화될까 두려워하며, 재석에게 급히 설명했다.“저랑 함께 온 게 아니에요. 본인이 스스로 온 거예요.”재석과 오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직도 나를 속이는 거야?”“할아버지?” 소희가 입술을 깨물며 되묻자 재석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없는 2년 동안, 구택이 매년 설날에 찾아와 같이 보냈다. 처음에는 나도 구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지내다 보니 꽤 괜찮은 놈이더구나. 내가 탐탁치 않은 걸 알면서도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더라. 그러다 너와 계속 교제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그러자 소희의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그러니까 구택이…….”“맞아!” 오석이 웃으며 말했다. “매년 30일이면 구택 씨가 방문하여 재석 어르신과 함께 식사도 하고, 체스도 두시고 등산, 낚시를 하며 보냈습니다. 어르신과 관계가 아주 좋았어요!”소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설날에 제가 할아버지와 영상 통화할 때 구택을 본 적이 없는데요?”“내가 보여주지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볼 수 있겠어?”
임구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소희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물었다.“할아버지는 괜찮아?” 소희는 구택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의건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의식을 되찾으면 괜찮을거래. 지금은 정신도 맑으신 상태야.”“그래 다행이다!” 구택은 소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곁에 있고 싶었지만, 네가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봐 들어가지 못했어.”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어서 내 마음이 편안해졌어.”그리고는 구택의 셔츠를 꽉 쥐고 목 멘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소희의 물음에 구택이 천천히 말했다. “너를 그렇게 다치게 해놓고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 넌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잖아.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난 네가 정말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고 나를 내가 너를 위해 한 일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닌 진심으로 다시 나를 사랑하기를 바랐어.”“그래도 넌 더 일찍 말했어야 했어!” 소희는 구택의 품 안에서 마음이 아픈 듯 말하자 구택은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불편한 일이 있는 거야? 다 말해봐. 내가 들어 줄게.”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제 괜찮아.”“혹시 아직도 아이를 갖고 싶어? 우리 둘 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되면 아이를 갖는 게 어때?”구택은 소희를 꼭 안았다. “어쩌면 나는 너보다 더 아이를 갖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요요를 볼 때마다 장시원이 얼마나 부러운 지. 수없이 생각했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너를 더 닮을까 아니면 나를 더 닮을까.”그러자 소희가 조용히 대답했다.“그래.”구택이 소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진석이 너에게 잘해주는 게 좀 신경 쓰여. 하지만 난 널 믿어.”소희가 말했다. “진석이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진석은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또한 내가
“좀 있다 데려다줄게, 지금은 할아버지를 뵙고 오자.” 임구택이 말했다.“할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실 수 있어, 날이 밝으면 가자. 일단 같이 쉬러 가.”“그럼 네 방으로 가는 거야?”“내 방에 몇 번이나 와봤잖아?” 소희가 그를 흘끗 보며 말했다. “그런데도 물어?”구택이 웃으며 말했다. “음, 네가 없을 때 난 항상 네 방에서 잤어.”소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고 구택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구택도 순순히 소희를 따라갔다. 그 순간 구택의 눈과 마음에는 오직 소희만이 가득했다.방으로 돌아온 소희는 먼저 침대 옆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맨 아래 서랍을 열자, 두 개의 큰 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모두 소희 이름으로 된 집문서였다.하나는 청원의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별장이었다.소희는 눈썹을 치켜 세우며 구택을 바라보았다. “왜 이걸 나에게 주는 거야?”구택은 다가와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다 네 것이야!”소희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구택이 소희가 고의로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때 소희에게 무엇을 얻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소희가 집이라고 말했다.구택은 그것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소희는 집문서를 다시 서랍에 넣으며 웃으며 말했다. “이건 약혼 선물로 하자!”구택의 눈빛이 깊어졌다. “세뱃돈이 약혼 선물이 되다니, 할아버지가 날 꾸짖지 않을까?”소희는 미소를 감추며 옷장에서 잠옷을 꺼냈다. “잠깐 앉아 있어, 나 샤워하고 올게.”“나도 샤워하고 싶어.” 구택이 따라갔다.“여기 네 잠옷은 없어,” 소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택은 옷장에서 남자 잠옷을 꺼냈다.소희는 한숨을 내쉬며 구택을 쳐다보았다. “내 방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겨놓은 거야?”“많아, 천천히 찾아봐.” 구택은 씩 웃으며 그녀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다.오늘 하루 감정 기복이 심했던 소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택은
는 구택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 “힘들면 옆방에서 자.”“싫어!” 구택은 단칼에 거부했다.“그럼 방해하지 마, 난 잘 거야.” 소희는 오늘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이제야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는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그럼 자, 나는 이렇게 안고 있을 테니까.” 구택이 낮게 말했다.“응.” 소희가 희미하게 대답했다.그녀가 잠이 들 무렵, 구택이 다시 그녀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소희야, 다시 한번 말해줘, 날 사랑한다고.”소희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사랑해.”“얼마나 사랑해?”“많이……, 사랑해.”“다시 말해봐.”“임구택, 입 좀 다물어, 아니면 당장 나가!” 소희는 구택을 밀어내고 이불을 쥐고 침대에서 일어나 옆방에서 자려고 하자 구택이 팔을 뻗어 소희를 다시 끌어당겼다. “알았어, 알았어, 잘게, 더 이상 널 괴롭히지 않을게.”소희는 불편한 마음으로 누웠지만, 다시 구택에게 안기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소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높이 떠 있었다. 소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침대에는 혼자여서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워 났다. 어젯밤이 꿈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휴대폰을 확인하자 구택이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조금 더 자, 난 할아버지 모시러 갈게.]문자를 확인한 소희는 가볍게 웃고는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집을 나섰다. 그때 복도에서 설희가 짖었다.“왈왈!”소희는 작은 가방에서 몇 개의 해바라기씨를 꺼내 설희에게 던졌다. “할아버지 좀 보고 올게, 그러고 나서 놀자.”설희는 해바라기 씨를 물고 껍질을 벗겨내며 좋다고 날뛰었다.이윽고 소희는 앞마당으로 걸어갔는데 그때 할아버지 방문 앞에 서 있는 장의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막 깨셨어요,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의건은 웃으며 말했다.“수고하셨어요!” 소희는 감사했다.“제가 할 일을 한 건데요 뭘.”의건의 얼굴도 전날 밤보다 많이 좋아 보였다.“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가서 건강
소희는 임구택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이 아니라 정말 놀랐어요. 아까 장의건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오늘같이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으려고 한다고요.”이 말을 들은 강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괜찮아졌는데 무슨 검사를 더 해? 아픈 것도 없는데 병을 만들어내네.”그러자 구택이 재석을 달래며 말했다. “미리 병원에 알려 두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검사를 할 수 있고, 검사 항목도 한 곳에서 다 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불편하지는 않을 겁니다.”“나는 병원 냄새만 맡아도 진저리가 나. 아픈 데도 없는데 없는 병을 만들어내면 안 되지.”재석은 말하면서 의건에게 눈짓을 하자 의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이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예전에 매달 저희가 직접 찾아와 맥도 짚고 몸 상태도 확인하였었는데, 앞으로는 열흘에 한 번으로 바꾸고 약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요.”소희도 마지못해 양보했다. “그럼 병원에 안 가도 돼요. 하지만 의건 선생님 말씀대로 약은 꼭 드셔야 해요. 오석 집사님을 속이고 몰래 약을 버리는 짓은 절대 안 돼요. 저를 또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재석은 소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오석이 나를 잘 챙길 거야.”소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아침에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직접 만들어 드릴게요.”소희의 말에 방 안은 고요해졌고 구택은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잖아. 좀 쉬어. 부엌에서 이미 아침을 준비하고 있어.”그러자 재석이 구택을 바라보며 중요한 말을 했다. “우리 소희는 참 좋은 아이야. 하지만 이 점만큼은 네가 좀 이해해줘.”구택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집에도 요리사가 있습니다. 요리사가 없어도 저도 요리를 할 수 있으니까 소희가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소희는 두 사람이 자신의
“뭐라고요?” 소희가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어젯밤에 집에 돌아왔는데, 네 물건이 다 없어져서 난 당신이 또 나를 떠났다고 생각했어.” 구택은 그녀의 눈과 눈썹을 쓰다듬으며 그윽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걸 보는데 심장이 뛰는 것 같지 않았어.”소희는 마음이 아파나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인정해, 그 며칠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어. 특히 구은서가 당신 침대에서 자는 걸 보고 마음이 불편했어.”“내가 잘못했어!” 구택이 바로 사과했다. “이미 사람 시켜서 침대도 바꿨어.”“푸흡.”소희는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웃겨?” 구택도 씩 웃었다. “강성에 돌아가면 보여줄게.”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며 웃었는데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소희가 웃는 모습을 너무나 좋아하는 구택은 참지 못하고 소희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부드럽게 뽀뽀했다.한편 소희는 누군가가 볼까 봐 바삐 구택을 밀쳤다. “빨리 밥 먹으러 가.”“응!” 구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정원을 지나 긴 복도를 거쳐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식사를 마친 후, 재석은 주사를 맞고 쉬어야 했기에 소희는 방에서 재석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잠 든 모습을 확인하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어젯밤 소희와 구택은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때마침 오전에 할 일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소희는 구택에게 옆방에서 잠을 자라고 했지만, 구택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구택은 소희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약속하며, 그저 안고 잠만 잘 것이라고 했다. 소희도 구택과 헤어지기 싫어 마지못해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전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소희는 곧 깨달았다. 구택이 단순한 뽀뽀에서 딥키스로, 그리고 소희의 턱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소희는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구택 씨, 나 어지러워.” 소희는 구택의 팔을 잡고 이마를 그의 어깨에 기대며 낮게 말했다.구택은 바로 멈추
이번에는 매우 편안하게 잠들었고, 그 어떤 꿈조차 꾸지 않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태양은 하늘 중간에 떠 있었다. 햇빛은 창문을 통해 방 안을 비췄는데 실로 따뜻해 났다.소희는 임구택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소희의 눈썹과 눈에는 빛과 그림자가 서렸고 이윽고 소희는 환하게 웃었다.구택은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며, 소희의 눈매와 입술을 따라 입맞춤을 했다. 구택은 부드럽게 소희의 입술을 감싸며 말했다. “자기야, 사랑한다고 말해줘!”“사랑해!” 소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구택의 목소리는 더욱 섹시하게 울리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봐.”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구택의 입술을 피하며 말했다.“구택, 그만 할 거야 아님 계속할 거야?”“계속할 거야!” 구택은 그녀의 턱을 깨물며 말했다.“네가 그전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만큼 백 배로 사랑한다고 말해야 돼!”소희는 구택의 집요함에 못 이겨 말했다. “평생을 같이 보낼 텐데, 뭐가 그리 급해.”그 말을 들은 구택은 하려던 동작이 멈추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맞아, 우리는 평생 같이 있을 거라 천천히 말할 수 있지, 그저 약속 지키기만 하면 돼.”“약속 지킬게.” 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구택의 눈동자에 비치는 햇살에 반짝이는 빛을 보냈다.구택은 다시 소희에게 입맞춤을 했다.입맞춤을 하면서도 소희는 마음 한쪽으로 여전히 강재석을 걱정했기에 곧장 일어나 재석의 방으로 갔다.재석은 이미 깨어나 있었고, 어제보다 더 정신이 맑아 보였고 침대에 기대어 오석과 이야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들어오자 재석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리 와봐, 너희들을 좀 보자.”소희는 의자를 끌어 다가 침대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날 놀라게 하지 않는다면 난 매일 할아버지 곁을 지킬 거예요.”“그건 안 돼, 여자가 어느정도 성숙됐으면 시집가야지, 어떻게 매일 내 옆에 있을 수 있어?” 재석은 웃으며 구택을 바라보았다.
한 시간 후.강아심은 고개를 숙여 오래된 마을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강성으로 향해 차를 몰았다.강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아심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김후연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차를 밖에 주차하고, 조용한 골목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김후연 할머니 집 마당에 피어난 등나무꽃이 보였다. 활짝 핀 꽃들에서 달콤한 향기가 골목 가득 퍼져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꽃도 때맞춰 피어 있었지만 이제 그 꽃을 돌보던 주인은 더 이상 없었다.아심은 나무문을 조심스레 밀고 들어가며 문턱을 넘을 때, 지난번에 김후연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해졌다.마당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당화 꽃잎이 바닥을 가득 메웠고, 옆의 빨랫줄에는 예전에 아심이 김후연에게 사준 숄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지승현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후연 할머니가 늘 앉던 등나무 의자에 앉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짊어지고 있는 듯했다.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초췌한 얼굴에 눈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심아!”아심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왔어.”“힘내.”승현의 눈이 더욱 붉어지며 목이 메어 조용히 말했다.“할머니가 가셨어. 날 가장 아껴 주신 분이 영원히 떠나셨어.”아심은 그의 슬픔을 함께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할머니는 네 곁을 떠난 게 아니야.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계시는 거야.”“널 곁을 스치는 바람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 그 모든 게 할머니가 돌아와 널 지켜보고 계신 걸지도 몰라.”승현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거의 간절하게 이마에 가져다 댔다.“아심아, 이제 나에겐 너밖에 없어.”아심은 낮게 대답했다.“내가 곁에 있을게.”잠시 후, 양세민 아주머니가 나와 아심에게 말했다.“할머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도련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계세요.
도도희는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에게 다시 인연이 있기를 바랄게.”도도희의 말뜻을 짐작한 아심은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볼게. 수업 들어가요!”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그녀가 짐을 든 걸 보고 창가에 머리를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언니!”“아심 언니, 다시 돌아올 거예요?”“누나, 우리 모두 누나를 그리워할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강성에 있는 대학에 와야 해!”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아심은 작별 인사를 길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더 머물지 않고 도도희에게 인사를 남긴 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차에 싣고, 그녀는 자신의 차를 몰아 저택을 떠났다....강시언은 2층으로 올라가 그 오래된 창고 방에 들어갔다. 그의 키 큰 몸은 벽에 기대어 앉아 밖의 흐릿하고 어두운 날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한참 후, 그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시언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아심, 너 나한테 복수하는 거냐?”이 시간 동안 그녀의 애매한 태도와 고통스러운 모습이 모두 자신에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까?시언은 처음으로 차갑게 아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불렀고, 그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그간의 온기와 친밀함이 마치 빗속의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텅 빈 회색만이 남아 있었다.아심은 운전 중이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눈을 살짝 깜빡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시언의 목소리는 어두웠다.“넌 모든 걸 계산했겠지만, 네 마음은 계산해 봤냐?”아심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본인이 분명히 말씀해 주셨잖아요. 특수 요원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시언이 말했다.“그럼 네가 내게 했던 말 중 진심이 뭐야?”아심은 천천히 대답했다.[당신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당신에
다음 날.강아심은 전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 날이 밝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방 안은 회색빛으로 어두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귀에 대고 받았다. “여보세요?”[아심아!] 전화기 너머에서 지승현의 슬픔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그 말에 아심은 눈을 번쩍 뜨며 순식간에 잠이 깼다. 몸은 깨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온화하던 김후연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심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고 아심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그 후, 별장의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급한 일이 생겨 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배웅은 사양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다.채팅방에서 모두가 놀라며 아쉬워했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나중에 강성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몇 개의 메시지를 답장하고 난 후 그녀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집을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머물렀던 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보고, 문을 닫고 나섰다. 계단을 내려올 때 마침 강시언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고 아심을 찾으려 올라가던 중이었다.아심의 손에 들린 여행 가방을 본 그는 마음이 답답해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아심이 대답했다. “강성에 일이 좀 생겨서요.”시언은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어젯밤 일 때문이야? 아직도 화난 거야?”“아니요!” 아심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아심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언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아심!”아심은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안 가면 안 될까?”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말처럼, 간절하게 이어졌다. “안 가면, 안 돼?”아심은 가방 손잡이를 꽉 쥐고 몸이 굳었지만,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강시언이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도도희가 강아심의 손을 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됐어,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어.”이에 아심이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쉬세요.”“그래!”세 사람은 함께 안쪽으로 걸어가다가 길목에서 헤어졌다. 시언과 아심은 각자 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별장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우미는 이미 퇴근해 잠자리에 든 상태였다.시언이 말했다. “저녁을 못 먹었으니, 뭐라도 좀 준비해 줄게.”“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심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곤해서 입맛도 없어요. 그냥 올라가서 자고 싶어요.”“그럼 그렇게 해. 만약 밤에 배고프면 언제든 전화해.”시언의 말투는 다정했고, 아심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걸어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달라 보이는 듯해 말문을 열었다.“이번 일, 나도 미리 알지 못했어.”아심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알아.”“하지만.” 시언의 목소리는 밤처럼 깊고 잔잔했다. “시야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치챘어. 몸을 감추려고 일부러 옷을 더 입고, 변성기를 썼지만, 그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차렸지.”“걔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몰라서 모른 척했어.”아심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묶였을 때 시언이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던 점이 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또한, 그 용병들이 두 사람에게 밧줄을 묶을 때 시언의 상처 부위를 피해서 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다만 그 당시 아심은 마음이 급하고 혼란스러워서, 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서 움직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난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이죠. 진짜 노도의 부하들이 사람을 사서 복수하려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심은 얕게 웃으며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어가던 그녀는 멈춰
아심은 말을 마치고 바로 물었다.“조하루는 어떻게 됐나요?”시야는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무사히 집에 데려다줬어요. 집이 꽤 가난해서 할아버지가 아프신데도 병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해서 저희가 그 집에 돈을 좀 두고 왔어요.”“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하루 군에게도 여러분이 무사하다는 걸 전했습니다. 그저 장난이었다고 말했어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예전엔 우리가 잘 몰랐지만, 이제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시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농담 그만하고, 빨리 떠나!” 시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야는 아심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사람들을 불러 함께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아심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진언 님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전부 제 생각이라서, 절대 진언 님을 탓하지 마세요!”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탓 안 해요. 장난이었다면서요?”시야는 아심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번쩍이자 급히 사라졌다.잠시 후, 아까까지 살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오두막은 다시 조용해졌다. 원래의 고요하고 텅 빈 분위기로 돌아갔다. 방 한가운데의 불만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시언은 아심 앞에 앉아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놀랐어?”아심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모두 무사하니 더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죠?”시언은 아심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시야 대신 사과할게.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봐.”아심은 방금 전의 격렬한 감정이 갑자기 멈추자 머릿속이 멍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아니요, 물어볼 건 없어요. 다 알겠으니 우리 내려가요. 벌써 늦었어요. 도도희 이모가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방금도 전화했었어요.”시언은 그녀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금 내려가자.”두 사람은 자리에서
굉음이 천둥같이 울려 퍼지며, 마치 지붕을 뚫을 듯했다.아심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멍하니 굳어버렸고, 시언은 아심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아. 시야가 장난친 거야.”“시야?” 아심은 멍한 얼굴로 시언이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린 거면 남자를 바라보았다.가면 남자가 몸을 일으켜 목소리 변조기를 벗고, 이어서 얼굴에 쓴 가면까지 벗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미소를 띤 잘생긴 얼굴이었다.“넘버세븐, 나 기억하지?”아심의 머릿속이 순간 멍해졌다.눈물은 여전히 그녀의 눈에 고여 있었고, 격렬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심은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시언은 그녀를 풀어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시언은 아심을 의자에 앉히고 나서 시야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나와!”시야는 아심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이건 내 생각이었어. 그냥 장난치려던 거야. 진언 님과는 아무 관련 없어. 혼나고 올 테니까, 이따가 와서 제대로 사과할게.”아심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멍한 상태였다.시언과 시야가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용병들은 일제히 일어나 벽 쪽으로 물러섰다. 그들은 총을 안고 긴장감 있게 서 있었다.뒤에 있던 면수건을 쓴 남자도 면수건을 벗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시야의 부하예요. 시야가 명령을 내린 거라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화가 나셨다면 그를 탓하세요!”그는 말이 끝나자 아심 앞에 놓인 구운 고기를 깨끗한 칼로 잘라 작은 조각들로 내밀었다....오두막 밖, 시언은 거대한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야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갑자기 몸을 똑바로 세우고는 보고하듯 말했다.“진언 님,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나무 아래 걸린 백열등이 차갑게 빛났고, 시언의 눈빛도 차갑고 무미건조했다.“말해.
“안 돼!” 강아심은 손에 쥔 줄을 힘껏 당겼다. 가면 남자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심은 줄을 약간 풀며 다시 외쳤다.“우릴 보내 줘! 그렇지 않으면 너도 살아남을 생각 하지 마!”갑자기 꽉 닫혀 있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불길이 휙휙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팽팽한 긴장감에 한층 더 싸늘한 기운이 더해졌다.새로 들어온 열 명이 넘는 무리가 무장한 채 총을 들고 아심과 시언을 겨누었다. 이에 시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새로 들어온 무리의 리더는 역시 용병 차림을 하고 얼굴을 면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는 가면 남자를 향해 눈길을 주며 말했다.“네가 진언을 제압하지 못할 줄 알고 위에서 날 보냈다.”그러자 가면을 쓴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여자를 과소평가했을 뿐이지!”면수건을 쓴 남자는 아심을 향해 말했다.“너에겐 한 생명밖에 없어. 목숨 하나로 하나를 바꿀 수 있어. 네가 나갈지, 진언이 나갈지 선택해.”또한 가면을 쓴 남자는 아심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여도 소용없어.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총과 사람들이 있어. 나를 죽이면 너희 둘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그러고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알아둬.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야. 네가 남든, 진언 대인이 남든.”“네가 날 잡고 있으면 내 사람들은 조금은 신경 쓸지 몰라도, 그의 부하들은 내 목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가면 남자는 새로 들어온 리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심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시언을 올려다보았고, 목소리는 쉰듯하지만 차분했다.“좋아, 내가 남을 테니 진언을 보내줘.”시언의 눈빛은 깊어지고, 아심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남자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리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잘 알아둬. 내가 충고하건대, 잘 생각하고 결정해.”“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심은 줄을 세게 죄며, 차가운 눈빛을 빛냈다.
아심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나랑 키스해줘, 제발.”시언은 고개를 숙여 아심의 부드럽지만 결연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점점 더 깊어졌다.아심은 그의 턱에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시언의 피부에 닿으며 얕은 숨결과 촉촉한 감촉이 시언을 감쌌다. 아심의 눈빛은 비에 젖은 듯 촉촉했고, 마치 갈고리처럼 그를 끌어당겼다.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빗소리처럼, 남자의 분노가 서서히 진정되었다.시언은 눈꼬리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가면 남자를 한 번 노려본 후, 고개를 숙여 아심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추었다. 아심은 곧바로 그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홀로 있는 듯 서로만을 바라보며 키스를 나눴다. 아심은 눈을 반쯤 감고 시언에게만 집중했다. 아심의 귀에는 오직 빗소리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들렸다.아심은 시언을 더 유혹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매혹적이고 나긋나긋하게 행동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신음은 시언과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소리였다. 마치 화려하게 피어난 꽃처럼, 그 소리는 남자의 정신을 단숨에 빼앗아 갔다.한참 후, 아심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하게 말했다.“약속해 줘.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떠나요. 나 신경 쓰지 말고.”시언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아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묶여 있던 줄이 느슨해졌다. 아심은 재빨리 손을 뽑아내고 시언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가면 남자 쪽으로 날아들다.가면을 쓴 남자와 그의 부하들은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아심이 방 가운데까지 나아갔을 때야 그들은 아심을 막으려고 했다.“쾅!”아심은 손에 쥔 줄을 휘둘러 덤벼드는 용병의 목에 감았다. 그는 줄에 맞아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아심은 발을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줄을 휘두르며 방어하고, 다른 발로 다가오는 용병을 걷어차며 날려버렸다. 강렬한 눈빛이 목표를 향
강아심은 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살짝 빛났다. 아심은 가능한 시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벽 구석에 깨진 도자기 조각이 보여. 우리가 어떻게든 가서 그걸 손에 넣어야 해.”깨진 도자기 조각은 절반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고, 아마도 산에 올라온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다 그릇을 깨뜨리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여자의 숨결이 부드럽게 시언의 귀를 간질이며 퍼졌다. 아심의 부드러운 입술이 열렸다 닫히며 그의 귀밑 민감한 피부를 살짝 스쳤다. 시언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가 늦게서야 대답했다.“소용없어.”“뭐?” 아심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이 줄엔 합금 섬유가 섞여 있어. 칼로도 자를 수 없으니 도자기 조각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해.”시언이 낮게 말하자, 아심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속삭였다.“정말 당신을 특별대우해 주긴 하네요!”이번엔 시언이 이해하지 못했다.“응?”“아니, 그런 거지! 일부러 합금 줄까지 써서 묶어놨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대접 못 받을걸요!” 아심이 말하자, 시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가 자신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었다.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그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이 교대로 밖에 나갔다 돌아왔다. 마지막 교대 때는 가면을 쓴 남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모두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텅 비었던 방은 순식간에 꽉 찼다. 용병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인상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방 안 공기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시언과 아심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섰다. 시언은 벽에 몸을 대고 서서 손으로 아심의 등을 감싸며 가면 남자를 주시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남자는 방 한쪽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용병들은 방 안에 나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방금 비가 내린 터라 산속은 밤이 되면서 습기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