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휴대폰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임구택의 물음에 소희가 술집 이름을 말해주었다.[당신과 연희 씨 둘 다 술 마셨어?]“난 괜찮은데, 연희가 많이 마셨어.”소희가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려 성연희 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 성연희와 김영이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 마냥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내가 지금 데리러 갈 테니까,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 남들이 와서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말고.]‘하지만 연희가 곧 김영 씨와 의형제를 맺을 것 같은데?’임구택의 당부에 소희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소희는 웨이터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부탁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이때, 소희는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소파 등받이에 엎드려 몰래 성연희와 김영을 찍고 있는 수상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반쯤 취한 성연희는 자신과 김영 사이의 거리가 애매할 정도로 가깝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한 채 웃으며 김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순간 얼굴색이 어두워진 소희는 바로 손에 든 물컵을 사진 찍고 있는 남자에게 던졌다.그러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물컵은 남자의 팔을 명중했고,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손에 든 휴대폰도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하지만 남자는 팔의 통증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일어나 바닥에 있는 휴대폰을 잡으려 했다.그런데 이때 소희가 신속히 몸을 움직여 남자 먼저 휴대폰을 주웠고, 바로 발을 들어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남자를 세게 걷어찼다.뻥-묵직한 소리와 함께 소파에 부딪힌 남자는 아파서 일어서지도 못했다.그리고 그 소리에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이 분분히 시선을 소희 쪽으로 돌렸다.소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휴대폰 앨범을 찾아냈다.앨범 속에는 성연희를 몰래 찍은 사진이 십여 장 넘게 있었다. 심지어 일부러 각도를 잡고 찍은 게 분명했다. 사진으로 봐서는 성연희와 김영이 서로 애매하게 기대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소희가 듣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의 사람들을 한번 훑었다.“피해자가 비난을 받는 건 또 처음 겪어보네요. 오늘 내가 이 사람의 범행을 제때에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발견하지 못했더라면요? 이 사람이 몰래 찍은 내 친구의 사진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누가 알아요? 이 사람은 지금 내 친구의 초상권을 침해했습니다. 그리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으니 이렇게 용서를 빌고 있는 건데, 참 쉽게 여러분들의 가여워하는 대상이 되었네요?”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자를 위해 불평을 토하던 몇 사람은 소희의 말에 순간 난처해져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대체 뭘 찍었는데요? 저도 보여줘요.”이때, 옆에 있던 김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성연희의 손에서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앨범을 뒤지기 시작하는데 무릎 꿇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일어나 김영의 손에서 휴대폰을 앗아내고는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주위의 사람들이 보더니 전부 어리둥절해졌다. 특히 방금 남자의 편을 들었던 몇 사람은 더욱 고개도 들지 못했다.그렇게 편을 들어줬는데 전혀 잘못을 뉘우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남자가 도망가게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던 소희는 신속히 쫓아갔다.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남자의 눈빛에 한줄기의 한기가 스치더니 바로 휴대폰을 창문밖으로 던졌다.술집은 6층에 자리 잡고 있어 휴대폰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산산조각이 났고, 남자는 그제야 겁도 없는 웃음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렸다.“휴대폰이 망가지고 사진도 찾지 못하게 되었으니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겠는데요?”“…….”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소희는 바로 발을 들어 남자를 걷어찼다. 그러자 남자는 ‘퍽’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히면서 피를 토하고 말았다.순간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술집 사방에서 들려왔다.술이 반쯤 깬 성연희도 소란에 큰소리로 외치며 급히 달려왔다.“소희야!”소희는 바닥에 누워 있는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서는 차갑게 그를 쳐다보았다.“네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러는지 이젠 중요하지
노명성은 성연희를 데리고 먼저 술집을 떠났고, 뒤따라 임구택과 함께 술집을 나가던 소희는 갑자기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돌려 술집안을 둘러보았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김영이 보이지 않았다.“왜 그래?”임구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야, 가자,”그렇게 술집에서 나와 차에 오른 후 소희는 문득 임구택을 향해 물었다.“당신이 노명성을 불렀어?”“응. 명성 씨의 여자 친구가 술에 취했는데, 명성 씨를 부르지 않으면 누구를 불러?”농담이 섞인 어투로 대답하고 있는 임구택의 의도는 너무 뻔했다. 그러나 소희는 굳이 그걸 들춰내지 않고 걱정이 되어 다시 말을 이어갔다.“방금 그 사람 절대 술김에 충동적으로 연희를 몰래 찍은 게 아니야. 왠지 의도적인 것 같았어.”‘그의 휴대폰에는 다른 몰카 사진이 없었어. 그러니 상습범은 아니라는 거지. 설령 정말로 연희가 예뻐서 몰카한 거라고 해도 한 두 장만 찍으면 되는데, 굳이 열 몇 장이나 찍었어.’‘게다가 각도도 마침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의 애매한 각도였고.’‘그러니 고의적인 게 분명해.’‘아니면 누가 시켰거나.’임구택이 듣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방금 그 사람을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소용없을 거야. 그 사람이 휴대폰을 망가트렸잖아. 게다가 그 능청스러운 태도로 봐서는 범행을 승인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경찰들은 더욱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거야.”“연희 씨가 그래 봬도 명성 씨의 곁을 그렇게 오랫동안 따라다녔는데,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닐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응.”임구택의 위로에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근심이 되는 건 여전했다.경원주택단지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소희는 곧장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임구택이 갑자기 소희의 손목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봐 봐, 누가 돌아왔는지.”임구택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맞은편 문에 붙은 스크린에서 지니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들뜬 어투로 소희에게 인사를 했다.“소희 님, 오랜만이에요!”소희가 보더니
임구택이 몸을 살짝 일으켜 세우고 소희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키스를 했다. 그러다 한참 후 잠겨 있는 목소리로 소희를 향해 말했다.“소희야, 사랑해.”소희가 듣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임구택의 사랑 고백에 응했다. 부드러우면서 애교가 섞여 있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이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임구택은 물속에서 일어나 소희와 더욱 찐한 키스를 나눴다.……밤중에 임구택은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여러 번이나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다 품속에 누워있는 소희를 보고서야 시름 놓인 사람 마냥 소희의 얼굴에 입술을 한번 맞추고는 다시 잠들었다.그런데 새벽녘이 되자 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유리창에 떨어지는 비소리에 깬 소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날이 밝아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좀 더 자. 내가 곁에 있잖아.”소희의 불안함을 눈치챘는지 임구택은 그녀의 미간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달랬고, 그 소리에 소희는 곧 숨을 고르고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하지만 그러는 소희와는 달리 임구택은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깥의 빗소리를 들으며 품에 안은 여인을 보고 있으니 임구택은 오랜만에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고, 비도 멈추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 순간도 영원히 이대로 멈추겠는데.’그렇게 날이 거의 밝아질 무렵 피곤함에 눈조차도 뜰 수 없었던 소희는 임구택의 품에 머리를 묻힌 채 웅얼거리며 입을 열었다.“조깅하러 갈 거야?”임구택이 소희의 얼굴에 가볍게 입술을 한번 맞추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늘은 비가 와서 못 갈 것 같아. 조금만 더 자.”소희가 듣더니 로또에 담청 된 사람 마냥 기뻐하며 다시 잠들었다.그러다 실컷 자고 깨어났을 땐 시간은 이미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날씨가 음침한 게 집안 전체도 덩달아 침침했다.달칵-이때 마침 방문이 열리더니 임구택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와서는 잔을 침대 머리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몸
‘역시 기대를 품는 게 아니었어.’흰색 티셔츠에 검은색 트레이닝 팬츠 차림을 한 임구택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착잡한 표정으로 소희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소희가 다시 유난히 맑은 눈동자로 임구택을 바라보며 물었다.“대체 어느 거 먹을 거야? 나 전에 미나한테서 면을 맛있게 끓이는 팁을 배웠다고!”“당신이 먼저 먹고 싶은 걸 골라, 그리고 남은 걸 내가 먹을 게.”임구택은 소희를 한 번만 더 믿어 보기로 했다.이에 소희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마저 가서 일 봐. 면이 다 되면 부를 게.”“물에 데지 않도록 조심하고.”“알았어, 내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어서 가서 일 봐!”소희가 자신만의 팁을 알려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임구택은 결국 주방을 떠났다.그러다 10분 정도 지나자 소희가 조용히 안방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임구택이 영상회의를 하고 있는지 살피는 듯했다.임구택이 보더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면이 다 됐어?”“응. 이제 먹어도 돼!”임구택이 앞으로 다가가 소희의 똥머리를 한번 누르고는 웃으며 말했다.“나의 요구는 엄청 간단해, 달걀프라이가 타지만 않으면 돼.”소희가 바로 임구택의 손을 밀어내고는 대답했다.“오늘은 수란이라 탈 리가 없거든.”임구택이 듣더니 아주 흡족한 표정을 드러냈다. 심지어 약간의 기대까지 더해져 소희의 손을 잡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식탁 위에는 이미 면 두 그릇이 놓여 있었다.“두 가지 면을 섞어서 끓였어, 그러면 당신이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잖아.”“…….”소희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임구택이 입꼬리를 올리고 제일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하는 웃음을 드러냈다.“역시 자기. 진짜 똑똑해.”“먹고나서 칭찬해.”소희가 삶은 면은 유난히 풍성했다. 계란 프라이, 햄, 야채…….보기에도 확실히 괜찮고.“내가 말했지, 연습만 충분히 하면 요리 실력이 반드시 늘 거라고?”소희가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이고는 면을 먹기 시작했다.임구택도 소희가 이번에
소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임구택은 다시 요리를 시작했고 성연희는 금방 답장을 보냈다. [와우, 임구택 사장님을 잘 조련시켰네?]소희는 미소를 감추며 답장했다. [내가 요리를 잘 못해서 그래.]그러자 성연희는 금방 이해했다. [아 그런 거라면 인정.][그럼 넙죽 엎드려서 절해, 고맙다고.]성연희는 그런 소희가 웃겼는지 크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고 소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임구택이 새롭게 만든 아침 식사가 준비됐고, 음식이 식탁에 놓이기도 전에 소희는 향긋하고 유혹적인 냄새를 맡았다. 임구택은 미리 끓여 놓은 면을 볶았다.“먹어봐.”임구택은 그녀의 앞에 면을 놓고 한 팔로 식탁을 짚은 채 그녀가 시식하기를 기다렸다. 소희는 젓가락을 들고 한 입 먹어보며 천천히 씹더니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맛없어?”임구택이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소희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임구택, 나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요리는 진짜 포기해야 할 것 같아.”소희는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고 임구택은 낮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괜찮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가서 먹어도 돼.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면 내가 해줄게.”소희는 머리를 들고 말했다.“나한테 이렇게 많은 허점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임구택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이건 허점이 아니라 내가 널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인 거야.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라고.”소희의 마음은 따뜻해졌고, 눈빛은 반짝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그래!”식사를 마친 후, 임구택은 부엌을 정리했고, 소희는 부재중 통화기록을 보고 발코니로 나가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석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차분했다. “촬영장에 안 갔어요?”“비도 오고 그래서 게으름 좀 피우고 있었어요.”소희는 소파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미소 지었다.“비 오는 날만 게으름 피우는 게 아니라, 매일 피우고 있는 거 같은데요?” 진석
임구택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밖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워. 이거 가져다가 주든지.”“그래야겠네.” 임구택은 방으로 돌아가 새것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연한 파란색의 단단한 종이 상자였는데, 위에는 대문자 ‘S’만 있을 뿐 다른 이름이나 제조사, 설명서는 전혀 없었다.소희는 그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임구택을 바라봤다. “이거 몇 통 있어?”임구택은 몸을 숙여 그녀를 깊이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있어.”소희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는 약을 다시 임구택에게 돌려주며 말했다.“알겠어, 근데 이런 약은 안 주는 게 나을 거 같아.”임구택은 그녀의 생각을 짐작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약이 안전하다고 해도 결국 약이니까.”소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약국에 가서 직접 사라고 할게.”임구택은 그녀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았다.한 손으로 소파를 짚고 몸을 숙여 그녀에게 키스했고 소희는 그의 입술에서 달콤한 박하 맛을 느꼈다.임구택은 자기 입에 있던 박하사탕을 소희에게 먹이고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사탕 먹으면 쓴맛이 사라지잖아.”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운치 있는 배경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 소희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그를 희미하게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안 쓰네.”임구택은 그녀의 턱을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소희는 이 순간을 느끼며 소파 뒤로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임구택과의 키스에 집중했다.임구택이 숨이 차오를 때까지 소희는 가만히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가 끝나서야 물었다.“회의 있다고 하지 않았어?”“오후로 변경됐어. 비도 오는 이런 분위기에 일이라니, 잘 안 어울리잖아.”임구택은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그녀의 볼과 턱 선을 따라 내려가며 뽀뽀하였고 이어 그녀를 안아 안방으로 향했다.……비는 하루 종일 내렸고, 저녁일 때에는 더욱 거세졌다.기원과의 협력에 대한 대체적인
“오!” 청아는 장 씨 계열사의 직원들이 결혼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마 오빠의 상사가 신청한 것으로 추측했다.“청첩장 주지 않을 건가요?” 장시원은 얇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고 청아는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저 작은 결혼식일 뿐이에요. 굳이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아요.”장시원은 무거운 눈빛으로 청아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팔을 차창에 기대고 손바닥을 살짝 구부린 채, 화를 참고 있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청아도 말하지 않고 계속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한마디도 없이 경원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주성이 우산을 들고 장시원을 맞으려고 했지만, 장시원은 태연하게 말했다. “나한테 줘요.”말을 마치자마자 차에서 내리려던 청아를 붙잡고, 차분히 말했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요.”청아는 놀란 눈으로 그 장시원을 바라보았다.우산을 건네받은 장시원은 반대편으로 가 차 문을 열고는 청아에게 말했다. “내려요.”청아는 고개를 들어 보자 끊임없이 내리는 빗속에서 장시원은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그의 준수한 얼굴은 그녀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장시원은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몸의 절반은 비에 젖고 있었고 우청아는 바로 차에서 내려 우산을 그의 쪽으로 밀었다.장시원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빠르게 계단을 향해 걸었다.그의 길고 단단해 보이는 그의 손이 검은색 우산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고 계속해서 우청아의 방향으로 기울였다.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청아의 심장은 빗소리보다 더 세게 뛰고 있었는데 마치 장시원을 제외한 모든 것이 차단된 듯했다.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장시원은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내려 우산을 접고는 안으로 걸어갔다.우청아는 장시원이 떠날 의사가 없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집에 도착하자 이경숙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장 선생님 오셨군요!”그러자 우청아가 설명했다. “비가